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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민주주의와 수 그리고 국민 눈높이

임신 6개월밖에 안 된 아내에게 남편이 왜 아기를 낳지 않느냐고 따졌다. 아내가 아직 10개월이 되지 않았는데 아기를 낳으라니 제정신이냐고 대들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6을 ‘사사오입’하면 10이 되지 않느냐? 그러니 지금 임신 10개월이나 마찬가지니 아기를 낳으시오.” 이는 자유당 시절 헌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가결 정족수를 ‘사사오입’이라는 수학에서의 반올림 법칙을 인용해 강제로 통과시켰을 때 유행한 말이다. 1954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은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개헌선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는 몇 석이 부족했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 의석과 비슷한 상황. 그래서 1954년 11월29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은 중임제를 두지 않는다는 개헌안 표결을 했는데 재적 203명 중 202명이 출석해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가 나왔다. 찬성에 필요한 203명의 3분의 2 이상은 135.333...명. 그러니까 1명도 아닌 0.333...명이 부족한 것으로 당연히 의장은 부결을 선포했다. 야당인 민주국민당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자 자유당 강경파들은 어용학자들을 동원해 135.333명은 반올림(사사오입)하면 135명이니 개헌안은 통과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고 자유당은 다음 날 국회를 열어 전날 ‘부결’을 취소하고 ‘개헌 통과’를 선언했다. 그러자 야당이 거센 항의를 하는 등 국회는 난장판이 됐고 김영삼 의원(후에 대통령) 등 소장파 의원 다수가 자유당을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0.333’의 숫자가 일으킨 정치적 마법은 그대로 굳어졌고 이로부터 자유당 정권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듯 민주주의에서 수는 굉장한 힘을 갖는다. 단 1표라도 많으면 그것으로 판정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고래를 두고 상어라고 주장하는 쪽이 단 1표라도 많으면 고래가 상어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인류가 발명한 최선의 정치제도가 갖는 강점이면서 약점이 되기도 한다. 더욱 그 다수의 한도가 반을 넘어 3분의 2 선에 육박할 정도가 되면 그럴 위험성이 높다. 지난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는데 이때 민주당 의원 중에는 ‘이진숙 후보자가 몇 달 안 가 탄핵을 당할 텐데...’라고 했다. 그 의원의 입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임명도 되지 않아 업무 수행에 법을 어길 기회도 없는 후보자에게 ‘탄핵’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다니.... 그리고 마침내 이 위원장 취임 하루 만에 민주당은 국회에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갖는 수의 힘이다. 그것이 고래가 되건 상어가 되건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 사실 최근 들어 방통위원장으로 이동관씨가 임명됐으나 ‘탄핵’ 직전에 사표를 냈고 다시 김홍일씨가 임명됐으나 몇 달도 못돼 ‘탄핵’의 위협에 자리를 떴다.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리까지 탄핵안이 제출되자 사표를 내는 바람에 결국 방통위원은 0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솔직히 22대 국회가 시작된 이래 그동안 국회가 민생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특검이니 청문회니 하는 것뿐이고 코미디 같은 막말과 저질 싸움뿐이다. 심지어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증인의 태도가 불성실하다며 10분간 퇴장을 명하는가 하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후보자의 뇌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까지 했다. 이 배경이 바로 민주주의 ‘수’의 힘이다. 그 힘이 저질 코미디인지 충정 어린 애국심인지는 국민의 판단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서운 ‘국민의 눈높이’다.

[변평섭 칼럼] 새들의 공화국은 왜 사라졌나

옛날에 새들의 나라가 있어 번영을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새들의 나라에 임금이 바뀌어 뻐꾸기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위에 오른 기념으로 새들의 노래 대회를 열었다. 까치, 비둘기, 참새, 부엉이, 잉꼬, 딱따구리, 꿩, 꾀꼬리... 모든 새가 다 참여해 노래 솜씨를 뽐냈다. 심사 결과 뻐꾸기가 1등을 했다. 심사를 맡은 채점자들이 임금과 동종인 뻐꾸기를 밀어줬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제 알을 낳는 소위 ‘탁란(托卵)’으로 유명하고 그래서 새의 세계에서는 악명이 높다. 임금 뻐꾸기는 앞으로 우리 새의 왕국에서는 뻐꾸기 노래만 부르게 하고 만약 다른 목소리를 내면 추방하겠다고 선포했다. 과연 이들 새 나라에서는 꿩이나 까치, 비둘기 소리 같은 다양한 소리는 사라지고 이 산 저 산 오직 뻐꾸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더 안타까운 일은 동종(同種)의 암컷과 수컷의 소리를 찾아 짝을 맺어 번식을 해야 하는 새들이 오직 뻐꾸기 소리뿐이니 점점 멸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뻐꾸기 왕은 뒤늦게 모든 새들이 ‘같은 목소리’만 내게 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새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였다. 7~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출마로 정치권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고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나 홀로 출마와 연임이 확실해졌다. 이인영 의원의 출마 고심이 전해지고 있으나 당내 분위기는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고 결국 지방선거 공천과 대선 직전까지 당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 목표는 대권. 사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일극 체제로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이 대표를 조선의 정조대왕에 비유하거나 어떤 최고위원은 ‘이 대표는 우리 민주당의 아버지’라고 하며 면전에서 절을 올린 것 등이다. 이 밖에도 이 대표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이재명 대표를 사법 리스크에서 몸 바쳐 지키겠다”라는 소리도 한둘이 아니다. 새들의 왕국에서 뻐꾸기 소리만 가득 찬 일화를 생각게 한다. 특히 ‘아버지’ 이야기는 당내에서도 일부 곤혹스러운 눈치다. 사실 이 지구상에서 국가 지도자를 향해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르는 곳은 북한밖에 없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귀를 간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영남의 유림들이 ‘아버지’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사과를 요구했겠는가. 그 최고위원이 그와 같은 예법이 ‘남인들의 예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인이건 북인, 서인, 노론, 소론, 당쟁은 심했으나 그런 식의 아부는 철저히 배격했다. 오히려 효종의 의붓어머니 자의대비 상복 입는 기간을 몇 년으로 하느냐로 서인과 남인 사이에 정권을 건 예송이 전개될 정도였다. 그러니 남인들이 들고일어날 만하다. 당내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나도 당 대표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과거 당 대표나 대권 경선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가를 보면 안다. 정말 나무가 우거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산에 오르면 작은 새들에서 큰 새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참 아름답다. 사실 그것이 산이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때로는 무질서하게 보일지라도 인류가 발명한 최선의 정치 제도인 것도 바로 이 같은 원리일 것이다.

[변평섭 칼럼] 한국판 FBI가 등장한다?

1941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막강한 정보수사력을 지나치게 행사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그를 해임하기로 했다. 그러자 후버 국장은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한 장의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것은 트루먼이 부통령 시절 비밀리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깜짝 놀라 후버 국장의 해임을 없던 일로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FBI에 약점 잡힐 일이 없다고 자신하며 후버 국장을 해임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후버는 과거 닉슨이 남몰래 사귀던 여인의 사진을 무기로 내놓았고 닉슨은 손을 들고 말았다. 이렇게 해 후버는 미국 대통령 다섯 명이 바뀌어도 죽는 순간까지 48년간을 FBI 국장으로 군림했다. FBI는 백악관 도청까지도 서슴지 않는 정보 수집, 검문, 검색, 과학수사로 미국 내 범죄 전담부서로 인정을 받았고 갱단, 마피아, 마약, 독일 나치와 소련 스파이 검거, 정치인들의 비리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능력 때문에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고 대통령까지도 손을 못 댈 정도였다. 사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조국혁신당에서 ‘검수완박 시즌2’라는 말이 번지고 있다. 이미 현 검찰을 ‘검찰 독재’, ‘정치 검찰’로 매도하고 악마화하고 있는 야권이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검찰개혁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기소청을 설치하며 형사소송법도 개정하겠다는 것인데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한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그것이 미국의 FBI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20년 소위 ‘검수완박’으로 공수처를 만들고 이어 검찰은 부패, 경제, 선거, 공무원, 방위산업, 대형참사 등 6대 범죄 외에는 모든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법을 강행 통과시켰다. 법통과 과정에서 여야 싸움도 치열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다수당의 위력으로 밀어붙였고 그래서 탄생한 공수처인데 지금 공수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만들어 낸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는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래서 다시 미국 FBI 같은 중대범죄수사청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영장 청구를 검찰에서 빼앗아 경찰로 넘기자는 것이고 검찰은 아예 이름도 공소청, 또는 기소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헌법에는 분명 영장 청구권이 검찰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위헌’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으나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 물론 개헌을 해서라도 검찰을 개혁하고 FBI 같은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면 모든 게 잘되고 방탄도 될까? 그래도 안 되면 또다시 그 위에 더 강력한 조직을 만들까? 그리고 또…. ‘검수완박 시즌2’를 맞아 한 현직 검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이채롭다. ‘검찰 사건 중 정치 사건은 0.1%밖에 안 되는데 왜 이러느냐’고.

[변평섭 칼럼] 과연 보수는 위기일까?

과연 보수는 위기일까? 이번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압승하면서 ‘보수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보수당이 총선거에서 3연패를 당하고 나니 그런 위기론이 나올 만도 하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의 경우 50대의 44%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 보수 진영으로 볼 때는 비관적이다. 지금의 50대가 40대이던 때부터 진보성향의 투표를 했는데 50대가 돼서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40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4·10 총선거에 나타난 의미 있는 통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54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약 50.5%, 국민의힘은 45.1%를 득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득표율을 보면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5.4%포인트 더 얻었을 뿐인데 의석수는 민주당이 63.4%(161석), 국민의 힘은 35.4%(90석)을 차지했다. 따라서 1.1%포인트, 어떤 곳은 0.53%포인트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락이 뒤바뀌는 곳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보수의 가치가 위축됐다기보다는 정권심판의 욕구가 강하게 표출됐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통령의 대파 이벤트만 없었어도 1% 상당의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 국민의힘 후보들은 다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조국혁신당 대표, 그리고 많은 야당 후보들이 유세 때마다 대파를 흔들어 보이며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을 공격했다. 오래전부터 유권자들은 농산물 등 물가가 고공행진에 대해 불만이 높았는데 대통령의 875원 발언은 그동안의 민생정책에 불신을 가져왔으며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감성적 공감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이런 감성적 분위기는 야당이 대통령 남은 임기 3년은 너무 길다며 탄핵을 외치는데도 역풍이 불지 않을 정도였다. 정상적인 선거에서 ‘탄핵’의 ‘탄’소리만 나와도 역풍이 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보수가 패한 것은 보수의 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여당의 전략 부재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이해찬, 김부겸 등 전직 총리만도 두 명이 선거 지휘를 맡았고 이재명 대표의 요지부동으로 낙천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당에 남아 후보자들을 지원했다. 막판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뛰어들어 민주당 색깔의 점퍼를 입고 야당 후보의 지원에 나섰다. 그야말로 연합함대였다. 심지어 문 전 대통령은 “70 평생에 이렇게 무능한 정부는 처음”이라며 노골적인 정치 공세를 펼쳤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 사람에게 전국 선거를 맡겼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준석 전 당대표도 쳐냈고 당 대표에 나선 나경원 전 의원은 주저앉혔으며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도 변방에 내몰았다. 선거 연합군 편성에 실패한 것이다. 실패가 아니라 오만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해병대 채 상병 죽음과 관련한 수사선상에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과정에서 벌어진 소동과 황상무 수석비서관의 ‘회칼’ 발언은 그 수습 과정이 ‘동네 축구’ 수준만도 못한 ‘자살골’이었다. 이런 미숙한 전략만 아니었으면 국민의힘이 이렇게 참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보수가 이렇게 위축되진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기회에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면,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때의 초심으로 바뀐다면, 보수의 미래가 있다.

[변평섭 칼럼]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女史 생가의 봄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는 구읍이라고 불리는 전통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이 ‘향수길’로 바뀔 만큼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가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특별한 마을이다. ‘옛 이야기 지즐대는/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름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향수’가 탄생한 마을답게 시인의 마을은 그야말로 시골스럽다. 시인의 생가를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안타까운 그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설이 있으나 가장 신뢰성 있는 사실로는 1950년 6·25전쟁 시 북한군에 체포돼 동두천에서 평양으로 가던 중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으로 끌려가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고/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 이삭 줍는’ 이곳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그가 6·25전쟁으로 마흔 여덟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향수’ 같은 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 가까이에는 마흔 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육영수 여사의 생가도 자리잡고 있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으로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 조총련계 문세광이 쏜 총을 맞고 운명했다. 그런 면에서 한 마을에서 태어난 40대 후반의 두 인물이 아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그 원인을 보면 6·25전쟁이라 하겠다. 육 여사 생가 역시 아픈 상처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같지만 규모는 훨씬 크다. 99칸 대궐 같은 기와집으로 초가집의 정지용 생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육 여사는 1925년 이곳에서 태어나 1950년 육군 소령 박정희와 결혼할 때까지 여기에서 살았다. 물론 서울에서 배화여고를 다닌 것을 빼고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육 여사의 방은 큰 집에 비하면 너무 작은 골방 같다. 여기에는 육 여사 관련 유품들도 보관돼 있는데 박정희 소령이 군복을 입은 채 약혼 사진을 찍은 것이 이채롭다. 더 특이한 것은 결혼사진에 육 여사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육 여사의 아버지는 이들의 결혼을 끝까지 반대했고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육 여사 생가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광버스를 전세 내 오기도 한다. 그래서 방문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으로 제한하기까지 한다. 육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도 왜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그분은 옛날 왕조시대 같으며 국모(國母)다운 처신을 했다’고 표현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분은 언제나 한복만 입고 사치를 몰랐으며 검소했다’고 대답한다. 그런가 하면 육 여사가 가난한 사람들, 전방에 있는 군인들, 한센병 환자 같은 난치병 환자들을 잘 돌봐 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육 여사는 1971년 나주에 있는 한센인 집단촌을 방문해 그들을 따뜻이 보듬어 준 것을 비롯해 1972년에는 전북 익산에 있는 한센인촌을 방문하고 한센인은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을 위한 목욕시설을 해주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이곳 마을에도 지금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산수유, 목련, 졸졸대는 실개천.... 전국이 선거바람으로 뜨겁지만 이곳은 너무 조용하다.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사람도 없고, 바람은 부드러운 남풍이다. 평화란 이런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변평섭 칼럼] 핵무장 준비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

1950년 9월28일 서울을 수복한 국군과 미군이 계속 북진을 하면서 38선을 돌파하자 김일성은 평양을 버리고 백두산으로 달아났다. 그러면서 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내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6·25 남침을 하기 전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은 만큼 이제 북한의 운명이 꺼져 가는 마당에 지원이 다급했던 것이다. 중국은 6·25전 참전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었으나 미군이 38선을 돌파한 만큼 대만으로 쫓겨난 장제스군과 함께 중국을 위협할 것으로 판단, 급히 참전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고는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부대를 편성, 압록강 인근에까지 대기시켰다. 자그만치 25만명. 그런데도 미국의 맥아더 사령관은 중국이 참전하더라도 5만~6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과소평가했다. 마침내 10월19일 국군과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자 마오쩌둥은 중국군에게 압록강을 건너 미군과 전투를 벌이도록 명령하는 한편 저우언라이 총리를 스탈린에게 보내 소련 공군의 참전을 요구하도록 했다. 1990년대 초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와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련 공군 조종사들에 의하면 스탈린은 그들의 조종사들에게 비행 중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전투기에도 소련 공군 표시를 지우고 북한 공군 표시를 해 소련 참전을 철저하게 숨기도록 했다. 소련이 참전해 미군과 전투를 벌인다면 제3차 대전으로의 화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탈린은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도록 묶어 놓아 스탈린의 동유럽 세력 확장에 미국이 손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6·25전쟁 발발 시 유엔 안보리에서 파병을 결의했을 때 소련이 반대를 않고 불참한 것도 그런 꿍꿍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이 휴전을 하려고 했지만 이를 반대하고 계속 싸우도록 했다. 1953년 휴전이 된 것은 스탈린이 죽고 나서였다. 중국과 소련, 이것이 한반도, 특히 북한과 운명처럼 매달려 있는 혹이다. 소련이 러시아로, 스탈린이 푸틴으로 바뀌었을 뿐 그 혹은 여전히 붙어 있다. 오히려 6·25때 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이제 중국은 물론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술이 러시아에 의해 비밀리에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의 핵 위협이 점증하고 있고 뒤에 숨어 이것을 즐기는 러시아와 중국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을 붙잡아 놓게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는 실리를 얻는 음흉한 전략이 6·25 때처럼 되살아나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금년 봄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어깨를 다독거리면 3대 세습의 체제 안정에 고무돼 한반도에서 불장난을 일으키는 등 미국을 압박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러시아와 중국이 즐기는 바다. 더욱이 대만 문제까지 긴장을 확대한다면 주일미군은 물론 주한미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이런 초긴장 상태가 발생해도 미국은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것인가가 문제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의 상황을 변경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독자적인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원자력의 원로 학자인 장원순 박사(전 원자력연구원장)는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도 지금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2개월 안에 만들 준비가 돼 있고 김정은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남한의 핵무장’이라며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말 장 박사의 주장처럼 핵무기 만들 준비라도 갖출 것을 생각할 엄중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변평섭 칼럼] 한동훈 위원장이 반성하자는 것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알려진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최근 한 영화사가 흑인 여성 배우를 클레오파트라로 등장시켜 논란이 됐지만 인류학자들 중에는 그녀가 흑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클레오파트라가 거느린 시녀들은 모두 추녀였다고 한다. 미인들로 시녀를 두면 자신의 특출한 아름다움이 가려지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시녀들까지 차별화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정치도 이런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정책에서는 물론 인사, 홍보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하지 않고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당 대표가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중대범죄로 형사재판을 받는, 초현실적인 민주당인데도 국민의힘이 왜 압도하지 못하는지 냉정하게 반성하자”고 했다. 민주당, 특히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거의 매일 언론을 타고 있는데 왜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뒤처지고 있는가?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이거나 소속해 있다가 탈당한 의원들 중 부패, 비리 혐의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이 24명인데 민주당이 19명이나 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껑충 뛰었을 것이다. 전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현역 의원 20명에게 돈 봉투를 돌린 혐의로 구속됐고 탈당한 의원 중에는 위안부 할머니들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수십억 코인 놀이를 한 의원,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죄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도 있고.... 문재인 민주당 정부는 집값, 소득, 고용 등 광범위한 국가통계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호도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도덕적 선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는 그때보다 왜 앞서질 못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한 비대위원장은 ‘반성하자’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반성한다면 철저한 자기 성찰부터 있어야 한다. 가령 국민의힘을 충격에 빠뜨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부터 보자.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은 국민 혈세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그 원인 제공을 한 것은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후보였다. 그가 강서구청장으로 있다가 대법원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것인데 아무리 사면됐다 해도 다시 구청장 후보로 내세운 것은 누가 봐도 공정과 상식이 아니었다. 이에 들어가는 40억원 혈세도 김태우 후보는 ‘애교로 봐달라’고 했으니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후보로 선정한 국민의힘은 대통령까지 포함해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표를 찍었던 사람들까지도 ‘공정과 상식’에 실망해 야당에 표를 던진 것. 뿐만 아니라 김태우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강서구에 나타난 국민의힘 인물들은 거의 영남 출신. 그래서 ‘영남당’ 이미지만 덧칠했다. 이곳에 호남과 충청 출신 유권자가 많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오만했던 것이고 국민의 눈높이를 입으로는 주장하면서 행동은 역주행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이 반성하고 반성해야 할 산 교훈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계속되는 검사 출신의 요직 발탁,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그 뒤처리,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시시비비 등이 겹치면서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등판하면서 국민의힘에 등 돌렸던 민심에 변화가 있음은 다행이지만 한 비대위원장의 차별화 전략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동력을 발휘할지가 문제다.

[변평섭 칼럼] 문화재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시문학이 뛰어나 많은 존경을 받았으나 수양대군에게 밀려 유배 중 죽음을 당했다. 그가 생전에 아름다운 꿈을 꿨는데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해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런데 이 귀한 그림이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일본 텐리대 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세 번만 전시했다. 그것도 우리가 보험료를 지불하고 임대 형식으로 빌려와야 했다. 물론 지금도 그림은 일본이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해 외규장각에 보관 중이던 조선 왕조의 귀중한 서책을 강탈해 갔다. 많은 분량의 서책은 불태우고 354권만 가져갔는데 우리 정부가 계속해 반환을 요청했으나 프랑스 정부는 자기들 소유라며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 우리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임대하는 형식으로 가져왔으나 몇 년에 한 번 반환했다 가져와야 한다. 자기들 소유라는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프랑스에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임을 증명하는 우리나라의 ‘직지심경’과 혜초 대사의 ‘왕오천축국전’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으나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강대국들은 이집트, 남미, 중국 등을 침략하면 먼저 손대는 것이 문화재였는데 지금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는 그렇게 약탈해 온 유물이 넘쳐 난다. 그런데도 이들 강대국은 유물 보존의 과학적 수준을 문제 삼아 훼손되고 사라질 위기를 자기들이 가져와 잘 보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니까 프랑스 여행 기념으로 콩코르드 광장에 서있는 오벨리스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프랑스가 아니라 이집트 유물을 기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우리 대법원은 일본과의 7년 소송 끝에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상의 최후 소유권은 일본에 있다고 선고해 곧 반환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이 금동관음보살상은 고려시대 왜구들이 서산지역을 침범했을 때 약탈해 그동안 일본 쓰시마섬의 사찰 관음사에 존치돼 왔다. 이 무렵 왜구들의 침범이 극심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수백 년 망각돼 왔던 불상을 2012년 10월 우리나라 절도범들이 관음사에서 이 불상을 훔쳐 귀국하다 우리 경찰에 검거됐다. 처음에는 이 불상이 우리가 잃어버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인 줄도 몰랐다가 수사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자 일본은 불상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우리 법원에 제기해 긴 세월, 법적 논쟁을 계속한 끝에 결국 대법원은 복잡한 법리를 적용, 소유권이 일본 관음사에 있어 반환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다만 이 불상이 일본으로 돌아가도 ‘쓰시마 불상’이 아니라 ‘서산 부석사 불상’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판시, 그 정체성은 우리 것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물론 법적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불상을 되돌려 주지 않을 통로는 열려 있다. 우리 불교계와 일본 불교계가 법이 아니라 종교적 차원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또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유산의 보호 및 환수·활용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외국에 있어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 문화재가 7만6천여점이나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변평섭 칼럼] 판사 불신 시대... AI 판사가 나오면

요즘 어느 지방법원 정문에는 현직 판사들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덕지덕지 걸려 있는데도 법원은 그냥 방치하고 있다. 내용 역시 섬찟함을 느낄 정도로 자극적이다. ‘법을 어겨 판결 조작한 ○○○’, ‘판사 XXX’, ‘판사 66명 조작 명단’ 등등. 심지어 판사들 실물 사진까지 게재한 현수막도 있다. 이것을 본 사람의 의견도 다양하다. “억울하면 사법 절차에 따라 법정 투쟁을 하면 되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부터 “얼마나 사법부를 믿지 못하면 저렇게 하겠나”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공통된 의견은 우리 사법부가 전례 없이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법부 불신 풍조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특히 심했던 것 같고 그가 이끌었거나 속해 있던 우리법연구회 등 특정 인맥에 의한 편중 인사, 그리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 비리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등 정치적 재판을 4년 가까이 끌어온 것 등이 그런 불신을 가중시킨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신 풍조는 판사의 정치 성향이 공정한 재판을 해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의 박모 판사는 일찍이 판사가 되기 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좌경적 글을 올린 경력이 있는데 마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자에 대한 명예 훼손죄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는 치명적 형량이다. 검사는 500만원의 벌금을 구형했고 대부분의 이 같은 유사 범죄는 벌금형인데 박 판사의 선고는 이례적이라는것이다. 이렇게 되니 박 판사가 과거 좌편향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이 소환됐고 이것이 공정한 판결인가에 회의를 갖는 소리가 높았다. 이번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 관련 사건만이 아니다.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피해 여성은 “범죄와 아무 관련 없는 반성, 불우한 환경이 도대체 이 재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하느냐”고 판사를 비난했다. 이처럼 법원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 바에야 인공지능(AI) 판사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의 앤 월시 브래들리 대법관은 그의 판결에 AI를 도입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루미스라는 청년이 2013년 총격 사건에 사용된 차량을 운전하던 중 경찰에 적발되자 그대로 도주 끝에 검거돼 기소된 사건. 지방법원을 거쳐 대법원에까지 소송이 진행됐는데 AI에 의뢰한 결과 재범 가능성이 높고 사회공동체에 위협이 된다며 징역 6년의 실형을 요구했다. 브래들리 대법관은 AI의 요구대로 루미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일부 주에서는 AI가 보석금을 결정하는가 하며 유·무죄까지 판별하고 심지어 판사의 판결문도 다듬어 준다는 것이다. 이미 AI가 인간사회 모든 영역에 깊이 파고들고 있고 이에 대한 우려와 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마당에 법원의 재판까지 맡겨야 한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변평섭 칼럼] 高宗의 무능인가, 지정학적 운명인가

험한 파도에 시달리는 배의 선장은 나약하고 무능했다. 조선 500년 역사가 그렇게 침몰하는 중심에는 고종 임금이 있었다.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은 미리 대기시켜 놓은 궁녀가 타는 가마에 몸을 숨기고 경복궁 영추문을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을 향해 달렸는데 대궐 경비병들조차 궁녀의 출입이려니 생각하고 고종의 밀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로부터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세자와 함께 1년을 보냈는데 이것이 유명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어떻게 임금이 자기 나라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남의 나라 공사관에 거처를 정할 수 있을까. 국가의 체통이 무너져 버렸다. 물론 고종으로서는 1895년 10월8일 명성황후(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시해 당하는 사건을 겪고 나서 신변 보호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안위를 어느 강대국에 맡기는 것이 좋을까 고민도 했을 것이다. 청나라는 임오군란의 책임을 물어 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3년여 연금시킬 만큼 조선을 자기네 속국처럼 마음대로 휘둘렀으나 1894년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보고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청일전쟁이 이 나라에서 벌어진 것도 고종이 동학난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큰 실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키고는 친일 내각을 구성케 하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으니 고종으로서는 러시아밖에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마당에 고종이 자기네 공사관에서 살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굴러온 꿀단지가 된 것이다. 그런 데다 고종이 1년여 자기네 공사관에 있는 동안 울릉도 산림 벌채와 광산채굴권 등 많은 이권을 따냈으니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남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영국이 1885년 4월 전남 여수의 거문도를 무단 점거하고 포대를 설치하는 등 요새화 작업에 들어가자 동북아 정세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과 일본이 영일동맹을 맺고 영국은 거문도에서 철수했는데 말하자면 러시아 남진을 막는 골키퍼를 일본에 맡긴 셈이다. 특히 1904년 발생한 러일전쟁에서도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고종의 마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그동안 숨겨졌던 조선말기(특히 1905년 을사늑약 전후) 한일 관련 문서와 기록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부질없고 민망한 내용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고종이 일본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저자세와 오판이다. 1904년 3월18일 이등박문이 고종을 알현했는데 이 자리에서 러시아와의 전쟁 경비로 상당액의 군자금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의지하던 고종이 이번에는 그 러시아와 싸워 이기라고 일본에 군자금을 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종은 이등박문을 독일을 일으킨 비스마르크에 비유하면서 자신에게 국정 자문 역할을 해달라고 몇 차례 부탁까지 했다는 것.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이 되지 않아 이등박문은 고종 임금과 대신들을 위협해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으니 이런 배신이 어디 있는가. 마침내 1907년 고종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라도 망했다. 고종이 이처럼 강대국 눈치 보느라 확고한 주관 없이 흔들리던 시절, 100여년 세월이 흘렀건만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은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한반도 지도를 보노라면, 그리고 100여년 그대로 변치 않는 극심한 국론 분열을 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변평섭 칼럼] 왜에 잡혀간 도공들, 왜 귀국 포기했을까?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가 돼 끌려간 사람이 적게는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 상당으로 보고 있다. 이 중에는 조선 양반이나 군인, 승려도 있었지만 도자기를 굽는 도공(陶工)이나 활자를 만드는 기술자, 염색 물감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군대를 이끌고 참전한 다이묘라고 하는 번주(蕃主), 즉 영주들은 도공들이나 기술자들을 무조건 끌고 갔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조선에 친교를 여러 번 청했는데 우리는 우리 왕릉을 도굴한 도굴꾼을 압송해 올 것과 우리 사신이 가서 잡혀간 조선 포로들을 전원 송환하는 조건으로 수교를 허락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조선통신사’인데 처음에는 ‘통신사’라 하지 않고 ‘회답과 쇄환사’란 이름으로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쇄환(刷還)’이란 뜻 자체가 빗자루로 쓸어오듯 우리 조선인 포로들을 모두 데려오겠다는 것으로 나라의 굳은 의지로 표현했던 것. 그러나 막상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3천명 정도에 그쳤다. 특히 기술자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 땅에 안착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조선에서는 기술자가 하층 천민 대접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도공에 대한 대우는 극진해 ‘사무라이’급 예우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도자기의 신문명을 일본에 심었고, 나아가 일본 도자기의 유럽 시장 진출로 일본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 충남 공주 출신의 이삼평은 ‘신(神)’으로까지 모셔진 신사(神社)가 있을 정도고 심수관, 박평의의 후손들 역시 ‘사쓰마도기’라고 하는 일본 도자기의 새 장르를 개척한 공로로 크게 존경받고 있다. 일본 역사에 대단한 공헌을 한 것이다. 박평의의 후손 중에는 도공의 길을 거부하고 관계로 진출해 2차 대전 시 외무대신(외무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한국명 박무덕)도 있다. 그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복역 중 사망했다. 이렇게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전혀 다른 일본에서 아무리 조국이라고 하지만 천민 대접을 받는 조선에 돌아가고 싶었겠는가? 그들이 조국에서는 왜 창조적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 일본에서는 가능했을까? 성리학이 통치 이념이 된 조선왕조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철저한 위계질서로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고 결국 조선의 패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기술 전쟁’의 시대다. 특히 반도체, 수소에너지,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첨단 기술이 국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느냐가 그 핵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내년까지 이들 3대 기술 인력 1만3천명을 양성할 계획이며, 대전시, 대구시 역시 별도의 반도체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비상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자랑하는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와 지난 7월27일 반도체 인력양성 프로그램 약정서를 체결하는 등 외국대학에까지 손을 내밀어 기술 인력 경쟁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우리 반도체 기술과 자동차 기술을 빼내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는 365일 밤낮 없이 기술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반도체, 수소에너지,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핵심 기술 인력은 물론 모든 기술인력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기술자들을 천민 취급했던 조선왕조의 어리석은 발자취를 되밟지 않기 위해 기술 인력에 대한 의식 전환과 처우 개선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변평섭 칼럼] 100년 기업이 7개뿐이라고?

일본 오사카를 가면 엔도 스시라는 100년 된 초밥식당에 들러 초밥을 맛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식당은 명성에 비해 겨우 테이블 5개에 20명 정도면 가득 차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초밥식당. 그것도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을 하니 손님들이 밀릴 수밖에 없고 일본인뿐 아니라 미국 등 외국인들도 많다. 이렇게 손님을 많이 끄는 것은 그 식당이 갖고 있는 긴 ‘세월’의 힘일 것이다. 100년이 넘었으니 그만큼 신뢰를 쌓았고 애정도 듬뿍 받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일본에는 100년은 차치하고 200년, 300년 역사를 가진 식당은 물론 기업들이 많다. 심지어 1천400년 동안 부엌칼만 만드는 곳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201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 세계 200년 이상 된 기업이 8천700여개인데 일본이 3천146개로 44.8%를 차지한다. 네덜란드 222개, 프랑스 196개, 영국이 186개나 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두산, 동화약품, 몽고식품 등 7곳으로 선진국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라의 경제 환경이 안정돼 있다는 것이며 시장경제가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100년 기업을 보기 어려운가? 가장 큰 원인으로 높은 상속세율을 지적하는 소리가 높다. 65%의 높은 상속세를 내는 것은 기업을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업을 승계하기보다는 매각 등 제3의 길을 택하려는 경향이 높다. 최근 충청지역 유명 기업이 3천억원을 받고 미국 펀드에 매각된 사례 등이 그런 것이다. 또 과도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PBR, 즉, 주가자산비율을 낮추기도 한다. 주가자산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상속세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대주주들이 방어적으로 주가를 높이지 않는 것. 지난 3일 한국거래소 기준으로 한국 코스피 총액이 2천59조원으로 나타났다. 대단한 총액처럼 보이지만 이 액수는 미국 애플 시가총액 3천941조원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리 기업의 대주주들이 방어적으로 주가자산비율을 저평가하기 때문이다. 100년 기업의 증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의 또 하나 문제는 기업 환경이다. 정말 요즘 기업 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면 기업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세금 문제, 노사 문제, 반기업적 사회 정서 등등. 이처럼 기업 분위기가 답답하다 보니 해외 직접투자(FDI)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20년 53조원이던 게 2021년에는 74조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올해 1분기만 해도 27조원이나 된다. 이처럼 해외 직접투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이 사업하기 어려운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며 기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외 직접투자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물론 이 같은 걸림돌을 헤쳐 가며 열심히 달려가는 기업인들도 많다. 상품이 아니라 명품을 만드는 장인정신, 직원이 행복한 인간존중정신으로 100년 기업을 이룩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 ‘100년 기업’이 늘어 간다면 우리 경제도 그만큼 건강하게 뿌리를 내릴 것이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들이 빽빽하면 아무리 비가 와도 산사태가 나지 않는다.

[변평섭 칼럼] 민주당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매일 라면만 먹었고 구멍 난 운동화를 신었다’, ‘고2 때 쓰던 안경을 20년간 썼고 변호사 시절에도 아버지가 물려준 차(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24만㎞나 탔다’. 이렇게 청빈하고 궁색한 젊은 정치인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키기 촛불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한다. 정의와 공정, 민주주의... 좋은 단어는 다 토해 내며 조국을 지키자고. 그는 조국 전 장관을 신처럼 모시고 매일 기도하면서 잠든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대통령선거가 시작되면서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서로 귓속말도 하고 심지어 이재명 후보의 선전 어깨띠도 매만져 주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민주당에서 맹활약하다가 갑자기 무소속으로 자리를 옮긴 김남국 의원의 이야기다. 김남국 의원은 ‘가난한 젊은 정치인’이라는 그동안의 세평과는 달리 거액의 가상자산 보유와 투자 논란으로 정치권에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국회 상임위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시간에도 투자 버튼을 두드린 것으로 알려져 법 이전에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윤리를 망각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불길한 그림자를 보게 된다. 김 의원은 처음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음해하려는 정치 세력’이 있다고 본질을 벗어나는 발언을 했고 17일 동안 잠적했다가 국회에 모처럼 등원했을 때도 자숙하거나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저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변호사인 만큼 누구보다도 자신의 법률적 문제,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다뤄질 징계 문제 등에 능숙하게 대처할 것이다. 이미 민주당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재빨리 민주당을 탈당함으로써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를 공중분해시킨 솜씨를 보여 주지 않았는가. 문제는 법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다. 소위 ‘개딸’은 김남국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진보는 재산을 모으면 안 되냐’며 김 의원을 옹호하는 등 진영논리에 의해 무조건 방어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국민 정서에는 민주당은 역시 ‘내로남불’의 철갑선에 갇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덧칠하게 할 것이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문제가 터지기 전에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도 내로남불의 도덕불감증을 보여준 바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내로남불의 민낯이 무대에 올려질 것이다. 그런데도 사건이 터지자 이 사건을 ‘점심값’ 정도로 치부하는 발언이 있었다. 역시 도덕불감증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내로남불식 성추문이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그리고 ‘돈 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와 투자 논란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여 가는 내로남불의 도덕불감증으로 내년 총선을 맞는다면 침묵하고 있는 국민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이런 판국에 이재명 대표는 현충일 하루 전 천안함은 자폭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옹호한 이재명 지키기 운동을 벌여온 이래경을 당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가 9시간 만에 취소한 사건은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런 데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파동은 중도층 민심에 큰 악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불안한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고백은 양심을 꿰뚫는 것이며 ‘새로 태어남’을 뜻한다. 강성 지지층에 방목(放牧) 상태로 당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변평섭 칼럼] 과연 ‘제3지대’ 가능할까?

물류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노동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가 우선적으로 한 일은 담당 판사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 여러 채널을 통해 파악한 것은 담당 판사가 진보 성향이고 그런 연구회 소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의 고문 변호사를 제쳐 놓고 진보 성향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물론 이 같은 변호사 선임은 굳이 진보, 보수 따지지 않아도 흔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례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 사법부도 이와 같은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관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면 되지 거기에 이념의 물감을 덧칠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다를 바 없다. 이비인후과 질병을 앓고 있는 M씨는 보수, 진보 색깔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모 이비인후과를 찾아 대기실에 앉았는데 탁자 위에 이념 성향이 강한 모 일간신문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이 신문 말고 다른 신문은 없느냐고 물으니 ‘우리 병원장님은 이 신문만 보십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M씨는 이 말에 진료를 취소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사회는 이념의 양극화 현상이 첨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A방송을 보지 않고 B방송만 시청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당 시절 공무원은 야당지라고 하는 모 신문은 구독을 못 하게 했고 정부 기관지만 보게 한 때도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에는 당파가 다르면 혼인도 하지 않았다. 노론은 노론끼리 소론은 소론끼리, 그리고 동인, 서인. 그렇게 찢어질 대로 찢어진 분열 속에서 우리 역사는 어둠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다행스러운 것은 ‘무당파’, ‘중도파’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 민주당의 정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속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사건으로 몸살을 앓는 야당, 양보와 대화가 실종된 이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도층, 무당층의 발언권이 중요하다. 지난 4월27일 조사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무당층이 27%나 나왔고 특히 서울과 부산, 그리고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에서 수치가 높았음은 매우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이끌 기수가 있느냐는 것. 금태섭 전 의원이 ‘제3지대’를 선언하며 내년 총선에서 30석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과연 금 전 의원에게 제3지대를 이끌며 바람을 일으킬 에너지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인물이면 우리 나라에서도 해볼 만하다. 마크롱은 2016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이듬해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를 내세우며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제3지대의 승리인 셈이다. 지금 그는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으로 국내에서 거친 저항에 부딪히고 있지만 당초 정치를 시작하면서 선언한 그의 철학을 고수하며 난국을 극복해 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도 그런 그림이 가능할까?

[변평섭 칼럼] 가슴에 아들의 유서 품고 사는 어느 어머니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도 학교폭력에 시달린 중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12월 대구 모 중학교 학생이던 14세 권승민군이 ‘학교폭력 없애 주세요’라고 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는데 권군은 또래 학생들로부터 금품 강요, 언어폭력 등 여러 형태로 괴롭힘을 당했던 것. 권군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유가족들은 우울증, 불안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살 정도다. 이 사건은 마침내 정치권에까지 공분을 일으켜 2012년 국회는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소위 ‘권승민법’을 통과시켰고 정부도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시간이 가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러더니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광주에서 고등학생 A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대구의 권승민군이 당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폭력을 광주 A군도 당했던 것이다. 이때도 정부와 언론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 일회성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학교폭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더욱 광범위하고 지능적 방법으로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사건도 아버지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탈락하지만 않았으면 그대로 묻힐 뻔했을 것이다. 특히 정 변호사 아들의 폭력 사건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폭력을 다스려야 할 법이 가해자를 보호하는 꼴이 돼 버린 소위 ‘법꾸라지(법+미꾸라지)’의 형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져 전학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나 현직 검사로서 요직에 있던 정 변호사는 전학 조치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했다. 물론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정 변호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며 역시 2심에서도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소를 했고 대법원도 1·2심 그대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겉으로 보면 정 변호사는 완패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이면서도 승리했다. 왜냐하면 1~3심 재판을 끄는 동안 그의 아들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수능을 통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됐으니 승자가 아니겠는가? 물론 법원 판결이 진행 중이니 학적부에 기록될 수도 없고…. 이것이 법의 허점이다. 이런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법꾸라지’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정 변호사의 아들로부터 ‘돼지 새끼’ 등 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피해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과거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한참 떠들다 사그라지듯 정치, 정부, 언론 모두가 한목소리로 학교폭력 근절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당에서는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발탁과 탈락 과정에 대한 청문회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야당의 이 같은 공세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시간이 가면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12년 전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권승민군의 어머니가 최근 책을 냈는데 특별히 교사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학교폭력, 은폐하지 말고 축소도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솔직히 학교폭력 없는 ‘그런 학교는 없다’고 했다니…. 이 심각한 사회 병폐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 ‘홍어 받으신 분 자수하세요’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의 당선을 위해 피자 파티를 해주는 등 선거운동을 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 피자를 대접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누구보다도 아들의 친구들이 ‘피자의 숨은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아이들이 일찍부터 이렇듯 선거는 돈을 써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며 성장할까 두려운 사건이었다. 결국 ‘피자 파티’를 보며 선거문화를 잘못 익힌 어린이가 성장해 금품 거래나 흑색선전에 익숙한 솜씨로 공식 선거에 진출하고 나아가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이 나라 정치에 희망이 있을까? 요즘도 계속되는 정치의 부패, 수천만원에서 10억, 100억, 1천억원 단위로 뛰어오르는 검은 거래도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등장한 ‘피자 파티’의 학습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심지어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인과 청탁인 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장면, 돈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됐다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나올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시궁창 같은 정치와 돈의 연결 관계가 공공연해지고 있다. 한 컵의 ‘누룩’이 수백 배의 술을 만들어내듯 ‘피자 한 판’의 위력이 커지고 커져 단군 이래 최대 부정부패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또 하나의 ‘누룩’이 등장해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3월8일 실시하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그것이다. 농협·수협·산림조합 1천347곳에서 260여만명이 참여하는 이 선거는 지역과 밀접한 ‘풀뿌리’ 경제 책임자를 뽑는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금품이 난무하는 등 혼탁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조합장으로 선출되기만 하면 1억원 상당의 연봉과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가 제공되고 조합의 사업과 예산 집행, 직원의 인사권 등 지방에서는 찾기 힘든 대우를 받게 되니 사생결단으로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법 선거를 통해 당선되거나 구속이 되는 조합장들 때문에 2020년 30건, 2021년 18건의 재·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 것인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런 ‘불량 조합장’들로 풀뿌리 지역경제가 멍들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조합장들이 스펙을 쌓아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그런데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북선거관리위원회가 ‘금품·홍어 받은 사람은 자수해 과태료 감경과 면제를 받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전주 모 조합장 출마자가 조합원들에게 금품, 특히 홍어를 돌린 것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홍어 받은 사람들의 자수를 권유하는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이에 따라 20여명의 조합원들이 홍어를 받았다고 신고를 했고 계속 신고자가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홍어만 문제가 아니다. 경북선관위는 조합장 출마자가 100만원의 현찰을 돌리다 적발됐고 전남 여수에서도 돈 봉투를 건넨 출마자가 경찰에 고발됐다. 금품뿐 아니라 인사장 등 불법 유인물을 발송하는 등 여러 형태의 혼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아직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149건의 불법 사례가 적발됐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땅에 건전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가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과거 새마을운동하듯 선거문화 개혁을 위해 국민정신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변평섭 칼럼] 여의도 좀비는 진화한다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벌어진 소위 ‘사사오입’ 사건은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영원히 기억된 코미디였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3선 개헌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재적 국회의원은 203명이었고 개헌은 재적 의원 3분의 2, 그러니까 136명이 찬성해야 통과되는데 표결 결과 찬성이 135명으로 당시 사회를 보던 최순주 부의장이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자 자유당 강경파들은 수학 교수의 유권해석을 받아 재적 의원 3분의 2는 135.33이니까 소수점 이하는 지워 버리고 135가 맞다며 부결을 가결로 뒤집으라고 요구했다. 소수점 이하의 0.33은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경파의 궤변이었다. 결국 부결을 선포했던 최순주 부의장은 다음 날 같은 의사봉으로 가결을 선포했다. 그래서 자유당은 장기 집권을 하게 됐지만 ‘3분의 2’를 둘러싼 ‘도깨비 춤’ 같은 해석은 이 나라 정치사를 욕되게 하는 ‘좀비’가 됐다. 결국 자유당은 그렇게 잔꾀를 부리는 강경파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 같은 ‘좀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진화해 왔다. 지난해 12월28일 국회 농수산위원회는 ‘이재명표’로 일컫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정부와 여당이 강력히 반대하는데도 단독 통과시켰다. 그러면 이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하지만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기 때문에 법사위를 거치지 않는 기발한 편법을 동원했다. 농수산위 19명 중 5분의 3, 즉 12명이 찬성하면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수산위의 민주당은 11명, 1명이 모자랐다. 그래서 민주당에 있다가 위안부 할머니들 관계의 단체를 이끌면서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자 무소속으로 자리를 바꾼 윤미향 의원이 동원됐다. 12명을 채워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재명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보란 듯이 국회 본회의로 직행했고 절대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포진한 의회 통과는 ‘식은 죽 먹기’가 됐다. ‘5분의 3’은 68년 전 ‘3분의 2’ 개헌 때처럼 ‘숫자의 마술’을 보여줬다. 진화된 ‘좀비’다. 민주당은 이 같은 ‘숫자의 마술’을 지난해 4월 소위 ‘검수완박법’ 통과 때도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바 있다. 법사위는 여야 의견이 크게 상충되는 법안의 경우 여야 3 대 3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하게 돼 있는데 민주당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이 되게 한 다음 그를 야당 몫 3명 속에 집어넣었다. 소위 ‘위장 탈당’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야당 3명 속에는 여당이 1명 끼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결은 하나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코미디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렇게 해서라도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검찰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이재명 지키기’를 위한 의회 폭거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고 급기야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검찰 소환까지 이르자 수사 검사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장 담당 판사와 재판을 맡을 판사 이름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렇게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수사 검사와 판사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겁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팬덤 정치에 빠진 강성 지지자들은 그들 판검사에게 문자폭탄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좀비’다. ‘사사오입’ 때부터 진화해온 정치의 ‘좀비’-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더 구체화되고 총선거가 가까워질 봄이 되면 ‘좀비’는 더 진화되고 극성을 부릴 것이다. 슬픈 일이다.

[변평섭 칼럼] 정약용이 살아 대통령이 된다면

“10㎞로 달리는 마차의 마부는 10m 앞을 봐야 하고 100m 앞을 보면 안 됩니다.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버스 운전사는 100m 앞을 봐야지 10m 앞만 보면 위험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 대항해 시대라 세상이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우리 운전사(정치)는 10m 앞만 보고 달립니다. 어떤 운전사는 왼쪽(진보)만 보고 달리고 어떤 운전사는 오른쪽(보수)만 보고 달립니다.” 지난달 도시공감연구소(소장 김창수) 초청으로 특강을 했던 박근혜 정부 때 창조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윤종록 KAIST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차관직에서 물러나는 날, 곧바로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묘소를 참배할 정도로 정약용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 정약용’이라는 소설을 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약용은 2012년 유네스코가 매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 3명을 선정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인물. 그렇게 정약용은 실학사상과 혁신정신의 상징적 인물이었으나 당쟁에 희생돼 18년 긴 세월 유배형을 받았고,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1836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윤 교수는 정약용이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 당쟁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라며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한국 정치는 시속 10㎞에 머물러 있음에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약용이 다시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진 산업국가의 모델이 됐던 중화학공업과 정보통신은 이제 거대한 고목(古木)이 됐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의료, 제약, 식품 등 세계 생명과학산업 규모는 18조달러로 정보통신산업의 4배에 달한다고 했다. 그는 또 말한다. 500년 전에는 대항해 시대여서 튼튼하고 안전한 배를 만드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이 그런 경우의 국가라 하겠다. 그러면서 시대는 변화를 거듭해 엔진을 사용하는 선박을 주도하는 국가, 그리고 지금은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선박의 시대를 거쳐 데이터 대항해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질 수도 없는 데이터의 바다라는 이야기다. 만약 정약용이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하고 ‘AI산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과연 실학과 혁신의 아이콘 정약용 정신을 나타내는 상상력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약용을 논하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의 하나로 꼽히는 ‘목민심서’. 그는 목민심서에서 관리의 부정부패 그리고 세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고 특히 요즘 말하는 국가안보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군대를 잘 키우고 훈련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라...또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며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한 한·미·일 해상훈련까지 당쟁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정약용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당쟁의 유령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생명과학 입국, AI산업, 나아가 국가안보가 제대로 될까 안타깝다. 역시 빛의 속도로 달리는 시대, 10㎞ 앞도 못 보는 우리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이태원 참사… ‘내 탓이오’

축구나 야구경기가 끝나면 승자든 패자든 선수 또는 감독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런데 패자의 경우, 거의 공통된 것은 패배의 원인을 자기 실력보다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감독이 선수 교체의 타이밍을 놓쳤다든지 심판의 오심이 원인이라는 등등.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다른 것에서 찾아 실패에 대한 위로를 받고자 한다. 심지어 길을 걷다 부주의로 넘어지게 되면 먼저 구청장이나 시장을 비난하기도 하고 대통령을 원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구청장이나 시장이 도로를 잘못 관리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길에서 넘어진 자신의 부주의는 생각 않고 원망의 대상부터 찾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핼러윈데이가 무엇인데 왜 거길 갔느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태원에 간 젊은이들에게 잘못이 없다. 한창 가슴이 뜨거운 청춘들이 오랫동안 코로나19에 갇혔던 터라 핼러윈에서 무엇인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필자도 그렇게 젊음이 있었다면 이태원에 갔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지금 가장 크게 지적되는 것은 경찰의 책임일 것이다. 사실 112 신고에 대한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녹취록의 생생한 부르짖음은 더 이상 경찰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사고 4시간 전에, 그러니까 오후 6시34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로 시작해 ‘통제가 필요하다 ...’ 등 112에 조치를 요구하는 외침이 계속됐으나 경찰은 늑장 출동을 한 것이다. 특히 이들 112 신고 11건 중 ‘압사’라는 말이 6건이나 되는데 경찰은 ‘압사’라는 말뜻을 몰랐던 것일까. 이태원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들어 사고를 키웠다는 해밀톤호텔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해밀톤호텔은 폭 4m의 골목에 설계에도 없던 붉은 가벽을 마음대로 설치하면서 3m로 대폭 축소시켰고 이 때문에 사고 당일 인파의 병목현상을 일으켜 희생자가 많아졌을 것이다. 이태원 골목의 소음을 사고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음악 소리에 ‘내려가라’라든지 질서를 요구하는 외침,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음성까지도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산구청과 경찰이 좁은 골목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홍콩의 경우 좁은 골목을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일방통행을 하게 해 사고를 예방하고 있음이 그 좋은 예다. 이 밖에도 그동안 핼러윈 행사를 너무 외형적으로 다뤘던 메스컴을 원망하는 의견도 있다. 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모두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문제 중에서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만 골라 부각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건 발생 후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다짐들은 벌써 사라지고 이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30년 전 한국 천주교는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승용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정파나 종교, 남녀, 노사... 모두가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자는 ‘내 탓이오’ 운동이 지금 이 끔찍한 비극 앞에 우리가 가질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사도세자 대신 民生을 뒤주에 가두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아이디어를 영조 임금에게 진언한 인물로 홍봉한을 지목했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이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딸이다. 그러니까 사위를 죽이는 일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역사는 그가 사도세자의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해 많은 억측과 논란이 있었으나 이덕일씨는 그것이 노론과 소론 당쟁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소론이 집권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노론에 대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위이지만 왕의 길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거사를 꾸몄다는 것. 또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보호하는 길이라 믿었고 그래서 혜경궁 홍씨도 친정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영조가 당파 싸움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내세웠던 것인데 오히려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물이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와 소통이 되지 않아 울화병에 걸렸으며 그래서 궁녀를 살해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여 임금의 노여움이 쌓여 갔고 그것이 결국 1762년 7월5일 뒤주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당시 홍봉한은 좌의정, 영의정을 거치면서 영조로부터 큰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위를 살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누구 하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었다. 때마침 한여름 복날이 겹쳐 뒤주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고 배고픔과 목마름에 버티질 못해 7월12일, 여드레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27세 혈기 왕성한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비극적인 세자의 죽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대로 노론과 소론의 당쟁으로 일어난 희생이라면 이야말로 권력의 광기(狂氣)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당쟁의 광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260년 전의 당쟁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뒤주에 갇힌 것이 사도세자가 아니라 국가 운명이라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우리나라인데 지난 8월 무역 적자가 94억7천만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나타냈다. 최악의 무역 적자뿐 아니라 경상수지도 적자여서 경제전문가들은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환율 문제는 더 심각하다. 13년5개월 만에 1천380원을 갈아 치웠는데 이대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한다면 1천4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1천450원까지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의 금리 인상 발언 한마디에 달러 강세와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장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만 이런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다. 배추 한 포기에 1만원을 돌파하는 등 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말로만 ‘민생’, ‘민생’ 하고 떠들지 관심은 오직 저급한 정쟁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 조문까지 정쟁이 되는 나라다. 임금이 죽었을 때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하찮은 문제로 서인·남인이 뒤엉켜 피 터지게 싸운, 나라를 망친 당쟁과 무엇이 다른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죽인 정쟁, 조선 왕조를 망하게 한 정쟁, 정말 이 ‘정쟁의 광기’, 그 DNA를 어찌해야 하는가! 사도세자가 아닌 국민 경제가 뒤주에 갇힐 판이니 말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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