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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수 칼럼] 中 작전계획 검증과 美 워게임 시나리오 수정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펠로시가 떠나자 중국은 4일부터 7일까지 대만을 포위하는 6개 중점 구역을 설정하여 다양한 훈련을 전개했다. 중국 군용기들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하고 중국 전투기와 함정들이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인 경계선 역할을 하는 중간선을 넘어 가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 미사일이 대만 본토를 횡단하여 대만 동쪽 해역에 떨어지는 일까지 있었다.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핑계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적을 기다리는 엄진이대(嚴陣以待)를 넘어 오히려 적을 공격하는 훈련을 감행했다. 중국군 동부전구사령부가 대만 점령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동부전구사령부는 미국의 태평양사령부와 같은 통합전투사령부이기에 예하에 육・해・공군 전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번에 이 전력의 일부를 사용하여 작전계획의 실효성을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관영지인 글로벌 타임스도 이번 훈련을 통일작전 리허설로 규정하고 (대만) 봉쇄, 해협 돌파, 육상타격, 주·야간 합동 정찰, 공중급유, 제공작전 등 다양한 합동작전 능력을 점검했다고 했다.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 기간의 반도 지나지 않아 홍콩을 복속시켰다. 홍콩이 넘어가자 미국 내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넘쳐 나기 시작했다. 홍콩 다음은 대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군뿐만 아니라 민간 연구소도 나섰다. 2021년 7월 하이튼(John E. Hyten) 미 합참 차장은 2020년 10월에 실시한 대만해협에서의 미·중 간 워게임 결과를 발표했다. 시나리오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패배를 자인하면서 새로운 군사전략 수립과 함께 전략에 걸맞은 군사력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도 2022년 4월, 워게임 결과를 발표했다. 대만 패배로부터 중국군 격퇴까지 4가지 시나리오였다. 미국의 신미국안보센터(CNAS)도 2022년 6월 워게임 결과를 발표하면서 단기전보다는 장기전의 가능성이 높아 양쪽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침공을 억제하기 위해 인・태 지역의 군사적 균형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가정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워게임의 결과는 많이 달랐다. 일본은 올해 7월에 발표한 ‘방위백서’에서 중국이 하이브리드전(인식전)을 통해 대만인을 패닉에 빠트리고 훈련을 전쟁으로 전환시켜 상륙작전을 통해 대만을 점령한다는 3단계 침공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예상대로 중국은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했다. 중국은 지난 6월 대만해협은 국제수역이 아니라 중국이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보유한다는 법률전을 전개했다. 펠로시의 방문에 대해서는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국제 여론을 환기시켰으며 국내적으로 중국의 민족주의를 부추키는 여론전을 전개했다. 또한, 중국은 대만에 대한 경제제재와 함께 사이버전을 통해 대만 총통부망과 국방망 등을 마비시켰다. 이제 훈련을 실전으로 전환시키면 2단계가 진행된다. 러시아도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하면서 훈련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환시킨 바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은 대만 침공 계획을 검증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중국의 훈련을 모니터링하면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현실에 맞게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동부전구사령부 단독으로 대만 점령이 가능한지를 분석해 볼 것이고 미국은 군사력 건설과 함께 인・태지역의 군사력 재편성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한국은 이번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안 된다. 후폭풍이 미・중이나 중・대만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태도도 시나리오에 포함시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전략사령부 창설의 의미와 과제

드디어 전략사령부가 창설될 예정이다. 윤대통령은 지난 6일 계룡대에서 ‘2022년 전반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이때 국방부가 2024년을 목표로 전략사령부를 창설하겠다고 보고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사령부 창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추진하지 못했던 것을 윤석열 정부가 이어받은 모양새라 더욱 의미있어 보인다. 이제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북한은 외부 침략에 대한 억제의 수단으로 핵미사일을 개발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미국이었다. 따라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먼저 개발했다. 북한은 2017년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 12형,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인 화성 14형과 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올해 3월에는 화성 17형의 시험 발사에도 성공했다. 이로써 북한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핵억제력을 확보한 것이다. 2018년 남북 및 북미간 대화의 시간이 지나고 2019년에 북미 회담이 결렬되자 북한은 남한을 겨냥하여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KN-24(북한판 에이테큼스), 초대형 방사포인 KN-25 등을 시험발사했다. 이 미사일들은 낮은 고도와 회피기동으로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마하 5를 넘나드는 속도인지라 요격도 쉽지 않다. 북한은 이 무기들을 실전배치하고 검수사격까지 완료했다. 북한은 최근 핵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것과 전술핵무기를 적화통일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은 올해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연설에서 국가의 근본이익이 침해될 경우 핵무력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행할 것이라고 했다. 핵무기를 억제 및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 개최된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북한군 전선부대들의 작전 임무 추가 확정, 작전계획수정, 그리고 주요 군사조직편제 개편과 관련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전략군이 아니라 전선부대의 포병군단이 운용하도록 조정하고 유사시 위임 하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문제를 토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전략에 대한 대비책이 한국형 3축체제다. 3축제제란 북한 핵미사일의 도발이 예상될 경우 이를 선제타격하는 Kill-Chain, 생존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하는 KAMD, 그리고 북한이 핵·미사일을 사용했을 경우 북한군 수뇌부를 제거하고 이들의 은거지와 주요 시설을 파괴 및 제압하는 KMPR을 말한다. 그러나 3축체제는 그동안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놀았다. 전략사령부를 창설하는 이유도 3축체제의 통합 및 효율적 지휘통제를 위해서다. 북한의 핵전쟁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안보 정세를 감안하여 전략사령부를 창설하는 것은 올바른 결정이다. 2024년을 창설 목표로 정한 것도 군 내외의 의견을 신중하게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전략사령부의 임무, 부대편성, 지휘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과 함께 3축체제 수행에 부족한 전력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부족한 것이 북한의 미사일을 24시간 감시 및 추적할 수 있는 정찰위성이다. 대형 정찰위성과 함께 초소형 정찰위성도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원자력추진잠수함(SSN)도 확보해야 한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잠수함에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름에 걸맞은 사령부가 창설되기를 희망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남태평양 공략하는 중국의 전략

남태평양을 공략하고자 하는 중국의 접근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사실 미국의 태평양 전쟁 승리 이후 최근까지 남태평양은 미국의 질서 속에서 평온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급부상하자 이런 질서가 깨지기 시작했다. 남태평양의 14개 도서국들은 대부분 작은 면적, 적은 인구, 그리고 낮은 국민소득에 제1차 산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도서국들은 경제, 외교, 전략적 차원에서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도서국들은 희귀한 천연자원과 광대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지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1국 1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서국들은 대부분 중국의 제2도련선(오가사와라 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과 제3도련선(알류산열도-하와이-뉴질랜드) 사이에 있어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이 이 지역을 공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중국의 공략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제1단계는 도서국들이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도록 대규모 물량 공세를 퍼붓는 것이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사모아(1975)가 제일 먼저 넘어갔고 그 뒤를 이어 통가(1998), 파푸아뉴기니(1999)가 넘어갔다. 2004년에는 바누아투, 그리고 2019년에는 솔로몬제도와 키리바시가 중국과 수교했다. 이로써 중국의 수교국은 10개국으로 늘어났다. 4개국만이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중국으로 넘어갈지 모른다. 제2단계는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는 인프라, 무역 등 경제벨트를 구축하는 서진정책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최근 이 정책을 남태평양으로 확장했다. 중국은 10개국과 일대일로 협력을 체결하고 인프라 건설 등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남태평양 도서국들은 신용등급이 낮아 투자나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이 국가들에게 접근했다. 도서국들은 이 자금으로 도로, 다리, 정부 청사 등을 건설하고 항구 등을 재정비했다. 그러나 도서국들은 이를 갚을 능력이 없다. 결국, 중국은 ‘부채 외교’를 통해 이 국가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는 것이다. 제3단계는 안보협정 체결 등을 통해 이 지역에 중국군을 진출시키는 것이다. 2022년 4월, 중국은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Security Pact)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솔로몬제도에 군대와 무장경찰의 파견, 그리고 중국 함정을 정박할 수 있게 되었다. 솔로몬제도의 보호국이 호주에서 중국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중국은 하와이에서 남서쪽으로 3000㎞ 떨어진 키리바시의 칸톤섬에 활주로 개선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을 무찌르기 위해 건설했던 곳이다. 그런데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중국이 대미 견제용으로 이 활주로를 수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지난 5월 ‘중국-태평양 도서국 제2차 외교장관 회담’을 피지에서 개최하여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포괄적 개발 비전’에 대해 논의했다. 합의서 채택은 불발되었지만,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안보협력 내용도 있었다.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한 것은 미국과 호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미국이 제1도련선 내에서 국제법 준수와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는 동안 중국은 남태평양에 아주 큰 디딤돌을 놓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미국과 호주 등 서방권이 이 지역에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한국도 3년 단위로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하고 있고 회기 중간에 ‘고위관리회의’를 하고 있다. 또 한국은 이 국가들에게 공적개발원조(ODA)도 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중추국가(pivotal state)를 지향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도 남태평양의 안보정세를 고려하여 포괄적으로 이 지역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부가 중심잡아야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가 있었다. 국방위 종합감사가 있기 불과 사흘 전에 북한이 KN-23 개량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기에 종합감사장 안은 긴장이 가득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물었다. “북한의 SLBM, 극초음속 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도발이라고 생각하는데, 장관은 어떻게 보냐”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너무나 당연한 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서욱 장관은 도발이 아니라 위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국회의원은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도발이라고 생각하고, 도발이 맞나 안 맞나를 물었는데 서장관은 위협만 되풀이한 것이다. 답변이 이것으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 장관이 도발을 “우리 영공〈30FB〉영토〈30FB〉영해에 피해를 미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석하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우리 영공〈30FB〉영토〈30FB〉영해에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헛웃음도 나왔다. 앙천대소(仰天大笑)할 일이 터진 것이다. 헷갈려 할 우리 장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북한의 주장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동조한 것이다. 담화발표 전문 꾼인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우리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증강 활동은 ‘대북 억지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남조선식 대조선 이중기준은 비논리적이고 유치한 주장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이고 도전”이라고 했다. 김여정 담화의 핵심은 한국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도 되고 북한은 안 된다고 하면서 북한의 자위권 차원의 행위를 도발로 규정하는 이중 잣대를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도발’에 대해 한국의 국방부 장관과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마치 사전에 각본에 따라 손발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착각하지 말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서 장관의 도발에 대한 정의는 틀렸고 김여정의 담화도 억지에 불과하다. 2017년까지 북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은 10여개가 넘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중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마다 유엔안보리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강도도 세졌고 대북제재 내용도 훨씬 구체화됐다. 2016년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안보리는 만장일치로 결의안 제1718호를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북한이 핵프로그램과 대량살상무기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추가적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제1718호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조치”를 규정한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를 위한 ‘1718 위원회’ 설치도 결의했다. 한국은 국제규범과 주권에 따라 핵실험은 하지 않으나 군사력 건설을 위해 미사일은 시험발사한다. 한미간의 미사일 지침마저 폐기돼 어떤 미사일도 시험발사 및 보유할 수 있다. 국제규범에 위반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유엔안보리가 핵 및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CVID 요구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 기술이 적용된 장단거리 탄도미사일, 인공위성, 극초음속미사일 등을 시험발사하면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이것이 도발이다. 북한의 행위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 장관이나 김 부부장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 새 정부의 국방부는 도발을 도발로, 미상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새롭게 느껴진다. 국방부는 안보의 최후 보루다. 중심이 흔들리면 안 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공포의 균형을 맞추자

김정은의 행동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일성 생일 110주년에 야간 열병식 없이 각종 문화행사와 불꽃놀이로 지나간 것이 이상했다. 김일성 생일 이전에 축포성 로켓발사나 핵실험이 없었던 것도 예년과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인 지난 16일 북한은 신형 전술유도무기 2발을 시험발사했다. 이번에 발사된 신형전술유도무기는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나 북한판 에이테킴스(KN-24)의 새로운 버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능이 조금 향상된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시험발사의 목적이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 다각화를 강화”하기 위해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시험발사했다고 했다. 전술핵 탑재를 가정해 시험발사를 했다는 뜻이다.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KN-23이나 KN-24도 한국 안보에 대단히 위협적이다. 주한미군기지의 본산인 평택은 물론 3군 사령부가 위치해 있는 계룡대가 사거리 내에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신형 전술미사일은 낮은 고도로 회피 기동을 하기 때문에 레이더로 탐지하기도 힘들고 요격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재래식 탄두 대신 전술핵무기가 탑재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정은은 2021년 1월에 개최된 제8차 당대회에서 “핵기술을 더욱 고도화해, 소형화·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이 이번에 실제 시험 발사를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략핵무기는 메가톤(Mt)급의 고위력이지만 전술핵은 비교적 저위력(low yield)이다. 전술핵은 0.3~170㏏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0.3㏏라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TNT 300톤이 한꺼번에 터지는 대량살상무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잿더미로 만든 핵무기도 15㏏ 전후의 핵무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전술핵무기는 전선을 돌파하거나 적의 주력을 격멸하는 등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북한도 한반도 유사시 선제타격용으로 또는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술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전술핵 개발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전술핵무기 탑재를 가정한 미사일 시험 발사로 우리 국민은 대단히 불안해한다. 심지어 공포심을 느낀다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 정부는 국민의 이런 불안과 공포심을 덜어주어야 한다. 사실 공포에는 공포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 상대방도 공포를 느껴야 행동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력균형이 아니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된다. 그럴 역량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NPT 체제를 존중하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까지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적이면서 실현가능한 방안도 있다. 바로 나토식 핵공유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반입하되 그 운용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행사하는 개념이다. NPT를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안보를 직접적으로 담보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에만 올인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는 지난 30년 동안 진전과 퇴행을 반복했지만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만 고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교적 해결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외교적 노력과 함께 우리 국민들이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현실적 대책도 함께 강구하자는 뜻이다. 일본의 기시다 정부는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나토식 핵공유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보다는 우리가 더 급하지 않은가.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칼럼] 항전의식·예비전력 중요성 일깨워준 ‘우크라 전쟁’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중동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대학에 유학중인 이스라엘 학생들과 아랍권 학생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이를 수소문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학생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로 돌아갔고 아랍권 학생들은 조국에서 자신을 불러들일까봐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여기서 갈렸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의식은 본받을 만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항전의 선봉에 섰다. 그는 국민을 버리고 현금다발만 싣고서 가장 먼저 도망쳤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증오했다. 그래서 미국의 망명 권유도 거부했다. 그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고 하면서 허름한 벙커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했다. 영국, 캐나다, 미국, 독일 의회 등을 상대로 영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도 끌어냈다. 젤렌스키 여사도 정장을 벗고 전투복을 입었다. 미스 우크라이나 출신도 왕관과 드레스 대신 전투복과 소총으로 무장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물결은 폴란드헝가리 등 국경 도시에서도 나타났다. 국경도시는 우크라이나 난민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국경 도시는 피란민만 북적인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로 귀국하고자 하는 행렬도 만만치 않았다. 외국에 있던 우크라이나인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와 버스에 올랐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가 내린 국가총동원령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국에 있었는데도 귀국을 원했고 예비군 소집에 해당되지 않은 백발의 청년도 귀국을 원했다. 유명 스포츠 스타와 예술인들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던 우크라이나 음악인들도 돌아갔다. 마치 중동전쟁 당시 귀국했던 이스라엘 유학생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쟁은 항전의식만으론 안 된다. 병력이나 무기 등 유형 전력이 결합돼야 승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비군은 약 20만명이다. 러시아군에 비해 턱없는 병력에 무기체계도 변변치 않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이 나서 소화기, 대전차 미사일, 그리고 대공 미사일 등을 제공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이 거의 한달 가까이 러시아 대군을 막아내고 있다. 하늘에서는 드론이, 땅에서는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이 러시아군을 공세종말점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예비전력도 힘을 보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침공하자 곧바로 총동원령을 발령했다. 전시동원체제로 전환하면서 동원예비군과 향토방위군을 소집했다. 교육과 훈련을 마친 동원예비군은 전선에 투입됐고 향토방위군도 고향을 지키기 위해 총을 잡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상비군에게 돌아갈 무기조차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예비전력에게 보급할 무기는 더더욱 없는 셈이다. 항전의지는 있으나 무기가 부족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군사력 건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상비전력에 대한 검토도 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예비전력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해야 한다. 줄어드는 상비군을 보완할 수 있는 예비전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예비군에게 지급할 대부분의 무기와 장비들은 아직도 구식이다. 예비전력에 투입되는 예산이 국방비의 채 1%도 안 되니 예비전력의 정예화는 꿈도 못 꾼다. 미래전은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되는 최첨단 전쟁이 된다. 예비전력도 이런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미래지향적인 예비전력 육성과 효율적인 동원체계 구축을 위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제54주년 예비군의 날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칼럼] 러시아의 딜레마와 출구 전략

전쟁의 문턱으로 여겨졌던 2월20일이 지났다. 20일부로 겨울 올림픽이 폐막됐고 푸틴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핵무기 훈련인 전략억지력 훈련도 끝났다. 그러나 러시아-벨라루스 연합훈련은 종료 직전에 연장됐다. 이제 푸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러시아는 당장이라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연일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과 침공할 경우 러시아가 직면하게 될 재앙적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 유럽 지도자와의 통화에 이어 국가안보회의(NSC)까지 마쳤다. 전쟁 계획과 이에 대한 대응 계획이 모두 마련된 셈이다. 외교가 탈진한 가운데 24일로 예정된 블링컨-라브로프 외무장관 회담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회담에서 러시아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러시아의 안전보장에 대한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으로 나토를 확대하지 말라는 것과 과거 소련연방이었던 국가 내에 나토군 기지의 추가 설치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요구를 들어줄 것 같지 않다. 미국과 나토는 이미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나토 조약을 거론하면서 거부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담을 하더라도 러시아의 핵심 요구 사항은 관철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침공해야 되나. 아니면 철수해야 되나. 이것이 러시아의 딜레마다. 러시아는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군사기술적 조치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침공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침공하면 러시아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주권국가를 침략하기 때문에 침략국으로 낙인찍혀 국제 왕따가 된다. 재앙적 수준의 경제제재도 당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나토의 결속력은 더 강화될 것이며, 구소련 제국이었던 나토 회원국에게 더 많은 나토군과 나토 장비 등이 전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안보를 담보받고자 했던 최초의 목적 달성은 사라지고 러시아는 오히려 더 많은 안보 위협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철군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빼든 칼을 쓰지도 않고 칼집에 도로 넣는 순간 러시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왕따냐, 종이호랑이냐. 어느 것을 택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최근 전쟁에 대한 상반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 동안 전쟁의 수렁에 빠짐으로써 구소련의 몰락을 재촉했던 쓰라린 추억이 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해 단 며칠 만에 항복을 받아낸 승리의 추억도 있다. 2014년에는 크림반도의 친러세력을 지원함으로써 크림반도를 빼앗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에 친러세력을 구축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혼란에 빠트렸던 달콤한 추억도 있다. 20년 이상을 장기 집권한 푸틴 대통령은 승리의 추억과 달콤한 추억만 가지고 과거 소련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봐선 안 된다. 작은 인구와 적은 면적을 가진 조지아나 크림반도가 아니라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넓고 인구도 4천만 명이 넘는 중강국이다. 조기 승리도 불가능하지만 설령 키에프를 점령해 위성정부를 세운들 국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프간의 추억이 재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블링컨과의 회담을 출구 전략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훈련이 종료됐기 때문에 철군한다는 명분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유럽지역 군축회담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러시아군을 철군하면 어떨까. 탱크의 공격로가 수렁으로 바뀌기 전에.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한국이 걸어가야 할 미래 외교의 길

중국의 팽창을 봉쇄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반응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미국의 인・태지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군사기술협의체인 오커스(AUKUS), 첨단기술 및 공급망 동맹체인 인・태경제프레임(IPEF) 등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팽창과 봉쇄의 역동성 속에서 미중은 주변국들에게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역사에는 3가지 길이 있었다. 먼저 광해군의 길은 명・청 교체기에 광해군이 위험 분산(hedging)을 택했던 길을 말한다. 그는 금(청)과의 전쟁을 위한 명의 원병 요청에 1만여 명을 파병했으나 조선군 사령관에게 정세에 맞게 처신토록 지시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광해군의 길은 오늘날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은 양쪽으로부터 걸려오는 워닝콜(warning call)과 제재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인조의 길은 반정(反正)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명에 올인(all in)한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말한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친중파는 국제정치를 보은, 의리, 감성 등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익의 관점에서 볼 것을 강조한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한국 수출입의 1/4을 점하는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 등을 내세워 미국에 올인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특히, 미국과의 동맹 및 준동맹국은 약 60개국뿐이지만 중국과의 무역 1위 국가는 약 110개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들은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지만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미국의 수많은 전략에 대해서는 못 본 체 한다. 이승만의 길은 국가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말한다. 오늘날 이 길의 주장자들은 한국은 한미동맹 체결 당시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 동맹 차원에서 미국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눈 밖에 나면 안보는 물론 경제 및 첨단기술 등의 분야에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중국의 제재나 보복 가능성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조나 이승만의 길은 하나만을 선택하는 올인 전략이었다. 광해군의 길은 반반씩 회피하는 헤징전략이었다. 하나만 선택하는 올인 전략은 미래를 모두 얻거나 모두 잃을 수 있고 헤징 전략도 반을 잃거나 모두를 잃을 수 있다. 적어도 반 이상을 잃을 수 있기에 3가지 길은 모두 위험하다. 오늘날 국가들은 수많은 의제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복합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그러나 각 의제에 대한 이익과 중요도는 국가별로 다르다. 따라서 한국은 의존적 관계였던 역사에서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길에서 국가 주권과 동맹 정신, 그리고 헌법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올인이나 헤징 전략이 아니라 사안별로 선택을 달리하면서 참가 수위를 조절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정신과 혈맹이라는 동맹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선명한 전략을,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서는 유연한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의제에 따라 미・중과 선택적 협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포트폴리오는 가계나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 걸어가야 할 미래 외교의 길도 포트폴리오여야 하지 않을까.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RCEP 협력과 CPTPP 갈등, 그리고 IPEF의 긴장

동아시아는 2022년 경제공동체를 둘러싸고 협력과 갈등, 그리고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내년 1월1일부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출범한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기타 5개국(한국ㆍ일본ㆍ중국ㆍ호주ㆍ뉴질랜드)이 회원국이다. 2011년 ASEAN 정상회의에서 RCEP 구상이 채택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비준서를 먼저 제출한 10개국에서 먼저 발효되고 조금 늦게 제출한 한국에서는 2월1일부로 발효된다. RCEP은 국내총생산(GDP), 무역, 그리고 인구 규모 면에서 각각 세계의 1/3을 차지한다. RCEP이 발효됨에 따라 투자와 무역 등 역내 경제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2018년에 출범한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거대한 자유무역협정이다. 일본, 캐나다, 멕시코, 호주,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등 11개국이 회원국이다. CPTPP는 전 세계 GDP의 13%, 그리고 인구의 8%를 차지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철수함에 따라 일본이 주도해 CPTPP를 성사시켰다. 한국은 2022년 가입을 목표로 비준 절차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중국과 대만이 2021년 9월 CPTPP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고 미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면서 대만의 가입을 저지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중국이 RCEP과 CPTPP에서 동시에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CPTPP의 확대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중국과 대만, 그리고 회원국 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갈등을 넘어 긴장이 조성될 경제동맹체가 태동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인도ㆍ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IPEF 구상을 밝혔다. 백악관은 디지털 경제, 기술 표준, 공급망 회복, 탈탄소와 클린 에너지, 인프라 등을 IPEF의 공동 목표라고 밝혔다. 목표는 많지만 IPEF의 핵심은 RCEP이나 CPTPP와 같은 경제협력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분야와 중요 공급망에서 중국과 탈동조화(decoupling)를 추구하고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 더 나은 세계 구축(3BW: Build Back Better World)의 일환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것이다. 즉,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 목표다. IPEF를 출범시키기 위해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2011년 11월 중하순에는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 한국, 인도를 방문했고 러몬드 상무부 장관이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12월 중순에는 블링컨 국무장관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을 방문했고 12월 하순에는 미 국무부의 페르난데스 차관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다. 고위 관료들의 방문을 통해 IPEF 발족과 관련된 다양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IPEF는 무역협정이 아니므로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다. 따라서 관련 국가들이 동의할 경우 IPEF는 2022년 전반기에 발족될 수도 있다. 중국은 관련국들이 IPEF에 불참하도록 설득과 회유, 그리고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중심의 RCEP은 협력이, 일본 중심의 CPTPP는 갈등이, 그리고 미국 중심의 IPEF는 긴장이 발생할 수 있는 가운데 한국은 IPEF 가입을 권유받고 있다. RCEP의 회원국이자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이 IPEF 가입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타야 한다. 다만 서둘러 먼저 타야 할 이유는 없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美·中 영상회담의 블랙박스를 해체해 보면

지난 16일 미·중 정상이 화상회담을 가졌다. 194분에 걸쳐 마라톤회담을 가졌지만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솔직하게 대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견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해 보면 경쟁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중간 경쟁은 이미 위험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 미·소간 경쟁을 냉전이라 한다면 현재 미·중간 경쟁을 신냉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냉전이든 신냉전이든 그 핵심은 팽창과 봉쇄다. 중국의 팽창에 맞서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rule of law)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세계적 차원에서 반중국 연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12월 중순, 100여개국 이상의 정상들을 초청해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를 바탕으로 그 위에 군사동맹, 신경제동맹, 그리고 정보동맹 등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한·일, 그리고 나토 정상회담 등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소원했던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을 배제한 첨단기술, 디지털, 공급망 생태계 구축이라는 신경제 동맹을 내년 초에 발족할 예정이다.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텐 아이즈(Ten Eyes)로 확대할 의지도 가지고 있다. 지역적 차원에서는 쿼드를 활성화해 지역문제를 전략적으로 협의하고 미·영·호주의 동맹체인 오쿠스를 창설해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고자 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오커스를 통해 호주에게 핵추진잠수함과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고자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미국이 중국을 못살게 구는 악당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봉쇄조치 이면에는 팽창 과정에서 저지른 중국의 실수가 오히려 반중 연대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국은 겉으로는 주권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대국과 소국을 구분하면서 소국에 대한 무자비한 전랑(戰狼)외교를 펼쳤다. 중국은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는 이유로 노르웨이에, 센카쿠 제도 분쟁을 이유로 일본에, 시사군도 분쟁을 이유로 베트남에, 사드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로 필리핀에, 독립의 목소리가 높다는 이유로 대만에, 그리고 코로나19 진원지 조사를 주장한 호주에 대해 각각 경제 제재를 했다. 인도와는 국경분쟁을 하면서 군사충돌까지 벌였다. 또한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등 6개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국제법과 국제판결을 무시하고 인공섬을 건설하고 여기에 군용기와 미사일 부대들을 배치하고 있다.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는 무참히 짓밟았고 이제는 대만 통일까지 공언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은 신장위구르에 대한 인권 탄압과 자국민에 대한 자유 및 정보 통제 등 ‘빅 브라더’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팽창이 국제규범과 인륜(人倫)을 넘어섰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퓨 리서치 센터가 2020년 14개국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0% 이상이 부정적이었다. 패권을 잃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도 있었지만 팽창과정에 중국이 보여준 실수가 바이든 행정부의 세계 및 지역적 차원의 봉쇄정책을 더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냉전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발언과 달리 현실은 냉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 냉전은 미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정부는 신냉전에 임하는 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 기업도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블랙박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남북한 군비경쟁과 북한 정권의 미래

남북한 군비경쟁이 본격화됐다. 시동을 건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핵실험을 거듭하면서 이를 실어 나를 중장거리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한국은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과 군사력 균형을 찾고자 했다. 한국은 핵을 제외한 첨단 군사력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정부도 매년 6~7%의 국방비를 증액시켰다. 이에 따라 스텔스 전투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3천t급 잠수함 등을 도입했고 4차산업혁명의 기술이 적용된 첨단무기체계도 곧 개발할 예정이다. 남북한의 재래식 전력 중에서 북한이 한국보다 앞선 기술력을 선보인 것은 미사일 분야다. 사실 미사일도 한국이 북한보다 훨씬 먼저 개발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8년에 이미 백곰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개발 중단 압박을 가함에 따라 사거리와 중량을 제한하는 미사일 지침에 합의했다. 한국이 이 지침에 묶여있는 사이에 오히려 북한이 미사일 강국이 됐다. 결국 지난 5월 42년 만에 미사일 지침이 폐지됐다. 이에 따라 미사일뿐만 아니라 우주발사체 개발에 대한 제한사항이 모두 사라졌다. 이로써 남북한 간에 미사일 개발 경쟁은 더 뜨거워지게 됐다. 북한은 올해 들어 무려 9차례에 걸쳐 각종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장단거리 순항 미사일 3회, 지상 및 열차 등에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2회, 극초음속 미사일(화성 8형) 1회. 신형대공미사일 1회, 그리고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회 등이다. 한국도 지난달에 3천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에서 SLBM을 시험 발사했다. 세계에서 7번째였다. 초음속 순항미사일도 성공적으로 개발됐다. 미사일 분야의 군비경쟁이 이제 다른 분야로 옮겨 붙을 전망이다. 북한은 올해 1월 개최된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다탄두 개별유도기술(MIRV)의 연구사업이 마감단계에 있고 중형잠수함을 시범개조할 것이며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났다고 했다. 각종 전자무기, 무인 타격장비, 정찰탐지 수단, 그리고 군사 정찰 위성 설계를 완성했다고 했다. 곧 첨단무기체계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같은 시기(1월)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F)는 2020년 한국의 국방비는 480억달러였고 북한은 35억달러였다고 했다. 한국이 14배나 많다. 그러나 한국의 국방비는 GDP의 2.4%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국방비는 북한 GDP의 2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첨단 군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개발비용과 함께 유지비용도 많이 든다. 과연 북한이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1980년대 신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구소련 간 군비경쟁의 불이 붙었다. 레이건 정부는 카터 정부에 비해 국방비를 50% 이상 증액시키면서 소련의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격파할 수 있는 계획을 발표했다. 별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구소련은 SDI를 뚫기 위해 1980년 3만개였던 핵무기를 1986년에는 4만5천개까지 늘렸고 MIRV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더 이상 GDP의 20% 이상을 군사비로 지출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구소련은 4만5천개의 핵무기를 끌어안고 몰락했다. 지금 남북한 간에는 1980년대 미소간 군비경쟁 데자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첨단무기 개발은 한국에 엄청난 안보 위협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 정권에게는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한정된 자원이 왜곡 분배되면 정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그 길로 가고 있다. 멈춰야 산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北 담화, 유리병 다루듯 이 기회를 살려야

김여정 부부장이 바빠졌다. 종전선언은 흥미로운 발상이라는 24일의 담화에 이어 25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등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다시 밝힌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까다로운 조건을 덧붙였다. 대북 적대시 정책이나 이중 기준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미사일 활동에 대한 이해당사국들의 반응과 대화 열망을 보고 이런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또 대화 재개를 계기로 북한 내부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잘하면 조건 관철을 통해 안보 위기도 해소하고 인도적 위기도 해소하는 꿩 먹고 알 먹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또 다시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사거리 1천500㎞의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과 사거리 600㎞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까지 시험발사했다. 이정도면 국제사회가 나설 만도 한데 모두 뒷짐을 지고 있다. 유엔은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내용을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미국도 점잖은 언술로 넘어갔다.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해당사국들이 얼마나 대화를 원하는지도 확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실용적 접근을 내세우면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한다고 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기는커녕 오히려 핵 및 미사일 능력 확대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제재하는 대신 외교적 노력에 방점을 둔 것이다. 중국도 양자 대화나 다자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내년 2월에 개최될 동계 올림픽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려면 한반도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남북한 지도자들을 북경에 초청해 3자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바이든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해서 4자 정상회담을 해도 좋고 안 와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북한은 이를 꿰뚫어보고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대화만 재개되면 자신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의 급한 불은 경제 제재, 수해, 코로나19라는 3재(災)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올해 식량 약 86만 t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주민이 3개월치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북한은 또 마스크를 벗고 열병식을 하지만 언제 이 청정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끼고 있다. 제재완화도 필요하고 식량과 백신도 필요하다. 그런데 대화가 재개되면 이해당사국들이 제재완화와 함께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하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오히려 북한이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전제조건도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입을 틀어막고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것들이다. 북한은 여전히 남북관계에서 자신이 갑인 줄 착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김여정은 한국 사회의 북한과의 대화 열망만 알 뿐, 갑을 관계의 대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두드러기적 반응을 보이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조건이 까다로우면 일을 망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서두르지 말고 유리병 다루듯 이 기회를 살리고 관리할 필요는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폭탄테러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전략 방향

오늘 31일은 아프간 철수 시한 마지막 날이다. 아프간에서 철수하지 못한 미국인과 미국을 도와준 아프간 조력자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 그럼에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철수 작전을 종료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국내외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카불 조기함락에 대한 정보의 실패, IS-K 테러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작전의 실패, 베트남전과 다를 것이란 바이든 자신의 판단 실패 등이 어우러져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에 처한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IS-K를 소탕할 때까지 제2의 대테러전을 수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획대로 철군해 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공항 테러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IS-K를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을 것이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다. 군 지휘부에 IS-K를 타격할 작전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 드론이 카불공항 테러 설계자로 알려진 IS-K 지도자를 족집게 공격을 통해 제거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공습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미국이 제2의 대테러전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낳게 했다. 사실 대테러전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대테러전에 돌입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삐걱거리게 되고 중국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아프간에서 손 털고 대 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중국에 대한 국방정책 재검토와 전지구적차원의 미군배치태세 재검토(GPR)를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드체계를 철수하고 중동지역의 미군 비행단도 1개 줄일 계획이라는 설이 흘러나온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런 무기체계들은 아프간과 중동 지역에서 철수한 미군과 함께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재배치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과거 정부의 교훈 때문이다. 2001년 취임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911테러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다. 이 전쟁에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기에 미국은 견제는 고사하고 오히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켰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중국은 급부상했고 또 다른 10년이 지나자 미국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게 됐다. 만일 바이든 행정부가 제2의 대테러전에 돌입한다면 다음 패권은 중국 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연유로 바이든 행정부는 제2의 대테러전을 피하고자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IS-K에 대한 보복의 한계를 설정했다. IS-K의 자산과 지도부, 그리고 시설을 타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군 재투입보다는 드론이나 걸프만에 있는 함정에서 미사일로 폭격하는 정도로 그칠 것이다. 수차례 공습 후 미국은 IS-K의 무력화를 선언하면서 아프간에서 손을 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그랬듯 바이든 행정부도 출범 첫해에 결정타를 입었다. 그러나 대처하는 과정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테러전보다는 중국 견제라는 대전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싸늘한 국내 여론과 세계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대전략을 위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美 국방장관의 동남아 순방과 주한미군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어제부터 아시아 순방길에 나섰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인도 등을 방문할 예정이고 오스틴 국방장관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그리고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다. 두 장관이 지난 3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지 채 6개월도 되기 전에 벌써 두 번째 아시아 순방에 나선 것이다. 블링컨 국무장관의 인도 방문은 이해가 된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고 있는 인도에 대한 위무(慰撫)와 함께 쿼드(QUAD) 멤버인 인도와의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스틴 국방장관이 싱가포르 등 3개국을 방문하는 것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계를 되돌려 보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 국방부에 2가지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중국연구팀(China Task Force)을 구성해 중국에 대한 국방정책을 재검토하라는 것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미군배치태세를 재검토(GPR)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미 국방부는 15명의 중국연구팀을 구성해 4개월 동안 중국 위협, 미군의 전략, 그리고 동맹 관계 등을 검토했다. 중국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비공개 문서로 이미 백악관에 제출됐다. GPR도 곧 완료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 미국의 군사력 재배치가 현실화될 것이다. 아시아에는 주일미군 5만2천명과 주한미군 2만8천500명이 있다. 이 외에도 호주, 싱가포르, 태국에 각각 200명 내외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동북아에 편중된 이런 배치로는 남중국해를 내해처럼 여기는 중국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격에도 취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돌발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미군이 없고 또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은 너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어 상대방의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오스틴 국방장관이 방문하는 3개국은 미국이 생각하는 남중국해의 핵심 거점이다. 싱가포르는 말라카 해협의 길목을, 베트남은 모루 역할을, 필리핀은 망치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 국가들과 미군 재배치를 위한 다양한 옵션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쿼드 멤버이자 중국과 인공섬 갈등을 겪는 베트남의 호응이 중요하다. 또한 미국의 동맹이자 친중 반미 성향을 띠는 필리핀의 태도도 관건이다. 특히 필리핀은 중국을 향한 망치 역할도 하지만 중국의 군사력이 이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을 돌파하지 못하도록 하는 만리장성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미국은 다양한 군사력을 필리핀에 배치하길 원하고 있는데 오스틴 장관의 방문이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오스틴 국방장관의 동남아 순방을 한가한 마음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 순방결과에 따라 GPR이 완성되면서 주한미군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초 칼(Colin Kahl)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지명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주한 미군 병력 규모는 마법 숫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주한 미군은 언제든 감축될 수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곧 발등의 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독 미군 철수를 백지화시켰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또 미 의회에서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를 법제화했다고 해서 느긋해서도 안 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GPR은 9.11테러 이후의 전략적 유연성에 초점을 둔 부시 행정부의 GPR과 다르고 방위비분담 인상 목적으로 주독 미군과 주한미군 감축을 우발적으로 언급한 트럼프 행정부와도 다르다. 바이든 행정부의 GPR은 철저히 중국에 초점을 맞춘 정교한 GPR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GPR 완성 전에 미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김열수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 성과와 과제

지난 11일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끝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주장할수록 외교가 사라지고 동맹이 떠나가고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미국적 질서가 무너지고 중국의 도전도 물리칠 수 없다는 것도 인식했다. 6번의 상원의원과 8년 부통령 경험을 한 그가 택한 것은 미국의 리더십 회복(Renewing American Leadership)이었다.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미국이 돌아오고, 외교가 돌아오고, 동맹이 돌아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럽 순방을 통해 그의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의 목적은 서구를 하나로 묶어 단일 대오를 형성하여 세를 과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중ㆍ러 밀월 관계의 균열도 있어야 하기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회담도 했다. 그는 유럽 순방을 통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각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는 중국 견제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G7 공동성명에는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보장, 홍콩의 자치 및 자유화 보장,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질서 변경에 대한 우려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코로나 19의 기원에 대한 재조사도 촉구했다. NATO 공동성명에서는 중국의 명시적 야망과 공격적 행동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동맹 안보에 대한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이라고 명시했다. 중국을 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 것은 NATO 창설 7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내년에 열릴 NATO 정상회담에서는 NATO의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는 NATO가 동유럽으로의 단거리 동진(東進)을 넘어 인태 지역으로의 장거리 동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ㆍEU 공동성명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는 계속되었다. 또한 미ㆍEU는 무역기술위원회(TTC)의 신설에 합의했다. 이 위원회는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신흥 첨단기술과 표준에 관한 중요 정책과 공급망 회복에 대한 정책들을 논의하게 된다. 중국의 기술 굴기 견제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 중국 전선 구축에 강력히 반발했다. 내정간섭, 핵심이익 침해, 사이비 다자주의 등으로 비난했다. 미 상원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혁신경쟁법을 통과시키자 중국도 지난 10일 미국 등 서방의 대중 제재에 반격하는 내용이 담긴 반(反) 외국제재법을 제정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 기간인 지난 15일에는 중국이 전투기, 폭격기, 조기경보기, 전자전기, 대잠기 등 군용기 28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시켜 대만을 포위하듯 비행하기도 했다. 중국은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를 할 예정이고 미국은 올해 말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중국이 양보하지 않는 한ㆍ미ㆍ중 간 긴장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예정된 전쟁을 저술했던 엘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의한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지점으로 남중국해, 센카쿠 제도, 대만해협, 한반도 등을 꼽았다. 지역의 긴장 휴즈도 뽑아야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긴장 튜브도 바람을 빼야 한다. 기다리면 늦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한미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한미 양 정상은 전화 통화를 한 데 이어 4월 하순에는 기후정상회의에서 화상 대면을 했다. 모두 비대면이었다. 이번에는 워싱턴에서 대면 정상회담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면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일본의 스가 총리 이후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100여 일 동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많은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양국의 외무 및 국방부 장관이 참석하는 2+2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한미일 3국의 안보보좌관들이 참여하는 회의가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G7 외무부 장관 회담이 열렸을 때에는 한미 간 외교부장관 회담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미국의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런 회의와 방문 등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양 정상이 주고받을 것과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것에 대한 질과 양의 범위와 수준이 될 것이다. 한국이 줄 것이 생각보다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품목의 공급망을 검토하라고 했다. 4월 중순에는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 CEO를 화상으로 초청하여 반도체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인프라로 규정하면서 여기에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공급망 검토 4개 중에서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의 세계적 강자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삼성의 반도체 투자와 LG 및 SK의 배터리 투자, 그리고 현대 자동차의 전기자동차 투자를 선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첨단산업의 강대국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선물이다. 미국도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 400여 일 만에 마스크를 벗은 미국은 코로나 백신이 남아돈다. 백신을 직접 줄 수도 있고 위탁생산을 선물로 줄 수도 있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은 세계 2위의 위탁생산(CMO)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산 백신을 위탁생산하게 되면 한국이 코로나 백신의 생산기지가 될 수도 있다. 백신도 충분히 공급해 주고 위탁생산도 하게 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환호할만한 선물이다. 마침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날 미국 상무부 장관 주관으로 반도체 2차 대책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한다. 초청받은 한국의 삼성전자는 20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공장을 미국에 짓겠다는 계획을 밝힐 수도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한국의 CMO 기업들이 미국의 백신 기업들과 위탁생산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흐뭇한 시나리오의 현실화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줄 것과 받을 것 외에도 공동으로 대응할 것도 있다. 글로벌 차원의 기후변화 문제와 보건 문제,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법치 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역과 한반도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의견이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지역 차원에서는 쿼드의 참여 여부가 핵심 사안이 될 것이다. 한국은 쿼드가 폐쇄적이고 규제적일 것에 대해 걱정했다. 그런데 최근 케이건 백악관 NSC 국장이 쿼드는 안보동맹도 아시아판 나토도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쿼드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지가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도 한미의 의견이 많이 접근했다. 미국은 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하면서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고 했다. 동시타결이나 포괄적 접근이 아닌 단계적 접근이기에 북한도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의 대화 복귀 촉구를 어느 정도 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첫 만남은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적절히 주고받고 또 공동 대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다면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좋은 시나리오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방역에도 정의가 있는가

코로나19의 제4차 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상이 걸린 방역 당국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하고, 일부에서는 강화했다. 어느 정도까지 통제해야 할까? 아니 어느 정도까지 통제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일까? 정의론의 대가인 마이클 샌들 교수도 선뜻 답을 내 놓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대응하는 방역의 형태는 각 국가의 수만큼이나 달랐다. 그런데도 크게 서구 모델과 중국 모델로 나눌 수 있다. 서구 모델은 방역에서도 개별 정부가 개인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자유,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거주이전의 자유, 그리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선뜻 침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는 사이에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은 강력한 통제로 대응했다.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중국은 우한시의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 하나를 완전히 봉쇄해 버린 것이다. 주민들은 주거단지를 벗어날 수 없었고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무려 두 달 동안 이렇게 살았다. 확진자가 발생한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봉쇄와 강력한 통제는 예외가 아니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 않게 됐다. 어떤 모델이 정의로운 것일까? 불특정 다수가 죽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일까? 아니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철저히 통제하는 대신 불특정 다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정의일까? 두 모델 모두 이상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모델이긴 하다. 비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희생된 서구 모델은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구 모델은 철저히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축적된 서구 문화는 근본적으로 통제를 혐오한다. 이런 연유로 정부나 국민이나 모두 선뜻 봉쇄와 통제를 내밀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통제라는 카드를 한 번 내밀고 또 받아들이게 되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모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를 저당 잡았기에 희생은 불가피했다. 중국 모델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력한 봉쇄와 통제로 코로나 확산을 차단하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중국 정부는 코로나 방역에 기여한 유공자를 포상함으로써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서구 모델에 대한 중국 모델의 승리를 선언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중국 모델은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집단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달 동안 봉쇄를 당하고 주거 단지에서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우한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조직적인 봉쇄와 통제에 대한 자신감이 중국을 더욱 집단주의 국가로 끌고 갈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중국 모델은 현재에 대한 자신감이 미래를 저당 잡게 될 것이다. 무엇이 정의일까? 사람이 죽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정의일까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정의일까. 서구 모델과 중국 모델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이 존재한다. 중국에 거주하던 지인이 얼마 전 귀국해서 하는 말이 한국의 통제는 통제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이다. 통제의 질과 폭을 결정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수준이 진정한 정의이지 않을까?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2+2 회담의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내일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방한한다.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들이 첫 순방지로 일본과 한국을 택한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시아와 동맹을 중시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가지 이벤트들도 있다.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현재 한미연합연습이 진행 중인 벙커를 서욱 국방부장관과 함께 방문할 것이다. 여건이 되면 미국의 해외기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도 방문할 것이다.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아도 이런 이벤트가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한국의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함께 제11차 방위비분담협정에 가서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나친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로 공전을 거듭했던 협상이 지난주에 타결되었기 때문이다. 가서명 이벤트는 그동안 껄끄러웠던 한미 관계를 복원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축에 드는 사람들이 이런 이벤트만을 위해 방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반도와 지역 정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아주 좋은 기회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국방부 장관과 미국의 국무국방부 장관이 서로 머리를 맞댄다. 실로 5년 만에 이뤄지는 2+2회담이다. 미국은 국제질서 유지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라는 큰 틀에서 한국의 의사를 타진할 것이다. 외교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주의 정상회담에 대한 참여 여부, 안보차원에서는 4개국 안보협의체(QUAD)를 확대한 QUAD 플러스(+)에 대한 참여 여부,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첨단 정보통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반도체 동맹에 대한 참여 여부 등이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의제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원칙으로 삼아 참여 여부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레짐은 여러 가지 참여 형태를 제시한다. 참여국은 주권적 차원에서 낮은 수준의 참여부터 아주 높은 수준의 참여까지 결정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논의 주제는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가 될 것이다. 김정은이 올해 초 제8차 당 대회 총화 보고를 통해 한미연합연습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미는 현재 연합연습을 진행 중이다. 김정은의 발언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전략적 도발을 해야 하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조용하다. 이것은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를 원한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북한은 미국 안보팀들이 이란식 해법, 즉 동결과 보상 모델을 선호한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국의 외무국방부 장관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의 전략을 제시할 것이다. 다단계 수확을 위해 북한을 비핵화의 입구로 들어서게 하는 방안과 함께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한국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을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할 것이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귀국하는 길에 알래스카에서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을 만나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바이든 행정부의 안보전략이 발표될 것이다. 이번 2+2회담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 외무국방 장관의 견해가 많이 반영된 안보전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13% 인상안이 최선의 대안인가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방위비분담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 3월 한미협상단은 2019년 대비 13% 인상안에 합의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절하는 바람에 협상은 표류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 남짓한 지난 5일 한미협상단은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11개월 만에 개최된 회의에서 한미협상단은 동맹 정신에 기초해 이견 해소 및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자고 했다. 그런데 미국의 CNN이 11일 방송을 통해 한미가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 비율을 2019년 대비 13%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마치 지난 화상회의에서 한국 협상단이 13% 인상안을 다시 제시했고 미국이 이를 수용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13% 인상안을 핵심으로 하는 제11차 방위비분담 협정(SMA)이 체결되면 이 협정의 적용 기간이 1년 단위가 아니라 수년 단위가 될 것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렇다면 13% 인상안이 최선의 방안일까. CNN이 보도한 안은 전년 대비 13% 인상률이었다. 그리고 협정의 적용기간 동안 매년 한국의 국방비 상승률만큼 분담금을 증가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20년 분담금은 1조1천740억원 정도 되고 2021년에는 2021년도 국방비 증가율 5.4%를 합산한 1조2천400억원 정도가 될 것이다. 2022년에는 다시 2022년 국방비 증가율을 합산하게 된다. 사실 13% 인상률에 대한 기준도 없다. 전년 대비 50% 인상된 13억 달러에 비해 분담금이 낮아졌기 때문에 13% 안이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안조차도 한국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과거의 협상 사례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2009~2013년 사이에 적용됐던 제8차 SMA는 전년도 분담금에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 기준이 합의된다면 2020년 분담금은 2019년도 방위비 분담금 1조389억원에 2017년도 소비자 물가상승률 1.9%를 합산한 1조 586억 원이 될 것이다. 2021년은 2000년 분담금에 2019년 소비자 물가상승률 0.4%를 합산한 1조628억원이 될 것이다. 2022년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된다. 2014~2018년에 적용되었던 제9차 SMA를 보면, 첫해의 분담금 비율의 기준은 당해년도 국방비 증가율(5.8%)이었다. 제8차 SMA과의 차이는 첫해에 한국의 국방비 상승률을 적용하느냐 또는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적용하느냐의 차이만 있다. 협정의 유효기간 동안 적용되는 매년 증가율도 전년도 분담금에 전전년도 소비자물가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20년의 분담금은 2019년 분담금에 2020년 국방비 증가율인 7.4%를 합산한 1조1천160억원 정도이고 2021년은 2020년 분담금에 2019년도 물가 상승률 0.4%를 합산한 1조1천161억원 정도 될 것이다. 사실 한국으로선 제8차 SMA 방식이 최선의 방안이다. 그런데 이 안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좋지 않은 시기에 미국이 한국의 경제 여건을 고려한 결과로 타협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제9차 SMA가 최선의 모델이라고 본다. 제9차 SMA는 바이든이 부통령일 당시 한미간에 합의된 방식이었기에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 요구를 갈취(extort)적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CNN에 정보를 흘린 미국 협상팀은 13% 인상안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한국 협상팀은 이런 허점을 역이용해 최선의 협상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바이든 행정부의 北 비핵화 회담 가능성과 한계

내일이면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 회담이 가능할까? 북한의 행동과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료로 지명된 인사들의 과거 언사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에 못지않은 장애물들도 있다. 미국의 리더십 교체 시마다 빈번하게 전략적 도발을 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도발인 듯 도발 아닌 도발과 같은 효과를 가진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회색지대 전략이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직접적인 도발 대신 직접 도발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전략을 말한다. 김정은은 제8차 당 대회 총화 보고를 통해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강대강(强對强)과 선대선(善對善)의 원칙을 가지고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김정은 발언의 신뢰성을 보여주고자 열병식을 통해 향후 핵추진 잠수함에 탑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극성 5형을 공개했다. 전략적 도발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왜 회색지대 전략을 썼을까? 북한은 바이든 당선인이나 백악관 참모 또는 장차관으로 지명된 사람들의 과거 발언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유추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능력 축소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국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컨은 2018년 기고문을 통해 북핵 협상에 이란식 핵합의 모델의 적용을 강조한 바 있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내정된 웬디 셔면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을,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이란 핵합의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북한과 이란 핵문제에 정통하고 이란식 핵합의 모델을 북한에 적용해 볼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합의에 이를 때까지 강력한 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면도 공통점이 있다. 이란 핵합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자회담의 결과로 핵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교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모델이 북한에 적용된다면 북한의 과거 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현재 및 미래 핵만 동결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회색지대 전략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비핵화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지만 장애물들도 많이 있다. 우선 내일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가 첫 번째 허들이 될 수 있다. 바이든은 치유와 화해, 세계적 리더십의 회복,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 등을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워낙 큰 이슈들이 많아서 북한 문제만을 특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바이든이 김정은을 깡패(thug)라고 표현하거나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를 특별히 부각할 경우 조기 회담의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두 번째 고비는 3월에 찾아올 것이다.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 총화 보고를 통해 한미연합연습 중단을 재차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한미는 계획된 한미연합연습을 실시할 것이다. 이럴 때 북한은 한미연합연습을 빌미로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회담의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한반도 위기가 부상할 수도 있다. 과대성장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오히려 북한을 옥죄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버틸 수 있는 국가는 이 세상에 없다. 북한 인민을 잘 먹이고 잘 살게 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천하려면 북한 스스로가 허들의 수와 높이를 낮춰야 할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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