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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이집트 카이로

세계의 어머니 혹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 등으로 칭송되는 카이로는 오늘날에도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동양과 서양, 아프리카 3개 문화의 교차점이기도 한 카이로에는 찬란한 문화 역사를 가진 이슬람 사원이 많다. 오늘날 이집트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이슬람문화가 이집트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하루에 다섯 번씩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코란의 독경소리, 온몸을 검은색 옷으로 감싸고 눈만 내밀고 다니는 여인들, 엄숙한 라마단 기간 중의 단식 등은 낯선 이방인들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인 라마단(이슬람 성월)이 8월 1일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에서 시작된다. 라마단은 경건하고 평화로운 축제의 성월로, 무슬림들은 이 기간 중 단식 등 금욕생활을 한다. 카이로라는 도시를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파티마 왕조였다. 그들은 909년 튀니지에서 일어나 나중에 이집트와 시리아 등을 점령했다. 전형적인 이슬람 왕조이며 나라를 세운 우비이드 알라 알마디는 스스로 마호메트의 자손이라고 말하며 칼리프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칼리프는 마호메트의 계승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파티마 왕조는 969년 당시 이집트의 중심 도시였던 푸스타트를 점령하고, 북부지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 이름은 승리자라는 뜻을 가진 카히라라고 했는데 후일 카이로로 바뀌게 된다. 612년 마호메트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한 후 중동 지역을 발판으로 급속도로 이슬람 사회가 형성돼 갔다. 카이로를 포함한 이집트에서도 파티마왕조와 뒤를 이은 왕조 모두 이슬람교를 적극 장려했기 때문에 곳곳에 모스크와 환상적인 건축물이 세워졌다. 마호메트가 죽은 후 중동의 여러 도시가 이슬람 사회의 중심을 이루었으나 1258년 바그다드가 몽골군의 침략에 힘없이 무너지고 거의 모든 중동 지역이 몽골인에게 점령당하자 지리상 몽골군으로부터 안전한 카이로가 이슬람사회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장려한 이슬람 문화유적인 모스크는 카이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카이로 이슬람지구에는 약 300개가 넘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구시가지에는 이집트에 세워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아므르 모스크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으로 서기 642년에 건립됐다. 무하메드 알리 모스크는 2개의 높은 첨탑과 거대한 돔이 인상적인 곳으로 1824년 건축을 시작해 1857년에 완공됐다. 술탄 하산 모스크는 1385년에 세워진 이슬람 건축의 보배라고 칭송되는 건축물이다. 카이로의 모스크 중에서 으뜸이라는 높이 90m인 첨탑과 8각형의 대형 분수대가 자랑거리다. 마물르크 왕조 시대를 대표하는 모스크로 주변에는 아미르 아쿠르모스크 등이 자리한다. 이븐 툴룬 모스크는 876년부터 3년에 걸쳐 툴룬 왕조의 초대 칼리프인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건설한 모스크이다. 종탑까지 나사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아서 올라가게 한 건축물과 고전적인 모습을 갖춘 광장이 특징적이다. 허용선 글사진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유럽 제일의 국립공원 ‘알프스’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인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은 더할 나위 없는 지구촌 비경(秘景)지대이다. 장엄한 산봉우리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있고, 계곡 사이로는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거대한 산과 초원, 중세풍의 도시와 호수가 빚어내는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은 유럽 제일의 국립공원이라고 불릴만하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은 해발 4천478m인 융프라우를 비롯해 아이거(3천970m), 묀히(4천105m) 같은 높은 산들로 이뤄진 빙하지대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융프라우, 알레치호른, 비에치호른이 바로 이곳에 있으며 대자연에 대한 신비감이 물씬 느껴진다. 높다란 산봉우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고요한 정막이 감도는 알프스 산중에 사는 동물은 산양, 염소, 여우, 마멋, 검독수리 등이 있다. 어떤 동물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스위스 정부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융프라우를 비롯한 알프스 전 지역은 자연보호가 잘 돼 어디를 가든 쓰레기를 볼 수 없다. 또한 동식물을 함부로 해치는 일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융프라우 국립공원에는 융프라우요흐, 인터라켄, 그린덴발트, 라우터브루넨, 툰 호수 등이 있다. 19세기 초만 해도 융프라우는 조용한 알프스의 한 지방에 불과했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들이 몰려들면서 휴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처녀라는 뜻의 융프라우의 산 자체는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돼 있는데 5월까지도 설질(雪質) 좋은 눈이 많이 내려 스키장으로도 명성이 높다. 인터라켄(Interlaken)은 융프라우로 향하는 사람이면 으레 찾게되는 해발 568m의 관광 거점 도시로서 이름처럼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위치한다. 인터라켄 시내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위한 크고 작은 호텔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융프라우요흐역(驛)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융프라우, 묀히, 아이거의 웅장한 산악절경이 눈앞에 장엄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고원지대 하늘이 그렇듯 융프라우의 하늘은 유난히 청명해 알레취 빙하도 또렷이 잘 보이고, 맑은 날에는 인터라켄 시가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프랑스의 보즈 산맥을 필두로 알프스 연봉들도 아련하게 보인다. 하지만, 융프라우 정상의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운이 좋은 사람이라야 맑은 날씨 속에서 이와 같은 전설적인 아름다운 절경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국립공원

키나발루산은 해발 4천95m로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한라산(1천950m)보다 무려 2배가 넘는다. 열대우림 지역에서 시작해 황량한 고산지대까지 높이 오를수록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등산객들을 감탄시킨다. 특히 정상에서 산 아래 구름으로 덮인 곁곁이 쌓인 산을 보노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코타키나발루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풍광이 뛰어난 휴양도시로, 이곳에 머물다 보면 야생의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져 편안함이 절로 느껴진다.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가기위해 꼭 들려야 하는 도시인 코타키나발루는 보르네오섬 사바 주에 있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차량으로 2시간 정도 이동하면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키나발루산은 국내 산악인들이 첫 해외 원정코스 혹은 히말라야를 가기 전 트레이닝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이다. 지난해 가을, 평소 오르고 싶었던 키나발루 정상 도전에 나섰다. 비행기로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해 숙소인 수트라 하버 리조트에 하루 머문 후 다음날 아침 8시에 자동차로 84km 떨어진 키나발루 국립공원 관리본부로 향했다. 그곳에서 등정에 필요한 등록을 마치고 ID카드를 발급받았다. 키나발루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팀폰 게이트와 메실라우 두 개의 산행코스가 있는데 메실라우 코스는 완만하지만 2.2 km 더 멀다. 가파른 산행길이지만 빠르게 오를 수 있는 팀폰 게이트로 등정코스를 정했다. 키나발루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1박2일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첫날에는 해발 3천353m에 위치한 라반라타 산장으로 가서 하루 밤을 자고 새벽 2시 쯤 일어나 4천95m 정상을 등정했다. 키나발루 국립공원본부에서 가이드를 만난 후 이분과 함께 셔틀버스로 4.5㎞를 이동해서 팀포혼 게이트로 이동했다. 팀포혼 게이트는 마치 교도소 철문 같은데 그곳 직원이 ID 카드 확인 후 열어 준 철문을 통과해 산행이 시작되었다. 조금 가니 아담한 폭포가 나타났는데 이름이 카슨 폭포다. 높이는 15m 정도이고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제법 떨어지는 수량이 많았다. 가픈 숨을 내쉬며 열심히 걸어도 많은 거리를 갈 수가 없다. 높은 산길이라 어쩔 수 없어 나름대로 복식호흡을 하고 가급적 발을 가볍게 한 채 걸었다. 한참 걸어 라양라양 산장을 지나니 멀리 정상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나발루산은 3천900m 이상인 고봉만 무려 8개라서 멀리서 보면 마치 마법의 성처럼 뾰족하게 보인다. 이곳에 온 사람들을 보니 스위스, 홍콩, 중국, 아일랜드, 캐나다, 독일 등 참으로 다양했다. 그만큼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이 키나발루 정상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타키나발루 일몰은 황홀한 석양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낮 동안 바짝 달궈진 태양이 해안선에 닿기 시작하면 어느새 항구와 해변을 붉게 불태운다. 해변 근처에서 바라본 황홀한 석양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코타키나발루에는 많은 리조트들이 있다. 이중 코타키나발루 중심에 위치한 수트라하버(Sutera Harbour) 리조트는 말레이시아 국왕이 휴가와 생일 때 묵었던 곳으로 주요 국가 행사에 국빈들이 체류하는 고급 리조트로 유명하다. 퍼시픽 수트라와 마젤란 수트라 등으로 구성된 이 리조트는 코타키나발루의 중심 시내에서 5분,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에서는 10분 거리의 편리한 위치에 있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일본 닛코와 후쿠시마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닛코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국립공원이다. 국보와 중요문화재가 곳곳에 있고 자연풍광이 뛰어난 호수와 산, 폭포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 북쪽에 있는 닛코는 약 1천200년의 역사를 가진 아담한 도시다. 닛코를 빛내는 도쇼궁(東照宮)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江戶)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신사)이다. 1616년 4월 17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시즈오카에 묻혔던 그의 유해를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닛코로 이장했다. 장군으로 일본 막부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에미츠는 금 56만8천량, 은 100관, 쌀 1천석, 목재 14만본이란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면서, 1년 5개월 동안 도쇼궁을 지었다. 당시 일본 최고 기술을 가진 건축가, 목수, 화가, 조각가들이 최선을 다한 건축물이다. 근세 초기의 일본 건축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는 도쇼궁에는 일본 국보 8점을 비롯한 중요문화재 55점이 소장돼 있다. 임진왜란 때 한반도를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했던 인물이다. 도쇼궁의 건물 중 신들의 마구간으로 불리는 신큐사에는 말들의 병을 막아준다는 8마리의 원숭이가 조각돼 있다. 특히 나쁜 것을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눈, 입, 귀를 가리고 있는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이 유명하다. 건물 안쪽으로 더 들어서면 정문에 해당하는 요메이문이 나온다, 일곱 가지 채색과 500여 개의 조각을 새긴 화려한 문을 열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요메이문 안쪽에 있는 세 번째 기둥은 다른 기둥과 달리 거꾸로 세워져 있는데, 이는 건축물의 완벽함으로 인해 남에게서 험담을 받을 수 있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3번째로 면적이 큰 현인 후쿠시마는 유서깊은 역사와 문화, 양질의 온천과 스키장, 먹을거리가 있는 곳이다. 2년 전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로 엄청난 재해를 입었으나 복구가 한창이다. 후쿠시마현은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중세시대 성채들이 남아 있고 양질의 눈이 내려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아이즈 지역, 과일 생산량이 많고 봄철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나카도리 지역, 해산물이 풍성하며 연중 온화한 날씨를 보이는 하마도리 지역이다. 후쿠시마 쓰루가와 성(城)의 정문인 구로가네몬은 기둥과 대문이 온통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안에는 식량과 무기류를 보관하던 건물들이 나타난다. 로우카바시는 동쪽에서 침입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든 다리다. 다리 위에 적들이 있으면 다리 자체를 밑으로 떨어뜨려 적의 침입을 막는다. 1591년 가모우 우지사또가 7층의 덴슈까꾸(천수각)를 지었다. 그 후 대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1639년에 개축한 역사를 갖고 있다. 쓰루가와 성은 막부 말기 보신 전쟁 때 구 막부파가 최후까지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

[허용선 세계문화기행] 태국 끄라비와 푸껫

태국은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찬란한 불교문화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끄라비(Krabi)는 안다만 해안의 여러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해식동굴 탐사, 암벽등반, 절벽 위에 숨겨진 호수 탐사를 경험할 수 있다. 푸껫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방콕에서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해안 지대에는 수준 높은 호텔 등이 있고 다양한 수상 스포츠,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맛있는 태국 음식과 신명난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 평화롭고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끄라비로 가기 위해 푸껫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달려가야 한다. 석회암 절벽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해변을 만끽하기 위해 외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끄라비는 11월~4월이 성수기다. 이때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바다도 맑아 휴식과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최적의 시기다. 끄라비 타운은 이 지역의 교통과 관광의 중심지로 인근 섬으로 떠나기 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에 좋은 곳이다. 야시장에 가서 보니 과일, 의류, 액세서리 등 다채로운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일부 품목은 비싸 대형 마트에서 물품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느꼈다. 아오 낭(Ao Nang) 해변에는 호텔, 레스토랑, 여행사 등이 몰려 있다. 바로 앞에는 긴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반라의 유럽 여성들이 오간다. 진동이 무척 심한 유람선을 2시간 타고 시밀란 섬으로 갔다. 시밀란은 11월부터 4월까지만 출입이 가능한 끄라비 인근의 비밀스런 섬이다. 시밀란 군도는 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발을 벗어야 섬에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자연보호에 철저한 곳이다. 198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매력적인 청록색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유람선에서 스노클 장비를 갖추고 바다로 뛰어들어 물속을 살피니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였다. 빵을 주니 기기묘묘한 물고기들이 바짝 다가와 먹이를 달랜다. 아쉬운 점은 바다 속 일부 산호들이 백화 현상 때문인지 하얗게 변해 있다는 점이다. 푸껫(Phuket)은 태국에서 가장 큰 섬이자 이름난 관광지다. 푸껫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고운 백사장, 석회암 절벽, 우거진 숲 등이 자리한다. 주요 해변으론 빠똥, 까론, 까다 등이 있으며 해변마다 고급 리조트와 상점, 레스토랑 등이 널려 있다. 푸껫은 피피섬 등 인근의 섬으로 떠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도 한다. 푸껫 섬의 서쪽을 따라 아름다운 해변들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 빠똥은 푸껫의 주요 관광 리조트로 동양의 골드코스트라 불리 울만큼 아름다운 해변이다. 해변 길이는 약 3Km에 달하고 푸껫에서 가장 처음 개발된 해변이다. 완만한 수심과 넓은 해변에선 일광욕과 제트스키 등을 할 수 있다.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데 적합한 피피섬은 사람이 사는 피피 돈과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휴양지로 좋은 피피 레로 나뉜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캐나다 리도운하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100만㎞ 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와 40만개의 호수, 강, 1천200만 명의 인구, 다양한 문화와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리도 운하는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서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있는 킹스턴까지 202㎞에 이르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202㎞의 운하를 따라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곳곳에 나타나는 역사 유적지, 그리고 캐나다 동부를 대표하는 고풍적인 마을 풍경은 장관이다. 2007년 유네스코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과 역사성을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 역사도시인 킹스턴, 천섬 등은 한곁 같이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리도 운하는 1832년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됐다. 당시 미국과 전투도 했던 캐나다는 안전한 물자 운반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영국의 존 바이 대령이 1826년부터 6년에 걸쳐 만든 운하다. 오타와, 킹스턴, 세인트로렌스 강을 모두 연결하고 있으며, 총 40개의 수문이 설치됐다. 온타리오 주 남동부에 있는 리도 운하는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 시와 온타리오 호에 접해 있는 오래된 도시인 킹스턴 시를 연결한다. 오타와에서 남서쪽으로 리도 강을 따라 거의 200㎞를 흘러 리도 호에서 최고지점(124m)을 이루며 카타라키 강을 지나 온타리오 호에까지 이른다. 47개의 갑문(각각 길이 41m, 너비 10m)이 있으며 깊이는 1.7m이다. 리도 운하는 수력발전과 군수 이동수단으로 사용됐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과 오락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계절별로 리도 운하를 즐기는 모습은 다채롭다. 리도 운하의 양 옆에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봄에는 리도 운하를 따라 조성된 15㎞의 튤립루트에 300만 송이가 넘는 튤립이 활짝 피어난다. 이른바 북미대륙에서 유명한 오타와 튤립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이때에는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인터내셔널 파빌리온, 꽃으로 만든 각종 장식품 전시, 여러 곳의 화려한 튤립 전시장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가을이면 오색찬란한 단풍 가로수가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운하가 얼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스케이트장이 된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7.8㎞의 세계 최장의 자연 아이스링크가 바로 리도 운하에서 만들어진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쇼팽과 퀴리부인의 나라, 폴란드

폴란드는 퀴리부인과 코페르니쿠스로 대표되는 과학의 나라이기도 하고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자유노조의 지도자 바웬사의 조국이기도 하다. 폴란드의 카토비체 시가지는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래된 성당과 집들이 보이는가 하면 새로 지은 현대적인 건물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폴란드 중남부에 있는 카토비체(Katowice)는 인구 3만 명 규모로 폴란드에선 10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4만개 이상의 회사가 이 작은 도시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예로부터 탄광업이 발달한 실레지엔주의 주도(州都)라서 다양한 회사들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카토비체는 유럽 최대 규모의 석탄지대인 실레지엔의 중심도시로 탄광업이 발달한 도시다. 학생들도 유난히 많이 보여 물어보니 카토비체에 8만 명, 실레지엔주 전체로는 13만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도 많고 주정부나 시의 경제적인 배려도 크다니 학생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하다. 시내로 나가보면 베를린이나 프라하처럼 번화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눈에 띄고 맛깔스런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 대형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퀴리 부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독일에 온 듯한 오폴레는 폴란드 남서쪽 오폴레주의 주도(州都)로,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실레지엔 지역에 속해 있어 탄광업을 비롯한 담배, 시멘트, 철도산업 등이 발달돼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8세기 초에 오데르 강가에 사람들이 거주하며 마을을 이루었고, 990년 미에즈코 왕세자가 실레지엔 지방을 정복하고 폴란드 영토로 귀속시켰다. 1202년에는 독립해 오폴레 공국의 수도로 되었다가 16세기에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에 병합되었다. 오랜 기간 게르만 민족이 살던 곳이라 오폴레 도시 자체는 독일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하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곳은 독일 도시였으나 전후 독일계 주민을 딴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시내로 폴란드 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오폴레는 아담한 도시라서 반나절이면 중요한 곳을 다 돌아볼 수 있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건축물들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국제 건축물 콘테스트에서 오폴레가 큰 상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될 정도다. 오폴레의 베니스는 오데르 강가의 건물들이 저녁에 물빛에 반사되어 뛰어난 정취를 자아내는 것이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장광장에 자리한 시청사는 오폴레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시청사 전망대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 시내를 바라보면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알록달록 칠해진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아서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한반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수려한 자연 경관과 2천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스리랑카의 고대와 중세기 시대에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대개 왕궁과 사원 그리고 저수지 등인데 이들 모두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거나 유적들이다. 유적으로서의 가치도 높아 이들 중 5개 지역이 유네스코 선정 문화유적이며 그중 4개의 지역은 관광객들이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다. 5세기경에 세워진 시기리아는 사자 상이라고도 불리는데 정글 속 200m 높은 바위에 세워진 왕궁이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을 이용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주위를 둘러 해자가 있고 성채가 있으며 바위 양쪽에 정원이 있고 거대한 사자의 발톱이 정상을 오르는 계단에 수호 상처럼 버티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천년의 도시로 정교한 도시 계획과 정상에 왕궁을 건축한 기술은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시기리아의 가장 유명한 장면의 하나는 바위의 아슬아슬한 곳에 그린 페레스고 여인상들이다. 담불러라는 사원은 기원 전 1세기경 산언덕 위에 위치한 바위 속에 세워졌다. 역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담불러는 시기리야에서도 볼 수가 있다. 다섯 가지 유물 중 기원전에 새긴 양각 글자들과 15m 크기의 와신 부처상과 150개의 불상, 그리고 내부 천정과 벽에 그린 여러 형태의 탱화가 있다. 담불러 석굴사원은 하나의 바위 속에 동굴을 파서 만든 절이며, 석굴 사원 중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5개의 석굴 면적이 2천㎡이고, 150개 이상의 부처상이 있으며, 길이가 14m나 되는 와불의 모습도 인상 깊다. 켄디는 아름다운 언덕 위의 도시로 포르투갈, 영국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는 1815년까지 수도였다. 아름다운 호수, 중세기 미술작품들, 강, 차 그리고 향료 농장 등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 치아를 보존하고 있는 달리다 말리가워는 이곳의 최고 유적지이다. 해발 500m가 넘는 산악 도시이며 싱할라 족속의 원래 모습과 전통이 남아있다. 캔디에는 모두 486개의 역사적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호수, 중세기 미술작품들, 강, 차 그리고 향료 농장 등도 있다. 역사적인 도시인 골이라는 중세기 도시는 현재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다. 해변 주위에는 전통적인 조각품과 보석 그리고 바틱 등을 비롯한 상품들도 많이 있다. 해변을 걷다보면 붉은 태양 아래 드넓은 인도양 바다에서 외다리 낚시를 하는 모습을 종종보게 된다. 외다리 낚시(스틸트 피싱, stilt fishing)는 얕은 바닷가에서 센 물결 때문에 장대를 박아놓고 거기 매달려 고기를 잡는 독특한 방식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외다리 장대에 매달린 늙은 어부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며 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천혜의 자연 간직한 베트남

전통의상인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매력적인 여성, 소박한 쌀국수, 도로를 꽉 채우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행렬. 특히 그림같이 펼쳐진 하롱베이의 해안 등은 베트남을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강한 인상들이다.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하롱베이다. 그 만큼 외화벌이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롱베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하롱베이에 외적이 침입해 갖은 만행을 부릴 때 하늘에서 용들이 내려왔다. 용들은 바다 위에 폭풍우를 쏟고, 격랑을 일으켜 외적들을 격퇴했는데 그 후에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바다에서 살았다. 용들이 용틀임하면서 쏟아 부은 천둥, 번개 등은 수천 개의 섬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이곳의 지명을 하룡(下龍)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롱베이의 하(河)는 내려온다라는 뜻이고, 롱은 용(龍)을 말하므로 용이 내려온다 라는 의미이다. 베이는 만(灣)을 뜻한다. 하롱베이는 지난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됐다. 수천 개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하롱베이는 지질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해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긴팔원숭이, 통킹납작코원숭이, 백로, 붉은 왜가리 같은 동물들이 섬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바다 속에서도 무수한 해양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하롱베이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크고 작은 약 2천 개에 달하는 섬들 대부분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무인도이다. 그 중 약 1천 개 정도의 섬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섬 모습이 코끼리 같다고 하여 코끼리섬으로 부르는 곳도 있고, 낙타 같다고 하여 낙타섬 등등 다양하다. 유람선이 깊은 바다로 나아갈수록 기기묘묘한 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마치 첩첩산중에서 골짜기를 지나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단단한 암벽으로 이뤄진 섬이 있는가 하면, 깍아지른 듯한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하롱베이의 섬 중에는 석회암 동굴도 있다. 바로 티엔 충(Tien Chun)이라고 불리는 동굴로 1993년에 발견됐다. 한 주민이 원숭이를 잡으려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동굴의 입구는 좁지만 내부는 상당히 큰 편이다. 기기묘묘한 석순들이 천장과 바닥에 달려 있다. 베트남에는 외국인의 이름을 딴 지명이 거의 없다. 그만큼 민족의 주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롱베이에 있는 섬 하나는 러시아 우주 비행사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현지에서 티톱섬으로 불리는 곳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호치민의 명령에 의해 정해졌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인 티톱이 하롱베이에서 머물다 떠난 적이 있는데 그 후 하롱베이를 방문한 호치민이 적어도 섬 하나는 존경받는 외국인 이름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티톱섬 정상의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데는 약 20분 정도 걸린다. 경사가 급해 노인들은 숨을 헉헉거리면서 올라간다. 가파르긴 하지만 계단이 잘 다듬어져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다. 산 위 전망대에서는 주변 하롱베이의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독특한 자연풍광과 이상적인 동식물의 생태환경을 갖고 있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하롱베이를 찾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고 있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찬란했던 페르시아제국의 심장 ‘페르세폴리스’

지난 6월 말 이란을 방문해 진기한 경험을 했다. 차도르를 입은 여성을 함부로 쳐다봐서도 안 되고, 사진을 촬영하면 봉변을 각오해야 한다, 여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흔적이 있으면 입국이 거절된다 등 도착 전에 들었던 이란 여행정보는 잘못된 것이 많았다. 차도르(Chardor)를 쓰고 무리지어 이동하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사진촬영을 하자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로 즐겁게 촬영에 응한다. 오히려 여성들이 사진촬영에 더욱 적극적이다. 공원에 나들이 나온 가족들은 스스럼없이 같이 앉아 차를 마시자고 초대한다. 이란 어디를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식 없는 친절한 모습이다. 술은 전혀 가지고 입국할 수 없으며 여행하는 동안 술을 전혀 마실 수도 없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외국인 여자도 머리에 스카프(히잡)를 두르고 엉덩이를 덮는 긴팔옷을 착용해야 한다 등과 같은 정보는 맞는 것이어서 여행 중 전혀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캔맥주나 생맥주 같은 것이 있어 주문해보면 알콜이 없는 보리 음료 비슷한 것이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전성기 시절 페르시아 제국은 영토가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 카스피 해,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티오피아에 이르렀다. 제국의 위업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 했던 다리우스 1세는 새로운 도시 건설을 명령했고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도시가 바로 페르세폴리스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으로, 그리스인이 붙인 이름이다. 페르세폴리스의 면적은 나비 300m, 길이 450m에 달했으며 삼중 문으로 이어진 큰 층계를 올라간 지점에 웅장한 크세르크세스문이 서 있다. 왕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입구로, 모든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지나가야 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중요한 건축물은 아파다나라 불리는 알현의 객실이다. 아파다나의 돌계단 벽면에 새겨진 부조는 조공을 바치러 오는 여러 민족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가장 호화롭던 건축물은 백주의 방이다. 백주의 방은 문자 그대로 100여 개의 기둥을 가진 방으로 옥좌전으로도 불린다. 다리우스 1세 때 공사를 시작해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완성했으며 한 변이 68.5m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초석 위에는 1줄에 10개씩 모두 100개의 기둥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주춧돌과 쓰러진 기둥 잔해만 남아 있다. 화려했던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BC 336~323년)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페르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 군에게 심하게 약탈당했다. 알렉산더 군대가 이곳에서 그리스로 실어 간 보물이 당나귀와 노새 3만 마리분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330년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후 궁전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한창 흥이 났을 때 한 무희가 우리를 괴롭힌 페르시아 왕이 살던 이 궁전을 불태워 버리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를 허락했다. 다음날 술에서 깬 알렉산더 대왕은 불타버린 페르세폴리스를 보면서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고 한다.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태국 ‘아유타야 역사지구와 치앙마이’

아유타야는 우리나라 경주와 비견되는 역사도시여서 시내에는 과거 찬란했던 유적들이 많다. 왕족 전용 불교 사원이었던 왓 프라시산펫에 가보면 과거 찬란했던 문화가 솔솔 다가온다. 18세기 미얀마가 침입해 아유타야 왕국 문화재를 철저히 파괴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도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1991년 아유타야 역사지구가 과거 화려했던 영화를 보여준다고 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치앙마이는 700년이나 된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유네스코에서는 치앙마이를 세계 10대 관광지로 선정한 적이 있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76km 떨어진 아유타야는 1350년부터 1767년까지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약 417년 동안 33명의 왕이 통치했으며 전성기에는 3개의 왕궁, 375개의 사원, 29개의 요새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차오 프라야 강 하류에 위치해 예로부터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했다. 17세기부터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과 교역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끝에 동남아시아의 강대국이 됐으며 크메르 왕조를 이룬 앙코르를 정복하기도 했다. 태국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룰만큼 번성했지만 내분 등으로 혼란을 겪다가 미얀마(지금의 버마)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아유타야의 대표적인 유적은 왕궁 부지 안에 세워진 왓 프라시산펫과 한 때 가장 큰 불교 사원이었던 왓 프라 마하탓, 왕족의 여름 궁전인 방파인 별궁, 거대한 와불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왓 로카야수타, 버마군의 침략에도 전혀 파괴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왓 나프라멘 등을 들 수 있다. 러이끄라통 축제는 태국력 12월 보름에 끄라통이라고 하는 바나나 잎으로 만든 연꽃 모양의 배 위에 초를 밝혀 강물에 띄워 보내는 행사다. 태국에서 전국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많은 시민들이 강가에 와서 끄라통를 띄우며 소원을 빈다. 태국 사람들은 촛불이 꺼지지 않고 멀리 떠내려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수천 개의 크라통이 캄캄한 어둠을 밝히며 강물 위로 떠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치앙마이는 태국 제2의 도시로 독특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방콕에서 약 7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는데, 불과 200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도시이지만 13세기 독립왕국이던 란나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고대 사원과 유적들을 볼 수 있다. 태국력으로 새해 첫날인 4월13일부터 3일간 전국적으로 송크란 축제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송크란이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새해 첫날을 의미하며, 이 축제 기간 중에는 독특한 풍습인 물 뿌리기, 방생, 미인선발대회, 폭죽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 태국에서 송크란 축제가 가장 신명나게 벌어지는 곳은 북부의 치앙마이다. 송크란 축제 때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뿌려대는 물세례를 받기 십상이다. 축복의 의미로 물을 뿌리는 것인 만큼 상대방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그저 웃으며 지나가야 한다.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이스라엘 예루살렘

역사가 숨쉬는 땅,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에 의해 숱한 정복과 파괴를 당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다. 영토의 크기는 작지만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개 대륙의 교차점에 위치하며 그곳에서 꽃피운 문화는 세계 많은 나라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4천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진 고색창연한 곳으로 특히 주목할 장소이다. 유네스코도 인류가 영구히 보존해야 할 의미 깊은 도시라고 인정,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정권하에서 학살을 모면한 유대인과 아랍 국가 등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됐다. 1948년 독립 이후에는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지만 피부 빛이 검은 흑인들도 일부 섞여 있다. 이들은 예멘이나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유태인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은 과거 많은 속박과 고통을 당하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피부 빛을 띠고 있다.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않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은 방문 내내 혼란 속에 빠져있기 쉽다. 그 중 하나가 각 종교마다 휴일이 다르다는 점이다. 즉, 금요일은 이슬람 교인에게 성일(聖日)이고, 토요일은 유태인의 안식일, 일요일은 기독교인에게 주일(主日)이 된다. 사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입장에선 예수가 복음을 선포하다 로마 관원에게 붙잡혀 처형당한 성지(聖地)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승천한 장소인 아름다운 오마르 사원이 있는 성지이다. 유태인이면 누구나 신봉하는 유태교 입장에서 볼 때도 예루살렘은 역시 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곳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는 구도시(동 예루살렘)와 헤브론, 세겜, 가자 등은 성서(聖書)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유태인이나 외국관광객들에 대한 테러와 도난이 잦아 방문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필자도 아이성(城) 부근에서 아랍인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승용차 유리가 모두 박살나는 수모를 겪은 적이 있다. 통곡의 벽은 유태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요, 성지 중의 성지다. 조상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어 유태인들은 이곳에 서면 각별한 애착과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때문에 기쁠 때나 슬플 때, 신분의 높고 낮음, 연령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곳을 찾는다고. 벽에 머리를 대고 기도서를 읽으면서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며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는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곳인 사자성문(Lion`s Gate)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이다. 순례객들은 예수가 겪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옛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주의 무덤 교회(성묘교회)로 향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는 순례객들을 위해 십자가를 앞세우고 줄지어 가는 순례 행사가 프란치스코 교회 주관으로 열린다. 허용선의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 약 23㎞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이곳에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친 프랑스 절대 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루이 14세는 섭정에서 벗어나 23세부터 직접 정치를 했는데 살고 있는 궁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외에 있는 생제르맹의 별궁에서 지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무장관인 푸케의 집에 초대받아 간 루이 14세는 너무나 잘 지어진 그의 저택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한낱 신하에 불과한 푸케가 호화저택을 짓기 위해 분명히 불법으로 돈을 모았을 것으로 단정한 왕은 푸케를 체포해 그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푸케의 저택을 지은 건축가인 르 보, 실내 장식가인 르 블랑, 정원사인 르 노트로를 시켜서 아버지인 루이 13세의 별장이 있던 베르사유에 휼륭한 궁전을 짓도록 명령했다. 루이 14세는 미처 완공도 안된 베르사유 궁전을 1672년 왕궁으로 정했으며 프랑스의 정치, 문화, 사교의 중심지로 사용했다. 1662년 공사를 시작해 50여 년만에 완성된 베르사유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 중의 하나로 무려 2만명이 입장할 수 있다.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를 제공했던 곳이기도 하다. 왕이나 귀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전이었으나 굶주린 일반 국민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한참 공사가 진행될 때에는 하루 평균 3만 명의 국민이 무보수로 동원됐다. 나라의 이름난 건축가, 화가, 조각가, 원예가, 공예가들이 총동원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 고혈을 쥐어짠 베르사유 궁전은 국민들의 불만을 누적시켰다. 루이 14세는 지방의 봉건영주들의 반란을 두려워해 주기적으로 이들을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이 모이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결국 이러한 사치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반감을 샀고 1789년 왕정을 타도하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베르사유 궁전은 1774년 즉위한 루이 16세 재위시절에 비로소 완공됐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궁전에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분노로 가득한 국민들에 의해 콩코드 광장에서 왕비인 마리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베르사유 궁전이 있는 곳은 원래 늪이었다. 때문에 엄청난 양의 흙을 가져다 메우고 나무를 옮겨 와 심어야 했다. 분수를 만들기 위해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 거대한 펌프를 사용해 센 강의 물을 끌어와야 했다. 베르사유의 궁전 뒤쪽에는 정원이 아주 넓은데 걸어서 3시간 이상 걸린다. 화단과 잔디밭, 숲과 샘, 조각상 등이 잘 배치된 프랑스 정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이 자리한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그랑 트리아농과 프티 트리아농이라 불리는 작은 규모의 궁이 2개 있다.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퇴임 후 부인과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지은 궁전이고, 프티 트리아농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특히 아끼던 별궁으로 영국풍의 정원에 중국의 산수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이다. 정원 한쪽 구석에는 아담한 농가들이 모여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특유의 장관을 이룬 베르사유 궁전은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허용선의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의 세계문화기행] 세계인의 정신적 자산을 키운 섬 아일랜드

인류의 상상력과 지혜가 응집된 세계문학이라는 산맥에서 아일랜드는 거봉임에 틀림없다. 윌리엄 버틀러 에이츠, 조지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세무스 히니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모두 아일랜드 태생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6~7세기경부터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학문과 예술의 길드였고, 그런 유구한 전통을 딛고 수많은 거장들이 각자의 성지를 일구었다. 어찌보면 아일랜드는 하나의 거대한 작가 박물관 같다. 더블린 작가박물관, 제임스 조이스 박물관, 트리니티 대학 등 문학의 향기가 감도는 곳을 일일이 거명하기 벅찰 정도로 위대한 정신유산을 남긴 작가들의 흔적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수도 더블린 중심부에 자리한 트리니티 대학은 작가의 산실, 그 자체다. 세계 문학 전집에서 만났던 에이츠와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조나단 스위프트가 모두 이 학교의 동문이다.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들의 흔적을 찾아온다고 한다. 지난 1991년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더블린 작가박물관 역시 문학의 샘물로 목을 축이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코스다. 18세기에 지어졌다는 이 2층짜리 붉은 벽돌집은 겉보기엔 수수하기 짝이 없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에겐 유럽 문화의 수도이자 세계 문학의 심장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 조나단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초상화와 작품, 그리고 친필 원고와 그들의 손때가 묻은 타자기 같은 유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실 한복판에는 더블린의 자부심인 제임스 조이스의 두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세계 문학의 지도 중심에 더블린을 위치시킨 가장 유명한 더블리너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율리시즈,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걸작을 남긴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리너들에게 우상 그 자체이다. 조이스의 동상은 그렇다손 치고 그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조각상까지 더블린 곳곳에 즐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코넬 거리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 가면, 율리시즈의 무대를 따라 더블린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안내 지도를 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 산문을 대표한다면, 시의 영역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우뚝 서 있다. 그는 현대 영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아일랜드인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조지 버나드 쇼가 아닐까. 그는 일찌감치 문재를 뽐냈던 다른 작가들과 달리 36세란 늦은 나이에 극작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전 세계에 수천만 명의 이민자들을 떠나보낸 아일랜드인들의 바람 같은 기질 때문일까. 유독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은 외국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조지 버나드 쇼와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고,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베케트도 그랬다. 아일랜드 문학이 세계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것도 혹시 아일랜드인들의 그러한 정신 덕분은 아닐까.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퍼지고 가톨릭 1천여년의 전통이 알프스의 대자연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온 잘츠부르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로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서쪽 300km 지점에 자리해 있다. 주위에는 빙하 시대에 형성된 날카로운 잿빛 산들과, 아름다운 호수들이 점점이 자리한다.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 그대로 선사시대 이래 암염(돌소금)의 산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주변의 수려한 경치와 더불어 무역과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잘츠부르크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해 준 것은 바로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돼 널리 알려졌고, 이것이 걸작 영화로 개작, 상영됨으로써 온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잘츠부르크를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하면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그리고 시 교외에 있는 잘츠카머구트로 나눈다. 세 지역은 서로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의 조화로운 잘츠부르크를 구성하고 있다. 신시가지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미라벨 궁전. 1690년 완성된 이곳은 분수, 화단, 석상 등이 잘 배치된 바로크식 정원이 특히 유명하다. 디트리히 대주교가 1606년 공사를 시작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18년 화재로 손상된 것을 다시 복원시킨 것이다. 궁전은 실내악 콘서트 무대나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천사의 계단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가의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를 때 나오는 바로 그 계단이다.잘자흐강을 건너면 바로 구시가지다. 호엔잘츠부르크 성(城), 모차르트의 생가, 주교좌 성당, 분수대가 아름다운 레지덴츠 광장, 여름축제가 벌어지는 돔 광장 등이 있다. 구시가지 곳곳에선 1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여러 성들과 교회를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잘츠부르크 시의 상징적인 존재다. 로마 교황과 독일 황제의 서임권 싸움 때 대주교가 남부독일 제후의 공격에 대비해 건설한 것으로 묀히스베스크 언덕에 위치한 요새다. 헬부룬 궁전은 대주교가 연회를 위해 만들었던 물의 정원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잘츠부르크 최고의 결혼 피로연 장소로 인기가 높다.게트라이데 거리에 있는 모차르트 박물관은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악보와 피아노, 바이올린 등 유품들이 1층에서 4층까지 진열돼 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매년 7월 하순에서 8월까지 50여일에 걸쳐 각국의 유명 음악인들이 참가하는 잘츠부르크 여름음악제가 펼쳐진다.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현재 세계의 모든 음악제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내용이 알찬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음악제 외에도 미라벨 궁전에서 열리는 실내악이나 첼로 독주 콘서트, 꼭두각시 극장에서 공연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 피가로의 결혼, 호두까기 인형 등 잘츠부르크에서는 1년 내내 음악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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