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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핵무장 준비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

변평섭 전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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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28일 서울을 수복한 국군과 미군이 계속 북진을 하면서 38선을 돌파하자 김일성은 평양을 버리고 백두산으로 달아났다. 그러면서 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내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6·25 남침을 하기 전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은 만큼 이제 북한의 운명이 꺼져 가는 마당에 지원이 다급했던 것이다. 중국은 6·25전 참전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었으나 미군이 38선을 돌파한 만큼 대만으로 쫓겨난 장제스군과 함께 중국을 위협할 것으로 판단, 급히 참전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고는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부대를 편성, 압록강 인근에까지 대기시켰다. 자그만치 25만명. 그런데도 미국의 맥아더 사령관은 중국이 참전하더라도 5만~6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과소평가했다.

 

마침내 10월19일 국군과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자 마오쩌둥은 중국군에게 압록강을 건너 미군과 전투를 벌이도록 명령하는 한편 저우언라이 총리를 스탈린에게 보내 소련 공군의 참전을 요구하도록 했다. 1990년대 초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와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련 공군 조종사들에 의하면 스탈린은 그들의 조종사들에게 비행 중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전투기에도 소련 공군 표시를 지우고 북한 공군 표시를 해 소련 참전을 철저하게 숨기도록 했다. 소련이 참전해 미군과 전투를 벌인다면 제3차 대전으로의 화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탈린은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도록 묶어 놓아 스탈린의 동유럽 세력 확장에 미국이 손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6·25전쟁 발발 시 유엔 안보리에서 파병을 결의했을 때 소련이 반대를 않고 불참한 것도 그런 꿍꿍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이 휴전을 하려고 했지만 이를 반대하고 계속 싸우도록 했다. 1953년 휴전이 된 것은 스탈린이 죽고 나서였다. 중국과 소련, 이것이 한반도, 특히 북한과 운명처럼 매달려 있는 혹이다. 소련이 러시아로, 스탈린이 푸틴으로 바뀌었을 뿐 그 혹은 여전히 붙어 있다. 오히려 6·25때 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이제 중국은 물론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술이 러시아에 의해 비밀리에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의 핵 위협이 점증하고 있고 뒤에 숨어 이것을 즐기는 러시아와 중국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을 붙잡아 놓게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는 실리를 얻는 음흉한 전략이 6·25 때처럼 되살아나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금년 봄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어깨를 다독거리면 3대 세습의 체제 안정에 고무돼 한반도에서 불장난을 일으키는 등 미국을 압박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러시아와 중국이 즐기는 바다.

 

더욱이 대만 문제까지 긴장을 확대한다면 주일미군은 물론 주한미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이런 초긴장 상태가 발생해도 미국은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것인가가 문제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의 상황을 변경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독자적인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원자력의 원로 학자인 장원순 박사(전 원자력연구원장)는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도 지금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2개월 안에 만들 준비가 돼 있고 김정은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남한의 핵무장’이라며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말 장 박사의 주장처럼 핵무기 만들 준비라도 갖출 것을 생각할 엄중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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