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진 어린 시절, 보물 목록에 있던 탁구공이 깨어졌을 때, 깨진 탁구공을 마당에 묻어준 적이 있다. 탁구공은 물론 평범한 탁구공이었다. 그냥 물건에 불과한 것이다. 아이의 우스개 행동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제작한 빅도그라는 로봇에 대한 영상이 유튜브를 달군 일이 있었다. 2014년 즈음 제작사에서는, 새 버전의 빅도그가 나올 때마다, 홍보영상을 제작한다. 내용은, 걸어가는 빅도그를 상대로 사람들이 발로 밀어서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막대기로 밀어서 진행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빅도그는 이내 균형을 되찾고 유유히 걸어가는 영상이었다.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균형감을 되찾는 로봇의 놀라운 기능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었다. 홍보팀은 제작사의 첨단 기술에 깜짝 놀라는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사람들은, 넘어지려다가 간신히 일어나는 로봇을 보면서, 안쓰럽고 불쌍한 감정을 느꼈고, 그러한 잔인한 행위를, 홍보의 매개로 삼은 제작사에 대하여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상한 일이다. 빅도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내장된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컴퓨터를 부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빅도그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거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로봇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핸슨 로보틱스에서 제작된 소피아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피부도 인간과 비슷하며, 완벽하지는 않으나 몇 가지 얼굴표정까지도 지어보일 수 있다. 마치 사람인 양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약 20년 정도 후면 이러한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에서는, 이혼절차를 밟으며,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던 남자주인공이, 컴퓨터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만다는 휴대폰 상에서 목소리로만 존재하며 실체가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서는, 로봇 아들을 입양한 후의 가족관계를 그린다. 로봇 아들을 입양한 후, 진짜 아들이 돌아오자, 로봇 아들 데이비드를 버리게 되는데, 이때 데이비드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는다. 진짜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엄마, 제발 날 버리지 마요. 엄마가 허락한다면 진짜가 될게요아이의 대사는, 아이가 사람인지, 로봇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우리들의 심금을 울린다. 인터넷 상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 우리는 당신은 로봇인가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인간인지, 로봇인지 표기를 해야 한다. 이제 인간이 로봇과 함께 살아가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로봇과 공감해야 하는 세상. 인류의 사회적 소통을 넘어서, 이제 로못과도 사회관계를 공유해야 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이러한 우리의 시기를 울트라소셜이라 표현했다. 그는 울트라소셜이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스토리이자 묵시록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아이들이 로봇에 의하여 교육받고, 노인들이 A.I.에 의하여 도움을 받으며, 모든 업무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일을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웃고, 울며, 같이 공감하고, 때로는 싸우고, 끌어안고, 눈물흘리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일까.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반려동물로써 가족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로봇도 반려동물처럼 우리와 가족으로 마음을 나누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이재진변호사
오피니언
이재진
2019-03-25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