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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하며] 행복한 요리교실

어느 날, 동네 길가를 걷다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막에는 ‘중년 남성을 위한 요리교실 교육생 모집’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바로 주관하는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요리교실은 중년 남성만 해당이 되는지요? 저는 중년이 아니라 노년입니다.” 그랬더니 담당자는 반갑게도 “꼭 중년이 아니라도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요리교실을 지원한 까닭은 결혼해서 이제까지 평생 아내가 차려주는 밥만 먹었는데 이젠 내가 직장을 퇴임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요리를 배워 아내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 지원한 것이다. 다행히 접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축하한다며 요리용 앞치마를 선물했다. 요리교실 수강생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카톡방에는 기쁨과 설렘의 글, 그리고 각오를 다지는 글들이 올라왔다. ‘요리 강습으로 모처럼 가슴이 뜁니다’, ‘요리 문외한입니다. 민폐가 될까 걱정이 됩니다’, ‘요리 배울 기회가 돼 기쁩니다’, ‘삼식이 탈출 열심히 하겠습니다’. 드디어 요리교실 첫날이다. 장소는 안양시농수산물도매시장 안에 있는 먹거리통합지원센터 건물이다. 그곳에서는 관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모락산이 모두 보였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졌다. 중년의 남성도 보이고 노년의 남성도 있었다. 모두 흥분된 모습이었다. 이 사업을 주관한 여성단체협의회 관계자와 셰프 복장을 한 강사가 반갑게 맞아줬다. 강사는 대학 조리과 교수였다. 훌륭한 강사에게 요리를 배우게 돼 무척 기뻤다. 출석부에 서명하고 명찰을 받아 패용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소고기, 가지, 대파, 달래, 고추 등 각종 음식 재료가 올려져 있었다. 오늘 배울 요리는 소고기가지밥과 달래양념장이었다. 우선 칼 쓰는 법과 재료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다. 매주 한 가지 요리와 반찬을 배웠다. 두 달 동안 소고기가지밥을 비롯해 여덟 가지 한식·양식 요리를 만들었다. 예전에 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칠 때 ‘요리는 유아의 오감을 자극해 지능과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으므로 교육프로그램에 적극 활용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 자신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맛을 보니 오감이 적극적으로 자극됨을 느낄 수 있었다. 카톡방에는 매주 수강생들이 배운 것을 응용해 만든 다양한 상차림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이런 글들이 덧붙여졌다. ‘제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맛나는 밥입니다’, ‘아들이 와서 솜씨 한번 내 봤습니다. 집에서 체면 좀 세웠습니다’, ‘와이프가 너무 맛있다고 합니다. 마치 생일상을 받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우리 집에 요리사가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마지막 요리 수업은 ‘매콤한 감바스 알 아히요와 도토리가루 부추전’이었다. 나는 마지막 수업을 열심히 메모하며 집중해 들었다. 마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 프란츠처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리에 넣었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맙게도 주관한 단체에서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해 나눠줬다. 두 달 동안 요리를 가르쳐준 강사도 정성이 깃든 선물을 나눠줬다. 밤새 튀겨 만든 ‘오란다’였다. 받는 순간 가슴속에서 작은 감동이 일어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이젠 요리할 때 칼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요리 재료도 잘 다듬을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요리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아내에게 맛있는 밥상을 근사하게 차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행복한 요리교실’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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