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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멈출 줄 모르는 영국 극우 폭력 시위

7월29일, 영국의 사우스포트 지역의 댄스 교실에서 춤을 배우던 어린이 3명이 17세 소년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을 해친 괴한의 신원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졌고 이로 인해 사우스포트에서는 반이슬람, 반이민 시위가 시작됐다. 사실 범인은 무슬림도 아니고 영국 태생이라는 정확한 신원 정보가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시위는 잦아들기는커녕 여전히 꺼질 기미 없는 산불처럼 영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이 극우 성향 선동가들의 난동은 ‘시위’를 넘어 야만적인 ‘폭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난민과 망명자가 있는 숙소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가 하면 난민전문 인권변호사의 사무실까지도 공격하며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유학생인 필자의 시선으로 본 이 상황은 사실 놀랍다기보다는 그저 그동안 쌓여온 사회 문제가 드디어 크게 터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이라는 국가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굉장히 좋은 나라다. 영국이라는 나라에 연상되는 키워드는 아마 ‘신사의 나라’ 또는 ‘홍차의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영국에 거주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이미지와 괴리감이 들기 시작한다. 신사는 찾기 어렵고 사회에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며 그들이 즐기는 홍차는 제국주의 식민지를 수탈해 수입하기 시작한 찻잎으로 끓인 차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외면에는 항상 내면의 추함 또한 숨겨져 있는 법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국의 폭력 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규모 크고 야만적이다. 최근 정권이 바뀐 영국은 그전까지 14년 동안 보수당의 나라였다. 이 14년 동안 보수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은 방식은 바로 포퓰리즘 정치였다. 보수당 정권은 유럽연합의 모토인 ‘다양성 속의 조화’를 오히려 경제난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일자리 활성화를 ‘브렉시트’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막았다. 이런 정치는 자국민으로 하여금 난민과 불법 이민자들이 영국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했고 총리가 국제 인권법을 무시하는 법률을 만들어 당당하게 의회 통과를 요청하는 등 외국인과 난민, 그리고 특정 종교의 차별을 암시하는 제노포비아적 정치를 행해 왔다.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영국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게 됐고 새로운 정권인 노동당이 현재 이에 대한 뒷수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폭동의 수위를 보고 있자니 보수당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동안 제대로 먹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사회에는 오랜 기간 잘못된 정치로 국민의 갈등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혐오와 편견이 축적돼 있었고 이번 사우스포트 사건은 폭동의 표면적인 명분이 된 것이라고 분석된다. 무분별하게 거짓 정보를 나르는 소셜네트워크에 쉽게 속은 사람들의 문제 또한 크다. 그동안의 잘못된 정치로 보수당이 남겨 놓은 숙제가 많을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상했지만 노동당이 진 짐은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세계는 지금] 중동지역 전면전, 외교적 해결은 가능한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협상 중재안을 거부했다. 휴전협상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의견을 밝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기대를 저버린 결과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미국, 이집트, 카타르 등 중재국이 “환상을 팔고 있다”고 주장한 하마스는 휴전협상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제시된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 사태가 발발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하마스 공격 당시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약 1천200명, 현재까지 가자지구 작전 중 사망한 이스라엘군은 329명이다. 반면 지난 10개월여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사망한 가자지역 주민 수는 4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전 세계의 분쟁에서 발생한 간접 사망자가 직접 사망자의 3~15배에 달한다는 통계에 의거해 볼 때 가자지구 사망자도 최대 18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미국 보건학 연구 단체의 주장은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다. 이는 가자지구에서 매일 평균 130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음을 의미하며 가자지구 인구를 약 250만명으로 추산하면 13명 중 1명 정도가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숨진 셈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들 사망자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하마스 괴멸을 목표로 내세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학교, 병원, 예배 장소 등 전쟁에서 공격이 금지된 장소에 공습과 과격한 지상전을 펼쳐 왔다. 이러한 무차별적 공세 속에 여성, 어린이, 노약자 등 전쟁에서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이 대규모로 살해되면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엘 하니예의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한 이란의 보복 공격 발표로 중동지역은 전면전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영국과 프랑스 외교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하마스 사태 발발 이후 아홉 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모두 한목소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하마스 사태로 발생한 현상에 대한 위기감과 긴박함을 뒤로하고 하마스 사태의 본질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되짚어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누구의 잘못인가. 과연 서방 강대국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공정하고 진정한 해결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당히 엉뚱하고 과장된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10개월 동안 공격해 4만명 이상의 대만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외교적 해결을 외치며 어떤 중재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러시아-이란의 군사협력과 북-러 협력의 미래

유럽 및 중동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은 현재 국제 정세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중동 및 유라시아의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의 협력은 북-러 군사협력의 구도와 일정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을 통해 보다 확장적으로 가시화될 북-러의 군사협력을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22년까지 러시아는 이란에 지상, 항공우주, 해군 분야에 걸쳐 중요한 군사 지원을 해 왔다. 특히 탱크, 장갑차, 대전차미사일, 전투기, 헬리콥터, 지대공미사일 등 다양한 재래식 무기를 포괄했다. 그런데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은 양적, 질적으로 도약했다. 전자전, 우주, 사이버 등으로 협력 분야도 확대됐다. 2022년 8월 이란은 러시아와의 협업으로 ‘하이얌’ 정찰·관측용 위성을 발사했고 그해 12월에는 이란의 우주 프로그램 지원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2024년 2월에는 이란의 지형을 500㎞ 상공에서 스캔할 수 있는 연구용 위성을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발사했다. 또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에서의 전자전 경험을 토대로 GPS 교란 재밍 기술을 이란에 지원했다. 여기에 야크-130 훈련기와 같은 재래식 무기 지원도 이뤄졌다. 한편 이란은 러시아에 포탄, 탄약, 대전차로켓, 박격포 포탄, 활공폭탄 등 우크라이나 지상전에 필요한 무기들을 지원해 왔다. 특히 이란제 드론과 드론 기술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다. 2024년 5월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최소 4천대의 이란산 샤헤드 드론을 발사했다. 이란은 또 제재를 우회하거나 대응하는 방법을 러시아와 공유하는 등 비군사적 지원도 해 왔다. 2023년 12월에 미국의 제재에 공동 대응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은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반미 코드의 공유가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압력, 국제적인 비확산 규범 및 수출 통제 체제 준수, 이란의 무기 대금 능력,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양국 간의 역사적 불신 때문에 협력을 의식적으로 제한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해 있다. 물론 양국의 군사협력이 전면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Su-35와 같은 첨단 전투기, S-400과 같은 첨단 대공미사일 등 이란이 강력하게 원하는 무기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공급과 지불에서 갖는 신뢰의 문제, 첨단 무기 지원 따른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변화, 첨단 기술 이전이 가져올 파급 영향 등은 러시아의 주요 고민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군사협력을 촉진·조정하는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2월 이후 양국 국방 분야 고위급 교류가 대폭 증가했다. 새로 들어선 이란 대통령 및 내각이 안정화되면 향후 협정을 통해 무기의 공동생산과 수송·무역 관련 인프라 확충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라면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도 양국의 군사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 모두 미래의 군사적 상황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최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할 수 있는 항공우주, 미사일 방어, 장거리 공격, 대함미사일 및 드론 등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바탕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이라크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이란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이해가 있다. 러시아는 장거리 타격, 방공, 해군 능력 모두에서 완전한 시스템 또는 기술 이전, 작전 지식 공유 등을 해 줄 수 있는 국가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에 필요한 탄약, 드론, 미사일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의 소모된 무기와 군수품 재고를 보충하기 위해 이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대러시아 제재를 우회하는 무기 부품 공급 루트로 이란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한편 북-러 군사협력은 러시아-이란 협력과 복사판처럼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의 정상회담 이후 올해 6월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하며 협력을 공식 메커니즘화하고 있다. 군사정찰위성을 비롯한 우주개발 분야, 중장거리 미사일 다탄두화, 대공미사일, 해군·공군의 현대화, 무인공격·정찰기 등 북한과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이 높은 분야들은 이미 러시아-이란 군사협력과 오버랩되는 분야다. 최근 잦아진 북한의 GPS 교란 및 재밍 역시 포함될 수 있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을 조금 앞선 북-러 협력의 미래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디지털 경제, 한국 미래를 여는 열쇠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경기 하이라이트 비디오를 자동 생성하고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파리 올림픽 파트너십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기업 삼성전자는 자사 제품인 Z플립6의 올림픽 에디션을 출시하고 ‘빅토리 셀피’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상대에서 선수들이 셀카를 찍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 혁신은 올림픽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으며 기업들에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됐다. 디지털 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경제 활동을 의미하며 이는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에 혁신을 가져온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 역시 이번 하계올림픽에서 100억유로(약 15조118억원)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관광, 건설,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경제는 각국 경제에서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2년 미국과 일본 및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 10%, 41.5%를 기록했고 앞으로 더 성장할 전망이다. 또 중국은 ‘디지털 차이나’ 정책을 통해 디지털 인프라 강화 및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육성하고 있다. 미국도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일본은 ‘디지털 일본’ 전략을 통해 전자정부 구축과 스마트시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뉴딜’과 ‘디지털 플랫폼 정부’ 등을 통해 디지털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고 작년에는 ‘디지털 경제 파트너십 협정(DEPA)’에 가입해 글로벌 디지털 통상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에서 8위를 차지하고 있고 2027년까지 세계 3위의 디지털 경쟁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고 5G 및 향후 6G 기술을 도입해 디지털 경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들도 AI, 빅데이터, IoT 등을 활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와 IoT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가전제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경제는 한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고 혁신 기술을 도입하며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면 한국 경제는 장기적인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자유·평등의 파리올림픽과 중동 선수단

2024 파리 올림픽이 엿새째에 접어들고 있다. 제22회 파리 올림픽은 센강에 요트를 타고 등장한 선수단의 입장식과 함께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등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를 예술적인 감각으로 접목한 창의성이 돋보이는 개막식을 선보였다. 올림픽을 세 번 개최하는 파리가 내건 2024 파리 하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슬로건은 양성평등과 포용을 강조한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다. 보통 남자 마라톤보다 먼저 개최되는 여자 마라톤을 파리 올림픽에서는 맨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로 만나볼 수 있다. 올림픽의 전통을 거스르는 결정은 마스코트 선정에서도 나타난다. 기존의 올림픽 마스코트는 주로 개최국을 대표하는 동물, 인물 등이 채택됐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특별한 모자가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과거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를 상징했던 ‘프리기아’ 모자에서 영감을 얻은 ‘프리주’가 그 주인공이다. 프리기아 모자는 ‘마리안(Marianne)’, 수탉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상징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가치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21개 종목에 143명의 선수가 참가해 열전을 벌이고 있다. 7월30일 현재 대한민국은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5위를 달리고 있다. 선수들의 경기는 매번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일찌감치 금메달의 주인공으로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남자 사브르 개인전의 오상욱의 경기는 더욱 그러했다. 192㎝의 큰 키에 타고난 유연성과 날렵함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오 선수의 펜싱 기술도 화려했지만 동시에 눈이 가는 것은 오 선수와 16강에서 대결한 이란의 파크다만 알리와 결승전에서 의외의 상대 선수로 등장한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 선수였다. 축구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가 그리 발달하지 않은 중동국가의 특성상 소외 종목인 펜싱에서 이룩한 은메달의 기염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국내 상황에 처해 있는 튀니지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경기 후 중동지역의 유력 일간지 ‘알 주무후리야’는 페르자니 선수를 ‘튀니지의 영웅’으로 소개했다. 중동 국가 선수단 중 이집트의 무함마드 엘 사이드 선수는 펜싱 남자 개인 에페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튀르키예 남자 양궁 선수단은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1년 아랍 민주화운동이 시작돼 민주화의 희망이 넘쳤던 튀니지, 30년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의 열망으로 거리를 메웠던 이집트. 이들에게 민주화의 희망은 사라졌고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갈등이 이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내건 파리 올림픽에서의 메달 소식이 이들 국민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세계는 지금] 영국 총선과 스타머 내각의 향후 계획

최근 세계 각국의 정치권 흐름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영국 또한 총선을 치렀다. 지난 7월4일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해 보수당의 14년 집권이 막을 내리게 됐다. 오랫동안 저조했던 보수당의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조기 총선이라는 무리수를 던진 리시 수낵 전 총리의 계획이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수낵은 영국 역사상 첫 동양계 총리다. 그는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나와 금융계에서 일하고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한 소위 ‘엘리트’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으나 브렉시트 이후 계속됐던 경기 침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난민의 인권을 완벽히 무시하는 ‘르완다 정책’을 의회에 통과시키려는 등의 끊임없는 정치적 실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던 영국 국민들은 이번 투표로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 수낵 전 총리는 지난 5일 사임한다고 발표하며 곧 보수당 대표 자리도 사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투표로 나타난 국민의 의견을 인정하고 차기 총리인 키어 스타머의 당선과 노동당의 승리를 축하했다.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새로운 총리인 스타머는 수낵 전 총리의 ‘르완다 정책’을 폐기하고 유럽연합과 새로운 관계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년 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를 국민의 대부분이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심각한 경제난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스타머는 예전부터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큰 사회적 문제인 불법 이주민 유입 급증 또한 유럽연합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지난 보수당 집권 시기 당시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수낵과 보수당의 불법 이주민에 대한 과거 해결 방식이 종종 제노포비아적이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현재 안고 있는 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는 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과 이주민의 이동을 반대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동당은 다시금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당이 다시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머는 총리관저인 다우닝 10번지 앞에서 취임 연설을 통해 국가의 변화와 ‘재건’을 약속했다. 국경과 인종의 경계가 희미해져 가는 지금, 외국인과 이주민을 통제하고 자국민의 이익만을 따지는 포퓰리즘 정치를 펼쳤던 영국이 빠르게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의 어깨에 놓인 짐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나 많다. 영국 사회는 정권이 교체된 만큼 앞으로의 변화를 꿈꾸며 현재 매우 희망적인 분위기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노동당도 바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 시간 이어진 국민들의 불만과 경제적 불안감으로 인해 그 분위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럴수록 더더욱 스타머 내각이 분발해 국가가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포퓰리즘과 제노포비아적 정치의 말로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배울 점이 많다. 스타머와 그의 노동당이 앞으로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 궁금하다.

[세계는 지금] 트럼프 피격 이후, 불확실성의 세계

집회 무대에서 피격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모든 매체의 지면을 뒤덮었다. 흐르는 피, ‘싸워라’고 외치며 들어 올린 그의 주먹, 그리고 푸른 하늘 위에 펄럭이던 성조기는 마치 드라마틱하게 구성된 정치적 미장센, 이 시대 미국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처럼 보인다. 피, 주먹, 성조기가 조합된 메타포는 ‘지금-현재’의 대선 국면 향배를 규정하는 파급력뿐만 아니라 향후 트럼프 집권 시 펼쳐질 세계에 대한 암시로도 보인다. 일단 그 폭을 예상할 수 없지만 당장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와 지지율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81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하락세에 있던 그의 지지율은 며칠 사이 11%포인트나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다. 피격 직후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부통령 후보 지명까지 흔들림 없는 모습을 연출한 트럼프, 주먹을 치켜 들고 투쟁을 외쳤던 그의 행동과 오버랩되면서 인상적인 리더십으로 부동층을 흔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고령의 유약함과 재앙적인 대선 토론 이후 사퇴 압박을 받으며 곤경에 처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피격에 대한 책임론 공세까지 받으며 당장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재선 가능성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상하원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고 이런 분위기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그가 워싱턴의 모든 권력 수단을 장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더 우려스러운 부분은 피격이라는 폭력을 대하는 미국 대중, 그들에게 스며드는 분노와 불안이다. 군중을 향해 주먹을 치켜든 트럼프를 본 공화당원들 속에서 엄청난 분노와 자부심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피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일어선 트럼프에게 느끼는 자부심, 파시스트로 몰아가던 민주당에 대한 분노, 들끓는 책임론과 음모론, 이런 분위기가 압도하는 대선 국면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대중 속으로 피격이라는 ‘폭력’은 하나의 정치적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이번 피격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책임론이 공화당 선거운동의 주요 소재가 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감행된 미 국회의사당 ‘폭력’과 트럼프의 거칠고 분열적인 태도가 희석될 수 있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대외정책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극단적이거나 즉흥적으로 보였던 주장들은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 측면이 있다. 미국인들은 전쟁에 지쳐 있다. 전쟁에 대한 피로는 미국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과 맞닿아 있다.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 자신들의 경제적 삶과 무관한 유럽과 중동에 천문학적 전비를 쏟아붓는 정치적 결정에 반감이 팽배하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심화된 불평등, 탈(脫)산업화, 중국의 부상에도 여전히 미국의 정책은 대외적으로 인심 좋은 유일 패권국,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대중에게 트럼프의 자유무역협정, 나토, 중국에 대한 공세는 엘리트주의적 금기를 깨는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포퓰리즘의 후과와 위험은 크다. 이스라엘 극우의 발호와 중동 전쟁의 씨앗을 뿌린 것은 거슬러가면 트럼프와 맞닿아 있다. 대(對)중국 강경 노선과 무역 압박은 동맹국들과의 정교한 조율의 부재 속에서 무역 분쟁과 공급망 혼돈,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북한과의 미완의 협상은 북한 핵무기 고도화의 명분을 강화했다. 동맹국들에 대한 거래주의적 압박은 국제 및 지역 현안 대응에 있어 공동 대응의 응집력과 국제기구의 역할 축소로 나타났다. 물론 모든 글로벌 환경의 불안정성이 트럼프의 탓만은 아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 추세는 2008년 이후 이미 가시화돼 왔고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중장기적으로 조정 국면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질서 있는 변화보다는 돌출적 포퓰리즘으로 트럼프가 혼돈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우선 트럼프의 강자 민족주의와 고립주의 자체가 불확실성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나토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면 러시아는 더 대담해질 수 있고 중국의 대만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유럽 내 우파 민족주의의 득세, 정치적 균열이 가중되면서 오랜 유럽의 지정학적 이해에도 서서히 변화가 올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대화 시도는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높여주며 ‘비핵화’에 대한 논쟁적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시진핑-푸틴-김정은의 장기 집권 리더십은 더욱 강고해질 수 있다. 이들은 탈미국화, 탈식민화, 서방의 세계 지배 구도 타파에서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세 국가의 군사력에 대한 집착과 배타적인 국가주의가 트럼프의 강자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와 만나면 불확실성은 가중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다보스포럼이 주목한 ‘파괴적 신기술’

지난 6월25일부터 중국 다롄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은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논의하고 최신 기술 동향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필자는 특히 포럼에서 발표된 ‘2024년 신흥기술 톱10’ 보고서에 주목했다. 이 보고서는 투자자와 연구자들에게 파괴적(disruptive)이고 매력적이며 5년 이내에 상당한 규모를 성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10대 기술을 선정했다. 2024년 신흥기술들은 다양한 응용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기술 혁신의 방향성이다. 2024년 10대 신흥기술은 AI, 통신, 인프라,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신흥기술 발전은 신약•신소재 개발이나 에너지 효율성 제고 같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디지털 격차 해소나 기후변화 및 환경 문제 해결 같은 인류 전체의 복지와 환경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둘째, 기술 윤리와 규제의 필요성이다. ‘파괴적 신기술’의 발전은 많은 경제•사회적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실제로 과학적 발견을 위한 AI 기술은 이전에 불가능했던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윤리적 고려와 함께 환경적 영향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셋째, 기술 발전과 관련된 글로벌 협력의 중요성이다. 다보스포럼은 세계 각국의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문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으로 이번에도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등에 대한 국제협력이 논의됐다. 특히 2024년 10대 신흥기술에 포함된 개인정보보호 강화 기술 같은 어젠다는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다. 국제협력은 ‘파괴적 신기술’의 혜택이 좀 더 공정하게 분배되고 글로벌 이슈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단순한 기술 전시회가 아니라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논의의 장이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파괴적 신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잠재력있는 주제들이지만 도전 과제도 적지 않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비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흥기술 발전 및 다양한 분야에서의 응용을 주도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교육 및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확대, 교육 시스템 혁신과 평생 교육 체제 구축, 그리고 대학에서의 융합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산학 연계(Industry-Coupled) 문제 해결 역량 교육 등은 ‘파괴적 신기술’이 초래할 미래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차기 영국총리로 지목받는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

7월4일은 영국이 총선을 치르는 날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 당수이자 현 총리인 리시 수낵, 노동당 당수인 키어 스타머가 마지막 TV 토론을 벌였다. 두 당수의 토론에 대한 영국의 여론은 매우 비관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서로 물고 뜯는 데 정신이 없었고 공약이 빈약해 토론 내용이 매우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다. 한 청중이 내뱉은 “당신들이 정말로 우리가 가진 최선의 선택인가(Are you two really the best choice we’ve got?)”라는 질문이 모든 사람의 박수를 받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토론에서는 경제와 세금, 이민정책에 대한 주제가 주로 다뤄졌다. 수낵은 여전히 불법적으로 입국한 난민과 이주민들을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 르완다로 보내겠다는 ‘르완다 정책’이 국가에 큰 도움이 될 정책일 것이라 주장하며 스타머를 공격했다. 스타머는 수낵의 공격에 종종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의 믿음직스럽지 못한 토론에서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 이후 계속돼온 경기 침체에 국민은 여전히 변화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엄청난 반전이 있지 않은 이상 노동당의 승리는 이번 총선에서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차기 총리로 예상되는 스타머는 어떤 인물인가. 61세의 스타머는 기술자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노동계급 출신이다. 그는 리즈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민법을 공부했다. 이후 인권변호사로 일하다 왕립검찰청장을 지냈고 당시 영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로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스티븐 로렌스 살인사건’을 맡아 해결함으로써 2014년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2015년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으며 2020년 노동당의 리더가 됐다. 스타머의 공약은 크게 다섯 가지다. 에너지, 경제, 국민건강서비스(NHS), 범죄, 그리고 평등한 기회다. 노동당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에너지다. 그는 국가가 공공으로 운영하는 에너지 기업을 만들어 더욱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사용하게끔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더 이상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공약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평등한 기회와 범죄율의 반 토막을 선언했다. 짧은 유세 기간으로 두 후보 모두 공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과정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브렉시트 이후 오랫동안 지속돼온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영국 국민의 불만이 매우 커져 있는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누가 총리 자리에 오르든 쉽지 않은 미래와 맞닥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는 영국 총선이다.

[세계는 지금] 이란의 신임 대통령과 미래

이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이란의 차기 대통령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총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 심사를 거친 대통령 후보 대부분은 예상대로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다. 따라서 이란 신임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노선을 무리 없이 이어갈 인사가 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코드 중 하나는 종교다. 이란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시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란을 이해하려면 시아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이란을 중심으로 이라크, 바레인, 레바논, 시리아 등은 시아파 이슬람의 핵심 국가들이다.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사회에서 맏형의 위치로 대부분의 시아파 이슬람 국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세계는 후계자인 칼리파 문제로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었다. 시아파라는 명칭은 시아트 알리, 즉 ‘알리의 추종자’에서 유래됐다. 수니파에서는 정통 칼리파 중 4대 칼리파인 알리를 이슬람의 마지막 정통 칼리파로 여기고 시아파에서는 초대 이맘이자 유일한 정통 칼리파로 간주한다. 661년 알리가 라마단 예배 도중 자객에게 암살 당한 사건을 계기로 알리의 추종자들은 시아파로, 기존 칼리파의 권위를 따르는 이들은 수니파라 불림으로써 무슬림 세계는 결정적으로 분할된다. 1501년 건국한 사파비 왕조가 시아파를 국교로 정하면서 이란은 본격적인 시아파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 후 500년 넘게 시아파의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다. 고유가 시절 막대한 재정 흑자를 시아파 이슬람 전파에 활용하던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혁명정신 수출과 함께 시아파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21세기 들어 연대하고 있는 이 지역을 흔히 시아 벨트 혹은 시아 초승달 지역이라고 부르는데 국제사회는 이들의 연합이 국제 관계에 미칠 영향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에서도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반군 등 시아 벨트 세력의 배후세력으로 중동 정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행위자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란의 신임 대통령이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더욱 복잡해진 중동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푸틴의 방북, 북-러의 한반도 프레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공식 발표됐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와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은 크게 외교와 군사 두 분야의 협력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회담은 공개되는 외교적 메시지와 공개되지 않는 외교적·군사적 협력의 내용으로 짜여질 것이다. 그중 북-러 정상회담의 결과 중 외교적 협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예비 텍스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20일 러시아 외교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 직후 단독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한미일 군사 활동 증가,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전제 조건 없는 한반도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협상 프로세스 구축 지지, 북-러의 지속적인 고위급 접촉 등을 강조한 바 있다. 반면 북한의 노동신문은 이 회담을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 증진’, ‘복잡다단한 국제정치정세 속 호상 지지와 연대’, ‘국가의 자주권과 발전이익 고수’, ‘포괄적이고 전략적 관계 발전’,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정세에서 공동행동 강화’ 등의 표현을 사용해 보도했다. 러시아가 동북아 안보 정세와 한반도 평화협상의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면 북한 보도는 양자 관계의 강화, 보다 긴밀한 관계 발전, 정세에 대한 공동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양측의 강조점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입장, 외교적 협력 포인트를 읽을 수 있다. 한반도 문제를 ‘안보’의 문제로 보고 협상 프로세스를 강조한 부분이다. 첫째,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중재자, 해결사 역할을 부각하는 차원이다. 분쟁 지역에 대한 평화협상 중재자의 이미지 연출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연이은 주변국 침공으로 강하게 각인된 호전적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둘째, 한반도 문제를 안보 위협의 프레임으로 본다는 메시지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북한의 호전성이 아닌 한미의 대북한 적대정책과 군사적 위협에 있다고 보고 북핵을 안보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대미 견제, 한미일 안보협력 차단의 공통된 이해가 깔려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반도 긴장의 주요 원인으로 강화된 한미일 안보협력,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한반도 문제의 초점을 북핵에 두기보다는 한미일의 ‘비건설적이고 위험한 노선’에 둠으로써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지지, 러시아의 한미일 차단 의지를 드러냈다. 세 번째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안전보장 차원의 핵군비 통제 추진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는 점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전제 조건 없는 대화’와 ‘정기적인 협상프로세스’를 언급했다. 전제조건이 없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하는 한국이나 미국의 입장과는 다르다. 협상의 성격의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의 제안은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안전보장 차원의 포괄적 대화를 의미한다. 러시아는 최근까지 가장 활발하게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을 제안해 온 국가였다. 2017년 ‘한반도 긴장완화 3단계 로드맵’을 통해 적대적 행위 중단, 평화협정 체결, 군비통제(군축)를 각각의 단계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라브로프의 이번 발언은 결국 지금까지 성취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문제 삼기보다는 북미 및 남북의 상호 위협 감소, 안전보장 차원에서 군비 통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향후 러시아는 북-러 밀착 속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다자적 평화협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까지의 북한 관련 중국의 입장 표명을 보면 중국도 이러한 러시아의 접근 방식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런 외교적 메시지는 북-러의 무기 거래나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희석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 정당성과 핵무기 보유를 진영 내에서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상호 안전보장과 핵군비 통제로 프레임화하려는 북-러의 암묵적 공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한국외교,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에 대비해야

최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용어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중국도 2022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2023년 이후 시진핑 주석의 정상외교 역시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 6월9일에는 중국판 수능인 가오카오(高考) 사상정치 과목에서 글로벌 사우스 개념과 중국의 입장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글로벌 사우스는 통상적으로 지구의 남반구, 즉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남쪽 지역에 위치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을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사우스에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 및 중동 산유국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부강하고 부유한 국가들이 포함돼 있고 개별 국가마다 역사적으로 고유한 정치·경제적 위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정학적이고 역사적이며 경제학적인 개념인 글로벌 사우스를 단순한 지리적 개념 내지 하나의 단일한 블록(block)으로 인식하고 접근한다면 전략적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글로벌 사우스 개념은 1955년 반둥회의 이후 결성된 ‘비동맹 운동’과 ‘77그룹’에서 시작됐고 최근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하고 국제질서의 불안정성 및 국가 간 관계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열린 유엔 총회의 결의안 표결에서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기권 내지 반대 표결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모호함과 자의적인 구분 방식에 회의적이던 미국 등 서방국가들도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을 위시한 소위 ‘글로벌 노스’ 국가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냉전 시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인구와 자원 분야의 강점을 기반으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및 불공정 무역 등과 같은 글로벌 어젠다에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글로벌 국제질서 변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은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글로벌 사우스 내 인도와 중국 등 핵심국 간의 영향력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5개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가 2024년 5개국(에티오피아, 이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을 추가해 BRICS+로 변모했고 향후 회원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및 핵심 국가들과 외교적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와 정권 교체 가능성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영국 하원은 임기가 최대 5년이다. 지난 총선이 2019년 12월 치러졌으므로 올해 하반기에 총선이 행해질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보수당의 지지율로 인해 수낵 총리는 이번 총선을 예상보다 훨씬 빠른 7월4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선거를 치르는 것이 그나마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대로 노동당의 지지율은 2021년 이후로 계속 올라 현재 40%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이번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확률이 높아진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는 노동당의 현 당수인 키어 스타머다. 이번 총선으로 정권이 바뀐다면 영국은 8년간 6명의 총리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보수당의 지지율은 지난 3월 기준 20% 정도로 46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 한다. 이렇게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영국은 보수당 집권 아래 2016년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팬데믹까지 맞으면서 원래도 좋지 않았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불만과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정해졌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연합에서 벗어나 영국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납부하는 회비가 만만치 않고, 회원국 간의 자유 이동으로 이민자가 급증해 일자리 경쟁의 부담이 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는 오히려 물가가 급등하고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심각해졌다. 2022년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에너지 요금을 50%나 인상하는 등 경제 상황은 이후로도 계속 악화됐다. 물가와 세금은 크게 인상됐지만 임금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기에 2022년 겨울부터 2023년까지 몇 개월에 걸쳐 일어난 모든 분야의 대규모 파업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대규모 파업에는 대학 노조도 참여했기 때문에 많은 수업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부에 대한 전국적인 불만은 학생들과 보수당 지지자들까지도 파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파업과 시위는 지금도 영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극심한 경제난은 런던에서 가장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지난 1월11일 발표된 케임브리지 이코노메트릭스의 보고서에는 런던에서만 감소한 일자리 수가 29만개가 넘는다고 조사됐다.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만 런던에서는 혼자 살 집을 구하려면 작은 원룸이라도 공과금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월세만 150만원이 넘는다. 월급의 절반 또는 이상이 월세로 지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민이 런던에서 홀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저축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 기숙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개인 공간에 침대만 있고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가장 싼 방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런던의 대학 기숙사들은 보통 일주일에 25만원에서 35만원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최저 시급이 그나마 11.44파운드(약 2만원)로 인상됐지만 지금까지 나열된 영국의 현 경제 상황 서민의 생활비를 보면 이는 런던에서 여유를 가지고 살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2016년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결정된 이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2년 10월 총리가 된 수낵은 인플레이션 완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내용을 다룬 다섯 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 공약들은 현재까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뜬금없이 의무복무제를 부활시키겠다는 정책을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건 다거나 르완다 정책이라는 국제난민협약에 반하는 위법적인 법안을 제시하는 등 보수당으로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분위기이다. 수낵은 현재까지 영국의 물가 상승률을 조금 낮추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이 정권의 변화를 절실하게 원한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세계는 지금] 이란 대통령 사망, 차기 지도자는?

지난 19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불의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한 상황 속에 앞으로 전개될 이란의 정치 구도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라이시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강경 보수 이슬람 세력이 장악해온 이란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36년째 이란의 정치, 종교 수장으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제자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1960년 이란 마슈하드 인근에서 독실한 종교적 기반을 갖춘 가정에서 태어나 10대 때 하메네이에게 신학을 배웠다. 이슬람혁명 발발 후 1981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검찰총장에 이어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사법부 수장으로 일하는 등 법조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1988년 반체제 인사 수천명의 처형을 명령한 소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고 검사 시절 숙청 작업을 주도한 라이시 대통령을 서방과 이스라엘은 ‘테헤란의 도살자’라 불렀다. 2017년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한 라이시는 2021년 재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고 임기 중 중동의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중동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지휘, 감독해 왔다. 대통령직을 맡은 다음 해인 2022년 9월,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이란 내부의 격렬한 시위가 격화됐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높은 실업률로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는 이란 내부에서는 수십년 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이스라엘 본토 보복 공격을 감행하면서 중동의 긴장이 위기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급서(急逝)로 대통령 유고 시 50일 내에 선거를 치르게 돼 있는 헌법 규정에 따라 이란은 오는 6월28일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신정 일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란은 종교 지도자 ‘라흐바르(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최고지도자로 가는 발판으로 1989년 사망한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가 된 하메네이도 직전 8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사법부 수장과 대통령까지 지내며 사실상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인정받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차기 권력 후보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5)다. 종교 도시 콤의 이슬람 신학대학에서 강의 중인 신학자이지만 아버지 하메네이의 후광 속에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세습왕정을 무너뜨리고 수립된 이슬람 신정 체제에서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세습한다는 비판 여론이 큰 변수다. 새 대통령 선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고 라이시 못지않은 하메네이의 최측근인 모함마드 모크베르 수석부통령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리고 2013, 2021년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고 서방과 이란 핵합의(JCPOA)를 이끌었던 사에드 잘릴리 전 핵협상 수석대표도 후보로 거론된다. 테헤란시장을 지낸 바게르 칼리바프 현 국회의장의 출마도 예상된다. 또 하산 로하니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임 두 대통령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총 12명 위원으로 구성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중 6명(종교법 전문가)을 하메네이가 임명한다. 나머지 6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하지만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 결국 차기 대권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의중에 달려 있다. 이란 차기 대통령 선출이 현 중동지역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중-러 관계와 북한, 반미 국방 생태계

지난 16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양국은 전략적 협조 동반자 관계의 심화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미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 영역에서의 위협 행동과 북한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 있는 무장 충돌 도발로 한반도 형세의 긴장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이 기간 김정은은 일주일간 중요 군수공장을 돌며 단거리 미사일에서 장거리 미사일까지 대량생산체계를 과시했다. 중-러 정상회담 기간 무기 공개 및 미사일 발사 행보를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중-러, 북-러, 북-중 사이의 관계는 논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러의 협력이 완전한 전략적 일치나 동맹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서로의 중요성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커졌다는 점이다. 미국이 대중국 포위·압박,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한 이후 파트너십은 더욱 공고해졌다. 러시아는 중국군의 군사 하드웨어 및 국방기술의 중요한 공급원이 됐으며 중국 역시 러시아의 전쟁 경제에 중요한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중-러 무역은 전쟁 전보다 60% 이상 증가한 2천401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중국은 러시아 수출의 30%, 수입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위완화는 양국 무역의 주요 통화가 됐으며 미국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시스템을 중국의 은행들이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 기술, 교육 등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러 관계가 이처럼 밀착한 시기를 찾기 어렵다. 중-러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변경해 중국 또는 러시아의 이익이 관철·지속될 수 있는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전략 차원의 최상위 목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물론 이들 사이엔 긴장의 여지도 있다. 미국의 전력과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미국의 외교적 곤경을 만드는 데 있어 중-러는 장기간 전략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 중-러의 전략적 협력에서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미 국방 생태계다. 러시아는 반미 코드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해 왔다. 미얀마는 2023년 5월 러시아 전투기를 인수했고 말리, 토고, 우간다도 최근 러시아의 공격헬리콥터를 조달했다. 202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육군-2023 군사포럼’에서 러시아 관리들은 아프리카를 상대로 군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홍보, 아프리카 대륙에 영향력 강화하는 수단으로 무기를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북한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다. 2023년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 열병식에 참석해 북한 신형 무기들을 둘러본 데 이어 9월에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무기전시회를 참관하는 등 북한 및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적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2023년 여름부터 러시아는 이란의 전투용 드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란은 전투기와 방공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러시아 무기 구매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는 포탄, 다연장로켓(방사포)과 단거리 미사일 등을 공급받은 바 있다. 러시아가 북한산 포탄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미얀마에서 탱크와 미사일 자재를 충분히 사들이고, 이란의 도움으로 드론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오랜 소모전을 훨씬 더 쉽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반미 코드 국가들 사이 상호 군사적·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상호 교육으로 특징 지어지는 광범위한 국방 생태계 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잠수함 개발 프로그램,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 및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은 크건 작건 전력에 기여할 것이다. 중국 역시 이런 국방 생태계를 방조하거나 사실상 묵인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러시아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행보까지 나아간다면 이들 국방 생태계는 정치적 결속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중·러 정상회담 기간 김정은의 군수공장 현지지도 행보는 핵무기 개발·생산 명분과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하게 메시지로 발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미 국방 생태계의 중요한 행위자로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시진핑 유럽 순방의 전략적 의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부터 프랑스와 세르비아 및 헝가리를 순방하고 있는 가운데 5년 만에 유럽연합(EU)을 방문한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강대국 간 경제안보 갈등으로 대표되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 시 주석이 EU를 방문했던 2019년과 비교할 때 현재의 국제질서는 대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격화됐으며 2022년 러-우 전쟁 발발로 유럽은 냉전 이후 최대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과 EU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de-risking)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중국의 ‘생산 과잉’ 및 불공정 무역에 대한 비난과 함께 보복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작년 9월 EU가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조사를 포함해 중국 기업 대상의 통상 관련 조사를 진행함으로써 이번 시 주석 유럽 순방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3자 회담에서 EU가 향후 좀 더 긍정적인 중국 정책을 채택할 것과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는 등 EU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 확대 시도 역시 이번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의 중요한 목적이다. 헝가리는 중동부 유럽에서 중국의 최대 투자국이자 중국 ‘일대일로 국제협력’의 핵심국이며 양국은 신에너지 및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헝가리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유럽연합의 홍콩 문제에 대한 성명을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연합의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연시킨 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 시 주석이 헝가리 방문을 통해 ‘일대일로 국제협력’과 관련된 추가적인 프로젝트에 합의함과 동시에 향후 EU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는 대중국 제재를 막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시 주석의 세르비아 방문 역시 발칸반도 핵심 국가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은 1999년 미영 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의 베오그라드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 발생 25주년이 되는 7일 세르비아를 방문함으로써 중국이 강조해온 유엔헌장과 국제법 원칙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이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및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미중 전략경쟁 추세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고 EU와는 개별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개발도상국이나 ‘글로벌 사우스’에는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문화적 특성과 기후의 영향

하나의 문화와 민족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는 많은 것들 중에서 날씨를 무시할 수 없다. 문화라는 것은 언어, 예술, 의복 등 인간이 만들어온 다양한 산물이다. 이러한 문화는 각 나라의 지형과 날씨로 인해 많이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은 문화뿐만이 아니다. 날씨의 영향으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일 또한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날씨와 문화의 관련성에 관해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가 진행돼 왔고 여러 연구에서 온도가 아주 높은 환경에서 범죄율과 범죄의 수위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도 한다. 기후와 인간의 관계성은 이렇게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는 어떨까. 영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 지형적으로 위도가 높지만 난류의 영향으로 추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난류의 따뜻한 공기와 북유럽의 찬 공기가 만났을 때 생기는 기온차로 안개가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에서는 해를 보기가 힘들고 특히 가을과 겨울이 되면 하늘은 회색빛에 항상 비가 온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모두 우산을 쓰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부슬비이거나 안개비이며 바람이 함께 불기 때문에 우산을 쓰는 것보다는 비를 막아주는 바람막이를 입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가장 날씨가 좋은 여름이라도 갑자기 추워지거나 비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는 꼭 따뜻한 옷과 우산을 가지고 다닐 것을 추천한다. ‘날씨’라는 주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영국인들에게 중요하며 문화적으로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런 기후적 환경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다 보면 몇 가지 재밌는 문화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항상 날씨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그날의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2004년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의 책 ‘영국인 발견’은 영국인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다. 그녀는 책의 첫 번째 챕터에서 영국인의 대화 패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녀에 따르면 영국인에게 날씨는 너무나도 관례적인 대화 주제이며 하루도 불평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날씨를 좋아할까? 기후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마이크 흄 케임브리지 교수는 이러한 영국인의 날씨에 관한 대화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낯섦을 극복하고자 하는 관습적 형식의 상호작용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영국인과 스몰토크를 하고 싶다면 오늘의 날씨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영국 음식은 옛날부터 맛없기로 유명하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기후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열악한 기후조건으로 다양한 농산물과 향신료를 키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좋은 음식 문화를 만들기가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 사람들이 보통 즐겨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제국 시절 식민지 국가에서 들여온 음식 문화들이다. 대영제국이 식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강행했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 정도로 영국에서는 내놓을 만한 전통음식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최근 출판된 알렉스 존슨의 ‘100 Words for Rain’이라는 책이 있다. ‘비에 대한 100가지 단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제목의 이 책은 비와 날씨에 관련된 영국의 문화적 연구를 담는다. 영어에는 비를 표현하는 단어가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 예를 하나 들면 영국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중에 ‘spitt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침을 뱉는’다는 뜻이다. 빗줄기가 굵진 않지만 얼굴에 부슬부슬 내리는 부슬비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비에 대한 영어 표현뿐만 아니라 날씨가 투표 결과에 미치는 영향 같은 문화적 기후심리학 등의 내용도 설명한다. 영국의 문화적 민족성은 이렇듯 날씨가 큰 영향을 끼친다. 영국인이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서의 회복력과 문화적 특성은 예상하기 힘든 날씨에 대해 매일 불평을 하면서 견뎌냈기에 발전한 능력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국인의 날씨에 대한 재밌는 흥미와 민족의 성격은 필자 같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항상 흥미로운 부분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위에 언급된 책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세계는 지금] 이스라엘-이란,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되나

지난 19일 새벽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은 제5차 중동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을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을 넘어선 시점에서 이집트, 카타르 등의 중재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던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상호 공격으로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달 초 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 공격으로 이란의 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3일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사상 첫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부터 엿새가 지난 19일 새벽 이스라엘은 이란 중부 이스파한을 전격 공격함으로써 재보복에 나서 양국이 상대방 본토를 서로 공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스파한은 이란 이스파한주의 주도로 수도 테헤란 남쪽 440㎞에 위치한 이란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도시로 이란의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 우라늄 전환시설(UCF)과 핵기술센터(INTC), 그리고 공군기지가 등이 있는 전략적 도시다.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신형 초음속 미사일 ‘램페이지(Rampage)’는 이스라엘이 자체 개발한 공대지 미사일로 GPS 체계에 의해 유도돼 먼 거리에서 발사돼도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으며 초음속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탐지해 대응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당국자들도 이스라엘의 공격 당시 이스파한에 드론이나, 미사일, 전투기 등 그 어떤 것도 이란 영공에 침입한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통해 이란 내부를 성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이란에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맞대응성(tit-for-tat) 보복 주고받기는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양측의 공격은 ‘제한된 군사옵션’으로 최대한 자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공격이 상대 영토를 처음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에 크게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사태 이후 인질 구출과 하마스 소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아직도 달성하지 못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을 공격하기 하루 전인 3월3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1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모여 네타냐후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란은 최근 수년간 발생한 반정부 시위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내부 상황이 점점 악화돼 가고 있어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중동은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고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세 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은 만큼 중동지역의 긴장 상황은 세계 경제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 유가 변화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란의 보복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으로 중동의 안보 지형은 더욱 불안해졌다. 중동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北 극초음속 미사일, 전략적 대응 시급

북한이 지난 2일 활공체형 극초음속 미사일(HGV) ‘화성-16나’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총 3종 극초음속 미사일의 다섯 차례 발사를 공개했다. 또 최근 주일 미군기지부터 괌 기지를 비롯한 역내 전시증원을 억제하는 지역 투발 미사일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에 한반도를 사정거리에 두는 전술핵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실전화에 집중했다면 지난해 이후 주일미군, 괌 미군기지 투발 미사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극초음속 미사일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이번 공개한 고체연료형 극초음속 미사일은 요격을 회피하며 기동성을 갖춘 1천~4천㎞급 미사일 모델이 보강됐음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모든 전술, 작전, 전략급 미사일들의 고체연료화, 탄두조종화, 핵무기화를 완전무결하게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모든 사거리 미사일에서 엔진연료계통은 고체연료화가 실현됐다. 이런 발언들은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이 필요하다. 미국 대선과 차기 미국 행정부의 출범을 의식해 최대한 핵무기 고도화의 성과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핵무기 고도화는 불가역적이며 비핵화는 불가하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대미 메시지 차원의 언술과 행보다. 이번 극초음속 미사일 실험발사에서 몇 가지 군사기술적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선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의 효과로 한미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회피 능력을 일정 수준 보여준 측면이다. 이미 실전화됐다고 밝히고 있는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변칙기동, 낮은 고도에서 저공 비행하는 전략순항미사일, 은밀성을 살린 수중전략무기체계 ‘해일’ 등과 더불어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실험을 하게 됨에 따라 한미 방어체계를 회피하기 위한 무기들의 실전화가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미의 전략적·전술적 대응이 시급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 향상과도 연관성이 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중요한 고온을 견디는 재질과 소재 기술이 극초음속 활강체에도 비슷한 도전 기술이 될 수 있는 점이다. 취약했던 소재 기술에서 모종의 기술적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추진하는 미사일 개발의 최종 상태는 고체연료화, 다양한 사거리의 다종화, 수중 및 공중을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 확보 등으로 보인다. 이 경우 러시아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처럼 향후 개선된 항공기 플랫폼과 항공기 발사 극초음속 미사일에도 관심 보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북-러의 공군력 관련 기술협력 가능성도 이런 차원에서 예의주시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대만 지진과 지정학적 리스크

지난 4월3일 대만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하자 국제사회의 관심은 유명 반도체 기업인 TSMC에 집중됐다. 이번 강진(强震)으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의 일부 공장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가 복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TSMC 측은 피해가 크지 않고 조만간 조업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전쟁이나 정치불안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이 글로벌 경제와 기업 비즈니스에 미치는 위험을 말한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의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 최근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의 불안정, 그리고 올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글로벌 통상 질서에 대한 영향 등이 지정학적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4년 보고서는 ‘국가 간 무력 충돌’을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적 안정성을 뒤흔들 단기 리스크로 지목했고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2024년 설문조사도 기업 비즈니스에 대한 가장 큰 도전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꼽았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도 매우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2022년 8월 ‘반도체 과학법’을 제정해 인텔과 삼성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대만 지진 발생 이후 4월8일에는 TSMC가 애리조나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데 총 116억달러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일본도 이미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해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선언한 상황에서 TSMC와 일본 구마모토현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대만 지진 이후 4월6일에는 기시다 총리가 직접 TSMC 1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TSMC의 일본 내 2공장 설립 및 대규모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3년 9월 ‘유럽반도체법’을 제정해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의 20%를 역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 보조금 지급 및 투자지원 방안을 마련했고 이번 지진을 계기로 대만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위 ‘리스크(risk)’는 확률적 개념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잘 완화할 경우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대만 지진을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 및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 추세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주요 국가들의 보조금 지원 및 반도체 기업 유치 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현지국 내부와 지역적 차원 및 초국가적(transnational)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통해 현지 네트워크 구축과 시장 다각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외교(Corporate Diplomacy)’를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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