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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칼럼] 독립전쟁 뒷바라지하며 가족 지켜낸 항일 가문 여성들

광복절을 전후해서 새삼 세상이 변했음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항일 가문은 3대가 고생하고 친일 가문은 5대가 잘 산다는 대한민국의 슬픈 저간의 역사를 광복절에 대통령이 언급했다. 광복 72년이 지난 오늘에야 대통령이 그간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민족이 광복되었지만 진정으로 광복된 사람들은 친일파였다. 친일파들은 주인이었던 일제가 물러가자 온전히 대한민국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독립전쟁에 생명과 재산을 바치고 가족까지 희생한 분들과 그 후손들은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세월이었다.학교에서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독립전쟁을 폄하하고 호도해 왔다. 그러니 현충원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묘역에서 영면하고 계신 분들 이름을 보고도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수많은 항일 투사 중에서도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78~1932),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1878~1937)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분들은 불멸의 순국선열들이다. 모두 만주에서 독립전쟁의 초석을 마련하고 실제 독립전쟁을 지도한 대부들이다. 광복 후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국부로 추앙받았을 분들이다.이분들의 뒤에는 생계를 마련하고 가족을 지켜낸 여성들이 있었다. 이 여성들의 참담한 희생과 인내가 없었다면 불멸의 공적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성들의 사연을 잘 모른다. 다행히 세 분 가문의 여성들이 회고록을 남겨서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許銀 1907~1997) 여사는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를,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李恩淑 1889~1981) 여사는 서간도 시종기를, 김동삼 선생의 자부 이해동(李海東 1904~2003) 여사는 만주생활 77년, 난중록을 남겼다. 허은 여사는 16세에 시집간 첫날부터 살림을 책임지고 시조부인 이상룡 선생을 따라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니면서 가족을 건사했다. 이은숙 여사는 조선 최고 명문가 며느리였고 고종황제 질녀 조계진 여사의 시어머니였지만 창기들 삯바느질로 남편 생활비와 활동비를 보태는 지경이었다. 이해동 여사는 평생 시아버지를 세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큰 며느리로서 가족을 지켜냈고 1989년에야 환국했다. 모두들 여러 이유로 자식을 앞세우는 슬픔을 맛보았다. 세 분 여성의 친정도 명문가였다. 허은 여사는 13도연합의병창의군 군사장으로 1907년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한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 사촌의 손녀였다. 이은숙 여사 역시 친가와 외가가 모두 독립투쟁에 나섰다. 이해동 여사는 조선조 말 영남의 거유로 나라가 망하자 순절한 이만도 선생 집안이었고 아버지 역시 항일투사 이원일이다. 이분들의 책은 맨 정신으로 읽어내기가 어렵다. 이분들이 이겨낸 고난과 불행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독립투쟁하는 남성들의 헌신과 열정에 대한 존경심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찌 한이 없었겠는가마는 자신들의 삶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어른들을 잘 모시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항일투쟁에 나서고 감옥에 갇힌 시아버지와 남편과 자식들을 음지에서 뒷바라지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숙명이 조국 광복의 밑거름이었고 인간 승리의 바탕이었다. 항일투사를 내조한 여성들 삶도 항일투쟁이다. 항일투쟁이 남편만의 투쟁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 여성들의 항일투쟁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적극 재조명해서 헌창할 때다. 특히, 위 세 분의 자서전이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각급 학교와 마을 도서관에 이 책들이 비치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해본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동북아 역사전쟁과 검인정 국사교과서 집필기준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 세 나라는 지금 역사전쟁 중이다. 중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고 우리의 역사 강역을 자기들의 역사 강역에 포함시키는 역사침탈에 나서고 있다. 반면에 우리 강단사학계는 두 나라의 역사 침탈을 오히려 지원하고, 국가는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국민이 볼 때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사실이다.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역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면서 우리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15년 전에 시작하여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최근 중국 만리장성의 서쪽 끝 부근인 가욕관에 가보니 만리장성을 한반도 서북부까지 끌어다 놓았다. 중국의 이런 논리를 우리나라 고대사학계와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러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해도 동북아역사재단과 고대사학계는 한 마디 항의도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런 중국의 역사침탈 근거는 중국의 사료가 아니라 대일항쟁기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우리 역사다. 이 날조된 역사를 광복 7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우리 고대사학자와 동북아역사재단이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으니 중국이 “보아라, 한국 너희들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민족사학계 일부에서 강단사학자들을 ‘매국위증 갱단 사학자’라고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독도를 한국이 강점하고 있으며, 서기 4세기까지도 신라와 백제는 없었고,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 야마토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교과서를 통해 후세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주입하고 있다. 그런데 한일관계를 전공하는 한국 학자들 중에서도 “독도가 우리 영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게 현실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홈페이지에 “임나일본부설은 의심할 여지없는 정설로 자리매김 되었다”라는 식으로 써 놓았다가 윤관석 의원으로부터 질타당한 적도 있다(2014년 12월13일 국회 교문위 국감) 우리 국민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식민사학의 뿌리는 깊고도 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1948년 8월15일을 정부수립일이 아닌 건국절로 바꾸려 시도하고, 대일항쟁기 무장투쟁을 거의 무시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국정 국사교과서는 당연히 폐기되었다. 다시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만들어 2020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지난 7월29일 정부가 발표했다.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검인정 국사교과서 집필자들은 반드시 ‘검인정 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과거 검인정 국사교과서들이 우리 고대사의 내용을 기술하는데 매국위증사학의 관점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집필기준 때문이었다. 집필기준을 만든 사람들의 다수가 매국위증사학자였던 탓이다. 교육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새로운 집필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집필기준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세우는 집필기준이 되어야 한다. 광복 이후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못한 거짓 역사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고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고, 부끄러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 매국위증사학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정부는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미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말이다. 새로운 ‘검인정 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현행 헌법정신에 따라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자 사문난적들이 두려워했다. 준엄한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 한 것이다. 새 집필기준이 우리 역사의 춘추를 만드는 기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장관의 조직장악력은 공무원과의 신뢰구축

새 정권이 들어서고 장관 임명이 끝나간다. 장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사람이 장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임장관에게 이렇게 장관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드물다. 장관에 임명된 다음 이렇게 장관직을 수행하라고 연수시키지도 않는다.각자 알아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먼저 장관한 사람들이 재임 중 고민했던 것, 부족하고 아쉬웠던 것,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으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 지나고 나서 보니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절실하게 아쉬움이 남는 것들은 후임 장관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장관 취임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부처의 조직을 장악하느냐 하는 문제다. 조직 장악력이 소위 지도력(leadership)인데 경영학에 이와 관련된 여러 이론과 실례가 많지만 정부 조직에 원용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경영학은 본질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지만 정부는 공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수가 장관이 되면 공무원은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장관의 조직 장악력을 우려한다. 조직 장악력이란 정말 애매하다. 그러나 조직 장악력의 구체적인 모습은 공무원들과 서로 얼마만큼 신뢰하면서 일해 나가느냐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처 공무원들이 서로 굳게 신뢰하면 그만큼 조직이 장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뢰의 정도가 조직장악의 정도이다. 구성원이 신뢰하는 조직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신뢰를 구축하는 기본은 결국 소통이다. 말로만 하는 소통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소통이 필요하다. 신뢰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언로(言路)가 열려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심중에 있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장관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관은 항상 말을 아끼고 경청해야 한다. 쓴소리를 하는 경우에도 옳으면 칭찬하고 실천해야 한다. 직위가 높아지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정보가 많아 말이 많아지게 된다. 장관이 말이 많으면 부하 공무원들이 얘기할 기회가 없게 된다. 장관은 보람만 느끼고 공은 부하 직원들에게 돌려야만 신뢰가 형성된다. 보람과 공을 모두 차지하려 하면 누구도 믿고 따라주지 않는다. 공명심에 사로잡히면 장관이 이기적으로 보여 공무원들이 냉소한다. 사실 보람만 느끼고 공에 초연해지기는 인간으로서 쉽지 않다.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면 좋은 일이라도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한다. 공무원과 신뢰를 구축하는데는 장관의 심성과 사고도 대단히 중요하다. 장관이 사익을 추구하면 아무리 소통을 잘해도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 사무사(思無邪)의 자세가 몸에 배도록 수양하는 기간이 장관 재임기간일 것이다. 장관이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해야만 공무원들이 신뢰하고 따른다. 과거지향적인 장관은 공무원들이 따르지 않는다. 과거지향적인 사람한테서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만이 열정을 가지고 국가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인 혁신을 해 나갈 수 있다. 혁신은 오늘보다 내일 일을 더 잘하는 것이다. 혁신에서 공무원은 보람을 느낀다. 공무원들에게 인사는 최우선 관심사다. 신상필벌이 뚜렷하게 인사를 해야만 공무원들이 장관을 신뢰한다. 비록 장관이 되기 전에는 공무원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보였을 수 있지만 장관이 된 다음에는 공무원들을 전우로 대해야 한다.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감안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공무원 본인이 보람을 느끼며 국가에 공헌하도록 해주는 것은 장관의 책무다. 이를 위해서는 장관이 사람을 알아보는 소위 지인(知人)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지인하는 능력은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옛 성현들의 말씀인 고전(古典)에서 길러진다. 지인하는 능력만큼 신뢰가 깊어진다. 이런 신뢰를 토대로 국정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 개혁이고,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새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

새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깊어만 가는 양극화, 만연된 갑질, 현대판 노예제인 비정규직이 반이 넘는 일터, 쌓여가는 정부와 민간의 빚, 왕따 당하고 호구가 된 대한민국 외교, 협박을 일상화하는 북한, 어린이가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 부모세대 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커지는 청년들, 늘어만 가는 노인들, 결혼하지 않은 사십 넘은 아들딸을 포기한 부모 등 이 모든 현실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새 대통령의 임무다. 여기에 더하여 아무 학교도 채택하지 않는 국정 국사교과서를 만들고, 헌법을 무시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독도를 차마 일본 영토라고는 쓰지 못하고 우리 영토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쓰고, 고대에는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영토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주장하고, 민족이라는 용어를 지극히 혐오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똬리 틀고 있는 현실을 혁파해야 하는 것도 새 대통령의 임무다. 이 어려움들이 현실로 나타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정의가 실종된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다. 소박하게 보면 정의로운 사회는 ‘따뜻하고 반듯하며 모두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다. 정의가 실종된 원인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가깝게는 광복 후 친일 매국노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다. 새 대통령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임기동안 모두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은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앞으로 좋아지겠다는 희망이 있으면 뜻이 모아져서 결국 치유된다. 희망은 정의가 살아 숨쉬는 곳에서 볼 수 있다. 정의의 실종이 친일반민족 청산 실패에 기인하기 때문에 새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친일반민족 세력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 국민들은 확실히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친일반민족 세력의 발호를 차단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다음 네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사천억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으로 그동안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온 ‘동북아역사재단’을 즉시 해체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노무현 정권에서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만든 기관인데 동북공정 서울지부 역할을 해왔다. 둘째, 일제식민 지배를 찬양 정당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법은 유럽의 나치 찬양금지법과 같은 법이다. 그래야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일제가 우리를 근대화시켰다고 외치는 무리들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다. 셋째,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이 독립항쟁에 바친 재산과 일제에게 강탈당한 재산을 보상해주는 법을 늦었지만 즉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법을 만들면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서 나서는 자랑스런 전통이 확립될 것이다. 넷째,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매국식민사학을 확충하고 전파하는 연구에 국민의 세금인 연구비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이 네가지 조치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조치들은 늦었지만 일제 잔재틀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국민이 희망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당한 노무현 정권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2003년 당시 고건 총리 주재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동북공정의 주요 내용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내에서 일어났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중국정부가 중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중국영토에 있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민족의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가 된다.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 고대사가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식민사학자들이 일제 총독부가 날조한 역사를 이어받아 위만조선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에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이 주장을 그대로 두면 한반도 북부도 고대에는 중국의 역사가 된다. 중국의 사료들은 일관되게 한사군이 중국의 하북성과 요녕성 서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사료는 없다. 대책회의에는 필자도 참석했다. 중국 동북공정 논리의 허구성을 연구해서 각국의 학계와 일반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동북공정의 존립 근거를 자속적으로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 결론에 따라 연구기관인 ‘고구려재단’이 2003년에 설립되고 2006년에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재편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15년 동안 4천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썼다. 그러나 중국 동북공정논리의 허구성을 깨는 제대로 된 연구논문이나 보고서를 필자가 아는한 단 1편도 내지 않았다. 2012년 중국이 미국 상원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 변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미 의회조사국(CRS)에 보냈다.북한강역은 모두 중국의 강역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였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물어왔을 때 외교부와 동북아역사재단 고위층이 함께 워싱턴을 방문해 ‘중국 측의 견해가 대부분 사실’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전달했다. 미국과 중국에는 이 자료가 한국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3년부터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영어 책을 출판하여 세계에 배포하려다 국회에 의해서 제지당했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역사재단은 대한민국 국고 47억원을 한국 고대사학자들에게 주어 한사군의 위치를 북한 전역으로 표기하고, 심지어는 3세기 조조의 위나라가 황해도와 경기도까지 점령했다고 그려놓았다.독도는 일부러 우리 영토에서 누락시켰다. 중국 동북공정 한국지부나 일본 극우파 한국지부에서 제작했다고 하면 이해되는 내용이어서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의 여·야 모든 의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한 노무현 정권은 식민사학자들에게 철저하게 사기당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재단을 설립했더니 식민사학자들이 재단을 점령해서 동북공정 논리를 충실히 전파한 것이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란 말을 시진핑 주석에게서 들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2017년 4월 12일)에서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국 국민은 걱정(擔憂)할 필요가 없다”고만 하고 사실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시진핑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고, 한국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트럼프는 듣고만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정권이 급격히 붕괴하는 경우 한사군 위치가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 영토에 역사적인 연고권을 주장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조선과 필리핀을 각각 나누어 갖자는 1905년의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이 왜 갑자기 떠오를까? 시진핑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국내의 고대사학자들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국민적 해체 요구가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북공정을 충실히 추종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처리 여부는 국정국사교과서 문제와 함께 새 정권이 역사문제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독도문제, 우리 내부 정리가 시급하다

독도와 관련하여 우리 지식인들이 보여준 행태 중에서 거짓말 같은 다음 네 장면을 보자. 첫째, 한일 고대사 전공자인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당역사문화강좌가 2014년 5월2일 주최한 대중강연에서 독도가 어느나라 영토냐는 청중의 질문에 “독도 전공이 아니어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으로 소란이 일어 강의가 중단되었다. 둘째, 2015년 모 언론사 원로 논설위원이 독도관련 일본의 역사 도발에 관해 칼럼을 쓰면서 우리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에 관한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한 결과 돌고 돌아 돌아온 답변은 “우리 재단에서는 독도에 관해 확정된 입장이 없습니다”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침탈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이고, 내부에 독도연구소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재단의 홈페이지에 “독도는 우리 영토다”라고 게시되어 있다. 셋째,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써서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되어 소송이 진행 중인 세종대 박유하 교수는 그의 다른 책 화해를 위해서에서 “차라리 독도를 양국 공동영역으로 하면 어떨까… 평화를 훼손하면서까지 지킬 가치가 있는 영토란 없다”고 썼다. 일본이 대포 한방 쏘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에 독도를 넘겨주자는 섬뜩한 주장이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넷째, 독도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 사람 30여 명 중 독도가 우리 영토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3분의 2 정도 된다고 독도 연구에 천착해온 한 교수가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들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대놓고 쓰지는 않지만 ‘일본의 주장도 들어보자’면서 장황하고 교묘하게 설명하는데 읽고 나면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역사적 또는 국제법적인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일본 ‘태정관지령’이다. 동해에 면한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신의 지역에 편입하려 하자 일본 중앙정부가 세밀하게 조사한 다음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 시마네현에 편입해서는 안되고 아울러 주민들의 독도 출입을 엄금하라고 1877년에 내린 명령이 태정관지령이다. 태정관은 일본의 내각사무처, 우리의 국무조정실에 해당한다. 이런데도 독도가 우리 영토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파하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이나 우리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월급 받고 산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사람들은 겉은 우리 국민이지만 속은 일본 극우파라고 볼 수밖에 없다. 광복 7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친일 부역배들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날뛰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게다가 일본 극우파 자금이 우리 학계에 지속적으로 살포되고 있다는 소문도 꾸준히 나돌고 있다. 일본의 역사 침탈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최근 일본은 ‘독도는 일본 땅이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교육을 의무화하고, 이를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지난 31일 일본의 조치를 규탄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주한 일본 공사를 불러 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형식적인 조치가 끝이고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이 또 다른 독도 침탈 조치를 취할 때까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러니 친일 부역배들이 설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볼 때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자기나라 지식인들이 독도가 자기나라 영토가 아닐 것이라는데도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에게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관련기관들은 이런 친일부역배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한 다음 조용하고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에 대한 우리 목소리와 자세에 힘이 실리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대일항쟁기의 친일을 옹호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린을 거슬리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교학사 국사 교과서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린이 강고함을 증명한다. 이런 국민의 신뢰를 믿고 새로 들어설 정부는 친일 부역자들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선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예의염치와 국정농단

친구 간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준 관중과 포숙의 관계를 나타나는 사자성어가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다.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천하질서를 바로 세운 사람이다. 이 관중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 관자(管子)다. 예의염치는 기원전 8세기에 관중이 제시한 나라의 지도자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덕목이다. 정보화 시대에 왜 새삼스럽게 예의염치를 거론하는가? 예의염치는 정치의 근본원리를 논한 관자의 목민(牧民)편에 나와 있는 사유(四維), 즉 네 가지 강령이다. ‘예(禮)’란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義)’란 스스로 나서서 구하지 않는 것이고, ‘염(廉)’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이고, ‘치(恥)’란 잘못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로 예의염치를 풀이하면 정치 지도자는 사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매사를 투명하게 처라해야 하고, 바르지 않는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왜 발생했는지 여러 사실들이 국정조사, 특검, 탄핵소추과정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으나 그 근본 원인은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예의염치가 없었거나 그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3천년 전에 관중이 갈파했던 예의염치가 지금도 정치의 강령으로 유효하기에 오늘에 되새기는 것이다. 관중은 갈파했다. “이 네 강령 중 하나가 무너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셋이 무너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넷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고,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으나 망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작금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망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3천년 전부터 전해온 예의염치의 중요성이 왜 이 정부에 들어와서 특히 무시되었을까? 아마도 대통령에게 예의염치 자체가 결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의염치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형성된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다. 특별한 삶을 살아온 대통령이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별로 경험한 적이 없어 예의염치의 중요성을 부지불식간에 자각하지 못한 결과로 국정농단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계속 거짓말하고 말을 바꾸는 것은 예의염치가 없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이런 대통령과 함께 당연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당선시키고자 애쓴 사람, 당선된 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사람, 고위 공직을 맡아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들이다.대통령의 가까이에서 정치하면서 대통령의 예의염치가 어떠한지 전혀 몰랐거나 예의염치가 없음을 알고도 오늘날에 이르렀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예의염치에 맞는 처신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퇴한 국무위원이나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다. 참으로 걱정스런 예의염치가 실종된 현실이다. 예의염치가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대통령의 예의염치가 어떠한지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는 기본적으로 언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물론 언론은 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이 투표할 때 고려해야 하는 대통령 후보의 예의염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언론은 별로 제공하지 못했다. 언론이 심판자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직접 경기자로 나선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러니 언론도 예의염치를 지키는데 부족했다. ‘깨어있는 조직된 국민’이 나라의 예의염치를 바로 세우는 주체다. 이들의 힘은 바로 선거에서 투표로 집약된다.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 정파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국민을 개나 돼지 정도로 보는 사람,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공약을 커닝하는 사람, 보기에만 그럴듯한 사람, 역사관이 불투명한 사람, 말만 앞세우는 사람, 자신의 정체성도 없이 표만 쫓아 오락가락하는 사람, 정개개편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국민을 편가르는 사람, 별로 한 일도 없이 과거 높은 자리만 차지했던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조차 될 수 없도록 ‘깨어있는 조직된 국민’들이 나서야 나라의 예의염치가 바로 설 수 있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영감님들은 대선 후보에서 빠져주시면 좋겠다

노인보다는 영감이라는 용어가 더 친근하다.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소위 지공선사의 자격이 만65세 이상이니 지공선사를 영감이라고 보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필자도 물론 영감이다. 머리에 물을 들이거나 보톡스를 맞아 모습이 매끈해도 영감은 영감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대선철이 다가오니 여러 영감님들이 대통령 해보시겠다고 맹렬히 뛰고 있다. 미안한 얘기지만 영감님들은 대선 후보에서 빠져주시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영감이 되면 기억력이 감퇴되고 건망증이 심해져 깜박깜박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지역 보건소에서 치매검사 받으라고 수시로 문자 메시지도 보낸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감들은 고혈압 당뇨 전립선 등 성인병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본인이 아무리 건강하다고 자부해도 영감님들은 이런 현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순리다. 현재 대선 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영감님이 최소한 다섯 분이다. 영감님 중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는 생물학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최악의 경우 재임 중에 장례치를 확률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영감들은 대체로 미래지향적이기가 어렵다. 오히려 살아온 과거에 집착하고 아집을 부리는 것이 역사가 전해주는 진실이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영감님이 대통령이 되시면 결국 나라가 경로당이 되어 국가 전체적으로 역동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후보로 거론돠고 있는 영감님들은 묘하게도 공통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왜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화려한 고위직을 지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들 하신다. 그러나 고위직을 지내면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구체적인 성과를 냈는지 딱히 내세울 것은 없어 보인다. 이런 저런 공약을 내세우지만 그 정도는 젊은 후보들도 당연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분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세를 모으려고 고심하고 있다. 두 분은 소속 정당이 있지만 세 분은 소속 정당도 없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개헌이나 제3지대 등을 매개로 대선 후보가 되기를 시도하고 있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인데 민주주의 기본에 출실하지 못한 셈이다. 이 분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수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보여주는 행태일 것이다. 이러니 영감님 후보들이 노욕을 부린다거나 예의염치가 없다고 술자리에서 같은 영감들이 푸념을 하는 것이다. 영감님 주자들은 모두 보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보수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아마도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자기들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므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후보가 되고 나아가서 대통령에 당선되고자 하는 전략일 것이다. 보수가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실체는 바로 헌법이다. 영감님들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헌법을 정독하시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담론은 검거나 불그스레한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 작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킬 담론은 바로 대일항쟁기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의 정신이다. 이 분들의 정신은 보수와 진보를 극복하는 정신이며 그 중심에 겨레와 국민이 있었다. 보수를 자처하시는 영감님 후보들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 당당해지든지 출마를 접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젊은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이 역동성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영감님들이 설계하는 사회에 젊은이들이 맞추어 살아야 하는 세상은 뭔가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영감님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하고 포용하는 세상은 아름답다. 대선 후보로 나선 영감님들은 보다 젊은 후보들을 믿고 대선에서 빠져주시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민족’을 지운 국정 국사교과서

국정 국사교과서가 박근혜 대통령의 중점 추진사업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내년부터 사용할 국정 국사교과서 집필자를 그동안 비밀에 붙이고 졸속으로 진행하는 등 당당하지 못했다.역사관을 통일하여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겠다는 것이 국정 국사교과서의 목적임을 모두가 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게다가 무엇인가 불순한 의도가 담긴 역사책을 만들려고 하니 당당하게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1월28일에 국정 국사교과서 검토본과 집필진이 발표되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을 추종하고, 최근 식민사학을 확대 전파하는 매국사학의 관점에서 기술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국정화 포기와 검토본 페기를 요구하는 각계의 저항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부와 대통령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 국사교과서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국정 국사교과서 검토본에 많은 오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민족’을 지웠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왜 ‘민족’이라는 용어가 국정 국사교과서에서 사라졌을까. 첫째, ‘민족’이라는 용어에는 단군조선에서 시작하는 우리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민족의 형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장구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 역사 교과서는 ‘민족’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한국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광복 후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결국 단군조선을 부정하여 매국사학에 동조하고,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 아니라 건국절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교묘한 술책인 셈이다.광복 후 처벌받지 않고 반공주의자로 변신해 정부수립에 참여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은 건국절이 되면 건국에 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친일 반민족이라는 부끄러운 경력을 세탁해 애국자가 된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통곡할 일이다. 둘째, 식민사학에서는 ‘민족‘이라는 용어를 혐오하고 경원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뺀 것으로 보인다. 광복 이후 역사학은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으로 구분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사학이 자신들을 강단사학으로, 민족사학을 재야사학으로 재단했다. 최근에는 강단사학이 재야사학을 사이비사학으로 규정했다. 결국 민족사학을 사이비사학으로 매도한 것이다.식민사학자들은 민족주의는 극우이고 국수주의적이기 때문에 항상 위험하고 나쁜 사상이라고 강조한다. 대일항쟁기 애국지사들의 민족주의가 국수적인 경우는 없었다. 식민사학자들이 민족에 죄를 지은 것이 사실이고 자신들의 대척점이 민족사학자들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민족을 지우려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식민사학자들의 이런 시도는 언젠가는 처벌받아야 한다. 셋째, 통일의 당위성을 부인하여 남북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해서 ‘민족’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의 가장 중요한 공통분모는 같은 민족이라는 점이다. 같은 민족이니 하나의 나라를 건설하는 통일은 당위이다.한국인이 일반적으로 남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민족’이 ‘한국인’으로 대치되면 통일의 당위성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민족’을 지운 데는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통일되면 매국식민사학자들이 설 땅이 없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을 지운 국정 역사교과서는 매국식민사학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숨기고, 남북 분단을 고착시키고, 친일 반민족 행위를 세탁하는 교묘한 수단인 것이다. 이 검토본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염원과 헌법정신을 위반하고 있다. 이런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민족’을 지웠다면 매국식민사학은 다시 한 번 민족반역죄를 저지른 것이다. 정부는 검토본을 폐기하고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하면 된다”가 아니고 “되는 일을 해야 한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국민적 저항이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검인정으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유발행제로 가야 한다. 자유발행제는 소위 시장이 좋은 교과서를 선택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朴 대통령을 빨리 탄핵해야 하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이미 탄핵했지만 법적으로는 탄핵되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박 대통령은 두 번 사과했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 결과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과 공모해서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지른 공동정범으로 확인되었다. 공동정범은 공모 가담자 모두가 같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라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사실은 박근혜 게이트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런 사태 진행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표출된 백만 국민의 의사에 개의하지 않았다. 두 번의 사과는 거짓말이었고, 수사를 받겠다던 약속도 파기했다. 하야와 사퇴라는 자발적인 퇴진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탄핵하라고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도전했다. 대통령의 처신은 이미 예상된 결과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독재자나 무능한 권력자가 제 발로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두 번에 걸친 백만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어 세계가 놀랄 정도로 성숙된 국민의 민주의식을 표출하였다. 국회도 국정 마비를 우려하여 질서 있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온건한 방향으로 접근하였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국민과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결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지금은 국회도 탄핵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이미 천명한 대로 탄핵하도록 기다리는 경우다. 탄핵 절차는 장시간이 걸린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있을 것이고, 통과된 후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이 제소할 것이고, 헌재의 심리가 반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 선거가 2개월쯤 남은 내년 10월 경에 탄핵 여부가 최종적으로 확정될 가능성도 있다.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무효로 판결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면죄부를 받게 된다. 헌법재판관의 성향에 비추어 탄핵이 무효로 판결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에는 사실상 임기를 마치고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둘째는 촛불집회 등 국민들의 의사 표출과정에서 폭력시위가 발생되어 치안유지 차원에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경우이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권한이 즉시 정지되지만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의 권한이 유지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으로 갈 수도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계엄군을 동원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군인들이 거부한다면 상황은 종결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기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의 부대를 계엄군으로 투입하면 계엄령이 집행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당연히 계엄 무효를 의결할 것이고, 계엄군은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 만약 계엄군이 복귀하지 않으면 소위 친위 쿠데타가 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는 40년 전으로 후퇴하게 되고 민주공화정은 파괴된다. 그동안 땀 흘려 일군 대한민국이 다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민중 혁명이 불가피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인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 불행한 경우의 수가 발발하지 않도록 애국 군인들의 처신에만 기대를 걸 수는 없다. 국회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탄핵안을 의결해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권한을 정지시켜야 한다. 촛불집회가 계엄령 선포의 빌미가 되기 전에 탄핵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정치권은 즉시 정파적 이해득실 계산을 멈추고 총력을 집중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최악의 경우의 수를 막아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100만 이상이 모인 평화적 촛불시위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숙함을 세계에 과시하면서 박근혜와 그 일당이 떨어뜨린 국격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즉시 정지시키는 탄핵이 성숙한 국민의식에 부응하는 길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朴대통령은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하야해야

최순실 사태에 대해 국민은 분노하고 허탈하다. 골수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인 70대 중반 한 부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한 기분 이상이라고 한탄했다.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사태의 핵심은 국가의 초 특급 기밀이 누설된 것이고, 대통령 위에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이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있어 헌법을 훼손했으며,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방조했으며, 여기에 조언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국정이 마비되어 국가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하야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이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음을 확실히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개선될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위정자의 자세와 통치 방법을 논한 관자(管子) 형세(形勢) 편에는 “군주가 군주답게 제 할 일을 못하면 신하도 신하 노릇을 다하지 않으며, 윗사람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체통을 잃으면 아랫사람이 분수나 절도를 어긴다.”고 갈파했다. 관자의 이 지적이 정확하게 지난 4년간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대통령이 대통령답고 고위공직자가 고위공직자다워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군군 신신, 君君 臣臣)을 거스른 지난 4년이었다. 맹자(孟子)와 주역(周易)에는 임금을 네 유형으로 구분한다. 좋은 임금 두 유형과 나쁜 임금 두 유형이다. 제일 좋은 임금은 백성이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런 불편이 없는 경우이다.임금이 미리미리 너무 정치를 잘해서 임금의 존재를 백성들이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이다. 그다음 좋은 임금은 백성들이 존경하는 임금이다. 백성들이 무서워하는 임금은 나쁜 임금이다. 총칼로 다스리고 독재하는 임금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가장 나쁜 임금은 백성들이 경멸하는 임금이다.경멸은 “저게 임금이라고?”하는 말이 백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이고, 이렇게 되면 임금 노릇이 불가능하다. 임금을 대통령으로 바꾸면 이 분류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용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국민이 경멸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하야할 수밖에 없다. 관자 목민(牧民) 편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사유, 四維)으로 예의염치를 들고 있다. ‘예’란 절도를 지키는 것이고, ‘의’란 온갖 수단을 써서 스스로 높은 자리를 구하지 않는 것이고,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이고,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예의염치를 잃어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하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야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거국내각 구성이다. 거국내각은 국가 위기를 관리할 내각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미래 안위를 고려해서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면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를 찾아야 한다. 먼저 예의염치를 갖추고 있는지가 최고 인재인지 여부를 판정하는 첫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그 지위에 어울리는 인격을 갖추고 있는지, 그 지위에 어울리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고려하여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주체로 흠이 없는 원로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들의 제안도 받아 빠른 시간 안에 인선해서 국정 실종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파적인 견해가 거국내각에 반영되어서는 안된다. 거국내각이 구성되면 바로 차기 대통령 선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대통령이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꼼수를 쓰거나, 공작적 차원에서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면 무능한 대통령에서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로 한걸음 더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호랑이의 눈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태종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모두가 행복한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는 정치가 백성을 위한 정치 소위 위민정치(爲民政治)다. 대한민국은 세계 20대 경제대국(G20)에 속하지만 태평성대는 요원하고, 위민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헬조선, 흙수저, 갑(甲)질, 비정규직 등은 실종된 위민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희망이 있으면 사회적 역동성이 발휘되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희망조차 사라졌고, 위정자들이 이 사실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회원국 중에서 대한민국은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 노인 빈곤율, 흡연율,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다. 반면에 출산율은 가장 낮으며, 노동시간과 출퇴근 시간은 두 번째로 길다. 양극화 심각성도 미국에 이어 2위다. 여기에 권력기관의 부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최근 터져 나오는 검찰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영화와 연속극에는 정의로운 검사는 나오지 않는다. 청산하지 못한 일제잔재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견제 받지 않는 검찰 권력의 부패와 전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검찰을 사회정의의 구현자로 생각하는 국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이 법원의 부패를 국민 앞에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현재의 법원을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부은 4대강은 녹조라떼로 썩어가고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되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기업의 빚은 비상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이 빚은 모두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갚아야 할 부담이다. 살림이 빚 투성이니 정부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공기라고 하는 언론은 지사(志士)의 역할을 포기하고 서생(鼠生)으로 추락하고 있다. 심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신문들이 선수로 변신하고, 정파의 이익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가고,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래서는 여론을 집약하고 선도해야 하는 신문 본연의 사명이 달성될 리 없다. 지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물론 현 정권도 북한이 깨끗하게 두 손 들고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목표로 보인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에 맞서 선제공격을 불사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북한이 걸었던 것처럼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해 국제사회로부터 온갖 제재를 받는 나라로 가자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북핵 위기 고조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에서 주가 폭락이 없다. 국민들이 냉정하다는 반증이다. 북한이 타도의 대상인지 관리의 대상인지 국익의 관점에서 치밀한 전략적 검토가 필요하다. 광복 71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는 자도 있고, 일제 식민지 시기가 살 만했다고 학문의 외피를 쓰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학파도 있다. 대일 항쟁기 애국지사들의 피어린 독립투쟁을 폄하하는 친일 매국노들의 후예도 준동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두어도 좋은가.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1년이 조금 넘게 남았다. 여러 정치공학적인 보도가 넘쳐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의 이 어려운 나라 현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태평성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미사여구로 포장한 우아한 대권 도전의 변과 이해득실만 따지는 정치공학으로 접근하는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어려운 현안에 허우적대다가 끝날 수밖에 없다. 태평성대라는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 상황에서는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에 맞서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세종이 되고 싶은 대통령은 필요 없다. 태종이 친인척 비리를 처단하고 공신을 숙청하여 조선을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었기에 세종의 태평성대가 올 수 있었다. 태종이 되고자 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태종의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과 깨어 있는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이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를 열 수 있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사드에 관한 불편한 의문들

낮은 탄도로 날아오는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는 무기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 높은 탄도로 북한에서 날아오는 고고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가 사드다. 사드의 한국 배치를 두고 국내는 물론 동북아에서 국제적인 큰 분란이 조성되어 있다. 대통령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니 따라 달라는 입장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60% 정도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드 한국 배치에 관해 답을 얻을 수 없는 불편한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사드가 고고도 미사일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사드로 동시에 요격할 수 있는 고고도 미사일이 48개이고 재장전하는데 3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만약 북한이 48개 이상을 동시에 발사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북한에 발사대가 몇 개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북한의 능력이 사드의 방어력을 넘어서는지도 의문이다. 남한은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50㎞에 불과하다. 고고도 미사일은 대륙 간 공격용 무기라고 한다. 북한이 대륙 간 장거리 공격용 미사일을 거의 수직으로 쏘아 올렸다가 가까운 수도권이나 남한의 주요 도시에 떨어지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설사 이런 기술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 해도 북한이 대기권까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가 서울에 떨어뜨리는 것은 비용이 너무 들어 상상하기 어렵다.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고 있다. 사드를 배치하면 소음이 굉장하고 전자파가 많이 방출되어 주변 주민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문제를 우려하여 사드 배치 대상지역인 성주군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런데 소음도 별로 없고 전자파도 별것 아니라고 일부 언론이 현장 탐사 결과를 보도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도 시원한 답이 없다. 사드로 방어할 수 있는 지역이 남한 전체라고 했다가 이제는 남부 일부 지역이라고 한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부산을 거점으로 한 미군의 후방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체계라고 한다. 미군을 주로 방위하기 위한 무기라면 당연히 비용을 미국이 전액 부담하겠지만 남한 전체를 방어하는 무기라면 우리도 분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명확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는가? 사드는 요격 미사일과 탐지 레이더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북한 지역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자기 영토도 탐지 가능 지역이라고 보고 한국에 대해 차근차근 보복에 나서면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미국과 한국의 주장이 맞는다면 중국이 이처럼 격렬하게 대응하겠는가? 지난 주 중국을 여행하면서 접한 중국 언론은 온통 사드로 도배한 정도였고, 전쟁도 불사한다는 논조였다. 중국이 바보인가? 한국과 미국이 거짓말을 하는가? 불편한 의문이다. 사드가 효과적이고, 안전하고, 남한 일부만 방어하는 무기라면 왜 이처럼 떠들썩하게 공개적으로 추진하는지 의문이다. 무기 배치는 일급 군사기밀이다. “사드는 이런 성능을 가진 무기다. 우리 성주군에 배치한다”라고 떠드는 꼴이니 육군 병장 출신인 필자가 보기에도 이해할 수 없다. 이 관점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앞장서서 “전쟁나면 이곳 부터 타격하시오. 좌표는 여기요”라고 알려주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도 의문이다. “논의 중이다. 논의한 바 없다, 결정된 바 없다”라는 보도가 번갈아 나오다가 별안간 배치한다고 발표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정 의사결정 체계가 존재하는지, 한 두 사람 실력자가 국정을 농단하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사드 배치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외교문제와 국익을 사려 깊게 고려했는지도 의문이다. 항간에서는 사드 배치로 북한 김정은만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대북제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에 중국과 러시아가 우호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관점이다.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교역상대국이다. 왜 현실과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국익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결정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명확하게 풀어주어야 할 의문들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우리가 감격했던 순간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93년 3월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했다.육군사관학교 11기부터 20기까지 기수별로 12명 내외 전체 120여 명이 뭉쳐 군 요직을 독식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대한민국 전체를 암울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조직이 하나회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감격했다. 아마도 더 이상 쿠데타는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모든 국민이 두려워하던 막강한 집단이 척결되었다는 후련함 때문에 열광하고 감격했을 것이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기관이 개인의 실명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니 남의 이름이나 가짜 이름에 의한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 뇌물 탈세 등 등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개혁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국민들이 별로 없었다. 경제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은 환호하고 감격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1월에 발발했다. 대마불사를 신봉한 기업경영, 금융기관들의 방만한 경영, 감독기관의 안이한 자세, 정책 책임자의 판단 착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여러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대기업들도 줄줄이 부도가 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고,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바닥이 난 외환보유고를 채우자고 거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다.조선조 말기 나라가 망해갈 때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을 넘어서는 거국적인 애국운동이었다. 서로의 애국심을 확인하고 같이 격려하고 감격했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식가격이 떨어지면 싼값으로 사들여 한몫 크게 잡으려던 국제투기자본들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국심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1천1마리를 싣고 휴전선을 넘어갔다. 우리 방송뿐만 아니라 미국 CNN도 중계했다. 모든 국민들이 방송 중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정주영 회장에게는 사업 목적도 있었겠지만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서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분단 53년 만에 공식적으로 휴전선이 열린 역사적 쾌거였다. 이제 전쟁의 위험이 조금씩 줄어들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국민들이 안도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한 것이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이라고 교육받아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세상이 바뀌었음을 본 것이다. 남북이 서로 관리의 대상임을 인정한 회담이었다.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되었다. 이념의 차이가 엄존했지만 민족의 염원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광복 후 자유당 독재정권과 군부 독재정권을 거쳐 문민정권과 지역 연합정권을 거쳤지만 모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달랐지만 상부의 연합이리라는 정치공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정치공학에서 자유로운 정권이었다. 우리보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아온 정권교체였다. 선진 민주주의가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고 기대도 컸다. 지난 10여 년간 감격한 순간이 기억에 없다.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해지도록 애쓰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안전해지고 행복해지겠다는 희망이 있으면 국민은 감격하게 될 것이다. 감격의 순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검찰개혁이 시급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나쁜 짓을 해도 돈이 많으면 무죄이고 돈이 없으면 유죄라는 자조적인 말이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검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변호사를 찾아 헤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응전략이 된지 오래다.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큰다. 물론 이 짓도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돈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학연 지연 친인척으로 얽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힘 있는 사람은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연결된다. 최근 검찰 고위직을 지낸 홍만표 사건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정식으로 변호사 수임계를 낸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수임계를 내지 않고 사건의 뒷배를 봐주고 거액을 챙겼다면 국기를 흔드는 범죄다.만약에 피해자나 무관한 사람이 가해자로 둔갑되는 경우가 있다면 최고 악질 범죄다. 전관예우의 결과이든 전관과 현관의 담합이든 수사 검사와 홍만표가 국가 권력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홍만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끼리끼리 짬짜미 제 식구 감싸는 검찰의 행태를 수 없이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영화와 연속극에 대부분의 검사가 정의의 편에 서지 않고 불의의 편에 서는 것으로 나오는 것은 검찰을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는 청년들이 희망을 잃은 사회다. 오늘날 검찰 권력은 무소불위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수사하든 말든, 기소하든 말든 검찰 제 마음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검찰을 통제하는 소위 기관원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막말로 봐주고 싶으면 봐줄 수 있고,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도 있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전관예우와 담합이 구조적으로 가능하다. 물론 모든 검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검찰이 가진 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도 아니고 국민이 감시할 수 있는 권력도 아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형사령’을 개정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검사에게 부여한 것이 그 시초다. 조선왕조에서는 수사권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사헌부, 의금부, 형조, 한성부 등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지배에 불편한 이 수사권 분산을 한 곳에 독점시킨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독재정권들이 이 검찰의 독점을 그들의 정권유지수단으로 온존시켜 왔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제도이다. 아직도 광복되지 못한 일제 잔재이다.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 수사권은 범죄의 성격에 따라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특별사법경찰 등에게 부여해서 분권화할 수 있다. 기소권도 검찰에 독점시키지 말고 과거 참여정부에서 시도했던 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은 기관이 분담하도록 할 수 있다.여기에 더해 검찰의 기소권 행사를 일반 국민들도 참여하는 독립적인 기관이 엄밀하게 감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검찰을 개혁하려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고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불행한 것은 법사위에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아 검찰을 감싸기 때문에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이 투표로 심판할 사항이다. 검찰권을 국민이 위임하여 통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검찰총창과 각 지방 검찰청장을 투표로 선출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와 교육자치가 실시됨에 따라 이 분야의 자율성이 높아졌고, 좋은 후보를 선출한 지역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이는 선거에 의해서 검찰 책임자를 선출하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검찰 책임자를 선거를 통해 뽑는 제도는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개혁하는 데는 큰 저항이 있을 것이다. 대권후보로 나설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보다 빨리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 거는 것이 좋다. 아마도 많은 국민이 환호할 것이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은 임계점에 가까워오고 있다.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문제는 청년이다

총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정치권의 각종 이합집산 논의에 나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셈법이 논의의 중심이다.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당당하지 못한 정치권의 모습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든 민심은 청년들의 분노와 장년층과 노인들의 불안이다. 정치권이 이들의 분노와 불안을 잊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여기에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분노와 불안은 희망을 볼 수 없을 때 표출된다. 희망을 잃으면 절망하게 되고, 절망이 깊어지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특히 청년이 희망을 상실하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열심히 살면 나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 바로 그 사회를 움직이는 역동성이기 때문이다. 괜찮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결혼하고, 작지만 내 집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열심히 저축하면서 단란하게 사는 것이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금수저가 아닌 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분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판 노예제도인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평생 알바로 살아야 할 운명인 청년들도 많다. 대다수 대학생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안고 졸업한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의 갑질에도 청년들이 내몰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다수 청년들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청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정부의 모든 정책 평가기준은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정책도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간다면 절대로 좋은 정책이 될 수 없다. 청년들에게 사전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희망을 주게 된다.여기에 역행하는 정책은 범죄가 아닐 수는 있어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와 경제 활성화로 포장한 노동개혁은 정규직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전적 기회 균등에 반하는 정책이다. 모든 정책이 공정하고 투명하고 정직해야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게 된다. 부자들과 재벌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준 감세 정책은 공정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를 집중시키고 대물림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세금이 줄어들어 투자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세수가 줄어 정부의 재정적자만 늘어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대표적인 정책은 ‘빚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부동산 정책이다. 청년들이 월급을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전세와 월세의 상승으로 고통 받고 희망을 상실하는 청년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높은 부동산 가격은 우리 사회 온갖 모순의 온상이다. 자영업자 청년들도 임차료 부담에 내몰려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있으나 마나 하는 수준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해고당한 청년은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겨우 3개월의 고용보험으로 견뎌야 하고,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니 절망할 수밖에 없다. 고용보험 수급기간을 대폭 늘리고 충분한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청년들이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붕괴되는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재정이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공동체 몰락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었는데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인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리 없다. 정부와 국회가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간 정책들을 조속히 개폐하고,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하지 않으면 나라의 역동성을 살려낼 수 없다.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차기 대권을 창출하는 당당한 길이다. 부질없는 대선 셈법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대기업과 부자들도 상생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에 충실할 때다. 문제는 청년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투표에서는 차선이나 차악이라도 찍어야

총선이 내일이다.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유권자가 서운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유권자의 뜻을 민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겸허한 말이다.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인 천심이란 말은 요순시대부터 있었지만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로 자리집기 전에는 민심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날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투표다. 투표 결과가 민심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있으나 아직 민심조사는 없다. 여론조사에서 부분적으로 민심을 엿볼 수는 있겠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민심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론은 수시로 변하고, 조사방법에도 민심을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게다가 다양한 방법으로 호도할 수 있는 것이 여론이기 때문이다. 민심은 국민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민심은 소박한 바람일 수도 있고, 따뜻한 마음일 수도 있고, 나라 사랑하는 애국심일 수도 있고,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버이의 사랑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 후보로서 가징 중요한 덕목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아는 것이다. 왜 예의염치가 먼저인가? 예의염치는 정치의 근본원리를 논한 관자의 목민(牧民)편에 나와 있는 사유(四維)다. 즉 네 가지 강령이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란 스스로 나서서 구하지 않는 것이고,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이고, ‘치’란 잘못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는 매사에 절제해야 하며, 좋은 일이 있어도 먼저 스스로 취하려 해서는 안 되며, 자기의 잘못을 감추지 않아야 하며, 바르지 않는 것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기 전 8세기에 관중이 갈파한 말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다. 예의염치가 없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아서 결국 일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의염치와 함께 국가를 경영하는 최소한의 경륜을 갖추고, 국가와 지역사화에 부지런히 봉사할 수 있고, 항상 사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는 사람이 좋은 국회의원 후보감이다. 흔히 정치학자들은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 그 나라 유권자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자질과 역량을 지닌 탁월한 후보자가 나타나면 저절로 유권자의 수준이 높아지고 따라서 정치수준도 높아지겠지만 이 경우는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한 축복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와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얽혀 있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선호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탁월한 자질과 역량을 갖춘 후보가 있는 지역구 유권자들은 선택이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국회의원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에서도 선거과정에서 불미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성숙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한때 금권선거가 횡행했던 미국에서도 유권자들은 현명하게 투표함으로써 금권선거를 추방했다. 10달러 주는 후보와 5달러 주는 두 후보 중에서 5달러 주는 후보에게 투표했다. 왜냐하면 5달러 주는 후보가 부패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금권선거가 발붙일 소지를 유권자들이 정화한 것이다. 필자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내면서 반듯하고 유능한 단체장을 계속해서 선출한 시와 군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사례를 여럿 보았다. 반면에 뽑힌 단체장 마다 감옥에 가는 사례도 보았다. 여기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대의정치는 선거를 통해서 구현된다. 선거는 참여다. 참여는 민주 국민의 의무다. 참여를 통해서 집약된 민심은 바로 우리 국민이 지향하는 미래다. 민주 국민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완벽한 최선의 후보는 찾기 어렵다. 부족하면 차선의 후보를 선택하고, 최악을 피하고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민심을 반영하는 길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대립이다. 보수와 진보의 원래 호칭은 우익과 좌익이었다. 광복 후 좌우 대립으로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기에 아마도 지금은 좌우익보다는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되었을 것이다.정치, 언론,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두 진영 간에 진지한 소통과 양보가 없다. 보수는 진보를 좌파 나아가서 종북으로 몰고, 진보는 보수를 수구 기득권층으로 보고 서로 적대시 한다. 상대의 존재가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이 극심한 대립의 근본 원인일 것이다.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요소다.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듯이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서로 의견이 달라도 화합하는 사람은 군자이고, 같아도 불화하는 사람이 소인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이 가르침을 적용하면 많은 정치인이 소인배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이 용납되지 못하고, 발전의 동력인 다양성도 발휘되지 못하고, 신뢰가 실종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경제정책은 포퓰리즘이고, 기업을 위한 정책은 경제 활성화로 포장하니 신뢰가 구축될 리 없다. 상호간에 소통과 양보를 통해서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웃, 정의, 국익, 민족의 미래, 인류의 평화는 보수와 진보가 공유해야할 가치다. 이들 가치를 공유한다면 주어진 제약조건 하에서 모두에게 최선인 방안들을 도출하여 보수와 진보의 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수 진보라는 진영논리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세월 어떤 사람들이 이런 가치들을 가슴에 새겨 세상을 살아 왔는지 자성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대일항쟁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생명을 걸고 광복전쟁에 나선 이분들이 꿈꾼 세상은 정의롭고 따뜻한 공동체인 자주 독립국가,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문화가 융성하는 나라, 세계와 공존공영 하는 평화의 나라였다. 이분들의 꿈은 보수와 진보를 극복할 수 있는 공통된 가치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분들의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 모두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때다. 이분들의 정신은 광복 후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해 오히려 폄하되고, 그 후손들 중 많은 분들이 숨죽이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길은 바로 이분들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 중에는 보수도 있었고 진보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중심에는 민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불온한 사상으로 사갈시 하는 무리들의 영향력이 크다. 우리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하는데 있었지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설 수 없다면 보수는 애국보수, 진보는 애국진보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폄하하는 무리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민족주의는 나쁜가

국어사전에 의하면 민족주의는 ‘독립이나 통일을 위하여 민족의 독자성이나 우월성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왜 새삼스럽게 민족주의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잘못 인식된 민족주의에 그 연원이 있기 때문이다. 광복된 조국에서 민족주의자는 바로 애국자였다. 대일 항쟁기 민족주의자들의 염원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역량을 결집시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보수 민족주의자도 있었고 진보 민족주의자도 있었다. 민족주의가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배타적이면 국수주의가 된다. 유럽과 일본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였고 국수주의였다. 그러나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다. 민족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대통령도 있었고, 동맹국보다는 민족이 우선이라고 갈파한 대통령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민족주의자는 무능하고, 막무가내이며, 맹목적이고, 좌파적이고, 심지어 위험해서 경계해야 하며, 나쁜 사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채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베트남의 민족주의에는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의 민족주의를 금기시하는 다수의 지식인들이 대한민국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역사 분야에서 그러하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역사를 실증사학이라고 위장했다. 자기들이 학문적 정밀성을 갖춘 것처럼 호도하여 식민사학을 추종, 확대, 전파해 오면서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역사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된 재야사학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결과 실증사학에 반대되는 개념이 민족사학이라는 이상한 도식이 형성된 것이다.우리의 역사를 우리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족주의 사학이고 조선총독부 관점에서 바라보면 식민사학이다. 실증주의는 연구 방법론의 하나일 뿐이다. 광복 이후 대학교수인 소위 강단 사학자 대부분은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를 매도해왔다. 조선총독부의 망령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사학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에는 주홍 글자가 새겨져 우리의 정체성은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운이 융성하려면 반드시 지속적으로 내부 혁신이 있어야 한다. 식민사학은 외세의 지배가 있어야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우리 주류 역사학이 민족 자체의 혁신 역량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식민사학의 이 가르침은 최근 일본 극우파의 준동으로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민족주의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으로 삼자는 사상이다. 당연히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그 본연의 목적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망각시키는 주류 사학인 식민사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민족주의 애국자들이 몰락한 다음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자신들을 보수로 위장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광복 당시 진정한 보수 민족주의자는 김구, 조만식, 김병로 선생 등이었을 것이다.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분들의 민족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자성이 필요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허성관 칼럼] 대한민국의 이상한 지식인들

최근 검찰이 명예 훼손으로 기소한 2건의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첫째는 서울 동부지검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기소한 것이고, 둘째는 서부지검이‘우리안의 식민사관’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기소한 것이다. 박유하 기소는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소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신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정신적 위안자’, ‘일본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 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대한민국의 지식인 194명이 학자의 주장을 사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박유하 교수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다른 지식인 60명은 이 책이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지만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성명을 냈지만 사실은 박유하 교수를 두둔하는 셈이다. 이 두 지식인 집단의 성명에 공통된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가 학문적 영역에 속하는 책이므로 형사처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모든 책이 학문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다. 학술적인 책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방법이 정밀해서 내적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가 내적타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지식인 60명 성명에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정치적 주제에 대한 연구가 내적타당성이 결여하면 학문이 아니고 정치선전이다.정치선전은 학문이라는 미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박유하 기소에 대해 일본 관방장관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제국의 위안부’가 대일본제국에 유리한 정치선전이라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성명에 참여한 대한민국 지식인들은 『제국의 위안부』를 학문의 영역으로 본 것인데 정말 이상하다. 순수한 학술적 논쟁이라면 일본 각료가 왜 끼어들 것인가? 물론 이 책의 연구방법과 결론이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두둔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박유하는 다른 책에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해야 하며, 평화를 깨뜨리면서 지켜야 할 영토는 없다고 일본 극우파와 같은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유사한 책이 프랑스나 독일에서 출판되었으면 명예훼손 이전에 나치를 찬양한 죄로 벌써 저자는 감옥에 갔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도 일제를 옹호하거나 찬양하면 형사 처벌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이덕일은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의 책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식민사학이라 비판했다고 김현구가 고소하여 기소되었다. 임나일본부는 고대에 우리 남부지방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일본 극우파 학자들이 고안한 대표적인 식민사학이다.김현구는 이 책 서론에서 임나일본부가 없었던 것처럼 써 놓고, 각론에서는 일본 백과사전에서도 믿을 수 없는 역사서로 평가한 ‘일본서기’를 인용하여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의 강역도 종래 경상남도 일부에서 전라도와 충남과 경북 일부까지로 확대해 놓았다.임나일본부보다는 ‘한반도남부경영’이 적절한 용어라고 주장했다. 이덕일은 여러 역사서를 교차 검증하여 임나일본부는 허구이며, 따라서 김현구가 일본 극우파의 식민사관을 추종 확대한 식민사학자라고 밝혔다. 사실 김현구 책의 내용은 대단히 헷갈리게 쓰여 있다. 김현구의 고소는 처음에 서부지검에서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김현구가 고검에 항고하자 고검에서 기소해서 재판이 진행 중인데 대단히 이례적인 사례이다. 진정한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이덕일의 연구를 기소한 것에 대해 지식인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일본 극우파 식민사관을 옹호하면 나서서 두둔하고, 비판하면 나서지 않는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모습을 어디서 그 연유를 찾아야 할까? 정말 이상하다.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지식인들 사이에 아직도 식민사학이 넓게 침윤되어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검찰도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비판한 경우에나 두둔한 경우에나 모두 기소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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