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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블라디보스토크행 국제선 여객선에서

■ 동해의 국제여객선 선상에서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 장맛비는 계속 강하게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온다. ‘거친 바다가 훌륭한 선원을 만든다’, ‘삶의 과정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과 같다’는 몇 가지 명언이 생각난다. 선원이나 어부들은 양면의 다른 얼굴을 가진 바다를 무서워했다.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 폭풍우와 높은 파도가 몰아치는 무서운 바다다. 과거 폭풍우와 태풍의 과학적 원인을 몰랐던 선조들은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용왕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봄·가을 좋은 날에 용왕님께 제사를 지냈다. 비바람 속에 블라디보스토크행 여객선은 7월2일 오후 3시 정시에 출발한다. 시속 30㎞ 속도로 가는 여객선은 블라디보스토크 도착까지 25시간 갇혀 있어야 한다. 처음 타보는 국제선 3등실 객실이 매우 비좁다. 갑판에 나가보면 비바람이 강하게 불고 짙은 해무(海霧) 때문에 시야가 수백m에 불과해 답답하다. 식사는 일률적으로 1만5천원짜리 한 가지인데 음식은 형편없다. 식권을 사서 1층에 설치된 뷔페식당에서 한다. 식당의 좌석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줄 서서 기다리다가 앞 사람이 먹고 나면 다음 사람을 들여보낸다. 군대 배식처럼 식사시간 10분 전에 미리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비행기와 달리 여객선은 가방을 손으로 가지고 타는 핸드캐리가 폭넓게 허용된다. 배에서 내릴 때 짐 찾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가져온 여행가방을 모두 직접 들고 배에 탔다. 샤워실은 복도 중앙에 있는데 수건이 없어 손수건으로 간신히 물기를 닦는다. 러시아인들은 한국 라면을 엄청 좋아한다. 휴게실에서 뜨거운 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컵 라면을 안주삼아 술자리가 요란하다. 여객선 면세점에서 위스키 한 병을 샀다. 향후 통과할 지구의 지붕, 파미르고원의 산신령에게 작은 산신제를 할 생각이다. ■ 자동차 관련 여행 준비 제주도행 카페리에 차를 싣고 육지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자동차를 외국으로 가지고 떠나는 자동차 여행은 국내 여행보다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첫째, 영문으로 작성된 ‘자동차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관세법에서 ‘휴대품’으로 분류한다. 자동차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동차의 차대번호, 제작 연도, 차량 종류 등을 영문으로 표시하는 정부의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져간 자동차를 다른 나라에 팔고 빈손으로 귀국하거나 헌 차를 가지고 나가 새 차를 사 오면 안 된다. 사고 때문에 폐차가 아니면 차량을 다시 한국에 가져와야 한다. 특히 개인 소유 차량이어야 하고 법인 명의 차, 렌터카는 반출 허가가 나지 않는다. 동해항에서 자동차의 선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 반출 업무는 전문업자에게 위임했다. 둘째,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장기간 운행에 대비해 수리와 부품 교체를 미리 한다. 자동차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예비 타이어 한 개를 더 가지고 간다. 엔진, 에어컨 오일 등 각종 오일도 새것으로 교체한다. 우리는 자동차를 3대 가지고 간다. 차종은 미국의 사막 이름을 딴 ‘모하비’ SUV. 본인 차를 가져온 사람은 여행비용을 적게 내고 차를 안 가져온 사람은 비용을 더 부담한다. ■ 함께 여행 가는 동지들 여행을 함께 가는 일행은 8명이다. 전체 인원 8명을 동해항에서 처음 만났다. 유라시아 대륙의 자동차 여행에 대한 공통된 관심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다. 우리 부부만 빼고 자동차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출신 지역도 여수, 임실, 제천, 이천, 서울 등 다양하다. 여성은 미세스 송 한 사람뿐이다. 미세스 송은 여행 도중 대화할 여성이 없는 점이 불만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러시아어과 재학생으로 러시아어 통역을 위해 두 달 동안 채용한 알바생이다. 출신지, 직업, 연령 등 모두 다르다. 차량 3대에 각각 두 명, 세 명, 세 명 나눠 탑승하고 운전은 교대로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장기간 여행 중에 생길 수 있는 트러블이 걱정된다. 일행 간 상호 소통과 배려가 중요한데 끝까지 화합하며 다녀오기를 기원한다. 나와 미세스 송은 부부간이라 룸메이트 문제가 없지만 처음 만난 성인 남성들끼리 룸메이트 조화, 식사 메뉴 선택, 관광지의 선호도 등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염려가 된다. 우리 일행은 여행의 완주와 단합의 구호를 외치며 준비한 현수막을 앞세우고 동해항 대합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블라디보스토크항 도착 배는 망망대해 동해 바다를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향한다. 과거 동서고금 공통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신성한 지역으로 생각했다. 아마 이런 의미를 담아 애국가 1절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옛날 중국은 우리나라를 해동(海東)의 선비 국가라고 불렀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국가도 해가 뜨는 동쪽은 산 자의 땅,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은 자의 땅으로 구분했다. 드디어 다음 날 오후 늦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멀리 안개에 살짝 덮인 금빛 찬란한 러시아정교회 돔 양식이 보인다. 25시간 항해 끝에 도착한 것이다. 모든 항구는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다. 고향에 돌아온 러시아 사람들에게 항구는 종착점이지만 유라시아 대륙으로 출발하는 우리에게는 이제부터 여정의 출발점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의미로 19세기 러시아 제국주의를 상징한다. 선원들이 배에서 30명씩 끊어 순차로 내리게 한다. 배에서 내리는 데에만 3시간이 걸렸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출발, 시베리아 초원으로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는 금언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꿈꿔 왔던 소망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은 소망이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가장 이른 지금, 70세를 기념해 이를 실천한 여행기를 싣는다. 경기일보 독자께 가슴 설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닿았으면 한다. ■ 오지로 자동차 여행 2024년 7월2일 오후 3시 동해항 여행터미널에서 카페리호에 자동차를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다. 국제선 출발 3시간 전, 출국 체크인을 위해 12시까지 동해항에 도착해야 한다. 아침에 서울에서 자동차로 영동선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향한다. 장맛비가 출발할 때부터 계속 내린다. 평창, 대관령에 들어서면서 강한 비에 산안개까지 진하다. 자동차 앞 유리창 브러시가 쉼 없이 움직여 더욱 마음이 심란하다. 이번 장거리 여행에 동반자로 함께 가는 아내(미세스 송으로 부름)의 심기는 매우 불안한 기색이다. 이번 여행은 설렘, 즐거움보다 뭔지 모르게 걱정, 불안 등 무거운 기분이 짙게 깔려 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서쪽으로 계속 가면서 북쪽과 남쪽으로 오르내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이동해야 할 거리도 약 2만2천㎞다. 여행사조차 관광상품으로 팔지 않는 오지, 초원, 사막, 반사막, 스텝지역, 고산지대를 운전해 가는 것이다. 낭만적이기보다는 고행길이고 터프한 여행이다. 여행을 결정한 이후부터 걱정의 연속이다. 장거리 여행 도중 미지의 세계에서 부딪치게 될 예측 못 할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다. 내 나이가 70세이고 미세스 송은 66세다. 나이가 드니 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함께 가기로 약속한 미세스 송의 불안감과 신경의 예민함, 수시로 자기는 빼고 나 혼자 떠나라는 하소연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동해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아들들, 손자들, 친구들과 보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투덜댄다. ‘향후 나와의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언까지 한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미세스 송의 반발이 커질수록 이번에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가게 된다는 생각으로 못 들은 척 무시한다. ■ 유라시아 대륙 여행 코스 자동차 양쪽 벽에 우리가 갈 여행 코스를 나타내는 대형지도를 붙여 놨다. 함께 가는 일행이자 자동차를 선두에서 리드하는 현대장의 아이디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지겨워하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과목을 나는 좋아했다. 광대한 시베리아 초원, 유목민들이 살았던 사막, 스텝, 실크로드 유적, 카스피해 등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만 했던 곳을 향해 드디어 출발한다. 통과하는 국가는 러시아,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재입국, 조지아, 튀르키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서쪽 시베리아를 따라 바이칼호로 간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몽골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가는 코스다. 험하기로 소문난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 카라쿰사막, 키질쿰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몽골고원, 파미르고원, 톈산고원, 아나톨리아고원 등 고산지대도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자동차 여행이 무척 힘든 나라다. 지구 반대편의 서유럽 국가는 국경 통과가 자유롭고 맘만 먹으면 자동차로 동유럽, 튀르키예,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를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륙으로 가는 길목을 북한이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우회해 카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인천에서 중국 산둥반도로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자동차 여행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제네바협약) 미가입국이다. 우리나라 관세청에서 중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위한 승용차 반출 허가가 나지 않는다. 이에 불가피하게 러시아와 몽골을 경유, 중국의 네이멍구로 우회하기로 여행계획을 짰다. ■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국제여객선 탑승 동해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거리로 900㎞, 운항 시간은 25시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왕복하는 국제선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중단됐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편이 유일하다.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대다수 승객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 언어만이 대합실에서 시끄럽다. 키도 크고 몸도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어느 러시아 지역에 온 것 같다. 배에 싣고 갈 보따리가 많다. 상당수가 보따리상이거나 누군가의 부탁으로 짐을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아침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더욱 강해지고 계속 내린다. 배가 정시에 출발할지, 파도가 높으면 배 멀미는 어떨지, 당초보다 운항 시간이 훨씬 늘어날지 걱정이다. 여객선 예약이 늦은 관계로 선실은 10여명이 함께 쓰는 3등실이다. 러시아 사람도 몇 명 같은 방에 있다. 사람당 퇴색한 갈색 매트리스와 베개 하나씩 배정됐다. 꼭 설악산 등산객 산장처럼 매트리스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이러한 상태로 25시간 누워 갈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면 누워 있는 옆 사람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출발 첫날부터 예상보다 매우 불편한 여정이다. 미세스 송은 말은 안 하지만 정말로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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