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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칼럼] 선거정치의 왜곡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은 17대 대선을 제외하곤 박빙으로 승부가 갈렸다. 김대중과 이회창이 맞붙은 15대 대선은 불과 1.5%p 차에 불과했고, 노무현과 이회창의 16대 대선도 1.96%p 차로 당락이 갈렸다. 박근혜 후보가 과반 획득에 성공한 18대 대선도 문재인 후보와의 격차는 3.5%p 차에 불과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치러진 지난 19대 대선 역시 1위인 문재인과 2위인 홍준표의 표차는 컸으나 보수 대 진보의 진영 합계로 볼 때 52.2% 대 47.2%로 근소한 차였다. 내년 대선은 역대 선거들보다 더욱 진영대결의 구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 후보들의 비호감도는 거대정당뿐만이 아니라 여타의 군소정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높다. 정권평가의 성격이 강한 회고적 투표의 성격을 띠는 총선거에 비해 대선은 미래지향적인 전망적 투표의 성향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미래비전을 논하는 담론은 실종됐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대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프레임 대결, 거대정당의 유력주자들의 가족사와 과거 사건 등의 흠결이 선거를 관통하고 있다. 비교우위에 있는 후보에 대한 투표로 미래가치를 지향할 지도자를 가려내는 과정이 선거이지만, 내년 대선은 최악의 후보를 배제하는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자조(自嘲)가 과장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진영 대결의 양상은 강화돼 왔고 재작년 조국 사태는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굳히는 변곡점이었다. 후보의 흠결이 드러나고 문제적 발언이 이어지면 오히려 지지가 결집하는 정치의 역설이 기본 정치 문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선거 지형에서는 합리와 보편적 이성에 부합하는 후보의 경쟁력이 인정받을 수 없다. 민주적 리더십과 평균적 시민의 공공선을 담보하는 후보보다 진영 논리를 이용하여 이에 편승하는 후보가 최종 선수로 발탁되는 구조에서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견강부회와 왜곡된 역사인식이 오히려 강한 리더십으로 둔갑하는 게 한국선거의 현실이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 하기보다 진영의 후보를 감싸는데 급급한 정당은 거대한 이익과 이해를 공유하는 이익지향집단으로 변질되고 있고,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듯한 후보가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는 정치지형에서 선거의 순기능이 발휘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도지대를 선언한 후보군들이 거대정당의 독식구조와 적대적 공생의 카르텔 구조를 깨겠다고 선언했지만 진영정치의 규정력 속에서 이들의 운신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도지향의 정치가 선거가 임박하면서 양대 정당 중 어느 한 진영의 연대에 가담할 경우 중립지대의 정치의 한계를 또 한 번 노정하는 것일 수 있다. 증오 정치에 편승하면서 세력의 규모를 늘리고 지지자의 응집도를 강화시키는 진영정치의 폐해는 이번 대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양대 정당에 불리한 사건의 의혹이 나타나도 이를 호도하고 진실과 역사에 눈감으려는 편향이 적대적 공생을 숙주로 하는 퇴행적 정치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진술과 역사왜곡의 언설도 진영 앞에서 무력해지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해방 직후의 한국 상황을 분석한 저서인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는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앙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다. 현실과 이상, 명분과 실리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작업인 정치는 실종되고 집단적 권력의 탐닉과 위선, 허위가 난무하는 대선은 시민의 집단지성을 발현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형해화시키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제로 섬 게임의 극한 양상들이 펼쳐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규명되지 않은 주장과 왜곡을 일삼고, 프레임 정치에 함몰된 채로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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