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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오디세이] 허풍 심한 사람은 약점이 많다

2주 전에 강원도 정선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전국적인 회의가 있어 다녀왔다. 2박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반도지형’을 처음으로 여행하게 됐다. 주차요금이 포함된 입장료를 내고 각자 칡주스를 하나씩 손에 들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소나무 산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먼 곳에 다다랐을 때 그 유명한 한반도지형이 신비롭게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먼저 도착해 사진을 찍으면서 서로 작은 소리로 ‘와우~ 대박^^’ 감탄으로 더운 땀을 식히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장난기 가득하게 두 손을 높이 들고 ‘대한민국~ 짜 자짝 짝짝’을 손벽치며 2002년 월드컵 구호를 외쳤더니 분위기가 썰렁하지 않게 먼저 온 몇 사람도 같이 호응해 대한민국을 외쳤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천안에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는 수원에서 왔다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 둘을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며 핸드폰을 내밀었더니 흔쾌히 사진을 찍어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그분들은 먼저 온 길로 되돌아가고 남아 사진 몇 장 더 찍고 동행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말을 해 깜짝 놀랐다. “형님, 제가 형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까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자신감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서 표현되는 모습인데 저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인데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됐다. 과장이나 허풍은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가 더 많다. 모든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할 때 허풍을 떤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과도하게 허풍을 떨 때 그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은 단지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내가 과장하고 허풍을 떨 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매스컴의 정치 뉴스를 보면 과장과 허풍이 하늘을 찌를듯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논리에도 맞지 않고 예의에도 어긋나며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목적도 불분명하다. 단지 진영논리에 갇혀 소리를 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과장과 허풍에 국민들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실망하고 말았다. 추석 때 문경의 한 리조트에서 가족들이 모여 명절을 보냈다. 대구와 대전에 있는 자녀들이 같이 모일 수 있는 중간 지점이고 아버지께서 10년 동안 광부로 사셨던 문경에서 모이면 좋겠다고 해서 문경에 살고 있는 동생의 도움으로 좋은 장소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문경에는 문경새재, 문경오미자, 문경약돌고기, 문경사과로 지역 먹거리와 관광상품이 특화돼 있었다. 문경새재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라고 하고 문경약돌 삼겹살 식당도 여러 곳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레일바이크를 타며 허풍스럽지 않은 작은 도시의 최적화한 지역 상품화와 개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수원에도 10월에 화성문화제와 수원성을 중심으로 많은 축제가 열린다. 과장과 허풍의 거품을 제거하고 내실 있고 수원스러운 행사로 시민들과 수원을 찾는 분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만족했으면 좋겠다. 수원특례시는 정조대왕의 효와 수원갈비뿐 아니라 깨끗한 화장실문화로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가 돼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꾸고 다듬으면 될 일이지 타 도시를 흉내 낼 필요는 전혀 없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자신감을 조금 더하고 겸손을 겸비하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내가 될 수 있다.

[삶, 오디세이] 불교적 하루, 연기적 삶

‘중도, 깨달음’ 등 불교를 대표하는 많은 표현이 있지만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불교는 수행과 더불어 다양한 사상과 기복적 요소까지 더해지며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교에 대한 물음에 가장 적절한 답은 아마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法)’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연기(緣起)’다. 연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인과(因果)’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이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긴다’는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이 인과적 연기법에 대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연기에는 ‘자업자득, 인과응보’라는 특별한 법칙이 있다. 자신이 지은 어떠한 원인은 업(業)이라는 결과가 돼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두 표현과 업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불교를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로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법칙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원인이 돼 다음의 결과가 되는 것이기에 지금 좋은 일을 하면 그것이 원인이 돼 좋은 결과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선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업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 선업과 악업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하여 선업을 지으면 삼선도라는 좋은 곳에, 악업을 지으면 지옥을 포함한 삼악도에 태어난다고 한다. 즉,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산다면 그로 인해 좋은 결과가 생겨나 그 자신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불교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연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제를 비롯한 지난날의 내가 보내온 원인의 과정이다. 만약 지금이 행복하고 좋다면 지난날의 자신에게 감사해야 하고 만약 피로하고 힘들다면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그것을 수정하도록 정진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다면 오늘의 이 하루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깝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이 하루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나에게 선업이라는 법의 힘을 만들어 뜯어보지 않은 선물을 전해줄 것이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볼 것이며, 법을 보는 사람은 연기를 볼 것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잘 사는 법, 행복해지는 법의 첫 번째는 연기적 삶을 사는 것이다. 내 곁의 인연들과 화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 그 모든 것들과 행복해지기 위한 오늘을 산다면 내일은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 삶의 실천이며 마음의 주인이 돼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다. 오늘은 어제의 이어짐이며 내일은 오늘의 이어짐이다. 이 시간 속에서 마음의 주인이 돼 자신의 하루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삶을 살자.

[삶, 오디세이] 우리 시대의 언어 풍경

‘노 잉글리시, 노 햄버거’. 영어를 하지 않으면 햄버거를 팔지 않겠다는 뜻으로 영어권 국가의 이민자와 방문객들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 사례로 지속적으로 인용되는 문구다. 이렇게 언어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 그만큼 ‘언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연상되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당장에는 말, 소리, 문자 같은 것들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모어나 학습하기 어려워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외국어 등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언어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 이러한 특정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대중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중, 즉 한국의 언중에게 언어란 뜻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관습적 체계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언어 활동으로 표현된 여러 결과물을 통해 언중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밝혀낼 수도 있을까. 사회언어학에서는 언어가 사회적 요인에 따라 변모하는 양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방문객이나 이주민이 급증해 다중 언어·문화(multi-language & culture) 사회로 진입 중이거나 이미 진입한 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언어학 연구의 한 방법인 ‘언어 경관(linguistic landscape)’ 분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언어 경관이란 언어의 풍경으로 자연 경관이 식물과 동물 및 각종 구조물 등으로 구성된다면 언어 경관은 문자, 그림 등 시각적으로 읽혀지는 모든 기호로 구성된다. 거기에는 공원, 지하철, 극장 등에 게시되는 각종 안내문, 특정 장소의 기능(화장실, 기도실 등)이나 금지 사항(금연, 정숙 등)을 표시하는 픽토그램, 도로에 세워지는 교통신호나 표지판, 상업적 기능을 하는 광고판 및 간판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또한 언어 경관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 경관을 분석해 보면 어떤 지역이나 특정 영역에서의 시간 흐름에 따른 언어 사용 양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것이 모어 중심의 극단적인 단일 언어 사용 양상을 보인다면 그 사회나 공동체에는 아직 다문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외국인 방문객과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공론화되지 않은 곳으로 볼 수 있다. 그 반대로 모어나 영어 외에 특정 언어 사용이 도드라진다면 그 지역은 해당 언어권의 이주민들이 사회문화적 연대를 이루고 거주하는 타운(town)으로 이미 자리 잡았거나 그렇게 변모 중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이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다문화사회로 변모 중이란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 앞서 비슷한 길을 걸었던 여러 국가의 사례를 기억할 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있기도 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문화 및 국제화 시대에 과연 우리 주변의 언어 경관은 어떠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이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몰고 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주민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입국하는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에 대한 바른 인식과 배려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디 한국에서만큼은 ‘노 코리안, 노 김밥’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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