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변평섭 칼럼] 사도세자 대신 民生을 뒤주에 가두다

카지노 도박 사이트

image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역사학자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아이디어를 영조 임금에게 진언한 인물로 홍봉한을 지목했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이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딸이다. 그러니까 사위를 죽이는 일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역사는 그가 사도세자의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해 많은 억측과 논란이 있었으나 이덕일씨는 그것이 노론과 소론 당쟁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소론이 집권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노론에 대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위이지만 왕의 길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거사를 꾸몄다는 것. 또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보호하는 길이라 믿었고 그래서 혜경궁 홍씨도 친정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영조가 당파 싸움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내세웠던 것인데 오히려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물이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와 소통이 되지 않아 울화병에 걸렸으며 그래서 궁녀를 살해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여 임금의 노여움이 쌓여 갔고 그것이 결국 1762년 7월5일 뒤주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당시 홍봉한은 좌의정, 영의정을 거치면서 영조로부터 큰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위를 살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누구 하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었다. 때마침 한여름 복날이 겹쳐 뒤주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고 배고픔과 목마름에 버티질 못해 7월12일, 여드레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27세 혈기 왕성한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비극적인 세자의 죽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대로 노론과 소론의 당쟁으로 일어난 희생이라면 이야말로 권력의 광기(狂氣)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당쟁의 광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260년 전의 당쟁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뒤주에 갇힌 것이 사도세자가 아니라 국가 운명이라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우리나라인데 지난 8월 무역 적자가 94억7천만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나타냈다. 최악의 무역 적자뿐 아니라 경상수지도 적자여서 경제전문가들은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환율 문제는 더 심각하다. 13년5개월 만에 1천380원을 갈아 치웠는데 이대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한다면 1천4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1천450원까지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의 금리 인상 발언 한마디에 달러 강세와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장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만 이런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다.

배추 한 포기에 1만원을 돌파하는 등 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말로만 ‘민생’, ‘민생’ 하고 떠들지 관심은 오직 저급한 정쟁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 조문까지 정쟁이 되는 나라다. 임금이 죽었을 때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하찮은 문제로 서인·남인이 뒤엉켜 피 터지게 싸운, 나라를 망친 당쟁과 무엇이 다른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죽인 정쟁, 조선 왕조를 망하게 한 정쟁, 정말 이 ‘정쟁의 광기’, 그 DNA를 어찌해야 하는가!

사도세자가 아닌 국민 경제가 뒤주에 갇힐 판이니 말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