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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초심

올해는 우리나라 공인중개사제도가 생긴 지 4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의 ‘택지건물취인업법’을 모태로 1984년 제정된 ‘부동산중개업법’은 지금의 공인중개사법과 비교해도 큰 틀에서는 그 내용이 다르지 않다. 당시 부동산중개업법 제1조에는 ‘부동산중개업을 건전하게 지도·육성하고 부동산중개업무를 적절히 규율함으로써 부동산중개업자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한 부동산거래질서를 확립해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제도 도입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를 곱씹어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들썩이던 부동산 투기 현상과 혼탁한 부동산시장 질서를 전문가인 공인중개사제도 도입으로 해결코자 했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법에서는 일본처럼 협회 설립을 의무화했으며(법 제30조) 모든 회원은 협회 회원이 되도록 하고 협회의 정관과 규정을 준수토록 했다(법 제16조, 제31조). 대(對)국민 공신력 제고를 위해 자격시험도 2년에 한 번씩 국가가 정한 수 이내를 선발하기 위한 상대평가로 치러졌다. 그런데 IMF 직후인 1998년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불필요한 규제에 해당한다며 대폭 완화했다. 협회 가입은 비의무화로 바꾸면서 지도단속 권한을 폐지했고 시험은 60점만 넘으면 합격할 수 있는 절대평가방식으로 바꿨다. IMF 사태로 힘들어진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줘야 한다는, 실업통계수치를 조금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에 기인한 변칙적 제도 변경이었다. 그로부터 26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흘러 현재에 이르렀다. 행정관청과 경찰이 손 놓고 있는 사이 부동산컨설팅이라는 이름의 무등록업자와 갭투자라는 이름도 이상한 재테크 수단이 판을 치고 부동산 전세사기로 전국에서 선량한 서민들이 연일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공인중개사 자격자는 무려 53만6천명에 이르고 연간 휴폐업 중개사무소는 2만여개에 달하고 있다. 참다 못한 중개업계에서는 지난해 협회를 통해서라도 자신들을 감시·점검과 단속해 달라며 국회 청원을 냈고 5만명 요건도 충족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공인중개사제도가 도입됐던 40년 전 당시 초심을 이제는 되새겨야 할 때다.

[천자춘추] 다중지능이론과 교육개혁

IQ(지능지수) 이론은 사람의 지능은 필기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문제 해결 능력이며 저마다 타고나는 고정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훌륭한 환경 속에서도 타고난 지능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지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관점은 지능이 실제 삶 속에서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의 성공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지능검사가 평가하는 지적 능력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는지 측정하기에도 미흡하다. 특히 창의성과 예술성은 지능검사로 점수화하기 힘들다.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은 사람이 여러 종류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IQ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능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은 인간에게는 여러 갈래의 능력과 지능이 있고 환경과 훈련으로 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적 능력을 여덟 가지 형태로 구분한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이 대표적이다.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하는 능력인 언어지능이 있고 숫자와 논리를 다루면서 기호 간 논리적 관계를 개념화하는 논리수학지능이 있다. 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창작·연주하는 음악지능이 있고 공간을 구성하는 공간지능이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인간친화지능이 있으며 자기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자기성찰지능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구분하고 자연을 인식하는 자연지능이 있고 신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신체운동지능이 있다. 여덟 가지 영역의 지능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등하다. 또 각각의 지능은 독립적으로 뇌의 특정 부분과 관련돼 있으면서도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형태로 강화된다. 모든 사람이 여덟 가지 지능을 갖고 있지만 각 지능의 높낮이 분포는 개인마다 다르다. 각 지능은 그것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전히 우리 교육은 IQ 이론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수능이나 내신 등의 입시제도는 IQ에 기반한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에만 의존해 획일적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축구 선수 손흥민의 활약상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 실력을 IQ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어·수학 성적이 우수한 정치인들보다 인간친화지능이 탁월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더 많이 들어왔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한 교육적 토대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아이들의 재능과 진로를 적절하게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낡은 잣대와 결별해야만 교육개혁이 가능하다.

[천자춘추] 농촌체험형 쉼터

농림축산식품부는 12월부터 농지법을 개정해 농지에 임시 숙소로 활용할 수 있는 농촌체류형 쉼터제도를 도입한다. 농촌체류형 쉼터는 도시과밀화 등 사회여건 변화 이후 높아지는 귀농·귀촌 수요에 부응하고 농촌에서 농업과 전원생활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임시 숙소 형태의 거주시설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했다. 그래서 완화된 조치로 농지개혁법 제9조 제2항에 특별히 농지를 취득하려면 해당 지역에 농사를 지은 것을 전제로 마을 농지위원회가 확인해주면 농지매매증명이 발급된 적이 있다. 그 후 농지거래의 숨통을 트기 위해 농지법 제8조에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영농사실을 확인 후 발급이 아니고 앞으로 영농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보고 발급했으며 1천m² 미만의 토지는 주말영농체험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 줬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지가 타 용도 전환이 가능한 농지 위주로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요즘도 보도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심심찮게 국무위원 후보자가 농지 거래를 할 당시 현지에 거주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 단골 메뉴다. 이러한 현상은 농지거래가 투자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곳에 투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전에는 농지취즉자격증명 발급제도가 업무 처리 기간이 5일로 누구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매월 2회 개최하는 농지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더욱이 농지거래를 하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담보가치를 보고 감정을 받아 거래하던 상황이 바뀌어 현재는 은행을 통한 거래에 있어 DSR제도의 확대로 거래가 꽉 막혀 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농촌체험형 쉼터를 시행한다고 해서 별안간 거래가 활성화되고 소멸하는 농촌이 활성화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섣부르다고 할 수 있다. 12월부터 시행한다는 농촌체험형 쉼터는 최대 존속기한을 12년으로 계획하고 있다. 12년만을 기대하고 농지거래를 한다는 발상은 단순히 숫자만을 의식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현재 농지 거래의 동맥경화 상황은 무엇보다도 거래에 있어 적용되는 엄격한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와 DSR 강화에 있다. 자본주의는 내 것이 영속적인 것을 바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출발점이다. 그것을 간과한 것이 사회주의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농촌체험형 쉼터는 4년에 한 번씩 사용 허가를 연장해야 하고 그 기한도 12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다. 물론 지금도 그것이 재테크의 한 수단이 된다면 너도나도 묻지마 투자를 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천자춘추] 백남준의 ‘촛불TV’

백남준과 인간문화재는 만날 일이 없었다. 장르 자체가 다른데 비디오아트와 공예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하나다. 경기도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2024경기무형유산특별전 ‘극락 PARADISE’에 가면 이 사실을 목도할 수 있다. 칠흑(漆黑)같은 방에 오불탱화와 고행상, 나전칠기, 범종의 소리 속에 철가방 TV 케이스 안 촛불이 넘실대며 홀로 내 몸을 태워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1975년 제작된 백남준의 ‘촛불TV’다. 백남준은 불교라는 역사전통을 지렛대 삼아 TV 내장을 완전히 들어내고 촛불을 켰다. 알고 보면 이런 극단의 반문명 예술이나 전위예술도 없는데 콩대로 콩을 볶고 있는 격이다. 이미 백남준은 50년 전에 인공지능(人工知能·AI)과 같은 기계가 인간이 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시대가 오늘날임을 증거하고 있다. 기계시대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고해(苦海)다. 그야말로 구멍 난 배가 아닐 수 없는데, 물을 퍼내지 않으면 해저에 가라앉고 만다. 백남준은 기계시대 고해를 촛불이 된 자신을 태우면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형유산 장인들도 촛불이기는 마찬가지다. 단청으로, 생칠로, 나전으로, 쇳물 녹이며 평생을 하루같이 몸을 태워 역사 전통의 불꽃을 피워냈다. 세상에 자청해 하는 이런 극한직업도 없지만 한 생각을 돌라면 차안(此岸)인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무형유산(無形遺産·Intangible heritage)은 지금 여기 예술의 불씨다. 현재 K-컬처는 무형유산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불씨가 불꽃이 돼 활활 타오른 결과가 오늘 예술이다. 하지만 무형유산의 현실은 전승공예관에서 박제화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전통이 미래다’라고 노래 부르면서도 미술시장과 뮤지엄에서 괄호 밖에 내놓은 존재다. 며칠 전 막을 내린 2024 키아프리즈 무대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다. 2조원대의 고양 K-컬처밸리나 4천억원대의 서울아레나도 무형유산과는 무관하다. 여기에 쏟아붓는 예산 10분의 1만 해도 100배의 효과를 내는 것이 무형유산인데 말이다. K-컬처의 뿌리와 본체인 무형유산은 경기도만 해도 기능 41종, 예능 30종 등 총 71종이 지정돼 있다. 그 무한가치를 국가 공공 민간이 시작 단계부터 정책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보호를 명목으로 인간문화재라는 온실에 가둘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지금 현재 예술과 진검승부 해야 한다. 더 이상 전통 따로 현대 따로 노는 세상이 아니다. 진정한 K-컬처의 격이나 깊이 두께 확보도 무형유산의 생생활활 여부에 달려있다. 까마득히 오래된 미래인 백남준의 ‘촛불TV’가 이런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이런 기막힌 모순이 실존에서는 더욱더 공고화되는가. 한마디로 장인을 원형 모방만 일삼는 기능인으로 오인한 데 있다. 달이 아니라 손가락만 봐 온 것이다. 장인의 손을 통해 유형(有形)속에 내재해 있는 무형(無形)의 가치가 대대로 전수된다. 비물질적인,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는 장인의 극공(極工) 이후의 통령(通靈)을 통해서만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이 점에서 현대예술의 거장(巨匠)과 다르지 않다. 정신과 본질을 기준으로 보면 형상의 파괴나 전복을 일삼는 전위예술마저 무형유산이라는 역사전통에 전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존재의 배후를 드러내는 모방 내지는 미메시스야말로 창조의 어머니다. 여기서 장인(匠人)과 거장(巨匠)은 하나로 통한다. 오늘도 전시장의 백남준 TV 속 촛불은 불(佛)이라는 역사 전통을 태우며 도도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 온 세상을 돌고 돌아 비디오아트가 무형유산의 본자리에 앉아 있다. 이 지점에서는 기존 백남준 언어의 난해함도 저절로 풀린다. 극락이 바로 여기다.

[천자춘추] 노후 빌라촌 재정비 ‘뉴:빌리지’

정부는 지난달 말 ‘뉴:빌리지 사업 공모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이달 초 지자체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뉴:빌리지 사업은 올해 3월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처음 발표된 사업으로 현 정부의 공공분양주택 정책인 뉴:홈에 이어 노후 저층 주거지역 정비에 대한 정책 브랜드다. 이는 노후 단독주택, 빌라촌 등에서 소규모 정비, 개별 건축과 연계해 저층 거주지에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국비로 공용주차장,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과 방범시설, 주민운동시설, 도서관 등의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한다. 연내 선도사업으로 노후 단독·빌라촌 30곳을 대상지로 선정해 최대 국비 18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2029년까지 비(非)아파트 5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국 주택 중 아파트의 비중은 1990년 말 기준으로 22.7%에 불과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64.6%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 주거생활은 아파트로 획일화돼 가고 있다. 저층 주거지의 단독주택, 빌라 등은 상대적으로 주거비용이 저렴해 서민과 청년들의 보금자리이자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도시 내 다양한 주거 형태 중 하나로 균형 있게 관리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비해 불편한 편의시설, 주택 노후화 등으로 인해 주거 만족도가 낮고 신규 공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뉴:빌리지 사업은 노후 저층 주거지를 보다 살기 좋은 거주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신규 공급을 늘리는 정책으로 매우 환영할 만하다. 특히 재개발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도권 중소도시, 지방도시 등에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한편으로 정책 추진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사업 내용으로는 기반·편의시설 설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지원이 가능하나 실질적인 주택 정비와 관련된 수단은 자율주택정비사업 외 마땅한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신규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정비수법의 도입이 필요하며 필지의 권리 관계 조정 및 부정형의 대지 형태를 정비할 수 있는 토지구획정리와 연계한 수법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택 정비에 대한 전문적인 컨설팅 및 계획수립 지원, 철거비 지원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소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며 아파트 중심으로 획일화돼 가는 주거생활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거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새롭게 추진되는 뉴:빌리지 사업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천자춘추] 미니멀 라이프 소감

집에 놀러 가도 되냐는 물음에 난 당황했다. 물론 오셔도 되지만 우리 집은 앉을 자리도 없어요. 앉을 자리 없는데 와도 된다니, 허무맹랑한 대답에 지인은 바로 그 모퉁이 카페에서 만나요, 했으나 마음이 명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TV에서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사람의 일상을 본 적이 있다. 폐지, 페트병, 캔, 양은 냄비, 빈 병, 폐비닐 등 쓰레기라고 하는 물건들이 집 안 곳곳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사정은 어떤가.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던 책을 글 쓰기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26년 모은 책들이 방과 거실에 정리할 공간 없이 쌓여 있다. 책상 위 널브러진 책들은 물론이고 침대, 식탁, 화장실에도 몇 권씩 버티고 있는데 그때그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사들인 책들과 살 때마다 몇 권 더 집어 든 책들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꽤 있지만 절판된 책, 품절된 책을 얻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텍스트에서 정보를 얻어 구매한 책, 선호하는 작가의 책들, 그리고 각종 문예지 등등. 여전히 벽돌처럼 쌓이는 책들이 주인 행세하며 거주인들까지 몰아낼 형국이 됐다. 결국 사다 쌓은 책들이 방문할 손님을 차단한 것이다. 바리케이드를 친 것이다. 친구가 앉을 자리를 책들이 대신하고 가구가 대신하고 TV가 대신한 것이다. 결핍이 많은 존재여서 친구를 초대할 자리에 책을 사다 배치하고 친구 대신 책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깊은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방문한 타인들은 대개 집 안을 살피며 침묵으로, 혹은 간섭으로 그 생각을 읽도록 불편을 주지만 물건들은 무조건 복종이어서 가만히 엎드린 것들 거느리는 맛이 있다. 그게 소유욕이 발동하는 지점일 것이다. 괄시받고 소외당하고 배척당하는 이면에 작동하는 무의식이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나를 내세울 만한 무언가가 소유욕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쓰레기 수집하는 사람과 나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허무와 공허를 메우려고, 친구의 부재와 나의 빈약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존재 증명을 위해 난 책을 선택했을 뿐이다. 책은 날 포장할 도구였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이미 쓰레기다. 쌓인 서적을 쓰레기 더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요즘은 카페가 집을 대신할 사랑방 역할을 한다. 초대하지 않으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집은 적막이다. 활기가 없고 에너지가 제로다. 물건을 버리고 집을 비우며 찻상 앞에 친구를 초대할 일이다. 마주 앉아 사는 얘기, 서로의 관심사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건강한 삶의 의미를 이어갈 일이다. 이젠 무소유를 실천하고 미니멀리즘을 실행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천자춘추] '율곡정신문화진흥원'에 거는 기대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1536년 덕수 이씨 원수 공과 평산 신씨 사임당 사이에 태어났다. 이미 8세 때 ‘화석정 시’, 10세 때 ‘경포대 부’를 지었고 29세까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해 이조·병조판서와 대사간을 지냈다. 그의 저술 자경문(自警文)과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에 그의 교육사상이 잘 드러나 있고 이기일원론과 민본사상으로 압축되는 정치철학과 정의로운 경제활동, 부국강병 등을 주장해 류성룡으로부터 “율곡은 참으로 성인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율곡의 학문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 근거해 합리적 판단을 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인격과 학문을 닦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은 후학 양성에 주력한 이황과 달리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조선 사회를 개혁하는 데 힘썼다. 이황이 성리학의 기틀을 닦았다면 율곡은 그 토대 위에서 ‘경세(經世)’로 나아갔다. 특히 기호철학의 중심 인물인 우계 성혼과 율곡은 임진강변 율곡리와 늘노리를 번갈아 오가며 아홉 차례나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때 두 사람의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을 통해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는데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원리주의에 머물렀던 성리학을 세계적인 동양철학으로 발전시킨 전성기로 높이 평가한다. 기호철학은 휴암 백인걸을 비롯해 율곡, 우계, 구봉 송익필, 남계 박세채,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등 수많은 학자를 배출했고 이들을 모시는 향교와 서원이 6개소에 이른다.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 중 파주와 관련된 분이 여섯 분이나 된다는 것은 파주가 동양철학의 본산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화는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수기치인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K-컬처의 바탕에도 유교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안동에는 1995년 경북도가 설립한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다. 논산에는 2022년 충남도가 설립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유교 철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파주에는 이런 연구·교육시설이 없다. 파주문화원에 율곡학 사업단이 설립돼 콘텐츠 개발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경기도와 파주시가 나서 전통문화 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고 유교문화의 전통과 가치를 인류 유산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율곡정신문화진흥원’을 설립해야 한다. 최근 자운서원 내 ‘율곡연수원’을 폐지하고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경기도교육청 결정이 갈등을 빚고 있다. 연수원 시설을 존치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본산이자 경기도 기호철학의 본향인 파주에 율곡정신문화진흥원을 설립하는 게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천자춘추] 금투세 논쟁을 바라보며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금투세’라고 할 수 있다. 야당 내에서도 의견차가 있고 여야 간 입장 차이도 분명하다. 여야 모두 토론을 통한 합의를 말하고 있고 이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일정 금액 이상 이익을 실현하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게 금투세의 취지다. 투자자들이 이해당사자가 될 텐데 이들은 계층적 관점에서 최소 중산층 이상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소위 ‘굴릴만한’ 여유 자산이 있어야 투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빠듯한 서민 노동자들이 금융상품에 투자할 여력이 있을까. 거의 없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임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금투세 전에 ‘노란봉투법’ 이슈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노동 현장의 책임 소재 등을 다루는 법안이다. 이 이슈가 금투세만큼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가. 여야가 서로 비난만 하다가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에서 이를 다시 처리하려면 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국회 구조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폐기될 것이다. 금투세 논쟁은 중요하다. 여야가 치열하게 토론하고 잘 합의하기 바란다. 다만 중산층 이상 계층이 중심이 되는 이슈에는 이토록 치열한 데 반해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이해관계에 대한 논의를 등한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양극화, 저출산, 실업, 복지 등 현안들을 풀어갈 때 ‘노동의 시민권’ 문제를 회피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여야가 금투세 논쟁에서 보여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노란봉투법 논의 과정에서 보여줬다면 법안이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로 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 모두 필요할 때는 노동자와 서민을 부르짖지만 정작 현안에서는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보다 노동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한 이는 바뀌지 않는다.

[천자춘추] 공동체 위한 기후행동 서약

올여름 우리는 덥다는 말을 그리고 역대급 폭염, 열대야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생활 활동으로 인해 현재 기후변화의 동인이 됐음을 인식하고 어떤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참여해야 할지 준비할 시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더 해보자는 관심과 의지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통근하는 많은 직장인 중 한 명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실천하고 있다. 때에 따라 승용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 중간중간 걷기도 하고, 환경보전 관련 업무 종사자로서 가능한 한 텀블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7월 ‘기후행동 기회소득’을 알게 됐고 기후행동 서약에 동참했다. 필자의 경우 약 9kgCO2eq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 국가온실가스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3.1tCO2eq로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필자의 경우 전체 배출량의 약 0.07% 감축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1년 동안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기후행동을 하면 1% 가까이 또는 그 이상 감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나를 위한 활동이면서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상호 연결된 문제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동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임을 고려할 때 경기도라는 지리적 공통성과 기후변화 대응, 탄소 저감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에서 우리 공동체를 위한 기후행동 서약에 함께 참여했으면 한다. 물론 함께 오는 보상(reward)은 우리의 소소한 행복과 더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위한 것으로 즐겼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올 한 해 동안 우리 공동체를 위해 기후행동 서약에 동참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활동을 함께했으면 한다.

[지지대] ‘긱 이코노미’ 시대

요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관련 있는 사람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다. 긱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은 ‘긱 워커(gig worker)’라 한다. ‘긱’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그때그때 섭외해 단기공연 계약을 맺어 공연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이런 ‘긱’ 개념은 미국 경제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주로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단기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등 초단기 노동을 제공한다.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을 주로 고용하는 긱 이코노미는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주 5일 40시간씩 회사에 있는 정규 근로자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주당 36시간보다 적게 일한 단시간 근로자는 680만8천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7천명 늘었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23.6%까지 뛰었다. 주 36시간 미만 일하는 ‘긱 워커’ 증가세는 3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청년층 긱 워커의 증가는 취업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단시간 근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기준 청년들이 직장을 잡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이었다. 고령층의 근로 여건도 답답하다. 7월 기준 70세 이상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135만6천명인 반면, 36시간 이상은 71만8천명이었다. 정부가 확대한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하루 3~4시간 일하는 데 그친다. 긱 경제가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일자리의 질이 나빠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논란이 있다. 긱 이코노미는 투잡, 쓰리잡 등 N잡러를 양산하기도 한다. 산업구조는 변하고 먹고살기는 여전히 힘들다.

[천자춘추] 체육협회의 변화와 혁신

안세영 선수는 7월6일,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 및 훈련 방식 등을 비판하며 협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 파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필자는 구기종목 국가대표 선수, 국가대표팀 지도자(코치), 협회 임원(이사)을 두루 역임했기에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협회, 선수와 지도자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성과가 나타난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위업을 이룬 대한양궁협회와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 혼합복식 동메달을 따낸 대한탁구협회가 그 본보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가 점검의 기회로 삼아 MZ세대 선수들을 보듬을 수 있는 협회로 거듭나기 바란다. 협회가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변화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먼저 협회장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선수가 필요하면 라켓 잡는 열정의 회장, 무더위에도 매 경기 관람하며 힘을 실어주는 감동의 회장, 선수 도시락을 먼저 시음하며 체크하는 사랑의 회장이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협회장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선수를 보듬어 주는 회장의 등장을 바라고 있다. 회장은 열린 마음을 갖고 선수, 구성원과 기꺼이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선수들, 지도자들의 신뢰다. 서로 믿고 한마음이 돼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및 지도자의 선임이 파벌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공정,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오로지 실력을 통해서만 선발돼야 더욱 능력 있고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협회의 각종 규정, 내규 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제정·개정돼야 한다. 협회는 조직도에 선수위원회를 둬야 한다. 단지 구색 갖추기가 아닌 실질적인 선수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하며 선수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협회의 재정 안정화,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체계적인 우수 선수 육성 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협회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협회는 선수를 지원하고, 선수와 지도자는 그 고마움을 느끼고, 또 선수와 지도자는 서로에게 공을 돌리는 것이 ‘상식과 원칙’이 아닐까 싶다. 협회가 투명, 공정, 원칙, 시스템을 지키며 협회, 선수와 지도자의 삼박자가 하모니를 이룰 때 비로소 스포츠팬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고 스포츠 강국으로의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자춘추] ‘얼운님’을 기다리는 마음

아이들이 예쁘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든 모양이다. 뭘 바라는 건 없다. 우리보다는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더 풍요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늘 미래의 아이만을 생각했다. 항상 어른은 아이의 후견이었고 아이는 어른의 희망이었다. 부끄럽지만 받을 땐 소중함을 잘 몰랐다. 어수룩한 깨달음조차 늘 뒷북이었다. 갈수록 어른이 없다. 어른을 찾는 애절함은 더 커지는데 정작 어른 싸움에 아이들 멍은 더 짙어만 간다. 전통의 배구 명가인 화성의 송산고 배구부만 해도 그렇다. 학교 측과 지도자 간에 각자의 주장이 있고, 시각차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해법이 ‘배구부 해체’라는 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른 싸움에 아이 등 터지는 꼴이다. 아이들의 꿈,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원천 박탈하는 이유가 ‘어른들’ 싸움이라니 당최 어른스럽지 않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도 어른을 기다린다 했다. 그는 “누군가와 전쟁하듯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보호에 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 본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대답은 달랐다. 같이 살자고 얘기하는데 함께 죽자고 싸움을 키우는 형국이다. 비록 서투른 직접화법이지만 안세영의 고언을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음 올림픽에서는 안세영이 감사와 보은의 마음이 분노보다 더 큰 힘이었다는 금메달 인터뷰에 나서길 기대한다. 어른의 본뜻은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어른은 ‘얼우다’에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사랑을 나누다’의 뜻으로 ‘얼운님’을 기다리는 황진이의 마음으로 쓰였다. 어른은 어우를 수 있는 사람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로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이겨야 한다. 진정 공멸의 길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얼운님’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을 정부도, 협회도, 체육회도 헤아리길 바란다. 어차피 같은 시대 지구의 한 모퉁이를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이지 않은가.

[천자춘추]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

얼마 전 필자의 큰딸이 손목이 아파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병원에서 비급여 주사를 꽤 큰돈을 지불하고 맞았다고 한다. 동일한 주사에 대해 다른 병원에 문의해 보니 가격이 달랐다. 비급여 항목은 왜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먼저 ‘비급여’라는 용어부터 살펴보자.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진료를 ‘급여’, 적용되지 않고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진료를 ‘비급여’라고 한다. 대표적인 비급여 항목의 예시로는 시력교정술, 도수치료, 진단서 발급비용 등이 있다. 국민이 부담하는 소중한 보험료라는 한정된 재원으로 운영해야 하니 건강보험법령에 따라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은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 있다. 이러한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서 가격을 정하지 않으며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하므로 병원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사평가원)은 국민이 병원을 이용할 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큰 규모의 병원은 2013년부터, 동네 의원은 2021년부터 비급여 진료비용을 매년 공개하고 있으며 전체 항목은 623개에 해당한다. 비급여 진료비 정보 서비스를 함께 이용해 보자. 심사평가원 누리집 혹은 모바일앱 ‘건강e음’에 접속해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클릭한다. 상세 검색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지역, 의료기관 규모, 항목’을 필수값으로 입력하면 병원 목록이 검색 결과로 나온다. 병원의 세부 버튼을 누르면 가격정보를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고 병원별 가격 비교도 가능하다. 미처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검색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병원 홈페이지, 병원 내 인쇄물, 책자 등으로 비급여 진료비용을 고지할 의무가 있으므로 병원 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비급여 진료 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비급여 항목과 가격을 설명토록 하는 ‘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이제 비급여제도를 알게 된 독자는 병원에 가기 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비급여 진료의 병원별 가격을 먼저 비교해 보고 필요시 비급여 진료에 대해 설명을 요청해 알 권리를 보장받고 현명한 의료 선택을 하길 바란다.

[천자춘추] 고령자 교통사고 제도 개선 필요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고령자 증가에 따른 교통사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통계에 의하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2022년 3만4천652건에서 2023년 3만9천614건이 발생해 전년 대비 14.32% 급증했고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는 2022년 1만435건에서 2023년 1만921건이 발생해 전년 대비 4.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대책 및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인지지각검사 및 교통안전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해서는 운전면허 적성검사 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고 인지능력 자가진단과 교통안전교육을 2시간 이수해야 면허가 갱신되며 운전면허 반납 등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자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등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로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운전을 강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건강 상태 및 신체 능력은 개인차가 있으므로 연령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이 있고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역에선 자차 운전 외에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아 이동권 제한이라는 주장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러 의견을 감안하면 고위험 고령 운전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추가적인 관리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나날이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령자의 건강 상태 및 신체 능력 등에 따라 특정 조건하에서만 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도입 및 고령 운전자의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 장착 의무 등의 추가적인 대책 및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고령 보행자는 도로를 횡단할 때 차량의 위험을 제때 인지하지 못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고령자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선별해 고령 보행자 중심의 보행환경 조성, 속도제한, 무단횡단 방지를 위한 시설물 보강, 야간조명시설 설치 및 고령 보행자의 신체 특성을 고려한 보행신호 부여 등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고령자 교통사고 감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발굴 및 수립하고 지속적인 홍보 및 고령자 교육 등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천자춘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인천시청 본관 앞에 설치된 기후위기 시계 맨 앞자리가 5년에서 4년으로 바뀌었다. 산업화 이전 시기 지구 평균 기온보다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줄었음을 뜻한다. 인천시는 급박함을 알리며 시민들에게 에너지 절약, 일회용품 근절 등 일상생활에서의 탄소중립 실천을 적극 독려했다.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를 쓸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생산해내는 세상에서 시민들에게 친환경 생활 실천을 독려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탄소를 무참히 내뿜는 발전소, 기업에 더 강력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이다. 기후위기의 여파가 어떤 이들에게 더 가혹하게 가 닿는지 살피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행정의 역할이다.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 갇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들을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여긴다. 정부와 지자체는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타협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오히려 산업 부문 탄소 저감 목표치를 완화했다. 전국 곳곳에서는 토건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개인의 실천을 독려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 편리한 생활을 쫓아 살아온 인류의 역사가 기후위기 시대를 만들어냈다는 언어로 뭉뚱그려 누구 책임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 어떤 이들은 급격한 기후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기후재난이다. 우리는 이제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 문제를 구체화할 때 문제 해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기후위기는 어떤 경로로 발생했는지, 현재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으로 향하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사회정치적 권력이 있는 이들에게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놓친 많은 질문만큼 많은 시간을 놓쳐 왔다. 더 이상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9월이 되면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 올해 9월7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 슬로건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대상을 구체화하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재난 현장에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다. 많은 시민이 9월7일 광장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

[천자춘추] 비약물치료의 안전성

인지기능이 저하된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치매 환자를 위한 약물 치료는 최근의 혁신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완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이러한 비약물 치료의 범위는 인지기능 환자들에 대한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 자극훈련부터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지기능재활 등을 포함하며 넓게는 치매가족교실 등 보호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까지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비약물치료가 약물치료에 비해 환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면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들이 너무 쉽게 적용되는 모습을 진료 현장에서 종종 보곤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비약물치료 역시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이므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검증된 치료만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치매안심센터 등의 치매 관리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비약물치료의 필요성 역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비약물치료가 치매안심센터를 비롯한 지역사회 치매 관련 기관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상당 부분 그 효과와 안정성에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환자 몸에 약물이 투여되지 않아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더라도 치료 효과가 불분명한 치료를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약물치료의 진행 과정도 중요한 문제다. 비약물치료를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 비약물치료 역시 의료 행위이므로 반드시 자격이 검증된 의료진의 판단이 개입돼야 한다. 약물이 직접 투여되지 않는 비약물치료라고 해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의료진 없이 진행된다면 환자의 안정성 확보도 어렵고 의료법 위반의 소지도 발생한다. 최근에는 디지털의료의 발달과 함께 비약물치료에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늘어나면서 환자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절차가 간과되는 경우 역시 급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약물치료도 의료 행위이므로 반드시 정식 등록된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논문 자료를 바탕으로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 통과 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장비들의 비약물치료 적용 과정에서 신기술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이러한 과정들이 생략되고 심지어 검증되지 않은 기기에 불필요한 예산을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인지기능 저하로 고통받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는 것은 치매전문가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환자에게 행해지는 모든 의료 행위는 반드시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 효과와 안정성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하고 진행 과정에서도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친환경 파리올림픽의 힘

연일 무더위와 열대야로 지친 일상에서 이번 여름은 지구촌 최대 축제인 2024 파리 올림픽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전해오는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의 감동과 반가운 메달 소식을 접하며 무더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개막식 장소와 콘셉트, 페스티벌 형식의 행사를 보면서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이번 대회는 역사상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슬로건으로 파리의 대표적 장소인 상젤리제 거리의 그랑팔레,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광장 등 역사적인 장소를 활용해 친환경 경기장을 조성했다. 또 재생 가능한 전기 사용 등 탄소배출 최소화 노력, 수질 문제로 논쟁이 많았던 마라톤 수영 등 센강이 경기장으로 재탄생, 골판지 침대 등 선수들 숙소의 파격적 조성까지 상상 이상의 도전과 모험으로 시작한 창의성도 눈에 띈다. 반면 저탄소 운영을 위해 각국 선수단 숙소에 골판지 침대 설치와 자연 냉각을 유도, 공기순환을 촉진하겠다며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옥의 티다. 폭염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으로 더위와 싸워야 하는 이중 부담까지 주는 선수촌 환경은 무리한 친환경 실천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과거 우리나라 올림픽의 사례로 볼 때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종목별 경기장과 선수촌을 건립하며 화려한 대회를 마쳤지만 지금처럼 심도 있는 환경 문제는 접근도 못하고 축제로만 마무리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기를 거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13개 경기장 건립비로 8천956억원의 예산 투입, 그나마 환경을 생각해 녹색 건축물 인증과 중고 컨테이너 재활용 방안을 접목했으나 이 또한 경기장 시설에 대한 뚜렷한 사후관리 방안 없는 국제대회 유치에 한계성을 느꼈다. 이런 관점에서 2002년 월드컵의 사례를 보면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월드컵 종료 후 스타디움과 부속시설에 대한 사후관리 고민을 통해 도시민들의 생활체육시설과 복합구장으로 탈바꿈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축구진흥 및 사회공헌과 친환경 구현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공실 없이 목적과 트렌드에 맞는 공간활용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예산 지원 없이 독립채산제로 매년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건립된 축구전용 경기장인 이곳을 관리운영하는 (재)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은 목적사업 외에 ESG 경영의 핵심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더 나은 기회’를 만들고자 RE100, 태양광 발전설비 구축, 전기자동차 충전시설 확충, 경기장 내 ‘No Plastic’ 일회용품 제로화 선언, 주경기장 및 중앙광장 외부트랙 친환경 코르크 산책로(도심 속 맨발걷기) 조성 등 다양한 친환경 사업까지 영역 확장은 물론이고 태양광발전 사업을 올해 말 1차 기반구축 완료 후 2025년 2차 기반 구축사업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인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재단도 친환경 경기장으로의 탈바꿈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환경오염의 위기를 내세우며 긍정적인 역동성 창출과 친환경 원칙을 고수한 파리의 전략과 리더십은 과거 어느 대회보다 환영받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관련 시설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사후 활용까지 고민해 친환경 행사 콘셉트가 퇴색되지 않게 다양한 가치를 전파한 성공적인 사례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증명되지 못한 가난의 비극

얼마 전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후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초연금에 의지해 살던 이들은 26만원의 체납 전기료를 낼 수 없어 곧 전기가 끊길 예정이었다. 어디가 부서진 것인지 두 달 치 수도요금이 90만 원이나 나오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수도사업소 직원이 모자의 죽음을 발견하게 됐다. 벽이 갈라지고 집 안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부서진 모습들만 가득하다. 지병이 있던 아들이 먼저 숨지고 하반신이 마비돼 돌봄을 받지 못한 어머니가 뒤이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모두 수입이 없었지만 그들이 살던 집은 외관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기준 공시지가인 1억2천만원을 훌쩍 넘긴 1억7천만원이었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이나 주거비 지원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집은 85년이나 돼 낡고 작았으며 비가 새고 벽이 무너져 팔릴 것 같은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서 살던 모자는 자신들의 가난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고통스럽고 외롭게 사망하고 만 것이다. 뉴스는 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관심과 돌봄이었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관심과 돌봄’은 어떤 것이었을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면 모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루 한 번씩 도시락이 배달되고 긴급복지 지원이 이뤄졌다면 두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 있을까. 주거비 지원이 이뤄졌다면 주저앉은 개수대를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이들의 쓰러져가는 집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고칠 수 있었을까. 돌봄 인력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다면 설거지를 하지 못해 비닐봉지를 씌워 사용하던 그릇들을 설거지해 줬을까. 의료비 지원을 통해 아픈 아들이 하반신 마비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닐 수 있었을까. 이 비극적인 기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언제쯤이면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관심과 돌봄을 친인척이나 이웃의 일로 치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올까. 어떤 제도와 정책이 엉성하기만 한 사회적 안전망을 물 샐 틈 없는 단단한 안전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더운 여름, 곰팡이가 핀 쪽방에 앉아 전기료 무서워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여름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전기장판도 켜지 못하고 일곱 겹 옷과 오래 빨지 못한 이불들을 겹겹이 덮고 겨울을 나게 될 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더위와 추위를 이기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증명된 가난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천자춘추] 혼자 사는 삶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혼자 사는 삶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책들이 부쩍 많아졌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마찬가지다. ‘혼자 삶’이 사회 전반의 화두가 되는 것은 혼자 사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인 가구는 얼마나 많아졌을까?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782만 9천 가구로 전체 가구 중 35.5%를 차지한다. 2015년 1인 가구 비율이 27.2%였던 것에 비해 8.3%p 증가한 것이다. 1인 가구라고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바쁜 20대 직장인? 농촌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 노인? 전체 1인 가구의 연령대별 비율을 살펴보면 20대는 17.9%, 30대와 60대는 각 17.3%였고, 70대 이상은 19.1%였다. 1인 가구가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가구 형태가 된 것이다. 성별로 분석해 보면 남성 1인 가구는 30대 비율이 21.9%로 가장 높고 20대 18.1%, 50대 17.6%인데 반해, 여성 1인 가구는 70대 이상이 28.3%로 가장 높고, 20대 17.7%, 60대 15.2% 순이었다. 20~30대 1인 가구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은 초혼 연령의 상승과 비혼을 선택한 청년의 증가로, 40대 1인 가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혼인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이 반영된 것이다. 50대 1인 가구 비율은 이혼 증가나 비혼이었던 젊은이들의 나이듦의 결과 등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60대 이상의 1인 가구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높은 것은 성별에 따른 평균 수명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전반적인 연령대 비율은 유사하나 성별에 따른 비율이 다른 것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험이 달라질 수 있음을, 더 나아가 성별을 막론하고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누구나 1인 가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1인 가구 정책은 다양한 요인으로 형성된 1인 가구들의 특성과 연령대별 요구를 반영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기도는 1인 가구 정책제안 공모전을 추진하거나, 1인 가구 정책 참여단을 모집하며 도민 의견을 반영한 1인 가구 정책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재 혼자 살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지 않을 수 있고, 현재 여럿이서 살고 있지만 생애주기의 어느 순간에는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날이 올 수 있다. 지금 나는 1인 가구로 살아가 있는가? 다른 구성원과 함께 살고 있는가? 나의 생애주기 어느 시점에서 혼자 사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자.

[천자춘추] 마을 문화 잃어버린 도로명 주소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팔도로 나누고 각 도에는 중앙에서 관찰사를 보내 도의 행정을 맡아보게 했다. 도는 여러 고을로 구분했는데 고을의 격에 따라 부·목·군·현의 구별을 두고 부사·목사·군수·현령을 중앙에서 임명했다. 이들 고을의 으뜸인 수령은 행정뿐만 아니라 치안과 사법도 담당했다. 고을은 지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을은 특정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반영돼 있고 특정 지역에 대한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주소가 표기되며 해당 지역의 행정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주소가 일제를 거쳐 내려오면서 몇 정목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내려온 주소가 구 주소다. 이 구 주소가 2006년 10월4일 제정된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이하 도로명법)에 의거해 전면적으로 개정됐다. 이 법은 도로명 및 건물번호에 의한 주소 표기에 따른 관련 시설의 설치·유지관리·활용과 도로명 주소의 부여·사용·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국민의 생활 편의를 도모하고 물류비 절감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도로명법 제정에 대한 효율성은 길 이름이나 번지 등이 다양하게 표기돼 있어 실제로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법에서 말하는 ‘도로명시설’이라 함은 도로명사업에 의해 설치된 도로명판(지주 등 그 부속물을 포함한다)·건물번호판, 안내표지판, 그 밖에 도로명사업으로 구축된 전산자료, 전산시설 및 이와 관련된 부속 시설물을 말한다. 이에 따라 2011년 7월29일부터 2013년 12월31일까지는 기존 주소와 병기해 사용하다 이를 정부에서 2014년부터 전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구 주소와 현 주소가 공존한다. 정부에서 도로명 주소를 빨리 착근시키기 위해 새로운 주소를 부여받게 되면 도로명 주소가 없으면 행정행위를 할 수 없다. 건물이나 도로의 세부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때가 있어 정확한 위치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지자체 민원부서 주무관들은 건축 관련 민원서류가 접수되면 우선 위성위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인터넷 지도를 보고 건축물의 불법 여부를 확인하고 불법이 확인되면 불법을 제거하고 민원 서류를 접수하라고 통보한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자 하면 내비게이션이 막히는 길을 우회해 가는 길까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도착시간까지 일러준다. 모든 자료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치면 전산자료가 순식간에 바뀐다. 구 주소를 사용해도 모든 자료가 순식간에 저장되고 활용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굳이 주소가 꼭 외국의 스트리트가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도로명 주소 사용을 강제하다 보니 고을을 중심으로 전해지던 마을 고유의 문화가 없어질 지경이다.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된 마을 가꾸기는 지방을 중심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로 인해 고을을 중심으로 이어져 가던 고을의 전통과 문화가 사장될 위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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