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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라면 삼국지의 승자

매운맛을 앞세운 한국 라면의 인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우리 라면을 먹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영상이 줄을 잇는다. 엊그제 ‘농심’은 연간 10억개를 생산하는 동남아와 유럽 수출 전용 공장을 부산에 새로 짓기로 결정했고, 관세청은 올해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라면의 출발은 오늘날 ‘삼양식품’의 뿌리가 된 ‘삼양공업’이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와 기술로 만들어 1963년 9월 시장에 내놓은 ‘삼양라면’이다. 오는 15일로 61세 생일을 맞는 이 라면은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1958년 ‘닛신(日淸)식품’이 ‘치킨라면’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지금과 같은 즉석요리 식품으로서 세상에 첫선을 보인 라면이다. 이렇듯 우리의 라면은 일본에서 배워온 것이고, 그 이름도 일본어 ‘라멘’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 ‘라면’은 무슨 뜻이고, 어떻게 해서 생긴 말일까. 라면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이런 것이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밀가루로 여러 종류의 면을 만들었는데, 이 중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계속 잡아 늘여 가늘게 만든 것이 ‘수타면(手打麵)’이다. 이를 중국 북방(北方) 지역에서는 ‘拉麵(납면•중국어 발음은 ‘라미엔’에 가깝다)’이라 불렀다. ‘拉’은 ‘끌다, 당기다’ 외에 ‘치다, 때리다’라는 뜻도 있다. 면을 가늘게 만들려고 나무판에 계속 치고 당기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1937년 일본이 일으킨 중일(中日)전쟁 때 ‘拉麵’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중국군이 말린 ‘拉麵’을 전투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는데, 중국군 포로들을 통해 이것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그 이름까지 함께 전해졌다는 얘기다. 그 뒤 ‘닛신식품’이 이를 응용해 기름에 튀긴 면을 말린 다음 물에 잠깐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새롭게 개발했다. 따라서 라면은 그 뿌리가 중국에 있으나 즉석식품으로서의 원조는 일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을 통해 라면을 배운 대한민국이 전 세계 라면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이는 영국의 유명 방송사가 “한국의 라면이 전 세계를 제패(制霸)했다”라고 보도할 정도인데, 한편에서는 “매운맛만으로는 머지않아 그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우리 기업들이 어디 보통 수준인가.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불합리한 간섭만 없다면, 다 알아서 창의적인 대응책을 찾아내 더욱 맛있고 인기 있는 라면을 계속 만들어 낼 테니까.

[인천시론] 머나먼 배곧대교

지난달 18일 수원행정법원은 시흥시가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을 상대로 낸 ‘배곧대교 건설사업 재검토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기각과 달리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청구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때 내리는 결정으로 이유는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않았다. 대개 각하 결정은 당사자적격 내지 소의 이익이 없거나 제소 기간, 절차상 하자, 중복 제소 등을 이유로 내리게 된다. 법원이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추측만 가능한데 절차적으로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배곧대교가 민자사업이란 점에서 당사자적격 내지 소의 이익과 관련될 개연성이 크다. 시흥시는 2014년부터 배곧대교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다 2020년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배곧대교 민자투자사업 전략 및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이듬해 본안에서 전면 재검토 의견을 받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기각 결정이 나게 되고 이에 불복,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이번엔 심리도 하지 못하고 부적법 각하됐다. 이로써 사업 추진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흥시가 주장하는 배곧대교의 필요성은 한마디로 말해 ‘경제적 이익’이다. 시흥시 정왕동 배곧지구와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가 다리로 연결되면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와 배곧지구 모두 투자유치와 정주환경이 크게 개선,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형화물차 등으로 상습 정체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제3경인고속도로와 아암대로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도시의 시너지,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시흥시 입장이다. 이와 달리 인천시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환경단체와 시민사회계의 반발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흥시가 배곧대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던 2014년 이전에 이미 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상황이었고, 인천 갯벌이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인천시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기조가 감지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임병택 시흥시장과의 간담회에서 배곧대교는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개발계획의 기반시설로 반영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곧대교의 경제적 효과, 필요성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가장 먼저 해묵은 난제, 람사르 습지란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재판은 항소를 하더라도 승소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고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전환해 습지보전법의 예외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그동안 추진 상황과 규모에 비춰볼 때 어려운 점이 많다. 배곧대교, 갈 길이 멀다.

[인천시론] 36주 차 낙태 브이로그, 무법사회의 책임

최근 20대 여성 유튜버가 올린 소위 ‘36주 차 낙태 브이로그’ 영상이 준 충격은 상당하다.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란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해당 여성은 임신 36주 차의 만삭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낙태수술을 받고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일일이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특히 수술 후 이튿날까진 물 포함 금식이라 하면서도, 입원 당일 사온 김밥을 몰래 먹으면서 “조금 시큼하지만 괜찮다”며 맛 평가까지 하는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36주 차 태아는 폐와 간, 신장 등 주요 기관이 완전히 성숙해 자궁 밖에서 독립적 생존이 가능하다. 심지어 세상을 인지하고 소리를 들으며 고통까지 느낀다고 하니,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다 자란 아이를 꺼내 죽였다는 누리꾼들의 비판은 뼈아프다. 그리고 이런 영상이 마치 불치병을 극복한 성공담을 자랑하듯, 떳떳이 공개되는 현실에 여론은 들불처럼 분노했다. 수사기관 역시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해당 여성은 영상을 내리고 잠적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낙태가 아닌 수술 집도의에 대한 살인죄다. 살인죄 성립이 가능할지를 떠나 낙태죄가 배제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임산부와 의사’에게 적용되던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이며,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낙태는 국가의 생명보호 수단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전체 임신 기간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낙태 금지 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회는 헌재가 정한 대체입법 시한인 2020년 말까지 관련 입법을 하지 않았고, 결국 2021년 1월1일부로 낙태죄는 완전히 효력을 상실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완벽한 사람의 형상을 갖춘 아이라 할지라도 배 속에 있는 한 언제든 낙태해도 문제가 없는 사실상 낙태의 무법지대가 펼쳐진 것이다. 잉태된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저출산 위기를 외치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생명과 직결된 법이 공백상태에 방치된 건 국가적 비극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일하는’ 국회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인천시론] 행정체계 개편, 도시 체질•품격 높여야

지난 7월 중구 제2청사 대회의실에서 ‘자연환경 특색을 살린 영종구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오는 2026년 7월 영종구 출범을 앞두고 영종지역 특색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지역주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제안과 기대들이 적극적으로 표출됐다. 한 참석자는 ‘숲과 공원, 바다가 어우러진 그린힐링시티 영종구’를 구체적으로 제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천 행정체계가 오는 2026년 7월 1일부로 달라질 예정이다. 현재 중구 내륙지역과 동구를 ‘제물포구’로 통합하고 중구 영종도 지역을 ‘영종구’로 떼어낸다. 인구 60만명이 넘은 서구는 검단 지역을 분리해 검단구를 신설하고, 나머지 지역을 기존 서구로 유지한다. 이렇게 되면 2군 8구에서 2군 9군으로 31년 만의 대변혁을 이루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995년 결정된 현 체제로는 그간의 지역발전과 인구변화 양상에 부합할 수 없었던 측면이 크다. 더불어 달라진 행정수요와 시민욕구 대응을 위해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이를 두고 해당 지역에서는 수많은 ‘희망사항’들이 만발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소위 ‘발전’을 표방한 개발과 도시화에 대한 요구들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지역별 개성이나 고유자원과는 무관한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흐를까 싶어서다. 인천의 모든 도시가 마천루가 즐비하고 빼곡한 아파트 숲일 수는 없다. 서울 지향의 부속, 위성도시여서도 곤란하다. 당연히 도시마다의 역사와 문화, 환경, 그래서 고유한 이야기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잘 반영된 ‘발전’이 관건이다. 국내에서 광역지자체로 분구·신설을 통한 행정체계 개편으로는 인천이 첫 사례다. 추진 과정서부터 성과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천시는 지방재정 운영방안, 생활SOC 확충 방안, 자치법규 정비 등의 과제를 잘 풀어내야 한다.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조화와 균형을 갖춘 지속가능한 도시모델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할 부분이다. 주민참여와 전문가 협력, 공론화 과정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인천시가 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며 내세운 ‘시민편익 증진 및 행정 효율성 증진’만으로 모두 설명될 수도, 완성도 높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최근 신설된 인천시 행정체제개편추진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역할을 해낼 행정체제 개편 추진조직 역시 그렇다. 세부 구상을 제시하고 초석을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정치논리에 의한, 혹은 그야말로 행정체계에 초점을 맞춘 개편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갈 길 먼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

옛 경인고속도로(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옹벽, 방음벽 철거가 시작됐다. 1968년 개통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라는 상징성을 지닌 경인고속도로가 반세기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인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동안 경인고속도로는 산업화 시대에 경제 발전의 일등공신으로 국가와 지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팽창으로 이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졌다. 인천 도심 한복판을 동서로 양분하고 단절시키는 데다 소음, 진동, 분진 등으로 시민들의 주거환경을 크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화물차를 비롯해 상습정체 구간이 늘어나면서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지도 오래다. 이에 인천시는 2017년 국토교통부로부터 경인고속도로 인천 기점에서 서인천나들목 구간까지 관리권을 이관 받고 일반도로로 전환했다. 이후 일반화 사업을 줄곧 추진했지만 이번 옹벽 철거를 통해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셈이다. 유정복 시장은 단절됐던 도심을 연결하고 옹벽을 철거한 자리에 공원과 여가공간을 조성해 점점 쇠퇴하고 있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전체 구간을 둘로 나눠 인천 기점에서 주안산단 고가교 4.8㎞ 구간은 1단계로 2027년까지 완공하고 주안산단 고가교에서 서인천나들목 5.65㎞ 구간은 2단계 사업으로 2030년까지 준공해 원도심과 신도시 간 양극화 및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일반화 사업이 추진될 경우 인천대로 인근 서구와 미추홀구 주민들은 가까이에서 공원, 녹지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옹벽으로 인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불편이 해소되고 손쉽게 통행, 왕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우선 점점 늘어나는 공사비로 인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천시가 무리를 해서라도 예산을 편성하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과 연계한 각종 사업들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인천대로와 맞닿은 미추홀구 용현동 일대 문화복합시설 건립 사업은 공사비 급증으로 아직까지 설계 단계에 멈춰 있다. 당초 나들목 주변 시유지(市有地)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거점개발사업 역시 시가 계획했던 사업 구상과 실제 토지 모양이 달라 계획 변경만 반복하며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도심 활성화는커녕 자칫 슬럼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은 옹벽 철거와 공원 조성 등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배후 연계 사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인천시론] 굿바이, 친족상도례

‘친족상도례’란 낯선 법률용어가 익숙해진 건 비극이다. 친족상도례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가족, 동거친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와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필요적으로 면제토록 하는 규정이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이 근원으로, 가족간 분쟁에 함부로 법을 개입시키지 말고 자체 해결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대가족 농경사회를 지향하던 우리나라가 1953년 형법 제정시 이를 받아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를 거치며 가족간 유대관계가 이전보다 약화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친족상도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난센스였다. 가족의 재산을 절취 내지 편취했다는 뉴스가 이제 식상할 지경임에도 71년 전 도입된 친족상도례가 여전히 그들의 방패막이가 돼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소위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의 살벌한 가정사로 인해 친족상도례가 유명세(?)를 치른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지난 2022년 방송인 박수홍이 횡령 혐의로 친형 부부를 고소했을 때, 뜬금없이 아버지가 등장해 “자금 관리는 내가 했다”고 나선 건 ‘동거’가족이 아닌 장남을 구하고자 친족상도례를 내세운 꼼수였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골프스타 박세리 역시 아버지의 채무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음에도 사기나 횡령이 아닌 사문서위조 혐의로 아버지를 고소한 것 역시 친족상도례라는 거대 암초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시대착오적인 친족상도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에 적극 응답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지적장애 3급인 조카의 재산을 착취한 부부와 치매환자인 노모의 재산을 빼돌린 자식 등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친족상도례의 혜택(?)으로 처벌을 면하게 되자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친족상도례를 두고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가족 내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할 염려가 있다”고 하며 그 위헌성을 지적하는 한편 2025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토록 했다. 사실상 친족상도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제 가족이란 이유로 모든 게 용서되던 시대는 끝났다. 그동안 친족상도례란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숱한 착취형 범죄들에 종말을 고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굿바이, 친족상도례!

[인천시론] 슈퍼스타 김호중 구하기, 그 이후

“고백한 죄의 반은 용서받은 것이다.” 용서를 받길 원한다면,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영국 속담이다. 가수 김호중씨의 죄는 크다. 음주운전뿐 아니라 도로 한복판에서 택시를 들이받은 후 그대로 줄행랑치는 뺑소니 범죄까지 저질렀다. 여기에 경기도 구리의 모텔로 몸을 피한 후, 17시간 만에 경찰서에 출두하며 음주 측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모텔 인근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하는 소위 ‘술 타기’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사고 당시 음주 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도록 모든 꼼수가 동원된 것이다. 그 사이 매니저가 김씨를 대신해 허위 자수하고, 본부장은 유력한 증거인 블랙박스 메모리를 삼켜 없애 버린 건 덤이다. 음주는 안 했지만, 공황장애로 부득이 사고현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속사의 공식 입장문을 보면, 어떻게든 음주운전만 피해가면 된다는 조악한 셈법이 읽힌다. 남은 뺑소니 범죄는, 과중한 스케줄에 따른 아티스트의 공황장애로 충분히 방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김씨가 음주 혐의를 부인하며, 공연까지 강행한 것도 같은 이유다. “유흥주점을 방문한 뒤, 술잔에 입은 댔지만 마시지는 않았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것도 그때였다. 그랬던 김씨가 열흘 만에 음주운전을 시인했다. 사법방해 의혹이 불거질 무렵으로 이쯤 되면 악화된 여론에 구속만은 피하고자 던진 회심의 카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활동을 이어가고자 죄에 죄를 더하는 무리수를 둔 결과, 남은 공연을 뒤로한 채 김씨는 물론이고 소속사 대표에 본부장까지 줄줄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최근 검찰이 김씨를 구속 기소하며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범인도피교사 혐의만 적용했을 뿐, 음주운전은 제외했다.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특정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결국 “일단 튀어”에 “술타기”까지 동원된 김씨의 필승법이 적중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크게 분노했고, 정치권 역시 이에 응답해 ‘음주운전 적발을 회피할 목적으로 현장에서 도주하거나 추가로 술을 마실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케 하자’는 소위 김호중 방지법까지 논의한다 하니 출국전략조차 마땅치 않은 지경이다. 슈퍼스타 김호중 구하기의 결말은 참담하다. 특히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건 연예인으로서 치명적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할 때, 적어도 절반의 용서를 얻는다는 착한 필승법이 절실한 순간이다.

[인천시론]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의사들의 집단휴진 선언이 이어지며 의정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증원 재논의’와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 등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의협이 불법적인 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부에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사실상 거절, 주장을 일축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응급 환자나 중증 환자만큼은 제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 대학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자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만성화된 상황에서 급기야 지난 12일 인천에서 50대 응급환자가 하루 종일 병원을 찾아 헤매다 지방의료원장으로부터 직접 수술을 받아 위기를 넘기는 일도 발생했다. 급성 충수염, 즉 맹장이 터지면서 장폐색(막힘)과 복막염까지 진행돼 긴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인천은 물론 서울·경기까지 이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부분 병원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인천의료원으로부터 겨우 연락을 받았다. 병원 측은 당초 건강 상태를 보고 상급종합병원 입원을 권했으나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는 결국 환자를 받았다고 한다. 이날 밤이 돼서야 입원을 했고 이튿날 오전 7시께 조승연 원장 집도로 수술을 마치고 위기를 넘겼다. 사실 충수염은 유병률이 높은 비교적 흔한 질병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맹장염이라고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수술 난도가 낮은 편이지만 방치할 경우엔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술을 받기 위해선 수도권 전역의 병원을 알아봐야 하고 밤늦게 간신히 입원하더라도 의사가 없어 병원장이 직접 메스를 들어야 하는 모습.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이다. 반면 다행스러운 것은 전공의 이탈과 의료계의 집단휴진으로 의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명감으로 묵묵히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분만 및 아동병원은 휴진 불참을 선언했고 뇌전증 의사들도 이에 동참했다. 공공병원도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이번에 응급 수술로 직접 생명을 구한 조 원장은 최근 의대 증원에 따른 전공의 이탈 사태와 관련해 평소 “의사가 환자 곁을 벗어나 투쟁하는 방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설령 의료계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집단 휴진을 철회하고 하루속히 의료현장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인천시론] 토종식생과의 평화와 복원을 위한 신토불이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선 요즘도 거리와 공원 곳곳은 여전히 형형색색으로 즐겁다. 시내 화원이나 꽃가게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듣도 보도 못한 초화류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때마다 꽃밭을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만나는 꽃들의 상당 부분은 이색적이고 이국적 자태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고유종이나 개량종이 있고 국내로 들여온 외래종 초화들인 경우도 흔하다. 경북 구미시 낙동강변에 조성된 수십만㎡의 큰금계국밭이 화제였다. 명소로 손꼽히지만 동시에 토종식생을 교란해 파괴하는 대표적인 예로 지적됐다. 사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노랗게 물든 금계국이나 큰금계국은 매우 쉽게 마주치는 일상의 꽃이 됐다. 하천변이나 공원은 물론 여느 노지나 산자락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금계국이나 큰금계국은 5월과 6월에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이 꽃은 원래 북미가 원산지다. 특히 문제가 되는 큰금계국은 여러해살이 식물로 씨앗뿐만 아니라 뿌리로도 번식하며 생명력이 매우 강하다. 가히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될 만하다. 일본에서는 큰금계국을 생태교란종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국립생태원 외래식물 조사에서 유해성 2등급으로 발표됐지만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채 관리를 받으며 자라는 실정이다. 우리가 이국의 꽃들에 매력을 느끼고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이 한쪽에서는 토종식생 보호와 생태복원을 위해 야생화를 심고 식물자원 강화에 나서고 있다.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서양금혼초와 환삼덩굴 등 생태계 교란식물 제거는 이미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이 됐다. 국제적 기념일인 ‘세계 환경의 날’이 지났다. 지난 5일이었는데 올해의 주제는 ‘토지 복원, 사막화 및 가뭄 복원력’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우리가 땅과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세대임을 강조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숲을 키우고 수원을 되살리고 토양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땅과의 평화’라든가, ‘되살림’이라는 의미가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보존하고 되살려 가며 발전을 추구하고 행복을 지속가능하게 누리자는 의미이겠다. 우리가 누리던 일상의 즐거움이나 추구했던 행복의 방식을 잠시 돌이켜보자. 먹거리에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있듯 고유 생태계와의 평화, 복원에 마음이 머문다. 이제 토종식생과의 조화라든가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꽃을 바라보고 즐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하니 조금은 피곤한 노릇이겠으나 말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혜가 어렵지 않고 멀리 있지는 않다.

[인천시론]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다

2020년 한 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전 국민에게 특수부대에 대한 로망을 선사했던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본다.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체력을 가진 ‘가짜’ 사나이들을 강한 훈련을 통해 ‘진짜’로 변모시킨다는 취지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막상 화면을 가득 채운 건 훈련이 아닌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였다. 교관들은 훈련생들을 향해 ‘이 새끼’라 칭하며 묵음 처리될 수준의 욕설에 ‘대가리 박아’를 남발했다. 심지어 얼차려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너 인성 문제 있어?”라며 상대의 인격을 조롱하는 모습은 가히 삼청교육대의 잔상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리얼리티 쇼일 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가짜 사나이’가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다시금 재현됐다. 최근 한 훈련병이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40kg 완전군장을 한 채 연병장 1.5㎞를 달리고 선착순 뺑뺑이에 팔굽혀펴기까지 군기교육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군기훈련을 받던 동료 모두 너무 힘든 나머지 서로의 상태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강행군이었을지 알 만하다. 군장 무게를 늘리고자 군장 안에 여러 권의 책을 넣어주는 센스(?)까지 보인 건 덤이다. 부검 결과 사망한 훈련병은 갑작스러운 고강도 훈련으로 인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 의심 증상을 보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라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군기교육은 얼차려의 또 다른 말로 엄연히 육군 규정에 명시된 훈련 중 하나다. 규정에 따르면 훈련병은 완전군장 상태로는 뜀걸음이 아닌 1㎞ 이내로 보행만 가능하고, 팔굽혀 펴기 역시 맨몸 상태에서 해야 한다. 여기에 군기훈련을 받는 병사들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렇듯 우리 군은 군기교육이 자칫 가혹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세세한 규정까지 뒀지만 어쩐 일인지 현실에선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결국 군기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에 간호사를 꿈꾸던 전도유망한 20대 청년의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입대한 지 고작 9일밖에 안 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전 국민의 공감을 얻으며 어떻게 군을 믿고 자식을 보내냐는 이유 있는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강한 군대를 위해 가혹행위조차 필요악으로 치부되던 야만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그럼에도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다.

[인천시론] 5호선 연장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 노선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인천시 요구안이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올해 초 서울 방화역에서 출발해 인천 검단신도시와 김포 한강신도시를 잇는 5호선 연장 노선 조정안을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광위가 1월 발표한 조정안을 보면 김포는 한강 시네폴리스, 풍무지구와 인접한 S03, 김포골드라인으로 환승할 수 있는 풍무역 S04, 인천 서구 불로동과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감정동 S05, 김포골드라인 환승역인 장기역 S08, 김포한강2 콤팩트시티 예정지인 S09 등 모두 7개 정거장인 반면 인천은 인천지하철 1호선 환승이 가능한 S05(아라역), S06(원당역) 2개 정거장을 설치한다. 인천시는 이는 김포~서울 직결 노선을 요구하는 김포시 의견을 수용한 결과라며 당초 요구했던 4개 정거장이 아닌 2개 정거장만 설치하고 원당사거리역과 불로역이 빠진 조정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광위에 전달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물론 검단을 지역구로 하는 모경종 당선자 등 지역 정치권과 서구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종안 확정이 임박한 가운데 인천시와 경기도 김포시의 막판 기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5호선 연장 사업은 지자체 간 합의로 노선을 결정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는 만큼 대광위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4개월의 지자체 협의 과정을 거치며 인천시 요구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김포시 또한 지역 주민과 정계를 중심으로 기존 조정안에 통진역, 김포경찰서역, 풍무2역 등 역사를 3곳 더 추가해 총 10곳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두 지자체 간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대광위는 GTX-D 노선의 예비타당성 결과가 나오게 되면 5호선 연장 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보고 조속한 노선 확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간 사업 지연을 지켜 본 시민들도 더 이상 노선 확정이 늦어지게 되면 자칫 5호선 연장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솝 우화 중 ‘외나무다리 위 두 염소 이야기’가 있다.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서로 먼저 건너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싸우다 결국 두 마리 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 대광위는 인천과 김포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는 최선의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유리해선 안 된다. 지자체들 역시 합의를 통해 조속하게 5호선 연장 노선을 확정해야 한다. 어리석은 염소꼴이 나지 않도록 말이다.

[인천시론] ‘남는 장사’ 된 사기범죄, 한국이 호구된 이유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는 과연 한국과 미국 중 어디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지 초유의 관심사다. 권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는 가상화폐 ‘테라’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99.99%라는 기록적인 폭락 끝에 개당 10만원이 넘던 코인이 1원 이하로 떨어지며 사실상 깡통코인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만 400억달러(약 54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씨는 11개월간의 도피행각 끝에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됐지만 이후 권씨의 송환을 둘러싼 잡음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한국과 미국 모두 자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권씨를 자국 법정에 세우고자 권씨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몬테네그로 법원은 둘 중 어느 나라가 먼저 송환을 요청했는지를 두고 고심한 끝에 당초 미국으로 결정된 송환지를 한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내 반응은 차가웠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권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40년 정도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한 까닭에 100년 이상의 중형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다행히(?) 기존 하급심 결정이 무효라는 몬테네그로 대법원의 판단으로, 권씨의 미국행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권씨가 현지 로펌을 동원해 한국행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소식은 여전히 불편하다. 권씨가 한국행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낮은 형량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된 징역 40년이다. 투자자들에게 가짜 정보를 제공해 292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과 서민 191명의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인천 건축왕’ 남모씨에게 각 3년6개월과 15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사기가 가성비 좋은 ‘남는 장사’로 둔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 같다”는 검찰총장의 푸념은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경제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범죄수익 역시 철저히 박탈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이 사기꾼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인천시론] 전략적 상임위 배정과 역할 분담

제22대 인천 국회의원 당선인의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위원회 배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4·10 총선 여야 당선인 총 14명 중 최소 6명에서 최대 8명까지 국토위 배정을 1순위로 답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중구·강화군·옹진군)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허종식(동구·미추홀구갑), 정일영(연수구을), 맹성규(남동구갑), 박선원(부평구을), 유동수(계양구갑), 김교흥(서구갑), 모경종 당선인(서구병)까지 모두 국토위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소관 부처에 따라 입법 등 의안을 심의하기 위해 상설적으로 운영되는 상임위원회는 모두 17개가 있다. 겸임할 수 있는 상임위인 국회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원회를 제외하더라도 14개 상임위가 행정부 각 부처와 소관에 따라 나뉘어 있다. 위원은 주로 20명 내외로 구성되며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는 무려 30명에 달한다. 특히 국토위는 주택·토지·건설 등 국토 분야와 철도·도로·항공 등 교통 분야를 담당하며 부동산, 광역급행철도(GTX)처럼 지역민을 비롯해 국민적 관심사가 많은 현안을 다루다 보니 선호도가 높다. 실제 제21대 국회 전반기엔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명 중 49명이 국토위를 1지망으로 썼다. 이번 총선에선 전체 국토위 소속 의원 82%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공천율이 가장 높은 상임위이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천지역 당선인들이 대거 국토위를 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신의 지역구에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사업을 유치하고 예산 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인천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당선인들이 상임위에 골고루 분산 배치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임위만을 선호하는 모습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선인들의 바람과 달리 국회 의석수와 상임위 구성에 비춰 1~2명을 제외하고는 국토위에 배치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머지는 2지망 내지 원하지 않는 상임위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제21대 국회 후반기에는 17개 상임위 중 인천지역 국회의원이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해양도시 인천이란 위상에 무색하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위한 환경노동위, 인천대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교육위, 인천고법 설치를 위한 법제사법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당선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양보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지역구 및 인천 발전을 위해 협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는 해묵은 인천 현안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상임위 배정과 역할 분담을 기대한다.

[인천시론] 인천 국회의원 당선인에게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0 총선이 끝났다. 인구 300만명의 도시, 인천은 지역구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14개 선거구에서 여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정권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지난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중구강화군옹진군의 배준영 당선자와 동구미추홀구을의 윤상현 당선자를 제외하곤 12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위원장이 강조한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를 심판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조심판론’은 오히려 정권심판 여론을 부추기며 선거에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통상 집권 여당이 경제와 민생, 국정 안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달리 아무런 집행력이 없는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것 자체가 실책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결국 정권심판이라는 거센 바람과 선거 전략 부재로 인해 국민의힘은 인천에서 단 두 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윤상현 의원은 민주당 남영희 후보를 0.9% 차로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며 5선 고지에 올랐고 배준영 의원도 민주당 조택상 후보와 세 번째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지만 수도권의 참패로 빛이 바랬다. 반면 민주당은 다수의 중진 의원을 배출했다. 김교흥 의원을 시작으로 맹성규, 박찬대, 유동수 의원까지 3선 의원만 4명이나 된다.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함께 벌써부터 인천시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정일영, 허종식 의원은 재선 반열에 올랐다. 언론인 출신으로 YTN, 경인방송에서 각각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던 노종면 이훈기 당선인, 이재명 대표 비서실 차장이었던 모경종 당선인, 문재인 정부 국정원 제1차장을 했던 박선원 당선인, 영입인재 23호인 변호사 출신 이용우 당선인까지 민주당의 영입인재, 정치신인들도 첫 도전에 모두가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인천지역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여당 소속 단체장인 유정복 시장은 민선 8기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에도 시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고 국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됐다. 민주당의 경우 인천시당이 제시한 10대 공약 중 인천 2호선 연장, GTX-D Y자 노선 제5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반영, 공공의대 추진을 제외하곤 21대 공약이 반복,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은 수권정당으로서 해결하고 넘어야 할 숙제다. 정권심판에 의한 반사이익을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과신하거나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된다.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 여야 간 협치와 공조를 통해 인천의 주요 현안과 자신들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제22대 인천 국회의원들을 기대해 본다.

[인천시론] 22대 총선, 기후위기 대응 전환점 돼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인천지역 14개 선거구 후보자 39명이 출마했다. 2일간 진행된 사전투표 결과, 역대 최고인 30.08%(전국 사전투표율 31.28%)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에 쏠린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오늘이 본투표일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할 일꾼이 누구일지를 판단하는 지혜와 책임 있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행사가 얼마나 소중한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투표권 행사를 두고 저마다 고민하며 신중을 기한다. 거기에는 정당이나 후보자 선택에 대한 근거와 기준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 이전과 색다르게 ‘기후선거’, ‘기후투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총선 후보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회에서 기후 불평등과 기후 재난을 막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을 기후유권자라고 하는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가진 정치인에게 투표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산업화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이는 그야말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전략인데 개개인의 일상적 실천만으로 도달이 좀처럼 쉽지 않다. 기업과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정치와 정책에 녹여내야 하는 과제다. 이번 선거가 중요하고 유권자들의 안목이 중요한 이유다. 지역(지방)과 중앙을 잇는 국회의원이고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국회의원이다. 국가적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아니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라도 서둘러 달성해야 하는 책무가 그들에게도 있다. 아쉽게도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면면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비전과 의지를 찾기 힘들다. 여전히 개발이나 온실가스 다배출에 영향을 미칠 공약, 주장들이 난무하는 듯하다. 이를 입증하듯 시민사회단체가 지난달 말 5개 정당에 환경 분야를 포함한 정책제안을 했지만 1개 정당만이 수용 의사를 표명하는 데 그쳤다. 기후위기를 해소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을 담아낸 후보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기후선거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생각이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래서는 맞닥뜨린 사회적 복합위기와 더불어 기후위기 대응을 비롯한 지속가능발전을 이뤄내기 어렵겠다는 좌절감까지 든다. 그래도 후보들의 이력이나 공약의 의미를 잘 읽어 제한적이나마 기후유권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더라도 삶터를 지켜내고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지속가능발전이 계속 추동돼야 한다. 우리는 일꾼을 자처하고, 당선된 이들에게 부지런한 감시자이면서 과제 이행을 꼼꼼히 점검하는 평가자여야 한다. 비록 선거는 끝나더라도 인천시민이자 유권자로서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인천시론] 번지수 찾기

‘번지수’란 건물이나 토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숫자를 의미한다. 번지수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디든 길을 잃지 않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다’는 관용어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번지수는 부정적 의미가 더욱 많다. 어떤 일에 들어맞지 않거나 엉뚱한 데를 잘못 짚는 경우 당연한 듯 번지수를 소환한다. 특정 사안을 두고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섣불리 의견을 밝혀 망신을 당하거나,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님에도 애꿎은 사람을 비난해 민폐를 끼칠 때도 늘상 따라붙는 말이 바로 ‘번지수를 잘못 찾다’거나 ‘번지수가 틀리다’이다. 원조는 역시 정치권이다.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은 온갖 실언들이 판을 치며 가뜩이나 버거운 서민들의 삶에 불쾌지수만 높이고 있다. 문제는 한없이 가벼운 언행이나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성 카더라식 폭로조차 정파적 이익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웃픈 현실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달콤하다. 이는 단순히 정치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위 공인이라는 사람들이 던진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처럼 선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것 역시 일상 다반사다. 최근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한 선수가 자신의 SNS에 일본식 한자로 쓰여진 ‘국제선 출국(일본행)’ 전광판 사진을 올린 뒤 “한국에 매국노 왜케 많냐”며 저격성 글을 남긴 건 대표적 예이다. 확인 결과 해당 사진의 주인공은 광주 소재 일본풍 식당이었고 급기야 해당 식당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악성댓글로 인해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문득 우리 국민이 일본식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매국노라는 것인지, 일본행 출국 전광판을 통해 일본 여행객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최근 세태를 가리켜 매국노라 하는 것인지, 글쓴이의 의도가 궁금하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경우에도 ‘매국노’란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점에서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다. 뒤늦게 공개사과를 하긴 했지만 오랜 기간 힘들게 쌓아온 소상공인들의 삶을, 매국노 한마디로 평가절하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번지수를 잘 알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진 세상이다. 취업이 고민인 청년에게 ‘너 같은 인재를 몰라 주는 사회가 문제’라며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닌,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 냉정하게 지적해주는 따뜻한 용기가 더욱 대접받을 때야말로 번지수 찾기의 긴 여정은 끝날 것이다.

[인천시론] 녹지행정체계, 집중과 규모화 필요

지방자치단체 조직은 단체장의 중요한 정책구상이나 지역적 이슈에 따라 이뤄진다. 전략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그를 통해 무게가 실리는 조직이 생기고 중요하게 부각되는 역할이 있게 된다. 인천시가 2군·9구로의 행정체제 개편에 맞물려 조직개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인천시가 고려하면 좋겠다 싶은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부산시는 지난 2월 말 시민행복도시 실현을 표방하며 ‘푸른도시국’을 신설했다. 이 국에서 국가공원, 국가정원, 민간공원 조성업무 등을 통합 추진한다. 공원정책이나 산림녹지를 푸른도시국 소관으로 둠으로써 녹색도시를 위한 구조개편을 완성한 셈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04년말 푸른도시국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푸른도시여가국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공원·녹지 관련 업무만이 아니라 야생 동식물 보호와 하천생태 복원업무 등도 처리하고 있다. 반면 인천시는 과거 환경녹지국에서 분리된 녹지업무를 주택녹지국을 거쳐 개발부서인 도시계획 산하 조직으로 유지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천시로서 다시금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게다가 인천시가 소래습지를 1호 국가도시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본격 행동에 나섰다. 전국 최고의 공원이면서 도시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도 공원녹지 분야의 조직적 면모를 제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도시라 할 것 없이 도시브랜드 제고와 글로벌 허브도시, 시민행복도시의 기치를 내거는 시대다. 이를 위한 조직 형태나 사업구조, 재원 등의 추진체계에 찍히는 방점에서 다르다. 쾌적한 도시, 살고 싶은 도시를 거론할 때 으레 도시환경의 수준을 살피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도심 내 잘 가꿔진 공원이나 녹지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요소다. 시민의 여가생활과 건강을 고려하면 더욱 중요해질 기능이다. 그렇다면 인천시가 향후 정책적·조직적 방점을 공원·녹지 분야에도 둘 필요가 있다. 시의 현 공원·녹지 관련 조직과 사업, 예산의 규모는 이미 가볍지 않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심의 크고 작은 공원만도 2천여곳을 헤아릴 정도다. 결국 인천시도 어떤 형태로든 녹지행정체계의 집중과 규모화로 도시의 체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때다. 이는 원도심의 쇠퇴를 막고 시민들의 정주여건을 향상해야 하는 시정목표에도 부합한다. 마침 정부가 통제하던 지자체의 실·국장급 기구의 수와 규모를 지자체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필요에 맞춰 조직을 가다듬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고 한다. 그에 맞춰 여러 지자체들이 사업·행정 수요가 높은 실·국 정원을 늘리거나 추가 국 단위 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시의 비전과 의지를 담은 조직개편에서 ‘녹지국’의 신설을 포함해 푸른 변신에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삼사일언 삼사일행

‘5·18 북한개입설’, ‘전두환 찬양’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이 됐던 도태우 변호사와 ‘목발 경품’, ‘조계종 비하’로 설화를 일으켰던 정봉주 전 의원에 이어 ‘난교’, ‘손톱의 때’ 글과 발언으로 논란이 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공천이 우여곡절 끝에 박탈됐다. 여야 각 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가운데 막말 설화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여야 할 것 없이 발 빠르게 이들을 손절하고 나선 것이다.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오래전 발언으로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 건 자기 자신이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해 도 변호사는 거침없는 보수의 일꾼으로 소임을 다하겠다며 결국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장 전 최고위원도 공천 취소에 반발해 18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공천 취소의 원인이 된 막말 논란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야당 정치인의 과거 언행을 언급하며 자신의 20대 시절 개인적인 SNS를 검증한 잣대로 민주당을 살펴보면 공천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항변했다. 총선 공방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인천지역에선 총선 후보들 간에 네거티브성 공방과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동구미추홀구갑 선거구에 출마한 심재돈 예비후보는 허종식 예비후보 등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민주당 인천시당은 심 후보가 검사 시절 참여했던 수사에서 40대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심 후보 측은 이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희석하려는 의도라며 동구와 미추홀구 곳곳마다 허 후보의 돈봉투 의혹과 음주운전 전과를 부각하는 현수막을 걸어 상대방을 자극하고 있다. 연수구갑에 출마한 정승연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자신을 ‘친일망언 인사’라고 SNS에 언급한 이재명 대표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부평구갑에서는 경선을 마친 같은 당 예비후보들끼리 설전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총선 공방으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로도와 정치 혐오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막말과 여야 공방으로 선거 초반부터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정작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민생 현안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공자(孔子)가 천하를 유람할 때 나온 말로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무릇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국민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인천시론]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긴 것’을 일컬어 ‘집요하다’라고 표현한다. 일상에서는 주로 특정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그릇된 집착을 가리킬 정도로 부정적 어감이 강하지만, ‘집요함’이 개인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결합된다면, 그땐 판이 달라진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완벽한 성과를 내겠다는 집념이 그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의 집요함,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의 집요함. 최상의 상품을 만드는 장인의 집요함 등 알고 보면 ‘집요함’이 주는 감동은 어느 것보다도 더욱 극적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사의 집요함일 것이다. 아픈 환자를 살리고자 집요하게 매달리는 의사의 모습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대중매체 속 의사의 이상향은 출세가 아닌 오직 사람 살리기에 숭고한 사명감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굳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공익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인지 최근 의사들이 사직서를 내며 환자 곁을 떠나는 모습은 너무도 안쓰럽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의 시기와 규모 등이 과연 적정한지는 제쳐두고라도,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는 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의료법 위반을 피하고자 파업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사직서 제출을 택하고, 어떻게든 업무복귀명령을 송달받지 않고자 애쓰는 모습은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단지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부작위만으로도 사회를 초토화시키는 의사들의 권력(?)을 두고,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상당하다. ‘정부는 결코 의사들을 이길수 없다’는 한 의사의 발언에 ‘의사들은 결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우문현답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고 준 의사면허가 정부 정책에 대한 투쟁수단으로 변질됨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의사들이 병원을 지키며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오히려 대중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의 주장은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낭독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닌, 이를 현재에 맞게 변형한 ‘제네바 선언’이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마칠 것을 엄숙히 선약하노라’로 시작되는 제네바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지금 이 순간 의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직서를 낼 용기가 아닌 생명에 대한 집요함일 것이다.

[인천시론] 일타강사 vs 방검복 교사

사교육 1번지 강남 학원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소수의 스타강사들이 있다. 소위 일타강사라 불리는 그들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상징으로 그 외관은 화려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이면을 보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빼곡한 강의 일정에 더해 강의 준비에 수강생 관리, 교재 개발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일타강사는 누구든 꿈꾸지만 감히 쉽게 이룰 수 없는 ‘극한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수업 중 던지는 농담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하니, 프로 그 자체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건 일타강사 개인의 탁월한 역량과 오랜 노력 탓도 있겠지만, 그들이 강의에 집중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수십명의 연구원과 스태프들의 공도 클 것이다. 여기에 공교육에 비해 학생 생활지도 측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일타강사 대부분은 한때는 공교육에 몸담았던 교사 출신들이 많다. 이렇듯 일선 교사들 역시 강의에 있어서는 일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우리는 지금까지 공교육 붕괴를 걱정해온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로 하여금 온전히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환경 탓이 크다. 우선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한 과부하 문제가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5월 발표한 ‘교사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퇴직 및 휴직을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교육활동 이외의 과도한 행정업무’(62.8%)가 차지할 정도로 학교현장은 이미 서류더미와의 싸움에 지쳐 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학생 생활지도로 인해 일선 교사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서이초 사건의 비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안하무인식 교권침해로 인해 교사들 스스로 자신을 감정노동자라 칭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최근 전북지역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가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년 전 일부 학생들의 불성실한 수업 태도를 지적했지만 이후 앙심을 품을 학생들이 교사는 물론 가족 목숨까지 위협하기에,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고자 방검복을 착용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미성년자라 형사처벌받지 않을 거라며 협박을 일삼은 건 덤이다. 서류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급기야 방검복까지 등장한 학교 현장, 탁월한 수업능력에 학생지도까지 겸비한 일타 ‘교사’가 되는 길은 너무도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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