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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호 칼럼] 물범의 절규, 저어새의 눈물

예로부터 백령도는 점박이 물범, 독도는 강치(바다사자)가 지킨다는 말이 전해왔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된 점박이 물범은 고래와 함께 해양 포유동물로 꽃게, 까나리 등 풍부한 먹이자원이 있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 무리지어 살았다. 바다속에서 자유롭게 남북한을 오가는 특성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아시아의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의 숨결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가 됐다. 둥글둥글하고 귀엽게 생긴 모습도 장점으로 작용됐다. 이 점박이 물범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중국 어부들이 백령도 근해에서 점박이 물범과 먹이 자원을 잡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환경부의 모니터링 결과 52마리가 관찰됐다. 1940년대 8천여 마리가 살았다는데 특히 새끼 점박이 물범이 줄었다. 문제는 환경부의 주먹구구식 대처다. 모니터링 장소와 관찰시기, 관찰 회수 등이 일정하지 않고, 육안 관찰에만 의존한다. 환경부의 점박이 물범 관련 예산이 선박 대여비를 비롯해 175만원부터 730만원까지 매년 다르며 올해는 247만원에 불과하다. 점박이 물범들이 위기에 처했다 독도를 지키던 강치는 일본 어부에 의해 도륙당해 결국 자취를 감췄다. 점박이 물범도 강치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지 모른다. 인천지역 갯벌, 하구 등에서 서식하는 겨울철새 저어새도 보호대책이 없다. 부리를 벌려 물 속에서 휘휘저어서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날 때는 목을 곧게 뻗는다.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5호로 지정된 뒤 지난해 5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된 저어새는 전세계적으로 2천여마리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인천지역 강화도 각시암과 중구 매도, 수하암, 남동유수지 등을 찾는다. 그러나 저어새 번식지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저어새 번식지에 대한 안내표지판조차 없다. 무인도 등 섬지역엔 입도(入島) 제한 같은 출입금지 조치 등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람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저어새들 특히 저어새와 번식지에 대한 주기적인 관리ㆍ감독 등을 할 인력은 물론 관련 예산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저어새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만 됐을 뿐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없다. 걱정꺼리도 많다. 저어새 알이 허리 통증 완화에 효험이 있다는 말이 돌아 사람들이 저어새 번식지에 들어가 둥지에 있는 알을 훔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수백만 원 선고에 그친다.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전세계가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번식을 위해 인천지역을 찾는 저어새들을 외면한다. 지난 29~30일 이틀간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한 2013 송도 갯벌 저어새 큰잔치가 열렸다. 저어새와 송도 갯벌 습지보호지역 등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지속적인 보전방안을 논의한 자리였다. 갯벌, 저어새, 도시 공존을 꿈꾸다, 청소년, 저어새 나는 인천을 꿈꾸며 등을 주제로 어린이들의 저어새 노래, 시낭송, 연극 등 공연도 펼쳤다. 이날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저어새의 먹이활동이 이뤄지는 송도 갯벌의 상태는 최악에 가까운 5~6등급에 해당돼 갯벌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며 당국의 감시활동을 촉구했다. 송도 갯벌에 대한 환경오염이 계속된다면 2009년부터 찾아오는 저어새를 앞으로 볼 수 없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비단 점박이 물범ㆍ저어새 뿐만이 아니다. 환경오염ㆍ훼손 등으로 수많은 천연기념물 동ㆍ식물이 사라져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령도 해역에서 점박이 물범들은 중국 어선들이 우리를 잡으러 몰려온다. 우리를 지켜 달라!고 절규한다. 둥지의 알까지 훔쳐가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저어새들이 눈물을 흘린다. 백령도에서 평화의 숨결로 살 수 있도록 점박이 물범을 지켜주자. 인천지역이 좋아 찾아와서 고통을 겪는 저어새들의 눈물을 씻어주자. 임병호 논설위원ㆍ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바야흐로 ‘여성시대’

남자가 여자를 안아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 남자의 포옹이 정복과 소유와 관용의 표현이라면 / 여자의 포옹은 용서와 자비와 안식의 표현이다 / 여자가 남자를 안아줄 때 남자들은 거센 갈기를 내리고 / 순한 짐승이 되고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된다 / 알았어요 예 그렇게 할게요 / 백기를 들고 스스로 항복하는 포로가 된다 / 세상의 여자들이여 남자들을 안아주라 / 그러면 당신의 남자들은 모두 /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 머리 조아려 안겨오는 순한 짐승이 되고 / 사랑스런 아이가 될 것이다 / 남자가 여자를 안아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 남자들의 포옹에는 부성이 들어 있지 않지만 / 여자들의 포옹에는 늘 모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세상의 여자들이여 / 날마다 순간마다 당신의 남자들을 안아주라 / 그러면 당신의 남자들이 행복할 것이고 / 당신도 행복해질 것이다. - 나태주의 詩 포옹ㆍ1 우리나라 여성 인구가 올해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50%에 이르렀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여성주간(7월 1 ~ 7일)을 앞두고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3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나타났다. 올해 현재 우리나라 인구 5천22만명 가운데 여성 인구가 2천508만7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으로 집계됐다. 여성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0%를 차지한 것은 1970년 통계청이 국가 인구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이다. 남아 선호 사상이 쇠퇴하고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단순히 인구 비율만 높아진 게 아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각계에서 남성을 뛰어 넘는 활약상이 한눈에 보인다. 금녀의 공간으로 치부되던 곳도 이젠 여성들이 맹위를 떨친다. 육사와 해사, 공사, 경찰대학 등에서는 여성 생도가 수석 졸업하는 것이 다반사가 됐다. 2009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처음으로 앞섰다. 교육받은 여성들은 각계각층에 활발히 진출했다. 사법고시 합격생 중 여성 비율이 2000년 18.9%였지만 지난해 41.7%로 급증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헌법 기관의 여성 공무원 수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2만4천757명으로 전체 공무원(99만4천291명)의 42.7%에 달했다. 각급 학교의 여성교사 비율도 증가했다. 초등학교 교사 4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여성 교장과 교감의 비율도 계속 늘었다. 판ㆍ검사 등 법조인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1년 16.7%로 2000년보다 13.6%p 급증했다. 여성 정치인도 많아졌다. 우선 대통령이 여성이다. 국회의원 당선자 중 여성 비율은 2000년 5.9%에서 지난해 15.7%로 상승했고, 특히 지방의회 의원의 여성 비율은 20.3%로, 1995년 2.3%에서 비해 대폭 높아졌다. 골프의 전설 박세리, 아름다운 역사(力士) 장미란, 피겨 스케이트 퀸 김연아,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골프의 역사를 새로 쓴 박인비 등 세계적인 유명인도 여성이 많다. 여성 사회복지학자ㆍ여성문인이 급증하는 현상 또한 주목된다. 혹자는 말한다. 전 세계가 여성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여성이 주도하는 경제, 나아가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를 의미하는 우머노믹스(womanomics)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한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여성들이 고위 관리직에 못 가게 막는 유리 천장은 아직 견고하다고 말한다. 취업 여성들의 월 평균 임금이 남성보다 적고, 육아 때문에 발목 잡혀 직장을 그만 두는 마미 트랩(mommy trapㆍ엄마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 아니다. 진정한 남녀 평등, 남녀 균형을 위해서는 남성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형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관할 일, 아니다. 무엇보다 내일이 기다리지 않는가. 남성과 여성은 동행인이다. 굳이 라이벌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지만 적대적인 존재는 더욱 아니다. 남성 없는 여성사회 없고, 여성 없는 남성사회 없다. 세상의 여자들이여 / 날마다 순간마다 당신의 남자들을 안아주라 / 그러면 당신의 남자들이 행복할 것이고 / 당신도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한 나태주 시인의 포옹ㆍ1은 여성에게 바라는 남성의 희망이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함양이천, 두 고장의 ‘문학사랑’

국토를 순례하는 일은 숭고하다. 특히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던 장소를 답사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국제PEN한국본부는 지역위원회와 함께하는 문학투어의 첫 지역으로 경상남도 함양군을 찾았다. 국제PEN경남지역위원회와 지리산문학관이 후원했고, 함양군이 앞장섰다. 여기에 맞춰 함양군이 상림 숲 문화거리 명명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함양(咸陽)은 정여창 선생 등 명현석학이 많아 배출되어 선비문화를 꽃피운 고장이다. 유서 깊은 서원, 향교, 루(樓)가 곳곳에 즐비하다. 특히 천년의 숲으로 불리는 상림(上林)은 천연기념물이다. 대관림, 선림이라고도 한다.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857 ~ ?)이 천령군( 함양군의 옛 명칭)의 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400여 종의 수목이 있어 식물학상으로도 귀중한 숲이다. 봄 꽃,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화(雪花)로 유명하고 주변의 연꽃단지, 위천천의 맑은 물이 승경을 이뤘다. 함양 상림 숲 문화거리 명명 그 상림을 임창호 함양군수와 이상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이 지난 14일 함양 상림 숲 문화거리로 명명했다. 국조 단군은 큰소리로 한반도의 아름다운 대자연 경치를 가꾸도록 가르쳐 주었다. 지리산 함양은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릴 만큼 묵향의 꽃이 핀 선비의 고장으로 고래로 뿌리 깊은 문화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1천300여 년 전 신라사람 고운 최치원은 함양 태수로 와서 물안개 피는 위천 물이 범람하는 수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자라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 풍치림의 감상에 취한 사람들은 대관림이라 부르게 된다. 숲의 아름다움과 향취는 함양군의 얼과 유구한 역사 속에 뿌리 깊은 대자연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문학의 정서를 발심시키는 대표적인 표상이 되므로 국제 펜 헌장 정신에 의거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고 인류가 공영하는 자유를 주창하며 누구나 대자연 속에 평화로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꿈이 곧 자연이고 삶의 희망이다. 또 문학인이 추구하는 숲에 있어 더 넓게 더 아름답게 가꾸자는 뜻으로 제1회 문학여행의 날을 맞아 이 숲을 함양 상림 숲 문화거리로 명명하고 선포하는 바이다. 상림 숲을 문화거리로 명명한 날, 함양군은 전국에서 찾아온 문인들에게 문학작품이 함양을 더욱 빛나게 한다며 예의를 표하며, 함양팔경ㆍ함양팔품ㆍ함양팔미를 소재로 글을 많이 써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상림 숲을 최치원 선생이 거닐고 있었다. 채수영 詩碑 설봉산 제막 설화의 성터를 돌아가는 / 부악은 머리이자 가슴이라 / 나래 펼친 학의 깃바람으로 / 설봉호에 내려오면 / 하늘이 담겨지는 파문들이 / 햇살을 춤추게 한다 // 깊이로 맺은 / 마음 고운 사람들 / 산정 사잇길 돌아 / 정갈하기 맑은 바람과 더불어 / 시내로 내려오면 / 가슴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는 눈엔 / 설봉호의 물이 고인다 // 사람 내음이 그리운 날은 / 장날의 소음이 박자를 맞추는 곳에서 / 깊은 정을 전달하는 인심 따스한 것도 / 설봉산에서 내려온 물과 바람 탓이라면 / 이천 사람들은 그 정기를 담아 / 맑은 가슴으로 산다 - 채수영 詩 설봉산 이천(利川) 설봉공원 대공연장 옆 산길에 시비 설봉산이 지난 15일 제막됐다. 이천시의 협조로 이천문인협회가 후원하고 부악문학회가 세운 시비 설봉산이 제막된 날, 성지월ㆍ 이광희ㆍ 전광우 시인 등 이천문협 전ㆍ현 회장을 비롯한 이천문인들, 서울, 양평, 수원 등에서 많은 문인들이 참석했다. 조병돈 이천시장, 유승우 국회의원, 이광희 이천시의회의장, 최갑수 이천예총 회장 등이 축하 덕담을 했다. 이들 중 민선 이천시장을 123대 역임한 유승우 국회의원은 시집ㆍ수필집을 아홉 권 낸 시인으로 목민관 시절 문학단체와 문인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었다. 설봉공원은 현존하는 시인들의 시비가 많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인협회가 공원에 시비 건립하는 것을 꺼리는 어떤 지자체와는 생각이 다르다. 채수영(72) 시인의 작품 낭독회도 함께 열린 이날 조병돈 이천시장과 이광희 이천시의회의장은 문인들이 많이 사는 이천이 자랑스럽다며 채수영 시인을 비롯한 이천문인들의 활동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틀간 문학행사에 참석하면서 경남 함양군, 경기도 이천시, 두 지방자치단체장의 지극한 예술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문학과 지방행정의 진실한 연계가 보기에 매우 좋았다. 함양군ㆍ 이천시, 두 고장의 순박한 문학사랑이 고마웠다. 임병호 논설위원 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김영란법’, 원안대로 제정하라

우리나라 공직자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부패인식지수(CPI)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외국 중 27위로 바닥권이다. 직급과 업무를 막론하고 떡값 명목의 크고 작은 금품수수가 만연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세칭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이른바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에게 일상적인 친분관계를 핑계로 돈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금품을 받은 공직자가 적발돼도 직무연관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공직자를 상대로 한 청탁과 뇌물 제공은 대개 은밀하게 이뤄진다. 평소 아무런 조건 없이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청탁을 한다. 힘 있는 부처와 공직자를 대상으로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거나 보험을 드는 이른바 스폰서라는 부패 관행은 지연ㆍ학연ㆍ혈연 같은 상호 유착을 통해 발생한다. 공직자에게 돈을 건네는 사람들은 으레 조건없이 주는 돈이니 부담없이 쓰라고 말한다. 거래를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어느 날 청탁이라는 발톱을 드러낸다. 조건없으니 부담없이 써라? 과거 미풍양속인 양 좋은 의미로 사용되던 떡값이라는 말이 오늘날 부정부패의 대명사처럼 변질된 것은 본래의 취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구체적 청탁이 있을 당시가 아니라 평소에 떡값 명목으로 상당한 금품을 수수함으로써 특혜 준비를 해놓은 것은 뇌물죄로 볼 수 없다는 논리 자체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입법마저 유명무실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그 의도는 담박 드러난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법은 국가기관을 위한 것도 아니고, 법률 전문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법은 오로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의 사익 추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든 법이다. 앞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대가성 없이 금품을 받는다는 것은 스폰서 관계가 된다는 뜻이라며 스폰서를 막지 않으면 우리나라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 이 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안의 핵심인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법무부 요구에 따라 세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도입 취지가 크게 크게 훼손됐다. 지난해 8월 권익위가 입법예고한 원안에는 직무 관련성 여부와 상관 없이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금품 5배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반면 법무부가 고친 최종안은 같은 내용에 대해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고, 처벌 대상도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공직자로 한정했다. 법무부는 과잉처벌에 대한 우려를 들고 있지만 교묘하게 뇌물죄의 요건을 피했다 하더라도 죄질이 이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이를 과잉처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에 대한 처벌을 형벌이 아닌 과태료로 대신하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란법의 발목을 잡은 곳이 하필이면 법무부다. 김영란 전 위원장이 법을 이렇게 고치면 뇌물죄로 처리되는 것을 괜히 (새롭게) 과태로 규정을 만들어 제재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가성 없이 금품을 받는다는 것은 스폰서를 둔다는 것이며, 스폰서를 막지 않으면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김영란법 국회가 원안대로 만들어라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 입법 과정에서 법무부 반대로 누더기가 된 김영란법을 의원입법을 통해 원안대로 재추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영란법 원안 취지를 그대로 살린 이 법안 발의에는 박지원ㆍ한명숙ㆍ원혜영ㆍ민병두ㆍ이상민ㆍ김영주 의원 등 12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모처럼 괜찮은 일 한번 하려는데 새누리당이 팔짱을 끼고 구경만하고 있어선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ㆍ사사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어린이 수난시대

근래 속속 드러나는 어린이 학대 만행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운다고 입에 거즈손수건을 물리고, 우유를 제대로 먹지 않는다며 젖병 뚜껑을 열고 우유를 아이 입속에 쏟아부어 토하게 하는 등 두 살도 안 된 일곱명의 유아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아 온 전직 어린이집 원장이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우유를 먹지 않거나 다른 원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며, 학대행위에 해당한다 해도 경미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두살배기를 화장실에 가두고 때리는가하면 낮잠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한 어린이집 교사가 입건되기도 했다. 며칠 전엔 어린이집에서 17개월짜리 어린이를 폭행한 보육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보육교사는 17개월짜리 애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과 가슴을 손으로 때렸다. 피해 아이는 등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17개월짜리가 이같은 폭행사실을 부모에게 말했을 리 없다. 어린이 학대는 사람 짓이 아니다 우연히 상처를 발견한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다. 어린 애가 앉은 상태에서 앞으로 엎어질 정도로 강하게 등을 맞았고, 엎어져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등을 맞았다. CCTV에 나타난 폭행장면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는 아이가 종일 울면서 징징거리는 것이 짜증나 때렸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말못하는 어린 애들이 폭행을 당하면서 느낀 공포감과 겁에 질린 눈동자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고아들을 돌보는 50년 전통의 J아동양육시설에서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학대해온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곳 원장 P씨(51ㆍ여)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직원들을 시켜 나무ㆍ플라스틱 막대기나 빗자루로 처벌케 했다. 벌칙으로 생마늘과 그 매운 청양고추를 먹였다. 아이들은 밥을 늦게 먹거나 욕을 하다 적발되면 생마늘을 먹어야 했다. 한 아이는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먹다 토하면 토한 마늘까지 다시 먹으라고 해 울면서 토한 걸 주워 먹었다고 진술했다. 아이들을 일종의 독방인 타임아웃방에 방치하기도 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개월까지 이곳에 감금당한 아이들은 식사도 따로 하고 화장실 출입도 제한받았다. 온수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겨울에도 찬물로 씻어야 했고, 식사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밥을 먹지 못하기도 했다. 벌칙으로 식사 여섯 끼를 굶었다거나 밥을 늦게 먹었다고 냉동실에서 얼린 밥을 줬다는 진술도 나왔다. J아동양육시설은 50년 전 미국인 여성 선교사(77)가 설립한 곳으로 대부분 버림받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1천20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벽안의 어머니로 불리던 설립자는 2001년부터 각종 봉사상을 수상했고 지난달 23일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 이 시설 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을 받을 때 마다 버려진 아이들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소감을 밝혀 왔다. 주민들이 충격에 흽싸이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집ㆍ 보육원ㆍ아동양육시설 등에서 폭행ㆍ비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첫째로 운영자의 인간성이 돼 먹지 않아서이지만, 정부의 부실한 관리와 솜방망이 처벌 탓도 크다. 몇집 건너 어린이집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많지만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설령 문제가 생겨도 행정처분이나 불구속 입건에 그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운영자는 아동 학대 등의 이유로 폐쇄 명령을 받았더라도 1년만 지나면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천벌 받아도 마땅한 어린이 학대범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동 폭력이 자기방어능력이 없는 자에 대한 폭력이란 점에서 여성 폭력보다 가중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폭행이나 비리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 잘못하면 다시는 어린이 보육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비단 어린이집 등 만이 아니다. 어린 친자녀를 때리고 내다 버리는 비정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날이 1년 365일이면 무얼 하는가. 어른들이 먼저 진정한 인간이 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공립 박물관, 영업장 아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건립해 운영 중인 전국의 공립박물관은 312개다. 이 중 124개가 하루 평균 관람객이 100명 미만이고, 68개는 50명 미만이다. 조해진(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8월 문화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 자료다. 경기도 화서기념관과 연천향토사료관, 강원도 양구 팔랑민속관은 연간 관람객이 1천명 안팎에 그쳤다. 하루 평균 30여명인 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박물관의 상당수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애물단지는 주민 세금으로 지은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적다해서 빗댄 말이다. 반면 박물관 수는 2003년 70개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박물관이 급증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자체장들이 치적 쌓기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지었기 때문이란다. 손님 없는 공립박물관이 전국에 난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는 지자체장의 전시행정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까다롭지 않은 설립 규정도 박물관 난립을 부추기는 요인이란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지자체가 예산과 조례를 마련하면 설립이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소장 유물을 관리하는 전문가인 학예사도 1명만 있으면 된다. 박물관 설립 기준을 강화해 세금이 낭비되는 일을 막아야 된다는 지적한 배경이다. 관람객 감소 이유 중 가장 큰 게 전시유물 복제품이 많은 탓으로 알려졌다. 적게는 7억원, 많게는 120억을 들여 지은 박물관 중 40%가 하루 평균 관람객이 100명 이하, 21%가 50명 미만이라면 곤란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박물관은 영업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세수를 늘리거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건립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물관은 인류와 그 환경에 관한 물적 증거를 학습ㆍ교육 및 오락을 목적으로 수집ㆍ보존ㆍ연구ㆍ전시하여 사회와 그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항구적인 비영리 기관이다라고 정의하였다. 1974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채택된 국제박물관협회(ICOM)의 박물관헌장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의 기록이나 발굴조사된 유적 등으로 미루어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초기형태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고대사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고려시대의 宮苑에 진기한 새ㆍ짐승을 길렀다든가, 진기한 노리개와 서화를 모아서 좌우에 진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근대적인 의미의 박물관은 조선 말기부터 시작됐다. 1908년 순종이 창경궁 안에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 후에 일본이 李王家박물관으로 개칭)과 식물원ㆍ동물원을 발족시켰고, 박물관엔 삼국시대 이래의 미술품이 전시됐다. 1909년 박물관ㆍ미술관ㆍ동물원을 일반에 공개한 것이 근대적 박물관의 시작이다. 1915년 경복궁 내 총독부박물관이 준공ㆍ개관됐고 그 뒤 경주ㆍ부여ㆍ공주분관이 설립됐다. 개성부립박물관ㆍ평양부립박물관도 개관됐다. 1945년 해방 후 총독부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 개편되면서 경주ㆍ부여ㆍ 공주분관들은 국립박물관의 분관이 됐다. 1970년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존 박물관들의 신축ㆍ이전 등 새로운 여러가지의 박물관 개관 등 박물관의 발전이 상당했다. 1972년 국립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직제가 개편됐고, 경주ㆍ부여ㆍ공주분관들이 각각 국립박물관으로 승격됐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박물관에 대한 인식과 여가선용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공립(시ㆍ도ㆍ군립)이나 사설 또는 대학부설의 종합박물관 및 특수박물관 등 시설이 급증했다. 1984년 박물관법, 1985년 박물관법 시행령이 제정ㆍ공포된 이후 1989년 개정됐으나 사회적 욕구의 변화에 비추어 문제점이 많았다. 등록요건ㆍ설립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제도를 강화해야 된다는 필요에 따라 정부는 1991년 11월30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제정ㆍ 공포했다. 이 법은 박물관은 인류ㆍ역사ㆍ고고ㆍ민속ㆍ민속ㆍ예술ㆍ동물ㆍ식물ㆍ광물ㆍ과학ㆍ기술ㆍ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보존ㆍ전시하고, 이들을 조사ㆍ연구하여 문화ㆍ예술ㆍ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교육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했다. 궁극적으로 박물관은 현재와 과거의 문화유산ㆍ자연유산을 미래에 전승하고,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기관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요람이다. 관람객이 적어 돈이 줄줄 새는 지자체 박물관이라고 질책만 할 게 아니다. 되레 무료관람으로 운영방침을 바꾼다면 많은 관람객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을 게 분명하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흙

김춘진 국회의원(민주통합당)이 최근 흙의 중요성을 알리고 건강한 흙에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흙의 날 법제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농림어업 및 국민식생활 발전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국회의원답다. 환경을 보존하고 식량안보를 달성하는 데도 흙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되면 일 하기 좋다는 김 의원의 말에 동감한다. 흙의 날은 농협이 2000년에 제정했지만 법정기념일은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2012년 12월 이탈리아 로마 FAO본부에서 열린 총회 때 12월5일을 세계 토양의 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매년 흙의 날을 맞아 농협이 주관하는 기념식과 농민신문사ㆍ토양비료학회가 주최하는 흙을 살리자는 심포지엄을 열고 흙과 농산물 생산의 절대 연관성을 알려왔다. 흙의 날인 11월9일에서 11(十一)은 흙(十+一=土)을 의미하며 9는 작물 생육에 필요한 필수원소 중 다량원소 9가지(산소ㆍ수소ㆍ탄소ㆍ질소ㆍ인ㆍ칼륨ㆍ석회ㆍ고토ㆍ황)를 뜻한다고 한다. 흙을 생각해 본다. 우리 민족은 일찍이 원시적 농경으로 토지와 인연을 맺어왔다. 식물의 생장ㆍ결실이라는 자연의 변화과정을 인간의 힘과 책임에 의해서 재현하는 농경생활은, 식물 그 자체나 식물의 계절적 순환 또는 식물을 만들어내는 대지(흙) 등을 둘러싸고 곡령관(穀靈觀), 죽음과 재생관, 지모신관(地母神觀) 등 여러가지의 주술적ㆍ종교적 관념, 관습 등을 발생하게 하였다. 지모는 모든 사물의 영원한 생명적 근원을 의미한다. 농경민족에게 흙과 땅은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단순한 농경지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다. 태어난 곳이자 되돌아가야 할 숙명적인 근원지였다. 흙을 일구고 그 흙 속에 식물을 키워 양식을 장만하며, 흙을 이겨 지은 집에서 삶을 살아온 인간들에겐 흙과 땅이 가장 큰 유일한 은혜적 존재이고 안식처였다. 설혹 홍수ㆍ혹한ㆍ가뭄 등 자연의 시련을 겪어 때로 헐벗고 굶주리며 살았어도 흙과 땅을 경배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이 삶 속에 승화돼 흙과 땅을 수호신적인 존재, 은혜적인 존재,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심성을 낳았다. 우리 민족에게 흙은 농토ㆍ농민생활ㆍ경제ㆍ재산, 그리고 소유를 의미하였다. 경제활동의 중심이자 생활의 터전이며, 생명이 달려 있는 곳이다. 한치의 땅을 더 얻는다는 것은 곧 재물과 복을 얻는 일이며, 한치의 땅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을, 생명의 한쪽을 잃어버리는 것을 뜻하였다. 비옥하며 넓은 땅에 대한 희구는 현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까지도 연장하려는 집착이 강하였다. 인간에게 흙과 땅은 절대적 힘을 가진 생존과 삶의 근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친화력을 깊이 맺었다. 민속에 나타난 여러 놀이ㆍ행사는 이것이 상징적으로 표출ㆍ신앙화돼 인습적으로 전해 내려온 흙의 사상이다. 지신(地神)밟기놀이는 한해의 풍년ㆍ안택(安宅)ㆍ무병장수ㆍ초복(招福)을 빌며 악귀를 몰아내고 착한 신을 불러들이는 놀이다. 흙에는 또한 정신적인 의미가 깊다. 고향으로서의 흙이다. 그 땅에서 태어났으며 조상의 피와 땀이 섞인 흙에서 자신의 뿌리와 가치관을 찾는 토착적 생각이 흙을 고향으로 연결시킨다. 흙은 물과 더불어 자연의 근간으로,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행로라 여겼다. 바로 환토관(還土觀)이다.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로 도시화ㆍ규격화 등의 현상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흙과 함께 하는 생활, 흙과의 친화ㆍ교류, 흙으로의 회귀 등을 추구한다. 그렇다. 흙을 생각해보면 흙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올해 11월9일엔 김춘진 의원이 하시는 일이 이뤄져 법제화된 흙의 날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춘분 무렵이다. 여럿이서 들녘에 나가 밭두렁 논두렁 그 촉촉한 흙길을 맨발로 걸어야겠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문화융성’이 국격 높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취임사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의 3대 키워드는 경제민주화로 창조경제를 달성하겠다는 경제부흥, 노후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는 국민행복, 문화 가치 정립으로 사회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문화융성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전,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 실현 등도 언급했다. 국민과 함께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피력하는 등 5년 임기 동안 역점을 둘 분야를 역설했다. 교수ㆍ학자 등 석학들과 국가 원로ㆍ지도층 인사의 도움 없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몇몇 측근들이 쓴 초안이 올라가긴 했지만 박 대통령은 거의 이를 제쳐두고 키워드부터 새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작성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화려한 수사(修辭)와 현란한 구호가 보이지 않고 국정목표와 지향을 명료하게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기야 한국문인협회ㆍ 국제펜한국본부 회원인 박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사를 남에게 맡겼다면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겠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국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57번을 사용했고, 전임 이명박 대통령도 30번을 사용했다. 박 대통령 취임사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20번, 문화가 19번 등장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취임연설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국정운영 기조가 실린다. 그 중에서 문화를 눈여겨 보면 문화 강국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가 실렸다. 문화대통령 문화강국을 자처한 지도자는 많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이번처럼 문화가 강조된 적은 없었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문화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라며 새 정부에서는 우리 정신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지역과 세대와 계층간의 문화 격차를 해소해 생활 속의 문화, 문화가 있는 복지,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사회 갈등 해결책으로 문화를 정책적으로 할용하겠다는 뜻이다. 문화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창조 한국도 없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지극히 당연하다. 맹자는 사람은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다. 맹자가 말한 예절이란 말속에 문화라는 개념이 함축돼 있음을 생각해야 된다. 예로부터 문화가 융성해야 국운도 흥했고 국민도 행복했다.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말대로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문화, 이념과 관습을 뛰어넘는 문화,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수준 높은 문화가 있어야 한다. 문화 향유권 확대를 통해 지역과 세대와 계층 간의 문화격차를 없애려면 문화재정 2%를 반드시 실천해 다양한 창작활동을 적극적ㆍ효율적으로 지원해야 된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국민의 문화권 보장과 국가의 문화진흥을 위해 약속한 대로 문화기본법 제정도 서둘러야 한다. 대선 공약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성이 들어 있어 100% 믿기 어렵지만, 취임사는 국민과 세계 축하사절 앞에서의 신성한 약속이다. 박 대통령은 약속과 원칙을 중시하는 만큼 취임사에 담긴 내용들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두려면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이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기 위해선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믿는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터이다. 정치에서 정(政)의 의미는 곧 정(正)이다. 지도자가 자신을 바르게(正己)할 수 있어야 능히 남을 바르게(正人)할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정기(正己)는 수신(修身)을, 정인(正人)은 치국(治國)을 의미한다. 아버지 박정희의 생애에서 수신과 치국을 뼈저리게 경험한 박근혜 대통령이다. 취임사대로 문화가 국력인 희망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국립고구려박물관’, 구리시가 최적지다

경기북부 지역은 고구려 유적의 보고다. 고구려는 일찌기 강력한 군사력으로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건국 초기부터 줄기차게 발전을 거듭하여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론 요동지방, 남쪽으로는 한강유역, 북쪽으론 지린성(吉林省) 의 송화강 유역까지 확장했다. 남쪽으로 한강유역을 확보한 고구려는 한강유역에 군사적 거점을 마련하고 남진을 계속, 소백산맥 너머까지 영향력을 뻗쳤다. 충주의 중원고구려비나 청원의 남성골산성 등 고구려의 것으로 알려진 유적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고구려 유적은 한강 이북지역에 밀집돼 있다. 경기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임진강ㆍ한탄강 유역과 천보산ㆍ불곡산을 중심으로 한 양주 일원, 그리고 한강유역 아차산 일대 등 크게 3개 유적군으로 대부분 성곽이다. 이 중 한강유역의 고구려 성곽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며 시작되는 곡류부가 끝나는 지점에 해당되는 아차산 일원에 입지한다. 보루군은 아차산과 용마산, 홍련봉, 시루봉, 봉하산 등에 분포돼 있다. 전체적으로 한강유역의 성곽은 아차산을 중심으로 서쪽 중랑천과 동쪽 왕숙천을 넘지 않는다. 1990년대 들어 각 시ㆍ군의 광역지표조사가 실시돼 많은 수의 고구려 유적이 조사됐다. 1994년 구리문화원이 아차산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 20여개의 고구려유적을 확인했다. 1995년 육군박물관의 군사보호구역인 임진강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서도 고구려 유적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파주ㆍ연천의 접경지대에서 당포성과 호로고루성ㆍ은대리성 등 고구려의 남방거점으로 활용된 중요 성곽들이 발견된 데 이어 1998년 양주시 광역지표조사에서도 천보산맥과 불곡산ㆍ도라산 일대 고구려 보루들이 집중 분포돼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한강 북안의 아차산 일대는 고구려의 군사적 요충지로 고구려 군사들이 주둔하던 요새인 보루(堡壘)가 잘 남아 있다. 고구려는 475년 백제의 한성(漢城)을 함락한 후 80여년 간 이 지역을 경영했다. 아차산(峨嵯山ㆍ285.5m)은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여서 남쪽으로는 한강 이남 지역이 한눈에 조망되고, 북쪽으로는 멀리 의정부에 이르는 길목까지 조망할 수 있다.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격전을 벌인 아차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역사가 있어 산 입구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도 세워 놓았다. 특히 구리시가 고구려역사공원 조성과 유적발굴 등 고구려 관련사업 추진에 전력을 쏟아 주목을 받는다. 구리시는 시비 50억원을 들여 아차산 일대 45만㎡에 고구려역사공원을 2015년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최근 고구려역사공원 조성사업 관리계획 승인 및 그린벨트 해제 신청서를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했다. 고구려역사공원에는 시루봉과 홍련봉 보루에서 출토된 철기류와 토기류 등 1천5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비롯, 고구려병영체험장, 고구려고분벽화와 장수왕릉을 재현한 시설, 고구려활터, 숙박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보전회가 2007년부터 고구려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범국민성금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고, 구리시는 30억원을 들여 아차산 입구에 고구려 대장간마을을 조성했다. 이어 교문동에 광개토태왕비 복제비와 동상을 건립하는 등 고구려유적지 사업을 줄기차게 추진해 왔다. 올 3월부터는 대장간마을 ~ 시루봉ㆍ홍련봉 보루 ~ 서울 광진구 자양ㆍ구의동 보루 ~ 망우산 한용운묘역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투어)도 실시할 계획이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응하고 남북한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개관을 목표로 추진중인 국립고구려박물관을 구리시에 건립해야 하는 당위성이다. 고구려역사공원 인근에 국립고구려박물관이 들어설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협력해 만든 최초의 고구려 역사 유적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일보도 그동안 고구려의 재발견, 깨어나라 大고구려여! 등 특집 기획 보도를 통해 고구려역사박물관과 국립고구려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창해 왔다. 고구려 역사공원과 국립고구려박물관이 아차산에 건립되면 고구려 왕릉ㆍ고분벽화ㆍ광개토태왕비 등을 보러 평양이나 중국 지안(集安)에 가지 않아도 된다. 경기도에 또 하나의 명소를 만드는 일이다. 구리시와 경기도는 물론 정치인들도 국립고구려박물관 유치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五賊’은 살아 있다

요즘 적잖은 국회의원들이 비난을 받는 건 다 자기네들이 자초한 일이다. 새 정치를 하겠다, 특권을 내려 놓겠다, 세비는 30% 삭감하겠다며 몸을 낮추는 척 하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안면을 싹 바꿨으니 백번 욕을 먹어도 싸다. 1970년 김지하 시인이 쓴 담시(譚詩) 오적(五賊) 중 한 놈으로 나오는 국회의원과 달라진 게 조금도 없다. 오적 의 국회의원편을 한번 다시 보자. 또 한 놈이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몸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쭉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 혁명이닷, 구악은 신악으로 ! 개조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이농(離農)으로! /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으로! 사회정화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을 철두철미 본받아랏! /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 손자(孫子)에도 병불염사(兵不厭邪), 치자즉 도자(治者卽 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 空約)이니 /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2012년 12월 31일과 2013년 1월 1일 사이 국회 밖 호텔을 오가며 나랏돈 도둑질 한 인사들이 바로 治者卽 盜者요 公約卽 空約이다. 43년 전과 오늘날 국회의원 행태가 똑같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노릇이다. 국회가 342조원 규모의 올해 예산을 짜면서 이른바 쪽지예산을 대거 챙겼다. 쪽지예산은 여야 실세나 예결위 의원들 지역에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상당수 민생예산이 뒷전으로 밀렸다. 애초 이번 예산심의 과정에서는 여야가 복지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한 터여서 지역구 사업 예산은 크게 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지역 민원성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정부안보다 무려 3천710억원이 늘었다. 지역의 각종 민원ㆍ문화사업 등의 예산을 합하면 의원들이 챙긴 쪽지예산 규모는 대략 5천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불행히도 현대 정치학에서 정치란 희소가치들의 권위적 배분으로 자주 통칭된다. 희소가치의 대표는 재화ㆍ권력ㆍ명예같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쪽지예산 사태는 일부 정치인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상당한 국가예산(재화)를 권위적으로 잡아챈 셈이다. 국회의원 연금 개혁은 18대 국회 때에도 수차례 발의됐으나 무산됐다. 국회의원 연금 페지의 경우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방망이만 두드리면 되는데도 없던 일이 됐다. 예산안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새해 첫날 오전 6시쯤 처리됐다. 여기서 국회의원 연금 128억원을 슬쩍 끼워 넣었다. 하루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도 평생 매월 12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공짜 연금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배짱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강조했던 연금 개혁은 정치적 생쇼에 불과했다. 수원지방 사투리로 매를 주주한다는 말은 매를 번다는 뜻이다. 그동안 주주했던 매가 아팠던지 아니면 소나기는 일단 피해보자는 계략인지 11일 새누리당ㆍ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연금제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누가 믿을 것인가. 더 더욱 국민을 공분케 하는 것은 국회의사당에서가 아니라 호텔방에서 쪽지 예산을 처리한 주역 9명이 막대한 국고로 외유를 떠났다. 두 팀으로 나눠 출국한 여행 목적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예산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대부분 후진국인 이들 나라에서 예산 시스템을 배우겠다니 변명도 유치하다. 물론 대다수 다른 국회의원들이 본 의원은 그렇게 후안무차하지 않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좋다. 외유를 떠난 예결위원들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시켜라. 여비로 쓴 돈을 전액 회수하라. 그런 다음 세비 삭감 등 모든 약속을 관철시켜라. 다른 누가 또 제2의 오적을 쓸 것 같아서 입맛이 쓰다. 임병호 논설위원ㆍ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여인천하

현 시점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고 하겠다.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에 오른 그는 독일을 유럽연합(EU) 핵심 국가로 이끌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긴축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독일판 철의 여인으로도 불린다. 독일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을 이끌면서 사회민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수행한다. 그는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4년 연속 1위에 오를 만큼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남미 최대국 브라질을 이끄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다.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이면서 대중적 인기 역시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80%에 달했다. 변호사 출신의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미혼으로 호주 사상 첫 여성 지도자가 됐다. 온화하지만 정책 대결에선 전사(戰士)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헬레 토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셰이그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 요한나 사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 에블린 비드머 슈룸프 스위스 대통령도 여성으로 한 나라를 이끌고 있다. 아시아권에선 남편 또는 가족의 후광을 입고 지도자에 오른 사례가 여럿 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대표적이다. 라이베리아, 코스타리카, 리투아니아, 트리니다드토바고, 코소보, 자메이카, 말라위, 산마리노 역시 여성 지도자를 택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로 기록된 스리링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전 총리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남편인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전 총리가 1959년 암살된 이후 정치에 입문했다.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첫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이 탄생됐다. 혹자들은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을 공주 운운하지만 가당찮다. 영부인인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의 훙탄을 맞고 스러졌다. 작고한 어머니 대신 22세부터 5년간 퍼스트 레이디 대행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도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부장의 총탄에 서거했다. 박 당선인은 한 분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총탄에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가혹한 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며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9일장을 마친 박 당선인은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만 15년 간의 청와대 생활이 끝났다. 박 당선인은 신당동에서 성북구 성북동, 중구 장충동을 거쳐 1990년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단독주택으로 옮겨 정치권에 입문하기까지 18년간 칩거 생활을 이어 갔다. 이 기간은 박정희 체제하에서 잘나가던 인사들이 배신하는 등 박 당선인에게 암흑기와 같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4선의 국회의원으로 제18대 대통령에 출마, 독재자의 딸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1천577만3천128표라는 역대 최다득표로 당선됐다.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된 역사를 스스로 썼다. 2007년 2월 중순 미국에 갔을 때 박 당선인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설에서 내겐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박정희를 당당하게 자랑했다. 그해 3월16일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했을 땐 성타 스님이 박 당선인에게 여왕이 될 사람은 오직 박근혜뿐이라며 여왕 탄생을 축하한다 는 덕담도 했다. 5년 뒤이지만 성타 스님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지난 20일 오전 박 당선인은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에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첫 기자회견에선 대탕평책으로 분열ㆍ갈등의 역사를 끊고 소외되는 분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겠다고 천명했다. 바라건대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48%의 반대진영 요구도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 세계여성 정치지도자 18명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성공하길 기대하는 바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ㆍ社史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농촌농민 너무 무시한다

올해 쌀 생산량이 400여만t에 그치면서 32년 만에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정부 비축분과 수입쌀을 시중에 풀면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쌀 생산량은 냉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1980년 335만t 이후 가장 적다.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다 태풍의 영향으로 작황까지 부진했기 때문이다. 올해 쌀재배면적은 8 4만9천㏊로 지 난해보다 0.5% 감소했다. 더구나 8월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전남, 전북과 충남 등에서 벼 이삭이 쪽정이만 남는 백수 피해가 생긴 데 이어 9월과 10월 초에는 태풍 산바로 일조시간도 줄어 낟알이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 시도별 생산량은 3.8% 늘어난 경기(42만1천t)를 빼고는 모든 시도에서 감소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곡을 대체할 수 있는 2011년산 정부ㆍ민간 재고와 수입쌀 등을 감안할 때 수급 불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태평이다. 2012년 양곡년도 이월재고 91만t, 쌀 의무수입량 47만8천t 등 을 감안하면 내년 전체공급량은 수요량에 비해 82만t 정도가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산지 쌀값과 산지 조곡 가격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낙관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선 올해 경기지역의 경우 벼 수매가 인상률이 지난해 대비 2%대에 그쳤다. 특히 인상률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타 지역의 절반 수준인데다 농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적정 수매가를 한참 밑돈다. 농협중앙회가 올해 경기지역에서 생산된 쌀 18만t을 수매키로 했지만, 최근 경기지역 21개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매입하는 벼 수매가가 1등급 및 특등급 조곡 40㎏ 기준 평균 6만1천620원으로 결정, 지난해 6만202원에 비해 겨우 1천418원 올랐다. 인상률이 고작 2.4%다. 여주의 경우 올해 수매가가 6만5천500원으로 지난해 6만5천원보다 500원, 김포는 6만2천520원으로 770원, 이천은 6만6천원으로 1천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적정 수매가 7만5천원을 1만원 이상 밑도는 가격으로 최소 3% 후반대에서 최대 7% 대의 인상률을 보인 타지역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농협이 내놓은 벼 수매가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 없는 액수다. 수매가를 재조정하거나 등급별 기준을 낮추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의 촉구는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가 쌀을 저가로 매입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지원자금을 더 주도록 경양평가 방식 변경을 추진하는 것도 뭘 모르고 하는 일이다. 농수산식품부는 지난 15일 경기ㆍ인천지역 농협, 민간RPC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RPC 경영평가 및 운영제도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경영평가 항목에 수학기 벼 매입값 증가율과 쌀판매가격 증가율을 신설, RPC가 농가로부터 벼를 높은 값에 매입하거나 소비자 판매가를 높게 책정할수록 낮은 평가를 받도록 했다. 개선안은 또 영업이익을 많이 낸 PRC엔 가점을, 덜 낸 곳에는 감점을 줘 차등 지원키로 했다. 정부가 RPC를 압박해 쌀값을 통제하겠다는 저의다. 농민은 쌀을 비싸게 팔려고 하는 게 당연한데 농민을 보호해야 할 농식품부가 오히려 싸게 사라고 윽박지르는 셈이다. 곡물이 조금만 남아돌면 대체작물로 전환하라고 했다가 부족하면 이런 대책을 내놓는 등 지침이 수시로 바뀌어 농민들은 혼란스럽다. 쌀 수확량 감소로 쌀값이 예년 수준이 되는 듯 하자 정부지원금으로 쌀 유통관계자들을 협박하고 있는 졸속행위다. 쌀값 인상이라는 근시안적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식량자급률과 식량주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되는데 참 걱정스럽다. 지난번 태풍 때 피해를 입어 농약대와 대파비 명목으로 준 재난지원금은 애들 장난이 따로 없다. 각 지자체는 소방방재청이 태풍 피해면적과 피해율을 토대로 산정한 재난 지수 300 이상 농가를 대상으로 50만원부터 최고 5천만원까지 지원금을 지급했거나 지급 중이다. 재난지원금은 실손 보상을 해주는 보험과 달리 구호적 차원의 위로금 성격이라고 소방방재청은 말하지만, 대체적으로 3.3㎡(1평) 당 20원에도 못 미치는 건 아무래도 너무 했다. 영세농에겐 그나마도 그림의 떡이다. 오늘날 농촌ㆍ농민의 대우가 대개 이렇다. 12월 19일, 농민의 힘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 편찬실장

[임병호 칼럼] 경기도 유권자를 무서워하라

행정안전부에서 집계하는 주민등록 기준 인구통계에 따르면 경기도 인구가 올 9월 기준으로 1천204만7천601명이다. 서울특별시 인구 1천21만9천334명보다 훨씬 많다. 면적도 서울의 약 17배에 달한다. 경기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대의 광역지방자치단체다. 이러한 경기도를 외부인'이 바라본 <非경기도인들이 본 경기도> 설문조사가 있었다.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가 발행하는 「G Economy21」과 경기개발연구원이 (주)한국리서치에 의뢰, 2010년 12월 경기도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경기도 이외 지역 사람들에게 경기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잘 모르겠다(27%)였다. (이천 여주) 쌀(6.8%) 경기도지사(5.4%)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도지사라는 응답과 관련해선 도지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57.0%였는데, 이 중 79.1%가 김문수 도지사라고 답했다. 김문수 도지사가 경기도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가 서울과 동일한 생활권인지 묻자 82.7%가 매우 또는 대체로 그렇다고 답했다. 비경기도인들이 꼽은 장점은 서울과 가깝다(29.0%)였다. 주변환경이 깨끗하다(5.4%) 교통이 좋다(5.1%) 등이 거론됐다. 경기도에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엔 43.9%가 있다고 답했는데, 첫번째 이유가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이라서(26.6%)였다. 공기가 좋아서(9.8%), 붐비지 않고 여유로워서(9.2%) 등도 나왔다. 이런 답변도 있었다. 비경기도인들의 86.5%는 경기도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79.0%는 주변국과의 경쟁을 위해 경기도 및 수도권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3.6%는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끄는 지역이라고 했고, 63.0%는 경기도의 발전은 수도권 외 지방 발전에 긍정적이라고 했다. 이성적으로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경기도 등 수도권지역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뤘다. 최근 언론에는 경기도 수도권은 주요 선거 때마다 지지정당이 달라진 가장 변덕스러운 투표성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됐다. 맞는 말이다. 경기도는 유권자들의 출신지가 다양해 지역, 이념 등 전통적 대결 구도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반면, 바람에 따라 승부가 휘청이는 바람몰이 지역이다. 경제활동 인구가 많아 주거 교육 일자리 문제 등 주요 사회, 경제적 정책 이슈의 반응도가 높은 편이지만 단일 이슈로 특정 계층이나 일부 지역의 표심을 공략하기도 힘든 복합적인 유권자 성향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9월 말 현재 만 19세 이상 유권자 4천43만6천231명 가운데 경기도 유권자가 23.1%에 이른다. 행정안전부의 자료다. 인천 5.5%, 서울 20.7%를 합치면 전체 유권자의 49.3%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18대 대통령 후보들이 경기도 유권자에게 내놓은 공약이 거의 없다. 예컨대 경기도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개통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GTX는 단순히 교통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전체의 문화, 생활 등 모든 것을 바꿀 대역사다. 경기도의 숙원사업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GTX만큼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철도사업이 없는데 꿀 먹은 벙어리들이다. 김문수 도지사가 정부에 연일 따져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위 빅3 대선후보들이 한국매니페스토본부가 요구한 공약 제출을 거부하고 가치와 비전, 정책 경쟁이 실종된 상태에서 인물 검증을 빙자한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만을 일삼는다. 선거일이 43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경기도를 위한 공약이 시원찮다. <비경기도인들이 본 경기도>에서 전국적인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 경기도라고 한 평가를 대선 후보들이 모르는 모양이다. 투표 성향이 변덕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판단이 명료하다는 말이다. 대선 후보들은 경기도 유권자들을 무서워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社史 편찬실장

[지지대] 인명구조견

개가 사람을 또 살렸다. 남양주소방서 119구조대에 배치된 태백이라는 이름의 인명구조견이 등산을 하다가 쓰러져 사흘째 연락이 두절된 노인을 발견, 목숨을 구했다.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거주하는 양모(69)씨는 지난 4일 오후 2시 등산을 한다고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안산소방서와 경찰은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나흘 동안 수색을 벌였지만 성과가 없어 인명구조견이 있는 남양주소방서에 도움을 요청했다. 태백은 두 명의 소방교와 함께 수색을 한지 20여분 만에 건건동 야산 등산로 근처 덤불에서 양씨를 발견했다. 다섯살의 태백은 2010년 10월 남양주소방서에 배치돼 최근까지 80여건의 실종자 수색에 투입돼 활약했다. 역사에 기록된 첫 인명구조견은 18세기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수도원에서 키우던 세인트버나드 종 베리라고 한다.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여행객들을 수도원으로 안내하는 등 구조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안타깝게도 베리는 실종자를 찾던 중 야생동물로 오인한 사람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인명구조견이 활용된 것은 1998년이다. 민간인명구조견센터에서 강원도 원주소방서에 다재와 다솔이를 무상 임대하면서 시작됐다. 민간에서 훈련시킨 구조견을 소방기관에서 무상 임차해 사용한 것인데 2010년 11월 끝이 났다. 지난해 4월 소방방재청 중앙119구조단이 인명구조견 양성 사업을 시작한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인명구조견 수는 19마리다. 중앙119구조단 3마리를 비롯해 경기도와 경북에 각 3마리, 강원부산경남전남제주에 각 2마리씩 있다. 구조견들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978차례 출동해 재난 현장을 누비며 155명을 찾아냈다. 그 중 71명이 늦지 않게 발견돼 생명을 건졌다. 지난 9월 20일에도 포천시 신북면에서 실종된 중증 치매환자인 유모(74) 할머니를 야산 부근에서 찾아냈다. 우리나라 인명구조견들의 활약은 세계적으로 최고여서 2009년 인도네시아 지진, 지난해 3월 일본 대지진 등 국제적인 재난 현장에도 파견돼 실력을 발휘했다. 사람들이 이젠 개만도 못한 놈이란 욕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임병호 社史편찬실장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의 뿌리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시인협회가 주관한 제3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이 지난 8일 수원 화성행궁 화령전(華寧殿) 운한각(雲漢閣) 뜰에서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미래의 문인 600여명이 글짓기 솜씨를 발휘한 이날 백일장은 경기도경기일보가 후원해 성황을 이뤘다. 조선조 23대 순조(純祖1790~1834)가 선왕 정조대왕의 유덕을 숭모하기 위해 지은 화령전 운한각 주위 소나무 아래, 전각 계단, 처마그늘 여기저기서 詩를 짓는 모습들이 그림같았다. 초중고대학생일반인들, 60, 70대의 노인들도 적잖았다. 수원시인협회의 한 시인이 화령전에 모신 정조대왕의 어진(御眞)이 밖으로 걸어 나오시는 것 같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백일장은 과거(科擧)처럼 시험관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詩題)를 내걸어 즉석에서 시문(詩文)을 짓도록 하고 글을 잘 쓴 사람을 장원차상차하참방으로 뽑아 시상한다. 조선조 3대 태종(太宗)이 1414년(태종 14) 7월 17일 성균관 명륜당에서 유생 500여명에게 시무책(時務策)을 물어 시험을 본 데서 비롯됐다. 유생들이 글재주를 겨루어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어서 여러 지방 관아에서 널리 시행됐다. 순조 재위 시절 향시(鄕試)를 치른 곳이 화령전이어서 정조대왕 숭모백일장 장소는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오래됐다.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이 한결 더욱 뜻 깊은 것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첫해인 2010년부터 흔쾌히 행사비를 지원해주는 점이다. 수원시의 여러가지 문예정책이 돋보인다. 1794년 2월 28일 착공, 1796년 9월 10일 완공한 화성을 축성할 당시 화성유수격인 오늘날 수원시장이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장원상이 수원시장 명의로 수여되는 연유이기도 하다. 한양 밖 능행차 / 지지대 고갯마루 / 푸른 소매 흔들며 마중 나온 바람소리 / 노송길 더딘 발걸음에 삭지 못한 그리움 // 이파리 이파리마다 / 목이 메는 사부곡 / 온몸으로 스며들어 가지마다 휘어지는 / 바람도 받아 안아야 나이테를 키우지 // 짙은 어둠 헤쳐 / 길 없는 길을 내며 / 새로 지핀 불씨처럼 다시 돋는 새벽별 / 그 아래 갈증에 젖는 오래된 생각의 뿌리 // 만백성의 성군으로 / 시대의 새벽길 떠나신 / 이산 정조 꿈의 길, 사무치는 효심의 길 / 이 길목, 천만년 지켜 새날 열어 가리라 대학일반부에서 장원을 한 부천 거주 강세은 씨의 작품 소나무다. 1회는 부산의 한남희씨, 2회 땐 광주(光州)의 서수연씨가 장원을 했는데 모처럼 경기도 사람이 장원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3회 모두 여성이 장원을 차지했다. 여느 백일장 장원과는 달리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면,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자격이 부여된다. 문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올해 정조대왕 숭모백일장은 특히 대학일반부의 많은 작품들이 정조대왕의 효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 시조의 형식에 담아낸 것이 특징이었다. 아름다운 수원 화성 화령전이 시적 분위기를 더 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장원작 소나무는 정밀하게 4수로 짜여진 연시조다. 첫째 수엔 능행차를 하는 노송길 더딘 발걸음에 삭지 못한 그리움이라 하여 정조대왕의 심정이 녹아들면서 둘째 수, 소나무 이파리와 가지를 정조대왕의 감정이입으로 치환(置換)했다. 종결 수에 이르러선 정조대왕의 꿈의 길과 사무치는 효심의 길로 형상화하여 마무리했다. 중고등 학생들의 작품도 좋았지만 잔디밭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작품을 쓰는 등 초등학생들의 수준도 예년 못지 않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은 무엇보다 구김살 없는 동심의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 풀잎처럼 순수한 마음, 꽃 같은 예쁜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정조대왕 숭모 백일장은 점점 널리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정조대왕의 문예사상과 효정신을 기리고 수원 화성의 높은 문화가치를 구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게 분명하다. 참, 화령전 뜰에 옛날처럼 작약(芍藥)이 만발했으면 좋겠다. 수원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1896~1948)도 명화 화령전 작약을 남겼다.

[임병호 칼럼] ‘화학적 거세’, 확대 적용하라

門 밖만 나서면 性범죄 무방비지대다. 門 안에도 벌건 대낮에 성범죄자가 들이 닥친다. 심지어 집에서 가족들과 잠자는 여아를 이불째 싸 안고 나가 성폭행하는 무지막지한 지경에 이르렀다. 밤낮, 대로변이나 올레길, 아파트계단, 술집, 학교 등 도무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성범죄자들이 날뛰는 무서운 세상이다. 검찰이 여성 청소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한 피고인에 대해 이른바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를 지난 8월 14일 청구한 배경이다. 올해 들어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1명을 화학적 거세 대상자로 결정했지만 검찰이 직접 청구한 일은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7월 시행된 뒤 첫 번째다. 법원이 치료 명령을 내릴 경우 청구 대상자는 최장 15년까지 성호르몬 생성을 억제감소시키는 약물을 투여받게 된다. 국회가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 재범을 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화학적 거세라는 극단적 수단을 도입한 것은 조두순 사건 등 충격적인 아동 성폭행사건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화학적 거세 도입에는 아이들에게 평생 심각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남기는 성범죄자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스스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범죄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필요성도 참작됐다. 새누리당이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을 현행 16세 미만 대상 성폭력범죄에서 모든 성범죄로 확대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전자발찌를 부착한 채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전과 11범의 행각에서 비로소 충격을 받은 모양 같은데 진즉 서둘렀어야 했다. 성충동 억제가 어렵다는 전문가 판단이 있을 경우 죄질의 경중을 떠나 화학적 거세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모처럼 옳은 말 한 번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 및 강제추행도 친고죄(親告罪)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아동 청소년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를 없앤다는 의미다. 물론 야당도 당연히 동의해야 한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화학적 거세를 법원에 청구하기로 했다. 화학적 거세 치료법에 대한 현직 경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4%가 찬성했다. 아동 성범죄는 초범부터 성충동 약물치료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78.3%나 된다. 아동 성범죄의 현 처벌 수위에 대해 상당히 미약하다가 33%다. 약물치료 기간을 현행 15년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62.4%, 출소 전 2개월부터인 치료 시작 시기를 수감 직후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은 57.9%에 달한다. 주한 미8군 출장소 파견 근무를 하는 서울 용산경찰서 보안과 양현호 경위의 박사학위 논문 아동 성범죄자 약물치료의 실효적 운영 방안 연구에서 현직 경찰 19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극악무도한 성범죄, 묻지 마 살인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한쪽편에서 나오는 범죄자 인권은 이제 빛을 잃었다. 사람의 마음과 행태는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빈 석판(blank slate) 이론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범죄는 범인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자리 잡은 탓인가, 성폭력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들이 너무 너그럽다. 화학적 거세만 해도 그렇다. 2010년 화학적 거세 관련법이 제정되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본인 동의 없는 법 시행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범죄자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사형선고처럼 경고용만으로도 효과가 크다. 단계적 확대와 전면 확대를 놓고 시간을 끌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만행을 저지른 성범죄자들은 구제 불능의 성도착자들이다. 모든 악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낭만적 견해는 위험한 정신병자들의 방면을 정당화 했고 그들은 이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말은 적절하고 유효하다. 성범죄자들이 궁형(弓形)을 당하지 않고 화학적 거세로 끝나는 것 만도 은전이다. 피해자 가족과 이웃들, 사회 앞에서 백배사죄하고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정말 죽은 듯 지내야 한다. 약물치료든 화학적 거세든 망설일 때가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목민심서’를 백번 읽어야 하는 이유

수원시청 과장 아홉명이 보기 좋은 일을 벌였다.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2012년 8월 3일음력 1762년 6월 16일)에 맞춰 이름하여 대한민국 목민심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공동 집필자들은 다산을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의 주인공들이다. 글 주제들도 다양하다. 지방행정과장 장보웅은 과장은 공직과 명예의 중심이다 등 5편, 회계과장 장동훈은 청렴하고 공정하라, 지적과장 지준만은 삶의 터전을 관리하는 일, 세무과장 공영식은 국민의 피를 다룬다, 녹지과장 최재군은 정체성과 철학이 생명이다, 건축과장 기우진은 건축은 예술이다, 건설과장 김정화는 국가 건설의 기반을 세우다, 사회복지과장 김범수는 모든 행정은 사회복지다, 정보통신과장 양경환은 차가운 기술 & 따뜻한 세상이란 글을 각각 썼다. 자신들이 체험을 옮겨 현장감이 높다. 과장으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하다. 군자의 학문은 修身이 그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牧民이다.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한다. -<목민심서> 자서, 천하의 마땅한 이치로 보면 벼슬을 위하여 사람을 택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을 위하여 벼슬을 택하는 경우는 없다. -제1강 부임편, 아전을 단속하는 근본은 자기를 단속하는 데에 있다. 자신의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아전이 실행하고, 자신의 몸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아전이 실행하지 않는다.-제5강 아전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쓰는 데에 달려 있다. 군과 현이 비록 작지만 사람 쓰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아전편, 목민관 일을 잘 하려는 자는 반드시 인자해야 하고, 인자하려면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청렴하려면 반드시 절약해야 하므로 절약해서 쓰는 일은 목민관이 맨 먼저 힘써야 할 일이며, 씀씀이 줄이기와 물자절약은 수령의 으뜸가는 임무다. -제2강 율기편, 토지를 측량하는 법은 아래로는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위로는 나라에 손해를 입히지 않으며 오직 공평해야 한다. -제6강 호전편, 비록 백성들이 수납 기일을 어기더라도, 아전을 풀어 납부를 독촉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를 양우리에 풀어놓는 것과 같으니, 결코 그렇게 해선 안 된다.-호전편 등 주제에 맞는 다산의 말을 인용했다. 구구절절 옳은 애기들이다. 다산 정약용(1762 ~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산은 지방관을 각성시키고 농민생활의 안정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목민심서를 저술했다. 지방관으로써 지켜야 할 준칙을 자신의 체험과 유배생활의 견문을 바탕으로 서술한 48권 16책에 이르는 명저다. 백성을 보살펴주는 일 牧民을 특히 강조했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백성도 없고 나라도 없으면 벼슬아치 역시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담았다. 공무원들에겐 금과옥조(金科玉條)다. 오랜 세월 청렴과 공정이 강조되는 데도 공직자의 부정부패비리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 목민심서를 백번은 읽어야 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공무원은 국가의 중추다. 특히 지방자치제 공무원은 행정의 뿌리이기 때문. 공무원의 청렴과 공정, 능력에 지위고하가 있을 수 없지만 지방행정에서 과장은 시장군수를 정책적으로 보좌하고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조직을 통솔해 정책목표와 성과를 관리하는 최 일선에 위치해 있으면서 직원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과장이다. 시장군수가 주도하는 정책과 인사에서 위아래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균형감각을 갖춰야 된다. 공직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먼저 과장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고, 중심잡기에 필요한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난 뒤 시장군수가 바뀌면 휘둘림을 당하는 중심에 서 있는 직책이 또한 과장이다. 혁신의 대상도 되고 주체도 된다. 어느 때는 사회발전의 견인차로 칭송되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봉사하는 삶, 외길 인생의 공무원 자긍심이 흔들리는 이유다. 다산을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이 목민심서의 현대적 해석서가 아닌 현대판 목민심서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공직의 최대 보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 공무원이 섬겨야 할 대상은 주민, 국민이다. 목민관으로 가는 길을 일러준 아홉명 수원시청 과장들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졌다. 한국의 모든 과장 공무원들이 애민정신 구현에 잎장선 다산을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에 합류해야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水原,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만들자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가 출범한 지 9년째 접어들었다. 현재 19개국 34개 도시가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문화와 창의성에 뿌리를 둔 새로운 도시발전 모델로 거론돼 온 창의도시는 특히 지속가능발전에서 문화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경험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창의도시는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개념이다.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제조업의 쇠락, 대량 실업 등의 문제를 겪고 있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섰다. 국가 주도의 개발이 아니라, 문화를 근간으로 한 시민의 참여를 통한 도시의 발전과 시민의 삶 개선을 추구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창의도시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창의성에 기반한 창의산업의 존재 여부다. 창의산업은 문화유산과 예술, 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유통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하는데, 매우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문학영화음악공예와 민속예술디자인미디어아트음식 등 7개 분야로 구성됐다. 창의도시 네트워크가 현재와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2008년 무렵이다. 각국의 도시들이 가입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국내에선 서울시(디자인)와 이천시(공예와 민속예술)가 2010년 7월, 전주시(음식)는 올해 5월 각각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경남 김해시(디자인), 광주직할시(미디어아트)가 창의도시 가입을 추진 중이다. 창의도시 네크워크에 속한 도시들은 여러 가지 유형무형의 혜택을 누린다. 직접적으로는 사용 절차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네스코의 이름과 로고를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들은 홍보자료와 주최 행사 등 다양한 체널에서 유네스코라는 브랜드를 활용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높이고 관광 수입도 올리는 효과를 얻는다. 또한 국제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다른 도시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사업을 성장시키고 문화자산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킨다. 이천시의 경우 서울시와 함께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됨으로써 소도시에 불과했던 입지적 환경이 단번에 세계인이 주목하는 도시로 웅비하게 되는 역사적 전기를 맞이했다. 지난 2년간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운데 미국 산타페, 이집트 아스완, 일본 가나자와 등 공예부문의 창의도시를 중심으로 국제교류 추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그 결실로 지난달 미국 산타페와 상호 경제문화적 발전과 돈독한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함으로써, 그동안 지역에만 국한됐던 지역문화예술의 범위를 해외시장으로 더욱 넓힐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을 마련했다. 수원시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의 지정 여건이 좋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사적 3호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산재했을 뿐 아니라 200명에 이르는 시시조소설아동문학수필희곡 등 각 장르의 저명 문인들의 활동이 다채롭다. 모두 수원을 사랑하는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다. 1996년 편찬된 수원문집에 수록돼 있거니와 1700년대 이후 수원을 소재로 하여 쓴 작품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특히 수원 화성을 축성한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의 문예정신과 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수원시의 지원으로 매년 9월 한국경기시인협회수원시인협회가 개최하는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을 비롯, 문학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수원에서 詩전문 문예지 한국시학도 발행된다.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는 영국 에든버러, 호주 멜버른, 미국 이이오와시티, 아일랜드 더블린, 아이슬란드 레이캬비브크, 영국 노리치 등 여섯 국가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란 명칭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전 세계 선진도시들과의 국제교류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5천년 역사와 민족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문학은 훌륭하고 위대하다. 한국문학의 빛, 가장 세계적인 한국문학을 수원에서 전 세계로 전파하는 수원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지정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뜨겁다. 문학이 살리는 도시! 도시가 키우는 문학! 수원시의 문화예술행정마인드를 기대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국립자연사박물관, 화성시가 제일 좋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계힉은 1995년 김영삼 정부 당시 수립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지적이 나와 김 대통령이 박물관 건립을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1996년 당시 정부가 수립한 자연사박물관 규모는 건축부지 33만㎡, 건축 연면적 10만㎡에 표본수집비 3천200억원을 포함해 총사업비 6천500억원으로 세계 2위 규모로 2020년까지 짓는다는 내용이었다.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예비타당성도 이뤄져 경기도와 화성시가 2008년부터 발빠르게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전을 펼쳤다. 인천시와 강화군도 뒤질세라 뛰어 들었다. 서울 용산구, 노원구, 전북 남원시도 가세했다. 유치전에 공 들이는 지자체들이 나름대로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지만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은 화성시가 최적지다. 우선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엔 2000년 천연기념물 414호로 지정된 483만평의 공룡알 화석지가 있다. 2008년엔 전곡항 일대에서 한반도 최초의 뿔공룡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발견됐다. 화성시는 이를 토대로 캐릭터 개발이 한창 진행 중에 있고, 공룡알 화석지 방문자센터 등을 운영하며 우리 공룡의 역사를 알리고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화성시가 최적지 경기개발연구원이 진행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예비타당성 용역 결과에서도 최적지로 평가됐다. 특히 화성시는 미국 스미소니언재단, 영국 및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과 MOU 체결 등 국립자연사박물관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콘텐츠 확보 및 연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지질, 동물, 식물을 포함해 생명의 탄생에서 인류의 진화까지 지구의 역사와 자연 전체를 주제로 다루며 크게 교육과 전시, 그리고 무엇보다 심오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당연히 공론을 거쳐 대통령이나 총리가 발표해야 할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지난 5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해양부,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세종시 국립박물관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박물관 단지에는 대통령기념관국립도서관 본관디지털박물관건축박물관이 입주하며 자연사박물관도 그 중 하나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당치 않다.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희망한 전국의 지자체들을 대상으로 한 타당성 조사도 없었고, 세종시가 국립자연사박물관 입지로 적합한지를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환경 제대로 된 공룡뼈 하나를 사들이는 데만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이 든다. 국립의 위상에 걸맞는 콘텐츠를 세우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수집기간과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돼야 할 대규모 국책사업을 5개 부처 차관급이 모여 결정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체부가 만든 국립자연사박물관 자문단의 한 위원이 세종시로 결정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문체부로부터 연락받은 것은 없다는 말에서 읽혀지듯이 자문단과의 상의도 없었다. 경기도 특히 화성시의 반발은 당연하다.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한 화성시민 서명운동은 1차로 5만명을 넘어섰다. 화성시는 2차 서명운동에 들어갔고 최소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달 23일 부터는 채인석 시장이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시작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 등을 위해 23일간의 국토 도보종단 시위에 나선다. 채 시장은 편리한 교통망과 공룡알 화석지, 생태공원 등이 있는 화성시가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의 최적지라고 자신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지난 6월 청와대와 문체부에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건의문을 보냈다. 앞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지 선정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져 혹 세종시로 확정된다면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체부가 세종시 박물관단지 조성계획에 슬그머니 끼워넣은 것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 보인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선물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의 해명이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임금님의 밥상’과 ‘못 펴기’

동화구연가이기도 한 전영택 시인이 임금님의 밥상이라는 전래동화 구연을 시작했다. 자작시 넝쿨 장미를 낭송한 뒤였다. 지난 19일 비 개인 저녁나절 수원詩낭송가협회(회장 진순분)가 만석공원 호반에서 개최한 7월 시 낭송회 자리에서였다. 교직에서 은퇴한 전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소년처럼 옛날에 쌀밥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어요하고 동화를 구연했다. 호반길을 산책하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호반 벤치에 앉아 구연 동화를 들었다. 쌀밥을 유난히 좋아한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주방에 들러 주방장에게 매일 밥을 맛있게 짓는 노고를 칭찬하고 비법을 물었다. 주방장은 때 마다 품질 좋은 쌀을 가져다주는 쌀가게 주인 덕분이라고 겸손해 하였다. 임금은 쌀가게 주인을 찾아가 자신의 금반지를 선물로 주었다. 농사 풍년은 하늘 덕분이지요 그러나 쌀가게 주인은 금반지 받기를 사양하면서 벼를 잘 찧어준 방앗간 덕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앗간 주인은 해마다 쌀 농사를 잘 짓는 농부 덕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임금은 농부를 찾아 나섰다. 뜨거운 여름 햇볕도 아랑곳없이 구술땀을 흘리며 여름논 김을 매는 농부를 들판에서 만났다. 임금은 농부와 논둑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길 나누었다. 임금은 신분을 밝히고 지난해의 가뭄은 나라 살림을 책임 맡은 임금이 부덕한 탓이라고 사과하며 농부의 거친 두손을 어루만졌다. 농사를 잘 지어 온 나라 백성이 배불리 먹도록 애쓴 일을 치하하며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빼 고마움에 대한 작은 표시라며 농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농부는 극구 사양했다. 쌀 농사 풍년은 하늘 덕분이지요, 적당한 때에 비를 내리시고 가을이면 곡식알이 잘 영글도록 따뜻한 햇볕을 주시는 하늘 덕분입니다라며 하늘을 칭송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며 다른 사람에게 공덕을 돌리는 주방장, 쌀가게방앗간 주인, 농부의 마음을 읽고 임금은 선정(善政)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두드리면 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이런 임금같은 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영택 시인의 재밌는 동화구연이 끝나자 구경하던 시민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임애월 시인이 안동 출신 故 임병호 시인(1947~2003)의 시 못 펴기로 뒤를 이었다. 바르게 살라 바르게 살라 / 알몸 마루 끝에 내세워져 / 매를 맞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 구월 장마의 / 건듯건듯 부는 바람 받으며 / 공기 놓친 공사장 흙투성이 속의 / 녹슬고 비뚤어진 시대의 / 굽은 못을 줍는다 / 언제부터인가 / 금기시 된 것은 구석진 험난한 곳에 / 검게 그을은 노동의 실체이다 / 힘들고 투박지게 빚은 것일수록 / 이렇듯 거칠게 버려져야 한다 / 마구 뚫려 쏟아지는 폭우의 하늘 / 천심도 변하는 것이라 한다 / 두드리면 바르게 설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 굽은 못을 편다 / 굼뜬 장마 속에 짓이겨진 / 무심한 한 개의 못을 편다 자화상(이병숙), 수원의 새(류선), 망초꽃(진순분), 비 오는 날의 만석공원(정명희), 사랑(이홍구). 불혹 앞에서(김진성) 등 낭송이 호반의 저녁을 서정으로 물들게 한 이날 시 낭송회는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 게 가장 큰 효과였다. 만석공원에 산책을 나왔던 시민들은 낭송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사성 깊은 구연 동화 임금님의 밥상과 굴절된 시대상을 비판한 못 펴기가 여운으로 남았다. 매사에 겸손해하고 사양할 줄 아는 미덕을 갖춘 국민들이 대다수인 데 반해 국민의 고충과 비탄을 외면한 채 부정비리를 저지르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소위 통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동화 임금님의 밥상, 천심도 변한다고 경종을 울린 못 펴기는 문학이 시사하는 사회성을 보여 주었다. 오만에 빠진 정치모리배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굽은 못을 두드려 곧게 펴면 바르게 서는 시대는 과연 올 것인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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