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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백남준의 ‘촛불TV’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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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인간문화재는 만날 일이 없었다. 장르 자체가 다른데 비디오아트와 공예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하나다. 경기도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2024경기무형유산특별전 ‘극락 PARADISE’에 가면 이 사실을 목도할 수 있다. 칠흑(漆黑)같은 방에 오불탱화와 고행상, 나전칠기, 범종의 소리 속에 철가방 TV 케이스 안 촛불이 넘실대며 홀로 내 몸을 태워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1975년 제작된 백남준의 ‘촛불TV’다.

 

백남준은 불교라는 역사전통을 지렛대 삼아 TV 내장을 완전히 들어내고 촛불을 켰다. 알고 보면 이런 극단의 반문명 예술이나 전위예술도 없는데 콩대로 콩을 볶고 있는 격이다. 이미 백남준은 50년 전에 인공지능(人工知能·AI)과 같은 기계가 인간이 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시대가 오늘날임을 증거하고 있다. 기계시대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고해(苦海)다. 그야말로 구멍 난 배가 아닐 수 없는데, 물을 퍼내지 않으면 해저에 가라앉고 만다. 백남준은 기계시대 고해를 촛불이 된 자신을 태우면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형유산 장인들도 촛불이기는 마찬가지다. 단청으로, 생칠로, 나전으로, 쇳물 녹이며 평생을 하루같이 몸을 태워 역사 전통의 불꽃을 피워냈다. 세상에 자청해 하는 이런 극한직업도 없지만 한 생각을 돌라면 차안(此岸)인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무형유산(無形遺産·Intangible heritage)은 지금 여기 예술의 불씨다. 현재 K-컬처는 무형유산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불씨가 불꽃이 돼 활활 타오른 결과가 오늘 예술이다.

 

하지만 무형유산의 현실은 전승공예관에서 박제화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전통이 미래다’라고 노래 부르면서도 미술시장과 뮤지엄에서 괄호 밖에 내놓은 존재다. 며칠 전 막을 내린 2024 키아프리즈 무대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다. 2조원대의 고양 K-컬처밸리나 4천억원대의 서울아레나도 무형유산과는 무관하다. 여기에 쏟아붓는 예산 10분의 1만 해도 100배의 효과를 내는 것이 무형유산인데 말이다. K-컬처의 뿌리와 본체인 무형유산은 경기도만 해도 기능 41종, 예능 30종 등 총 71종이 지정돼 있다. 그 무한가치를 국가 공공 민간이 시작 단계부터 정책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보호를 명목으로 인간문화재라는 온실에 가둘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지금 현재 예술과 진검승부 해야 한다. 더 이상 전통 따로 현대 따로 노는 세상이 아니다. 진정한 K-컬처의 격이나 깊이 두께 확보도 무형유산의 생생활활 여부에 달려있다. 까마득히 오래된 미래인 백남준의 ‘촛불TV’가 이런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이런 기막힌 모순이 실존에서는 더욱더 공고화되는가. 한마디로 장인을 원형 모방만 일삼는 기능인으로 오인한 데 있다. 달이 아니라 손가락만 봐 온 것이다. 장인의 손을 통해 유형(有形)속에 내재해 있는 무형(無形)의 가치가 대대로 전수된다. 비물질적인,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는 장인의 극공(極工) 이후의 통령(通靈)을 통해서만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이 점에서 현대예술의 거장(巨匠)과 다르지 않다. 정신과 본질을 기준으로 보면 형상의 파괴나 전복을 일삼는 전위예술마저 무형유산이라는 역사전통에 전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존재의 배후를 드러내는 모방 내지는 미메시스야말로 창조의 어머니다. 여기서 장인(匠人)과 거장(巨匠)은 하나로 통한다.

 

오늘도 전시장의 백남준 TV 속 촛불은 불(佛)이라는 역사 전통을 태우며 도도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 온 세상을 돌고 돌아 비디오아트가 무형유산의 본자리에 앉아 있다. 이 지점에서는 기존 백남준 언어의 난해함도 저절로 풀린다. 극락이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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