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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칼럼] 행복, 고통과 슬픔의 천적

아주 오래전 아프리카 사람들은 몸에 상처가 나면 썩은 나무껍질로 상처를 덮었다고 한다. 상처가 난 곳에 썩은 나무껍질을 덮으면 오히려 상처가 덧나고 곪을 것 같지만, 상처가 너무 잘 낫는 것이다. 서양의 의사들이 이 사실을 현대 의학으로 연구했지만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1928년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세균학자 플레밍은 연구를 위해 상처를 감염시키는 포도상구균이라는 세균을 배양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플레밍은 휴가를 떠나면서 실수로 배양 접시를 배양기에 넣지 않고 실험대 위에 그대로 두고 갔는데, 돌아와 보니 포도상구균이 푸른곰팡이에 오염된 것을 확인했다. 플레밍의 연구실 아래층에서는 곰팡이로 알레르기 백신을 개발하는 중이었는데, 창문 틈으로 그 푸른곰팡이가 날아 들어와 세균 배양판에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푸른곰팡이가 떨어진 곳의 세균들이 다 죽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세균들을 사라지게 했을까? 세균이 이렇게 깨끗하게 사라진 걸 보면 분명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인데….’ 플레밍은 접시에 생긴 푸른곰팡이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우선 푸른곰팡이를 많이 배양하기 위해 유리접시 위에 천을 깔고 곰팡이의 포자를 키웠다. 플레밍의 예상대로 장티푸스와 대장균을 제외한 나머지 병균들은 모두 곰팡이에 죽어버렸다. 플레밍은 연구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갖고 논문을 발표했지만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를 향해 푸른곰팡이에 미쳤다고 말했다. 1939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플로리와 체인, 두 교수가 페니실린 연구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1941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성공했고 페니실린의 효과를 증명했다. 이 과정에서 푸른곰팡이를 투여한 환자의 병이 호전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 기술의 부족으로 푸른곰팡이의 양이 충분하지 못해서 결국에는 환자가 사망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끝내 페니실린 개발에 성공하면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사람, 팔을 절단해야 할 사람, 위장의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 등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세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푸른곰팡이에서 얻은 페니실린은 세균이 자라고 늘어나는 것을 막는 항생물질이다. 페니실린이 세균에 감염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난 이후,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이 항생제를 연구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성 폐렴, 백일해 등에 광범위하게 효과를 나타내는 다목적 항생제 테라마이신도 개발됐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에는 천적이 있다. 창조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천적을 통해서 얻는 이득이 굉장히 많다. 어떤 것은 인간을 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적관계 속에서 오히려 인간을 돕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생각을 깊이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런데서 새로운 힘을 발견해 삶을 유익하고 복되게 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천적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근심과 슬픔에 빠져있을 때, ‘슬퍼하지 말아야지’, ‘고통스러워하지 말아야지’, ‘근심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오면 슬픔이 물러나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서 동시에 슬픔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와 정반대로 내게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행복을 생각하고 또, 이야기하다보면 우리의 마음에 행복이 채워져 슬픔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이나 슬픔의 천적은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약을 먹으면 ‘슬픔’이라는 병을 고칠 수 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부궤레 왕국의 작지만 큰 행복

아프리카에는 넓은 대륙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울창한 숲속에도 사람들이 30~40명씩 흩어져 살고 있다. 동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차를 타고 6시간 정도 가면 부궤레(Bugwere)라는 부족들이 살고 있는 왕국이 있다. 우간다 정부로부터 정식 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부궤레 왕국(Bugwere Royal Kingdom)에는 현재 400만 명이 모여 살고 있으며 존 크리소스톰 와야비레(John Chrisostom Wayabire) 국왕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존 크리소스톰 국왕은 직접 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부족원들을 다스린다. 동네마다 벽돌로 튼튼한 학교를 만들어주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온 마음을 쏟는다. 가난하고 열악한 형편의 학생들을 도우려 애를 쓰고 있지만 왕국의 재정이 넉넉지 못해서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이 국왕과 친분이 있는 서울의 한 목사님이 부궤레 왕국을 방문했다. 그 목사님이 본 왕국은 너무나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이라 삶을 사는 것 하나하나가 어렵고 힘들어 보였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 많았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목사님은 옛날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 나라를 가슴에 품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을 모아놓고 부궤레 왕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려움 속에 사는 부궤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던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기 시작했고, 1~2만원이 모여 100만원이 됐다. 목사님은 이 돈으로 학용품도 사고 다른 선물들을 사서 다시 부궤레 왕국을 찾았다. 목사님은 먼저 목수들을 불러 책상과 의자를 만들게 했다. 학교 그늘 아래서 목수 세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톱질과 못질을 해 책상과 의자를 만들었다. 그 주위에는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쓸 책상과 의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너무 행복해 했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책상이 다 만들어지자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도 보고 장난도 치며 기뻐했다. 목수들도 땀을 흘리며 일했지만 너무나 즐거웠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학교 벽에 페인트칠을 했다. 벽에 그림도 그려 넣었다. 페인트 회사에서도 학교에 쓰는 거라 페인트 값을 깎아주었다. 또 축구공을 다섯 개 사서 네 개는 교실에 넣어두고 한 개는 운동장에서 차도록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새끼줄을 묶어 공을 만들어 찼는데, 진짜 축구공을 차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또 어떤 학생들에게는 연필을 주고 노트도 주고, 또 신발이 없는 아이들을 불러 한국에서 사 온 신발을 신겨주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갖추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그 아이들의 행복을 볼 때, 사람들은 행복했고 이웃에게도 화제가 되었다. 목사님은 한 평생 목회를 하면서 많은 일을 했지만 소박하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너무 감사했다. 몇몇 사람들이 모은 적은 돈이 이렇게 많은 학생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목사님은 다른 마을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다음에 또 자기 친구들도 데리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풍족하고 부유한 한국의 몇몇 사람이 작은 정성을 모아 아프리카 작은 마을의 아이들에게 일생에 다시 없을 꿈과 행복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목사님도 흐뭇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암을 이기는 ‘소망’

“목사님, 여기는 미국 캔사스시티인데요.” 미국에 있는 젊은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인은 강원도 원주에 살았었는데 아는 사람의 소개로 미국 군인과 결혼을 했고 예쁜 딸을 낳았다. 그리고 미국 캔사스시티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부인은 불행하게도 암에 걸려 삶의 소망을 잃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필자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필자는 암 환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이 있는데, 암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 부인도 다른 암 환자들처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주 죽음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필자는 부인에게 계속해서 소망을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매일 암세포가 생겨나요. 그러나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전부 다 죽이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지금까지 암세포를 이겨왔어요. 그래서 암에 걸리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치료를 잘 받으면 얼마든지 암을 이길 수 있어요.” 부인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계속 소망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감사하게도 부인이 조금씩 소망을 마음에 채우기 시작했고 점점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부인도 기뻐했고 필자도 너무 기뻤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부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왜요? 자매님.” “요즘 음식을 통 먹을 수가 없어요.” “밥을 못 먹다니 무슨 일이세요?” “항암치료를 받는데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체중도 많이 줄었어요. 안 될 것 같아요.” 부인은 다시 절망에 빠져 말을 했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자동차는 휘발유 맛을 몰라요. 그렇지만 휘발유를 넣으면 차가 가요.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으면 힘이 나요. 계속 암을 이기려면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해요. 암에는 영양보다 더 좋은 약은 없어요.” “그래요. 그렇네요.” 부인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다시 몸이 좋아졌다. 부인의 몸이 참 좋아졌는데 한 달쯤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이제는 정말 안 될 것 같아요.” “왜요? 또 무슨 일이 있어요?” “위경련이 일어나서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지금도 위경련이 일어나세요?”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위경련이 안 일어나면 위경련이 나은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암을 이기고 있으니까.” 중요한 사실은 암에 걸린 사람은 마음이 그 병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소망이 없으면 몸은 쉽게 망가진다. 그래서 필자는 그 부인이 전화로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부인은 마음에 소망을 가득 채우며 병을 이겨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이 졸업 가운을 입고 사각모를 쓴 사진을 보내왔다. 그 아래에는 ‘암 치료 졸업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소망을 마음에 넣어주셨다. 그래서 필자도 만나는 사람마다, 특히 암 환자에게 소망을 이야기한다. 그 소망이 절망을 이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부인은 지금 휴직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암이 다 나았다고 학생들에게 축하도 받고, 지금도 죽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봄에는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암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했다. 듣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다른 사람들은 빵집에서 갓 구워낸 빵을 사 먹는데, 나는 왜 쓰레기통에서 상한 빵을 주워 먹고 있을까?남들은 결혼해서 집도 사고 직장도 다니는데… 누가 나 같은 마약중독자와 결혼하겠어?’미국 뉴욕에 훌리오라는 청년이 있었다. 남미에서 온 라틴계 미국인인데 소년시절부터 마약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마약을 해 왔다. 마약 기운이 있는 동안에는 배도 고프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그러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춥고 배고픈 현실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공원 벤치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로 전락했다.어느 날, 약 기운이 떨어진 훌리오는 배가 고파 공원 쓰레기통을 뒤지다 빵 조각을 발견했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먹는데, 한참을 먹다 보니 냄새기 이상했다. 상한 빵이었던 것이다.‘썩은 빵이네. 썩은 빵을 먹었으니 배탈이 나면 어떡하지? 공원 벤치에서 배가 아파 몸부림치면 누가 나 같은 거지를 병원에 데려다줄까? 그러다 죽으면 누가 묻어주기나 할까?’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까지 그는 마약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난 마약을 좀 해서 문제긴 하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어!’하지만 그는 그날 처음 너무 초라하고 불쌍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나도 직장을 갖고 싶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예쁜 아내와 결혼해 아이도 낳고 싶다. 그리고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도 먹고 싶다.’마약중독자로 집도 없이 공원 벤치를 전전해 온 자신을 20년 만에 처음 보게 되면서 자기 모습으로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얼마 후, 그는 마약사범으로 경찰에 잡혀 마약중독 치료학교에 보내졌다. “여러분 마약 끊고 싶죠? 나는 여러분을 잘 압니다. 마약은 여러분이 노력해서는 절대로 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마약을 끊고 싶다면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잘 들으세요. 저는 오랫동안 이 일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마약을 끊는지 잘 압니다.”전에도 두 번이나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들리지 않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들리기 시작했다. 마약으로 비참하게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의 모습을 본 후 그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전의 자신처럼 아무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그날 이후로 훌리오는 마약에서 벗어나 그가 꿈꾸었던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직장도 가졌고 결혼도 해 행복하게 가족들과 살고 있다. 빵집에서 갓 구운 빵도 사서 먹는다. 수없이 몸부림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마약중독의 굴레를 20년 만에 벗어버리고, 마약중독 노숙자 훌리오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롭고 밝은 삶을 살게 되었다.중독은 몸이나 마음에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 파괴된 상태를 말한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스스로 마약을 조절할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이 없고, 게임 중독 또한, 게임을 제어할 마음의 기능이 상실된 상태이다. 그래서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중독자들은 여전히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더욱 더 중독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자기를 정확히 모르면서 자기를 고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자기를 발견했을 때, 자기의 못난 것과 잘못된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끌어와 나를 바꿀 수 있게 된다. 훌리오처럼 누구에게나 새로운 삶이 오는 것이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앞을 못 봐도 행복한 엄마와 현정이

“현정아, 너는 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입을 다무니. 우리는 널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뭐라고요? 도와준다고요? 저 지금 자살하고 싶은데 도와주실래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며 힘들어하던 현정이는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바꿔볼 기회라 생각하고 아프리카를 택해 해외봉사를 왔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자신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현정이의 엄마는 20대 초반 앓은 뇌경색으로 시력을 잃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하던 현정이의 엄마는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에 들어가 점자도 배우고, 마사지도 배우면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가지게 되었다. 현정이가 태어날 때쯤, 불행하게도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한다. 현정이 엄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 혼자서 출산을 해야 했다. 그리고 너무 예쁜 딸을 낳았다. 엄마가 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앞 못 보는 사람이 갓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형편이 닥쳐왔다. 가까운 친척을 찾아가 애원하며 돈을 주고 아이를 부탁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눈먼 엄마나 철없는 어린 딸을 좋아할 리 없었다. 결국 현정이는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자랐다.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10살이 되고, 15살이 되었을 때, 현정이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능력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자기를 낳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정이는 엄마와 원수 사이가 되었다. “엄마는 키울 자신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았어? 차라리 죽여버리지.” “엄마가 앞을 못 보는 것 때문에 왜 내가 고생을 해야 해?” 현정이는 매일 술도 마셨다. 성격이 거칠어져 갔다. 그러다 대학에서 국제청소년연합(IYF)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해외봉사를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삐뚠 성격 때문에 문제가 됐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싸는데 IYF 탄자니아 지부장 사모님과 맞닥뜨리게 됐다. 현정이는 사모님 앞에서 엄마에 대한 불만, 자기 마음의 아픔을 토해냈다. “현정아, 너의 엄마는 너 같은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었어. 세상이 흑암뿐이었지. 그때 네가 태어난 거야. 너는 엄마의 기쁨이요. 빛이요. 전부였어. 그런 네가 엄마에게 냉혹한 말을 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봤니?” 현정이는 깜짝 놀랐다. ‘나는 왜 엄마 마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엄마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한국에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현정이는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요.” 이 한마디에 수화기 너머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멀리 탄자니아에 있는 현정이도 같이 울었다. 엄마의 마음과 현정이의 마음이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현정이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니 미워할 수 없다. 둘은 너무나 가까운 사이가 됐다. 엄마가 앞을 못 봐도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녀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나이 많은 어느 여자 전도사

“상철아, 너 여기 좀 앉거라.” “예, 형님.”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안 할 수가 없다.” “형님, 말씀하세요.” “내가 혼자라면 몰라도 나이 많으신 어머니도 있고 네 형수도 있고, 무엇보다 네 조카가 셋이나 있다. 네가 우리와 함께 산다면 결국 우리 가족 모두 죽는다. 그래서 뼈가 녹는 아픔을 뒤로 하고, 하기 싫은 말이지만 지금 안 할 수가 없다. 네가 우리 집에서 나가거라.” 결핵은 무서운 병이었다. 결핵 환자의 입에서 나온 균이 공기 중을 날아다녀 가족들이 전염되며, 특히 어린아이들이 쉽게 전염되었다. 상철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공만 있으면 되고, 하루 종일 혼자 공을 차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상철이는 어느 대학의 축구부에 들어갔다.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에 나가서 골네트가 출렁이는 골을 넣어 자신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클로즈업되어 나오는 꿈을 꾸며 열심히 운동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낫겠지…’ 했는데 더 심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폐결핵이었다. 가난해서 잘 먹지 못한 데에다 몸을 돌보지 않아 병에 걸렸던 것이다. 요즘은 약이 좋아서 결핵이 그다지 무서운 병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상철이는 바로 일어나 집을 나왔다. 날씨는 춥고 가진 돈도 없었다. ‘무엇을 먹지? 어디서 자지?’ 난감했다. ‘이 겨울에 병든 몸으로 배고픔을 겪다가 얼어 죽겠구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루 종일 굶고, 잘 곳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다행히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작은 집이 있었다. 상여를 넣어두는 곳이었다. 거기서 자고 아침이 되면 냇가에 가서 세수를 했다. 하루는 세수하고 있는데 “상철이 총각!” 하고 누가 불렀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이웃 아주머니였다. “총각, 나 따라갈래?” “어디 가시는데요?” “교회 가는 길이야.” 아무 말없이 아주머니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4㎞ 남짓 걸어 다른 마을에 있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이 아니고, 큰 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일곱, 여덟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목사님은 계시지 않고 한 부인이 예배를 인도했다. 상철이는 추운 데에서 떨며 지내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가니까 노곤해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누가 깨워서 보니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자기가 결핵 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밥을 주어서 한없이 고마웠다. 밥을 먹고 나자 예배를 인도한 아주머니가 성경을 펴서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저녁때가 되어 다시 식사를 했다. 가족도 병든 자신을 버렸는데, 그처럼 베풀어주는 사랑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상철이는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음에 평안과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겨울에 얼어 죽겠다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이 많은 여자 전도사의 정성으로 상철이의 마음에 믿음도 더해 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상철이는 그 사이에 병이 다 나아서 몸이 정상이 되었다. 얼마 뒤 상철이는 신학교에 들어갔고, 목사가 되었다. 자신을 품어준 나이 많은 여자 전도사님에게서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지금도 목회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 여자 전도사님은 하나님의 품으로 갔고, 상철 목사를 통해서 그 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전갈의 독

“목사님, 최요한이가 죽어가요! 전갈에 쏘였어요!” 몇 년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지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걸어온 전화였다. 굿뉴스코 단원으로 온 최요한 학생이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한밤중에 잠을 자는데 발을 누가 바늘로 콕 찌르는 것 같아서 잠이 깼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잠이 들었다. “앗!” 하고 눈을 떠서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 학생이 같이 지내던 봉사단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에 누가 바늘로 내 발을 찌르는 것 같았어.” “형, 그거 혹시 전갈 아니야?” “웃기지 마. 방에 무슨 전갈이 있어?” 그리고 한낮쯤 되어 요한이가 갑자기 쓰러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채로 소변, 대변을 다 쌌다. 얼른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가 멀리서 보고 말했다. “죽었어요. 전갈에 쏘였는데 왜 이제 왔어요? 독이 온몸에 퍼졌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길이 없어요.” 의사가 전갈에 쏘이면 바로 병원에 데려와도 살 수 있는 확률이 적은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온몸에 독이 퍼져 살 가망이 없으니 데려가라고 해서 병원을 세 군데나 옮겨야 했다. 그런데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요한이의 호흡이 갑자기 멈추었다. 의사가 심폐소생술 해서 맥박은 돌아왔지만, 혈압이 계속 떨어져 가고 있었다. 가망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어서 지부장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비행기로 17시간이나 걸려야 갈 수 있는 곳. 약도, 의사도 보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요한이와 통화할 수 있는가?” “예, 목사님.” 선교사가 전화기를 요한이에게 넘겨주었다. “요한아, 너 내 목소리 들려?” “예,… 목사…님.” “너는 아프리카산 전갈에 쏘였어. 그래서 죽어가고 있대.” “예.” 요한이도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요한아, 내 이야기 잘 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은 형편이야. 내가 오늘 아침에 이사야 40장 31절을 읽었는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요한아,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시지 않아. 네가 전갈의 독을 이기려면 새 힘이 필요해. 하나님을 앙망해. 하나님을 바라봐. 그러면 새 힘을 얻게 돼. 그러면 전갈의 독을 이길 수 있어.” 누구나 형편에 어울리는 말은 받아들이지만 형편과 너무 거리가 먼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처음에 최요한은 ‘나는 이제 죽는구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요한은 내가 한 말을 받아들였다. 죽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잠이 들었다. 새벽에 그 병실에 들어간 간호사가 소리를 질렀다. “의사 선생님! 이 환자 혈압이 올라가고 있어요!” 다음날 아침 최요한은 걸어서 병실을 나왔다. 독으로 인해 썩었던 다리도 20일 후 깨끗해졌다. 그는 2013년에 결혼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지금 IYF LA 지부에서 일하며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몸과 다르게 지어졌다. 몸은 묶을 수 있고 감옥에 가둘 수 있지만, 마음은 줄로 묶을 수도 없고 감옥에 넣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고, 몸이 괴로우면 마음도 괴롭다. 그러나 쉽진 않지만, 몸이 아플 때 마음은 거기에 빠지지 않고 소망에 빠지면 마음에 있는 것이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몸도 병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요한처럼 몸은 전갈의 독으로 죽어가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음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 삶은 그 마음을 따라서 달라진다. 잘 살아도 마음이 어려우면 곧 형편이 마음을 따라서 어려워진다. 반대로 마음이 소망 가운데 있으면 형편도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죽어가던 최요한이 마음을 바꾼 것이 그의 삶에 행복을 가져온 것처럼, 누구든지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마음이 거기에서 벗어나면 형편도 달라져서 행복하게 된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마음을 농사짓는 사람들

사람은 여러 마음을 품고 살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어떤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 당시 유대인의 법에는 사람이 간음하다가 잡히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돌을 들고 그 여자를 죽이려고 끌고 가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여자를 죽이지 말고 예수에게 데리고 가서 뭐라고 할지 물어보자.”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가 좋다고 여겨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서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뭐라고 글씨를 쓰신 뒤, 일어나 말했다. “여러분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시오.” 돌을 들고 여자를 치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모두 죄가 있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돌을 땅에 떨어뜨린 후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이제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간음하다 잡힌 여자만 남았다.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물었다. “너를 고소하던 사람들이 있느냐?” 여자가 고개를 들고 둘러보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여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를 얻는다.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그 미움이 자라고,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이 자랄 수밖에 없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마음에 음란이 가득했을 때 그 여자는 간음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임을 당하기 위해 끌려갈 때에는 마음에 두려움뿐이었다. 예수님은 다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마음에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가득가득 심었다. 여자의 마음에 고마움과 감사가 가득 차 있어서 간음할 수도 없고, 두려워할 수도 없게 하셨다. 이제 이 여자는 ‘간음하지 말아야지!’ 하지 않아도 되고,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이 감사와 기쁨이니 감사하지 않으려고 해도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오고, 자신도 모르게 고마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밖에 없다.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 먼저 땅을 개간한다. 땅을 갈아엎어서 잡초를 다 죽이고, 돌멩이들을 다 제한다. 그리고 흙덩이들을 부순 후 거기에 곡식이나 채소도 심으며, 사과나무나 포도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자라나는 곡식이나 채소를 보며, 아니면 맺힌 열매들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한다. 우리는 모두 마음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다. 자녀들의 마음에, 젊은 청소년들의 마음에 관용을 심고, 소망을 심고, 사랑을 심은 후에 그들의 마음에서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행복이 얼마나 크겠는가. 자녀들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고 소망의 열매가 맺혀서 자라는 것을 보는 것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동차나 아파트, 그 외에도 좋고 자신에게 중요한 물건들이 많다. 그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나 어려운 사람을 위로하고 자녀들의 마음에 사랑과 소망을 키우는 사람이 된다면 그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쓰러지려는 아들을 일으켜 세운 아버지의 희망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다. 무더운 사막을 헤매다 보니 지치고 목이 말랐다. 똑같이 길을 잃고 목이 말랐지만, 아버지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에게는 소망이 없었다. 아들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원망과 절망적인 소리만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 난 이제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어요. 배도 고프고 목도 너무 말라요.” “아버지, 왜 길을 잃었어요? 우리는 이제 죽을 거예요.” 아들과 달리 아버지의 마음에는 희망이 있었다. “얘, 우리가 왜 죽어? 죽지 않아. 사막에는 항상 모래바람이 불어. 그래서 길이 자주 바뀌어. 전에도 내가 이 사막을 지나다가 모래바람 때문에 길이 변해서 종종 길을 잃었어. 그때마다 나는 항상 동쪽을 향해 걸었어. 너, 오늘 해 뜨는 것 보았지? 지금 우리는 정확하게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어. 이제 사막 끝에 다 왔어. 일어나 조금만 더 걷자.” 아버지가 한 이야기가 아들의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거짓말하는 것을 다 알아요. 아버지는 어제도 지금처럼 말했잖아요. 우리가 어제 하루 종일 걸었지만 아버지 말대로 사막 끝은 보이지도 않잖아요.” 아들은 힘을 다 잃은 채 아버지에게 이끌려 겨우 걸음을 내디뎠다. 얼마쯤 갔을 때 아들이 “아버지, 저기를 봐요”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엔 누군가가 묻힌 무덤이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우린 이제 끝이에요! 이 무덤을 봐요. 이 사람도 우리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가 목이 말라서 죽었을 거예요. 우리도 이 사람처럼 죽을 거예요.” 아버지가 잠잠히 아들에게 다가가 이야기했다. “얘, 우리는 이제 살았어.” “살았다고요? 이 사막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요?” “생각해 봐라. 네 말대로 이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목이 말라서 죽었다고 하자. 자기가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죽었겠니? 그건 아니잖아. 누군가 이 사람을 묻어준 사람이 있었겠지. 그 사람의 시체는 보이지 않으니 그 사람은 살아서 사막을 나갔다는 거야. 그 사람이 살아서 나갔다면 우리도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말이 돼.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의 일행이 있었다 해도 죽을 만큼 지친 사람이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겠어? 만약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무덤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을 묻어. 그러니까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야. 우리가 조금만 걸어가면 틀림없이 마을을 만날 수 있어.” 아들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말이 맞아요! 아버지, 빨리 가요.” 두 사람은 얼마 걷지 않아서 아버지의 말대로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났다. 그곳에서 물도 마음껏 마시고 음식도 배불리 먹고 여행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음에 희망을 가진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매사에 생각이 다르다. 희망이 없으면 파멸의 길로 걸어가고, 희망이 있으면 행복으로 길을 찾아간다. 희망이나 행복을 가진 사람은 아무 대가 없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길 원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으며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새끼 독수리

독수리는 집을 높은 절벽 위 벼랑에 짓는다고 한다. 가시나무 가지로 둥지를 만드는데, 가시가 둥지 밖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안으로 향하게 하여 날카로운 가시가 둥지 안에 가득하게 집을 짓는다. 여기저기 가시가 돋아 있는 둥지 안을, 독수리는 나뭇잎과 풀, 그리고 새털이나 토끼털 등으로 덮어 포근하게 만든다. 그 둥지에서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한다. 드디어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독수리는 부지런히 먹을 것을 물어 와서 새끼를 정성스럽게 키운다. 새끼는 둥지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란다. 아주 행복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새끼는 제법 독수리의 모양을 갖는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서 솜털이 빠지고 깃털로 바뀌기 시작할 즈음, 어미 독수리는 둥지 안에 있는 풀들과 부드러운 털들을 물어서 모두 밖으로 버린다. 새끼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엄마, 그것을 버리면 가시에 찔리잖아. 왜 버려?” 어미 독수리는 말이 없다. 마침내 풀들과 털들이 다 버려지고, 따뜻하고 포근하며 사랑이 넘치던 독수리 둥지는 갑자기 날카로운 가시로 가득한 집으로 변한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에게 말한다. “둥지 밖으로 나와.” “엄마, 여기가 좋은데 왜 그래? 밖은 너무 무서워. 못 나가겠어.” 새끼는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기만 한다. “빨리 안 나와?” 새끼는 소리치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엄마, 무서워.” “나와!” “엄마, 나중에 나갈게. 지금은 내가 너무 어리잖아. 다음에 나갈게.” 어미 독수리는 지지 않는다. 큰 날개로 둥지를 후려치기 시작한다. 쉴 틈 없이 둥지를 후려치는 엄마의 날개도 무서운데, 날카로운 가시가 사방에서 새끼 독수리의 몸을 찌른다. 그래도 새끼는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동안 새끼 독수리는 둥지 안에서 견딜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둥지 밖으로 기어나온다. 그때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업고 높이 올라가서 넓은 세상을 보여 준다. “야, 세상이 참 넓구나!” 새끼 독수리가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자기를 업고 있던 엄마가 어디 가고 없고 새끼는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래에는 바위가 널려 있어서 떨어져서 부딪히면 죽기에 새끼 독수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하지만 계속 떨어진다. ‘이제는 죽었구나’ 할 때 갑자기 어미 독수리가 나타나서 새끼를 업는다. 새끼는 “엄마다! 살았다!” 하고 소리친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싫어하지만 지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뜨리고 받으며 고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하는 동안 새끼 독수리는 점점 익숙하게 날기 시작한다. “엄마, 이번에는 받지 말아 봐. 나 혼자 내려 볼게” 새끼 독수리는 땅에 내릴 때 넘어지기도 하면서 서서히 착지하는 법도 배운다. 독수리가 나는 동물의 왕이 되어서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고난과 훈련 끝에 그런 독수리가 된다. 그것이 싫어서 포기하면 둥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도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잘사는 사람들이 그냥 잘사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어미에게서 나는 법을 열심히 배운 독수리만이 하늘의 왕이 될 수 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사막에서 길을 잃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왜 길을 잃었어요? 이제 먹을 것도 다 떨어졌고 물도 없어요. 너무나 목이 말라요. 걸을 힘이 없어요.” 나이 많은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데, 아들은 굉장히 불안해하고 또 불평했다.“아버지, 우린 죽을 거예요. 음식과 물이 바닥났는데 어떻게 하지요?” “얘야, 우리가 죽긴 왜 죽어? 안 죽어.” “아버지, 사막에서 길을 잃었는데 어떻게 안 죽어요?” “사막에서는 늘 모래 바람이 불어. 그래서 길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길을 잃을 수 있어. 나는 이 사막을 여러 번 다녔고, 길을 잃은 적도 있었어. 길을 잃으면 그때마다 동쪽으로 걸었어. 너, 오늘 아침에 우리가 걷는 방향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지? 우리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걸었던 거야. 지금 우리는 동쪽 끝에 거의 다 왔어.” “아버지, 난 아버지가 거짓말하시는 거 알아요. 어제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런데 끝이 어디 있어요? 이제 우리는 죽을 거예요.” 나이 많은 아버지는 아들을 달래며 동쪽으로 동쪽으로 걸었다. 얼마쯤 걷다가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저기를 보세요.”아버지가 아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거기에는 작은 무덤이 있고 무덤 앞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무덤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이 무덤을 보세요. 이 사람도 우리처럼 사막에서 길을 잃고 목이 말라서 죽었을 거예요. 아버지, 우리가 죽으면 누가 우리 죽음을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지요? 그리고 동생들과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요?” 그때 아버지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얘야, 이제 우리는 살았어.” “뭐라고요? 살았다고요? 물도 다 떨어지고 사막에서 길을 잃었는데 어떻게 살아요?” “네 말대로 이 무덤 안에 있는 사람이 길을 잃고 목이 말라서 죽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죽었겠니? 나무로 십자가까지 만들어서 무덤 앞에 꽂아 두고 말이야. 아니잖아. 누가 묻어준 것이 맞아. 만약 동행하던 사람이 묻어 주었다면, 그 사람의 시체가 없는 것을 보면 묻어 준 사람은 살아서 나갔다는 말이야. 그 사람이 살아서 나갔다면 우리도 살아서 이 사막을 나갈 수 있어.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무덤을 만들었다면, 무덤은 사람이 사는 동네 가까이에 만들어. 그러니까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이 근방 어디에 사람이 사는 동네가 있다는 말이야. 우리가 사막 끝에 도달한 거야. 이제 우리는 살았어.” 그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말했다. “맞아요, 아버지! 아버지 말대로 우리는 사막에서 벗어났어요. 아버지, 빨리 가요. 동쪽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열심히 걸었고, 아버지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을 만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아버지의 마음 안에는 희망이 있고, 아들의 마음 안에는 절망뿐이었다. 사막을 여행하는데 아들에게는 물이나 음식이 없고 아버지에게는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이니까 당연히 함께 나누어 먹으며 갈 것이다. 희망도 그렇다. 아버지에게는 희망이 있고 아들에게는 없으면,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 안에 있는 희망을 받아서 함께 희망을 가지면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인생길을 걷는 동안 음식이나 물만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희망이나 기쁨이나 사랑을 나누면, 모진 사막 같은 험한 인생길이라도 힘을 얻어 훨씬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잠자고 있는 사랑이 솟아난다면…

아프리카 정글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추장이 마을을 걷다가 아이들이 표범 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얘들아, 그건 표범 새끼야. 자라면 언젠가는 위험해. 죽여야 해.” “추장님, 죽이지 마세요. 이 표범 새끼는 아주 순해요. 우리 집에 데리고 온 날부터 죽만 먹였어요. 그래서 순하단 말이에요.” “그래도 자라면 무서운 표범이 돼. 죽여야 해.” 추장은 창으로 표범을 죽이려고 했다. “안 돼요! 추장님, 이 표범은 토끼처럼 순해요. 죽이지 마세요!” 아이들의 간청에 추장은 창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 표범은 자라면 무서운 표범이 돼.” “그래서 우리가 죽만 먹이잖아요. 괜찮아요. 아주 순해요.” 아이들의 애원에 추장은 안심이 되지 않았지만 그냥 두고 갔다. “추장님은 괜히 그래. 표범 새끼가 이렇게 순한데…. 그 대신 우리가 절대로 고기를 먹이면 안 돼. 무서운 표범이 되니까. 죽만 먹여야 돼.” 아이들의 말대로 표범은 순하게 자랐다. 큰 표범이 된 후로도 죽만 먹여서 아주 순했다. 그날도 아이들 셋이 표범을 데리고 숲으로 갔다. 그런데 앞서가던 아이가 돌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다른 두 아이가 빠르게 언덕길을 돌아서 언덕 아래로 달려갔고, 아이들과 함께 가던 표범은 바로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아이는 무릎을 다쳐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표범은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로 다가가 흐르는 피를 혀로 닦아 주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피가 표범의 혀에 닿으면서 표범의 몸에서 야성의 쾌감이 솟구쳤다. 이제 표범은 피를 닦아 주는 것이 아니라 피를 빨고 있었다.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표범이 가진 본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죽만 먹여서 죽은 것 같았던 표범의 야성이 피 맛을 보자 솟구치기 시작했다. 표범은 피를 빨고 또 빨았다. 피 맛을 본 후 그때까지 순하디순했던 표범이 무서운 맹수로 변했다. 정신없이 피를 빨았고, 피는 표범의 입으로 들어가면서 맹수의 본능을 계속 일깨웠다. 피를 빨던 표범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포효하면서 앞발을 높이 치켜들더니 아이의 앞가슴을 찍어 눌러서 양쪽으로 쪼갠 후 미친 듯이 내장을 씹어 삼켰다.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두 아이는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표범은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고 앞에 오는 아이를 덮쳐 죽이고, 뒤따라오는 아이에게 덤벼들었다. “표범아, 왜 이래?” 하며 그 아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어린 표범이 죽만 먹고 자랄 때에는 아주 순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 있는 맹수의 기질이 죽은 것은 아니다. 표범이 피 맛을 볼 때 그때까지 숨어 있던 맹수의 기질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이 갖는 특성이 있다. 우리 마음에는 종종 미움도 있고, 시기도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이런 사랑을 잠재우고 미움이 일어나면 사람은 거칠어진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녀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일로 마음속 깊이 있는 사랑이 잠들어 있을 때가 있다. 표범이 피 맛을 볼 때 맹수의 기질이 살아나듯이,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자고 있는 사랑이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솟아나고, 아버지가 아들을 볼 때 솟아난다. 우리 마음에서 미움이 잠자고 사랑이 강렬하게 솟아 일어난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예수님이 죄인도 사랑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씨를 뿌리는 사람들

“여보, 그건 안 돼요. 그 회사 사람들이 잘못했는데, 왜 우리 돈을 써야 해요?” 안 사장이라는 전기 설비 회사의 사장이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어느 공단에서 공장을 새로 지으면 전기 설비를 해주는 회사였다.안 사장은 공고 전기과를 졸업하고 전기 회사에 취직해 7년을 밤낮 뛰어다니며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정신없이 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얻고 기술도 상당히 좋아서 평소 바라던 조그만 전기회사를 차렸다. 그는 공사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서 일거리를 따냈고, 사장인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일감이 점점 늘어나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 든든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루는 공단에 큰 공장이 들어와서 안 사장이 그 공장의 전기 설비를 맡아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하던 중에 커다란 변압기를 옮겨야 하는 일이 있어서, 안 사장은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을 하는 회사에 그 일을 맡겼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변압기를 옮기던 중에 체인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인부 한 사람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압기에 깔려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었다. 그 회사가 아주 영세해서 죽은 사람의 병원비와 장례비를 내거나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줄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사고 소식과 그 후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사람들은 그 일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면서 지켜보았다. 공장을 시작하는 회사는 아주 큰 회사였지만 전기 설비 일을 안 사장에게 맡겼으니 책임이 없고, 안 사장도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그 회사에 맡겼으니 역시 책임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안 사장이 집에 가서 아내의 손에서 큰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받아들고는 병원으로 찾아가서 사고를 당한 사람의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불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보상금도 주고 돌아왔다. 사고가 난 것은 안타깝지만, 그 후의 일들이 잘 마무리된 것이다.그 일이 공단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안 사장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자기가 실수한 것도 아니고 일을 맡긴 회사에서 실수한 건데” 그리고 “안 사장에게 일을 맡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사람이 다 처리해”라는 이야기가 공단 전체에 퍼졌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IMF 사태가 터졌다. 몹시 어려운 경제 상황이 이어지면서 설비 회사들의 일감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안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는 일감이 끊이지 않았다. 공단에서 공장을 새로 짓거나 가동하고 있는 공장에 전기공사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책임자들이 안 사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백 배로 수확한다. 남을 위해 나의 것을 내놓는 것이 버리는 것 같지만,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결국 그 열매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삶이 윤택해지면서 사람들이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2017년 새해에는 안 사장 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낸 후 행복을 수확하면서 미소 짓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왜 엄마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워야 해?

미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얼굴도 예쁘고 그림도 참 잘 그렸다. 학생은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마음은 항상 어두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학생의 엄마는 스무 살 때 뇌경색으로 시력을 다 잃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죽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지냈지만, 그 마음을 버리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맹아 학교에 들어가서 점자를 배우고, 보이지 않지만 길을 걷는 법을 배우고, 생계를 위해 마사지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학교에서 만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아이를 낳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사이가 나빠져 헤어지고 말았다. 아이의 엄마는 눈만 캄캄한 것이 아니라 앞날도 정말 캄캄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엄마 혼자 어린 딸을 키울 수 없어서 친척집에 가서 사정해 아이를 키워 달라고 맡겼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어린 시절 이 학생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성장했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반항심이 가득 차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면서도 항상 불평과 반항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삶이 스스로도 싫었던 학생은 굿뉴스코 단원이 되어 1년 동안 탄자니아로 해외 봉사를 떠났다. 그러나 탄자니아에 가서도 동료 단원들과 자주 부딪혔고, 학생은 ‘난 안 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쌌다. 그때 굿뉴스코 탄자니아 지부장의 아내인 사모님이 이 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니?” “아무 일 없어요.” “네가 이야기해야 우리가 네 마음을 알지.” 그러자 이 학생이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사모님은 나에 대해 모르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소경이에요! 앞 못 보는 소경의 딸로 사는 것이 어떤지 알기나 하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사모님이 이야기했다. “네 엄마는 너 같은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으셨어. 모든 것이 절망으로 변했지. 그리고 얼마 후 너를 낳으셨어. 너는 엄마에게 빛이고, 소망이고, 기쁨이었어. 그런 네가 엄마에게 원망하는 말을 쏟아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니?” 학생은 깜짝 놀랐다. 스물 한 살이 되어서야 엄마의 마음을 처음으로 더듬어 보았다. ‘엄마가 나 때문에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그날 이후 학생은 변했고, 딸과 엄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행복한 모녀가 되었다. 박옥수 칼럼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마음이 비행기를 타면

점보 제트기 보잉747의 무게는 350이 넘는다고 한다. 그 무거운 비행기를 어떻게 하늘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원리로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 돌멩이가 무겁지만 그 돌을 던져 돌멩이에 추진력이 생기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난다. 그러다가 추진력이 사라지면 돌멩이가 땅으로 떨어진다.350이나 되는 점보기를 들어서 하늘을 날게 하려면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그 무거운 비행기도 추진력만 생기면 하늘을 가볍게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날기 위하여 비행기는 먼저 활주로를 달려서 강한 추진력을 만들고, 힘이 생기면 무거운 비행기가 사뿐히 날아올라 미국에도 가고 아프리카에도 간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만난다.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 속에서 끙끙대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먼저 마음을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면 삶이 아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가 아들을 낳는 상상을 하면 무척 행복해진다. 아들을 낳아 목욕을 시키고, 젖을 먹이고, 자라면 유치원에 보내고, 아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가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 아들이 더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며느리를 얻고…. 행복한 일들이 우리 삶에 아주 많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해결하면, 고통 속에 있으면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어느 교도소에 중년의 살인수가 있었다. 그는 사람을 죽여 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0년 이상 교도소에서 썩어야 할 텐데, 그러면 내가 몇 살이지? 내가 교도소에서 무사히 나간다고 하자. 그 나이에 무슨 일을 하지? 또 누가 나 같은 전과자, 살인자를 써주겠어? 직장을 잡지 못해 또 죄를 지어서 교도소를 드나들겠지.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거야! 빨리 교도소에서 나가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다 죽이고 인생을 끝내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여 변호사의 접견도 거부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교도소에서 한 목사님을 만나 인생 상담을 나누었는데, 목사님이 그가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아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꽃다발을 사가지고 가서 축하해 주면 아들에게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아들이 결혼할 때 며느리 될 사람을 만나 아들과 함께 좋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봐요. 아들이 아버지 없이 혼자 결혼하는 것보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지금은 어렵지만 그런 행복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구나. 나도 행복할 수 있구나!’ 그날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 그는 어두운 과거를 흘려보내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음을 바꾸면 삶도 달라진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나는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교도소에 가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기도 하지만 재소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상담할 때도 많았다. 한번은 상담 시간에 내가 찾아가는 교도소의 대대장으로 있는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가 살인수로 자신의 처형을 죽였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난했지만 가족과 함께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아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가 춤을 추러 다녔던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와의 사이에 다툼이 잦아졌다. 처형도 아내와 함께 춤을 추러 다닌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는데, 처형이 아내를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그는 그 일로 처형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다가 다툼이 일어났고, 처형으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순간 정신이 핑 돌았고, 그 후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형이 피를 흘리고 죽어 있고 자기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다. 그는 칼을 든 채 밖으로 뛰쳐나가 “모두 나와! 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소리쳤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어 교도소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 인생을 포기한 채 살고 있었다. “목사님, 제가 10년이 지나 교도소에서 나간다 해도 전과자입니다. 살인수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취직이나 되겠습니까? 누가 나 같은 살인 전과자를 쓰겠습니까? 빨리 나가서 나머지 인간들에게 복수나 하고 인생을 끝내려고 합니다.” 내가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생각해 봐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아버지가 없으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아버지가 꽃다발을 들고 가서 ‘아들아, 장하다! 네가 어려움을 이기고 드디어 졸업했구나. 가자, 내가 중화요리집에 가서 점심을 살게’ 하고 함께 가서 점심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것만이 아니에요.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었을 때, 결혼할 여자 친구를 불러서 아들과 함께 밤이 늦도록 지난 이야기,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돈이 많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대단한 일을 이루지는 못해도 아기자기한 행복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절망에 빠져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결정을 내리고 인생을 불행으로 마치고 만다. 고급 아파트에 멋진 자가용을 가지고 화려하게 살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소박하고 단란한 작은 행복은 마음만 바꾸면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마음은 밭과 같아서 무엇을 심든지 그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자라고 밀을 심으면 밀이 자라듯, 우리 마음에 소망을 심으면 소망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행복을 심으면 행복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새 마음으로 삶을 시작했다. 이후 출소한 뒤에 새 아내를 만났고, 몸이 건강해 청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으며, 자녀도 낳고 복되게 살고 있다. 행복은 어느 울타리에서나 자라난다. 어느 마음에나 행복을 심으면 그 행복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목사

[박옥수 칼럼] 소망 나무

한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정원으로 가서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더니, 자동차를 땅에 묻고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매일 물을 주었다. 어느 자동차 광고 영상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사과 씨를 심어 싹이 나고 자라서 큰 사과나무가 되면 꽃이 피고 사과가 달린다. 자동차를 심고 물을 준다고 자동차 나무가 자라서 자동차가 달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이의 동심을 소재로 자동차를 광고한 재미있는 영상이었다. 얼마 전, ‘마음을 파는 백화점’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마음은 어떻게 파는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부인이 미국 캔사스시티에 살고 있는데, 자궁암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암에 걸리면 대부분 몸보다 마음에 먼저 죽음이 찾아온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그때부터 마음이 죽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아들을 보아도, 딸을 보아도, 무엇을 보아도 자신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마음이 절망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마음에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죽음의 나무를 심은 것이다. 마음에서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죽음과 연결된 생각이 일어나며, 죽음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 결국은 죽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 부인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전화비가 비싸기에 카카오톡 무료 통화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마음에 죽음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고, ‘이분이 절망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을까?’ 생각했다. 그 마음에서 절망을 내쫓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마음에서 절망을 쫓아내지?’ 생각하다가 먼저 그 부인이 마음에서 희망을 갖도록 소망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경에는 소망스러운 이야기가 많기에 성경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부인이 점점 기뻐하면서 마음이 희망 가운데로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분의 마음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조금씩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부인이 통화를 마치며 고맙다고 하는데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우리에서 살았다. 그곳에서는 더러운 돼지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의 몸은 돼지우리에 있지만 마음까지 더럽고 외로운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풍성한 음식이 있고, 넘치는 기쁨이 있었다. 둘째 아들의 마음은 날마다 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무척 행복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몸도 마음을 따라서 아버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한없이 기뻐서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했다. 마음이 가면 몸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암에 걸린 부인의 마음에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놀랍게도 암이 점점 낫기 시작했다. 얼마 전, 그 부인이 사진을 보내왔다. 사각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작은 글씨로 ‘저, 항암치료 졸업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소망이 절망을 이긴 것이다. 그 부인의 마음에 희망의 열매를 맺는 소망 나무가 심어져 있다. 박옥수 목사·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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