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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백세시대 진정한 ‘카르페 디엠’

기네스북 최고령자인 스페인의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 여사가 얼마 전 117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야말로 ‘백세시대’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는 건강 정보가 넘치고 노년의 건강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희열이 아니라 닥터 크노크(Dr. Knock)의 승리’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크노크’는 쥘 모랭의 희곡 ‘크노크 또는 의학의 승리’에 나오는 인물로 그는 질병이나 세균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해 사람들을 병원으로 가게 만든다. 그래서 저 말은 현재의 삶을 즐기는 카르페 디엠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운동과 식습관에만 신경 쓰는 과소비 시대의 현대인을 의미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노년의 건강을 위한 운동과 식습관을 개선하려고 건강 정보를 찾아 헤맨다. SNS에서는 건강 지식 전도사들의 인기가 치솟고 있으며 구독자 수도 유명 연예인 못지않다. 유익한 정보를 무료로 접하다 보면 정성 들여 영상을 제작한 전문가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행의 여부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건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과잉 운동 역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식습관이건 운동이건 자신에게 적절한 방식을 채택해야 올바른 카르페 디엠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건강만이 아니다. 백세시대에는 여러 문제가 놓여 있다.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각해질 거라고 한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여름뿐 아니라 봄과 가을까지 열대야가 이어질 거라는 예측 역시 두렵다. 숨 막힐 정도로 덥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는 습기까지 더해져 한층 괴롭다. 곧 9월인데도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가 익숙하지 않지만 이런 날씨를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생태계의 파괴를 일으킨 주범이 누구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매주 시행되는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 현장을 보면 지구를 쓰레기 공장으로 만드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넘치는 종이, 플라스틱, 캔, 스티로폼 등. 이런 것들이 처리될 장소를 잠시 상상해 보지만 어느새 다시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택배 배달 시스템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 것 같다. 힘든 장보기를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한번 클릭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물건이 도착한다. 신기하면서도 편리하다. 그런데 그만큼 쌓여 가는 일회용 포장지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올여름 혹독한 무더위를 겪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에어컨을 온종일 틀고 있으면서도 내년에 닥칠 더위를 미리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닥터 크노크의 승리처럼 카르페 디엠을 누리지 못한 채 미래를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자연을 위한 배려가 무엇인지 고민할 때다. 자연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대한 배려야말로 백세시대의 카르페 디엠을 선물해 줄 것이다. 나의 건강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배려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그런 카르페 디엠 말이다.

[문화카페] 지방소멸과 관광생활인구

지방소멸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로 각 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균형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국정 중점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방인구 감소와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지방소멸이 더욱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 최근 대안으로 전통적인 인구 개념인 정주 인구 및 체류 인구와 달리하는 ‘관계 인구’라는 개념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관계 인구로서 ‘관광생활인구’는 일주일, 한 달 살기 등 일정 기간 관광지나 휴양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주로 휴가나 여가 활동을 즐기기 위해 지방을 방문해 지역 내 숙박 및 음식 시설 등을 이용하며 관광명소 및 축제와 행사 등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이들을 말한다. ‘관광생활인구’의 확보가 현재의 지방 인구소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한계는 있으나 해당 지방에 정기적으로 오가거나 지역과 인연을 맺고, 지역주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지역문화와 교류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활력을 증진하는 데 고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방소멸 현상의 대안적 접근에 있어 효과적인 ‘관광생활 인구’ 확대 방안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지방소멸과 지역관광의 상황 및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실효성 있는 정책 논의가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아울러 논의의 결과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 가능한 종합 연구로 이어져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관광 분야 전반에 걸친 경제적 규모, 수요와 공급 측면의 정보 제공을 위한 논리적이고 일관된 방법인 ‘관광위성계정(TSA) 확립 및 구체적 정보 활용’을 통한 대안 제시다. 둘째, 지역 간의 통합 및 연계를 통한 지역관광 효과 극대화를 들 수 있다. 최근 관광객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광범위하게 이동하면서 행정구역 간 물리적 구분은 무의미해진 상황이므로 지역 간의 독특한 관광자원, 관광교통 및 관광인프라 시설을 이용한 공동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상호협력 모델을 통해 관광수용 태세와 편의를 증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현재의 지방위기 상황에 직면한 지역주민들의 주도적 활동 촉진 및 적극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지역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기반으로 창출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사결정 과정에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년간 추진됐던 주민공동체 사업의 형태를 띤 ‘관광두레 사업’ 및 ‘지역관광 추진조직(DMO)’의 전반적인 점검 및 확대, 효율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관광수용력을 고려한 관광객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 관광객 증가와 관광 활동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정주 환경 침해로 인해 형성되는 ‘오버투어리즘’과 ‘관광포비아’ 현상을 해결하면서 지역주민의 주도적 참여를 통한 전반적 의사결정, 지역주민과 관광객 간의 균형적 관계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완화와 정주 만족도 향상을 위해 ‘관광생활인구’ 간의 상호 존중과 배려로 지역의 문제 해결과 지역발전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다. 지방소멸 문제 해결과 균형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전략 수립 과정에서 지역관광이 지역의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핵심 대안으로서 정책의 중요성과 우선순위를 부여받아야 할 것이다.

[문화카페] 남은 한가지

얼마 전 한 공공문화재단의 임원 추천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보통 재단의 임원이라고 하면 재단의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의 구성원, 즉 이사장, 상임이사, 이사, 감사 등을 말하는데 이번 회의는 이 재단 임원들의 임기 연장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는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재단이 원하던 대로 결정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사들의 구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사회 운영 등이 그 중요성에 비해 매우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문제는 이 기관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공공 문화재단이 그렇다는 점이다. 이사회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화예술기관 내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이며 기관의 예산, 결산, 해산, 임원의 임면, 정관변경 등 중요한 사항을 다루고 있다. 물론 사업의 실행은 이사회를 보좌하는 사무국과 상임이사를 통해 이뤄지지만 이에 대한 중요한 보고와 결정은 이사회에서 이뤄진다. 한 기관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관’에서도 임원 조항과 함께 이사회를 기관의 심의, 의결기구로서 앞 부분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비상임이사들이나 이사회의 실질적 권한은 정관에 있는 것과 달리 유명무실하다. 그저 1년에 2회 정도 개최되는 회의에서 주요 사안에 대한 승인, 결정에 이사들은 거수기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회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를 위해 존재하고 있고 실질적으로는 거의 아무 권한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기관의 주요 사항은 결정되는가. 한 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고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즉 시장이나 구청장, 도지사 또는 이들에게 위임받은 해당 관리부서의 장이 많은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며 상임이사를 통해 형식상 이사회에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기관의 독립적 운영이나 자율성은 예술 또는 예술가의 자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사항이다. 현재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정부의 출연금 또는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문화재단이 정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이지만 과거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이 예술과 예술가의 자유 및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또 문화예술기관의 독립성을 위해 이사회 본연의 역할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여년 전 문화예술 거버넌스라는 말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어떤 정책 수립과 실행에 있어 민관의 협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예술 현장의 모든 주체가 ‘당사자’로서 어떤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인데, ‘시민 참여’라는 이슈에 걸맞게 한때 이 거버넌스라는 말이 기관의 운영 시스템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구조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 못지않게 한 기관의 이사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행해 해결해야 할 사항 아닌가.

[문화카페] ‘예술올림픽’의 의미

지구촌을 돌며 4년마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열리는 올림픽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 스포츠대회라는 건 상식이다. 올림픽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값진 메달을 놓고 최고 실력을 겨루는 무대임이 틀림없지만 동시에 스포츠를 통해 국제 평화와 화합을 증진하고 개최국의 발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인식된다. 올림픽 개최는 이렇게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올림픽의 시그널은 각 나라 선수의 경기가 아닌 개막식임을 주목해야 한다.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는 올림픽 개막식은 언제부턴가 개최국의 국가적 우월성과 국가 정체성을 전시하기 위한 최대의 영상 스펙터클이 됐다. 그런데 이러한 기류는 21세기에 들어 급변했다. 2000년대 이후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예술 올림픽’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예술적 요소들이 행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2012 런던 하계올림픽 개막식은 ‘하나의 삶(Live as one)’을 주제로 경이로운 영국을 표현하는 데 메시지가 집적됐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문화예술 담론이 주도했다. 산업혁명의 과정과 여성 인권, 노동의 존중 등의 시대정신을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프로그램을 통해 상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의료인들이 직접 나서 공연하거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해리포터 같은 세계적 문화콘텐츠를 재해석한 내용을 선보였으며 영화 007 시리즈의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의 퍼포먼스 등은 압권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 리우 올림픽은 개막식 외에 올림픽 기간 내내 ‘Celebra’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리우 전역에서 거리 공연과 전시회, 음악 페스티벌 등이 펼쳐지면서 ‘예술올림픽’에 한 발짝 다가섰다. 다시 올림픽 시즌이다. 7월26일 열린 파리 하계올림픽 개막식은 예술로 시작돼 예술로 종지부를 찍었다. 첨단 뉴미디어의 총동원 속에 개막식 공연의 화려한 서막은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열었고 캐나다 출신의 디바 셀린 디옹이 대미를 장식했다. 사실 올림픽 개막식에 자국 출신이 아닌 아티스트의 등장은 일반적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올림픽 무대가 세계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기본적 의미를 상기한다면 핵심 출연진의 국적 따위가 중요하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문화예술 올림픽’의 정수로 파악하기에 무리가 없다. 프랑스 정부가 배우 겸 예술 디렉터인 토마 졸리에게 개막식 총감독을 맡겼다는 사실은 예술올림픽의 지향을 시사한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알리겠다”는 졸리의 다짐대로 총 12개 섹션으로 구성된 개막식에는 무려 3천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무대를 ‘사랑’으로 채우면서 ‘예술의 도시’ 파리를 손색없이 구현해 나갔다. 이쯤 되면 올림픽을 ‘소프트파워’의 전형으로 이해할 기반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올림픽에 국제적 영향력 과시 같은 국가주의적 경향이 종식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예술올림픽’은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기에.

[문화카페] 초심이란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다짐이라는 것을 한다. 다짐을 통해 다른 이와 약속하고 그 약속을 신뢰라는 바탕 위에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도 마음을 다진다. 처음의 마음가짐이라는 ‘초심(初心)’은 이처럼 나의 마음가짐과 다른 이의 마음가짐에 관계한다. 따라서 가볍게 접근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처음 원고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디자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교육의 현장에서 다진 연구스토리들이 있지만 문화라는 키워드로 불특정 다수에게 주제를 잡고 세태를 전달하며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의구심이 있었고 이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결심하며 스스로와 독자에게 다짐한 초심을 밝히고자 한다. 나의 초심은 다수의 글을 통해 과연 처음의 다짐을 유지하고 약속을 지켰을까. 여기서 세 가지 초심을 공개하며 평가를 받아본다. 제1 초심, 문화와 예술, 특히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개성적인 글이 써지길 바랐다. 비록 아직 젊고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더라도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만들어간 다양한 연구와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은 누군가에게 마음에 와 닿는 값진 간접경험과 참신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러한 제1 초심은 사실 제2 초심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이야기했던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잡은 제2 초심은 바로 빠르고 쉽게 읽혀지는 글을 쓰자라는 다짐이다. 이는 연설을 하는 연사에게도 해당되는 것인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과 언변을 가진 자가 좋은 연사도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부분도 독자에게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을 독자들은 전문적인 이론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학술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넘어선 일반 대중이라 판단하고 읽으면 바로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글이길 바랐다. 원래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가 전문적이고 어려운 글을 쓰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아마 특정 영역의 전문인으로서 대중적인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 것도 누구나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계속 연재한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을 정도로 지난한 일임을 새삼 확인했다. 마지막 제3 초심은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 부여라 할 수 있는데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디자인교육 현장에서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과 전문 분야의 후배들에게 앞서가 본 선배로서 고민해 볼 담론과 키워드를 제시하는 주제를 발굴하고 강의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연구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문화에 대한 접근, 디자인을 둘러싼 환경 등에 대해 공유하고 전달하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브렌다 유랜드는 ‘당신의 아이들이 음악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부터 진지하게 모든 지성을 다 부어 음악을 하라. 만약 아이들이 학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이 공부에 매진하라. 만약 아이들이 정직하기를 바란다면 당신 자신이 정직하라’고 기술한다. 내가 써내려간 다양한 글 속에서 드러난 디자인 작업의 철학, 건강의 중요성, 새로운 세대들이 가지면 좋을 마음가짐, 리더의 덕목 등에 대한 이야기의 글은 나의 경험이면서 미처 내가 놓쳤던 중요한 것들,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들로 대변된다. 더불어 나의 학생들, 연구원들은 나보다 나은 길을 걷기를, 그리고 더 나은 연구와 작업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론 앞으로 내가 전개할 다양한 디자인 연구 분야에서 자신에게 진실 되고 거짓 없기를 바라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 학창시절, 기초작문 시간 때 글이라는 것은 어려워지면 독자에게는 지옥의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지옥의 시간을 선사하지는 않았을까? 두려운 일이다. 글은 말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지옥을 선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의 초심은 과연 가볍게 사라졌을까. 아니면 다짐이 돼 나와 타자에게 약속으로서 이행됐을까. 무겁게 질문해 본다.

[문화카페] 물, 탄생과 소멸의 이중적 상징

장마철이 지나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시작됐기에 장마는 어떨지 사뭇 걱정스러웠다. 이제는 기후위기 혹은 기후변화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도 많다. 새삼 물, 공기, 햇살과 같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는 나날들이다. 퍼붓는 장맛비를 보노라면 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미끄러운 빗길을 걸어가는 어르신들도 염려스럽다. 곡식이 자라려면 비가 와야 하듯 물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지키는 근원적인 물질이다. 인간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가 물인 걸 보면 만물에게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런데 물은 생명의 탄생과 보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죽음과 파멸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의 이러한 이중적 상징은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발견된다.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가 하면 노아의 방주에서는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도 물의 이중성은 자주 활용된다.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유명한 장면으로 일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년)를 들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사이보그인 구사나기 모토코는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부터 상승하며 하나의 기계 생명체로 완성된다. 여기서 물은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이보그도 인간처럼 탄생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사나기의 취미도 잠수나 수영이다. 이처럼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자궁 회귀적 본능을 은유한다. 이는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에 있을 때 느끼는 평안함을 뜻한다. 한편 물을 특수한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독일의 베를린파인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영화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운디네(Undine)’(2020년)는 설화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 운디네를 변주한 작품으로 영화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인 운디네는 연인 요하네스에게 실연당한 뒤 산업 잠수사인 크리스토프와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다. 흥미로운 점은 강, 풀장, 호수, 바다 등과 같은 여러 물의 공간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의 죽음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영화 속 물의 공간은 대부분 죽음의 장소들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프가 죽은 줄 알고 자살한 운디네와 그녀가 죽는 순간 소생한 크리스토프가 재회하는 곳 역시 물의 공간인 바다다. 지난해 개봉한 페촐트 감독의 ‘어파이어(Roter Himmel)’(2023년)는 산불을 다루지만 여전히 여름 바다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일상 속 내면적 심리를 쫓는다. 장마철엔 비가 그만 내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리쬐는 뙤약볕도, 쏟아지는 폭우도 한여름의 자연 현상이다. 이 무덥고 습한 하루하루에 지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챙겨야겠다. 물을 소재로 하는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혹여 영화 운디네를 본다면 아름다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바흐의 곡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

[문화카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동반여행문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 팸족’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필자도 얼마 전 12년간 함께한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 별이 되면서 온 가족이 슬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 수는 2022년 말 기준으로 602만가구, 1천500만명이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다. 이는 전체 가구의 약 27.6%다. 바야흐로 ‘펫 코노미’ 시대가 도래하면서 본격적으로 ‘펫 비즈니스’가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고 기존에 없던 서비스와 제품이 생겨나며 ‘반려동물 산업’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4조2천억원의 시장은 2027년에는 6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광 분야에서도 반려동물 산업의 반향은 기존의 관광산업의 틀을 깨고 진화를 거듭하는 관광사업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런 반향의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가 큰 촉매제가 됐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동물이 기존의 가족을 대신하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개념으로 급부상하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반려동물과의 동반여행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제 반려동물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며 친구가 돼 가고 있다. 말을 할 수 없지만 소리로, 몸짓으로 사람이 해 줄 수 없는 영역의 소중함을 함께 영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환대산업 전반에서는 이런 귀한 내 가족과 친구를 모시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방법이 동원되면서 펫 비즈니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펫 비즈니스 활동은 ‘펫 프렌들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가면서 반려동물 친화적인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반려동물 전용 액티비티, 반려동물 동반객실, 반려동물 전용편의시설, 반려동물 쇼핑몰과 카페, 비행기 동반좌석 예약 등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하기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 여행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반려동물산업협회(APPA)에 따르면 반려인구의 52%는 숙박시설의 예약 시 필수조건으로 반려동물 친화적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최근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에서도 지역의 관광택시 운행자들에게 반려동물 동반탑승 고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실무 교육,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여행코스 개발, 반려동물 축제 등을 개최하고 있다. 다만 코로너19 이후 급증한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나 법 제도가 잘 준비돼 있지 않아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 보완과 사회문화 의식 변화의 정착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1천500만 반려인들 반대편에 있는 약 3천700만 비반려인들이 이용하는 관광공간과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관광사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반려인들에게는 소중한 반려동물이지만 비반려인들에게는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칠 수 있고, 즐겁고 편안한 여행활동에 장애요인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과 관계하는 ‘펫 티켓’ 매너는 모든 여행자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여행하는 반려동물 동반여행시대에 꼭 필요한 공동체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 됐다. 이제는 반려동물들과 함께하는 동반여행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반려인들과 비반려인 간의 상호 존중과 배려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문화카페] 독일 에센에서 있었던 일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인 웨스트윈드(Westwind 2024)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지난 6월 초 독일 에센시를 다녀왔다. 이 축제는 개최지가 고정돼 있지 않고 매년 독일 북서부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들을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에센시 북부 과거 탄광의 기계를 돌리는 ‘엔진 하우스’를 공연예술 공간으로 바꾼 극장과 그 주변 정원을 축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도시 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옛 산업시설이 문화공간과 어우러져 캠핑장 같기도 하고, 자유롭고 노마딕한 분위기를 자아내 매우 흥미로웠다. 또 에센에는 유네스코 세계산업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졸버레인 석탄광산산업단지’가 있는 곳으로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과거 산업시설이 현재의 산업박물관, 디자인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과 어우러져 축제가 아니어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축제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지역이 우리 현대 이주사와 관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한창 즐기던 중 축제를 기록하는 아시아계로 보이는 영상작가를 만났는데 자신은 한국계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의 부친도 근처 도시에서 생활하고 계신다고 했다. 바로 자신은 파독 광부의 2세라고 했다. 반갑기도 했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바로 이 지역은 1950~60년대 석탄과 철 생산으로 유명한 곳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력난으로 많은 이주 노동자를 받은 지역이다. 1960~70년대 파독 근로자, 즉 광부와 간호사들이 어렵고 낯선 환경에서 언어와 문화의 불편함을 딛고 일하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인 것이다. 당시 그들의 송금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은 독일 사회에 비교적 잘 정착했고 그동안 한·독일 교류의 큰 매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 땅에서 많은 생산활동을 통해 우리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제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가 지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됐다. 인구절벽이 더욱 심화될 미래에는 오히려 이들의 이민을 더욱 장려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과거 1960~70년대 가난을 뒤로한 채 어려운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먼 이국땅에서 노동을 통해 조국의 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했던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와 중첩되면서 과연 우리는 지금 이주 근로자들을 올바로 바라보고 있는지 반성할 따름이다. 한편 다음 축제 개최지인 뒤셀도르프의 시립극장과 파독 한국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디아스포라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을 같이 만들어 보자는 데 동의한 것이 이번 축제 방문의 또 다른 성과 중 하나였다.

[문화카페] 유튜브뮤직의 독주

대중음악은 흔히 음악이라는 예술의 하위 장르로 분류된다. 동시에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징적 사회작용 또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기제로 인식된다. 논의를 확장하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의 주류이자 대중의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대중음악 담론을 굳이 소환한 이유는 작금의 토종 음원 플랫폼 위기를 짚어보기 위함이다. 대중음악 시장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멜론, 지니뮤직, 플로 등 이른바 ‘토종 음원 플랫폼 3강’ 체제가 그럭저럭 유지됐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기준으로 멜론 846만명, 지니뮤직 491만명, 플로 304만명 등은 토종 음원 플랫폼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이러한 구도는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3년 사이에 토종 음원 플랫폼 이용자 수가 격감해 멜론 150만명, 지니뮤직 180만명, 플로 80만명 등 무려 410만명이 빠져나갔다. 토종 음원 플랫폼을 떠난 그 많은 이용자는 어디로 갔을까. 같은 기간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뮤직 이용자 수 추이를 보면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린다. 2024년 5월 현재 유튜브뮤직 이용자 수는 720만명으로 3년 전 같은 기간 337만명에 비해 무려 383만명이나 늘었다. 산술적으로 ‘토종 음원 플랫폼 3강’ 이탈자의 대부분이 유튜브뮤직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음원 플랫폼 ‘독식’에 가깝다. 토종 음악 플랫폼의 위기는 매출 격감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플로와 벅스는 올 1분기 매출이 10%가량 줄면서 적자를 기록했고, 지니뮤직은 전자책 자회사 밀리의서재 덕에 매출이 늘었지만 음악 사업만 떼어 놓고 보면 10% 넘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뮤직의 음악시장 독점은 이른바 ‘끼워 팔기’ 전략이 주효한 측면이 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이 유튜브 구독권에 유튜브뮤직을 끼워 팔아 독과점 지위를 남용한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것은 음원 시장의 공정성 훼손 시비를 가리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캡티브 마켓’(그룹 계열사를 활용한 마케팅)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음원 끼워 팔기(결합 판매)의 위력은 토종 음원 플랫폼에서도 일찌감치 입증된 바 있다. 지금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멜론은 SK텔레콤 계열이던 2004~2018년 SK텔레콤 요금제를 쓰면 최고 50%까지 구독료를 할인하는 서비스로 이용자 수를 늘렸고 지니뮤직 역시 KT통신사를 사용하면 1개월 무료 또는 6개월 30% 할인 정책으로 몸집을 키워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내 주요 음원 플랫폼의 부진과 유튜브뮤직의 독점은 냉혹한 시사점을 던진다. 토종 음원 플랫폼은 유튜브뮤직의 끼워 팔기 혐의가 인정되길 학수고대하겠지만 관건은 혐의가 인정되면 유튜브뮤직의 거센 질주도 함께 멈출 것인지다. 영상을 함께 제공하는 풍부한 콘텐츠와 듣고 싶은 음악들을 모아 만든 플레이리스트 등 음원 외에 즐길거리가 수두룩한 유튜브뮤직을 외면할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새길 필요가 있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토종 음원 플랫폼이 풀어야 할 숙제는 어쩌면 단순할 수 있다. 결제 수수료 개편 등 당국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빠르게 변하는 음원 플랫폼 이용자의 눈높이와 수요에 맞춘 대대적인 서비스 혁신이 먼저다.

[문화카페] 디자인 가치와 가격

최종 마감이 바로 코앞! 석 달여간의 치열한 고민과 번뇌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 다가온다. 입이 타고 정신이 아득하다. 항상 무엇인가 새로움이라는 지향성을 향해 도전하고 만들어갈 때 ‘내가 왜 이렇게 어렵고도 난해한 길을 가고 있나’라는 자책과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에게도 창조의 고통은 있었으리라. 우리 모두 새로움과 창조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예술이라는 범주로서 미술, 음악, 행위 등이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예술의 창조에 대한 노력의 가치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가치로 환원돼 창작자에게 지급되고 경제활동과 사회적 지위도 부여받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디자이너들은 창작자이기 이전에 소속된 조직체나 기업의 업무 활동으로서 또는 다른 조직체나 기업 활동을 위한 파트너로서 임무를 부여받고 일을 한다. 하지만 디자인을 전공으로 정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춰 보면 앞서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기 위해 디자인을 수행하는 것보다는 다른 가치 있고 새로운 창조의 의미가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 더 큰 동기 부여가 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술이 직업인 대다수 사람들은 아마 이 같은 ‘쟁이’나 ‘꾼’에 대한 개념 및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며칠 전 A지자체의 연간 광고홍보물의 대행사를 평가하고 우선협상권자를 심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불경기에 제법 큰 예산이 책정된 프로젝트답게 굴지의 메이저 대행사가 참여했고 자신만의 전략과 분석을 토대로 아이디어와 향후 방향성에 대해 디자인 결과물까지 선보이는 자리였다. 물론 최종 협상자로 선정되고 계약을 체결하는 곳은 오직 한 곳뿐이다. 확실한 승자독식의 세계. 2등과 3등은 의미가 없다. 최종 메달을 결정짓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1등이 아니더라도 참여자의 열정, 노력, 과정, 스포츠정신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인류애를 부르짖는다.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언제부턴가 1등이 아닌 그 외의 것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패배자로 인식하고 말하기 두려워한다.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2등, 3등, 그 외의 낮은 등수는 진정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것일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일을 발주한 기업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면 디자인 프로젝트가 아무리 의미 있고 예산이 큰 것이라도 괜찮은 디자인 업체가 참가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로 진행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있어야 모든 참가자가 긴장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 전략적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방향을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소비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디자인은 사실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모두의 환경과 목적에 따라 세부적인 니즈가 다르고 무엇보다 인간이기에 각자의 감정과 감각이 다르다. 하나의 답이 없는 것이다. 양질의 디자인이 제공되려면 다수가 바탕이 된 경쟁을 토대로 끊임없는 시장연구와 조사, 분석, 전략에 따른 디자인 표현이 따라와야 하며 이와 함께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의 참여와 양심 있는 디자인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무엇보다 결과를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미친 듯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1등이 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1등이 전부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알고 있다. 치열한 경험을 통해, 통렬한 실패를 통해 디자인의 통찰이 만들어지고 마지막에 성공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디자인이 필요한 기업이나 조직체, 최종 디자인 결과물을 수용하는 소비자, 디자인을 개발하는 디자인 기업 모두 1등이 아닌 나머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제안한다. 멋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디자인,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디자인 결과물을 위해 우리 모두는 1등 이외의 것에도 가치를 따지고 최소한의 가치와 그에 따른 대가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2등이나 3등까지는 공개 디자인 프로젝트 입찰 참가에 대한 디자인 비용이 책정돼 다음 번에 그들이 1등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양분을 주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문화카페] 유월이 선사하는 햇살과 바람의 이중주

벌써 유월의 중순이다.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이 왔음을 대낮의 뜨거운 햇살로 과시한다. 하지만 초저녁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야말로 유월의 매력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쫓겨 봄을 만끽하지도 못했는데 더위를 식혀주는 저녁 바람을 맞노라면 어느덧 유월이 왔음을 실감한다. 한낮의 더위와 저녁의 선선함이 전하는 유월의 날씨는 희로애락으로 가득한 기나긴 인생의 여정 같기도, 치열하게 일하다 지쳐 귀가하는 하루의 단면을 닮은 듯도 하다. 땀방울을 씻어주는 초저녁 바람은 자연이 전하는 잔잔한 위로와도 같다.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변한 나뭇잎을 바라보노라면 새해가 시작된 후 나의 삶이 얼마나 여물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시인 이채의 ‘유월의 꿈꾸는 사랑’에는 유월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사는 일이 너무 바빠/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청춘도 이와 같아/꽃만 꽃이 아니고/나 또한 꽃이었음을/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유월 같은 사람들아/피고 지는 이치가/어디 꽃뿐이라 할까.” 변덕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유월은 늦은 봄과 이른 여름의 향기를 모두 지닌 찬란한 달이다. 매 계절과 매달을 지나며 이토록 무한한 자연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임이 분명하다. 시가 아닌 음악에도 유월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음악이야말로 낮의 뜨거운 햇살과 초저녁의 싱그러운 바람이 어우러진 유월의 이중주를 잘 표현하는 예술이다. 1875년 작곡된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12개의 피아노 곡들로, 그중 ‘유월 뱃노래’는 아름다운 곡조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회를 비롯해 유월에는 멋진 클래식 공연이 많이 열린다. 특히 이달 내내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임윤찬의 연주 목록에는 차이콥스키의 사계가 포함돼 있다. 원래 연주할 계획이었던 쇼팽의 에튀드를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의 곡으로 변경한 이유가 사뭇 궁금하지만 초여름 저녁의 낭만에 무척 잘 어울리는 곡임에는 틀림없다. 비단 시인의 시와 음악가의 연주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나만의 오감으로 나만의 입술로 이 매력적인 유월을 찬미해 보는 건 어떨까. 두 눈을 들어 유월의 아침 햇살을 바라보고 두 팔을 벌려 유월의 저녁 바람을 맞이하자. 초여름의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나의 오감을 나의 입술로 노래해 보자. 모든 달이 소중하고 유의미하겠지만 한 해의 중도에서 맞이하는 유월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 말기를 바라 본다. 잠시 멈춰 유월의 햇살과 바람이 선사하는 이중주를 만끽하기를. 그리고 남은 한 해를 기대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문화카페] 싸이∙댄스가수 유랑단... 대학축제의 진정한 모습인가

대학의 5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올해에도 전국의 대학에서는 축제 공연가수 라인업에 대한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해 6월 한 예능프로그램인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등이 대학축제장을 찾은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 대학축제 섭외 0순위로 불리는 ‘싸이’와 함께한 공연은 순식간에 대학을 콘서트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지 못했던 ‘코로나 학번’들의 아쉬움과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는 대학축제가 재개되면서 한층 고조된 분위기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대학축제는 일반적으로 개막행사, 연주회 및 발표회, 전시회를 중심으로 학술제와 민속제, 타 대학생을 초청하는 ‘쌍쌍파티’가 열리는 낭만적인 행사였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학생운동이 확산되면서 대학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대동제’라는 축제양식으로 변화했으며 축제를 사회 비판의 마당극놀이, 동아리 공연, 학과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해 대학문화의 발전과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했다.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대학문화의 혼돈과 지체 현상으로 대학축제는 대학생들의 문화 표현의 장이 아닌 대중 소비문화가 주도하면서 공연가수 라인업이 대학축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콘텐츠가 돼 버렸다. 그동안 대학축제의 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본 관점에서 유명 가수 공연이 문제가 된다고만 볼 수 없는 하나의 축제문화 현상이 됐다. 때로는 유명 가수 공연이 대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사회적 불만 배출 통로, 대학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축제비용이 수도권 대학 기준으로 1억5천만~3억원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 대학생들의 등록금과 학생회비 등으로 축제 예산의 절반 이상이 공연 가수 섭외 비용이라는 것이다. 연예인 섭외 비용은 5팀 기준 1억원을 호가하고 있으며 유명한 연예인의 경우 20분 공연 가격이 약 5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축제의 기획 주체인 학생회도 주인공인 학생들의 자체 공연 및 프로그램에는 지원이 미미해 개성적인 대학문화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축제의 진정한 모습인가라는 문제 의식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축제의 자체 기획공모전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축제를 기획과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부 가수 공연을 축소하면서 교내 동아리나 지역사회 공연단체와 함께하는 축제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한다. 또 축제 예산을 학과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지원해 대학문화의 정체성을 축제로 구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 시점에서 대학축제에서 연예인과 가수공연이 축소되거나 없어진다면 대중문화에 익숙해진 대학생들의 반대 의견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대학축제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개성적인 대학문화의 특색과 가치를 찾아는 것이 바람직한 축제의 모습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회가 스스로 고민하며 자정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대학 당국과 사회 모두가 함께 숙론(熟論)의 장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문화카페] 5월에 재발견해야 할 인물

5월을 상징하는 날은 5월5일 어린이날이고, 이 어린이날을 만든 이가 방정환 선생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두가 아는 사실 중 하나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머쓱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사실을 왜 언급하나 하면 우리가 방정환이라는 인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그가 약관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자신의 분야에서 일을 한 것도 19세 이후 10년 남짓 비교적 짧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반 사람들은 방정환을 어린이날을 만든 아동문학가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제강점기 3·1운동 이후 우리 문화운동의 역사에서 평가받아야 할 청년이고 문화운동가였다. 방정환은 문학인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으며 동화작가이자 어린이연극 연출가, 희곡작가, 잡지출판인 등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문화활동가였다. 그는 어린이잡지를 발간하고 옛이야기를 발굴했으며 찾아가는 어린이 공연을 진행하고 대중 행사를 기획하는 등 창작자이자 요즘 말하는 기획자 또는 프로듀서였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쓰고 출연했던 연극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미치는 공연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동극 같은 연극이나 공연예술은 개인에 의해 올려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방정환 개인의 이름보다는 학교나 단체의 이름, 특히 자신이 속해 있는 천도교의 이름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언론이나 잡지에는 공연 분야에서의 활동이 개인 방정환의 활동으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앞세울 수 있는 아동문학가로서의 역할에 비해 덜 알려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요즘 회자되는 ‘뒷것’의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방정환 선생이 2023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여기에 ‘동극(童劇)’들을 기고한 것을 우리 어린이·청소년연극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작년에 꼭 100년이 된 것이다. ‘아모나(아무나) 하기 쉬운 동화극’을 강조해 공연과 제작의 대중화를 주장하고, 창작에서 음악과 가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희극적 요소를 통해 알레고리로서 어른들의 세계를 비판한 점 등 그가 우리 어린이청소년연극에 남긴 유산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2023년부터 매년 ‘어린이 청소년연극 창·제작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방정환 말:맛 창작소’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0년을 앞서 간 방정환의 어린이·청소년연극 정신을 이어가고자 그가 발표했던 동화극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7월에 열리는 ‘2024아시테지국제여름축제’에 몇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니 선생의 유산을 무대에서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방정환, 5월이 가기 전에 다시금 돌아봐야 할 인물이다.

[문화카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지역 경제 ‘효자’ 되려면

이른바 ‘축제의 시간’이다. 탁 트인 외부 무대를 자신의 안방처럼 받아들이는 음악 마니아에게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최적의 선물이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특정 가수의 콘서트와 달리 한 번의 비용 지불로 다양한 국내외 장르별 유명 아티스트의 라인업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소비적 환경이 매력적이다. 최근 인천시가 8월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24’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앞서 부산시도 ‘부산 록 페스티벌’을 10월에 개최하기로 함으로써 대중음악 분야의 올해 페스티벌이 사실상 막을 올리게 됐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방송 등 제도권 매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인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할 기회일 뿐 아니라 음악 소비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문화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국내 대중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그 의미와 특성, 한계를 면밀하게 살필 때가 됐다. 이는 음반과 음원 판매의 성장세가 감소하고 있지만 라이브 공연을 통한 수입은 급증하고 있는 대중음악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우리나라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록과 재즈를 비롯해 월드뮤직, 힙합, 레게 등의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 즐기는 소비자는 20~40대가 중심이지만 통상 단독 콘서트가 2030 여성 비율이 압도적인 데 비해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남성 비율이 높다. 운영적 측면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공적 지원 비율이 다소 낮아지는 추세다. 여기서 주시해야 할 점은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일종의 ‘문화이벤트’이자 ‘계절성 문화소비’로 인식되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개최 기간 몰려드는 인파로 지역의 관광 수요를 유발하고 도시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이는 인천시 주최로 2006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연 400억원(2022년 기준)이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는 연구 결과에서 입증된다. 문제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같은 사례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전국적으로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급증하면서 양적 성장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지역경제에 ‘효자’ 역할을 할 정도로 경제적 효과 창출로 이어지기엔 미흡한 흐름이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음악·관광축제가 되려면 아티스트 라인업(출연진) 구성 못지않게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부대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등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공적 지원이 투입되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경우 콘텐츠와 라인업을 차별화하고 음악 소비자들이 공연 관람만이 아닌 해당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체류형 축제로 이끄는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카페]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로 시작하는 피천득 시인의 ‘오월’처럼 오월을 노래하는 많은 찬사들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만개한 꽃들이야말로 단연 오월의 얼굴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오월에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처럼 사람을 위한 기념일이 모여 있다. 그래서 오월은 눈부신 봄날의 자연을 찬사함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는 오월을 맞이하노라니 기억에 남는 ‘노동 영화’들이 떠오른다. 기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태동 역시 노동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영화는 제7의 예술로서 대중을 위한 예술로 탄생했다. 이전의 예술이 상류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영화는 대도시 노동자를 위로하는 대중예술로 등장했던 것이다. 최초로 영화를 발명한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작품 중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년)을 보더라도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 노동이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1월 개봉한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2024년)는 영국 북동부 지역의 폐광촌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그곳에 불쑥 나타난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치 감독은 오랜 기간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장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이른바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를 제작해 왔다. 나의 올드 오크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미안해요, 리키’(2019년)를 잇는 노동 영화로 올드 펍을 경영하는 티제이가 난민 소녀 야라를 환대하며 공생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지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을 통해 영국 연금제도의 모순을 조명한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가족을 위해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리키의 고된 나날을 포착한다. 특히 이 작품의 엔딩은 심하게 다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하러 나가는 가장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트럭 운전대를 잡은 리키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다. 그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가족의 만류를 뒤로하고 일터로 향하고 만다. 프레임을 가득 메운 리키의 그 피투성이 얼굴은 영화가 끝나도 가슴 먹먹하게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쾌청한 하늘, 불어오는 산들바람, 연초록빛의 싱그러운 잎사귀, 알록달록 화사한 꽃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뽐내는 오월의 첫날이 근로자를 위한 기념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다. 그렇기에 오월에는 생기 충만한 자연으로 향하는 시선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향하길 바라본다.

[문화카페] 모두에게 열린 여행, 관광할 권리

전국 방방곡곡에 봄꽃 축제가 열리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몸과 마음은 봄을 찾아 걷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의 계절이다. 그러나 축제를 즐기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오늘날의 관광이 의식주와 더불어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기본욕구가 되면서 시간이 없는 경우, 몸이 불편한 경우, 나이가 든 경우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여행 기회와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열린 여행의 시대가 됐다. ‘모두에게 열린 여행으로 관광할 권리’, 즉 ‘관광기본권’이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로 관광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2019년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 회의에서 “관광할 권리는 인간 존엄과 가치에 기초한 기본적 권리”라고 선언했고 2022년 서울시 관광진흥 조례 제3조에서도 “모든 시민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관광활동에 참여하고 관광을 향유할 권리”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2024년 관광트렌드 전망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총인구수 대비 장애인 및 고령자 등의 관광 취약계층 수는 약 29.4%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을 고려한 관광활동이나 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여행의 설렘이 두려움이 되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장애’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열린 관광지 중 총 132곳을 선정, 지자체와 함께 유형별 체험 콘텐츠 개발해 모든 관광객이 제약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는 열린 관광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전국 대부분의 관광지나 축제장에서는 장애인 및 노약자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시설과 경로를 마련해 접근성을 높이고 있으며 장애인용 화장실, 휠체어 대여 서비스와 보조도우미 등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하드웨어적인 환경 조성뿐만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시흥 갯골축제’에서는 축제 기간 3일 중 첫날은 투어 미션 무장애 프로그램인 ‘갯골 프리런’을 진행해 장애인과 가족, 봉사단체들이 함께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축제에 참가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열린 관광축제를 실천하고 있다. 관광도시 강릉은 ‘유니버설 디자인 여행’을 기획해 강릉의 대표 명소를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운영해 모든 여행자가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뮤직 페스티벌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환경, 평화, 어우러짐’의 가치를 추구하는 축제답게 나이, 장애, 인종으로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진정으로 음악과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캠핑 섹션, 축제의 메인 피라미드 스테이지와 가까우면서 어디로든 이동하기 편리한 자리 배정, 스테이지가 잘 보이는 곳으로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축제는 장애인에 대한 다양성과 포용의 문화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즐기는 축제와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기회는 공평하고, 참여 과정과 편의시설 이용도 평등해야 한다. 이동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물리적 장벽의 개선뿐만 아니라 숙박시설 및 식당 등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체험 콘텐츠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관광’ 관점으로 정책적, 제도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문화카페] 선거 유감

오해마시라. 결과에 대한 유감은 아니다. 지난 몇 주, 아니 몇 개월간은 총선이라는 광풍이 휩쓸고 간 느낌이다. 선거 기간 내내 한 가지 이슈가 지배했고 이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 출범 2년 만에 치러진 선거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고 결과도 이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중요한 문제가 다양한 생각 및 의견들과 함께 드러나고 논의되길 바랐다. 왜냐하면 선거란 오랜만에 민의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선거공학도 제대로 모르는 나이브한 소시민의 바람일지 모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한 가지 이슈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여러 문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현 정부를 지지하든 아니면 야당을 지지하든 각자의 판단과 선호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뽑았겠지만 앞으로 4년간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들을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무슨 무슨 심판과 함께 좀 더 뿌리 깊고 다양한 문제를 다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의대 정원뿐 아니라 글로벌 이슈인 기후위기, 우리의 절실한 문제인 출산율 감소 및 지역 인구절벽 등 바로 맞닥뜨린 문제조차 깊이 다뤄지지 않은 것은 실로 유감이다. 또 지난 한두 차례의 선거 이슈였던 청년 문제 또한 정권심판론에 묻혀 이에 대한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었다. 청년 문제와 연결돼 있기도 하고 어린이·청소년 분야의 종사자로서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한 청소년 자살률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정권심판, 정권교체 이런 것들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과연 희망이 있는 나라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출산율이나 자살률, 청년 문제 등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또 다른 중차대한 과제들과도 연결됐다. 청소년 자살률만 하더라도 청소년 개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후보나 정당 차원에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거의 아무도 관심없는 정당 선거 공약집의 한 귀퉁이에 있을까 말까 한 것이 우리의 선거 현실이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그래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다루고 머리를 맞대야 할 핵심 과제들이 아닌가. 이제 어느 정도 광풍이 지나갔으니 이번에 뽑힌 선량들에게 차분히 요구해본다. 이런 문제 어떻게 하실 거냐고.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그럼 당신들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냐고.

[문화카페] 대중예술 스타는 공인인가, 사인인가

‘연예인’이라는 단어는 법률적으로 규정된 용어가 아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서 정의하는 ‘대중문화예술인’을 우리는 흔히 연예인이라고 부른다. 대중문화예술인을 법적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제공하는 사람 또는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제공할 의사를 갖고 대중문화예술사업자와 대중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맺은 사람이다. 여기서 대중문화예술용역이란 연기, 무용, 연주, 가창, 낭독, 그 밖의 예능과 관련한 용역을 의미한다. 대중예술산업에서 정해진 보수를 받고 이 같은 문화예술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바로 연예인이다. 연예인이 대중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일련의 직업군을 의미한다면 ‘스타’는 일반적 연예인의 정의를 훌쩍 뛰어넘는다. 인기도와 흥행성, 연기력, 외모, 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일반 연예인과 뚜렷하게 비교되는 특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스타의 이러한 특질은 대중예술을 이끌어가는 아이콘이자 동시에 스타를 기용함으로써 문화상품의 흥행과 수익, 안정성을 추구하는 스타 시스템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여기까진 ‘공인’으로서의 스타 담론으로, 대중예술에서 스타의 의미와 영향력 논의로 자연스레 범위를 확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일부 스타의 사생활 논란은 공인으로서의 담론을 뒤덮을 만큼 파장이 적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의 ‘연애 사과’와 배우 한소희의 이른바 ‘환승 연애’ 의혹은 메이저 매체까지 연일 주요 기사로 다룰 정도로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카리나의 연애 자필 사과는 연예인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예술 전반의 도덕주의가 반영돼 있지만 이보다는 이미 스타를 통제하는 수준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된 팬덤의 독특한 친밀성 규범이 얽혀 있는 사안으로 파악하는 게 옳을 것이다. 팬덤이 대중예술 산업 구조의 일부로 편입되고 적극적 소비 활동으로 스타를 ‘먹여 살리고’ 있기에 아이돌은 최선을 다해 팬들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는 논리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카리나 사례다. 오죽하면 영국의 공영방송 BBC 등 외국의 유명 언론까지 이 사안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스타와 팬덤의 관계를 새삼 조명했겠는가. 배우 한소희의 환승 연애 의혹은 일종의 공개 연애 선언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볼 수 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당사자들 간의 공방이 벌어지면서 대중의 주목도와 함께 피로감을 키운 측면이 있다. 문제는 SNS를 통해 공개된 시시콜콜한 스타의 사생활이 악플성 댓글을 양산하면서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란을 가져온다는 데 있다. 한 명의 연예인이기도 한 스타를 공인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사인으로 여겨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쩌면 공인과 사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공·사인으로서 모두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삶, 특히 대중예술의 절대적 향유층이기도 한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선택은 온전히 스타 개인의 몫이겠지만.

[문화카페] 리더의 선택

회사의 대회의실, 테이블 끝 대표자의 자리와 좌우로 임원진들의 자리가 눈에 띈다. 최종 프로젝트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경직되면서도 중요한 결정의 자리인 만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발표를 이어나간다. 다행히 박수를 받으며 발표를 마무리하고 회사 대표자가 발언을 이어간다. ‘내용에 대해 질의나 의견 주세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김○○ 이사님 어떠신가요, 이○○ 이사님은 어떠세요.’ 모두의 의견을 들어볼 분위기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마지막, 대표자가 발언한다. ‘모두가 좋다 하니 일단 A 방향으로 갑시다.’ 모두가 좋다 하면 좋은 결정일 수 있을까. 모두가 좋다고 안 한다면? 대표자는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아닌 모아진 의견을 통해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아닐까. ‘어느 것이 좋을까’, ‘무엇을 고를까’,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매순간 선택을 통해 인생을 살아간다. 디자인 프로젝트의 마감이 다가오면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옴을 직감하며, 긴장감과 어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연구실랩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결정의 몫은 온전히 연구책임자인 나의 것이라 여기고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택의 순간들이 다음 단계에서 나에게, 연구팀에 남김없이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디자인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미팅을 진행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들, 분석과 콘셉트들이 나오고 형태와 표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여과 없이 승부를 겨루기 위해 튀어나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광고대행사라는 곳에 취업하고 사회인으로서 벅찬 가슴을 안고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던 때를 생각하면 그 당시는 나의 아이디어와 콘셉트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그 곱의 책임이 더해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의 업무와 할 일을 알려주시던 사수의 눈빛에 들어있었을 고뇌와 번뇌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밑의 직원이 내놓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세상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최종 소비자와 광고주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예상해 준비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심오함을 알기에는 성숙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 철학을 다룬 ‘일 벨 디자인(Il Bel Design)’에서 지금까지도 알레시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사랑받는 ‘알레산드로 M’을 그가 디자인하며 무엇인가 창조한다는 것에서 ‘캐릭터가 너무 빼어나도 문제다. 디자인은 사라져버리고 캐릭터만 남기 때문이다. 또 캐릭터가 좋지 않으면 더 문제다. 싸구려 캐릭터 상품으로 전략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는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균형감을 가지고 최종 판단을 거쳐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작업 아틀리에에는 멘디니 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협업하고 있다. 그들의 창의성과 표현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대표 디자이너인 멘디니이지만 최종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멘디니인 것을 이해한다면 ‘새로운 창조는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며 그에 대한 모든 책임과 소비자들의 반응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가 상당한 무게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무책임하게 세상에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 생각, 결과물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온전히 누군가가 책임감 있게 선택한 것일까.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은 직접 보여주고 만들어주기 전에는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며 새로운 창조를 통해 그들을 일깨워주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의식과 책임감은 세상을 변화시켰던 혁명가, 발명가, 위인들만 필요한 것일까. 민생을 위한다는 정치인, 경제를 이끈다는 경제인, 백년지대계 교육을 펼친다는 교육자 등 모두가 작은 선택과 결정으로도 그 다음 모든 단계와 결과들이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는 무서움을 알고 처신할 때 비로소 사회와 국가가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와 함께 누구나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의 결정은 리더라는 자가 책임을 지고 해야만 한다.

[문화카페] 영화의 타자들로부터 우리의 타자들에게로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위기 중 하나가 난민(難民·refugee) 문제다. 세계 각국이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92년 12월 난민의정서에 가입했으며 1994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난민이라는 신분 혹은 정체성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인종, 종교, 정치 등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서 획득된다. 취업, 교육, 가족 등의 이유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자국을 떠나는 이주민(migrants)과는 다르다. 난민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들이 많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영화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2010년)’는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는 안톤과 그의 타자들이 겪는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안톤의 타자들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아내 마리안느, 아들 엘리아스와 그의 친구 크리스티안, 그리고 아프리카의 난민들과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반군지도자다. 주인공 안톤은 이해 불가할 정도로 넓은 포용력과 일방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는 낯선 타자에게 저항하지 않으며, 폭탄 실험으로 아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크리스티안을 용서로 품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난민들을 잔인하게 폭행하던 반군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반군지도자에게 안톤은 그야말로 구원자인 셈이다. 결국 의사라는 직업적 소명하에 반군지도자를 환자로 바라보고, 비윤리적 행위를 수도 없이 감행한 그를 치료하기로 결심한다. 반군지도자에 대한 안톤의 행위는 일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주변인들은 그가 회복되면 다시 학살이나 폭행을 일삼을 것을 알기에 치료해 주는 것을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군지도자를 구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관객은 안톤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한다. 이처럼 ‘인 어 베러 월드’는 모든 타자에 대한 인간의 초월적 사랑을 다루는 영화적 실험과도 같다. 타자들의 영화로 이 작품을 소환하는 이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임무 혹은 책임을 성찰하기 위함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외된 타자들은 일상 가운데 불현듯 나타나는 고통받는 얼굴의 타자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매일 어떤 타자들과 조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내게 타자이듯 나도 그들에게 타자다. 그래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이는 나 자신이 환대받는 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나 모두는 언제나 서로를 환대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난 타자들이건, 보이지 않는 동시대의 수많은 고통받는 타자들이건, 영화 속 타자들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타자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나날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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