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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고령 인구와 편의점, 새로운 고객층

얼마 전 일본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차로 이동 중에 세븐일레븐을 찾았는데 눈에 안 띄고 ‘세코마(seicomart)’라는 편의점만 보였다. 세코마에는 특이하게도 핫셰프(hot chef)라는 간판이 달린 주방시설이 있었는데 홋카이도의 쌀과 농산물을 이용해 편의점 내에서 조리해 판매하는 따뜻한 음식이라 한다. 도시락 외에도 신선해 보이는 과일, 흙 기운이 남은 농산물도 꽤 많은 종류가 진열돼 있었다. 주방에서 바로 만든 삼각김밥의 따끈함을 손으로 느끼는 순간 궁금해져 지역에서 특화된 편의점 세코마에 대해 알아봤다. 세코마는 홋카이도 지역의 우유나 특산물을 이용한 자체개발(PB) 상품이 유명하고 낮은 인구밀도를 고려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 이미지를 형성한 ‘고객만족도 전국 1위’인 편의점이라 한다. 차별화를 위해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 지역에 진출하지 않고 홋카이도 지역에만 집중하는 철저한 로컬 전략을 고수하는 기업이라 한다. 직영점 위주로 운영하는 세코마의 사업 이념은 홋카이도 지역을 공부하고 그곳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 주민과의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재난 상황에는 구호물품을 준비해 두기도 하고 대기전력 공급이나 후불 결제방식 등 적극적인 지원으로 홋카이도 주민의 ‘라이프 라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됐다고 하니 일본의 편의점 절대강자인 세븐일레븐을 제칠만 하다. 편의점은 주로 젊은층이 이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홋카이도 시골 마을의 세코마는 고령 인구를 위한 편리한 쇼핑 장소이며 식당, 약국이며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 고령 인구 비중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2035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10가구 중 네 가구가 1인 가구일 것이라 한다. 편의점은 1인 가구 증가, 24시간 운영, 다양한 생활 서비스 제공 등 확장된 역할로 급격히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점포 수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지역특화 편의점은 관광지, 대학가, 농어촌, 도심, 주택가 등 각 지역의 특성과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제품 구성 및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식품과 생필품을 파는 공간을 넘어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허브로 변모할 수 있다. 편의점은 집 근처에 위치하고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 특히 운전을 할 수 없는 고령층은 필요한 물품만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가까운 편의점 쇼핑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주요 생활필수품 구매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주문과 오프라인 수령을 결합한 O2O(Online-to-Offline) 서비스가 결합되면서 고령화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을 더욱 편리하게 해 줄 것이다. 공과금 납부, 택배, 간단한 금융 거래 등 디지털에 익숙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편리한 부가 서비스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무인계산대, 비대면 상품 픽업 서비스, 무인점포가 늘더라도 쉽게 적응하리라 본다. 고령 인구를 겨냥한 바이오 및 헬스케어 시장과 함께 편의점의 중요성이 커지며 고령층을 위한 케어푸드(care food)와 같은 제품 구성과 맞춤형 서비스도 함께 발전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아침을 열면서] 멋으로라도 책을 읽어라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에 의거, 국민의 독서 생활을 지원하고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한 ‘독서의 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도 전국 각지의 2천684개 기관, 단체, 기업이 주관하는 1만704건의 강연, 책 축제, 전시, 독서 마라톤, 낭독, 함께 독서, 체험 프로그램, 캠페인 등이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는 독서문화 콘텐츠까지 합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한 달이 될 것이다. 해마다 바쁘게 독서의 달을 보내고 나면 ‘국민들이 다양한 독서문화 콘텐츠를 함께 향유했는데 이를 통해 독서 인구는 얼마나 늘어났을까, 과연 책 읽는 문화가 공고해졌을까, 이 답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같은 물음이 생긴다. 전국에서 실행된 독서문화 행사의 참여자 설문 등을 통해 대략 현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겠으나 전국 현장을 망라한 독서의 달 효과성을 직접 확인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나마 문체부가 2년마다 실행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로 간접적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년간 국민 독서율과 독서량은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3년 연평균 9.2권이던 성인의 독서량은 2023년에는 3.9권으로 반 이상 줄어들었다. 국가가 독서의 달을 지정하면서까지 해마다 독서문화 확산에 예산을 들이고 많은 이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음에도 왜 독서문화 확산에는 가속도가 붙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독서의 달 의미가 없는 걸까. 독서 현장에서 어떤 독자를 만나든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왜 책을 안 읽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지식 세계 확장과 같은 학습적 목표, 마음의 휴식과 같은 정서적 이유, 재미와 같은 오락적 목표로 책을 읽는다는 답변과 너무 바빠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다른 재미있는 게 많아 안 읽는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15년 전 독서코칭 워크숍 진행차 갔던 중학교에서도 같은 질문을 했고 어느 답변 내용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다른 멋진 취미가 많은데 굳이 ‘고루하고 없어 보이는’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독서를 제일 좋아하고 많이 읽지만 ‘진지충’으로 보일까 두려워 책 읽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학생도 있었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눈에 ‘없어 보이는’ 독서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이야기하러 온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잠시 동공이 흔들렸으나 더 열심히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시절 ‘없어 보여서 안 읽는다’는 독서 감수성 그대로를 유지하며 성인이 된 아이들이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성인 연간 독서량의 주체가 된 것일지도. 그렇다면 앞으로 독서의 사회적 가치, 효용성은 이대로 생명력을 잃게 되는 걸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 정보를 간편 소비하는 사람들 위에 유의미한 지식을 생성해내는 이들이 있었다. 정보의 홍수 시대, 유용한 정보를 취사선택해 지식화하는 다양한 채널이나 플랫폼이 등장하고 생성형 AI라는 최첨단 기술까지 더해져 점점 직접 애를 써가며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통찰력을 지닌 이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자기 주도적 사고 과정을 거친 통찰력은 언어사고력에 기반해 형성되며 어휘력이 그 바탕을 이룬다. 어휘력이 읽기를 통해 길러진다는 점은 책만이 주요 지식화 채널이었던 과거뿐만 아니라 다매체, 디지털 시대인 현재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고루한 진지충으로 보이기 싫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독서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책을 사거나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책 읽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명 ‘텍스트힙(Text Hip)’ 현상이다.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무슨 독서냐며 삐딱하게만 볼 일이 아니다. 책의 기능 중 장식적 요소도 있는데 멋내기용 독서도 문제 될 건 없다. 어떤 이유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꾸준히 읽다 보면 독서의 깊은 맛도 알게 될 것이다. 책 읽는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는 이런 사회적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즐겁고 유익한 독서 경험을 함께 향유하고 지원하는, 전국 각지의 독서의 달이 올해도 성황리에 진행되기를 기원한다.

[아침을 열면서] 바람을 맛나게 맞으며

오늘 바람은 맛있다. 잠을 깨는 순간 반갑게 닿는 바람의 촉감. 창을 열고 오늘의 온도를 재듯 바람을 흠뻑 마신다. 맑아진 바람의 결이 한층 상큼하게 밀려온다. 며칠 새로 삽상하다는 어감에 딱 맞게 바람의 감촉이 달라졌다. 바람을 한껏 들이며 드디어 가을이라고, 가을이 오긴 왔다고 뇐다. 폭염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쓸어주는 바람의 위무를 받으니 살맛도 살짝 솟는다. 늘 같은 아침도 바람에 따라 색다른 기분이 된다. 새롭게 차려오는 바람의 걸음새에 마음이 움직이고 몸도 일으켜지는 것이다. 그렇듯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바람이 사람살이에 끼쳐온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해마다 새 잎과 꽃을 피우고 과일이며 곡식을 익히는 등등 세상을 경영해온 바람의 힘이 새삼 짚인다. 물론 태양과 비와 구름과 더불어 하는 일이라지만. 아무튼 태풍 같은 게 아니면 대부분의 바람은 우리네 삶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로 지구를 분주히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처서 바람은 더 각별하게 맞는다. 그때부터 시원해지는 바람이 예를 갖춰 맞이할 만큼 고마운 까닭이다. 예의란 다름 아니라 바람의 위무를 크게 맞이하는 번개 치기다. 세상 불쾌하게 끈적대던 폭염 습도를 확 내리고, 선도는 상큼하게 올리는 가을바람을 애타게 기다려온 우리의 소소한 마중이다. 동네 골목 어디서든 만나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여름 내 고생했다고 위무하는 바람의 맛과 깔을 더 높이 즐기는 것이다. 행복에는 즐거움의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지 않는가. 그러고 나면 더 기운 내서 가을을 맞이하고, 할 일도 챙겨 보게 된다. 시큰둥하던 일상이 축제 후에 새삼 소중해지고 조금 더 열심히 살려는 마음을 새기는 것처럼. 사실 바람은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기압차에 따라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니 지구에 오래 존재해온 대기의 순환이다. 그런 특성에 이름도 많고 역할도 많고 관련되는 비유며 함의도 넓은 게 바람이다. 이름도 미풍, 순풍, 돌풍, 솔바람, 산들바람, 명지바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바람의 신, 바람의 딸, 바람의 계곡 등등 예술적 차용과 활용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즈음의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은 기나긴 무더위를 물리치며 오기 때문이다. 점점 숨쉬기도 힘든 찜통 폭염을 떨쳐주는 특유의 처서바람이라 다른 때보다 대접을 더 받는 셈이다. 올해는 그토록 기다리던 처서도 며칠은 더 지나서야 선선해져 가을바람맞이 번개를 하고 넘었지만. 구월 아침을 설레게 하더니 바람이 무슨 말인지 천변에도 전하고 다닌다. 무성히 벋기만 하던 풀들도 조금씩 초록을 줄이며 마무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아직 덜 익은 사과들은 바람의 말을 귀담으며 더 달게 익을 테고 콩깍지 속의 콩알들은 튀어 나갈 태세로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게 바람을 맞이하는 세상의 고샅마다 제 앞에 주어진 시간을 마저 익히는 가을의 마음으로 그윽이 깊어갈 것이다. 이런저런 전언을 둘러보며 맞으니 오늘의 바람이 더 맛있다.

[아침을 열면서] 우리가 사랑한 아파트

“정말~ 한국 사람들은 참 똑똑한 것 같아.” 몇 해 전 지방을 함께 여행하던 독일 친구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뜬금없이 나타난 고층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나에게 툭 던진 말이다. 내 눈에는 우리 주변에 흔한 그런 성냥갑 아파트였기 때문에 똑똑하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독일에서는 이런 고층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을 선호하기 때문에 집을 짓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녹지가 훼손되고 있어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고층아파트를 짓고 거기에 모여 사는 것이 오히려 환경을 보호하며 주택난도 해소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설명이었다. 덕담성 발언이었지만 제법 그럴듯한 해석이었다. 얼마 전 방문한 LH 토지주택박물관의 기획전 ‘아파트: 새로운 삶을 담다’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마포아파트는 당초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중앙난방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10층 11개동의 최신식 아파트단지로 설계됐다. 하지만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무슨 중앙난방이냐는 비난 여론에 못 이겨 결국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다고 한다. 마실 물도 없는데 수세식 화장실은 물 낭비라는 서울시 수도국의 반대가 심했지만 다행히 수세식 화장실은 관철됐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전력 낭비의 원흉으로 지목된 엘리베이터를 없애기 위해 결국 6층 6개동으로 규모가 축소돼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에는 총 450가구가 입주했다. 그때는 아무도 전 국민의 63%가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 오늘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는 전시 제목처럼 우리의 새로운 삶을 담는 그릇이 됐다. 이제 우리의 주거문화에서 아파트는 주인공이 됐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흔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이 말에는 좀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파트가 비록 최선은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주거환경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우리의 새로운 삶을 담았던 아파트의 미래는 어떨까?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도 아파트고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도 아파트다. 우리 주변이 아파트로 꽉꽉 채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아파트는 부족하다. 아파트가 우리 시대의 욕망이 됐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그리고 1인 가구가 현실이 될 미래에도 지금 같은 대단지의 고층아파트가 여전히 대세일까.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아파트의 미래는 불안하다. 아파트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잘 지은 아파트라도 50년을 넘기기는 어렵다. 이쪽에서는 헐고 저쪽에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새로 짓고야 마는 무한 반복의 아파트 공화국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변화하는 삶을 담을 새로운 그릇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주도면밀한 혜안의 대책이다.

[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리더십

남극을 탐험하던 시대 리더십에 관한 한 아문센이나 스콧보다도 어니스트 섀클턴이 더 많이 언급된다. 섀클턴은 남극 횡단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오히려 1914년 탐험을 떠난 이듬해 조난을 당한다. 이후 구조되는 1916년까지 탐험대 선박 이름이었던 ‘인내(Endurance)’처럼 많은 역경을 감내한 끝에 28명 탐험대 전원이 모두 생환해 그의 리더십 사례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후 널리 전파됐다. 반면 남극점에 다다랐지만 복귀하던 중 탐험대 전원이 사망한 스콧의 사례를 돌아보면 남극에서 리더십은 분명 구성원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리더십은 남극에서 모든 활동에 있어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남극 활동도 영역이나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에 과거 사례에 비춰 남극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명확한 원칙 제시와 리더와 구성원 간 믿음과 신뢰다. 리더의 명확한 원칙과 일관된 방향이 제시돼야 구성원들이 요구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명확한 원칙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상황에 필요한 신속한 대응을 가능케 한다. 또 이런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함께 형성돼야 한다. 섀클턴의 사례를 보면 그가 구조를 요청하러 조각배를 타고 출발했을 때 그의 탐험대는 대장이 구조대를 이끌고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4개월간 조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둘째, 냉철하고 신속한 판단이다. 거친 눈보라와 혹한을 마주하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판단력은 흐려질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냉철히 인지하지 못하고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 구성원들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섀클턴 탐험대는 배를 포기하기도 하고, 지속해서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하고, 식량을 마련한 끝에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스콧 탐험대는 그가 메인 캠프에서 불과 18㎞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는 점에서 판단력에 대해 아쉬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는 리더의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이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는 구성원들이 따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이런 마음은 리더의 솔선과 희생 속에서 생겨난다. 섀클턴이 사우스조지아섬으로 구조대를 요청하고자 떠났을 때 그는 1천300㎞가 넘는 거리를 항해하며 거친 해협을 목숨 걸고 헤쳐나갔다. 또 탐험대원들에게 질 좋은 침낭을 배분하고자 제비뽑기를 조작해 자신은 좋지 않은 침낭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하니 앞서 언급한 그에 대한 대원들의 믿음과 추종은 이전의 행동 속에서 계속 피어났을 것이다. 매년 똑같을 것 같은 남극이지만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기에 이상적인 남극 생활을 위해 필요한 리더십 덕목을 모두 갖춘 리더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남극 활동을 시작한 지 37년이 넘어가고 남극을 거쳐 가는 이들의 세대가 바뀌어 가는 지금 역사에 남을 리더를 찾긴 어려울지라도 앞으로 남극에서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고민해볼 시점은 아닐까.

[천자춘추] 이항 대립(二項 對立)을 넘어서

이항 대립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가 짝을 이뤄 특정한 개념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한 개인의 성격을 생득적인 ‘본성’과 후천적인 ‘양육’의 측면에서 조망하는 방식이다.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서도 인생의 방향은 ‘타고난 천성’과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이항 대립을 통한 개념화라고 할 수 있다. 이항 대립은 현상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해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성격만 하더라도 어디까지가 본성이고 양육인지 현실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 성격은 패턴화돼 있어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관성보다 불규칙성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배우자나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작정하고 비위를 맞추려 해도 좀처럼 맞출 수 없다. 의사든 상담자든 현실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신건강 이슈가 성격이다. 전문가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당사자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를 겪고 있고, 누구보다 예민한 상태에 있어 누가 자신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게 못마땅하다. 무언가 언짢고 불편하면 좀처럼 다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내면에는 극단적인 이항 대립의 로테이션 구조가 있다. ‘원하고 원망하죠’라는 노래 가사처럼 서로 다른 극과 극이 공존하면서 언제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선과 악, 사랑과 미움, 현실과 비현실, 설렘과 낯섦, 존경과 혐오 같은 이질적 요소들의 양립과 잦은 태도 교체를 기본원리로 삼는 내적 구조는 동물의 보호색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버림받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방식이 과연 도움이 됐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믿는 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당사자는 자기 내면에 이런 이항 대립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혼란, 좌절, 패배감, 버림받는 느낌을 받고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이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매 순간 판단하게 만드는 내적 이항 대립뿐 아니라 자신만 실재하고 타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듯 관념화하는 유아론(唯我論)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의도된 개입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엄습하는 생각과 감정에 거리 두는 연습(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음챙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이들과의 집단상담(타인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판단중지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활동(천진난만한 아이들과의 놀이), 옳고 그름에 갇히지 않는 변증법적 대화(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는)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침을 열면서] 진보 또는 보수 유전자

인류는 다양한 두뇌활동으로 복잡한 사회활동을 영위하도록 진화했다. 생물학적 에너지 관점에서 단백질을 포함한 다양한 영양물질의 충분한 공급이 뇌의 발달을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 뇌의 발달은 다시 가금화와 경작 등 먹거리의 효율적 확보 방안을 마련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생식과 번식의 기회를 높였다. 인간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와 자원만으로도 지구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개체군 크기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기본권을 영위하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모든 인간이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안정적 또는 평화적 자기방어를 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이 되고 있다. 작물의 경작과 동물의 가금화로 상시 생물학적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지고 이 규모와 관리 방법에 따라 인간사회에 자본주의가 생성되는 일은 인간의 기본 요구를 얻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본의 규모에 따라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형성되고 이 계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일반적인 상식의 대를 이어오고 있다. 부모의 부에 의해 잘 갖춰진 자본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이례적인 변수가 없는 한 자식에 의해 잘 유지되고 있다. 근대까지도 인류의 재배 및 사육기술은 여전히 자연에 의존함으로써 자원과 에너지의 공급량의 한계 때문에 대기근과 팬데믹 등 큰 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그 제한된 흐름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그 큰 개체군 속의 다양하고 특정한 개체의 호기심은 도전과 성취를 통해 화학비료 발명은 물론이고 혁신이라 할 수 있는 경작기술의 발달과 이를 재분배하는 유통기술의 발달을 유도했다. 넉넉해지는 자원으로 더 이상 제한된 자본의 흐름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계층이 두터워지게 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적인 자본에 예속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에 부응하기 어려웠던 개체는 이제 유전자 발현에 부응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또 자본의 생성과 유지가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다양한 도구와 문명으로 바뀌면서 각 개체의 안정적 지위 확보를 위한 경쟁 노력이 다양화됐다. 뇌는 호기심 만족 이후 파생되는 지루함을 기피하기 위해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발동해 나름대로 우위적 결과를 얻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결국 확보를 위한 이 다양성은 안정적으로 지위를 지키려는 방향과 이를 변화시켜 새로운 체계를 통해 지위를 확보하려는 방향에서 상충한다. 인류의 생존 전략으로 생성되는 사회는 자연적이지만 그 구성과 유지 관리는 두뇌의 발달을 야기한 인간의 진화적 특성상 매우 복잡하며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진화는 자연 선택의 대전제로 멸종하지 않으려는 특정한 방향이 있지만 그 방향의 구체성은 애매하다. 진화의 주체인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개체의 호기심이 어떠한 문명을 이룰 것이며 이 문명의 구성원인 개체의 인문적 다양성이 어떤 유전자에 의해 발현하는지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이거나 진보이거나 인간사회의 경향화를 유도하는 것은 특정 시점에서의 특정 개체의 유전적 차이가 특정한 성향으로 구체화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 속도에 대한 각 개체의 유전적 발현에서 체득하게 되는 인문학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물학적인 ‘뼛속까지’ 보수와 ‘뼛속까지’ 진보는 존재하고 있다. 유전적 형질에 의한 요인도 있지만 생물학적 연령에 의한 요인도 있다. 물리적인 ‘에너지와 자원’ 그리고 ‘인문적 지위’는 모두 인간이기에 유전적으로 선택돼야 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은 서로 사귀는 일까지 재고해 봐야 할 정도로 대립하고 있다. 아니, 대립돼진다. 생물학적인 유전적 성향 차이보다는 사회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어 호기심이 생성하는 지루함을 잊게 해야 사회적 지위가 쟁취되는 개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아침을 열면서] 어떤 아름다운 문상

필자가 협회의 현안 과제이자 장례의 실질적 마무리인 ‘생활유품정리’의 필요성에 따른 행정적 제도화 책무의 일환으로 웰다잉단체협의회와 한국장례문화포럼 일원으로 사회적 인식 제고 및 행정적 공론화를 위해 심포지엄 개최, 신문 기고, 강의와 연계 단체들의 워크숍 등에서 ‘웰다잉(well-dying)과 삶’을 주제를 부족하지만 진솔하게 쓰고 있다. 웰다잉의 일환이기도 한 생활유품정리가 왜 우리는 일본의 ‘종활(終活)’과 ‘일반사단법인 유품정리사인정협회’에서와 같이 중앙 및 지방행정 관련 기관들이 관리 및 지도하는 행정적 제도화가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지면을 통해 수차례 지적해 오고 있다. 내 부모님의 생활물품이 청소업체에 맡겨져 폐기물로 처분되는 것과는 달리 일정한 교육을 통해 ‘유품정리사’ 자격을 보유한 유품정리 전문업체에 위탁한 재활용품이 지역사회에 기증 또는 저가로 판매하는 실용성은 물론 폐기되는 물품은 소각하는 환경적으로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고인에게도 도리가 아니다. 특히 작업 중에 발견되는 현금 등 귀중품은 유족에게 반환되는 시스템이 홀몸노인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2025년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사안이다. 이는 바로 언젠가는 다가올 나와 우리집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 속에 생활하고 있는 때문인지 조문을 갈 때마다 여러 빈소를 둘러보게 된다. 그래서 지면에 ‘장례문화’를 주제로 올바른 문상 예법에 대한 조문문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소견으로 장례는 고인에게는 추모를, 유족에게는 애도의 예(禮)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웰다잉문화운동에서 고인 추모의 발자취와 관련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6촌 형수님의 빈소에 생애 영상을 빈소 TV로 보여주고 있어 조카에게 물었더니 미국에서는 입구에 고인의 활동 사진을 전시해 고인을 기린다고 한다. 한편 거듭 밝혀두고 싶은 것은 마지막 가시는 길만큼은 평소보다 더 효행을 해야 하는 관념이 있어 장례경비를 상조업체에 따지고 싶어도 고인에게 누가 될까 싶어 너그러운 편이다. 근자에 공무원 상조에서부터 매월 납입금이 없이 발인 전에 정산하는 후불제상조가 가격 측면에서의 획기적인 경제성과 안전성, 편의성까지 선불제와 현저한 차이가 있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장례 관련 조문에 대한 미덕이 있어 소개한다. 가까운 친구가 자매상을 당해 맏이로서 부고를 해야 하는데 망인이 오랜 병환에 불편한 몸이 되고 가족들마저 여러 사정으로 가까운 친척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례는 인륜지대사인 점에서 당연히 고지를 해야 함에도 송구스러움에 알리지 못하고 사후에야 알리는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분이 사촌 간이면 친형제 자매나 다름없는데 생각이 짧았다고 역정을 내며 주위 인척들에게 공지해 함께 유골을 모신 봉안당을 찾아 조문과 유족을 위로하는 정겨운 모습에 새삼 핏줄의 소중함을 느끼고 무엇보다 진정성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참되고 뼈대 있는 집안의 가치 있고 아름다운 문상으로 생각돼 널리 회자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는 유품 정리의 근본이 고인의 혼이 담긴 생활물품과 거소를 반듯하게 정리해 평안하게 먼 길을 가시는 데 이모저모 연찬하는 입장에서 소개한 문상이 소중하고 의미가 깊어 전한다.

[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심리학

남극장보고과학기지는 동계 기간 고립된 공간이다. 반경 350㎞ 내에 인간은 기지에서 월동하는 18명밖에 없기에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고립된 공간이다. 이 지역은 얼음을 제외하고 흐르는 맑은 물도 전기도 없는 곳이기에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아직 남극 대륙과 문명 세계를 잇는 해저케이블도 없기에 이곳에서 유일하게 문명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위성통신망뿐이다. 문명 세계에서는 인터넷이 비록 가상일지라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인터넷 화면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가면 만나는 현실은 눈과 얼음뿐이다. 내 머릿속 세상과 바깥에서 마주한 현실의 차가 클 때 그 고독감은 배가 된다. 고립된 현실이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맞물려 생겨나는 고독감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월동 생활에 있어 성공을 결정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요인은 인간관계가 매일 마주하는 18명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외부 소식을 접하더라도 결국 현재 내 삶 속에서 큰 영향을 받는 일들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생활 공간에 정해진 인원만으로 계속되는 일상은 사고(思考)와 신경(神經)의 폭을 극히 제한한다. 바깥세상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만한 일들도 이곳에서는 제한된 사고 범위 속에서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계속되는 증폭작용으로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이 고요한 증폭작용을 멈추기 위해선 영상을 보거나 가무(歌舞) 활동을 통해 요즘 한국에서 자주 회자하는 ‘도파민’ 자극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심리적 고립이 일어나는 환경에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이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나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에 구성원 중 하나로서의 나의 태도와 심리적 통제가 아울러 중요하다. 한 사람의 심리적 분출은 타인에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함께 시끌벅적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또 반대로 개인들에게 독립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도 필요하다. 이처럼 남극은 심리적 ‘밀고 당기기’가 일어나는 복잡하고 세밀한 심리 활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심리적 ‘밀고 당기기’는 제한된 물자 배분과 맞물려 심리적 작용과 반작용 활동을 만들어 낸다. 제한된 물자라도 과감하게 풀어 놓으면 소비 속도가 빠르지 않고 계속 놓여 있지만 무엇인가 소비 속도의 변화로 특정 물품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그 물품은 내놓는 즉시 소진돼 버린다. 그렇기에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또 다른 심리적 ‘밀고 당기기’를 통해 제한된 만족을 위한 최적점을 찾아내야 한다. 다행히 필자가 속한 제11차 월동대는 상호 존중과 배려 깊은 마음으로 생활해 큰 무리 없이 극야 기간을 잘 보내고 남극 횡단산맥 뒤편에서 점점 밝아오는 여명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남극과 같은 고립된 환경에서 한국인의 심리적 활동에 관한 연구가 적어 아쉬움이 있지만 ‘제한’ 속에서 더 도드라지는 심리 활동 공간이기에 남극 연구의 지평이 심리학으로도 넓어지길 바란다.

[아침을 열면서] ‘난 여기 있네’

‘난 여기에 있네’라는 비운(?)의 노래가 있다. 2011년 프로듀서 김현철이 제작하고 가수 윤도현이 부른 이 노래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혹은 상징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도의 기대 속에 만들어진 노래다. 하지만 결국 관 주도 제작의 건전가요라는 한계를 넘지 못해 노래의 완성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노래를 만드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던 도지사마저 바뀌면서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채 완전히 도민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사실 이 노래는 당대 최고 뮤지션들이 참여해 만든 노래인 만큼 서정적인 가사와 정갈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꽤 괜찮은, 그래서 더 아까운 노래다. 도의 지원금으로 만든 소위 ‘관제 홍보송’의 딱지만 없었다면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못지않은 히트곡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도 들면서 관 주도로 대표 문화 상징을 억지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와도 같은 사례라는 생각도 해본다. 도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는 취지의 이 노래 ‘난 여기에 있네’의 노랫말은 남한산성으로 시작한다. “항상 이 길을 걸을 때면 이곳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고마워 긴긴 남한산성길 따라… 지금 이 순간 우리 함께있어 나는 여기에 살겠네.” 남한산성의 구불구불한 성벽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걸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이 아닌가 싶다. 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을 기반으로 여러 차례 새로 고쳐 쌓으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패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남한산성은 워낙 견고하게 쌓아 성 자체가 함락된 건 아니다. 동아시아 축성술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12.4㎞에 달하는 남한산성은 세계인이 함께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가 인정돼 2014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10월에는 남한산성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널리 알기기 위해 도가 건립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한산성 역사문화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난 여기에 있네’가 비운(?)의 노래가 돼 잊혀진 것은 결국 도에 사는 것이 노랫말처럼 고맙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국회의원선거 현수막의 상당수는 난 경기도에 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을 품은 ‘가자~ 서울로’라는 구호가 차지했다. 도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도가 서울에 비교우위를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남한산성으로 대표되는 도의 문화유산들이다. 우리 주변에 잘 보존된 문화유산들 덕에 ‘가고 싶다~ 경기도’를 외치는 그때를 대비한 문화유산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인간 소외의 시대, 우리가 기댈 곳이 자연을 품은 문화유산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아침을 열면서] 인간관계 생명론 ‘소통’

개체 또는 개체군 간 생물의 소통은 화학물질이 매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곤충에 있어 페로몬은 그 대표적 물질이다. 소통의 주체가 되는 개체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화학물질을 생성하고 이 물질의 수용기를 가지는 개체는 해당 화학물질의 기능적 활성을 수행한다. 선호적이지 않은 꽃가루에 대해 수분과 수정의 과정을 지체해 생식의 선택을 생화학적으로 조절하기도 한다. 식물의 타감 물질 또한 타 개체군과의 경쟁에서 생태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소통의 화학물질로 활용된다. 물속에서 물체의 표면에 생성되는 바이오필름을 생성하는 균도 그들의 소통으로 견고한 군체를 생성하니 개체 또는 집단 간의 소통은 생명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동물에 있어 영상신호 또한 중요한 근거리 소통 수단이다. 빛의 물리적 특성상 속도가 매우 빨라 이 소통은 포식과 피식이 연계된 생존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 신호를 세밀하게 감응하는 기능적 구조를 발달시킨 개체는 그 개체군 내에서 생식과 번식의 기회가 높다. 개체군은 영상신호의 해상은 물론이고 수용체인 시상 등 신경계가 발달하는 유전자의 선택 빈도를 높인다. 이와 연계된 내분비계 등의 활성으로 영상신호는 생식과 번식의 기회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수컷이 화려한 외양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 영상신호를 통한 소통은 객관적 사실을 감지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의태같이 포식자를 속이는 피식자의 생존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들 소통은 각 개체에게 주어진 생물적·무생물적 환경 여건에 따라, 그리고 소통이 발생하는 타이밍에 따라 변형이 될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예측이 어렵지 않다. 즉, 진화라는 자연법칙이 모두 적용되고 있다. 꿀벌과 개미 같은 동물은 개체군의 기능적 업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단순한 소통을 한다. 소통은 단순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냥을 위해 집단 체제를 이루는 고등동물은 종 내 경쟁을 통해 집단 내 서열을 유지하기 때문에 소통은 생존을 위한 체제 관리라 할 수 있다. 한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거느리는 체제에서 이 소통은 더욱 복잡하다. 거의 전 생애를 통해 사회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는 인간의 소통은 생애 주기별로 차이가 있다. 더구나 사회생태학적으로 사회 내 상대적 위치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과 도전은 이 차이를 크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발달 과정인 생식과 번식의 시기에 도달할 때까지 이들 개체와 집단의 소통은 생물학적 소통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기의 개체 간 이뤄지는 소통은 화학물질이나 영상신호처럼 생물학적 본능에 충실한 객관적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경험의 과정에 있어 재화와 권력에 대한 지위와 위치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지 않고 개별 체감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 소통 또한 복잡한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가며 각 개체는 각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사회적 관심사와 개체의 지위 확보 등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며 소통은 제한되고 만다. 생명의 소통은 공존을 위한 본능과 질서를 위한 관리다. 그러나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하지 않는 상대방은 소통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인간의 소통은 생명의 본질을 뒤집는 일이 된다. 소통에 있어 화학물질보다는 화상신호에 민감한 인간이 스스로 선입견이라는 고정관념을 생성하거나 생성하도록 유도된다면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자신의 인문적 관점만 강조되는 소통은 개체가 속한 개체군을 부정하는 일이 되거나 사회 체제의 유지 관리에 변칙을 낳는다. 나, 그리고 인간 중심으로 하는 인본의 인문적 상상력은 소통의 부재도 생성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아침을 열면서] 장례지도사 에필로그

지난 6월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시·도지회장 워크숍을 참관하면서 최대 현안이 전국 법인으로서의 법정단체로 면모를 갖추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며 이와 관련 정관변경 허가를 보건복지부에 신청해 처리 중에 있다는데 새삼 의구심이 생겼다. 내용인 즉 국가자격인 전국 3만4천여 명 장례지도사의 자질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협회가 2012년 부산광역시의 허가로 설립 2017년 이후 전국단위 단체로서 지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한 법적 근거를 위해 지금까지 3회째 정관변경을 신청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알고는 절대적은 아니나 전향적 행정의 필요성을 제의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협회는 현재 7천600여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편 2천400여 명의 입회신청서가 접수된 명실공히 장례지도사들의 안식처임이 분명하다는 점이며 이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상당수의 지회가 설립되고 있음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자체적 조치라고 하겠다. 보건복지부가 요구하는 일정한 회원수의 확보 등 제반 조건에 아직 미흡한 사항이 있겠지만 현재 이 정도의 규모와 특히 장례산업의 최일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장례지도사를 관리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여건과 책무를 만들어주고 정부에서 지향하는 요건들을 충족시켜가는 선 배려의 조장 행정이 절실함을 행정인의 입장에서 적극 강조하고 싶다. 또 한가지 장례지도사 자격 취득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국가자격인데도 단지 300시간 교육이수만 의무시험검정으로 취득하는데 대한 문제제기와 아울러 보수교육제도 관련 장례식장 종사자에 한해서만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80% 이상의 상조회사 근무 장례지도사는 제외하고 있음은 모순된 행정이다. 더불어 장례 업무는 장례지도사 자격증 소지자에 한해 의무고용제를 주장하고 있음은 전문적 측면에서 당연하다는 공감을 갖는다. 정부 입장에서 행정관리의 총체적 시각도 중요하지만 업무 성격상 현장 실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하고 반영하는 행정, 그래야만 장례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견지에서 필자가 추진하는 생활유품정리업 행정의 동병상련 입장을 개진해 본다. 장례의 실질적 마무리이자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초고령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각계각층 모두가 공감하는 업종이다. 이에 장례산업 발전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목적을 위해 설립된 협회가 5년임에도 현안인 ‘생활유품정리사 민간자격등록’으로 한국표준직업분류 등의 핵심적 가치인 행정적 제도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에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아니 능력부족인가를 자책하면서도 보건복지부의 행정관리 및 조치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 같은 문제와 애로에 대해 장례 전문 언론 등 장례 및 웰다잉 관련 단체 등에서의 전폭적인 공감과 지원에 소명의식으로 접지를 못하고 있다. 생활유품정리업의 최대 협력처는 장례업계이며 업무수행 측면에서는 웰다잉의 반려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웰다잉단체협의회와 한국장례문화포럼 창립에 일원으로 참여는 물론 일본의 제도화 사례를 통해 유품정리업의 행정적 공론화 관련 심포지엄, 언론 기고, 강의 등으로 사회적 인식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정리하는 인간사 관련 행정은 ‘내 집안 일’의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아침을 열면서] 남극이 주는 황홀함

지난달부터 장보고기지 일기예보에는 일출과 일몰 시각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해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 낮에 두세 시간 어스름하게 비추던 빛도 없어지고 이제는 하루 종일 어둠만 지속되는 극야 기간이 됐다. 6월21일 한국은 절기상 ‘하지’를 맞지만 반대로 기지가 위치한 남반구는 동지를 맞는다. 전등 빛이나 달빛이 없다면 이곳은 거의 암흑에 가깝다. 거기에 눈보라까지 몰아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기지 안에서도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는 일이 생길 정도다. 날이 맑아 달이 뜨면 밝은 달 아래 은은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기지와 설빙의 풍경이 제법 운치 있다. 달이 뜨지 않은 날에는 밤하늘을 채운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은하수를 직접 볼 수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21년 만에 최고로 강력한 태양폭풍이 발생하면서 장보고기지에서도 오로라의 향연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남극이라도 그간 오로라는 구름처럼 뿌옇게 보이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야 초록빛 오로라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밤하늘에 초록빛과 주홍빛의 오로라가 펼치는 빛이 파장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적막한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남극 하늘이 바로 남극이 주는 첫 번째 황홀함이다. 반대로 11~3월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된다. 자정에 밖으로 나가도 계속 낮이라 시계가 없다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이 시기에는 맑은 하늘에 선명한 태양 빛이 내리쬐고 끝없이 펼쳐진 눈과 얼음이 반사해 만드는 청명한 풍광이 일품이다. 이 광경은 너무 밝아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볼 수 없지만 이 또한 남극이 주는 두 번째 황홀함이다. 마지막 황홀함은 바로 남극 얼음이 전해 준다. 장보고기지를 비행기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발을 내딛는 즉시 놀란다. 비행기가 바다가 언 해빙 위에 착륙하기 때문이다. 내려서도 해빙 위로 15~20분을 달려야 드디어 남극 대륙을 밟을 수 있다. 끝없이 평평하게 이어진 이 얼음은 3월 말부터 얼기 시작해 다음 해 1월 정도에 모두 녹아 숨겨져 있던 바다가 드러난다. 놀랍게도 비행기가 내려도 끄떡없는 두께 1.5m가 넘는 이 얼음들은 바람이 한 번 불면 하룻밤 사이 다 깨져 없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도저히 얼 것 같지 않은 기지 앞 바다가 또 하룻밤 새 얼음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얼음은 언제나 깨질 것을 두려워하는 연약한 존재로 보였으나 남극에서 마주한 얼음은 거대한 자연의 힘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얼음을 통해 보는 거대 자연의 힘, 이것이 남극이 주는 세 번째 황홀감이다. 대부분 남극을 추위의 땅, 얼음의 땅, 혹한의 땅이라 하지만 필자가 겪은 남극은 추위와 얼음으로만 정의하기 어렵다. 앞으로 남극을 대표하는 표현은 얼음, 하늘, 바다, 생태계까지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감상에 덧붙여 세 가지 황홀함으로 표현했으나 남극은 지구를 구성하는 다양한 풍광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공간임을 알리고 싶다.

[아침을 열면서] 남양주 궁집

왕복 6차로의 경춘가도변.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의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이름도 예쁜 남양주 궁집을 만났다. 남양주 궁집은 조선 21대 왕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와 부마 능성위 구민화의 살림집으로 나라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 지어줬기 때문에 궁집이라고 부른다. 왕명을 받든 대목수가 지은 집답게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자태를 느낄 수 있는 남양주 궁집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을 만큼 중요한 국가유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장수한 왕인 영조가 환갑의 나이에 얻은 막내딸 화길옹주는 12세에 시집을 갔다. 귀한 늦둥이 막내딸을 어린 나이에 시집 보내야 했던 영조의 기분은 어땠을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금지옥엽 막내딸을 위한 영조의 사랑이 남양주 궁집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영조와 화길옹주의 애틋한 사연만으로도 남양주 궁집이 갖는 의미는 각별한데 여기에다 남양주 궁집을 잘 보존하고 궁집 주변에 10여채의 한옥을 옮겨와 개발의 광풍에 사라져 버렸을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권옥연·이병복씨 부부의 사연이 더해지면 남양주 궁집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 서양화가 권옥연과 무대예술가 이병복은 1950년대 파리 유학 시절부터 옛것을 지키고 가꾸려는 유럽 사람들의 문화유산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1971년 이 남양주 궁집을 매입해 작업실 및 공연장으로 사용하면서 개발의 삽날에 헐려 나갈 운명에 처한 고택들을 이 남양주 궁집 근처로 하나하나 이전했다. 이런 선각자적 노력으로 이곳은 무교동집, 군산집, 용인집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옛집들과 잘 어우러진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 됐다.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그대로, 옷 한 벌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의 무의자(無衣者)를 호로 삼았던 권옥연 화백과 부인 이병복 여사 부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자녀들에 의해 남양주 궁집은 2019년 남양주시에 기부채납됐다. 문화유산을 사랑한 선각자들의 노력이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남양주 궁집이 아닌가 싶다. 남양주 궁집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뚝심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정비와 활용 사업을 진행하는 행정당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었다. 남양주 궁집은 내년 6월이면 주차장 등 방문객 편의시설의 정비사업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권옥연·이병복씨 부부는 생전에 이곳이 음악회 연극 강연회 등이 펼쳐지는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장소가 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남양주 궁집은 분명 무의자 부부의 바람처럼 보석 같은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서둘지 않고 기다려 준 남양주시민들에게도 큰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아침을 열면서] 평등과 불평등

현대에 와서 사회라는 체제 속의 질서는 사법, 입법, 행정의 분권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질서 유지의 근간은 사회 구성원인 인간 개개인으로부터 있으니 이들의 참여로 그 뜻이 반영돼 가히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또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의 권리와 의무는 동등함을 전제하니 이는 개체의 평등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연계에 있어 이 같은 평등의 개념은 뇌가 고도로 발달되고 소통에 있어 언어를 사용해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통해 유전자를 전하는 생물의 세계에서 평등은 없다. 오히려 평등이 존재한다면 생물은 종 다양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동물이 각 개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본능적 역할만 수행하는 반면 인간은 인본에 근거한 개체 존중을 교육하고 그로부터 자발적인 상생을 유도한다. 뇌의 발달로 학습 속도가 빠르고, 가르침보다 깨달음과 그 응용이 더 큰 인간은 호기심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이 호기심의 발동은 잠시라도 멈출 수 없어 인간은 항시 도전을 격려하고 그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이 호기심 덕분으로 인류는 사람을 달로 보내야 한다. 이 도전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결과가 스스로의 호기심을 만족할 수 없게 된다면 또 다른 ‘꺼리’를 찾아내야만 한다. 호기심이 강한 뇌일수록 무료함을 견디기 어렵다. 기대가 강하면 실망도 큰 원리다.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호기심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 초심인 다른 개체에 대한 존중을 안중에 둘 수 없게 된다. 내 뇌가 원하는 ‘꺼리’에 대한 호기심 만족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삶의 유지에 있어 무료한 인생이 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다른 부류의 개체가 호기심에 대한 인간의 중독적 속성을 활용해 호기심 ‘꺼리’를 제공해 스스로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호기심 제공에는 의도적 방향이 존재한다. 이 방향은 인간사회에서만 발달하는 자본주의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기후변화, 지구멸망 등의 문제를 들어 지구를 관리하기보다는 달과 화성의 정착지 개척이라는, 지구 생태계 입장에서 가성비 최하위인 호기심을 제공하고 있다. 소수의 인간을 달에 거주시키기 위한 현실적 재원 마련을 위해 이러한 호기심 ‘꺼리’는 80억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를 충분히 황폐화할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호기심 만족을 위한 편향확증으로 과학 발전의 개가라는 미명하에 정치가와 자본가에게 환호를 보낸다. 성취에 대한 인류의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일관적인 사회적 기준에 의해 잘한 일로 구분할 것이다. 인간은 객관적으로 평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주관적으로 평등하다고 포장한다. 인문적 주관이 평등하지 않은 소수가 제공하는 호기심과 결과에 대해 대리만족이 가능한 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적자생존의 자연계 생물은 섬세한 표정을 가지지 않는다. 경계와 방어, 복속 등 생존에 필요한 단순한 표현이면 충분해 표정을 짓는 기관이 발달될 일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얼굴의 근육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언어 이외의 부가적인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세세한 표현은 인문적 상상력을 유도해 만족하지 않은 호기심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인간의 호기심 만족은 그 성취와 정도에 있어 사람마다 평등하지 않다. 다만 섬세한 소통을 통해 인문적으로 만족될 수 있는 면은 평등하다. 아전인수라서 편향확증이 되지 못하면 내 인권은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한다. 평등과 불평등의 인권 정의는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아침을 열면서] 요양보호사 2급 부활 소고

지난 5월 국회도서관에서 ‘요양보호사 2급 부활’ 주제 정책토론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소비자평가데이터 기반 생산자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 3개 기조발제 중 요양보호사 2급 자격 부활에 관한 반응, 두 차례 포럼에서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의 정책 제안이 노인장기요양 관련 사회적 가치와 필요성 측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있어 행정가의 관점으로 피력해 본다. 필자는 장례의 실질적 마무리인 생활유품정리의 사회적 인식 제고와 공론화 및 생활유품정리사 민간자격등록을 연계해 근자에는 노인들이 자손 가족에게 장례 경비 걱정을 덜어주는 월 납입금 없이 발인 시 정산하는 후불제상조 등의 사회적 인지도가 미흡한 과제들에 대해 노인 및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정보 제공과 교감이 용이한 요양보호사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요양보호 발제자는 우리나라에 사회 문제 관련 금메달이 네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빠른 속도의 고령화지수, 둘째 43% 미만의 노인경제적 가난, 셋째 자살인구 중 47% 노인 자살, 넷째 저출산지수다. 중앙회 제안의 핵심은 2025년 초고령시대를 맞아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과 간병 및 요양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위해 요양보호사 2급 자격제도 부활과 2급 요양보호사 자격증 무시험 자격 도입의 입법화 필요성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장기요양기관이 3만5천여개소로 늘어났고 요양보호사도 200만명으로 현재 50만명 정도만 취업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에 비해 적은 보수로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어 최근에는 가족이 노인요양보호 자격증을 취득해 가족을 부양하는 형태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요양보호사 2급자격 제도의 부활은 당위성과 설득력을 갖고 있다. 1급 자격이 실습 포함, 320시간 교육이수가 필요한데 2급은 240시간 교육 후 무시험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2년간 유예기간을 둠과 동시에 교육생들에게 방문요양 또는 가정에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요양보호사의 수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무엇보다 수급자 방문요양이 3시간 제한이며 야간 서비스가 없는 문제에 대해 가정에서의 노인 요양도 해결되는 바람직한 방안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수시 대응서비스와 야간서비스 등이 이뤄져 수급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 복합형 시설 경우 지역사회 계속거주(Aging in Place)에 적합한 지역밀착형 서비스가 가능한데 우리도 이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편 외국인 간병제도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국내 간병인 부족 문제를 개선하고 간병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는 올해부터 실시되는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의 컴퓨터시험(CBT) 시험장이 구축된 요양교육 전문단체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간병인 교육을 주관하도록 제도를 도입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2024년부터 추진할 예정인 간병비 국가책임제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요양보호사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한 제도적 보장과 함께 요양보호사 2급 자격제도 도입이 함께 입법화되기를 기대한다. 내 집에서 당장 필요한 요양보호사의 현실적 문제에 부응하는 공론화가 민간단체 주관으로 국회 한 모퉁이에서 활발하게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음을 직시하면서 행정의 근본 가치인 조장행정의 전향적 입법 지원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기를 바란다.

[아침을 열면서] 샤니다르 Z

‘샤니다르 Z’.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2018년부터 진행 중인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 고고학 조사에서 발굴된 200여개의 머리뼈 파편을 퍼즐처럼 조립한 후 3D 프린팅해 두개골을 만들고 근육과 피부를 입혀 최근에 복원한 7만5천년 전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얼굴에 붙여진 이름이다. 샤니다르 Z는 툭 튀어나온 눈두덩이 때문에 지금의 우리 호모사피엔스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와 큰 차이가 없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주머니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지금은 멸종된 우리의 사촌(?)이라는 복잡한 감성이 섞여서인지 네안데르탈인과 관련된 새로운 연구 결과는 언제나 해외 토픽의 첫머리를 장식하곤 하는데 이번 샤니다르 Z의 발표는 기존 연구 결과들도 재소환했다.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은 1950년대부터 조사가 진행된 중요한 고인류학 연구의 현장이다. 샤니다르 동굴의 조사를 통해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중 일부에서 호모사피엔스만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투창기에 공격 당한 흔적이 확인된다.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간의 영역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고 몸을 구부린 채 묻힌 인골의 가슴 언저리에서 여러 종류의 꽃가루가 집중적으로 발견돼 마치 오늘날 장례식에서의 헌화와 같은 상징적인 행위가 이미 네안데르탈 단계에서 나타났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 샤니다르의 꽃가루를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라기보다는 바람, 설치류 혹은 꿀벌들이 관여된 자연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이번에 복원된 샤니다르 Z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들이 부상 당한 채 오랫동안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다가 죽은 가족을 생각하며 애통의 눈물과 함께 꽃을 바치는 행위를 했다는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샤니다르 Z를 복원한 연구진도 인정했지만 고인류의 얼굴 복원에서 창작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머리뼈의 형태로 근육을 추정해 대략적인 외형을 복원해 낼 수는 있다 하더라도 최종 복원에는 점이나 주근깨, 상처, 주름살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입가에 번지는 옅은 미소, 그윽한 눈매, 그리고 상대방을 감동하게 하는 고매한 인상 같은 것들은 머리뼈의 형태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3D 프린팅 기술이 정교해진다 하더라도 머리뼈만으로 한 인간의 얼굴에 담겨 있던 내면의 인간미까지 그대로 복원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인상은 과학이라는 말이 있다. 인상에는 인격이 담겨 있다는 뜻이리라. 자기 얼굴에 새겨지는 마지막 인상은 성형외과 의사의 칼 끝이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이라는 조각도에 의해서만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늙어서 멋있는 사람이 되자. 샤니다르 Z를 마주하며 뜬금없이 이런 꿈을 꿨다. 내가 고고학을 좋아하는 이유다.

[아침을 열면서] 인간관계 생명론 '선긋기 호르몬'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이익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삶의 질과 정신적 풍요 또한 경제적 우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이익의 추구는 저마다 기준과 시각이 다른 생존권에도 연결돼 있어 사회는 이해득실 따지기라는 틀에 갇혀 있다. 따지기는 한정된 재화로 인해 얻는 부류가 있다면 잃는 부류가 있다는 간단한 논리로 설명되는 서로 간의 다투기다. 이 다툼은 여건에 따라서는 일방적인 비난과 주장이 서로 대치해 문제를 풀기보다는 또 다른 문제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비난과 주장이 한 방향으로 일관될 경우 사회의 불신을 유도하는 또 다른 편견이 더 복잡한 혼란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대립은 옳고 그름이라는 프레임에 다수를 묶어 넣으며 더욱 심해진다. 대립에 있는 각 부류는 옳고 그름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규정해 편을 가르며 구성원의 결속을 유도한다. 결집을 위한 옳고 그름의 선 긋기는 앞만 보고 마차를 끌도록 하는 말의 안대가 된다. 선 긋기가 우선인 사회에서 각자의 이익을 위한 권리 주장이 수용되는 일은 없다. 다만 선 긋기를 통해 이득이 되는 부류만 존재할 뿐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세계는 협업의 세계다. 공존을 위한 역할 분담 유전자 발현은 확실해 경제적 이득에 대한 이해충돌이 없다. 개체는 경쟁하지만 생식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과정에 충실해 개체보다는 개체군의 유전자 급원 다양성 유지에 힘을 쏟는다.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번식을 위해 경쟁하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다. 생식과 번식을 위한 경쟁의 목적으로서 남성성을 강조하는 이 호르몬은 유전자를 남기느냐 마느냐의 이기고 지는 승부만을 추구한다.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취득은 우리 사회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생식과 번식의 진화 라인에서 유전자를 선택하는 일은 암컷의 일이다. 수컷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면서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 지속해서 발생한다. 몸의 변화에 따라 포식과 피식의 먹이사슬에서 불리해짐은 물론 몸속의 외래 유전자가 발현할 수 있는 생리적 기능의 변화로 몸의 상태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육아의 노력과 수고 또한 건강을 해칠 정도로 대단하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진화는 암컷에게 에스테로젠, 프로제스테론, 옥시토신 등을 줘 적어도 몸의 변화 문제 해결에 있어 단순하게 옳고 그름으로만 구분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타인의 자식이라도 울음소리에 젖이 돌고, 종이 다른 개와 고양이의 새끼를 보면 어쩔 수 없는 사랑이 전해지며 행복하게 된다. 여성호르몬 덕분으로 여성이 지도자인 경우 많은 젊은이를 희생토록 하는 세계 전쟁은 거의 없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는 근본적으로 그리 다르게 진화하는 호르몬에 의해 만들어졌다. 남성호르몬은 사냥감을 포획하는가 못 하는가, 생식과 번식의 기회를 얻는가 얻지 못 하는가 등의 지속적인 이분법 구도를 주고 있다. 그러나 난자의 성숙부터 배란, 수정, 착상, 출산 그리고 모성애적 육아를 유도하는 여성호르몬은 자신의 위치와 일어나는 일에 대한 조화를 수용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회의 이해득실에 관한 대립에 대해 여성호르몬의 기능이 필요하다. 이를 사회가 수용해 선 긋기로 이득을 취하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삶의 질이 생존 자체보다 더 중요할 다음 세대의 번성을 위한 사회적 숙성을 기대할 수 있다.

[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음식... 제한 속의 다양함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다 보면 남극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극에서도 조리대원이 해주는 맛있는 양질의 음식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매년 1년 치를 보급받다 보니 다양한 음식을 해 먹을 수는 있으나 ‘제한 속의 다양함’이라 표현할 수 있다. 남극에 식자재를 보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1만2천740㎞나 떨어져 있고 고립된 무언의 대륙에 적게는 18명, 많게는 80명이 넘은 인원이 먹을 1년 치 식자재를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총무인 필자에게 주어진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장보고를 거쳐 가는 모든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식자재, 간식, 음료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무려 1천500여 항목 중 800여가지 농산물, 육류, 어류, 가공식품, 간식을 선택했고 금액으로는 2억5천만원, 부피로는 20피트 컨테이너 6개 분량이었다. 이 식자재들은 광양항에서 매해 10월 아라온호에 실려 적도를 건너 12월에 기지에 도착한다. 여기서 제한이 생기는데, 건식자재와 일부 냉장 보관이 가능한 식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선식품은 냉동된 상태로 기지에 보급된다. 기지에서도 다음 보급까지 장기간 보관을 위해 계속 냉동 상태로 두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구매한 일부 과일과 채소가 소진되는 4월 말부터는 신선식품을 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장보고기지 특성상 동계 기간에는 해가 뜨지 않고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극야 기간이 3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맛난 음식은 생활의 활력소다. 솜씨 좋은 조리대원 덕분에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맛나게 조리된 음식을 매 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채소와 과일, 특히 생선회 같은 신선도가 중요한 음식은 기회가 없어 남극에서의 식생활은 결국 ‘제한 속의 다양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하지만 사실 잘 고려되지 않는 식생활을 위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환경에 대한 영향이다. 남극에 음식을 가져가기 위해 배출하는 탄소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남극에서는 발생하는 음식쓰레기는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음식물 쓰레기는 건조기에서 말려 ‘재’로 만들어 한국으로 가져온다. 마냥 매 끼 즐거운 식사를 위해 환경에 부담을 줄 수는 없으므로 ‘남극의 식단’ 개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주 시대 진입을 위해서라도 가져가기 위해 발생하는 탄소(에너지)를 줄이고, 조리 과정을 줄이고, 배출물을 최소화하면서, 그럼에도 장기간 고립된 대원들에게 맛과 영양분을 고루 제공할 수 있는 식단 개발과 테스트가 남극에서 선행될 필요가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겠으나 우리가 왜 남극에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지, 또 남극을 통해 확장할 미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침을 열면서]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독일의 격언이자 영국의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한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난관을 극복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한마디가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준비 개념인 ‘웰다잉’, 그리고 장례 의례의 실질적 마무리, 즉 끝인 유품 정리와 공통성을 갖는다. 웰다잉도 인간관계도 ‘해피엔딩’의 결말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 준비, 왠지 부담스러워 대화의 주제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부분을 교과서적인 내용들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모습에서 새롭게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본다. 필자가 본란에 웰다잉 주제에서 생의 마무리를 위해 필요한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둘째 유언장과 마침표(임종)노트 작성, 셋째 자기 권리에 의한 유산 및 유품 정리, 넷째 실용적인 장례 및 상조 사전 준비다. 필자가 왜 이 제목을 화두로 제시한 연유를 말하고 싶다. 웰다잉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연에 공감이 돼 제시해본다.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중요성이다. 다소 고집스럽지만 인간적인 신의를 중히 여기는 친우가 꽤 오래 소통을 해오던 분의 지인에게 무시당한 수모다. 이에 지인의 실수라는 항변에서 서운한 처사를 이기지 못하고 시기심에 토로한 역심이 오히려 자신의 부덕과 그릇된 편견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가항력의 입장에 자존심이 망가졌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단절의 심적 아픔을 호소한다. 한편 발단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교인들이라는 데서 상실감이 커져 종교에 회의감마저 갖게 됐다며 “자연은 그대로지만 사람은 변한다”고 되뇐다. 이에 필자는 분하겠지만 역지사지로 반추해보고 물 흐르듯이 새기라고 조언을 건네준다. 웰다잉의 다섯째를 일깨워준 사례의 가르침이다. 사회적 관계의 아름다운 끝맺음, 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웰다잉의 요건이다. 차제에 인문학 도서들에서 웰다잉에 연계되는 구절을 소개한다. 먼저 제목의 글에서 얼마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준비를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삶이다’. 이는 웰다잉의 방법론이다. 법무법인 대표 법조인의 저서 ‘죽음 인문학’에서 ‘죽음에서 삶을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웰다잉의 실용성이다. 이어 2024년 신간 코로나 이후 세계의 인문학 제3절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미국 명문 예일대의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이는 웰다잉 삶의 전제조건이다. 스웨덴 어느 공동묘지의 채플에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동판이 있다고 한다. (중략)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준비다. (중략) ‘그때 좀 참을 걸, 그때 좀 베풀 걸, 그때 좀 재미있게 살 걸과 같은 표현은 과거에 대한 후회로 지금의 시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또한 웰다잉의 가치성이다. 문득 친우에게 이 책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장례·상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이 같은 죽음 관련 주제의 도서를 유가족에게 선물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싶다. 도서가 폭 넓게 주는 웰다잉 가치의 가르침, 끝이 모두 좋아야 편히 먼 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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