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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남양주 궁집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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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6차로의 경춘가도변.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 사이의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이름도 예쁜 남양주 궁집을 만났다. 남양주 궁집은 조선 21대 왕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와 부마 능성위 구민화의 살림집으로 나라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 지어줬기 때문에 궁집이라고 부른다. 왕명을 받든 대목수가 지은 집답게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자태를 느낄 수 있는 남양주 궁집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을 만큼 중요한 국가유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장수한 왕인 영조가 환갑의 나이에 얻은 막내딸 화길옹주는 12세에 시집을 갔다. 귀한 늦둥이 막내딸을 어린 나이에 시집 보내야 했던 영조의 기분은 어땠을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금지옥엽 막내딸을 위한 영조의 사랑이 남양주 궁집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영조와 화길옹주의 애틋한 사연만으로도 남양주 궁집이 갖는 의미는 각별한데 여기에다 남양주 궁집을 잘 보존하고 궁집 주변에 10여채의 한옥을 옮겨와 개발의 광풍에 사라져 버렸을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권옥연·이병복씨 부부의 사연이 더해지면 남양주 궁집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

 

서양화가 권옥연과 무대예술가 이병복은 1950년대 파리 유학 시절부터 옛것을 지키고 가꾸려는 유럽 사람들의 문화유산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1971년 이 남양주 궁집을 매입해 작업실 및 공연장으로 사용하면서 개발의 삽날에 헐려 나갈 운명에 처한 고택들을 이 남양주 궁집 근처로 하나하나 이전했다. 이런 선각자적 노력으로 이곳은 무교동집, 군산집, 용인집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옛집들과 잘 어우러진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 됐다.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그대로, 옷 한 벌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의 무의자(無衣者)를 호로 삼았던 권옥연 화백과 부인 이병복 여사 부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자녀들에 의해 남양주 궁집은 2019년 남양주시에 기부채납됐다. 문화유산을 사랑한 선각자들의 노력이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남양주 궁집이 아닌가 싶다.

 

남양주 궁집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뚝심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정비와 활용 사업을 진행하는 행정당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었다. 남양주 궁집은 내년 6월이면 주차장 등 방문객 편의시설의 정비사업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권옥연·이병복씨 부부는 생전에 이곳이 음악회 연극 강연회 등이 펼쳐지는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장소가 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남양주 궁집은 분명 무의자 부부의 바람처럼 보석 같은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서둘지 않고 기다려 준 남양주시민들에게도 큰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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