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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바람을 맛나게 맞으며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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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람은 맛있다. 잠을 깨는 순간 반갑게 닿는 바람의 촉감. 창을 열고 오늘의 온도를 재듯 바람을 흠뻑 마신다. 맑아진 바람의 결이 한층 상큼하게 밀려온다. 며칠 새로 삽상하다는 어감에 딱 맞게 바람의 감촉이 달라졌다. 바람을 한껏 들이며 드디어 가을이라고, 가을이 오긴 왔다고 뇐다. 폭염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쓸어주는 바람의 위무를 받으니 살맛도 살짝 솟는다.

 

늘 같은 아침도 바람에 따라 색다른 기분이 된다. 새롭게 차려오는 바람의 걸음새에 마음이 움직이고 몸도 일으켜지는 것이다. 그렇듯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바람이 사람살이에 끼쳐온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해마다 새 잎과 꽃을 피우고 과일이며 곡식을 익히는 등등 세상을 경영해온 바람의 힘이 새삼 짚인다. 물론 태양과 비와 구름과 더불어 하는 일이라지만. 아무튼 태풍 같은 게 아니면 대부분의 바람은 우리네 삶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로 지구를 분주히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처서 바람은 더 각별하게 맞는다. 그때부터 시원해지는 바람이 예를 갖춰 맞이할 만큼 고마운 까닭이다. 예의란 다름 아니라 바람의 위무를 크게 맞이하는 번개 치기다. 세상 불쾌하게 끈적대던 폭염 습도를 확 내리고, 선도는 상큼하게 올리는 가을바람을 애타게 기다려온 우리의 소소한 마중이다.

 

동네 골목 어디서든 만나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여름 내 고생했다고 위무하는 바람의 맛과 깔을 더 높이 즐기는 것이다. 행복에는 즐거움의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지 않는가. 그러고 나면 더 기운 내서 가을을 맞이하고, 할 일도 챙겨 보게 된다. 시큰둥하던 일상이 축제 후에 새삼 소중해지고 조금 더 열심히 살려는 마음을 새기는 것처럼.

 

사실 바람은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기압차에 따라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니 지구에 오래 존재해온 대기의 순환이다. 그런 특성에 이름도 많고 역할도 많고 관련되는 비유며 함의도 넓은 게 바람이다. 이름도 미풍, 순풍, 돌풍, 솔바람, 산들바람, 명지바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바람의 신, 바람의 딸, 바람의 계곡 등등 예술적 차용과 활용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즈음의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은 기나긴 무더위를 물리치며 오기 때문이다.

 

점점 숨쉬기도 힘든 찜통 폭염을 떨쳐주는 특유의 처서바람이라 다른 때보다 대접을 더 받는 셈이다. 올해는 그토록 기다리던 처서도 며칠은 더 지나서야 선선해져 가을바람맞이 번개를 하고 넘었지만.

 

구월 아침을 설레게 하더니 바람이 무슨 말인지 천변에도 전하고 다닌다. 무성히 벋기만 하던 풀들도 조금씩 초록을 줄이며 마무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아직 덜 익은 사과들은 바람의 말을 귀담으며 더 달게 익을 테고 콩깍지 속의 콩알들은 튀어 나갈 태세로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게 바람을 맞이하는 세상의 고샅마다 제 앞에 주어진 시간을 마저 익히는 가을의 마음으로 그윽이 깊어갈 것이다.

 

이런저런 전언을 둘러보며 맞으니 오늘의 바람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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