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동네다 민초들 소박하게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잘난 사람도 못난 이도 없는 가난한 마을 한 해만 살고 떠나야 하는 아쉬운 운명을 안고 혼자일 때는 눈에 띄지도 않는 가냘픈 몸매 부드러운 바람 능숙한 지휘봉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흔드는 팔 따라서 분홍색 꽃 치마 일제히 갈아 입고 화사한 핑크 물결로 넘실넘실 넘쳐 흐른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내는 큰 목소리 섬뜩한 문구를 들고 마구 흐른다 사람은 모이면 폭탄이 될 때도 있다 숭고한 하얀 옷 던져 버리고 거리로 나온 성난 목소리 커다란 바위덩어리 되어 힘없고 아픈 사람들을 짓누른다 여뀌꽃처럼 모이면 더욱 아름다워질 수는 없을까 황영이 시인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떠나가는 것은 때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모두 두고 떠나가는 운명 앞에서 가슴에 얹은 슬픔은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빈 자리 허전해 익숙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옅어진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마음 속 한 곳에서 지표가 되어 주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근엄한 모습으로 지금도 지켜 보시는 나의 아버지 이성란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젊음이 있을 땐 당신 그늘 의지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당신이 나를 의지하는구려 늙으면 아프고 몸도 마비되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밉기도 하고 불쌍해 가슴이 저립니다 육신의 변화가 온다는 것 젊었을 땐 몰랐는데 석양을 바라보는 당신과 나는 해바라기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은 억울한 것이 아니고 세월이 주는 선물 같습니다. 장경옥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집 ‘파꽃’ ‘구름 같은 세월’ 2021년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
도리깨 매질에 구르는 백태 씨 톨 고집불통 건드리면 동글동글 튀는 너 불볕 타작에 나뒹굴며 가을을 주워 담네 땅거미 어둠 속으로 숨어들고 솔바람이 돌려가는 맷돌 소리 간수 물에 도란도란 내려앉는 별꽃 무늬들 찬 이슬 덮어가는 달빛도 환하게 물들이네 졸고 있는 국화 송이 우물가로 빠져들고 몽올몽올 피어오른 순두부 꽃 객지 나간 자식들 영상으로 불러내어 한 그릇씩 퍼담아 전송하는 어미 마음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소리가 흔들려요 공간 확보 됐는지요 머물 곳 좁은 곳은 담을 곳도 비좁지요 촘촘히 흔들린 진동 얼이 깃든 집이라 가늘고 긴 속 옛말, 굴레 쓰고 쏟아낼 때 배웅나온 한치 혀끝, 웅숭깊게 숨겨놓고 세 치 끝 밀집한 언어 한 점 쉬고 쏟는 말 너 떨고 나 떨릴 때 점 찍을까, 빨간 점을 우연일까, 곡선 따라 오르다가 하강하는 얼 담긴 소리를 물어 깊고 깊게 찍은 점 살아가며 오르막길 없지는 않겠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가풀막도 뛰어넘는 내리막 조심스럽게 발로 찍는 점 하나 송유나 시인 2008년 ‘월간문학’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설록차문학상·경기시인상 수상. 경기대학교 출강. 사회복지학 박사.
길가의 회화나무 몽실 몽실 꽃피우고 고고하게 웃고 있네 너무 예뻐 시샘한 비바람이 불어 꽃잎이 춤추며 땅 위로 나비처럼 내려 앉았네 오, 여름 날 회화나무 아래 소복소복 꽃눈이 쌓였네 신영희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빼곡히 쌓인 책들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스쳐 가는 아쉬움에 꿈길에 든다 다시 오마 떠났지만 야속한 마음과 걱정에 몸은 야위어 가고 낯선 손길이 내 몸을 무심히 펼쳐보고 어둠으로 집어넣는다 언어들의 넋두리가 서글프게 피어올라 식어 버린 몸을 태운다 박광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문학과 비평 회원.
펑펑 울고 있는 하늘, 마음껏 울 수 있어 좋겠다 마음껏 퍼부을 수 있어 좋겠다 물비린내 나는 도시, 해무로 뒤덮힌 바다처럼 뿌였다 축축이 젖은 회색 건물들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책들같이 처량하다 마음껏 울고 싶다 가로수들도 펑펑 눈물 흘린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내며 바쁘게 달리는 차들이 도시의 울음을 삼킨다 내일은 장맛비에 세수한 밝은 해가 뜨겠다 길가에 웅크린 꽃들이 얼굴을 든다 김경점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우주에 별 하나 나는 그 안에서 술을 마신다 외로움 한 잔 서러움 한 잔 외롭지 않기 위하여 서럽지 않기 위하여 혼자 술을 마신다 정택상 시인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인마을’ 동인. 농학박사. 시집 ‘치유의 숲’
지금 비가 와서 좋다 내 맘 흐트러놓은 거친 바람이 좋다 꽃이 지는 이유를 바람은 알까, 고운 선율 장마 빗소리와 어우러진다 비 젖은 수국도 바람 따라 춤추고 나는 청보라빛 여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름을 타고 언덕 넘어 온 바람을 머물러 있게 할 수 있겠다 이숙아 시인 2018년 ‘문예비전’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집 ‘그리운 이름’
봄 햇살 스포트라이트로 가득한 시인마을 뜰에 글꽃 씨앗을 심는다 글삽으로 고른 흙 속에 꼭 꼭 심은 씨앗 봄 단비 보슬보슬 내리는데 될 놈은 떡잎부터라며 매일 토닥토닥 북돋아 정성을 들인다 꽃비로 먼저 내려온 벚꽃들은 마음 깊이 파고 들어 시간이 지나야 아름다워진다, 밝히고 향기로운 글꽃 피우려는 사람들 오늘도 시인마을 뜰에 마음 모아 글삽을 깊이 꽂는다 강부신 시인 ‘문예비전’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바닷가에 갈 때 마다 주워 온 돌멩이, 울릉도. 영흥도 멀리 모로코 바다에서도 가져 왔다 돌멩이가 쌓이고 추억도 쌓여 목련 나무 아래 돌탑을 세웠다 두 손 모아 받들고 지성으로 빌면 저 하늘이 들어 주실까 사무치는 그리움 나의 꿈이 얹어지는 돌탑이 높아져 간다. 이경자 시인 2004년 ‘문예비전’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제9회 홍재문학상 수상.
황량한 땅에 정직한 자유의 물줄기를 끌어드려 시내를 만들고 시냇가에 민주주의 나무를 심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보지 아니하시랴 순진한 백성을 속여 시내에 수렁을 내고 심긴 민주주의의 뿌리를 뽑으려 해도 뽑히겠느냐 독사의 혓바닥이 날름대는 방탕의 홍수에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凱歌)를 부르겠느냐 심으신 이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열리라’ 하시니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어 선한 칼을 들어 독사의 목을 쳐서 불 못에 던지우리라 정순영 시인 시집 ‘시는 꽃인가’, ‘사랑’ 외 7권. 부산시인협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장, 동명대학교 총장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외 다수 수상.
“등 좀 밀어 다오” 어머니의 가녀린 목소리에 일 하던 손 멈추고 들어간 욕실 돌아 앉은 어머니의 등 겨울 나뭇가지처럼 야위어 만지기도 서럽습니다 눈물이 어머니 등을 적십니다 너무 젊어 자식의 길 몰랐던 시절 “부디 오래 사세요” 어머니의 등을 밀어 드리며 용서를 빕니다. 김옥희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멈춘 손 우두커니 참기름병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객지 나가 잘 여물어온 콩 덜 여물어온 콩 더 나눠주지 못해 아쉬운 커다란 손 한 줌씩 퍼 담으며 보내야 할 보따리 싸놓고 보면 텅 빈 그릇만 덩그러니 두 개만 남겨놓고 제 자리로 들어앉는 그릇들 꺼내 놓으면 달그락 달그락 북적거리고 보낼 땐 허탈한 마음만 따라 나선다 등 뒤로 멀어져가던 그 막연한 그리움의 시간 들 이제야 알것 같은 커다란 어머니 손 조병하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옛날로 편지를 쓰고 싶다 고향 마을 어릴 적 동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다 징검다리 건너 사과밭 길 함께 걸었는데, 어디서 살고 있을까 덧니가 예뻤던 그 아이. 우체국에 가면, 한 장 엽서로 고향으로 돌아가 새가 되어 이 들녘 저 마을 앞산 뒷산 맘껏 날아다니고 싶다. 임하정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방심한 순간이 있어 비상의 날개 짓은 이방인이 되어 박제된 틀 속에 갇혀 어제를 잊었다 걸음을 멈출 수 없어 은빛이 솟구친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신뢰로 섬기며 다가오는 내 뜰안의 이야기 이 무슨 능청, 해학인가 남들보다 좀 서툴면 어떠한가 세상에서 서툴지 않은 사람 있는가, 오늘도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다 이병희 시인 시집 ‘병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방년 77세 타임머신을 타고 ‘청학’의 동산에 스무 살의 날개를 펼쳤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의 설움은 여기 젊음이 역동하는 동산에서 팡팡 터지는 꽃봉오리들 봄의 향연에 날려 보내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감사의 봄물이 흐른다 희망을 품은 푸른 학의 비상을 위하여 만학도 여대생 캠퍼스 푸른 동산에서 목련꽃, 벚꽃들의 미소를 화사하게 피운다 *청학 : 오산대학교 상징의 새 심평자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미소 띠며 돌아 앉은 뒷모습 무정도 하네 청산도 앞, 뒷모습 다른데 사람이야 그럴 수 있지 문제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갈등 없는 세상 어디 있으랴 햇살 아래 높였던 자존심, 어둠 내린 길목에서 뒷 모습이 웃고 있네 안명순 시인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문학박사.
서리 서리 묻어두고 차마 하지 못한 말 당신 떠난 후에야 가슴에 이는 분홍빛 숨결 절절히 붓끝으로 흘러 내립니다 당신의 사랑은 오월의 햇살보다 따뜻했고 장미보다 붉었습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김도희 시인 시집 ‘나의 현주소’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2023년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