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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칼럼] 우리가 감격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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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93년 3월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육군사관학교 11기부터 20기까지 기수별로 12명 내외 전체 120여 명이 뭉쳐 군 요직을 독식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대한민국 전체를 암울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조직이 하나회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감격했다. 아마도 더 이상 쿠데타는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모든 국민이 두려워하던 막강한 집단이 척결되었다는 후련함 때문에 열광하고 감격했을 것이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기관이 개인의 실명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니 남의 이름이나 가짜 이름에 의한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

뇌물 탈세 등 등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런 개혁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국민들이 별로 없었다. 경제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은 환호하고 감격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1월에 발발했다. 대마불사를 신봉한 기업경영, 금융기관들의 방만한 경영, 감독기관의 안이한 자세, 정책 책임자의 판단 착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여러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대기업들도 줄줄이 부도가 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고,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바닥이 난 외환보유고를 채우자고 거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조 말기 나라가 망해갈 때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을 넘어서는 거국적인 애국운동이었다. 서로의 애국심을 확인하고 같이 격려하고 감격했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식가격이 떨어지면 싼값으로 사들여 한몫 크게 잡으려던 국제투기자본들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국심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1천1마리를 싣고 휴전선을 넘어갔다. 우리 방송뿐만 아니라 미국 CNN도 중계했다. 모든 국민들이 방송 중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주영 회장에게는 사업 목적도 있었겠지만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서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분단 53년 만에 공식적으로 휴전선이 열린 역사적 쾌거였다. 이제 전쟁의 위험이 조금씩 줄어들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국민들이 안도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남북이 분단된 지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한 것이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이라고 교육받아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본 것이다. 남북이 서로 관리의 대상임을 인정한 회담이었다.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실현 가능한 희망이 되었다. 이념의 차이가 엄존했지만 민족의 염원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광복 후 자유당 독재정권과 군부 독재정권을 거쳐 문민정권과 지역 연합정권을 거쳤지만 모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달랐지만 상부의 연합이리라는 정치공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정치공학에서 자유로운 정권이었다. 우리보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아온 정권교체였다. 선진 민주주의가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고 기대도 컸다.

 

지난 10여 년간 감격한 순간이 기억에 없다.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해지도록 애쓰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안전해지고 행복해지겠다는 희망이 있으면 국민은 감격하게 될 것이다. 감격의 순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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