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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칼럼] 공적 기능의 아름다움

고대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직접 로마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건축물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했고 방송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었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정도가 아닐까 한다. 영화 속에서 콜로세움은 검투사끼리 잔인한 시합을 하거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순교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 각종 정치 집회도 이루어졌고 문화 행사도 치러진 곳이지만 대체로 잔인하고 집단적 광기가 표출되는 곳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에서 저자는 콜로세움의 순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책 속에서는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대제국 로마의 거대 욕망이 자칫 개인사로 변질되어 타락할 위험성을 공공사로 바꿔 표출하는 순기능도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콜로세움은 무려 450년 동안 사용했는데, 무너지고 뼈대만 남은 폐허의 모습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선 묘하게 운치 있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추억 삼을 듯하다. 사실 국가에서 세운 건물이나 기관의 공적 기능은 평시에는 잘 몰랐다가 국가나 국민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조금 더 잘 드러나며 국민 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것을 코로나19를 겪으며 여러모로 체감하고 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혹은 이 건물이 무엇인지도 어쩌면 잘 몰랐던 지역 사람들에게 공공기관 연수원이 생활격리시설로 쓰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의 존재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 독립적인 청으로 승격을 앞둔 상황을 고무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외출하려고 문밖을 나섰다가 휴대전화와 지갑 이 두 가지를 잘 챙겼는데도 뭔가 허전하다면 그것을 안 가지고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마스크다.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다면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원래 안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그런지 여전히 잊고 문밖을 나서는 때가 종종 있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어버린 시대.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마음이 드는 건 이제 손쉽게 어디서나 마스크를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올 초 코로나19가 퍼지고 있을 때, 수많은 뉴스가 마스크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취재하면서 두려움과 걱정이 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은 그 부분에선 안정감이 생긴다. 그러나 마스크 보급을 위한 우체국의 공적 역할은 계속 된다. 마스크 구입이 취약한 읍면 단위 1천234개 우체국은 공적마스크 판매 기한을 연장하고 있고, 약국이나 농협이 없는 도서, 산간 지역의 우체국과 우체국 쇼핑몰은 계속 판매한다. 마스크 공적판매처로 지정된 후 1천만 개를 판매했으나 마스크 사각지대가 없도록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정관리본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농어민의 판로 지원을 위해 4차례 우체국쇼핑 특별기획전과 농가 돕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약 100억 원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공공성, 혹은 공적 기능은 편리함, 쾌적함, 안정감, 신뢰감,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국가적 사회적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아름답고 훌륭한 가치를 각각의 분야에서 어떻게 더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지 평소에 늘 고민하는 가운데 우리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가장 재수 있는 삶

7월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했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 중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한쪽이 툭 하고 무엇인가 떨어지거나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너무나 가까웠던 그의 음악, 영화팬으로 한 곡쯤 그의 영화음악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 같기 때문이다.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유명한 서부영화 음악부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미션, 러브 어페어 등등 명작 속의 명곡들은 셀 수 없이 많다. 80세가 넘어서도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었던 거장의 사망 소식에 세계인이 애도했다. 교황청 문화위원장은 모리코네는 자신이 속한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영혼을 동시에 음악으로 표현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우리 모두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음악에 영적인 차원을 담은 이 거장은 죽음을 준비한 모습도 남달랐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생전에 스스로 부고를 작성했는데, 사후 바로 이것이 공개되었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담담하지만 먹먹하다. 그는 자신의 부고에서 항상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내 죽음을 알린다라고 했으며,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는 말로 자신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작별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한 후에 아내에게 특별히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보낸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종종 특별한 영적 상태에 도달한 고승들이 자신의 죽음을 알고, 혹은 죽을 날을 미리 받아놓고 그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명제마저도 잊고 오늘만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것이 인간이다. 코앞의 일도 모르면서 그 어떤 성취도 업적도 재산도 명예도 모두 놓고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데도 우린 매일 뭔가 움켜잡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많이 갖게 되고 넉넉히 쌓아놓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삶과 비교했을 때 부정적이고 어둡고 삶에서 뚝 떨어진 먼 곳에 있다. 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재수 없는 일로 여기기도 하고, 죽음 이후를 위한 화장장이나 추모관 건립 논의가 있으면 우리 동네가 아닐까 예민해진다. 행여 우리 동네로 결정이 되면 그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라면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보통 일이 되어버렸다. 죽음은 삶과 아주 멀어야 하고 멀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91세 노인이었지만 어제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던 사람의 거짓말 같은 부고가 드물지 않은 게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다. 사자(死者) 중에는 불과 며칠 전까지도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거둘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부고를 미리 쓰고 가는 사람과 황망하게 서둘러 가버린 사람의 삶. 어느 지점에서 길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인간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내 목숨은 내가 스스로 거두지 않아도 신이 거두어간다는 것을 늘 가까이 두고 인식하는 삶은 재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반대로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유한한 인간의 삶을 늘 의식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 이것이 자신들의 죽음을 알고 준비했던 고승들처럼, 보통의 우리가 세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속(俗)되지 않은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재수 있는 삶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누구도 아닌 ‘욱’씨의 잘못

어릴 때 남녀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던 외화엔 헐크가 있었다. 주인공이 불의를 보고 화가 쌓이다가 어느 순간 분노의 버튼이 당겨지면 엄청난 괴력을 가진 헐크가 되어 나쁜 놈들을 혼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어릴 때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해했던 것 같다. 악당들을 혼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고소함이나 통쾌함을 기대하며 호기심 어리게 보는 친구들은 너무나 재미있어했지만, 나는 저 화가 언제 폭발할까 싶어서 그 순간이 되기 전까지 너무 무섭고 두근거려서 폭발 직전엔 텔레비전 화면을 제대로 쳐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사회면 뉴스를 보면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 헐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상점 종업원이나 버스기사를 폭행한다거나, 내 차에 흠집을 냈다거나 내 차에 음료를 올려놓았다고 시비가 붙거나 폭행을 한다. 결별을 선언한 여자친구나 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실제 모두 기사화되어 다 알지 못할 뿐이지,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보복 같은 형태로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욱하는 성미를 가진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늘 불안하다. 그 사람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권위적인 가장이다. 욱하는 성격으로 집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하고 가족구성원이 조심해도 어느 순간 자제력을 잃으면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집안이 난장판이 된다. 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식구들이 눈치 보고 비위를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죄의식이 내면화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혹은 우리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내가 또 무엇을 실수한 거지? 이런 생각으로 자기 검열을 하는 단계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가 있다면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민감해지고, 타인과 갈등이 생기기 전에 알아서 저자세가 되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있어도 상대방의 의견에 그냥 동의하고 마는 일도 생긴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주변에 쉽게 화를 잘 내며 욱하는 성격의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주변 사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 사람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나를 왜 화나게 하나,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주변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내가 화났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타고난 성격이나 정말 참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딱 그만큼의 자제력과 자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에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이 주변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무참히 깨뜨리는 것에 어떤 지각도 없다면 문제는 크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화가 나려고 한다면 그것을 의식하며 상태를 차분하게 갖도록 조절하며, 아무리 짧은 사이라도 내가 지금 화를 폭발적으로 낸 후 다음 상황이 어찌 될지 미리 상상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한 번의 화로 어떤 잘못된 상황으로 번져 평생 후회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 내가 감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조절해야 한다. 화가 날수록 의도적으로 말의 톤을 낮추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또박또박 조곤조곤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작은 화가 났을 때부터 연습해야 할 수 있다. 날씨는 하루하루 더워지고 있고 모두 마스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내 화를 건사할 수 있는 자제력은 사회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평등한 문화 향유 시대의 오픈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고, 핫플레이스 맛집에서 식사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시간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졌다. 가장 일상적인 그런 일들이 소중하게 그리워지는 가운데 최소한의 만남, 최소한의 활동을 권고받으며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명료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사람들은 점점 언컨택트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대표적인 분야다. 직접 문화예술 현장에서 체험하는 감동과 떨림을 맘껏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 예술단체, 예술기관들은 관객을 만나고자 온라인 공연, 온라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멤버인 크리스 마틴은 SNS 라이브로 TogetherAtHome이라는 챌린지를 시작해서 호평을 받았다. 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즉흥 공연을 함으로써 다른 아티스트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면서 공연이 취소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달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집에서 혹은 작은 스튜디오에서 팬이나 관객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연주해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연과 전시, 심지어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붐은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끌었다. 지난 3월 독일 정부의 공연장 폐쇄 조치에 따라 베를린 필은 유료 온라인 플랫폼인 디지털 콘서트홀을 무료 개방했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 감독으로 재임한 2002~2018년까지 양질의 콘텐츠를 값싸게 보급한다는 감독의 철학에 단원들이 함께하면서 생중계 플랫폼의 구축과 안정화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세계 10대 박물관 미술관도 온라인 전시를 통해 세계인과 만난다. 우리나라 미술관 최초로 사비나미술관은 VR촬영기법을 접목한 온라인 관람을 오픈했다. 단순히 여러 각도로 촬영한 것이 아닌 360도 촬영으로 관객이 시선을 돌리는 방향의 모든 면을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온라인 전시와 다르다. 전시 작품에 큐레이터의 해설이 더해지면서 방안에서 미술관을 가서 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제까지 공연이나 전시는 비용이나 시간의 문제로 장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장벽을 모두 해소해주었던 SM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슈퍼M Beyond LIVE 콘서트는 대단한 호응이 있었다. 3만원의 티켓 값을 기꺼이 지불한 유료 관객이 무려 7만5천명이나 되었다는데, 화면의 배경에 관객을 띄우고 라이브 공연을 펼친 새로운 콘서트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문화예술계의 관객 유치를 위한 새로운 바람은 조금 더 수월하게 문화적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유료로 관람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시간의 제약 없이 마음껏 어느 때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언컨택트 시대는 코로나19 때문에 열린 시대는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었고 지금은 가속화가 될 뿐이다. 이것은 기회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문화적 향유가 미진하다고 느끼는 개인이라면, 문화적 평등을 이룰 수 있는 이런 시대적 변화가 좋은 기회다. 온라인을 통해 안목을 기르고 실제 현장에서 내 눈으로 직접 작품을 보는 행위를 통한 또 다른 감동의 경험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예술콘텐츠를 집과 온라인에서 충분히 향유하는 시간을 통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은 어떨까.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완곡함과 애매모호함 사이

햇빛은 유혹하고 맑은 공기에 설레고 한결 훈훈해진 바람은 우리 손을 잡아끈다. 오월 연휴까지만 자제하자.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고 우리 스스로를 다잡는 초심이 아직 살아 있지만, 지금까지 폭발적인 감염이 일어났던 시간을 뒤로하고 꽤 관리 가능한 성공적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방역 당국의 관계자들과 더불어 외교 수장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우리의 경험을 공유 받고자 하는 해외 여러 나라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박은하 주영국대사의 해외 인터뷰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로 응했다는 점 외에도 먼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고 절제된 언어로 우리의 상황을 군더더기 없이 잘 설명하면서 두 사람 모두 통일된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공통점이 인상적이다. 거기에 더해 조금 까다로운 질문을 함정처럼 던지는 진행자의 태도에도 포용과 공감의 자세를 담아 완곡한 어법으로 대답하고 있다. 외교 언어는 가치중립적이고 완곡어법의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싸웠다는 표현도 서로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다로 쓰고, 크게 싸웠다 해도 합의할 것이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정도로 표현한다. 설령 말이 통했다고 해도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한다 정도로, 합의했다 해도 되지만 확실한 의견일치를 보았다에서 마무리한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해 출구를 열어놓은 듯한 이런 화법은 외교 언어에서 당연할지 모른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내는 주관적인 언어는 설화(舌禍)를 자초하고 외교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은 강성의 스트롱맨이 많다. 이 지도자들이 불신과 갈등을 초래하는 많은 상황은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음이 자주 목격된다. 그래서 작은 일도 더 크게 느껴지고 오해와 갈등을 증폭시키며, 심하면 강대국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출렁이고 경제에 어려움을 가져오는 상황을 자주 보아왔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실수였던 점이 많은 것을 보면 말하기에 앞서 극단적인 감정의 환기와 절제된 언어의 선택을 위해 시간을 버는 선행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사실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 모든 사람들의 언어는 이런 면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뜨거운 기질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애매모호한 화법은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답답하고 기계적인 중립을 가장한 잘난 체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갈등과 혐오, 오해를 부추기는 데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언어생활이 영향을 미친 부분도 크다. 특히 공인들이 욕설과 다름없는 거친 발언을 한다거나, 주관적인 견해를 여과 없이 말함으로써 공감은 얻지 못하고 또다시 욕으로 그야말로 응징을 당하는 악순환을 보면서 완곡한 언어의 높은 가치를 믿고 활용한다면 큰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못 만나고 지냈다. 이후 누굴 만나든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낸다면, 반대로 내 의견을 경청해주고 존중하는 사람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오랜 시간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시국의 성찰로 귀한 결실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아무놀이’와 ‘아무싸강’

봄은 왔지만, 마음은 꽁꽁 얼어 있다. 꽃은 피었지만, 꽃놀이를 할 분위기가 아니다. 대유행으로 번지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는 패닉이 되었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어느 국가, 어느 사회,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위기를 맞아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대형 항공사부터 작은 규모의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까지 오프라인은 그야말로 길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 일제히 OFF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프라인이 모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온라인은 조금 다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으로 일상생활을 집이나 그 밖의 좁은 행동반경으로 단순화하면서 우린 더욱 온라인에 의존하게 된다.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온라인으로 먹을 것을 주문하고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고 온라인으로 게임으로 온라인으로 정보를 나눈다. 최근에는 아동심리학자의 제안으로 SNS를 통해 어린 아이들과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를 영상으로 공유하는 이른바 아무놀이 챌린지가 인기다.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서비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사람들의 이용시간이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대학은 이미 개강한 상태다. 다만 교수와 학생들은 강의실이 아닌 사이버 강의를 통해 만난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듣는 일이 익숙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만들어야 하는 교수들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하기도 하고 미리 촬영한 것을 올리면 학생들이 보는 형식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그래도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직접 대면 없이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로할 수밖에 없다. 멈춘 듯한 시간,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위기는 때로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다. 이럴 때 사이버강의, 이른바 싸강에서 열쇠를 찾으면 어떨까. 학생이 아니라도 지금을 어떤 공부의 기회로 잡는 것이다. 무엇을 배워도 좋다. 어떤 유형의 콘텐츠여도 좋다. TV만 해도 요즘은 양질의 교양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딱딱한 강의가 재미없다면 예능 형식의 강연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같은 TV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최근엔 감염병 전문가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 많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던 점에서 유익하다. 아무놀이를 공유하는 것처럼 이런 시간에 아무싸강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는지 큰 통찰을 보여준 독일전문가 김누리 교수의 강연 세 편을 친구에게 공유했더니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심심하던 차에 다 큰 두 딸과 함께 정말 잘 보았노라고, 뭔가 머릿속 엉킨 것을 풀어준 느낌이라 좋았다고 했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이 친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강연을 공유하고 권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영향력은 꼭 내가 가진 것으로만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엔 유익하고 좋은 콘텐츠가 정말 많다.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와 교묘하게 편협한 시각의 뉴스가 횡행하는 세상 속에서 그저 포털이 가려준 뉴스에만 시각을 고정하지 말고, 책을 정독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콘텐츠를 통해서 교양과 지식을 쌓는다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어떤 문제에 개념을 갖게 되는 좋은 효과가 생긴다. 그게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건강한 쪽으로 영향을 준다면 이 사회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공적 언어’의 무게와 위기극복

우리는 지금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백신도 치료법도 없는 감염병의 확산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물리적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한꺼번에 느끼는 중이다. 함부로 어디를 다닐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조심스럽고, 뭘 밖에서 사먹는 일도 찜찜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심리적 저항은 혹시하면서 주변 사람을 바라보며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 대한 질시의 눈,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는 마음, 이런 것들이 감염병보다 오히려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굳어질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전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매일 보게 되는 얼굴이 있다. 하루 두 번 코로나19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이다. 질병 현황보고, 대책, 국민에 대한 당부 등으로 이어지는 하루 두 번의 브리핑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브리핑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브리핑하는 쪽을 훨씬 환영한다. 국민에게 상황을 소상하게 보고하면서 당분간 더 나빠질 수 있다고도 말하지만, 목소리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어휘 선택은 가치중립적이며 자극적이지 않다. 하루 확진자가 0명이었을 때도, 800명이 추가되던 날도 다름이 없었다. 위기일 때 공적인 언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워도 된다.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자세히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과 상황을 숨김없이 공개하고,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사건의 본질과 핵심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현재 취하는 조치와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 방안을 밝히고 국민이 해야 할 일을 당부하는 것까지다. 외신은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브리핑 하는 내용이 생각보다 더 자세하고 투명해서 놀랍다는 반응이다. 어느 날 100명 이상씩 폭발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국민이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개인위생수칙을 지키며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는 건,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해 막연한 불안감을 그래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콘테 총리는 이탈리아에 확진자가 많은 이유로 한 지방당국의 적극적인 코로나19 진단검사 탓이라고 지적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불필요하게 많이 검사를 해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인데, 국민은 이런 총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민 생명이 걸린 질병의 진단검사를 적당히 하라고? 하면 할수록 이렇게 많이 감염자가 나오는데? 숨기고 싶은 건가? 이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저렇게 적당히 하면서 이거 못 잡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미치면 사람 마음이 바로 불안해지게 된다. 믿지를 못하게 된다. 더 불안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정부가 어떤 말을 해도 못 믿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 공적인 언어의 무게는 신뢰에서 온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공기 같은 투명함을 가질 때 무게가 생긴다. 국민들은 상황을 소상히 알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하게 된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까지 하게 된다. 마스크 착용률이 그것을 말해주고 손소독제와 비누의 소비량,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의 매출 규모가 그것을 말해줄 것이다. 프랑스의 관문은 샤를드골 국제공항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프랑스에 내릴 때 이용하게 되는 이 공항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가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고 강대국 프랑스를 만든 위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되고,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역시 그렇게 된다는 말을 남겼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한다. 국난을 극복한 리더의 말로 사람 대신 국가라는 말을 넣어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국난 극복에 대한 내공이 있는 민족이고, 현재 국가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성장하는 인터뷰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창 인기를 누릴 때 유행했던 말이 있다. 두 유 노우 싸이?(Do you know PSY)? 외국에서 내한하는 유명 스타들에게 질문하는 우리나라 기자, 외국으로 여행 가서 그곳 외국인에게 질문하는 한국인,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한국인의 두 유 노우로 시작한 질문의 역사(?)는 좀 오래됐다. 두 유 노우 코리아?부터 시작해서 두 유 노우 김치? 두 유 노우 비빔밥?, 두 유 노우 세리 팍?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제 그런 객관적 인정을 구걸하는 것 같은 촌스럽고 민망한 질문을 그만 하면 안 될까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세계를 흔들어놓으며 폭발적 인기를 얻은 BTS와 칸 영화제, 골든 글로브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이 두 유 노우는 좀 졸업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그런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스스로 문화적 자존감은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을 향해 BTS는 말이야..., 아직 팰러자잇을 안 봤단 말이야?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봉준호 감독이 유럽, 북미 등지를 돌면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쓸며 시상식 전후 보여주는 수많은 인터뷰가 압권이다. 영화산업의 본고장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인터뷰를 자기 스타일로 펼치는 한국 감독의 모습을 시차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꽤 감동적이다. 글을 잘 써도 말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영화적 언어에 능해도 실제 인터뷰엔 서툴 수 있는데, 이미 질문을 알고 대답하는 사람처럼 유연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할 땐 영화 기생충과는 별도로 이런 대단한 감독의 인터뷰를 자막 없이 보는 한국인들의 자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영어 인터뷰에 능숙했던 가수 싸이의 인터뷰나, 영화 기생충의 영어자막, 그리고 이 팀의 북미 영화제 시상식 투어에 놀라운 통역 실력으로 큰 주목을 받은 샤론 최를 보면 글로벌 언어로 소통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지만,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BTS의 세계적 인기를 생각하면 문화는 언어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킬러 콘텐츠가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에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때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자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크게 높아져 그들의 수많은 인터뷰 또한 점점 볼만해져서 즐겁다. 영어 아닌 우리말로 답변하는 태도도 즐거움은 숨기지 않지만 주눅이 들지 않으며, 그 내용은 한국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 BTS는 2019년을 지나오면서 나날이 세계적인 미디어 앞에서도 슈퍼스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따로 미디어 앞에서 보여줄 모습을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여유와 즐거움, 자신감이 잘 드러난다. BTS의 팬은 아니지만, 데뷔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그들 음악이나 퍼포먼스를 듣고 봐왔다는 한 대학생은 슈퍼스타가 되어도 한 치도 무너지지 않은 퍼포먼스의 각만큼은 손뼉쳐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즐거운 여유와 세련된 자신감은 엄청난 노력으로 쌓인 내공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국내 이런저런 시상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배우 황정민의 나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었다는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된 이후, 의미 있고 느낌 있는 수상 소감을 하는 스타들이 많아졌다. 주위의 도와준 사람들 이름만 줄줄 말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이름을 빠뜨릴까 조금 긴장하는 과거의 뻔하고 식상한 수상 소감에서 탈피했다. 문화적 자산과 대중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리 문화예술계도 성장하는 모습이다. 곧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기생충의 수상 결과도 궁금하지만, 영화계 스타들의 의식 있고 멋진 수상 소감은 준비된 말이든, 즉흥적인 말이든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말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먹고 자란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유머로 접수하는 새해

새해 들어 만난 친구의 헤어스타일이 조금 바뀌었다.앞머리를 조금 잘라 내려서 이마를 살짝 가렸다.스타일에 변화를 준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미간에 살짝 앉은 팔자주름을 가리는 효과에 가장 만족한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짓는 평상시 어떤 표정이 이런 주름을 만드는 것 같은데 심각하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짜증스러운 일상이 많았던 건가 하면서 웃는다. 웃으니 미간 주름이 진짜 안 보인다.친구는 의식적으로 좀 긍정적이고 즐거운 생각을 하며 괜히 슬슬 웃어야겠다고 한다.친구의 선택이 달라진 헤어스타일보다 어쩐지 더 효과가 좋을 것 같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고 했다.웃을 일이 있어야만 웃기보다 자꾸 웃으면 웃을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말일 것이다.웃을 일이 없으면 못 웃는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말이다.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말도 남겼다. 명랑해지는 첫 번째 비결은 명랑한 척 행동하는 것이다.자기 마음을 명랑하게 갖고 명랑한 척하다 보면 명랑해진다는 것이다.이것을 두고가식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얻고 싶은 결과를 먼저 행동함으로써 정말 그렇게 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얻고 싶은 결과를 위해서 미리 웃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이 베트남인이다.의도를 알기 전엔 이들의 웃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날 수 있다.베트남 사람들은 미안한 일이 생기면 대체로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사과하면서 웃는다?우리 상식으론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과할 때 웃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사과할 때 웃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만큼이라고 보면 될까.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사업하거나 일을 하는데 이런 문화를 모르면 지금 나는 화가 나있는데웃어? 하는 마음이 되면서 더 화가 난다고 한다.한국 사람들끼리라면 감정이 상해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완전히 반대로 상황을 생각한다.다른 문화를 가지는 것이다.실수나 잘못이 기분이 나쁜 상황이지만 그래도 웃어야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또 본인의 감정도 중요하기 때문에,웃음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해주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배려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즉 웃음을 통해 원활하게 일을 풀어나감으로써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얻고자 하는 결과를 위해서 웃는 건데,생각해보면 이와 맥이 좀 통하는 옛말이 우리에게도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웃는 얼굴의 힘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눈이나 입이 웃는 얼굴인 사람들이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직장에서도 나를 화나게 한 동료나 후배 중에 넉살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은 오래 미워할 수 없다.화를 내다가도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고 만다. 자주 지각을 하는 부하에게 상사는 어느 날 마음먹고 그 문제로 호통을 쳤다고 한다. 자넨 도대체 시간관념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했더니 부하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과장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근무시간에 시계 보지 말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르다 보니 집에서도 시계를 안 보게 됐거든요.말도 안 되는 변명이지만 야단치던 사람조차 어이없어 웃게 하는 애교와 넉살이 들어 있다. 물론 이 안에는 인간적인 신뢰가 기본으로 담고 있다. 자주 웃고 농담을 나누며 상대방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머를 잘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다.그런 마음의 깊은 곳에는 인생과 세상을 너무 심각하게만 바라보지 않는 자유롭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있기 마련이다.다른 사람의 유머를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자신이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잘 전하는 훈련을 자꾸 해보자.가족이나 친구같이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보자.안 웃기다,썰렁하다는 반응이 와도 물러서지 말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면서 유머를 계속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어느 순간 당신의 유머를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때가 올 것이다.그리고 당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금지된 일은 아닐 텐데 클래식계의 마에스트로 하면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래서 그녀가 지휘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어느새 눈앞에 안 보이니 잊고 있었다. 지난달 창단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자 장한나는 한국에 나타났다. 무엇보다, 첼로 신동 장한나일 때 그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이 지휘자의 인터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첼로가 아닌 지휘봉을 잡은 이유는, 첼로라는 악기를 통해 현미경으로 큰 음악 세계를 보다가 자기 시야가 너무 좁아지는 것 같아 정말 위대한 교향곡을 통해 음악을 망원경으로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비유이고 이유다. 망원경으로 보면 대상에 대해 디테일한 인식은 떨어질 수 있다. 나무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는 없지만, 숲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무만 볼 땐 숲이나 산 모양이 어떤지 알 수 없고, 나무가 많은 쪽은 어디고 없는 쪽이 어딘지, 그래서 나무 식재가 더 필요한 곳은 없는지, 깊은 숲이라면 어느 쪽으로 들어가서 어디로 길을 잡아야 다시 숲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이런 중요한 것을 알 수 없다. 전체를 보는 가운데 본질과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 저런 것까지 알고 있나 싶게 학습 내용 세세한 것을 다 알고 시험을 치는 사람과 세세한 건 다 넘어가고 핵심만 요약 정리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평상시 1등을 놓치지 않지만 정작 중요한 시험에선 좌절한다. 후자는 그냥 상위권을 대강 유지하면서 시험엔 합격한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내용은 누가 더 머리가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디테일에 초점을 두는 두뇌와 핵심에 초점을 두는 두뇌를 말하는 것이다. 핵심, 즉 요지나 요점에 대한 민감성과 통찰은 공부뿐만 아니라 일하는 능력에서도 남달라진다.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핵심을 꿰뚫어보는 힘인 통찰력은 누구나 갖고 싶은 능력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것을 넘어 핵심에 접근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통찰력은 타고나기보다 의지를 갖추고 후천적인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지적 능력에 가깝다. 지식을 얻는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뭔가 관찰하고, 분석하고, 재해석하고, 추론하고, 기억하는 가운데 번득이는 영감을 잡게 된다. 여기서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대상에게 집중하여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이나 고민을 읽어내려 하고 읽어낸 것을 해결해주려고 온 에너지를 모으고 몰입하다 보면 한순간 문제의 본질과 핵심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통찰력이다. 이 통찰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곳이 혁신의 현장이다. 사람을 마음을 흔든 세상의 모든 히트상품, 혁신적인 제품, 감동의 서비스는 이런 통찰의 프로세스를 거쳐 탄생한다. 오늘의 장한나를 있게 한 스승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11세 최연소자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한 어린 그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 달에 4번 이상 연주하지 않기. 음악 안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초등학교와 중학교 잘 다니기. 음악 신동으로서의 삶이 아닌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도록 한 스승의 주문이 바로 세상과 일상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음악에 대한 더 깊은 애정과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건 아닐까. 그에 부응하듯 음대가 아닌 하버드대 철학과로 진학한 후 교향곡을 공부한 그녀의 여정은 미래의 거장 마에스트로 장을 미리 보는 듯하다. 지휘자 장한나가 음악에 대해 그러하듯,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공부든 일이든 지금 하는 일에 애정과 정성이 더해질 때 삶도 변화한다.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향수의 잠재력

추억이나 향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이 지긋한 특정 세대의 전유물 같은 단어였다. 살아온 날이 어느 순간 뒤돌아봐 질 때나 그 즈음의 나이에서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련해지고 그리운 감정이 막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기억은 기억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화하면서 자주 왜곡된다. 옛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맞네 틀리네 하며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추억을 떠올리는 자리에선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부질없다. 그리운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지난달 23일엔 추억 소환으로 엄청난 역사를 쓴 클라우드 펀딩이 있었다. 그것도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가 해냈다. 15년 전에 TV에서 방영된 추억의 애니메이션 OST 발매에 한 달 동안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26억여 원의 펀딩을 성공시켰다. 애초 이 펀딩의 목표액은 3천300만 원이었으나 모금액은 이를 완전히 압도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에 앞서 이화여대는 봄 축제 때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 목소리를 낸 성우를 초대했는데, 테마곡 후렴구를 부를 때 함께 한 학생들의 떼창 영상은 지금도 회자된다. 90년대 생의 화력을 제대로 보여준 이 사건은 기성세대 시선에선 충격일 수 있다. 애들이 미래를 보며 살아야지 뭘 얼마나 살았다고 불과 15년 전 추억에 돈을 쓸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추억은 어느 세대에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청년세대의 팍팍한 현실은 부모님 슬하에서 걱정 없이 누렸던 어린 시절의 문화 콘텐츠가 너무나 아련하고 좋은 것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다 보면 잠시 그때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상반기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4를 보며 울었다는 20대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학생도 이 영화 오프닝 때부터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끝날 때는 더 울었다고 고백했다. 주인공 우디, 버즈와 함께 커온 느낌으로 영화를 본 세대는 암묵적으로 이 영화가 토이스토리의 마지막 시리즈라고 생각하면서 더 애착과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정들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그 마음은 꼭 슬픈 장면이 아니라도 충분히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실 향수는 보편적인 정서다. 그 시대의 디테일한 재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이 보편적 정서에 기대어 있다. 부모 세대는 부모 세대대로, 자식 세대는 자식 세대대로 같은 시대를 공유하면서 공감의 교집합을 찾아내면서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복고, 향수, 추억을 자극하는 그 모든 것들이 문화예술 콘텐츠가 될 수 있고 그 잠재력은 대단히 크다. 소위 밀레니얼세대, Z세대라고 부르는 젊은 세대가 얼마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지 안다면, 구매력이 커진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는 일이 필요하다. SNS나 펀딩 플랫폼을 살피는 것은 지금의 트렌드와 2ㆍ30대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서 마케팅하고 펀딩을 성공시키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위에 가까이 있는 그들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말의 주도권을 내주고 질문하고 경청해야 한다. 요즘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잘 모르겠다는 20대 중반으로 가는 대학생도 10대들과 세대 차이를 느낀다. 어느 시대나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못마땅함은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준비부터 해야 한다. 앞서 말한 깊숙이 있는 그들만의 추억 같은 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콘텐츠가 보이고 더 나아가 비즈니스 아이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전미옥 칼럼] 문맹률과 문해력

명문(名文)은 그 글을 쓴 시대를 건너와 오늘날에도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엔 지금 한층 가슴 뻐근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의 소원대로 우리 문화의 힘이 지금처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사로잡은 때는 일찍이 없었다. 한국어는 전 세계인들에게 오늘날 가장 배우고 싶은 언어로 부상했고, 한국어와 한국학 강좌를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빠르게 개설하고 있다. 463년 전통의 영국 에든버러 대학은 내년부터 한국학을 개설한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능력시험 토픽(TOPIK)은 1997년에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4개국에서 시작했으나 현재 이 시험은 71개국에서 치러지며, 20년 만에 108배가 늘었다. 유네스코는 지난달 세계 문해의 날을 맞아,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시상하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알제리 국립 성인문해교육청과 세네갈 방직개발회사에게 안겼다.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은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이기 때문에 문맹을 없애는 최고의 글자임을 국제기구가 공인한 것이다. 전 세계 3천 개의 언어 중 문자를 사용하는 국가는 겨우 80개국이다. 유엔은 나머지 문자가 없는 국가들에 한글을 지정하여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한글은 한류와 더불어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가 되었다. 우수하지만 배우기 쉬운 원리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아주 낮다는 건 잘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읽고 쓰는 일엔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이와 반대로 문해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에 속하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문맹률은 문자 해독이 안 되는 사람의 비율이며, 문해율은 글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문맹률은 낮을수록 좋지만, 문해율은 높을수록 좋다. 문서 독해 능력을 비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100명 중 10명인 432만 명은 실질 문맹 상태라고 한다. 우린 방송에서 우리보다도 어휘력이 뛰어난 외국인들의 말하기에 놀란다. 속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쓰는 건 물론이고 한국인만이 알 수 있는 메타포가 있는 말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여러 나라 외국인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토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미국인이지만 웬만한 한국인 뺨치는 고급 어휘를 구사한다. 웬만한 책은 다 읽고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관광객이든 유학생이든 정말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있고 빠르게 한국어 구사 능력을 높이고 있다. 나라 안팎에 한국학에 깊이 심취하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다가 외국인에게 우리 말뜻을 물어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문해력은 성인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능력이다. 글을 읽고 쓰는 기초 능력과 글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학습의 이해력이 높아지는데,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보다 월등히 문해력이 높은 것이 아니라고 점은 강단에서 여실히 느낀다. 실제 책읽기와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도 많다. 어릴 때부터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인터넷 글이나 미디어 중심의 정보 습득을 위한 읽기만이 전부인 일상이 계속된다면 이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학교도 개인도 좀 더 진지하게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실내든 실외든 어디 앉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하루 30분 책 읽는 시간을 조금 더 내야겠다. 스마트폰은 잠시 잠재우고.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김기흥 칼럼] 싱가포르 디지털 은행 추진이 주는 시사점

지난달에 싱가포르의 인터넷 전문은행 실태를 조사를 위해 싱가포르 통화금융청(MAS)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통화금융청(MAS)은 지난 5월에 싱가포르 은행 부문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디지털 은행 플레이어에 대해 최대 5개의 새로운 은행 라이센스를 발급하는 것을 발표했다. 싱가포르는 새로운 경쟁 모델과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 신규 플레이어와 기존 플레이어 간의 경쟁, 비즈니스 및 개인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을 허용하고 금융 혁신을 촉진하여 아시아의 제1 금융허브가 되고자 한다. 싱가포르 통화 금융청은 새로운 디지털 뱅크 라이센스를 신청하는 혁신적인 가치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를 원한다. MAS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싱가포르인이 관리하는 회사에 최대 2개의 완전한 디지털 은행과 3개의 디지털 도매 은행 라이센스를 발급할 계획이다. 외국 기업은 현지 은행과 합작 투자를 하는 경우에 완전한 은행 라이센스를 취득 할 수 있으며 합작 투자 회사는 본사 및 통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수한 인터넷 은행 신청 지원자를 확보하고자 MAS는 가치 있는 파괴적인 경쟁이 장기적인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저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금자를 보호하고, 테스트 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의 위험을 완화하고, 실패한 경우 금융 시스템의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완전한(full) 디지털 은행이 소규모 예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MAS는 예금자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2단계 프로세스를 통해 허용하고 가능한 활동을 단계적으로 수행하며 예금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완전한 디지털 뱅크는 비즈니스 모델 및 내부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 제한된 디지털 뱅크로 시작하여 점차 완전한 기능을 갖춘 뱅크가 될 것이다. 2019년 싱가포르는 새로운 디지털 은행에 대한 진보적인 개방으로 은행 부문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은행 자유화의 새로운 단계는 다양성을 추가하고 금융의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은행 시스템의 탄력성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10월에 제3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인가를 계획하고 있다. 싱가포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추진이 우리나라 인터넷 전문은행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터넷 전문은행의 성공은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이다. 일반 시중은행과 차별화된 온라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영업 손실을 감수하면서 신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둘째로, 인터넷 전문은행의 추가 진입으로 차별화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 현재 설립된 카카오와 케이 뱅크는 예대마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차별화된 고객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출현이 요구된다. 셋째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인터넷 전문은행 출현을 위하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유통과 같은 네트워크 기업도 인터넷 은행에 참여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여 성공할 수 있다. 실례로서 지난 5월에 홍콩에서 유통과 금융 등 8개 분야의 산업군을 주도하는 8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인가를 내주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금산 분리 규제에 따른 모기업 연계 영업이 어려워 수익기반이 취약하다. 과도하게 엄격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로 신규 자본 확충이 어렵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전문은행 하기가 어려워서 네이버, 인터파크, NHN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정보통신 기술 기업들이 제3인터넷 전문은행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하려고 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산업융합형 인터넷 전문은행이 IT산업과 은행을 결합으로 시너지효과를 내어, 금융권에서 메기역할을 하면서 금융혁신을 하기 위하여서는 규제 완화 혁신이 필수적이다. 김기흥 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전미옥 칼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집안의 책상 주변 서랍 등을 정리하다보니 솔솔 나오는 물건들이 있다. 어디선가 산 그림이나 사진엽서, 디자인이 돋보이는 편지지와 봉투, 혹은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예쁜 카드. 다 모아보니 꽤 된다. 필기구 통을 정리하다보니 손글씨 자주 안 쓰는데 무슨 펜은 그렇게 다채롭게 많은지 놀라게 된다. 어디서 받은 것들도 있지만 색깔별로 직접 산 것도 꽤 된다. 휴대전화나 태블릿PC, 노트북 등에 글을 쓰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으면서도 아날로그 기록에 필요한 도구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정리해 다시 넣어둘 일이 아니라 정말 이것들을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을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 속엔 편지에 대한 노래가 제법 있다. 당장 이동원의 가을 편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떠오른다. 무더위가 일시 정지시킨 것 같은 감성과 정서가 아침저녁 소슬한 바람과 함께 봉인해제되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에 띄워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요즘은 모든 소식을 모바일 메신저로 주고받는데,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이모티콘들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다양해졌다. 문자를 하지 않을 때라도 메신저 프로필과 SNS만 살펴도 연인의 생활을 대체로 읽을 수 있다는 젊은 세대 가운데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과 새로움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땐 손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그래도 손 편지의 감동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마음이 없으면 글을 쓰기도,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수고를 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실시간으로 물어도 되는 안부를 굳이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편지지 앞에 앉으면 같은 듯해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조금 더 끄집어내게 되는데 이게 불가사의한 손 편지의 힘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부인은 오랜 유배생활 중에 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혼인할 때 입었던 다홍치마를 보냄으로써 표현했는데, 선생은 부인의 색 바랜 담황색 치마폭을 잘라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막내아이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후, 선생 자신이 아비라는 것을 잊고, 슬퍼하는 너희 어머니를 위해 슬퍼한다면서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라 전한다. 이런 마음은 얼굴을 본다고 쉽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편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말까지는 직접 얼굴 보며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의 상태를 모두 말로 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말을 적게 하는 게 미덕이었던 조선시대다. 하지만 조선시대라도 글로는 할 수 있다. 사랑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용기를 내게 해준다. 말로는 하기 어려워도 글로 쓰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쓸 수 있다. 얼굴을 보고 말하는 대화나, 실시간 즉답이 오고가는 문자 대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사고의 정리가 가능하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다 쓸 수 있고 또 다시 읽어보면서 고칠 수도 있다. 이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할 방법은 많지 않다. 기업들의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시즌이다.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자기소개서 쓰느라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보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고 자기소개서를 보기 싫어질 수 있다. 이것이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과 어떤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면 펄쩍 뛸지 모르지만, 정말 있다. 대상만 다를 뿐, 구애든 구직이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고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설득하는 글쓰기다. 자기소개서는 인사담당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글이다. 자기소개서가 조금이라도 수월해질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를 내 편으로 만들고 설득하는 과정이 닮아 있는 연애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권하고 싶다. 또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이 진행하는 대한민국, 편지로 하나 되다라는 편지쓰기 공모전도 눈여겨보자. 편지의 힘을 빌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보는 것이다. 젊은 그대! 이 가을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 편지를 써보자.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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