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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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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은 아닐 텐데 클래식계의 마에스트로 하면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래서 ‘그녀’가 지휘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어느새 눈앞에 안 보이니 잊고 있었다. 지난달 창단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자 장한나는 한국에 나타났다. 무엇보다, ‘첼로 신동’ 장한나일 때 그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이 지휘자의 인터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첼로가 아닌 지휘봉을 잡은 이유는, 첼로라는 악기를 통해 현미경으로 큰 음악 세계를 보다가 자기 시야가 너무 좁아지는 것 같아 정말 위대한 교향곡을 통해 음악을 망원경으로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비유이고 이유다.

망원경으로 보면 대상에 대해 디테일한 인식은 떨어질 수 있다. 나무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는 없지만, 숲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무만 볼 땐 숲이나 산 모양이 어떤지 알 수 없고, 나무가 많은 쪽은 어디고 없는 쪽이 어딘지, 그래서 나무 식재가 더 필요한 곳은 없는지, 깊은 숲이라면 어느 쪽으로 들어가서 어디로 길을 잡아야 다시 숲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이런 중요한 것을 알 수 없다. 전체를 보는 가운데 본질과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 저런 것까지 알고 있나 싶게 학습 내용 세세한 것을 다 알고 시험을 치는 사람과 세세한 건 다 넘어가고 핵심만 요약 정리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평상시 1등을 놓치지 않지만 정작 중요한 시험에선 좌절한다. 후자는 그냥 상위권을 대강 유지하면서 시험엔 합격한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내용은 누가 더 머리가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디테일에 초점을 두는 두뇌와 핵심에 초점을 두는 두뇌를 말하는 것이다. 핵심, 즉 요지나 요점에 대한 민감성과 통찰은 공부뿐만 아니라 일하는 능력에서도 남달라진다.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이나 핵심을 꿰뚫어보는 힘인 통찰력은 누구나 갖고 싶은 능력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것을 넘어 핵심에 접근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통찰력은 타고나기보다 의지를 갖추고 후천적인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지적 능력에 가깝다. 지식을 얻는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뭔가 관찰하고, 분석하고, 재해석하고, 추론하고, 기억하는 가운데 번득이는 영감을 잡게 된다. 여기서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대상에게 집중하여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이나 고민을 읽어내려 하고 읽어낸 것을 해결해주려고 온 에너지를 모으고 몰입하다 보면 한순간 문제의 본질과 핵심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통찰력이다. 이 통찰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곳이 혁신의 현장이다. 사람을 마음을 흔든 세상의 모든 히트상품, 혁신적인 제품, 감동의 서비스는 이런 통찰의 프로세스를 거쳐 탄생한다.

오늘의 장한나를 있게 한 스승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11세 최연소자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한 어린 그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 달에 4번 이상 연주하지 않기. 음악 안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초등학교와 중학교 잘 다니기’. 음악 신동으로서의 삶이 아닌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도록 한 스승의 주문이 바로 세상과 일상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음악에 대한 더 깊은 애정과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건 아닐까. 그에 부응하듯 음대가 아닌 하버드대 철학과로 진학한 후 교향곡을 공부한 그녀의 여정은 미래의 거장 ‘마에스트로 장’을 미리 보는 듯하다. 지휘자 장한나가 음악에 대해 그러하듯,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공부든 일이든 지금 하는 일에 애정과 정성이 더해질 때 삶도 변화한다.

전미옥 중부대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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