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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칼럼] 외교부재와 내치무력

한반도 상황을 빌미 삼아 강대국들간의 관계는 지금 요동치고 있다. 이 같은 불길한 조짐은 최근 미일방위협정개정으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제 일본은 유사시 세계 어느 곳에나 미군을 후방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전쟁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전작권을 위임받은 미국이 요청한다면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곤혹스럽고 수치스럽다. 21세기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은 아시아재균형정책이다. 미국을 여러모로 위협하는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견제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의 힘을 키워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안보 아웃소싱이다. 이 같은 미일 움직임에 러시아와 중국은 공조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에 러시아는 중국 회귀로 대응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불길한 조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있는 푸틴은 중국에게 절박하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작년 봄 중국은 4천억 불의 러시아 가스를 30년간 적절한 가격에 구입하기로 했다. 아재 중국은 러시아에게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4월 30일 중국 국방부는 이달 중 지중해에서 러시아와 합동군사 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동구와 가까운 지중해에서 두 나라가 무력시위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일이 세계 어디 곳에서나 함께 대륙세력을 위협한다면, 대륙세력도 해양패권국과 맞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정말 세계는 신냉전대결장으로 변질될 것인가. 바로 이 같은 위험한 상황이 얄궂게도 한반도의 불안한 상황을 빌미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불안케하고 분노케 한다. 한 세기 전 우리는 힘이 없었다. 아니 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해양패권국의 요구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한미동맹체제 아래서 순종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날 적성국이었던 중국이 지금 한국에게는 최대 경제동반자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중국은 당당히 G2로 굴기했다. 그래서 한국은 G1과 G2 사이에서 좌면우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이 끈질기고 교묘하게 우리를 미사일방어시스템에 가입시키려고 압력을 넣고 있다. 여기에 빌미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북핵 문제다.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 엠디시스템인데, 빌미는 북핵에 대한 억지력이다. 이번 미일방위협력지침개정도 북한핵위협 때문이라고 아베는 지적하지 않았던가. 이런 때일수록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을 바탕한 당당한 외교력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외교력은 초본레토릭의 깃발로만 나부끼고 있는 것 같다. 외교력이 절박한 여러 상황에서 그것은 부재했다. 지난달 반둥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라는 역사적 국제 잔치가 펼쳐졌다. 전세계에서 국가수반만 32명 참석했다. 미국 국빈방문 앞둔 아베까지도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대화했다. 제3세계에서마저 우리의 외교력은 행방을 감춘 듯하다. 특히 시진핑 아베 대화 모습에서 우리의 외교력 실종을 나는 아프게 느꼈다. 나에게 충격적인 것은 남아공 대통령이 국내참사로 고통 겪는 자국민을 위해 돌연 불참선언한 사실이었다. 내치는 외치의 기초임을 나는 남아공 대통령의 불참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하필 박 대통령이 중남미로 황망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세월호 아픔이 더욱 깊어질 것임을 느꼈다. 내치의 무능과 외치의 부재를 통감하면서 이런 때야말로 한반도 평화외교와 내치가 절박하다. 세계패권국들이 더 이상 한반도 상황을 빌미로 세계평화를 저해하고 갑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 개선책이 절박하게 요청된다. 정쟁으로 소일하는 한국정치인들과 불통 무능의 청와대는 정신차려야 할 것이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과연 일본이 한국보다 더 민주국가인가

얼마 전 아베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화가 났는지 뜬금없이 한국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같은 투정섞인 오만한 발언에서 나는 일본이 과연 우리보다 더 민주적 국가인지를 되묻고 싶었다. 그리고 과연 일본은 문화선진국인지를 묻고 싶다. 1945년 이전 일본은 한 마디로 유일한 황색제국주의 국가였다.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을 식민지로 삼켰다. 10년 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한반도를 꿀꺽 삼키려했다.(1905년 을사늑약) 이때 미국과의 밀약으로 마침내 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병합했다. 그후 36년간 우리 민족은 총체적 고통을 부당하게 겪어야 했다. 우리말, 우리 성, 우리 신앙, 우리 역사 모두를 탈취당하는 수모와 아픔을 겪었다. 그렇다면 패전 후 일본은 스스로 민주국가로 우뚝섰던가? 무섭게 팽창하는 소련을 견제했던 미국의 핵안보우산 아래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 시혜조치로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의 겉옷을 입게 되었다. 미국의 옷이라 다소 헐렁했다. 그런데 화려한 이 겉옷 속의 몸통에는 한반도 병합과 만주괴뢰국 수립을 도모했던 이른바 귀태들의 피가 진하게 흘렀다. 또 흐르고 있다. 일급 전범자였던 기시노브스케의 손자인 현 총리가 매카더 체제의 평화 헌법을 뜯어고쳐, 지금 무섭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할 군사대국으로 굴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여기는 우리는 다시 한 번 일본정부의 타성적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기에 일본이 억울한 원폭피해국임을 만방에 알리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부당하게 끼친 반인륜적 범죄의 아픔은 끈질기게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는 독일의 나치와 다르기에 마땅히 다른 잣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우긴다. 황색제국주의나 백색제국주의가 모두 제3세계의 민중에 끼친 침략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다. 또 다른 한편 무섭게 굴기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베 정부는 미국과 공조하는 일에 자존심 없이 순종적이다. 그래서 재빨리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가입했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는 짐짓 거리를 두면서 미국의 기분을 맞추어주고 있다. 그래서 올해 늦봄에 아베 총리는 미합동의회에서 연설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본이 결단코 한국보다 더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밑으로부터 끈기있게 분출하는 민주시민의 뜨거운 열망으로 이뤄진 토착적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했다. 이승만 문민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가 비록 그것이 부족하고 미완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런 민주주의를 일본은 아직 쟁취하지 못했다. 더구나 419 혁명, 63 민족주의 항쟁, 긴급조치하의 끈질긴 민주화투쟁, 이른바 87시민혁명(불완전 체제이긴 하나) 그리고 광주민주시민투쟁 등을 거쳐 이룩한 값진 우리의 민주주의를 일본은 아직도 체험 못하고 있다. 지난날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안팎으로 싸워서 오늘의 일본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이 아니다. 패전의 선물로 주어진 것일 뿐이다. 패전 후 오늘까지 일본은 미국의 핵안보우산 안에서 편하게 반공 우익의 일당 독재체제를 누리고 있다. 비록 지금의 일본 집권당이 전체주의 독재정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국보수당이나 미국공화당보다 훨씬 더 평화지향적 민주정당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에 견주어 한국정치현실에서는 그간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노동운동의 희생적 투쟁으로 오늘의 민주체제를 값비싸게 성취했다. 비록 아직 갈 길은 멀고, 우리도 지난 7년간 역사 후퇴를 아프게 겪고 있으나 우리의 부족한 민주주의가 결코 오늘의 일본의 우익수구일당지배하의 민주주의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베 정부의 주장에 일리가 있긴 하다.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에 의한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일본과 한국이 공유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역지사지하고, 역지감지하면서 보다 자랑스러운 아시아의 민주국가로 우뚝 솟아야 한다. 이제 동북아시아는 동쪽 끝 극동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축이 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乙들을 능멸하는 정치 발언

최근 미국 정치를 보면 한심할 정도로 후진적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가장 성숙한 선진 정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화당 대통령 아이크(아이젠아워)는 군산복합체를 민주주의 위협으로 경계했다. 공화당 중진의원 록펠러는 대화와 협상으로 반대당과 손잡고 의회정치를 이끌었다. 그래서 양당간 교차투표가 빈번했다. 당명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투표하는 후진정치에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이런 미국정치가 신선했고 부러웠다. 그런데 지금 미국 정치는 후진하고 있다. 대통령의 법안에 보수당은 악착같이 일사분란하게 반대한다. 왜 그렇게 되었나? 미국 보수정치를 이끄는 정치인들은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교조적으로 신봉한다. 정부영향력 확대를 병적으로 혐오하면서도 시장영향력 강화는 신앙적으로 찬양한다. 그들은 시장의 갑들의 이익을 제약하는 정부규제를 악으로 본다. 갑들이 맘놓고 갑질하도록 규제를 풀 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부자감세조치를 단행한다. 이런 짓을 보다 거침없이 해내기 위해 보수언론과 결탁하여 국민을 두 부류로 짐짓 갈라놓는다. 하나는 테이커들(taker), 다른 하나는 메이커들(maker)이라고 명명했다. 메이커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생산하는 책임있는 시민이다. 반대로 테이커들은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조치에 덕을 보려는 게으른 시민들이다. 큰 정부가 자기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곤경을 책임지고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이다. 미국이 계속 부강하려면, 메이커들이 시장의 적자(適者)가 되어 작은 정부를 견인해야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분법적 국민분열책으로 재미를 보다가 2012 대선에서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참패했다. 그때 오바마 후보와 맞섰던 그는 47%에 이르는 테이커들이야말로 세금도 내지 않는 게으른 국민으로 보고 온갖 정부의 복지정책에 의존한다고 폄훼하면서 자기는 이들을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원들의 모임에서 한 이 이야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그는 졸지에 47%의 유권자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었고 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부당한 경제 불평등으로 이미 힘겹게 살아가는 다수 국민을 능멸한 언어갑질 탓으로 그는 낙선했다. 그래서 요즘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잠룡들은 매우 조심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가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얼마 전 새누리당 대표가 복지과잉론을 들고 나왔다.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선호하는 국민을 마치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처럼 폄훼했다. 한 마디로 한국적 테이커들이라고 경멸했다. 너무나 힘들기에 국가의 복지정책을 헌법정신에 따라 갈망하는 서민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지난 대선 때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역설했던 야당 후보자를 지지한 48%의 유권자들을 졸지에 공짜로 먹고 살려는 도덕적 해이자로 낙인찍은 셈이다. 그들이 얼마나 피나게 몸부림치며 살아보려고 애쓰는지를 평생 넉넉한 환경에서 포시랍게 살아온 김 대표는 태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없는 백성을 향해 그렇게 도덕적 갑질을 할 필요까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진실로 이 땅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오늘의 을들과 미생들의 아픔, 세월호 희생자들 가족의 아픔을 그렇게 비열하게 빈정대서는 안 된다. 게다가 최근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 발언이다. 아예 처음부터 이 국수는 서민과 중산층에겐 형편없이 맛이 없는 국수였다. 이것 때문에 전세값 폭등으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분노가 불어터지게 되었다. 부자감세와 서민증세로 격앙하게 된 설 민심을 대통령이 이토록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발언을 또다시 들으며, 그의 무능, 무책임, 그리고 무치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앞으로 3년이 정말 걱정스럽다. 그런데 정말 공포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이 같은 상투적 행태를 잘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며 그의 훈시를 받아 적으면서 한국적 테이커들을 지속적으로 능멸하는 집권당 지도부의 행태다. 김무성 대표의 과잉복지론과 도덕적 해이론을 들으면서 롬니스럽다고 여기기엔 우리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 내시스럽기 때문이다. 롬니의 47% 경멸 발언이 김 대표의 48% 폄훼 발언과 겹쳐 떠오른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서 오늘의 48%, 아니 99%는 결코 게으른 테이커들이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정말 혐오스러운 테이커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세습자본으로 공짜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게으른 갑질자들 아니겠는가!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정말 창조정책이 나올 수 있나

1960년대 초 미국대학원에서 죽기살기로 공부할 때였다. 현대사회의 관료제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서 이 주제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논의들을 내 나름대로 명쾌하게 정리해서 자신있게 발표했다. 서울대학 같으면 교수님께서 참 잘 요약 정리했다고 칭찬할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발표 끝나자 미국 교수님의 칭찬은커녕 나무라듯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자네의 견해는 무엇인가? 대가들의 논의는 잘 정리했으나 자네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 나는 당황했다. 서울대학에서 그렇게 배웠느냐고 따지듯 물으셨다. 이때 나는 한국 교육이 학습자의 창의력을 북돋아주는 교육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교과서를 절대표준으로 신앙하기에 그 내용을 암기시키는 비창조교육임을 새삼 깨닫고 부끄러웠다. 암기교육에는 창조적 도전이 들어설 공간이 아예 없다. 이런 교육에서는 교과서가 종교적 경전처럼 여겨지기에 감히 그 표준적 진리에 창조적 토를 달 수 없다. 그저 그대로 암송해야 한다. 이같은 교육문화에서는 루터, 뉴튼, 코페르니쿠스,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같은 걸출한 창발적 인물이 나올 수 없다. 대신 요령과 꼼수, 잔머리 굴리기와 위선적 처세에 뛰어난 인간들이 권력과 금력의 갑이 된다. 그들의 갑질로 많은 을들이 외로워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14년 전, 나는 교육부총리로 부름을 받았다. 이때 한국 교육은 반드시 공공적 인물, 온정적 인재, 창발적 인간을 가르쳐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교육 수준에서는 약자들과 동고하는 온정적 인품을 교육시키고, 고등교육 수준에서는 창조적 발상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새 것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공교육다워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새삼 확인한 교육현실은 암기력이 출중해야 최고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교육풍토에서는 비정한 편법주의적 인간들이 사회정치적 표준세력이 되고, 경제적 적자(適者)로 군림하게 된다는 비극에 나는 주목했다. 그래서 학벌타파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려 했다. 국가 엘리트 상층의 압도적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현실을 아프게 감지했기 때문에 더욱 학벌의 폐해를 극복하고 싶었다. 못된 갑질하는 인간들이 학벌로 양산된다면, 이 땅에 을, 병, 정(丁) 들의 아픔은 그만큼 억울하게 확대확산될 것 아니겠는가. 이들은 비표준 비주류로서 민주주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구조적 음지에서 불안해하고 불행해질 것 아니겠는가. 마침 지난 연말에 둘째 손녀가 귀국해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손녀는 엄마로부터 줄곧 홈스쿨 교육을 받았는데, 세계 명문대학으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한국에선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첫 학기를 마칠 때까지 나는 심히 걱정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조직에 들어갔으니 적응을 제대로 해내는지 염려되었다. 그래서 손녀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엄마의 자기주도적 가르침에 익숙해졌기에 대학 첫 학기를 잘 마쳤어요. 학생들이 어렵다는 철학과목을 가장 즐겼거든요. 교수님과의 대화가 신났어요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놀랐고 감사했다. 홈스쿨에서 인격 교육, 창의교육, 학습자 주도 교육을 모두 잘 배웠던 손녀가 대견스러웠다. 그의 스승이었던 내 딸을 존경의 눈으로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창조가치를 매우 강조한다. 창조경제, 심지어 창조국방까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진정한 창조력은 자기주도적 과감한 사고와 실험정신, 자유로운 발상과 거침없는 소통에서만 꽃핀다는 진리를 국무위원과 청와대 간부들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대통령의 글읽는 듯한 훈시를 일일이 받아 적는 그들의 딱한 모습에서 나는 아무런 창조력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엘리트들의 비창조적 행태에서 어찌 창조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을미년, 乙들의 소망

120년전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부패한 갑들이 침략적 외세의 갑들과 결탁하여 그 혁명을 좌절시켰다. 그 후 한반도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꼭 10년 뒤인 1904년 갑신년에는 친일 매국노들의 갑질로 외교권이 강탈당했고, 5년 후 마침내 민족과 국가는 일본 식민지로 떨어졌다. 이때 이완용 등의 갑질로 경술국치를 겪게 되었고, 36년간의 긴 고통이 우리민족을 괴롭혔다. 1945년 을유년 8월에 이 땅의 을들은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식민지 시대의 고통보다 더 심한 민족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열정 3년과 냉정 60여년을 겪으며 이제 2015년 을미년을 맞고 있다. 을유년에서 을미년에 이르는 70년간 이 땅 을들의 고통은 참으로 억울하고 부당했다. 그래서 올해를 맞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그만큼 우리들의 소망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을미년은 문자 그대로 을들에게는 희망과 용기의 해가 되어야 하며, 미생(未生)들과 삼포세대에겐 희망의 실현으로 기뻐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들의 힘이 더욱 조직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갑질하는 이 땅의 표준세력과 적자(適者)세력들의 횡포는 사라져야 한다. 을만이 아니라 병(丙)과 정(丁) 역시 사람다운 존엄한 대접을 받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착한 꼴찌들인 선정이 나라의 주인으로 늠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개혁이 꼭 이뤄져야 한다. 이런 소망을 가슴 깊이 담으면서 지난 갑오년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비극에서 드러난 갑들의 탐욕과 그들의 무능이 을미년에도 지속하는 한 우리의 오늘은 계속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우리의 내일은 더욱 절망적인 위협이 될 터이다. 이 땅의 갑들이 정부조직이나 행정체계 개편을 통한, 이른 바 국가개조만으로 그 못된 갑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 잘못된 관례를 손보는 것만으로, 법률체계 한 두 개 바꾸는 일로 갑질이 줄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편법주의적 성장정책, 신자유주의적 큰시장정책, 군사권위주의적 큰 정부 정책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못된 갑질은 줄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힘은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한에서 커져야 하고, 시장의 그 힘은 공정거래를 담보해 내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공권력이 을에게는 무섭고, 갑에게는 아첨할 때 그 국가의 힘은 가차 없이 제한되어야 한다. 시장의 적자세력이 약자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할 때, 국가는 그들에게 가차 없는 규제를 해야 한다. 무전유죄의 현실이 강화되는 비극은 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재벌들의 사면조치는 그들의 갑질을 촉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 한강의 기적을 계속 예찬하는 일은 을들과 정들의 힘들었던 수고를 업신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을미년에는 정부의 공공성과 시장의 공정성이 파격적으로 신장되어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을미년은 국제적으로 을로 취급당해 억울하게 분단된 우리민족에게 평화가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 되는 해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단호한 주장 그대로 올해는 한반도가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간 남북한 관계악화로 정치적 이득을 챙겨온 이 땅의 이념적 갑들이 더 이상 그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갑질횡포를 스스로 그만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념적 갑질, 메카시적 공격이 이 땅의 을들과 정들의 고통을 너무 심화 확대시켜 왔기 때문이다. 착한 꼴찌인 선정들이 진정 해방과 광복을 누릴 수 있는 통일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테면, 남녘의 중소기업들이 북녘의 인프라구축에 신나게 참여하여 남북 모두가 상승하고 상생하는 평화통일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미국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려는 우리들의 평화결의에 갑질하듯 심술부리고 있으나 우리는 의연하게 평화선진국의 민주저력을 보여 주면서 한반도 평화를 통한 동북아시아의 번영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것이 을미년 을들의 꿈이요, 또한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2014년은 세월호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갑오년도 저물고 있다. 1910년은 한일병탄의 슬픈해다. 1919년은 3.1독립운동의 해다. 1945년은 껍데기 해방과 가슴 아픈 민족분단의 해다. 1988년은 올림픽의 해다. 그렇다면 2014년은 무슨 해로 기억될까?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참사가 단순한 대형교통사고라면 역사에 길이 그리고 깊이 인각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는 대연각이나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한 대형사고는 효율성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고, 기술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세월호는 정당성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심각한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국가와 시장의 존재이유를 온몸으로 묻게 되었다. 배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시장의 갑들과 국가의 갑들이 힘모아 흉칙한 갑질을 해댄 것임이 드러났다. 그 억울한 죽음은 관피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배와 함께 시커먼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수백명의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는 헌법34조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음도 확인했다. 지극히 무능한 정부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간 온갖 정치적 비리와 비행을 저지르는 일에는 그토록 민첩하게 행동했던 국가의 갑들이 국민생명을 몰살로부터 구해내는 일에는 그토록 무력하고 무능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참상을 애타게 지켜봤던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 있는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가 과연 민주국가인가라는 질문이 그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러기에 세월호는 역사분수령적 사건이요, 결코 세월흐름으로 잊혀질 수 없는 심각한 역사적 사건이다. 1912년 4월 영국의 세계 최대, 최고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1천500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침몰했다. 이것도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화려한 대영제국의 배가 얼마나 효율적이면서도 생산적일 수 있냐를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던 영국산업혁명의 진보적 낙관주의가 침몰하고만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의 참사였다. 효율성의 극대화로 한국사회를 경제강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신화를 확신했던 자들이 온갖 편법을 동원한 결과로 빚어진 사건이 바로 이번 세월호사건이다. 분단 70년간 문민권위주의와 군사권위주의가 성장제일주의의 가치 아래, 국민들을 일사불란하게 일방적으로 동원하고 호도하면서 불도저식 무소통의 정치를 강행하다가 만난 참상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트라우마가 오래 기억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가의 갑들의 대응이 참으로 한심했다. 생명을 구하는데 그토록 무능했던 정부가 억울한 희생자들을 대하는 일에 그토록 무관심하거나 잔인할 수 없었다. 먼저 정부 지도층의 위선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아픔에 동고하여 일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의 진정성이 곧 드러나고 말았다. 무능한 갑들의 이 같은 유능한 연기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게다가 일부 극단 세력은 서슴치 않고 희생자들의 상처에 소금과 황산을 뿌리듯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비정한 몰상식을 묵인하거나 방조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정치권마저 여야 가릴 것 없이 헌법 34조를 무시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편을 들어 희생자들을 배상하지 않고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단 한 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가 그 무능과 책임을 진실로 통감하다면 마땅히 배상의 차원에서 희생자들을 치유해야 할 것이다. 억울한 고통이 쌓일수록, 역사분수령적 사건은 계속 터저 나오게 될 것이다. 분단 70년의 민족고통에 더하여 세월호의 국민고통이 우리를 옥죄일지라도 우리는 보다 따뜻한 민주질서가 세워질 수 있음을 지난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때야 세월호의 트라우마는 비로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2014년 세월호의 해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분단 70년을 눈앞에 두고, 그 억울함을 생각하며

두 달 안되어 2015년이 된다. 분단 70주년을 맞는다. 분단 70년은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고통을 안겨준 비정하고 비정상적인 비극의 긴 시간이다. 이 기간의 아픔을 우리는 지금 너무나 덤덤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먼저 왜 이 70년간의 분단고통이 억울한가를 짚어보자.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감격과 광복의 기쁨을 안겨준 날이 아니다. 너무나 부당한 식민지배 36년간의 고통이 그날로 끝장날 것 같지만 실은 그 고통이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고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배는 참된 해방과 광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분단의 비극으로 바로 이어졌다. 우리는 극심한 혼란기를 겪게 되었고 그 5년 후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휴전으로 그 잔인했던 전쟁은 열전상태에서 긴 냉전상태로 이행되었다. 헌데, 냉전의 아픔과 그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긴 냉전기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정치 세력은 불행하게도 친일ㆍ반공세력이기에 일제식민지배를 온전하게 청산해내지 못했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노부유끼(阿部信行)는 일본이 패망한 날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다. 오늘 일본이 패전했으나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뒤 더욱 섬뜩한 예언을 했다. 일본은 총과 대포 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놓았다. 조선이 제대로 일어서려면 백년이 걸릴 것이다. 이 저주같은 예언의 절반은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놓은 식민사관과 식민교육의 효력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식민지교육 덕택으로 한국이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보수적 사고와 신념이 지난 육칠년간 이 땅의 지배집단속에서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것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이것으로 정치민주와는 특히 경제민주화는 더욱 후퇴하고 있다. 최근 백색테러집단이었던 서북청년단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 보면, 현정권이 들어서서 역사 후퇴가 단순히 유신시대에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1945년으로 급락하는 듯하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분단은 정상적인 현실이 된다. 그 억울한 분단의 시발도 억울한 민족고통의 시작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분단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현실로 받아드리면서 오히려 분단을 더욱 공고하게 다짐으로 정치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냉전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서 일제식민지와 분단을 오히려 신의 섭리로 받아드리려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냉전과 열전의 60여년을 겪으면서 한때 주적국가였던 소련(러시아)과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화해협력국이 되었다. 또한 36년간 부당하게 우리를 억압ㆍ착취했던 일본과는 20년 만에 우방관계로 진화했다. 그런데 수천년간 같은 민족으로 살아왔던 북한과는 아직도 주적으로 중오하고 섬멸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같은 증오와 대결을 당연하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현실로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비극의 현주소다. 나는 2009년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국제동창상을 받으면서 수상연설을 한적이 있다. 그때 청중에는 김영삼 정부 때 주한미대사를 역임했던 레이니 명예총장과 카터(전 미국대통령) 센터의 핵심간부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분명히 말했다. 1945년 8월, 미국 정부의 사려깊지 못한 성급한 판단으로 한반도가 38선으로 분단되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임시정부의 의견이나 미국 내 한반도나 동아시아 전문학자들의 의견도 참고함이 없이 성급하게 결정함으로써 수천년간 한민족으로 살아온 우리가 억울하게 분단되었다고 했다. 레이니 대사는 조용히 경청해주었다. 미안해 하는 듯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억울한 분단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드문 주한미대사였다. 지금 힘이 빠진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키우려고 한다. 이런 때 일본의 극우세력과 미국의 네오콘의 공격적 반평화적 정책에 뜨거운 박수를 치고 싶은 한국의 친일수구세력의 준동이 심히 걱정된다. 내년에는 기필코 한반도 평화의 기운이 치솟아 온민족과 온국민이 해방의 감격과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도한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선제적 사랑과 폭력

57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참관하는 군사 훈련에 차출되어 한 달 이상 참으로 고된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끝내고 소대로 돌아오니 잠시 고향에 돌아온듯 한 여유를 느꼈다. 첫 일요일 아침에 사단 교회예배에 참석할 사병들은 중대 연병장에 모이라고 알려왔다. 너무 반가워 막 나가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선임 사병이 거칠게 나를 불렀다. 어이 한 일병. 변소 청소해야지 무슨 교회가려고해 나는 속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종교 자유를 일개 선임 사병이 감히 빼앗다니하고 뇌이면서 교회로 향했다. 갔다오니, 선임 사병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세 명의 졸병들이 나와 함께 기합을 받게 되었다. 변소 앞에서 선임 사병은 오른쪽부터 거칠게 곡괭이 자루로 때리기 시작했다. 맞는 졸병들은 죽는 소리를 질러댔다. 제일 끝에 서 있던 나는 세 명의 비명 소리에 겁에 질려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내 왼쪽 어깻죽지 위에 곡괭이 자루가 내리 찍었다. 얼얼했으나 예상보다 덜 아프다고 느꼈다. 겨울 솜틀 옷이 비록 다 해진 것이지만, 그 덕을 본 셈이다. 허나 졸병들의 엄살 탓이기도 했다. 과도한 엄살은 약자들의 생존 기술이다. 그것이 폭행자의 자존심을 떠받쳐 준 듯 했다. 그런데 나는 엄살을 떨 수 없었다. 자존심 탓이리라. 아프긴 했으나 견딜만하다고 느꼈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폭행자의 악을 보았다. 너희들 셋은 꺼지라.고 소리 지른 후 나에게 이를 갈 듯 대들었다. 이 새끼 웃어, 대학 다녔다고 그의 곡괭이 자루는 내 상체 곳곳에 거칠게 떨어졌다. 나는 어금니를 굳게 물고 끝내 엄살은 부리지 않았다. 그는 분이 덜 풀렸는지 밤늦게 다시 보자고 했다. 영하 20도의 겨울밤 10시경에 나는 시베리아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언덕에서 맨몸으로 그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엎드려뻗쳐 500번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나는 참으로 소중한 진실을 깨달았다. 폭력은 강한 자의 덕목이 결코 아니라는 진실, 폭력으로 남을 굴복시키려는 자는 가장 연약한 자라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폭력세력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비폭력적 우아한 저항임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이라크의 모슬 지역에는 폭력과 폭력이 발악하면서 숱한 억울한 주검들이 널브러지고 있다. 그곳에 신선한 바람이 일고 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종파를 떠나 수술해주는 인도주의 단체가 있다. 그 이름도 흥미롭다. 선제적 사랑 연대(Preemptive Love Coalition)이다. 그들은 수니파든, 시아파든, 기독교인이든 가리지 않고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치료해주고 있다. 얼마 전 천 번째 수술을 했다. 참으로 의미있게 흥미로운 것은 폭력세력들이 바로 이 선제적 사랑 실천을 제일 무서워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폭격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적 강경대응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폭력적 저항을 지속시킬 명분을 제공하면서 신참자를 충원시키는데도 도움을 주는데 반하여, 선제적 사랑 실천은 그들을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그렇다. 화해, 용서, 사랑의 선제적 실천은 항상 폭력적 악행을 원천적으로 위협한다. 그래서 예수가 이천 년 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나. 선제적 원수 사랑만이 원수를 사라지게 한다는 진리야말로 남북대결 70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가 새삼 되새겨 보아야 할 진리가 아닌가!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한완상 칼럼] 한국 군대 왜 이런가

쌀쌀하고 을씨년스럽던 1957년 서부 전선의 늦가을이었다. 허기진 내 배는 밥을 달라고 꼬르륵 거렸다. 모범 사단이었던 28사단에서 일등병으로 절망을 씹고 있을 때였다. 새벽 같이 일어나 한 시간 가량 나무하러 인근 야산을 헤매다가 소대에 돌아와, 희멀건 된장국에 맥없이 흩어진 것 같은 밥을 막 먹으려는 순간,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중대 연병장에 계급별로 집합하라고 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수백 명을 자기 실력으로 죽였다고 평소 자랑했던 중대장이 호랑이같은 얼굴로 사병들에게 훈시했다. 며칠 후 상부에서 감사단이 내려와 여러 가지를 물을 것이라고 했다. 월급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고 했다. 부대 운영에 관해 불만이 있는 지도 묻는다고 했다. 이 모든 것에 잘 대비하여 감사를 탈 없이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급여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계급별로 줄을 세워 선임 사병의 선창에 따라 계급별 급여 액수를 복창시켰다. 나는 일등별 월급 ○○환을 허기진 배를 안고 큰 소리로 외쳐야만 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급여를 마치 꼬박 꼬박 받은 것처럼 소리 질러대는 내 몰골이 처량하고 처참했다. 사병들의 급여를 착취했던 군 간부들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늦가을 하늘을 향해 소리질러대는 내 모습에 나는 또한 분개했다. 1957년 나는 서울대학교 3학년 한 학기를 마치자 징집영장을 받았다. 무슨 연고로 이승만 정권이 대학 재학생들을 징집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한국전 후 춥고 배고플 때라, 대학에는 반정부활동에 몸과 마음을 던진 학생들이 없을 때였다. 우리들은 까뮈의 문학적 상상력에,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에 심취되었다. 부패한 정부가 대학생들의 잠재적 이상주의 성향이나 자유로운 기상을 선제적으로 꺾어놓으려고 한 조치일 수는 있었다. 여하튼 학보병(대학생 징집자)에게 군대 생활은 의도적으로 가혹했다. 밥이라도 충분히 먹이면서 나무 마련하는 일이나, 숯 굽는 일이나, 군사 훈련을 시켜주길 바랐다. 그런데 배를 굶기면서 군부의 부패를 은혜하기 위해 거짓 학습시키는 그 뻔뻔스러움에 나는 치를 떨었다. 1951년 저 국민방위군사건의 참상을 잠시 기억에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것이 정말 대한민국의 군대인가. 이 짓은 저 소련의 굴락에서나 할 짓 아닌가. 아니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나 있을 법한 일 아닌가!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나의 군 생활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계기였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삶 전체를 철저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체제와는 결연하게 맞서 싸우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 민주헌법이 보장하는 인간 기본권을 권력이 특수 상황을 빙자하여 스멀스멀 교활하게 훼손하는 그 어떤 국가 폭력도 민주 시민들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나는 하게 되었다. 서울대 교정에서 배울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가치교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957년이 아니다. 정치적 중진국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한국 군부는 어떠한가? 온갖 군의 비리와 폭행, 특히 사병들의 억울한 고통과 주검은 최근에 와서 끊어지지 않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을 군에 보내는 것을 염려할 정도로 군인권상황은 열악한 것 같다. 부당한 가혹행위가 군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면, 과연 한국군이 민주 군대라 할 수 있겠는가. 극좌, 극우의 전체주의 군대와 질적으로 확연히 달라야 비로소 민주 군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병들의 온갖 부당한 고통은 바로 이적 행위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켜 적들을 이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부조리를 방조하는 오늘 한국 군 상층부는 이적 행위를 적어도 방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57년 전 나의 군 생활을 회상하면서 과연 2014년 한국 군대가 그때보다 더 선진화했는가를 묻고 싶다. 특히 지난 5년간 매년 5천명 가까운 사병들이 폭행의 희생자들이었다니 믿을 수 없지 않은가! 과연 역사는 진전하고 있는가? 군부와 정부의 상층부 인사들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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