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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미래]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시기에 시민은 ‘1.5℃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를 활용해 스스로 개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 보며 ‘기후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무엇을 실천할지를 고민하는데 정책 당국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누군가 세상을 구한다는, 아니 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파리협정과 함께 매년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경로를 이행하기보다는 아직도 그들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구조와 욕망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한 듯하다. 탐욕과 과잉으로 점철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와 화석연료에 의존해 기형적으로 파생된 탄소경제를 주도한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현재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고착화시켰다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가 아닌 탄소경제라는 무기로 돌파구를 찾았고 더 많은 부와 잉여를 쌓기 위해 수탈과 분열을 앞세운 경쟁 체제로 공동체를 붕괴시키며 ‘생태 학살’을 통해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이후 세대는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까.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경제학(Doughnut economics)’을 통해 성장을 목표로 낡은 20세기 경제학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구 구성원으로서의 민주적 합의를 기초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며 인간이 살기 위한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방안을 주창했다. 도넛경제 모델은 탈(脫)탄소사회, 탈탄소경제, 탈탄소도시로의 국가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과 함께 온실가스 문제를 기후시민의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당면한 위기를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공동체의 한 사람,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엔환경계획(UNEP)은 누리집을 통해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권고했다. 그 답은 매우 간단하며 명료하다. ‘목소리를 내라’, ‘정치적 압박을 가하라’, ‘교통수단을 바꿔라’, ‘전력사용량을 줄여라’, ‘식단을 바꿔라’, ‘지역에서 구매하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구매하라’, ‘음식물을 버리지 마라’, ‘기후에 맞춰 스마트하게 입어라’, ‘나무를 심어라’, ‘지구친화적 투자에 집중하라’다. 서로 간의 용기를 북돋우고 연대를 통해 지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우 20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자연과 에너지를 독점해 수만년 자연과 동화돼 형성한 인류의 모든 자산의 흔적을 흔들고 있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의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며 지구 생태적인 한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후시민으로서의 삶이 우리의 미래다. 기후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묻고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 낡은 틀을 바꾸는 것, 모든 것의 삶을 존중하는 것, 현재 세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기후가 아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 해리스 대 트럼프⋯ 중국의 선택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공개적으로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지난달 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이유는 미국의 역공을 피하기 위해서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4월 “미국의 대선은 미국의 내정”이라며 “중국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관여하지 않는 대신 미국도 선거를 목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의 국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느 후보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을까. 단기적으로 중국은 해리스 후보의 당선을 선호한다. 해리스 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중국은 정책 변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즉, 미중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 고위층과도 여러 차례 소통해 온 터라 새로운 인맥을 찾아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 홍콩,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의 인권 및 반도체 제재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했지만 기후변화 및 AI 안전 등에서는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합의한 핫라인을 통해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중 정책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 트럼프 후보는 대만해협, 남중국해, 반도체 제재 등에 대해서도 중국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상 상대를 새로 찾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동안 중국이 공들여온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트럼프 후보의 총애를 잃었다. 중국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은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전에 트럼프 후보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탈취했으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분담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누가 당선되든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대중(對中) 정책에 관해 해리스와 트럼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두 후보 모두 중국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중국과의 교류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도 공유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보복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6월에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25~10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양당의 대중 정책이 수렴하는 이유는 급증하는 반중(反中) 정서에 있다. 2018년 개시된 무역전쟁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유례없이 상승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호감과 비호감의 차이가 4%에서 2024년 65%까지 벌어졌다. 이런 추세가 역전되지 않는 한 어느 후보도 미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이후 중국의 대미(對美) 정책의 목표는 관계 개선보다는 현상 유지로 하향될 것으로 보인다.

[함께하는 미래] 고대 인류와 동물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고개를 들면 이름 모를 화가들의 천장 벽화가 펼쳐진다. 거대한 사슴과 말, 들소가 금방이라도 아래로 달려들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은 놀랍게도 구석기인의 작품이다. 인류의 먼 조상은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의 뛰어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구석기의 훌륭한 모습은 사냥과 관련된 생활사에서도 드러난다. 여러분이 원시시대로 돌아갔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에게는 두 길이 있다. 곡류와 과채류 위주의 채식만 하는 길과 채식과 육식을 같이 하는 길. 단,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을 직접 사냥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채식을 선택한다면 사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과도한 에너지를 쏟을 일이 없고 생명을 죽여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러나 균형 잡힌 영양원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특히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직접 죽여야 한다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삶과 죽음 앞에 평등한 생명체이므로 고대 부족의 사냥과 육식 과정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건하고 겸허한 의식이 수반됐다. 아메리카 대륙의 곰부족은 곰을 사냥하기 전 의식을 치렀다. 사냥에 성공하면 바로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쓰러진 곰에게 담뱃대를 물려주고 하늘을 바라보며 부족의 식량원이 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새끼는 절대로 죽이거나 데려오지 않았다. 고기는 남김없이 먹고 남은 뼈는 신성한 터에 고이 묻어 그 넋을 오래도록 기렸다. 원시 인류에게는 사람과 동물 중 누구나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사람의 위치를 동물과 평등하게 뒀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류는 어떨까. 고기가 필요하면 마트에 가면 된다.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키우고 도축하고 유통한 고기에 대한 값을 지불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외나 미안함과 감사함이 없어도 된다. 고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야 했던 뜨거운 양심은 퇴화라도 한 것일까. 현 인류는 명실상부한 최상위 포식자이며 의식주의 범위를 넘어 인류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수많은 형태로 동물을 희생해 왔다. 그 결과 사람의 활동지역은 야생동물을 서식지로부터 내몰았고 사냥, 밀렵, 기후변화로 19세기 이후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공식적으로 국제자연보전연맹 추산 11만8천600여종에 달한다. 야생동물은 동물원에 전시되거나 실험으로 이용됐고 사람에게 길들여진 가축과 가장 가까이서 지내온 반려동물은 자연환경에서의 생존본능을 잃은 지 오래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할 일은 인류가 동물이라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어떤 관점으로 대해 왔는가 하는 일이다. 하등한 착취의 대상이었는가, 동등한 동반자였는가. 모든 관점은 이 범위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여져 있을 것이다.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 관념이 앞으로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공존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 후손들이 지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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