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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항상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있다. 고속도로 내 제한속도를 넘어 쏜살같이 내달리는 차량과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곡예운전하는 차량, 짐칸에 빼곡히 짐을 실은 과적차량까지. 이들 모두 고속도로 위 ‘무법자’로 불리며,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같이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시민 안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다. 시속 100㎞가 넘는 차량 사이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이들의 생활은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서 기자는 궁금했다. 매일 같이 위험과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바로 곁에서 들어보았다.■ “여기가 고속도로순찰대인가요?”10일 오후 8시 용인시 기흥구 고속도로순찰대 제1지구대. 살갗을 애는 듯한 추위가 온 몸을 감쌌다. 영하 7도를 기록한 이날 날씨는 ‘춥다’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고속도로순찰대 제1지구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1지구대 외관은 규모가 조금 큰 일선 파출소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제1지구대 문을 연 순간 ‘고요함’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야간근무자들로 북적일 줄 알았던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주요 당직자들만 눈에 띄었다.조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보던 중 이날 하루를 함께 할 이재광 경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1일 파트너 백승우 경장도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속도로순찰대에서 10년가량 근무한 이재광 경위는 고속도로 순찰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그는 “고속도로는 언제·어디서·어떻게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수년을 근무한 경찰들도 항상 신경을 곤세울 정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옆에 있던 백 경장도 이 말에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기자는 이 경위의 추가적인 주의사항을 더 전해듣고서야 순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사고 위험이 높은 업무 특성상 뒷자리에 동승할 수밖에 없었다. 기흥IC 하행선에 진입한 순찰차는 어느새 주행 중인 차량 사이로 녹아들었다. 시속 100㎞가 넘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순찰차를 빗겨나갔다.어수룩한 밤 분위기가 순찰차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량 내 설치된 무전기에서는 다른 순찰조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경위는 “고속도로순찰대가 관할하는 편도의 도로 길이만 457.9㎞에 달한다”며 “순찰차 15대가 투입돼 1대마다 30~40㎞의 구간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량이 많이 몰리는 출·퇴근시간과 새벽 1~6시 사이 사고 발생률이 높다”며 “이 시간대는 모든 근무자가 긴장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한다”고 덧붙였다.평소 고속도로순찰대에 궁금증이 많았던 기자는 이 경위에게 서슴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이 경위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투입된지 50여분 만에 순찰차 앞에서 사고가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속한 초동조치가 생명’, 베테랑 경찰도 긴장하는 고속도로 사고 이날 오후 8시55분 오산IC 378㎞ 지점에서 투싼 차량이 바로 앞에서 주행 중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속 100㎞로 내달리던 차량들은 순간 속도를 줄이며 사고지점을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막힘없이 소통했던 고속도로는 정체현상으로 급변했다. 정적을 울리며 차선을 변경하는 차량은 물론 사고를 보겠다며 창문을 내려 서행하는 차량이 도로 위에 뒤엉켰다. 순찰차의 운전대를 잡은 백승우 경장은 사이렌 경적 버튼을 눌러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고지점에 모여든 다른 순찰차들도 상황정리에 나섰다. 이 경위는 차에서 내리려는 기자에게 “순찰차 왼쪽으로는 차량이 다니고 있어 조심히 내리셔야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게 바로 고속도로”라며 힘줘 말했다. 사고 수습이 시작됐다. 다행히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투싼 차량 앞부분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게 전부였다. 사고지점에 모여든 고속도로순찰대는 사고차량이 견인차에 예인되기 전까지 환한 불빛을 비추며 교통통제에 나섰다. 그 와중에 일부 차량은 이들의 신호를 무시한 채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로 위 이기주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경찰들은 침착하게 사고 수습에 온 힘을 쏟았다. 경찰은 견인차에 사고차량이 실리자마자 바로 앞 졸음쉼터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간 사이렌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졸음쉼터에 도착한 경찰은 운전자를 상대로 곧바로 경위 파악에 나섰다. 이 경위와 백 경장은 이윽고 안도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들은 “일반국도와 다르게 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초동조치하는 게 고속도로 순찰대의 주된 업무”라며 “특히 눈이 오거나 도로 위에 살얼음이 나타나는 등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고 강조했다. ■ “오늘도 목숨 걸고 달린다” 사고가 마무리 되자 순찰차의 시동이 다시 걸렸다. 내려오는 눈꺼풀과 쏟아지는 피로를 뒤로하고 순찰차는 다시 고속도로 위에 올랐다.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목격한 기자는 순찰차를 타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고속도로 상황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고속도로 갓길에 견인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목적지 없이 멈춰서 있던 견인차는 순찰차가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흰 연기를 내뿜기 바빴다. 백 경장이 조수석으로 다가가 “갓길에 정차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견인차 운전자는 백 경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엑셀 패달을 밟았고, 주의사항을 전달하려 조수석에 가까이 있던 백 경장은 견인차에 치일 뻔했다. 꽁무니를 빼는 견인차를 보며 기자는 화가 났다. 이 경위는 “경찰이 다가가면 견인차 운전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고 씁쓸해 했다.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또다시 순찰차에 몸을 실었다. 도로를 달리던 중 기자는 이 경위와 지난 7월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에서 새간을 뒤흔든 대형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광역버스가 앞에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차량 7대가 연쇄 추돌한 안타까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순찰차는 어느새 그 사고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5개월이 지난 현장에는 ‘추돌주의’, ‘사고위험지점’ 등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푯말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면서 이 경위는 “사고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면서도 “고속도로 순찰대도 과거 발생한 사고로 얻은 교훈과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 누구나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도로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두 사람과 동행한 170㎞의 짧은 순찰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구대로 돌아온 기자는 두 사람과 동고동락하는 김만식 경감을 만났다.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김 경감은 그들과 함께한 순찰시간을 짐작한 듯 이렇게 말했다. 김 경감은 “고속도로 순찰대는 다른 직종과 다르게 빠르게 내달리는 차량 틈 사이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달린다”며 “오늘도 하루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기자는 한동안 따뜻한 물이 담긴 종이컵에 손을 녹이며, 흐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정민훈기자

[1일 현장체험] 맞춤양복 재봉사

영화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의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핏에 반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킹스맨의 아지트로 등장한 곳은 다름 아닌 영국 런던 새빌로(Savile Row)에 있는 맞춤양복점으로 대를 이어 옷을 짓는 유서 깊은 새빌로는 ‘새빌로 스타일’이란 패션 용어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곳이다.그중 1894년 문을 연 ‘헌츠맨’은 새빌로 비스포크협회(SRBA) 멤버로 영화 킹스맨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재단과 가봉, 바느질 등 19가지 과정을 핸드메이드로 제작, 클래식한 디너 재킷부터 경쾌한 라운지 슈트, 스포티한 트위드 재킷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계단엔 영화 촬영 당시 사용한 킹스맨 금색 현판이 남아 있다.영화 속 맞춤양복점에는 폭탄으로 쓸 수 있는 라이터와 기관총 겸 방호벽이 되는 우산, 발 앞굼치에 독이 묻어 있는 칼날이 나오는 옥스포드화 등 킹스맨을 위한 각종 첨단(?) 무기가 즐비하다. 신사의 나라 영국답게 영화속 맞춤양복점은 남심(男心)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대한민국, 그것도 인천에서 영화속 킹스맨 아지트를 생각나게 하는 맞춤양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인천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랑 브로스(GRAND BROS)가 바로 그곳이다.■ 1960년대 맞춤양복 업계 호황… 1982년 기성복 등장으로 설 자리 잃어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대도시는 물론, 지방의 소도시 중심가에도 맞춤양복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67년 스페인 국제기능올림픽 맞춤 정장 부문에 출전한 홍근삼씨가 금메달을 수상하고 1969년 벨기에 기능올림픽에서는 신두호씨가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신호탄으로 맞춤 양복 업계는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맞춤 양복의 찬란했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82년 기성복이 한국 시장에 본격 등장하며 맞춤 양복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교복마저 대기업이 만든 기성복을 입지만, 기자의 기억속 첫 맞춤정장이나 다름없는 교복을 맞춤양복점에서 맞춰 입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교복점 주인이 이제 갓 초등학생을 벗어난 기자의 어깨너비를 줄자로 잴 때의 느낌이 여전히 어깨 한 폭에 남아 있다.하지만, 아쉬운 기억은 2차 성징이 이뤄지는 시기라 1달만에 키가 1㎝씩 자랄 때였기에 맞춤교복은 내 몸 치수보다 더 크게 맞춰져 나왔다. 이 맞춤교복이 딱 맞게 된 때는 이미 옷감이 해질 데로 해어진 뒤인 3학년이 되서였다. 그렇게 기자의 첫 맞춤정장이나 다름없는 맞춤 교복은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 남자의 로망 그랑브로스… 젊은 청년 대표의 꿈 실현 인천시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한 남동구 구월남로 한켠에 맞춤양복점 그랑브로스가 있다. 남자의 로망이 숨쉬는 곳. 단순히 일일체험을 위한 발걸음이라기보다는 남자를 위한, 남자에 의한, 남자만의 액세서리가 가득한 그랑브로스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여느때보다 가볍기 그지없었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영화속 킹스맨 양복점보다 더 클래식했다. 밖에서 통유리에 비친 그랑브로스는 그냥 조그만 보통의 맞춤양복점이었지만, 안에서 본 그곳은 영화속 킹스맨보다 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지하를 갖추고 있었다. 하루 동안 이곳에서 양복재봉사(테일러, tailor)가 돼 손님을 맞을 생각을 하니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콩닥거렸다. 그랑브로스는 우리말로 위대한 형제다. 인천에 고품격 테일러숍(tailor shop)을 만들어보자며 젊은 청년 둘이 잘나가던 대기업을 관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이날 기자를 맞은 이는 송영범(37), 장희철(35) 그랑브로스 공동대표중 동생인 장 대표였다.장 대표는 “2013년 1층에서 시작한 그랑브로스는 위대한형제는 저희가 위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숍을 찾는 손님 대부분이 남성이다 보니 멋있는 남자를 만들어 드리겠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것”이라며 “형(송 대표)과 함께 테일러숍을 만들게 된 이유는 둘다 옷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20대 중반부터 맞춤정장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당시만 해도 인천에 맞춤정장을 하는 숍이 별로 없어서 서울 강남이나 종로로 맞추러 다녔다”며 “결국 우리 둘은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고(웃음) 인천에 제대로 된 테일러숍을 만들기로 했고 서울의 숍들을 직접 찾아가면서 정장 한두벌씩 맞추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 뒤 2013년 인천에 그랑브로스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 예약만 가능… 프라이빗룸에서 펼쳐지는 맞춤정장의 세계 그랑브로스는 1층보다 5배 정도 넓은 지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지하 매장에는 3개의 프라이빗룸(private room)과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상담할 수 있는 공간, 각종 슈트가 걸려 있는 공간, 간단한 재단을 할 수 있는 공간, 남성 구두를 비롯한 다양한 액세서리가 있는 공간이 갖춰져 있다. 남자만을 위한 신세계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장 대표는 이제 막 입사한 기자에게 예약부터 상담, 치수재기, 재단, 원단나르기 등 테일러숍 직원이 해야 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 대표는 “테일러숍은 예약을 해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며 “기성복처럼 10분만에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치수를 재야 하는 것은 물론, 옷의 용도가 무엇인지, 결혼 예복인지, 평상복인지, 옷을 입어야 할 장소는 어디인지 등 상담만 최소 1~2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장 대표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된 기자는 먼저 재단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맞춤정장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직접 줄자와 초크(chalk, 옷감의 재단선을 표시하는 데에 쓰는 분필)를 들고 원단을 재단하고 가위로 자르는 것을 배웠다. 실제 테일러들은 숍이 아닌, 경기도 모처에 있는 공장에 있지만, 바지단 줄이기 등 간단한 재단은 이곳에서 이뤄진다는 장 대표의 설명에도 마치 테일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자신만의 트랜드 만들기… 맞춤정장의 매력 간단한 재단을 배운 뒤 본격적으로 상담을 위한 기술과 손님에게 최적화된 맞춤정장을 제공하기 위한 치수 재기에 들어갔다. 흉내만 내야 하는 기자를 위해 그랑브로스 직원이 가상의 손님 역할을 해 줬지만, 줄자를 들고 사이즈를 재는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초보의 모습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체크지를 들고 가상의 손님의 목과 어깨, 화장, 소매장, 팔통, 손목, 중동, 허리, 힙, 허벅지, 무릎, 종아리, 셔츠장, 총장, 하의장, 상의장, 신장 등 맞춤정장 1벌을 위해 사이즈를 재야 할 신체부위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치수를 잰 이후에는 손님의 체형을 파악해야 했다. 어깨가 어떻게 쏠려 있는지, 팔길이는 어떤지, 배가 나왔는지, 양쪽 다리 길이의 차는 없는지 등등 손님의 체형을 제대로 파악해야 제대로된 맞춤정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맞춤정장이 다시 유행하는 이유는 고객 자신만의 트랜드를 만들기 위한 테일러의 노력이 담겼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누군가 똑같은 옷을 입는 게 아닌 나만의 옷이 바로 맞춤정장이고 이는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층의 니즈와 맞물려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고객 자신만의 트랜드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게 바로 우리의 업”이라며 “사람마다 다리길이, 힙, 가슴둘레 등 신체 사이즈가 다르고 심지어 피부톤도 다르다 피부가 붉은톤이 돌면 회색과 밤색 계열의 색상은 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고 그것을 입은 사람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매력이 고객으로 하여금 기성정장이 아닌, 맞춤정장으로 이끄는 힘이 아니겠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주영민기자 사진=장용준기자

[박준상 기자의 1일 체험] 경기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부푼 마음을 안고 입주한 새 아파트에서 여러 가지 하자가 발견된다면 불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격분하게 된다. 대부분 입주 전 내부를 세심히 살피고 하자 여부를 확인한 뒤 입주를 한다고 하지만 각종 결함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경우 원활한 시정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골치를 썩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도는 입주 전 민간아파트의 하자 여부를 전문가가 직접 점검해주는 제도를 전국 최초로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지난 28일 이른바 ‘공동주택 주치의’로 통하는 경기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을 만나 현장검수에 동참해봤다. 안성 소재 한 아파트 단지. 아직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지 않아 텅 비어 있는 이곳에서 15명의 현장 검수반과 합류했다. 민간아파트를 미리 점검하는 경기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은 현장 품질검수 시 이처럼 15명 이내의 ‘현장 검수반’을 꾸려 현장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장 검수반은 도에서 위촉하는 검수위원을 중심으로 건축ㆍ전기ㆍ기계ㆍ소방ㆍ안전ㆍ조경ㆍ토목ㆍ교통 등 분야별 민간전문가와 공무원, 입주예정자, 시공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날 현장 점검에 참여한 김용천 경기도 공동주택과 품질검수팀장은 “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은 시공품질 차이로 벌어지는 아파트 입주 예정자와 시공자 간 분쟁 예방을 위해 지난 2006년 10월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실시한 제도다. 발족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 6기 검수단 100여 명이 위촉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공동주택의 건축자재 선택, 안전, 입주자 생활편의 하자예방 등과 준공 후 사후관리까지 전반에 대한 기술 노하우를 자문ㆍ전수하고 있다. 선분양 제도로 모델하우스나 카탈로그만 믿고 입주를 했다가 실제 모습과 달라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가 빈번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의 간략한 소개를 듣고 검수반과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 아파트 보일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검수 위원들은 입구 가장자리부터 하자 여부를 꼼꼼하게 체크해나갔다. 검수 위원이 특정 장소를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 어김없이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김 팀장은 “현장 검수 도중 하자가 발견될 경우 ‘현장 점검표’에 체크하고 이렇게 사진을 찍어 놓는다. 점검을 모두 마친 뒤 총평 회의에서 점검표와 사진을 토대로 하자 여부 및 시정조치 등을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별다른 하자가 없어 보이는 아파트임에도 검수 위원들의 깐깐한 손길은 분주했다. 미세한 결함에도 검수위원의 눈은 쉽사리 지나치는 법이 없다. 현장 검수는 일반인도 어느 정도 점검이 가능한 ‘샤워부스 흔들림’, ‘돌출 모서리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수건 선반 위치 조정’, ‘욕조 주변 코킹 미처리’ 등부터 전문가의 안목이 요구되는 ‘엘리베이터(EV) 인양 고리 중량표시’, ‘발코니 결로 방지’, ‘소음차단 정밀시공’ 등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뤄진다. 검수반에 섞여 내부 곳곳을 살폈지만 애석하게도 ‘기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얗게 잘 발려진 벽지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여닫히는 테라스 도어 뿐 이렇다 할 결함은 보이지 않았다. 김 팀장은 “수많은 자재와 복잡한 공정으로 집약된 인공 구조물인 공동주택을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가 품질이상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검수단이 입주 예정자들과 함께 점검을 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점검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 입주민의 입장에서 품질을 사전 검사해 주택품질 향상과 입주민의 권익보호 및 입주민 만족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라고 말했다. ▲ 지하주차장 입구 저명등의 하자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현장 검수반의 이점은 입주 예정자가 검수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역시 분야별 전문가와 시공자 외에도 해당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 예비 입주민도 함께 검수에 임했다. 입주 예정자 A씨는 “검수단 활동 덕분에 입주 후 발생할 수 있는 하자가 최소화되는 것은 물론 안전한 주거환경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호평했다. A씨는 또 “세대 내부뿐 아니라 아파트 옥상부터 지하주차장과 기계ㆍ전기실ㆍ외부의 포장 및 조경 등 입주민이 놓치기 쉬운 공용부분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점검하고 지적해 줘 안심이 된다. 앞으로 품질검수제도가 전국적으로 더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현장 검수는 아파트 내부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아파트 출입구부터 주차장, 놀이터, 주변 조경에 이르기까지 단지 내 모든 곳을 대상으로 점검이 이뤄진다. 아파트 밖으로 나와 아파트 외부 및 지하주차장 내외부, 출입구 차단기 등을 두루 살폈다. 욕심이 앞섰을까. 애꿎은 주차장 조명등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폈지만 역시나 전문가들의 표정엔 ‘이상 없음’이다. 김 팀장은 검수단 첫 출범부터 지난해까지 도내 공동주택 740여 개 단지 45만여 세대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견된 품질결함 및 하자만도 4만 3천600여 건에 이른다고 하니 그 효과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 검수위원과 함께 내부 조명 및 구조를 점검하고 있다. 이러한 검수단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보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전주시를 시작으로 군포ㆍ성남ㆍ군산ㆍ충북ㆍ창원ㆍ경남ㆍ전북ㆍ영주 등이 주택 품질검수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검수위원 B씨는 “입주민들의 집을 검수위원들의 집처럼 꼼꼼히 점검해달라는 부탁과 검수위원들에게 위임해준 막중한 책임감으로 품질검수에 임하고 있다. 건설사와 감리단 및 인허가기관의 협조를 통해 더욱 좋은 거주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품질검수 이후 분야별 검수결과와 지적사항 및 개선사항 등에 대한 자체 총평회의가 열렸다. 점검 과정에서 체크한 점검표와 촬영된 사진을 놓고 검수위원 간 논의가 이뤄졌으며 품질검수 결과에 대한 입주 예정자와 공사 관계자 간 질문 및 토의시간도 주어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시공상의 문제점들은 현장에서 바로 시공사에 시정을 요청하거나 별도의 공문을 통해 시공사 및 지자체에 시정조치를 통보하고 있다. 아울러 시정조치 이후에는 지적사항에 대한 사후점검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김 팀장은 “아파트의 경우 작은 틈새 하나에도 안전사고 및 하자가 발생할 수 있어 품질검수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입주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입주 전 입주민의 애로사항을 개선해 하자 없는 주거와 살기 좋은 공동주택이 조성 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설명했다.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에서 공동주택 곳곳을 훑는 검수단의 ‘눈’이 펼쳐갈 활약을 기대해본다. 박준상기자

[1일 현장체험] 남양주 경은학교 사회복지사

‘내 옆에 장애, 어렵지 않게, 그리고 함께’ 장애(障碍). 마음이 숙연해지는 단어다. 우리는 모두 장애에 대한 측은지심을 늘 갖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장애와 교감하기에 덜컥 겁을 낸다.최근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거세게 반대하는 주민을 향해 봐달라며 ‘무릎 꿇은 부모’ 사진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논란은 우리 사회가 장애에 얼마나 비정한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 씁쓸한 세태였다.그럼에도 약자 보호는 우리 사회가 우선하여 지향해야 할 불변의 가치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약자를 무시했던 시대와 집단이 고스란히 독화살로 돼 돌아온 것을 수도 없이 지켜봤다.이에 기자는 ‘1일 현장체험’을 통해 약자를 동등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걷는 사회복지사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 장애 청소년 ‘꿈의 날개’… 든든한 도우미 역할 흔히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치매환자나 자기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지적 장애인을 돌보는 등 ‘유지’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이들의 일부 영역이다. 취업 알선에 적극 나서고 발로 뛰어가며 ‘장애는 우리와 다름없다’는 편견을 부수는 등 일자리 창출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회복지사의 업무 중 하나다. 경기도교육청은 특수학교인 남양주 경은학교를 포함, 도내 5곳에 진로직업특수교육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각 지역에 사는 장애인을 고등학생 때부터 관리하며 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인 2년(20~21세) 간 직업을 가질 수 있게끔 훈련을 하는 한편, 원하는 회사로 연결해준다. 남양주 경은학교의 경우 경기북부지역 중 남양주·의정부·양주·구리·포천·동두천·가평·연천 등 8곳에 흩어진 장애학생을 사회복지사 5명이 나눠 돌본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장애학생을 위해 취업 실습 공간을 제공한 회사나 공장에 직접 파견 나가 혹시 모를 변수를 점검하고 장애학생의 적응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이곳 센터가 관리하는 학생들은 자기 의사소통이 뚜렷한 신체장애보다 사회 적응에 서툰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대다수다. 자폐증과 지적장애 등을 가진 발달장애 학생들은 실습 현장에 사회복지사가 있지 않을 경우, 일반인과 소통에서 돌발변수가 생길 확률이 크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의 긴밀한 돌봄은 필수다. 그렇다면 장애 학생들이 가장 꿈꾸는 직업 일 순위는 무엇일까? TV드라마의 영향인지 대다수는 ‘바리스타(커피 제조사)’를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커피를 마시고 흡족해하는 손님의 미소에 모두 크게 기뻐한다고 사회복지사들은 설명한다. 이에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바리스타를 꿈꾸는 장애 학생을 위해 얼마 전부터 1층 커피숍에 실습 공간을 제공했다. 매주 수·목 오후마다 남양주 경은학교 소속 학생들이 이곳에서 바리스타 꿈을 위해 이곳에서 꿈을 키운다. 이에 기자는 의정부에 있는 경기북부청 커피숍에서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 바리스타 실습에 나섰다. 커피숍은 소통에 낯선 장애 친구들이 사회 적응력을 손쉽게 높일 수 있는 좋은 공간인데 사회복지사들은 이들의 원활한 소통이 옆에서 보조한다. 사회복지사는 이들에게 손님 응대에 대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고 그에 따른 답변을 알려준다. 손님이 들어올 경우에는 “어서오세요. 천보 카페입니다”, 손님이 주문대 앞에 섰을 경우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주문이 끝나고 계산 시 “카드결제입니까?”, 계산이 끝난 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불러 드리겠습니다” 등이다. 언뜻 보면 일반인에게는 매우 쉽고 당연한 대화인데 이마저도 발달장애 학생은 교감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손님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질 때 장애 학생들은 당황해 답변을 못하거나 한참을 버벅거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할 경우 돌발 행동까지 이어진다. 이럴 경우 사회복지사는 옆에서 재빠르게 장애 학생들이 주눅이 들지 않고 적응할 수 있게끔 답변을 거든다. 다시 말해 그만큼 사회복지사의 손이 매우 많이 간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와 달리 사회복지사들은 장애학생들이 일선 제조업 공장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인형에 눈을 붙이거나 재료포장 등 단순노동은 장애 학생들이 쉽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공장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이기도 해서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의정부 용현 산업단지에 위치한 아성기업이다. 달력이나 다이어리 등을 만드는 이곳은 일부 제조 과정이 단순노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은 경기북부청처럼 발달 장애학생들에게 실습공간을 제공해 준다. 기자는 이곳에서도 사회복지사와 실습을 함께했다. 다이어리 속지를 겉지안에 집어넣는 작업인데 양손 엄지로 꾹 눌러주는 식의 노하우만 쉽게 익히면 금세 적응이 가능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한 장애학생들은 쏟아지는 다이어리를 완성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완성돼 가는 다이어리를 박스 안에 차곡차곡 넣고 그 박스들이 잔뜩 쌓여갈 때쯤 어느덧 시간은 퇴근시간에 가까워졌다. 실습에 나선 장애학생들의 얼굴에는 보람으로 가득 찼다. ▲ 남양주 경은학교 내에도 발달장애 학생들이 바리스타 실습 장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일과를 체험하고 있다. ■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다’. 이는 남양주 경은학교 직로직업 센터 내에 있는 슬로건이다. 해당업무를 총괄하는 박주리 부장은 “돌보는 업무가 현상유지라면 일자리 창출은 창조적이며 사회 발전적인 부분”이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장애인들이 당당히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이곳 사회복지사의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이 몇 년 후 떳떳한 직장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회복지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직업 알선을 위해 많은 업체를 찾아 “우리 학생들 데려다 한번 써보세요”라고 ‘영업’하는 일이라고 한다. 심민주 사회복지사는 “평소 장애인을 접하지 않은 업체들은 고용 등 장애와 함께하는 것에 큰 두려움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니다. 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 하나하나를 만나 장애의 편견을 없애는 일을 하는 것이 이곳 사회복지사의 역할인데 그때마다 읍소하기가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의미겠다. 천유진 사회복지사는 “처음 마지못해 장애 학생을 고용하거나 접한 업체는 몇 년 후 오히려 고용에 규모를 확대해 가는 추세다. 그 말은 장애가 업무 능력과 무관하며 특히 장애가 별것 아니란 인식을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곳 사회복지사의 바람은 하나다.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우리와 전혀 차이가 없음을 생각하는 관용이 우리 사회에 당연하길 희망하는 것이다. 사실 강력범죄 등 세상의 악을 일으키는 모두는 장애인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반인이다. 어쩌면 장애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이 가진 결함보다 우리 스스로가 가진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장애가 낯섦이 아닌 일상이 오는 세상. 앞으로 ‘1일 현장체험’에서 소개할 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길 바란다. 의정부=조철오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병아리 감별사

누구나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본 적이 있을 것 같다. 기자도 초등학교에 다닐 적 하굣길 학교 정문에서 병아리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곧장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병아리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기자는 결국 당시 과자 1봉지 가격이었던 100원을 과감히 투자해 병아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지극한 정성을 쏟은 탓인지 병아리는 어느새 닭이 되어가면서 더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됐고, 마침 학교에서 운영 중인 동물사육장에 기증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결과적으론 잘 키운 공로(?)로 상장과 맞바꾸며 위안을 삼았지만, 병아리는 이렇게 아쉬움 가득한 첫 반려동물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풍경을 한 초교 앞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아직도 병아리를 판매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병아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자의 향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문득 “암컷은 200원”을 외치던 병아리 장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에 기자는 암수 구별법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1일 ‘병아리 감별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 작업장 진입부터 심한 악취… 하루 1천 수 감별 ‘고역’ 대한양계협회로부터 소개받은 병아리 감별 전문가 곽용숙 꼬꼬감별 대표(61ㆍ여)와 체험을 위해 이른 아침, 안성시 일죽면의 한 부화장에서 만났다. 인사를 마친 곽 대표는 하루 일정과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부터 운을 뗐다.항문을 열어 생식기의 모습을 보고 암수를 구분하는 만큼, 인내심과 침착함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작업장에 진입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분뇨 냄새에 고된 하루가 예고됐다. 이날 체험 도우미로 나선 곽용숙 대표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전문 감별사로 국내에 단 2명만이 소지했다는 ‘고등감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감별 의뢰가 들어오면 팀을 구성해 감별작업에 들어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제자도 육성하고 있다. 그의 능력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간간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파견을 나가는 등 관련 업계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먼저 곽 대표의 지시에 따라 부화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를 꺼내는 첫 작업이 진행됐다. 감별사는 부화장에 가면 가장 먼저 부화기내 병아리 상태부터 점검해야 한다. 실수로 병아리를 부화기에서 늦게 꺼낼 경우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건조해져 감별이 쉽지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을 너무 떨어 병아리를 잡기조차 힘들었지만 편하게 하라는 곽 대표의 조언대로 미리 준비된 상자에 5마리씩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익숙해질 즈음 자리를 옮겨 ‘탈분 작업’이 이어졌다. 항문 감별을 위해선 먼저 등뼈 아래 대장 부위를 손으로 눌러 배내똥을 빼줘야 한다. 이 강제 탈분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감별 도중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곽 대표의 말이 기자를 섬뜩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탈분 작업은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200여 마리 병아리의 배내똥을 강제 탈분시키면서 손은 엉망진창이 됐고, 겉에 입은 작업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얼굴로 튀지 않은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병아리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어느덧 분뇨 냄새도 무뎌질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감별’의 시간이 왔다. “암수를 정확하게 판별하기 위해선 항문을 잘 여는 게 관건이에요.” 곽 대표의 설명에 따라 먼저 왼손 세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 사이에 병아리 목을 넣어 잡은 뒤, 뒤집은 상태에서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항문을 열어 안에 보이는 생식기 모양을 확인했다. 생식기 모양이 뚜렷이 보이면 수평아리, 그렇지 않으면 암평아리다.처음엔 설명을 새겨듣지도 않고 암중모색을 거듭했지만 생소한 작업이 녹록지 않았다. 같은 자세로 앉아 몇 시간 동안 병아리와 승강이를 벌이자니 눈은 침침해지고 목과 등이 뻐근해져 왔다. 잠깐 쉬었다 하면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탓에 식사나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더욱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해서 피곤도 역시 높았다. 기자는 서툰 실력으로 몇 시간 동안 겨우 100여 마리를 감별했지만, 일반 감별사는 시간당 900수~1천 수 병아리의 암수를 구분하며 하루 평균 1만 수 병아리의 암수를 감별해야 하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 영국선 평균 ‘6천700만원’ 고연봉… 해외 진출 유망 직종 우선 ‘병아리 감별사’는 이름부터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기술만 있다면 세계시장 진출도 가능한 유망 직종 중 하나다. 곽 대표는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충분히 먹고살 만한 직업”이라며 “별도의 정년이 없고, 기술을 배우고 나면 영구직으로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최근엔 영국에서 병아리 감별사 연봉이 약 6천700만 원에 육박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도 있다. 이와 더불어 해외에선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정교한 손재주와 빠른 손놀림을 선호하는 실정이다.병아리 감별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 교정시력 0.8 이상, 양손 모두 사용 가능하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전할 수 있다. 실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해외 연봉 수준은 5천~8천만 원이며, 국내에선 최대 6천만 원에 일당 25~40만 원 선이다. ■ 침체되는 업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절실 전도유망하지만 국내에서 병아리 감별사는 여전히 이색직업이라는 인식 속에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으면서 극심한 ‘인력난’과 ‘고령화’를 겪고 있다. 희망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수요가 급감하면서 양계협회에서 주관하는 감별사 자격증 시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곽 대표는 업계 침체의 이유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병아리 공급’을 가장 큰 문제로 언급했다. 감별사 양성 학원에 교육용으로 보급되는 약추(弱雛)가 마리당 100원에 육박하고 있어 끊임없는 반복 연습이 필요한 학원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학원도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곽 대표는 “과거엔 해외에 파견된 감별자가 대부분 한국사람이었는데 최근 들어 인도와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AI 사태로 공급을 차단하면서 업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감별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 나라에서 버려지는 병아리를 저가로 책정해 (학원에)원활한 공급을 해줘야 한다”면서 “여기에 양성 기관도 지역별로 마련해 준다면 청년 실업률 해소와 더불어 해외 진출로 인한 외화를 벌 수 있어 국가의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 병아리 감별사가 되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알아야” 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현재는 학원을 통해 감별 기술을 습득한 뒤 공식적인 병아리 감별사가 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고 있다. 고액 연봉에 시험까지 없어지면서 한 때 지원자들이 몰리기도 했지만, 중도포기한 수강생이 태반인 만큼 단호한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는 필수다. 곽 대표는 “‘무조건 돈이 되겠다’, ‘괜찮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에 찾아왔다가 낭패를 보는 분을 자주 봤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단 1주 만이라도 학원에서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실습을 통해 적성과 소질이 맞는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지를 스스로 잘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지 젊은 사람들이 많아야 발전하지 않겠느냐”면서 “끈기와 도전을 통해 자부심을 찾고, 관련 업계를 함께 발전시켜 세계적인 명성도 함께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남양주=하지은기자 사진=오승현기자

[1일 현장체험] 한국가스공사 인천기지본부 소방대원

가스는 전기 생산과 냉난방, 취사 등 우리가 생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석유’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사물인터넷과 태양광 발전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미래에도 가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스를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1년 365일을 땀 흘리며 일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가스공사 인천기지본부. 일반인들은 생활 곳곳에서 손쉽게 가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스 안전에 대한 인식이 무뎌질 수 있다. 특히 인천기지본부 내 액화천연가스(LNG)는 영하 165℃의 초저온 액화된 상태로 보관되고 있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가스’라는 용어가 줄 수 있는 특징인 ‘폭발’이 떠올려질 수 있어 소방안전이 강조되는게 무색하지 않다. 때문에 전국적으로 가스 사용량이 많은 시기에는 가스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인천기지본부의 책임은 중대하다. 인천기지본부의 구호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며, 이 가운데 소방안전은 안전사고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요소다. 11일 `기지 소방안전 지킴이`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인천기지본부의 소방대원으로 변신해 기지 곳곳을 돌며 소방안전을 점검해봤다. ■ 국가지정 1급 보안시설 ‘철통 경계’ 인천기지본부는 국가지정 1급 보안시설로, 정문에서부터 신분 확인과 장비 검사 등 갖가지 수속을 마친 뒤 안전팀 담당자들과 함께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겹겹이 둘러싼 경계망을 지나자마자 가스공급시설과 안전시설 등의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라도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안전모와 안전화 등을 착용하고 기지 깊숙이 들어가니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지의 안전과 보안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고 소방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행동사항과 위험사항에 대해 토의했다. 기지 내 무재해기록판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 이들과 함께 ‘소방안전’ 구호를 외쳤다. 높은 천장 아래 여러대의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소방대원들은 소방장비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며 만일에 있을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날 재난·테러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벌어졌는데, 소방대의 초기 화재 진압 활동, 인명대피 및 구조활동, 화재진압 등 화재가 발생할 때 신속한 현장대응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 화재 대비 24시간 즉각대응 태세 “13탱크에 화재가 났다. 현장출동해 소화기와 호수를 이용해 진화하라” 폐쇄회로텔레비젼(CCTV)을 통해 소방대 상황실 모니터로 전해져오는 화재 상황의 동영상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방대원들은 침착하면서도 재빠르게 현장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모니터를 예의주시 했다. 소방복을 입고 무게가 9kg 되는 공기호흡기 장비를 어깨에 매며 호흡기 부분을 입에 부착시킨 채 출동 준비를 마쳤다. 곧바로 정충환 소방대장의 지휘에 따라 싸이렌이 울리는 소방차를 타고 쏜살같이 현장으로 이동하며, 정 소방대장은 신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정 소방대장은 “소방차가 도착하면 재빨리 물을 뿌려 불길이 급속도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자칫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속 진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긴장감이 더해가는 가운데 그의 굳은 얼굴과 강력한 목소리에서 소방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소방차가 13탱크에 도착하자 곧바로 차에서 내려 발화지점을 향해 소방호스를 가리켰다. 소방호스를 통해 나오는 물의 압력이 세기 때문에 소방호스를 단단하게 잡으라는 정 소방대장의 말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두 다리를 구부리며 한 쪽 다리를 더 낮춘 자세를 잡고 소방호스로 불을 진화해 나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소방복을 입은 채 공기호흡기까지 끼고 소방호스를 낮은 자세로 잡고 있으려니 숨이 차올랐고 얼굴은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리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정 소방대장의 지휘 아래 다른 소방대원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화재 상황을 보고하며 불을 꺼트려 나갔고, 마침내 화재는 진압됐다. 그는 “평소에도 발생 가능한 화재 시나리오를 다각적으로 검토해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훈련으로 철저한 대비태세를 강화해 소방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 매일매일 순찰 ‘강행군’ 화재 진압 임무를 마치고 소방대로 복귀했다. 소방대원들의 건강상황과 소방장비 이상유무를 확인하며 훈련 상황을 마쳤다. 공기호흡기를 내려 놓으니 몸이 가벼워 지면서 비로소 화재진압이 끝났음을 몸으로 느끼게 됐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돼 정신이 없는 가운데 훈련 상황이었지만 화재를 진압했다는 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소방대원들과 함께 자재창고 인근에서 방화가 일어날 수 있는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순찰을 했다. 순찰 내용은 전열기 방치여부와 용수시설 등의 누수여부, 위험물질 방치여부 등이다. 과학관으로 이동해 실내모니터링 이상유무와 위험물질 방치 등 각종 위험요인 존재여부를 살폈고, 기지 내 도로가 정상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장애물이 방치된 여부와 함께 도로의 주·정차 상태도 확인했다. LNG, NG, 소화용수 누설여부와 작업장 안전조치 여부, 화기사용 안전수칙 준수 여부, 차량 안전규정 준수여부도 점검 대상이었다. 공사현장 컨테이너 화재예방을 위해 위험물질과 전열기, 소화기 방치여부를 살폈고, 재난 및 안전사고 발생 기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반침하 발생지역 유무를 확인하고 설비지역에서 배관등이 이탈하고 굴곡이 발생하는 여부를 살폈다. ■ 기지 구석구석 ‘안전 총력’ 소방안전 외에 인천기지본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천기지본부에서 쓰이는 모든 자동차 배기구엔 불꽃방지망이 달려있다. 휘발유 자동차는 엔진에 있는 점화플러그로 구동되는 방식이라는 특성상 인천기지본부에서 작은 불꽃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운행하는 차량은 모두 경유차다. 혹시라도 자동차가 운행 중에 불꽃을 일으키지 않도록 기지 내 제한속도는 시속 30㎞다. 기화송출설비 시설에는 바닷물을 끌어와 냉각된 액화가스를 기체로 기화시키는 해수식 기화기와 직접 열을 가해 기화시키는 연소식 기화기 등 기화 설비 수십여대가 있다. 설비 곳곳에도 가스를 감지하는 장치가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가스는 무색·무취라는 특성상 수많은 조임부분에서 가스감지장비로 가스누출을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기지 관계자와 함께 1개 기화송출설비에 수많은 점검 포인트를 모두 살펴봤는데도, 극도의 긴장감 때문인지 안전모 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기화송출설비 점검을 마치고 LNG선이 정박하는 부두로 향했다. 액화가스가 부두에서부터 탱크로 이동하는 관로가 1.2㎞ 길이에 달하는데, 이날 LNG선과 연결되는 부분부터 점검했다. 자주 사용되는 펌프와 주변 파이프를 먼저 육안으로 살폈다. 대부분 너트까지 도료와 페인트가 발라져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자주 쓰이는 곳은 직접 몽키스페너로 하나하나 돌리며 확인했다. 기지 관계자는 “인천기지본부가 안전한 시설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근로자가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소방안전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철저히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재기자 사진=장용준기자

골목골목 뒤섞인 쓰레기… 제발! 분리수거 좀~

일일 현장체험 차례가 돌아왔다. 경기일보 기자라면 1년에 평균 한 번 정도 일일체험을 한다. 아, 운이 안따르면 두 번 걸리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 기자가 그랬다. 일일체험은 경기일보 기자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코너다. 앞서 동료 기자들이 웬만한 직업은 다 체험해봤기 때문에 새로운 직업,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아이템’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동안 기자는 동료들보다 아이템을 수월하게 찾아왔다. 입사 후 줄곧 야구를 담당해 온 덕분에 야구장에서 어렵지 않게 아이템을 찾았다. 딱 한 번 염전으로 외도한 적이 있다. 야구장에서의 아이템이 고갈돼서 외도를 한 건 아니다. 그저 다른 것 좀 해보고 싶어서 한 거다. 경제부로 옮긴 뒤 첫 일일체험이다. 아이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털 꽤나 빠졌을 거라고 기대한 독자, 동료들에겐 미리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이번에도 아주 쉽게, 그것도 무려 반년 전에 무엇을 할 지 정했다. 이전에 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캐스팅 당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쓰레기 수거원이다. 대표적인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업종으로 인식돼서인지 이전에 체험한 기자도 없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 수거원 선배들의 배려 든든… 이제 출발~ “내일 오전 7시30분 정도에 경기일보 사옥 앞에서 봐요. 마침 우리가 경기일보 주변 쓰레기도 수거하니까 그게 좋겠어요.” 체험 하루 전, 반년 만에 하는 연락인데 백양티앤에스(주) 정길섭 이사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게다가 만날 장소까지 회사 앞이라니 단수(單手)가 맞는듯했다. 다만 오전 7시30분이란 시간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기자의 평소 기상 시간이었다. 7시30분까지 나가려면 평소보다 1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건만 다음날 이른 기상 탓에 잠을 설쳤다. 오죽하면 체험에 늦는 꿈을 꿔 새벽에 깼을 정도였을까. 기자는 두세 번 잠에서 깨어나는 등 선잠을 자고 아침을 맞았다. 그런데 맞은 아침이 예상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7시5분. 저급한 용어를 빌리자면 ‘뭐 됐다’ 싶었다. ‘예지몽이었던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7시20분쯤 됐던 것 같다. 회사로 향하던 길에 정 이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속시간까지 아직 10분가량 남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화를 받으니 “조 기자, 어디쯤이신가?”라고 묻는 정 이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회사로 가는 중이라고 답하니 자신은 도착했단다. 그리고는 천천히 오란다. 실질적으로 지각했다는 걸 인지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요란한 소리에 엔진분당회전수(rpm)는 3천을 넘겼다. 그래도 준법정신만큼은 투철하다. 신호ㆍ속도위반은 안 했으니 오해 마시길. 시곗바늘이 7시30분을 조금 넘긴 시간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정 이사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시 바로 이동하잔다. 쓰레기 수거원들이 근처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단다. 회사 앞 사거리 건너편으로 가자 쓰레기 수거원들이 때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음 한켠에 스며든 미안함에 건네 준 작업복은 썬팅도 안 된 차 안에서 착용했다. 오래전 광고 카피 문구처럼 당시 필요한 건 스피드였으니 말이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기자가 벅차했던 약속시간 7시30분은 정 이사의 배려였다. 백양티앤에스 쓰레기 수거원들의 하루는 가족이 잠자리에 든 새벽 1시께 시작된다고 한다. 회사로 출근해 팀을 나누고 새벽 3시 이전부터 트럭을 몰고 주택단지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버린 생활쓰레기를 수거한다고. 기자가 합류한 시간은 수거시간 말미였다. 정 이사는 경기일보 근처인 조원동 쓰레기 수거 전 기자를 합류시킨 거였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종량제 봉투 실종… 멋대로 음식물쓰레기 투척 쓰레기 수거ㆍ운반 대행업체 백양티앤에스는 수원 정자ㆍ연무ㆍ조원1ㆍ조원2동 쓰레기를 4개 팀으로 나눠 수거한다. 팀은 소각용ㆍ대형폐기물ㆍ음식물ㆍ분리수거 수거팀으로 분류된다. 기자는 이날 소각용 쓰레기 수거팀에 배정됐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솔직히 쓰레기 수거하는 데 팀이 나눠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긴 했지만 기자가 가장 걱정했던 건 음식물 쓰레기였다. 아시다시피 음식물 쓰레기는 냄새가 고약하다. 체험 하루 전까지만 해도 기자 집에는 한 주 동안 묵힌(?) 음식물 쓰레기가 있었다. 냄새가 어찌나 고약하던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부엌을 뒤덮는듯했다. 이 오염물질을 버리려고 봉투에 손을 댔다가 냄새가 고스란히 피부에 이식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걸 두고 냄새가 벤다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체험을 앞두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몸에 냄새가 밸 것을 우려, 체험 뒤 샤워는 필수적으로 계획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소각용 쓰레기라니 괜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다행이다’ 싶었던 생각은 이내 산산조각났다. 쓰레기를 수거할 지역인 조원1동에 도착해 작업을 막 시작하자 마자였다. 쓰레기가 주택가 골목 한구석에 뭉텅이 채 있는데, 분리수거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플라스틱, 비닐, 소각용 쓰레기에 음식물 쓰레기 한 데 뒤엉켜 있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숙련된 쓰레기 수거원 A씨가 나서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하곤 모든 쓰레기를 잽싸게 양손에 집어들고 트럭 뒷부분에 자리한 압축기로 집어던졌다. “공동주택, 그러니까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 밀집지역은 분리수거가 거의 안 된다고 보면 돼요. 분리가 잘 된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하곤 모두 수거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A씨의 설명이었다. 설명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마냥 기자도 A씨를 따라나섰다. 5m 간격으로 도로변과 인도를 오가며 뛰면서 가로수 밑에 놓인 쓰레기들을 수거했다. 수거를 하면서 또 한 번 느꼈지만 이곳의 분리수거 수준은 말 그대로 ‘견(犬)판’이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면 다행이었다. 속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 버린 경우가 대다수였다. 덕분에(?) 차량에 다시 오를 땐 김칫국물 냄새가 물씬 풍겼다. 트럭 후면에 매달려 이동할 때도 숨 돌릴 틈이 없다. 도로변마다 쓰레기 무더기가 즐비해 있는 곳을 파악해야 한다. A씨는 도로변에 있는 쓰레기만 수거하지 않았다.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도로 사이 갓길, 언덕배기 골목길까지 올라가 쓰레기를 수거했다. A씨는 “차량진입로까지만 가지고 나와주면 고마울련만 주민들은 보통 집 앞에 쓰레기를 모아둬요. 안 치우고 그냥 지나쳤다가는 ‘왜 수거를 안 해 가느냐’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트럭에 쓰레기가 얼추 쌓이자 압축기 작동 버튼을 눌러보라고 한다. 작동 버튼은 트럭 후미 우측에 있다. 버튼을 누르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서 있자 트럭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A씨가 기자를 잡아당긴다. “거기에 있으면 압축과정에서 김치국물 등 음식물이 튈 수 있어요.” 덕분에 김치국물 샤워를 피할 수 있었다. 소각용 쓰레기 수거팀은 담당 구역의 모든 쓰레기를 수거한 뒤 수원 영통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한다. 하루 동안 수거한 쓰레기를 이곳에 배출한 뒤 차량을 청소하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평일이라면 10시 정도에 복귀하지만, 토ㆍ일 주말 간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는 월요일의 경우는 정오가 다 돼 복귀하기도 한다. 쓰레기 수거원들은 그제야 늦은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다고. ■ 동네를 깨끗하게 만드는 주인공들에 박수 수거원들은 하루에 5~6시간가량 무거운 쓰레기 더미를 들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토ㆍ일요일을 쉬는 게 위안이다. 평일 공휴일에도 일하는 수거원들이 받는 연봉은 4천만 원 정도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연봉(3천198만 원)보단 높지만 낮과 밤이 바뀐 생활 사이클에 냄새 나고 힘든 일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 미국 뉴욕의 경우만 봐도 쓰레기 수거원의 연봉은 1억대다. 뉴욕의 쓰레기 수거원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 이처럼 만족스러운 ‘보상’을 꼽는다. 또 우리나라 수거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일을 한다. 실제 체험을 하는 동안 마주친 등굣길 학생들과 출근길 직장인들로부터 기자도 이 같은 시선을 느꼈다. 냄새가 나니 몸을 피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다만 굳이 좋지 않은 눈빛을 보내며 지나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타 회사 동료 기자와 쉬는 날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취재지로 이동하는 동안 동료 기자가 “어릴 적 엄마가 ‘공부 안하면 나중에 커서 남들 쉴 때 일하고, 덥거나 추울 때 밖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지금 내 꼴이 그렇다”고 한탄한 기억이 난다. 아직도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 있어 자극을 주고자 이런 말씀을 하시는 학부모님들께 감히 한마디 하겠다. 예시로 쓰레기 수거원들은 빼줬으면 한다. 그렇게 비하되기엔 쾌적한 환경을 위해 흘리는 이분들의 땀방울이 너무나 값지니 말이다. 조성필기자

[1일 현장체험] 전통한과 공장을 가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추석이나 설엔 알록달록 색동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포동포동한 한 손엔 늘 한과가 쥐어져 있었다.얼굴엔 조청 탓에 유과가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지만, 제법 맛이 있었는지 얼굴엔 미소가 한가 득이었다. 시대가 변해도 추석이나 설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 고유의 전통 먹거리다. 특히 전통한과는 빼놓을 수 없다. 발효된 찹쌀을 손수 시루에 쪄 내고 말려 튀겨내고서 조청을 바르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한과라면 현대의 아무리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추석을 3주일 가량 앞두고 옛 전통 한과를 직접 만들러 지난 5일 다물한과를 찾았다. 명절이 아직 남았지만, 다물한과는 명절 맞이를 위한 준비 작업에 벌써 분주했다. ■ 신선한 한과 배달 위해 주문 시기 돼서야 작업 다물농산은 지난 1998년 양평군 읍면 단위 생활개선회원 5명이 뜻을 모아 설립한 영농조합법으로 농촌에 사는 여성들이 꾸려나간다. ‘다물’은 옛것을 되찾고 우리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다물한과는 우리나라 전통의 과자인 한과를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해 생산한다. 옛 조상이 즐겨 찾은 과자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방부제와 첨가제를 쓰지 않고 좋은 찹쌀을 물에 담가 자연발효 한 이후 13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 자연발효 한 이후 13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 만든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정성껏 만든다는 자부심이 문성균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에게서 느껴졌다. 한 달가량 남기는 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줄 알았던 작업장은 예상과 달리 한산했다. 직원도 13명인데, 두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고추 따기 등 각자 농사일을 하러 갔다고 한다.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청탁금지법으로 한과 업체 직격탄?’ ‘경기불황에 명절 호황도 없어….’ 먹고사는 일이 일인지라,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머릿속에서 술술 그려졌다. “벌써 만들어놓으면, 소비자들한테 오래된 한과를 파는 거잖아요. 나중에 퇴근도 못하고 작업을 해도 추석을 이삼 주 앞두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가장 맛좋고 신선한 제품을 드릴 수 있어요.” 문 대표의 말에 문득 생각에서 깨어났다. 이미 한과 주문은 가득 들어와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가장 맛있는 상태의 한과를 전달하려면 명절을 이주일 가량 앞두고 항상 야근과 밤샘을 하며 작업을 한다고 한다. 기름으로 튀기고, 엿으로 코팅해도 신선도는 다르다는 거다. 지금은 곧바로 나갈 상품만 만들고 있다. ■ 정성 가득… 소비자 평안 바라는 마음도 담아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위생복을 입고 위생모와 마스크를 착용한 후 소독실에 들어가 소독을 마쳤다. 식품을 만드는 곳이다 보니 무엇보다 위생이 중요하다. 특히 한과는 날씨나 습도 등에 예민해 이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 만들 한과는 매작과다. 그 모양이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과 같다’고 해 한자로 매화 매(梅), 참새 작(雀) 자(字)를 써서 매작과(梅雀菓)라고 한다. 밀가루에 생강을 갈아 넣어 반죽해 얇게 밀어서 네모나게 썰어 가운데에 칼집을 넣고 뒤집어서 꼬인 모양을 만든 다음 기름에 튀겨 꿀에 즙청한 과자다.달콤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워 입 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드는 대표적인 우리 과자다. 재료도 간단하다. 밀가루, 밀가루에 색을 입힐 뽕잎이나 백련초, 설탕, 칼만 있으면 된다. 모든 게 간단하니 만들기도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문 대표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밀가루에 소금 간을 반죽한 것을 국수 반죽기에 넣어 차지고, 밀도 있는 바탕을 만들어 내면, 크기에 맞춰 네모난 모양으로 잘라낸다. 잘라낸 밑판에 칼집을 5개 낸다. 양옆 2개의 칼집은 작게, 가운데 있는 3번째 칼집은 길게 낸다.길게 칼집 난 부분을 벌리고 반죽을 위에서 아래로 넣어 뒤로 빼내면 꽈배기 모양이 꼬아진다. 꾹꾹 눌러 고정을 하는 끝. 문 대표의 설명은 쉬웠다. 보기에도 쉬워보였지만, 서툰 솜씨는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참새가 매화나무에 앉아있는 모양은 내가 만든 반죽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몇 번 망쳤다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제법 모양이 잡혀갔다. 뽕잎 가루와 백년초 가루를 넣어 빻은 반죽을 활용해서도 모양을 만들었다. 연분홍, 청록의 매작과가 완성되며 더욱 알록달록해졌다. 이후 기름 솥에 반죽을 넣어 튀긴다. 튀기는 과정은 3번 반복한다. 이후 물엿으로 코팅해 포장하면 끝이다. 깨끗한 기름에 반죽을 넣자 제법 고소한 냄새가 났다. 색깔이 입혀지면서 먹음직스러운 색감도 났다. 포장 역시 중요한 과정이다. 다물한과의 한과는 약과, 쌀강정, 매작과, 유과, 참깨강정, 검은깨강정으로 구성됐다. 약과에 잣, 해바라기씨로 모양을 더하자 곡식 그대로의 색감이 살아난 매작과부터 분홍과 청 녹의 조화를 이룬 유과, 검은깨의 향연이 이어지는 강정까지….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과 박스가 완성됐다. 그 어떤 포장보다 한과 그 자체가 더 기품있어 보였다. ■ 올 추석선물, ‘한과’ 어떠세요? 다물한과에서는 찹쌀을 2주 동안 삭히고 갈아서 찐 다음, 손으로 반죽해 절단하고 말리기까지 모두 수작업을 한다. 이후 튀기고 가루를 입히는 포장과정만 자동화로 한다. 기계 사용이 보편화 된 시대에, ‘전통’의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맛 때문이다. 한과의 맛은 튀기기 전 손으로 하는 작업과정이 좌우한다. 지금은 기계식 작업이 일반화됐지만, 예전에는 명절만 되면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직접 한과를 반죽하고, 튀기며 웃음꽃도 피웠다고 한다. 문 대표는 유과 등 우리 고유 과자인 한과가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문 대표는 “어릴 때 할머니께서 밥을 많이 먹고 나면 유과 한두 개를 꼭 주셨어요. 배가 부른 데 왜 유과를 주실까 궁금했는데, 유과를 소화제 대신으로 주신 것이었어요. 요즘 식후에 먹는 디저트 겸 소화제로 조상은 유과를 먹은 거지요. 실제 유과에 묻은 조청은 소화를 촉진하는 기능이 있어 고기 등을 먹은 후에 한과를 먹는 것도 좋아요.” 처음에는 기계화가 보편화 된 시대에, 굳이 힘들게 손작업을 하는 게 과연 효율적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묵묵히 손으로 반죽하고 모양을 만드는 문 대표와 다물한과의 직원들을 보면서, 전통의 맛을 살리려면 이 정도의 수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입맛을 사로잡는 초콜릿부터 달콤한 과자까지, 간식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올 추석엔 우리 고유의 과자인 한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곡식의 향은 물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정자연기자 사진=조태형기자 좋은 한과 고르는 팁!묵은 냄새·지나치게 선명한 색상 일단 의심을 선물로 한과를 고를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는 ‘과연 어떤 게 좋은 한과인가?’ 하는 부분이다. 시중에 나온 한과 중에서 맛좋고 건강에 좋은 한과는 어떻게 고를까. 정호영 다물한과 기획실장에게 물어봤다. 우선, 한과에서 오래된 냄새가 나거나 기름 냄새가 나면 좋지 않다. 기름은 한 번 쓰면 버리지만, 오래 쓰는 곳이 종종 있기도 한다. 사용된 기름과 물엿이 신선한지 알아보려면, 샘플로 나온 한과의 냄새를 맡아 상태를 확인하면 된다. 한과에서 기름 냄새가 많이 난다면 오래됐거나 재료가 신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만든 지 오래된 한과면 색이 바래있을 수 있다. 한과의 색감이 너무 선명해도 좋지 않다. 인위적으로 색을 내기 위해 인공색소를 사용했거나 방부제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기 전 샘플을 맛봐 곡식을 볶은 향긋한 냄새가 나고, 색감이 적당한 한과를 선택하면 된다. 가격이 저렴하다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재료의 상태가 가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과에는 제품 성분 표시가 잘 돼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보고 비교하면 된다. 정자연기자

[1일 현장체험] 고양시 동물보호센터 사양관리사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온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평소 ‘애묘인’으로 유명한 문재인 대통령이 유기견 ‘토리’를 입양한 것이다. 올해 4살이 된 토리는 남양주 폐가에서 구출돼 2년 동안 새 주인을 기다리던 유기견으로 청와대 첫 유기견 출신 ‘퍼스트 도그’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나 역시 문 대통령의 유기견 입양 소식을 듣고 삭막했던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선 기간 ‘반려동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약속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올해 유기동물 수는 줄어 들었을까?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16일 실시간 유기동물 통계사이트 ‘포인핸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전국에서 구조된 유기동물은 6만834마리에 이른다. 하루 평균 267마리의 반려동물이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유기유실동물 수는 5만 4천246마리로 올해 무려 12.1%나 증가했다. 유기유실동물의 경우 주인이 찾아오지 않거나 새 입양처를 찾지 못할 경우 끝내 안락사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6~8월 휴가철이면 유기유실동물이 급증한다는 언론 보도도 이제는 놀랍지 않은 이야기가 됐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명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주인들을 대신해 ‘배신’으로 상처받은 유기동물에 작게나마 정(情)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유기동물에 사랑을 쏟는 동물보호센터 사양관리사들의 하루를 체험해보기로 한 이유다. ■ 막연한 긴장 속 사양관리사 체험 시작! ‘반려동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호기로움으로 무장한 채 찾은 곳은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고양시 동물보호센터.오전 9시부터 회의가 시작된다는 말에 미리 도착해 정문을 열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보니 유기동물의 안정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단다. 뒤이어 전선녀 주무관이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려와 기자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10여 명의 직원이 다소 긴장한 기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편안하게 맞아줬다. 간단한 소개에 이어 회의가 시작되자 진지한 분위기 속에 보호동물들의 건강상태와 이에 대한 수의사의 치료일정 등이 공유됐다.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섞인 대화가 오가는 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분위기 파악을 위해 눈치를 보고 있던 기자에게도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견사를 청소하고 사료를 주는 ‘관리업무’였다. 반려동물의 ‘의·식·주’와 연계된 무거운 중책을 맡게 되자 책임감과 도전 정신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보호동물 돌보기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렸다. ■ 호된 신고식… 강아지 변과의 전쟁 뜻깊은 첫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1층 견사로 내려가자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보호견들이 기자를 향해 일제히 짖어대며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와 위압감에 위축된 모습을 보이자 황현식 반장이 “대부분 순한 녀석들이니 겁먹을 것 없다”며 기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황 반장의 도움을 받아 보호복과 장갑, 장화, 마스크로 완전무장한 채 거울을 보니 제법 사양관리사가 된 것 같았다. 우선 견사 안으로 들어가 청소용 호스를 받아들고 황 반장으로부터 견사 현황과 청소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대형견의 견사는 황 반장이, 소형견 견사는 초보자인 기자가 맡아 물청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강아지들의 변기(?)를 하나하나 꺼내 물청소를 시작하자 곳곳에서 배변의 결과물과 털들이 씻겨나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창문으로 먼 산만 바라보는 게 부끄러워서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 수세미를 들고 나머지 오물들을 일일이 닦아내는데 슬슬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또한 습한 날씨 탓에 얼굴은 물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1시간여에 걸쳐 1차 청소작업을 마치자 이번에는 배수구에 주변에 쌓인 강아지 변을 주워 플라스틱 바스켓에 담기 시작했다.아무리 사랑스러운 녀석들이지만 쌓여 있는 강아지 변을 치우는 일은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황 반장은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듯 “아이고, 귀엽게도 쌌구나”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매일 청소를 하느냐는 질문에 황 반장은 “절대 살이 찔 일은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잠시 찜찜한 마음을 가졌던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스트레스 NO!… 야외활동은 필수 보호견들의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야외활동이다. 오랜 시간을 견사에서 지내다 보니 자칫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견들의 야외활동을 챙겨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는 말에 이번에는 김동욱 사양관리사를 따라나섰다. 장흥동에서 박스에 담긴 채 구조된 믹스견 4형제와 함께 견사 뒤편에 연결된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견사 안을 벗어난 녀석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술래잡기를 하듯 운동장 구석구석을 달리고 또 달리던 4형제는 한편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기자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기자도 함께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몸으로 놀아주기에 나섰다. 1시간에 걸친 술래잡기로 체력이 바닥날 즈음 기자의 눈에 원반이 들어왔다. ‘과연 강아지들은 원반에 관심을 보일까?’라는 호기심과 함께 원반을 저 멀리 던졌으나, 아뿔싸…아직 어린 4형제는 원반에 관심이 없었다. 계속해서 술래잡기하자는 강아지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신발끈을 조였다. 이때 김 사양관리사가 구원투수처럼 간식을 들고 나타났다. ‘무한 달리기’로 허기진 4형제도 간식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4형제를 보며 ‘좋은 주인이 있었다면 모두 따뜻한 곳에서 원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반려동물등록제’ 정착 시급 일과를 마치기에 앞서 동물보호센터직원들과 하루 동안의 소회와 반려동물 유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현재 유기·유실동물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동물보호센터는 이를 구조해 일정 기간 보호 공고 및 관리하게 된다.만약 보호 공고 기간 내 주인과 연락이 닿을 경우 보호동물이 반환된다. 보호기간이 경과되면 입양이 가능해지지만 이마저도 실패할 경우 안타깝게도 안락사하게 된다. 문제는 시민들이 일부 인기종만 입양하려 하고 다친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입양 의지가 낮다는 것. 황 반장은 “다친 동물들을 입양할 경우 병원비가 많이 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입양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고양시 동물보호센터 직원들은 반려동물등록제 정착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반려동물등록제는 동물이 유기됐거나 잃어버린 경우 고유의 등록번호를 통해 소유자를 쉽게 확인함으로써 동물의 유실·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소지현 수의사는 “반려동물등록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책임의식을 갖게 해 실증난다고 동물을 버리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 가면 흙길을 다니던 개와 고양이는 주거환경의 도시화로 실내에 함께 살게 되면서 애완동물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삭막한 개인주의 사회의 도래와 ‘혼밥’·‘혼술’의 일상다반사와 맞물려 애완동물의 지위는 반려동물로 격상(?)됐다. 반려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가족처럼 생각해 가까이 두고 보살피며 기르는 동물’이다. 사실상 가족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런 소중한 가족을 장난감처럼 샀다가 싫증이 나면 죄책감 없이 버리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송우일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여울림터’ 학대노인 요양보호사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은 어르신들의 사연은 취재를 통해 수없이 봐 왔다.하지만, 이들을 보살펴주는 쉼터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겐 낯설었다. 전국에 이런 쉼터 16곳이 운영되고 있다. 인천에선 이곳이 유일하다.자식이나 배우자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입소한 어르신들이라면 마음의 문 또한 굳게 닿아놓았을 것이란 걱정이 앞섰다. 믿었던 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아왔다면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졌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고 친자식 이상으로 보살펴주는 곳이 학대피해 노인 전용쉼터인 ‘여울림터’이다. 어르신들을 24시간 보살피며 수발을 드는 ‘학대노인 요양보호사’를 체험해봤다. 꽁꽁 얼었던 마음을 녹여 드리겠단 거창한 욕심보단, 살갑게 해드리며 재롱을 부리다 오겠단 생각으로 쉼터를 찾았다. ■ 가정집보다 더 가정적인 ‘여울림터’ 일반 요양원과 비슷한 공동생활 시설일 것이란 생각으로 미리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쉼터라기보단 잘 꾸며진 고급빌라란 표현이 더 적당했다. 약 155㎡ 규모의 빌라 안에선 요양보호사 3명과 사회복지사 1명이 나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도 ‘1일 요양보호사’로 소개하자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올해로 75세인 한 할머니는 고부갈등으로 아들에게 폭행을 당해 2주간의 입원치료를 마치고 이곳으로 온 분이다.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왔다가 이곳에 왔다. 쉼터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3개월 정도 가족들로부터 격리를 시킨 후, 본인 희망에 따라 가정으로 복귀하거나 요양원으로 모신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온 분들이지만, 학대받은 어르신들이라 믿지 못할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쉼터에 들어서자마자 요양보호사들의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한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를 거들며 음식 맛 잘 내는 비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다른 할머니는 TV 드라마를 보며 요양보호사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화목한 분위기다. 친부모 이상으로 극진히 모셔온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어르신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곧바로 점심 준비를 서둘렀다. 한 할머니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빌라 옥상에 있는 텃밭으로 향했다. 풋고추를 조금 따서 여름철 입맛 돋울 반찬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옥상 텃밭에는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키우는 고추와 토마토 등 온갖 야채와 과일들로 가득했다. 어르신들이 텃밭을 가꾸며 여가생활을 즐기라는 취지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마련해 준 공간이다. “매운 음식 좋아하면 점심때 먹을 수 있게 청양고추를 많이 따야지.” 같이 고추를 따던 할머니가 정감 어린 목소리를 건넸다. 고추 한 바구니를 가득 채워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둘렀다. 처음 걸쳐보는 앞치마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제법 어울려보였다. 뷔페에서 본 듯한 새하얀 큰 접시에 다섯 가지 반찬을 조금씩 담았다. 곧바로 요양보호사의 꾸지람이 귀청을 울렸다. “어르신들이 드실 건데 반찬들이 안 섞이게 접시에 예쁘게 덜어 드려야죠.” 접시에 올려놓은 열무김치 줄기 하나가 삐져나왔던 것이다. 학대받은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김정연 요양보호사(49·여)는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로 오신 분들이라, 처음에는 정서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게 보통”이라며 “우리가 먼저 딸이나 손녀처럼 친근하게 다가가고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써드리면 이분들도 편하게 대해주시고 즐겁게 생활을 하신다”고 전했다. ■ 매일 운영되는 ‘정서지원 프로그램’… 즐거움 선사 2시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오전 10시가 되면 어르신들의 지루함을 달래들이기 위해 심리치유와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민요교실과 미술치료를 비롯해 종이접기, 무용, 원예 등 프로그램도 매일 바뀐다. 쉼터를 찾은 이 날은 민요교실이 열렸다. 외부에서 초빙한 강사의 장구 장단에 한바탕 신명나는 노래마당이 펼쳐졌다. 요양보호사들과 ‘내 나이가 어때서’를 따라 부르던 할머니들은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박수를 치며 흥을 마음껏 즐겼다. 40여분 간 진행된 민요교실이 끝난 후에는 치매예방을 위한 퍼즐 맞추기 게임이 벌어졌다. 요양보호사들이 커다란 그림 조각들을 흩트려놓으면 어르신들이 직접 그림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방식이다. 입소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는 한 할머니는 능숙하게 잘 맞추신다는 칭찬 한마디에 “내가 어릴 적에 공부 꽤나 했지”라며 웃어넘겼다. 점심식사 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근 공원에 산책을 하는 것도 요양보호사의 일과 중 하나다. 오후에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간석동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대상포진 예방주사 접종을 위해서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어르신들이 고령이다 보니 건강을 챙겨드리는 것 또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며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외부 후원을 받아 예방주사나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늦은 오후부터는 어르신들은 자유시간이지만 요양보호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혹시라도 학대를 했던 가족들이 찾아와 위해를 가하거나 어르신들이 쉼터를 나가 길을 잃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외출하는 어르신에게는 GPS에 연결된 위치추적장치를 주머니에 꼭 챙겨드린다. ■ 요양보호사 ‘1인 다역’… 낮은 처우에도 최선 쉼터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은 매일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에겐 휴일이나 명절이 따로 없다. 3∼4일만 휴가를 내려고 해도 몇 안 되는 다른 직원들이 빈자리를 대신 메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일과는 단조로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모두가 ‘1인 다역’을 맡고 있다. 음식을 만들 때는 요리사가 돼야 되고, 새로 입소를 한 어르신에게는 심리치료 상담도 한다. 가끔씩 어르신들이 투정을 부리거나 역성을 낼 때면 효성이 극진한 자녀 역할까지 해야 한다. 시설물이라도 하나 고장 나면 직접 수리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목욕도 시켜드린다. 하지만 업무강도에 비해선 이들에 대한 처우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월 급여가 150만 원이 안 돼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수준이다. 부실한 처우에도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어르신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일부 어르신들은 퇴소를 하고 난 이후에도 요양보호사들과의 인연을 잊지 않고 쉼터에서 진행하는 나들이 행사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쉼터 직원 김미숙씨(45·여)는 “아무래도 이곳에 입소하신 어르신들이 모두 마음의 상처가 많으신 분들이다 보니, 우리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 굉장히 고마워하시고 당신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마치 친딸처럼 생각해주신다”고 말했다. 김준구기자 사진=장용준기자

[1일 현장체험] 안양시청 청원경찰

기자는 공무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청사로 출근한다.물론 별도의 사무실도 있지만, 업무 특성상 공무원들을 많이 대면해야 하고 취재 활동에서도 청사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청사 내에서 수많은 공직자와 안면을 익히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안양시청을 출입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와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안양시청 청원경찰들이다. 시청을 방문한 이들이 가장 먼저 정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즉 안양시청의 ‘첫 얼굴’인 셈이다.항상 따뜻한 미소와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안양 관내 최고 주요시설인 시청의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는 이들을 민원인들은 간과하기 쉽다.책임감으로 무장하고 한결같이 밝은 미소로 방문인들을 맞이하며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들의 일상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이유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청원경찰 업무 익히기체험 시작 10분 전. 거울을 보며 외모 점검에 들어갔다. 실은 체험 전 민원인들에게 깔끔한 인상을 주려고 미용실을 방문하려 했지만 바쁜 업무(?) 속에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거울 속에는 산발머리를 한 까무잡잡한 남자가 있었다.오늘따라 유독 덩치가 커 보여 둔해 보이기까지 한 자신을 발견한 기자는 ‘젤이라도 머리에 바를까?’라는 고민을 잠시 했다. 그러나 멋을 내면 낼수록 오히려 촌스러운 스타일이 되는 자신을 잘 아는지라 세수에 로션만 간단히 바른 후 투입 전 업무 숙지를 위해 청원경찰 사무실을 찾았다.그곳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눈인사를 주고받았던 장진규 반장(57)이 기자의 이름까지 적힌 푸른색 제복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세심한 배려에 감동하며 옷을 갈아입자 장 반장이 하루 일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청사방호 총괄을 담당하는 장 반장을 포함한 총 7명으로 구성된 안양시 청원경찰은 2인 1조로 오후 6시까지 교대 근무를 선다. 준비된 업무매뉴얼을 어설프게나마 숙지한 후 베테랑 장 반장과 함께 시청 본관 1층으로 투입, 청원경찰 업무를 시작했다.■ 시청의 ‘첫 얼굴’… 밝은 미소는 필수!하루 평균 200여 명의 방문인이 통과하는 청사 정문. 정문을 통과하는 민원인들을 상대로 문을 개방해주며 인사를 건넸다.문을 개방하고 짧은 인사를 건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눈을 마주하며 밝은 미소를 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나 어색하고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장 반장은 “입꼬리가 한쪽만 실룩 올라가면 냉소로 보일 수가 있다”면서 직접 미소 시범을 보여줬다.20여 명의 민원인을 맞이했을 때쯤 정문 5m 앞에서 한 여성시민이 양손에 짐을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저 민원인은 양손을 사용할 수 없으니 꼭 문을 열어줘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손잡이를 잡고 대기하는 데, 이런…. 장 반장은 한발 앞서 문을 열고 방문객에게 다가가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지만 문 개방에만 집중했던터라 멀뚱멀뚱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장 반장에게 멋쩍은 웃음만 지으며 안내데스크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수십 차례 방문했었는데… 부서 위치도 ‘깜빡’안내데스크는 말 그대로 부서 위치를 안내하는 창구이다. 데스크 밑에는 청사의 부서 위치와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조직도가 비치돼 있었지만 3년이란 시간 동안 수시로 들락거린 부서들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어 장 반장의 설명에 별다른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그때 한 남성 민원인이 다가와 “경제정책과가 몇 층이죠?”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2층 송고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취재 차 수십 번은 왔다갔다했던 부서의 위치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 경제정책과요? , 3층입니다.”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단 안내를 했고 민원인이 발걸음을 돌렸을 때 비로소 위치가 떠올랐다. 돌아서는 민원인을 쫓아가 2층이라고 정정을 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안양시청 출입을 처음 했을 당시처럼 부서별 위치를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하며 다음 민원인을 기다렸다. 이후 동안구청을 가는 방법, 식당의 위치 등등 밀려드는 안내 요청에 하나하나 응대하며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나름 성실히 수행했다.■ 시청의 수문장!… 철통 청사 방호다음 임무는 청원경찰의 본연의 임무라 할 수 있는 청사 방호였다. 지하 2층부터 지상 8층으로 구성된 청사 곳곳의 상황을 점검하고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사전에 제거하려면 청사 내 순시는 필수다. 특히 3층에는 시장실을 비롯해 실ㆍ국장실이 있어 가끔 강성 민원인들이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불시 항의 방문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는 곳이기도 하다. 본사 정문에서 청사 개방을 하며 민원인들을 상대했을 당시 온화했던 장 반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장 반장의 눈빛은 매서웠다.지하 2층부터 한층한층씩 이뤄진 청사 순시는 생각보다 구석구석 꼼꼼히 이뤄졌다. 순시 도중 파손된 복도 지면 등 시설물 하자가 발견될 때마다 장 반장은 메모를 남기며 후속 조치도 취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나갔다.곧바로 이어진 외곽 순찰. 본관과 별관, 민원실 인근 외부를 돌며 상황을 체크해 나갔다. 특히 폭염이 지속하는 이런 환경에서는 민원인들의 건강에도 이상이 생겨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외곽 순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장 반장은 설명했다. 또 이날 본관 후문에서는 10여 명의 집회자가 모여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무력(?)충돌에도 대비해 순찰이 강화돼야 했다.장 반장은 “청원경찰은 시청을 찾는 많은 집회자와 항의 민원인들을 수시로 상대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단련돼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평소 강인한 체력 관리와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사 나서며 다시 한번 느끼는 ‘친절’외곽 순찰을 마치고 교대 근무자에게 특이사항 등에 대한 인수인계가 이뤄지며 체험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미 시계는 오후 5시를 넘고 있었다. 푸른 제복을 환복한 후 송고실에 들려 미처 챙기지 못한 기사들을 작성했다. 그리곤 미리 잡혀 있던 저녁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둘러 짐을 꾸렸다.청사를 빠져나가려고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장 반장과 청원경찰 2명이 기자를 반겨줬다.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밝은 미소로 문을 개방해 주는 이들을 보니 불과 1시간 전에 잠시 함께 했던 체험 경험 때문인지 적잖은 동지애가 생겼다. 기자 역시 아직은 어색하지만, 오늘 배웠던 환한 미소를 보이며 “늘 고생하십니다”는 말과 함께 값진 청원경찰 체험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안양=양휘모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용인 한국민속촌 ‘웰컴 투 조선’ 캐릭터

디즈니랜드에 간 꼬마가 디즈니 캐릭터들에게 사인을 받고 유람선에 탔다. 꼬마는 실수로 그만 물에 사인 받은 종이를 떨어뜨려 버렸다. 우는 꼬마에게 선착장 직원은 집으로 꼭 싸인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며칠 후 꼬마의 집에 사인이 도착했는데 꼬마가 받지 않았던 인어공주 아리엘의 사인이 끼어 있었다. ‘아리엘이 사인 종이들을 찾아주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 이야기를 듣고 20대인 나도 그 꼬마가 되고 싶었다. 디즈니랜드에 가면 모든 것을 잊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만 있을 것 같아서다. 이후 위시 리스트에는 ‘디즈니랜드 가보기’가 항상 자리잡고 있다. 그 이유는 역시 ‘캐스트’ 때문이다. 디즈니랜드에는 신데렐라, 자스민, 아리엘, 뮬란, 라푼젤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린세스들과 미키와 구피 같은 캐릭터들이 활보한다.처음 용인 한국민속촌의 웰컴 투 조선에 대해 들었을 때, 디즈니랜드가 생각났다. 한국민속촌에 가면 조선시대의 삶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도 디즈니랜드 캐스트에 견줄 수 있는 콘텐츠가 등장한 것 같아 기대도 컸다.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민속촌으로 향했다. ■ ‘광년이’ 희망했지만… ‘기생’역 최종 결정 한국민속촌에 가면 ‘그들’이 있다. 꽃거지를 비롯해 장사꾼, 이방, 기생, 화공, 광년이, 주모 등이다. 웰컴 투 조선이라는 콘셉트에 맞는 총 19명의 캐릭터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이들은 조선시대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관람객과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다. 매년 오디션으로 캐릭터를 선발하며, 이번 시즌에는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뽑힌 각 캐릭터는 고정팬과 팬페이지를 보유하고 있기도 한다. 처음 민속촌 체험을 결정했을 때 어떤 캐릭터를 할까 오랜 고민을 했다. 동료 기자들에게 전에 화제가 됐던 ‘구미호’역을 하고 싶다 말을 하자마자, “넌 각설이가 딱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고민 끝에 기자는 귀엽고 발랄한 ‘광년이’ 역을 희망했지만 미친 짓(?)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다. 사진이 예쁘게 나올 것 같은 ‘기생’ 역으로 결정했다. 분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의상과 인형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때 ‘미희기생’이 들어왔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고운 미모에 놀랐다. 미희기생은 복장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며 여러 이야기로 긴장감을 없애줬다. “보통 저고리의 고름은 왼쪽에 달려 있어요. 근데 기생 옷고름은 오른쪽에 있는데 왜인줄 알아요? 옷고름을 풀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대요.”(미희기생) 옷을 갈아입고나자 ‘화공’이 메이크업을 해줬다. 화공은 민속촌 내에서 금손으로 유명한 인물. 흙바닥에 물병으로 귀여운 그림을 그려주며 어린이 관람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캐릭터다. 속눈썹까지 붙이고, 기생의 화려한 모자인 전모까지 쓰고 나자 제법 그럴싸한 기생 분장이 완성됐다. 잠시 시간이 있어 이들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을까. “저는 연기를 전공했고, 졸업한지 얼마 안 됐어요. 앞으로도 연기나 뮤지컬을 하고 싶은데 관련 경험을 쌓고 싶어 하게 됐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주위 동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미희기생) “요리를 전공했는데 좋아하던 일을 찾다가 이 일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화공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오셨는데 요새는 저를 알아봐주셔 뿌듯해요. 사진이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간 걸 보면 신기해요.”(화공) 이야기를 나누며 이 어린 친구들이 화려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청년으로서 많이 고민한 것이 느껴져 괜히 뭉클했다. ■ ‘기생선발대회’ 막춤 추며 눈길 사로잡기 성공 웰컴 투 조선의 메인 이벤트는 주말에 하는 ‘사또의 생일잔치’다. 그러나 이날은 평일이라 사또의 생일잔치는 없었고 대신 ‘기생선발대회’가 있었다. 사또의 생일잔치에서 가무를 뽐낼 기생을 뽑는다는 콘셉트다. 논의 끝에 기자는 대회에 참가해 막춤을 추기로 했다. 미희기생이 자신이 먼저 시범을 보이니까 보고 따라하면 된다고 안심시켜줬다. 기자는 중전으로 간택받기 위해 궐 문을 들어서는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기생선발대회가 펼쳐지는 관아로 향했다. 볼과 코를 빨갛게 칠한 ‘주정뱅이 이방’과 함께 관아로 가며 대화를 하면서 걷다보니 무더운 날씨 때문에 좀 힘든 게 아니다.내리쬐는 땡볕에 속치마, 겹치마 겹겹이 쌓인 옷이 답답했다. 등에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 관아로 가는 길이 천 리 같았다. 그 와중에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예뻐요!”라는 말에 흐뭇했지만 티내지 않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다소 짓궃게 주정뱅이 이방을 놀리기도 했는데, 캐릭터와 일체가 된 이방의 대사 센스가 놀라웠다.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술 취한 듯한 말투, 이방다운 다소 점잖은 모습을 유지했다. 다다른 관아 앞,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오르는데 그만 내 치마를 내가 밟아버렸다.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나만 지켜보고 있는 상황, 넘어지면 망신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팔을 붕붕 저었다. 역시 프로였다. 이방이 잡아주며 “들어온지 얼마 안돼 아직 적응을 못하였구나”하고 재치 있게 상황을 넘겼다. 주정뱅이 이방과 미희기생은 행사 준비를 하며 오늘은 어떤 연출과 진행을 할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었다. 주정뱅이 이방 발 뒤꿈치에 고무신 모양대로 상처가 난 것이 보여 짠했다. 그 옆에서 나는 어떤 막춤을 출까 하며 떨었다. 오후 1시가 되자 드디어 기생선발대회의 막이 올랐다. 이방과 미희기생이 주고받는 말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기자를 포함해 초등학생, 어린이, 대학생 등 4명이 만보기를 손목에 차고 막춤을 췄다. 신나게 흔들었으나 꼴찌를 기록,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대생이 우승했다. 기방 내 정자로 이동해서도 방문객들의 사진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미희기생이 “손님들~ 평일이라 행사도 많이 없고 한데, 미희 노래 한곡 듣고 가는 건 어떠우?”라는 말을 시작으로 ‘쑥대머리’와 유행가요를 불렀다. 미희기생 역을 맡으며 노래연습을 엄청 했다더니 정말 잘 불렀다. 나도 옆에서 막춤을 추며 거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 즐거운 추억 만들어 주는 콘텐츠 마술사들 이후 미희기생을 일터로 돌려보내고, 다른 캐릭터들을 찾아다녔다. 큰주모가 나를 보자마자 “막내 기생이 왔다더니 그여?”하고 반겼다. 왕 의상을 입은 관광객의 다리를 잡고 “전하~ 저는 시계가 없사옵니다! 두고 가시옵소서!”라고 외치는 꽃거지를 본 소감은 한마디로 ‘대박’. 큰주모 역을 맡은 하효정씨는 디즈니랜드 캐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앳된 얼굴, 작은 체구의 하효정씨는 큰주모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특징이 적어 많은 연구를 했다고. 그는 “머리에 꽂고 있는 주걱, 말씨까지 하나하나 고민해야 했다”며 “연기력 뿐만 아니라 기획력, 콘텐츠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꽃거지 김정원씨도 마찬가지로 “지금 민속촌에서 조선 속 캐릭터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것 같다”며 “향후 어떤 방향으로 콘텐츠를 선보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생 때 한국민속촌을 방문하고 처음 온 것이었다. 짧은 시간 둘러본 한국민속촌은 10여 년 전과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일단 인식부터 다르다. 어릴 때 민속촌은 옛날 집을 재현해놓은 방 안에 옛날 물건을 진열해놓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문 전 어떤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부터 됐다. 이같은 변화는 캐릭터를 맡은 청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과를 인정해 민속촌은 꽃거지를 비롯해 사또, 장사꾼, 화공, 이방 등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매시즌 바뀌는 캐릭터, 스토리, 공연 등을 민속촌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김원영 한국민속촌 마케팅팀 대리는 “5년 전보다 60~70%이상 관람객 수가 늘었고, 이중 20~30대 관람객이 80%이상 증가한 것이 고무적이다”라며 “향후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방안을 모색 중이다”고 설명했다. 여름을 맞아 웰컴투조선과 아주 다른, ‘시골외갓집의 여름’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7080콘셉트로 중장년층은 반가움을, 청소년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벌써부터 어떤 캐릭터와 신나게 놀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손의연기자 사진=김시범기자

[1일 현장체험] 아이스링크 ‘정빙사’

사시사철 얼음으로 덮인 곳이 있다.빙판위를 신나게 달리고 싶을 때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언제든 찾아 갈 수 있는 곳, 바로 아이스링크다. 드넓은 링크에 1년내내 최고의 빙질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숨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여기에는 과학과 기술의 힘도 빌려야 한다. 최고의 빙질을 만드는 직업 ‘정빙사’는 화려한 빙판뒤에 숨은 주인공이다. 체육부 기자가 되기 이전부터 링크장을 찾을 때마다 빙판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늘 궁금했다. 사람들의 스케이트날에 부서지고 깨진 얼음조각은 어떻게 하는지, 움푹 패이고 깎인 곳은 어떻게 메우는지, 또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속에서는 어떻게 빙판을 식히고 다시 얼리는지 의문투성이었다. 그 해답을 찾기위해 나섰다. 단 하루만이라도 얼음 마법사가 돼보기 위해서다. ■ ‘김연아 키즈’부터 ‘제2 이상화’까지 꿈이 모이는 곳 1일 정빙사 체험을 위해 지난 17일 수원 탑동에 위한 아이스하우스를 찾았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전에 찾은 링크에는 어린 아이들로 북적였다.강사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제2의 김연아, 이상화를 꿈꾸며 저마다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링크장 옆 사무실에서 만난 정빙사 이병일(62)씨는 초보 정빙사(?)를 반갑게 맞아줬다.교육이 끝날 때까지 우선 사무실에서 대기하라고 말한 그는 두꺼운 겨울점퍼를 내주었다. 안그래도 링크의 한기에 몸이 움츠러드는 찰나 이 정빙사가 건네준 두꺼운 패딩점퍼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정빙사는 패딩점퍼를 건네며 “오늘 1일 조수가 생겨서 적적하지는 않겠구만”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정빙사는 본격적인 정빙작업을 하기전에 먼저 기계실로 인도했다. 기계실에는 일명 ‘잠보니’로 불리는 정빙차부터 보일러, 냉동기까지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했다. 가장 먼저 보일러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정빙사로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에 눈뜨자마자 해야하는 일이 보일러로 물을 데우는 일이라고 했다.언뜻 듣기엔 ‘링크에 뜨거운 물이 왜 필요하냐’ 싶겠지만 훼손된 빙판 표면을 뜨거운 물로 녹여서 다시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중요한 작업이다. 보일러부터 가동해서 물을 60도까지 데운 뒤 정빙차 물탱크에 물을 보충하는게 첫 번째 업무다. 다음으로 냉동기에 대해 소개했다. 이 정빙사는 “냉동기가 링크 안에서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체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링크 온도는 계절마다 다른데 여름에는 -9.0도를 기준으로 하고, 겨울에는 -7.8도, 봄ㆍ가을에는 -8.7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단다. 실내빙상장 안에 사람들 때문에 실내온도가 올라가면서 빙판이 녹기 때문에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 ‘정빙차’를 잘 다뤄야 진정한 정빙사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정빙차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다. 링크에 갈 때마다 한번쯤은 보게 되는 정빙차는 실제로 보니 불도저를 연상케하는 육중한 몸을 자랑했다.정빙차는 빙판 위에 뿌려진 얼음 찌꺼기를 1톤짜리 폐빙 탱크로 흡입하고, 정빙 칼날(블레이드)로 빙판을 0.1~0.2㎜ 정도로 깎아내면서 빙판 표면에 온수를 뿌려 파인 얼음판의 틈새를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한다.이 모든 작업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면서 유리알 같은 얼음판으로 만들어 준다. 정빙작업의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덩치만큼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정빙차의 작동법을 배우던 중에 아이들의 교육이 끝나면서 링크장 휴식시간이 됐다. 이 정빙사는 “이제 정빙차를 타고 나가도 되겠다”며 링크로 향하는 문을 열고 정빙차를 빼냈다. 정빙차를 링크로 옮기는 동안 빙판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패인 곳과 떨어져 나간 얼음 조각이 많이 보였다. 이 상태로는 다음에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빙차를 제 위치에 옮긴 뒤 정빙차에 올라탔다.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한 후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던 때처럼 떨리고 긴장된 순간이었다. 배운대로 정빙 작업이 가능하게끔 조작한 뒤 조심스럽게 전진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자 정빙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정빙차가 지나갈때마다 움푹 패이고 깎인 얼음판이 매끄럽게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링크를 한바퀴 돌며 정빙작업을 이어갔다. 이 정빙사는 정빙차 운전에 재미가 들린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어때 할만 해? 그래도 운전에 소질이 있구만. 속도는 안나지만 또다른 매력이 있지?”라며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약 10분정도 링크를 이러저리 돌면서 정빙 작업을 마치자 이 정빙사는 정빙차를 기계실에 넣고 이번에는 수동 정빙기를 꺼냈다. 정빙차가 닿지 않는 사이드와 구석의 경우 이 수동 정빙기로 정빙사가 직접 밀며 깎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시범을 보고 난 뒤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가볍게 생각하고 수동 정빙기를 밀기 시작했다.그러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닥은 미끄러운데다가 무거운 정빙기를 직접 밀자니 발바닥과 팔에 있는대로 힘을 줘야하는 이중고가 계속됐다. 한 면을 미는데 만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흘렀다. 이를 지켜보던 이 정빙사는 “정빙차 타는 것은 이거에 비하면 일도 아니야. 매일 하는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나도 할 때마다 힘에 붙인다”고 말했다. 어렵게 사이드 정빙작업을 마친 후 기계실로 돌아와 정빙차 청소를 시작했다. 정빙차 곳곳에 얼음 조각이 끼어있었는데 특히 스크류 사이에 낀 눈이나 얼음 등을 더운물로 꼼꼼이 씻겨야 했다. 이 정빙사는 작은 조각이라도 정빙차 운행 중에 고장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구석구석 잘 청소해야한다고 강조했다.청소를 마치는 중에 또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위해 링크로 들어가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는 빙판위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볼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내가 정돈한 링크를 아이들이 타는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 24시간 링크에서 살아가는 ‘얼음 장인들’ 아이들이 링크를 이용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이 정빙사에게 정빙사의 다른 업무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정빙사는 빙판만을 관리하는게 아니라 링크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운영자였다.또다른 정빙사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는 그는 링크에 있는 동안은 빙판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전했다. 우선 정빙차 밑에 들어가는 칼날은 13일에 한번씩 교체작업을 하는데 혼자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교체하는 데만 한 시간정도 소요된다. 또한 정빙기로 같은 곳을 계속 돌다보면 얼음판 평형에 뷸균형이 생겨서 한달에 한번씩 균형을 잡아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많이 깎여서 낮아진 부분을 높여주기 위해 물을 호수로 분사시켜 낮은 부분을 채워 높이를 맞춰주는 것이다. 이 정빙사는 “이 작업의 경우 손님들이 모두 나간 야간 12시 이후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철야로 이뤄지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도 부수적으로 링크장 내 시설과 전기 시설 등을 함께 관리하면서 고장이 났을 경우 이를 직접 수리하거나 외부업체에 의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링크장 내 강화유리가 많이 파손돼서 강화유리로 교체할때까지 파손된 부분을 PE판으로 대서 임시보수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원래 에어컨 제조 대기업에서 일했다는 이 정빙사는 “은퇴하고 자격증 학원을 다니면서 공조냉동기계기능사와 보일러 자격증, 위험물관리자격증, 소방관리사2급, 흡수식 냉동기 자격증 등 5개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지난 2012년 이 곳에 정빙사로 취업해 5년째 일하고 있다.정빙사는 내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평창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링크가 더 늘어나고 저변이 확대돼 정빙사의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누구든 도전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에게서 정빙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김연아와 이상화, 이승훈이 이 분들 손에 의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정빙사라는 직업에 경외심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아울러 내년도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이분들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이 정빙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고 링크장에 또다시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또다시 정빙차로 향했다. 정빙차가 링크장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준 이 정빙사는 “이봐 신참, 자네 차례야.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지?”라며 내게 정빙차를 맡겼다. “네, 물론입니다. 이제 잠보니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나는 그렇게 기자가 아닌 정빙사로 이날 빙판을 몇 번이고 돌고 또 돌았다. 사람들의 안전과 최고의 빙판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잠보니는 얼음 위를 달린다. 김광호기자

[1일 현장체험] 예비 아빠, 미리 쓰는 육아일기

10개월간의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이달 중순, 어여쁜 딸을 가진 아빠가 된다. 딸의 태명은 ‘찰떡이’,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전까지 뱃속에서 찰떡처럼 잘 붙어 있으라는 의미다. 대형마트라도 갈 때면 전혀 관심도 없었던 아기 옷을 자꾸만 쳐다보게 되고, 기저귀는 뭐가 좋은지 요즘 인기 있는 유모차는 어떤 것인지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얼마 전에는 지역 맘 카페까지 가입하면서 예비 ‘딸 바보’ 대열에 합류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아기를 돌본 적이 없던 나는 여느 대한민국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10개월 동안 임신의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이 같은 생각은 변화됐다. 이후 주말이면 아내와 같이 아기용품을 보러 다니고 틈날 때마다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근처에서 ‘베이비 페어’라도 열리는 날이면 한달음에 달려가 어떤 제품이 새로 나왔는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따져가며 마치 취재라도 하듯 아이를 위한 용품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으아 ~ 앙 이 삼촌 누구야? ㅠㅠ 사랑하는 딸 찰떡이를 맞을 준비는 이제 다 끝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바로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른다는 것. 육아용품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아기를 돌보는 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가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아기 돌보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직접 아이를 맡아 하루만이라도 육아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 “육아, 까짓것…” 쉽게 봤다가 큰 코 다쳐 아내의 도움을 얻어 하루 동안 초보 아빠의 딸이 돼줄 아기를 수소문했다. 주인공은 생후 17개월 된 이혜령양. 이제 막 걷기 시작한 혜령이를 만나기 전 매일같이 ‘기저귀 가는 법’, ‘우는 아이 달래는 법’ 등을 검색하며 육아를 글로 배웠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에 대처하는 상상까지 하면서 이미 육아의 달인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혜령이를 만나기 전날, 잘할 수 있겠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애 보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두고 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며 코웃음을 쳤다. 본격적인 육아체험이 시작되자 자신만만했던 내 발언을 주워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혜령이 엄마 서명순씨(39ㆍ여)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기저귀 가는 방법과 아이를 씻기는 방법 등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1시간 가량 혜령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인형, 동화책 등을 갖고 놀아주며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엄마가 떠나고 나서도 혜령이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육아체험은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듯 보였다. 혜령이와 단둘이 남게 된 이후 제일 처음 했던 것은 아이의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는 블록놀이였다. 집에 있던 젠가(보드게임)를 블록처럼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면서, 블록이 와르르 무너질 때마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혜령이의 모습에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지만 30분도 안 돼 블록놀이에 싫증이 난 혜령이는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온 집안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흥, 한번 먹어줘? 말아? 얌전했던 혜령이는 갑자기 악동으로 돌변했다. 집안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보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부드러운 말로 타일러도 보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소리가 나는 동화책의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애써도 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끝내 혜령이는 감전 사고를 막기 위해 미리 콘센트 위에 붙여놓은 물티슈 뚜껑까지 떼면서 콘센트를 향해 손을 뻗었고, 놀란 나는 큰소리로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빨리 혜령이의 손을 낚아챘다.순간, 혜령이는 코를 몇 번 찡긋거리는가 싶더니 등을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서럽게 울어댔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고 손에 젤리를 쥐여준 것도 모자라 동요가 나오는 유아 TV 프로그램을 틀어주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 난생 처음 갈아본 기저귀… 40분 동안 ‘씨름’ 그러나 다음에 닥친 난관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혜령이 엄마는 혜령이를 맡기기 전 “밥을 먹이고 온 직후라서 따로 밥은 주지 않아도 된다”며 “하지만 대변을 볼 수도 있으니 잘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대변을 봤는지 어떻게 확인하느냐”고 묻자 혜령이 엄마는 “굳이 들춰보지 않아도 알게 돼 있다”고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나는 곧 알게 됐다. TV를 보던 혜령이를 두고 잠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수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혜령이가 대변을 본 것. 거~참, 퍽 난감하군. 기저귀 가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운 뒤라 자신 있게 방수 패드 위에 혜령이를 눕히고 기저귀를 풀었다.양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기저귀를 펼치자 생각보다 거대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혜령이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배운 대로 물티슈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흔적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꾸만 몸을 비틀고 엉덩이 쪽으로 손을 갖다 대는 탓에 결국 세면대로 데려가 하반신 전체를 씻길 수밖에 없었다.기저귀 하나 가는 데만 자그마치 4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 고된 육아전쟁… 아이 미소 하나로 ‘사르르’ 기저귀를 갈자 이번에 혜령이는 자꾸만 칭얼거리며 보채기 시작했다. 아기 띠까지 동원해 업어주고 안아주며 달래 봐도 울음은 계속됐다. 졸려서 잠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해 토닥이며 재우고자 노력했지만 혜령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결국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된 나는 육아 체험 5시간 만에 혜령이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잠시 후 엄마가 도착하자 혜령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이어 엄마 품에 안겨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글생글 웃기까지 했다. 육아체험 전, 아기 돌보기가 뭐 그리 어렵냐며 큰소리를 뻥뻥 치던 나는 “몇 시간 만에 왜 이렇게 수척 해졌느냐”는 혜령이 엄마의 물음에 고개를 숙인 채 대답 대신 괜스레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자가 맛있어서.. 삼촌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그냥 놀아주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5시간 내내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육아를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매일 이렇게 아이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그제야 벽에 기대 조금 쉴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혜령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혜령이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와 내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이어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을 보는 순간 5시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고작 5시간의 육아체험으로 그 고됨을 다 알 수는 없다. 이번 육아체험은 육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맛보기로 경험한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태어날 사랑스러운 내 딸 ‘찰떡이’를 위해 육아 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동시에, 육아는 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될 영역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송승윤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어린이집 조리 교직원

엄마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기자는 아플 때, 힘들 때 그러니까 힘내서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일 있을 때 엄마 음식 생각이 난다.먹고 싶은 음식도 뭐 별것 아닌 것들이다. 삶은 팥을 곱게 갈아 만든 진한 팥 국물에 두툼한 칼국수를 넣고 끓인 팥 칼국수, 직접 주운 도토리로 쑨 도토리묵, 봄철에 제격인 간식 쑥 개떡, 그리고 추운 자주 먹던 담백한 소고기 뭇국… 뭐 이런 것들이다.이 아무것도 아닌 음식들, 막상 사 먹으려고 하면 마땅한 곳이 없다. 직접 해먹기엔 절대 쉽지 않은 음식들이라 꼭 엄마를 찾게 된다.엄마가 해 주는 음식 먹고 나면 힘이 난다. 그러나 요즘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가족 중심의 밥상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급식문화가 대신하고 있다.특히, 요즘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생활이 빨라지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먹는 급식이 제대로 나오는지, 영양은 고른지, 자극적이진 않은지 등등 걱정이 많다.초등학교 예비 학부모인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이집에서의 급식은 식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첫 단체급식으로서, 균형된 메뉴, 올바른 식사 습관과 더불어 건강한 먹을거리를 통한 감사의 한 끼가 되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그래서 22일 성남시 국공립 판교제2어린이집 1일 조리 교직원으로 나섰다. 단체급식소에서 체험을 위해서 분당보건소를 방문해 건강진단도 마쳤다.■ “아이들 먹거리 만큼은 절대 양보 안해요”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위치한 판교제2어린이집(원장 이문옥)은 성남에서 먹거리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이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에게 언제든지 밥 먹으러 오라고 권한다. 또 지역 정치인이 예고 없이 찾아와 급식을 먹어보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이다. 이문옥 원장은 “판교제2어린이집은 영양사, 조리사를 통한 철저한 위생관리와 과학적인 영양관리를 실천하고 있어요. 계절에 맞는 자연식과 양질의 식자재를 이용해 직접 조리해 제공하고 있으며 철저한 위생관리지침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고 무엇보다 조리실 식구들의 손맛과 정성 그리고 팀워크가 최고다.”고 평가했다. 과연 그렇다면 판교제2어린이집 원생 138명과 교직원 25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손창미 영양사, 라정희ㆍ김숙희 조리사의 비밀병기는 무엇일까? 22일 오전 8시에 만난 손창미 영양사는 “어린 시절 밥을 먹는다는 건 단지 배를 채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렸을 때의 식습관은 쉬 바뀌지 않고 어른이 돼서도 지속되기 때문에 오늘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체험이지만 신속, 정확하게 그리고 우리 가족 식사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마파두부밥, 유부장국, 브로콜리숙회, 김치. 여기서 끝이 아니라 오전 간식으로 떠먹는 요쿠르트와 오후 간식 고구마와 우유까지. 오전 10시, 간단하게 오전 간식을 마치고 나서 점심 식사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라정희, 김숙희 조리사는 메인 메뉴인 마파두부밥에 들어갈 양송이 버섯의 껍질을 깠다. “그냥 물에 살짝 헹궈서 쓰면 되는데 왜 귀찮게 일일이 까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라정희 조리사는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내 자식들 먹이는데 귀찮은 게 어디 있어요. 우린 아이들 먹는 것만큼은 절대 양보 안해요. 비싸더라도 좋은 식자재 쓰고, 힘들어도 사과 한쪽도 그냥 내주는 법이 없어요. 토끼 모양으로 사과를 잘라 주면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요. 이게 다 교육인데.” 기자는 눈치껏 왔다갔다하며 일손을 돕다 조리실 한 쪽에 붙어 있는 영유아별 알레르기 식품표를 발견했다. 김숙희 조리사는 “견과류, 갑각류, 우유, 파인애플, 우유 등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거나 먹으면 안 되는 경우를 각 반별 원생 리스트를 만들어 참고하고 있어요.못 먹는 음식 대신 꼭 대체식품을 준비하죠.” 아이들 식성뿐 아니라 교사들의 입맛과 좋아하는 음식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고 있는 이들은 요리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맛있게, 정성스럽게, 예쁘게 해서 먹일까를 고민하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아이들 배꼽시계가 울리기 전인 12시 직전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틈 없이 바쁜 식사 준비가 이어졌다. 영유아기의 식습관이 성장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일생동안 식품에 대한 가치관 형성과 건강 유지에 큰 영향을 준다는 신념하에 이들은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 “깨끗하고 맛있고 정성스럽게” 점심시간에 맞춰 각 반으로 식사가 배달되고 행복한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브로콜리 더 주세요’, ‘김치 맛있어요’, ‘잘 먹었습니다’ 등 아이들의 맛평가와 귀여운 감사인사가 쏟아졌다. 급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하신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라정희 조리사는 “우리 아이들 맛있게 먹는 거 이쁘죠? 이 맛에 힘든줄 모르고 일해요. 집에선 먹지 않는 멸치볶음과 나물을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요. 어머님들이 어떻게 요리해서 주기에 집에서 먹지 않은 나물 등을 잘 먹냐며 레시피를 여쭤 보세요. 어린이집 급식은 철저한 교육입니다. 급식을 통해 심신발달은 물론 식사예절을 통한 편식교정, 올바른 식습관 형성 및 인성교육이 기여하는 것이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00명이 넘는 인원의 식사가 끝나자 설거지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조리실 식구들은 식은 죽 먹기처럼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바로 오후 간식 준비를 시작했다. 기자가 설거지를 위해 고무장갑을 끼자 “어, 그 장갑은 설거지용이 아닌데….”라고 손 영양사가 다른 장갑을 건넸다. “고기와 야채 도마를 달리 쓰고, 장갑도 식자재 세척용과 설거지용이 따로 있어요. 매일 행주도 삶죠. 아무리 먹을거리 품질이 좋아도 위생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일 하수구 청소까지 해요.” 이처럼 판교제2어린이집 급식은 영양사와 조리사의 깐깐함과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철저한 철학이 완성한 작품이다. 요즘 현실은 집밥을 허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맞벌이 가정이 대세여서 가정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계속 줄어들고 외식문화로 인해 인스턴트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린이집 급식을 통한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한 끼의 식사를 통해 예절교육부터, 영양ㆍ경제ㆍ환경ㆍ공동체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는 영양사와 조리사는 단순 아이들의 영양을 공급해주는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으로 아이들의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을 살찌우는 귀한 사람들이다. 6시간 동안 체험을 하면서 찾아보려고 했던 특별한 비밀병기는 없었다. ‘우리 아이한테 먹인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단 하나의 원칙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문옥 원장은 “전 세계인의 0.3%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한 유대인들이 꼭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바로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밥상에서는 절대 혼내지 않는다고 해요.사랑이 넘치는 식탁은 아이의 정서를 안정되게 해주기에 오늘도 우리 아이들에게 배부름은 물론 심리적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성남=강현숙기자사진=김시범기자

[1일 현장체험] 수제 초콜릿 만들기

2월14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다.일각에서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등 매달 14일마다 붙여진 ‘○○데이’를 두고 상술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비판도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밸런타인데이는 연인 간, 가족 간, 친구 간에 초콜릿을 선물하며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다. 그러나 기념일은커녕 절친들의 생일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밸런타인데이를 챙겨본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기념일을 챙기며 기분도 내고 일일체험도 할 겸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수제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했다. ■ 반짝반짝 빛이 나는 초콜릿 만들기 밸런타인데이를 일주일 앞둔 7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신동에 위치한 수제 초콜릿 전문점 ‘나니스쇼콜라’.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밸런타인데이 한정판으로만 제작된다는 위스키 초콜릿부터 하트모양, 나비모양 등 아기자기한 초콜릿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고 상상만 해도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초콜릿을 직접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15년 동안 초콜릿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베테랑, 송승희 선생님을 따라 작업실로 들어섰다. 작업실 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초콜릿 업계에서 11월부터 2월까지는 그야말로 극성수기 시즌이다. 11월11일 빼빼로데이를 시작으로 할로윈데이, 크리스마스에 이어 대망의 밸런타인데이까지. 작업실 내 4명의 선생님은 일일체험을 부탁한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분주하게 초콜릿 제조와 포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작업대 앞에 서자 초콜릿 만들기의 첫 번째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다크 초콜릿 수십 개를 냄비에 넣고 중탕을 시작했다. 중탕을 할 때는 초콜릿이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저어줘야 한다.‘탬퍼링’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초콜릿을 만드는 기본 단계이자 수제 초콜릿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탬퍼링이 잘 돼야만 초콜릿 표면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손으로 잡았을 때도 쉽게 녹지 않으며, 모양도 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수제 초콜릿 만들기 수업에서는 초보 작업자들에게 탬퍼링을 시키지 않고, 탬퍼링이 완료된 재료로 초콜릿을 만든다고 한다. 탬퍼링의 첫 번째 목표는 초콜릿 온도를 47~50도까지 올려주는 것이다. 다크초콜릿 하나에는 여러 가지 지방질이 뭉쳐 있어, 가열돼 녹는 과정에서 주걱으로 저어주며 고루 섞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탕에 사용되는 물 단 한 방울도 초콜릿에 튀어서는 안 된다. 물이 들어간 초콜릿은 순식간에 굳어 버린다. 또 냄비 바닥과 가장자리 등 곳곳에 묻은 초콜릿 온도는 제각각이라 주걱으로 싹싹 긁어모아 섞어줘야 한다.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야 하니 탬퍼링 작업을 한 지 불과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냄비를 꽉 쥔 손이 얼얼하고 주걱을 돌리는 손이 저려왔다. 잠시 후 초콜릿 표면에 온도계를 갖다대니 47도라는 숫자가 표시됐다. “이제 밖으로 꺼내세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그런데 웬걸, 이제 다시 온도를 내려야 한단다. 27도까지 다시 떨어뜨리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찬물에 냄비를 넣었다 뺐다 반복해야 했다. 이번엔 찬물에 5초씩 올려둔 후 물 밖으로 빼내 계속 저어주는 방식이다.행여 5초를 넘길까 마음 속으로 1,2,3,4,5 숫자를 세고 밖으로 꺼내 초콜릿을 섞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한번 물속에 넣었다 뺄 때마다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녹았을 때보다 초콜릿이 조금씩 쫄깃하게 굳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달콤한 초콜릿 향기도 새어나왔다. 몇 번을 왔다갔다하니 27도까지 온도가 떨어졌다.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아니란다. 이번엔 또다시 끓는 물에 중탕하며 온도를 재차 올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31도까지 올리는 것이 최종 목표다. 어휴 정말 힘들었다.더구나 이번엔 온도가 한 번에 너무 많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끓는 물 위로 단 1초만 올려둬야 하는 것이 핵심. 재빨리 넣었다 빼 저어주는 과정이 반복됐다. 한번 할 때마다 얄밉게도 단 1도씩 올라가는 초콜릿. 대체 언제쯤 원하는 온도에 도달할까. 적정온도를 맞춰야 하는 것도 중요하며 이때 잘 저어주는 과정이 수반돼야 초콜릿에 윤기가 생기고 알갱이 입자가 없어진다고 한다. 온 신경이 초콜릿으로만 향했다. 초콜릿이 완연한 진한 갈색으로 변했고, 드디어 31도가 됐다.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 수제 초콜릿 만들기 1단계가 끝났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선물’ 사르르~ 선생님은 탬퍼링이 완료된 초콜릿을 보고 “탬퍼링이 잘된 것 같아요! 윤기가 좔좔 흐르네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느낌이 좋다는 선생님 말에 힘들었던 생각도 잠시 ‘초콜릿 만들기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다’고 내심 뿌듯했다. 고된 탬퍼링 과정이 끝나자 다음 단계는 원하는 모양의 틀에 초콜릿을 채워 넣는 과정이다. 초보자들의 손에는 짤주머니가 쥐어진다. 짤주머니에 초콜릿을 담아 두 손으로 움켜쥔 뒤 나뭇잎, 하트 모양의 틀에 꽉꽉 채워 담았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손이 떨리고 힘이 꽉 들어가던지. 뭐 하나 쉬운 단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콜릿으로 가득 채운 틀을 단단하게 굳히기 위해 냉동고에 넣었다. 약 10분만 있으면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든 수제 초콜릿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설레는 마음으로 냉동고에서 틀을 꺼내 초콜릿을 하나하나씩 집어들었다. 얼음 틀에서 얼음을 꺼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초콜릿 여기저기가 조금씩 깨졌고, 겉면은 매끄러운 갈색이 아닌 하얀색 무늬가 곳곳에 끼어 있었다. 선생님은 탬퍼링 과정에서 일부 물질들이 잘 섞이지 않거나 기포가 들어가 생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아쉬웠다. 탬퍼링이 잘된 것 같다고 기세등등했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처음치고는 수준급이라면서 실망한듯한 기자를 달래줬다. 처음 탬퍼링에 도전하는 사람 중에는 아예 틀에서 초콜릿이 빠져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초콜릿을 한 입 먹자마자 아쉬움과 실망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상술이라는 비난에도 왜 밸런타인데이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초콜릿을 주고받는지 알게 됐달까. 당장 달려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맛보고 싶은 맛이었다. 수제초콜릿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많았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보자 가히 비쌀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이 가득해야 하고 잠시라도 한 눈 팔았다가는 제대로 된 완성품이 나올 수 없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초콜릿은 몸에 해롭다는 얘기가 많지만 시중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초콜릿과 달리 설탕과 기름이 들어가지 않아 더욱 건강한 간식이 될 수 있다는 수제초콜릿.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고 싶다면 수제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앞으로 매년 발렌타인데이 때마다 초콜릿을 만들었던 오늘의 달콤함이 오래오래 떠오를 것만 같다. 한진경기자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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