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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 사라져 가는 전통 명맥 잇는 ‘대장장이’

두들기고 달궈 호미로 괭이로… 텅텅텅 무쇠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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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맞는 1일 현장체험을 앞두고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 지 걱정이 많았다.

 

당장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체험에 고민하던 기자에게 TV 화면을 지켜보시던 사회부장님이 “대장간은 어때? 요즘 사라져 가는 추세에 전통을 고수하는 직업을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라고 힌트를 주셨다.

 

부장님의 제안에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입사 1년이 채 안 된 막내 기자의 첫 1일 현장체험을 걱정하던 부서 선배 기자들의 우려도 부장님의 한 마디로 해결됐다. 사회부 기자의 1일 대장장이 체험은 그렇게 결정됐다.

 

■ 신식 매장 사이로 아날로그 감성 가득 ‘대장간’
주제를 정했지만, 막상 1일 현장체험을 할 수 있는 대장간을 섭외하는 것이 문제였다. 숲이 벌목되고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밭을 갈 호미나 땔감을 쪼갤 도끼가 필요 없게 된 탓에 대장간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수원도 수십곳에 달하던 대장간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이제 3곳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기자가 찾은 ‘제일대장간’도 그 중 한 곳이다. 최신식 농기계들로 가득한 매장들을 지나쳐 호미, 괭이 등 아날로그적인 농기구들이 빼곡히 들어찬 대장간에는 이른 오전임에도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에 자리한 ‘제일대장간’은 철물 농기구와 공구의 제작부터 판매가 한 자리에서 이뤄지는 단어 그대로의 ‘대장간’이다. 이곳에서만 48년째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천재동씨(69)를 만나 하루 동안 ‘원스톱 교육’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50년이 넘도록 쇠를 두들겨 온 베테랑 천씨의 손을 거치면 수십 초 만에 농기구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평상복 차림으로 대장장이 체험을 하겠다고 찾아온 기자에게 천씨는 “그런 복장으로는 어림도 없다”면서 “제대로 해볼 생각이라면 옷부터 갈아입어라”고 다그쳤다.

준비해 온 작업복으로 갈아입고서야 천씨의 작업을 옆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2천℃가 넘는 데다가 위험한 기계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곧장 작업에 투입할 수는 없다는 천씨의 설명에 1시간 넘도록 농기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대장간이라는 작업 공간에 대한 장인의 자긍심이 느껴진 데다가 천씨의 영업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작업 과정들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 철근도 단숨에 ‘싹둑’… 절삭기계 보고 겁이 ‘덜컥’
창고에서 석탄을 지고 와 화덕으로 옮겨 담고, 화덕에 불을 지피고서 쇳덩이를 자르는 작업을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뜨거운 대장간의 열기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주변에서 반드시 챙기라고 했던 수건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농기구를 만드는 공정은 보기에는 간단하고 쉬워 보였다. 긴 철근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뜨겁게 달궈진 화덕에 넣은 뒤, 철근이 빨갛게 달궈지면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면 된다. 모양이 잡힌 철근을 물이나 기름에 넣고 식혀주면 어엿한 농기구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자신만만해하는 모습에 천씨는 ‘바라시 빠루’라고 불리는 도구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이 도구는 아파트 거푸집 해체에 쓰이는 배척(노루발못 뽑이)이로, 쇠로 만든 지레의 한 끝이 노루발장도리의 끝같이 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인 천씨의 손에서 ‘바라시 빠루’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됐다.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지켜본 10분 사이에 10개가 넘는 ‘바라시 빠루’가 뚝딱 만들어졌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기자도 수건을 둘러메고 목장갑을 낀 뒤 쇳덩이를 자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1m가 넘는 철근을 절삭기계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쇳덩이도 한 번에 잘라내는 기계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천씨는 “겁먹지 말고 타이밍을 잘 맞춰서 집어 넣으면 된다”며 여러 차례 시범을 보여줬다. 철근을 절삭기에 넣는 순간 반대쪽 철근을 잡고 있던 오른손에 전해진 ‘딱’ 하는 느낌은 대장장이 체험이 얼마나 고될지를 예고하는 듯했다.

잘라진 10여 개의 철근을 화덕에 넣는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뜨겁게 달궈진 석탄들 사이로 20㎝가량의 철근들을 꽂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천씨는 “2천℃가 넘는 뜨거운 곳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아니나다를까, 천씨 말대로 마지막 철근을 집어넣었을 때 화덕에서 뭔가가 튀어 올랐다. 화덕 속에 들어간 불순물이 열을 못 이겨 튕겨 나온 것이다. 화덕과 다소 떨어져 있었기 망정이지 천씨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옆에서 볼 때는 간단하고 쉬워 보였는데…’
그렇게 철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10여 분을 기다렸다가 잘 달궈진 놈 하나를 집어들었다. 천씨는 이 작업부터가 진정한 대장장이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단계라고 설명 했다. 옆에서 지켜볼 때는 기계에 넣고 철근 끝 부분을 납작하게 만든 다음, 망치로 두들겨 용도에 맞게 휘어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공정이었기에 의아했다.

하지만 기계를 조작하기 위해 발판에 발을 대는 순간,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 조절을 잘못해 기계는 의도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제때 꺼내지 못한 철근은 농기구라고 할 수 없는 모양으로 찌그러졌다. 

각도를 바꿔 다시 넣어봤지만, 모양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었다. 쩔쩔매는 기자의 모습에 천씨는 웃으면서 “철근을 넣기 전에 기계 속도를 감으로 익혀야 한다”면서 “발의 힘을 적절히 조절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몇 차례나 기계 발판을 밟아 가며 감을 익히고 나서, 다시 철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적절한 속도로 돌아가는 기계 사이에 철근을 넣어봤지만, 이번에도 조급증이 문제였다. 예상보다 철근이 납작해지는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에 발판에 살짝 힘을 더 준다는 것이 또다시 철근을 ‘쓸모없는 쇳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보다 못한 천씨가 나서서 도와준 덕에 비로소 끝 모양이 제법 그럴 듯하게 납작해졌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 유병돈기자가 수원시 팔달구 구천동 제일대장간에서 대장장이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철근이 식기 전에 모양을 잡아야 한다는 천씨의 말에 모루에 철근을 올려놓고 망치질을 시작했다. 정말 쉬워 보이는 작업이었던 망치질조차 힘 조절이 관건이었다. 의욕이 앞서 너무 강하게 내리치는 바람에 철근은 필요 이상으로 휘어져 버렸고, 또다시 천씨가 나서야 했다. 

그렇게 모양이 잡힌 철근을 물에 집어넣어 굳히고 나니 그제야 농기구라고 할 수 있는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천씨는 1분 만에 해낸 작업을 ‘초보 대장장이’ 기자는 10분이 넘게 걸렸다.

짧은 시간 동안 과도하게 긴장한 탓인지,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작업을 마친 뒤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천씨의 한마디가 감히 ‘장인 따라잡기’에 나섰던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재주 좋은 사람도 3~4년은 걸리는 걸 하루 만에 하려고 하니 당연히 안 되지”라고 어깨를 토닥였다. 

유병돈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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