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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完. 보편적 출생신고제

더는 유령 아이 없게... ‘보편적 출생신고’ 외치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는 ‘아동의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 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는 아이들의 출생등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 출생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보편적 출생신고제’다. 현행 법제의 빈틈을 메우고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출생신고는 한 아이가 태어나 세상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 ‘출생등록될 권리’ 인정... 변화의 시작 지난 2020년 6월 8일 대법원이 의미있는 판결을 내놨다.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중국 국적의 아내가 본국에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지 못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던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해당 판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인정한 점이다. 재판부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 될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며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분명 환영할만한 판결이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출생등록권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관련 시민 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이같은 한계를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 사회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이정표인 셈이다. ■ ‘산 넘어 산’ 출생통보제의 운명은... 현행법상 어머니에게 주민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의료급여관리번호가 없으면 출생사실의 통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배제된 아이들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신용카드를 만들지도,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지도 못한다. 이에 아동으로서의 기본적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 출생사실은 알려야 한다는 ‘출생통보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지난 3월 2일 ‘출생통보제’를 골자로 하는 ‘가족 관계의 등록에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내놨다.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올해 안으로 ‘출생통보제’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료계의 거센 반대 여론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료계는 자신들이 출생신고를 해야하는 행정기관이 아닌데, 행정업무를 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며 “하지만 저희는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서를 발급해줄 때 혹은 건강보험공단에 보험료를 청구할 때 전산작업을 한 번 더 해주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츨생통보제로 이득을 얻는 아이들이 많을지,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많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출생등록, 가장 기초적인 권리 보호 장치 국가의 출생등록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출생통보제’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가지 제도를 통칭하는 개념이 ‘보편적 출생신고’다. 즉, 출생통보제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혹시라도 우리가 놓친 아이는 없는지 파악해 지역사회 전반을 보듬는 아동보호체계를 ‘보편적 출생신고제’라 할 수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현재 논의 중인 출생통보제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 설령 출생이 통보되더라도 이주아동은 국내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난민 신청자 자녀의 경우 본국과 접촉할 수 없고 난민 지위 심사 결정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출생 등록이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법무부는 지난 2월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외국인 아동에 대한 체류자격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체류자격을 받기 위해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살면서 학교에 재학 또는 졸업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6~7년만 살면서 학교에 다니면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6세 이하 아동은 제외되고 부모에게 최대 3천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예지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출생등록은 법적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고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보호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라며 “국적 여하를 불문하고 아동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4. 살아있는 유령들

집에선 ‘달리아’로 부르지만 밖에선 ‘미등록 아동’입니다 난민 아동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며 꿈을 꾸고 싶을 뿐이다. 평범함은 그들에게 사치다. 확실한 신분만 보장돼 있다면 사치를 부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그들이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 중 체류자격이 없어 미등록 상태가 된 아이들. 난민을 포함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현재 국내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관련 시민단체들은 약 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쩌면 그 숫자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달리아의 공포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소개된 달리아(가명)의 사연은 미등록 난민 아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달리아의 부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들어온 뒤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류자격이 불안해지면서 당시 18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달리아 역시 미등록 상태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 살지만 조심해야 한다. 언제든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질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을 달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던 부모님의 충고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현장 학습을 가야 하는데 주민번호를 적어낼 수 없었다. 달리아는 자신의 신분이 들통날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불안한 자신의 신분 탓에 대학에 갈 수 없겠다는 절망감이 그를 덮쳤다. 친구들이 “대학 어디 갈 거야?”라고 물어도 달리아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학은 고사하고 언제 부모님의 나라로 쫓겨갈지 알 수 없어 두려울 뿐이었다. 달리아는 “솔직히 본국(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잘 모른다. 말만 조금 할 수 있고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못한다. 한국사는 게 당연하고, 여기서 자라왔는데, (본국에 가게 되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냥 무인도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며 “인권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배웠는데, 내가 자라고 살아온 이 땅에서는 그 권리를 찾으면 안 된다는 신호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난민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출생신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본국 정부에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 보니 자녀들은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주민들의 자녀들도 본국에서의 출생 신고,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요구받으면 등록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양한 이유로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될 권리를 갖는다.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비준국으로서 이 협약을 지켜야 하지만 실행할 법이 없다. 한국과 부모의 국적국 어디에서도 출생 등록이 되지 않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된다. 이들은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받을 수도 없고, 아동이라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최근 학교를 다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두천가톨릭센터 이석재 신부는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도 못한다.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할인도 받지 못해 성인 요금을 내기도 한다”며 “아이들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추방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안해한다. 최소한 체류기간이라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주아동도 출생 등록이 가능하다? 그동안 미등록 이주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실시됐다. 법무부에서는 지난해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대상 선정 기준이 엄격하고, 오는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 시흥시에서는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려 했지만 지난 4월 상위법 위반을 이유로 각하 결정됐다. 어렵게 마련된 대책들이 무산되면서 아이들의 출생이 신고될 권리가 잊혀 가던 중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외국인아동 출생등록’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법안은 미등록 외국인이 관할 시군구에 출생등록 신청을 할 수 있게 했고, 담당 공무원이 불법체류자를 발견하더라도 출입국 관서에 통보하는 의무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권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6월 초쯤 발의할 예정이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성안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3. 아픔보다 먼저 배운 가난... 맹장이 터져도 울지 못했다

지난 12일 오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위치한 안산 글로벌다문화센터 3층. 난민 아동을 비롯한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이들은 당황했지만 선생님은 “그냥 사진만 찍는거야”라며 집중시킨 뒤 칠판에 적힌 한국어 문장들을 읽어내려갔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복도에서는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음식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아이들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센터는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교실 밖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그 소란스러움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던 교실 한 켠에 학생들이 직접 적은 ‘나의 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학생은 ‘내 이름은 카마나(가명)이에요. 저는 콩고 사람이에요. 나의 가장 큰 꿈은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갖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콩고 출신 학생은 ‘저는 균형있는 삶이 좋아요. 제 삶도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삶이 되고 싶어요.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삶의 균형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센터에서는 9세 이상 24세 이하 이주배경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오전 9시 10분부터 50분씩 3교시에 걸쳐 한국어 수업이 이뤄지고, 오후 2시부터는 ‘특별한국어’ ‘자치회의/문화활동’ ‘미술’ ‘원예’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모두 한국과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것들이다. 이처럼 밀도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덕분에 안산 뿐 아니라 시흥, 파주, 일산, 평택, 천안 등 곳곳에서 센터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아픈데 돈은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 누구보다 밝아보이는 아이들이지만 가슴 한 켠에는 말 못할 고민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특히 체류자격이 불확실한 난민 아동들의 고민이 깊다. 부모님을 따라 중도에 입국한 아이들도 있지만,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난민 아동 대부분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다. 하지만 한국 출신이 아니기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 성인이 돼서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건강’이다. 아파도 맘 편히 병원에 갈 수 없고, 막상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치료비 걱정에 한 숨부터 나온다. 며칠 전 난민 A군에게 이같은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배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센터 선생님의 권유에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A군은 맹장이 터질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고 곧장 큰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초음파 검사 등을 받은 뒤 응급 수술에 들어갔고 입원 뒤 경과를 지켜본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고비를 넘겨 안도했지만 A군 가족에게 250만원의 병원비가 청구됐다. 하루 일당 8만원을 벌며 겨우 먹고사는 A군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큰 돈이었다. A군 가족의 사례는 단순히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맘편히 병원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악순환’의 고리가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목돈이 들어서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병원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 못 가니 또 아프고, 아프면 일을 못해 돈을 못 벌고, 돈을 벌지 못해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아이가 집에 있으니 부모가 일을 못하는 악순환이 이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 난민 아동, 출생 순간부터 도와야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018년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1년간 병원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이용하지 못한 경우가 68명 중 37명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앞서 2013년에 발표한 ‘한국 거주 난민아동 생활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서는 난민 아동들이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아무런 신분증명을 받지 못해 의료보험에 의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치료가 절실해도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비싼 병원비 때문에 아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19년 건강보험제도가 개정되면서 난민이나 인도적체류자도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됐지만, 난민신청자는 제외됐다. 1%대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난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하는 난민 가족은 점점 늘어나고, 당연히 누려야 할 아이들의 건강권도 침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은수연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실장은 “(난민) 아이들이 영유아기 시절부터 적절한 교육과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자라다보니까 나중에 입학해서야 장애 여부가 발견된다. 지금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도 (발견된 사례가) 있다”며 “건강과 교육은 맞물려서 돌아간다. 아이들이 출생의 순간부터 도움을 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2. 낯선 한글에 새긴 난민의 꿈

유난히도 햇살이 화사했던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작은 동네.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아담한 단층집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달리자 이질적인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연 지 3년가량 된 동두천가톨릭센터였다. 지난 2019년 개소 당시 센터는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원래 이름은 ‘가톨릭 난민센터’였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동네에 난민들이 몰리면 다른 주민들에게 위협감을 줄 수 있고, 상권이나 정주 환경도 나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하릴없이 개소를 미루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때문일까. 한적한 동네 분위기만큼이나 센터 분위기는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장비를 꺼내들던 그때 취재진의 귓가에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갑게 문을 열어준 선생님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 “놀며 공부하며”...웃음꽃 핀 아이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행여 수업에 방해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아이들이 하나 둘 카메라 앞으로 모여들었다. 카메라가 제법 익숙해지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공부하는 아이들과 떠들며 노는 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 하나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중도입국 아동들이 그룹을 이뤄 수업 중이었다. 선생님과는 영어와 모국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문제의 단어는 ‘엎드리다’와 ‘엎어지다’. 두 단어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발음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한국어를 노트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쓰며 열심이었다. 한쪽에서는 막 받아쓰기 수업을 마치고 독서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중하게 책을 고른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관심은 오로지 카메라였다. “이게 뭐예요? 만져봐도 돼요?” 한 아이는 무선 마이크를 직접 들고 리포터처럼 여기저기 인터뷰를 시도했다. 인플루언서가 꿈이라는 아이는 춤을 추기도 했다. 플래시가 함께 터지는 카메라가 신기해 연방 셔터를 누르는 아이도 웃음꽃이 만개했다.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밝았던 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표현이 서툴러 관계맺기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아이다움이 나타났다. 센터에서의 교육도 큰 도움이 됐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깔깔대는 모습이 여느 한국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 ‘난민’이라는 굴레에 갇힌 아이들 난민 가정에는 유독 아이가 많다. 2명, 3명은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교육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난민 아동의 학교 입학은 순탄치 않다. 출생 등록이나 신분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다행히 동두천에서는 입학이 순조로운 편이다. 입학이 끝이 아니다. 난민 부모들은 한국어가 서툴어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나 알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기도 한다. 영어로 번역돼 나오기도 하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어에 능숙한 아이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사회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어떤 건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하는데 난민 아동들은 그러지 못한다. 동두천가톨릭센터 대표 이석재 신부는 “일반적인 이민자들과 달리 난민들은 한국에 친구나 아는 사람이 없다. 문화도 낯설고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진다”며 “그런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방치돼 있다. 방학기간에는 과자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부모의 무기력함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 “신분 보장해줘 불안함 느끼지 않도록...”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꿈이 있다. 멋진 직업을 갖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꿈.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우리가 만든 법과 제도가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 결국 그들이 꿨던 꿈은 한국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이들이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이석재 신부의 생각이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고 어디서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고등학생도 받아들여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이석재 신부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난민들의 고민은 생존뿐이다”라며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해주고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없애줘야 아이들도 마음놓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마저 어렵다면 체류기간이라도 보장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 1.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스스로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교 때문에, 정치적 박해 때문에, 혹은 전쟁 때문에 떠밀리듯 모국을 떠나야했던 이들이 난민이다. 그 중에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적지 않다. 난민이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들은 오로지 부모만 의지한 채 낯선 땅에 발을 들였다. 적응도 벅찬데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감내해야 한다. 차별, 혐오, 편견 등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단어들을 온 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난민들이 살고 있다.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누적 난민인정자 수는 총 1천91명이다. 2020년 한 해에만 69명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미얀마,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 등 국적도 다양했다.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3만명을 훌쩍 넘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림자처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 난민아동도 사람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제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약속’이다. 2021년 1월 기준 196개국이 비준했고, 한국도 지난 1991년 이 협약에 가입하고 비준했다. 일찍부터 아동 인권에 한국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31년이 지나도록 출생등록 제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 중 약자인 난민아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0.4%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24.8%에 크게 못 미친다. 난민 구제에 소극적인 우리 정부 입장에서 차마 난민아동의 상황까지 배려할 여유는 갖추지 못한 셈이다. 이렇게 방치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성유진 변호사는 지난 3월 국회에서 ‘출생통보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현 가족관계등록법으로는 외국 국적 아동의 출생신고가 힘들어 출생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최소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만이라도 출생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법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8세 미만 아동’ 난민인정자의 33% 난민업무를 시작한 1994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난민인정신청 건수는 7만1천42건이다. 이 중 3만9천94건에 대한 난민인정심사가 완료됐고, 799건이 난민인정 결과를 얻었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1천917건, 불인정은 3만7천238건이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난민인정신청 중 18~59세의 신청 건은 6만8천95건(95.9%), 18세 미만은 2천751건(3.9%)이다. 60세 이상은 196건(0.3%)이다. 특히 18세 미만 난민아동 중 0~4세는 1천493명, 5~17세는 1천258명이었다. 인도적체류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2020년 기준 누적 인도적체류자는 2천370명이다. 이 가운데 18~59세는 1천867명(78.8%), 18세 미만은 486명(20.5%), 60세 이상은 17명(0.7%)이다. 18세 미만 난민아동 중 0~4세는 271명, 5~17세는 215명이다. 난민인정자로 범위를 좁히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든다. 현재까지 누적 난민인정자는 모두 1천91명으로, 이중 18~59세는 727명(66.6%), 18세 미만은 362명(33.2%), 60세 이상은 2명(0.2%)이다. 2020년 한 해에만 18세 미만 난민아동 36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난민으로 인정받은 아동 중 0~4세는 209명, 5~17세는 153명이다. ■ 수도권 난민아동들을 둘러싼 벽 경기도와 인천에는 약 2만4천여명의 난민들이 체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난민신청자들이다. 난민신청자의 약 4%가 18세 미만이라고 가정한다면 960명의 난민아동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연령대 분포는 정확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확인이 어려웠다. 수도권 내에서도 평택, 포천, 안산에 특히 난민이 많다. 이들 지역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다수 살고 있다는 특징과 더불어 비교적 풍부한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가 이점인 곳들이다. 다양한 외국인 커뮤니티도 형성돼 있어 크고 작은 도움도 기대할 수 있다. 부모를 따라 한국의 낯선 동네까지 온 난민아동들도 이같은 지역적 이점에 기대어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록 생김새는 달라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쓰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어도 우리 사회와 법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당장 비싼 어린이집 비용부터 감당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받는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비싼 보육료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도 보험에 들 수 없어 수학여행을 못 간다거나, 열심히 태권도를 배워도 국기원에 갈 수 없다. 가장 심각한 건 아파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에 맘 놓고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산시 글로벌청소년센터 이승미 센터장은 “현재 안산에만 약 100여명의 난민아동들이 있는데 대부분 국내에서 출생했다. 일부는 입국 당시에 데리고 온 경우도 있다”며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도 없어 난민에게 주는 외국인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러다보니 난민아동들에게는 곳곳이 벽이다. 우리가 아무리 지원해준다 해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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