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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美 블룸필드 대학교 3D print 프로젝트

현대에 이르러 3D 프린트의 기술 공학은 이미 사회 전반 모든 분야에 흡수되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 로봇과 함께하는 삶이란 미래의 상상력은 이미 우리생활의 한 현실이 되었으며, 코딩에 따른 계획과 프로그램에의한 자신만의 로봇을 선택할 수 있는 앞서가는 테크널러지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이는 인공지능의 과학, 의학, 그리고 생물공학, 심지어 인간의 감성과 예술적 촉을 원하는 건축, 순수 미술영역에까지 3D 프린트의 그 영향력은 깊이 적용되고 있다. 오늘은 미래의 예술과 과학을 테크널러지의 영역에서 창의적으로 끌어갈 미래의 글로벌 세대의 주인공, 미국 뉴저지 블룸필드 대학교 Creative Arts and technology 의 3D print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수학적 공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며 게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Game development 학과의 과목인 CAT 194 3D design 의 프로젝트이다. CAT 194 3D 디자인클레스에서는 3D 프린트와 레이저 커팅을 이용하여 세계문화 프로젝트를 선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조각 제작 방법을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했다. 이 클레스는 앞서가는 테크널러지의 사용과 3D 몰딩의 소프트 웨어를 적용시켜 역사적인 유명한 기념물을 만들기 위한 전통적이면서 디지털적인 스튜디오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은 문화속의 전통적 예술과 문맥상의 지식을 얻고 세계 문화로부터 역사적인 건축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는 시간이 주어지게 된다. 학생들이 공부한 세계문화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미국, 그리고 고대 마야, 그리스, 이집트 문화이며, 1년의 커리큘럼에 따라 학생들은 디자인의 요소들과 원리들을 연구해서 그들의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정통적인 조각 방식으로 시작되는 목조 조각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한 문와의 역사적 유물을 입체파 큐비즘 디자인으로 시작한다. 입체파 그림의 양식은 끊어진 선에 의해 표현되고, 대칭되며, 다시 배열되는 디자인 형식이며 이 디자인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재구성되어 레이저 프린터를 이용한 부조 형식의 조각과 스케치가 함께 액자에 꽂혀지게 된다. 다름 단계로 학생들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와 3D 몰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비로서 레이저 커팅과 3D 프린팅을 위한 3D 조각작품을 완성시키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정통적인 조각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기술적인 테크널러지에 직접 접목시키며 미래적인 수학적 기술과 순수미술 의 조화로운 융합을 지속하며 각 문화전통의 역사와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삶과 꿈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예술의 교육 영역이 되고 있음을 믿고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빌렌도르프 비너스’

세기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루브르 박물관의 밀레의 비너스을 보면서 비너스가 여신이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조각이며 영원한 미의 신으로 존재할 것이다. 오늘은 비너스의 이름 아래 지금까지의 비너스가 갖은 아름다움의 형상과는 조금 차원이 다를 법 한, 빌렌도르프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를 소개한다. B.C 25000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1908년 오스트리아 윌렌도르프 마을 철도 공사 중 오리냐시안 베스의 퇴적물에서 우연히 발견된 손안에 꼭 쥘 수 있을 만큼 작은 여성 돌 조각상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와 더불어 이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조각은 선사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면서 다산의 풍요로움을 상징할 만큼 강한 주술력과 그 당시 족장이었던 여성의 파워와 숭배 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조각이다. 문자라는 것이 없었기에 기록물을 남길 수 없었을 무렵 동굴 벽화와 조각은 오직 그들의 힘과 파워, 그리고 희망을 역사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권력이란 말로 나타내며 전해질 수가 없는 것이라 반듯이 문서화나 그림, 또는 조각으로 그 권력의 힘이 표현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반듯이 그림이나 조각상에는 그 특정 인물이 권력자라는 증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옥으로 된 묵직한 도장의 용도로 쓸 수 있는 옥쇄와 같은 상징적 물건을 쥐고 있거나 또는 이집트 벽화의 왕이 들고있는 지팡이와 같은 그러한 증표가 그 인물의 힘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어떤 증표를 갖고 있을까? 불행히 그녀는 어떤 증표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족장 또는 왕이라는 표지는 없지만 풍만하고 압도적인 풍만한 가슴의 특징적 부각으로도 이는 다산과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25000년전 모계사회였던 그 당시의 이 조각상은 다산의 의미와 여성 족장으로서의 힘을 더욱 강하게 과시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주술적이며 아름다음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생각하지만, 그들의 예술은 인류 최고의 고귀한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절실한 그들의 소망과 진정한 바램을 담아내는 것이다. 소망하기에 그려내고 원함에 있어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이다. 문자가 없었던 시기 정확한 역사를 추정할 순 없지만 선사시대 조각과 동굴벽화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회를 구조적으로 만들어갔는지 이 작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조각상을 통해 사회상과 시대상을 인류학적으로 잘 엿볼 수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야밤에 외출을 금기시 했던 17세기 조선,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에는 조선시대 양반 계층의 낭만적인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는 이러한 화제가 남겨져 있다. 달빛 침침한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달빛이 녹녹히 녹아드는 배경과 밤 11시에서 새벽 한시를 의미하는 삼경, 그리고 잘 차려입은 양반 남 녀, 이곳은 어는 담 모퉁이 여인의 새빨간 자주 빛 고무신이 옥색 치마와 너무 잘 어울리는 초승달 밤이다. 절대 왕정이 붕괴되면서 프랑스 세기의 유럽 로코코 미술의 화려함을 절정화시켰을 때 즈음, 17세기 동쪽의 조선은 또다른 모습으로 감각적이며 명주 실처럼 빛이 나는 화려한 아름다운 선으로 조선 풍속화를 만들어 냈다. 조선의 화가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왕실이나 양반들의 요청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국가가 만든 관청인 도화서의 소속된 화가인 화원으로 그림 활동을 시작하였다. 왕실에 의해 그려진 한지의 동양화, 이 점 또한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동기와 아주 유사함이다. 프랑스 왕실,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Jeanne-Antointte Poisson)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프랑스와 부쉐(Francois Boucher)는 황금빛 시대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유럽 문화의 기반을 충분히 가꾸어 주는 귀부인들의 과한 화려함으로 고급진 장식의 정원을 인물화와 함께 그려낸 점에 반해, 조선의 신윤복의 그림은 그리는 표현 대상이 양반뿐 아니라 좀 더 소외된 인물 즉, 승려, 기생, 의녀를 등을 묘사하며, 당시 금기시 되었던 뒷이야기의 장면들을 바로 양반들의 모습을 통해 묘사시켰다. 여성들의 외출복, 머리 쓰개 등 다양한 패션을 그려주면서 그 당시 17세기의 금기시 하는 양반들의 실제 삶을 보는 듯 하다. 양반의 위선과 이중적인 태도를 풍자한 해학적 표현이긴 하지만 그림 속 화려한 자주빛, 옥색의 아름다운 채색은 금기시 된 애정행각의 추함이 아닌 조선 청춘 남녀 옥빛 연정을 그려낸다. 사실적 근거로 그려진 이러한 조선 역사의 풍속화는 아련하게 녹아내린 한지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줍어 하는 두 인물의 묘사를 통해 조선 후기의 숨겨진 해학이 전혀 어색치 않게 보여짐으로써, 한 편으로 감추고 싶었왔던 금기시 되는 일들 마저 작가의 눈을 통해 그들의 애정 어린 이야기는 아련하게 초승달속에 스며있는 듯하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하늘의 날개,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현대의 미학적인 깊이로 세계 미술의 흐름은 혁신적이며 과학적인 정교함으로부터 예술의 원리와 조화를 포함한 순수미술의 절묘한 관계로 인문 과학과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다. 생명의 복제 가능성이 이뤄지는 21세기, 상상의 날개를 지니며 4차원적 개념과 이상을 담고 있는 현대 미술에 있어 모더니즘은 새로운 미술 창조의 원천인 것이다.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의 시작은 놀라운 일이 아닌 가능성 있는 즉, 가능성이란 의미는 현실과의 연관성을 정확히 예지하는 것이다. 꿈 꾸는 예술적 이상을 현실화 시켜주는 시공간적 예술로 자라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은 시대적 미학을 빠른 속도로 제쳐놓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는 더이상의 놀라운 시도는 아니었지만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1898~1976)의 움직이는 조각은 미학의 이론적인 키네틱 아트의 의미를 조금 넘어선 현실적 아름다운 미술로 다시 해석 할 수 있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는 미국의 조각가로 미적 혁신과 그의 기념비적인 공공조각에서 모빌의 작품으로로 유명하다. 모빌, 즉 움직이는 조각=키네틱 아트라 명칭한다. 그의 작품은 무거운 철로 만들어지는데 바닥에 안정적으로 서 있는 조각이 아닌 천장에 메달려 철이란 재료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양으로 하늘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단색적인 강렬함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게감의 조형물은 공기의 흐름으로 사르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중복적인 아름다운 운동성으로 또 다른 매력을 뽑아내고 있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은 움직이다 이는 조용히 멈춰버린다. 마치 시간이 다른 공간에서 수없이 변하고 멈춰버리는 것 처럼 그의 작품은 서로 다른 공간에 같은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유사함에 시공간을 함께 달려가는 인류의 역사 속에 알렉산더칼더의 공기 중 움직이는 조각은 우리에게 이러한 메세지를 전달 해 주고 있다. 점점 빨리 변하며 발전해나는 전통과 신예술을 함께 공존시켜주고 있다 시각적으로 동일시 움직이며 지나간 시간을 그 자리에서 느끼게 해 준다. 사진이라는 기술이 처음 출몰했었을 당시, 앞서가는 기술릉 과거의 풍경화와 초상화를 추구하던 수많은 화가들의 긴장을 이끌며 그 기술은 결과적으로 더욱 더 앞서가는 발전적인 예술을 향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처럼 알렉산더의 원색의 철물의 움직임은 전통적 과거, 발전적인 현재,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읽어주고 있다. 알렉산터 칼더의 작품은 시간적 흐름을 부드럽게 표현하며 함께 하는 인간의 역사를 공간안에 기억으로 남겨주고 있듯 초 현대를 달려가는 이 시기에 깊은 전통성을 지닌 아름다운 작품이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18세기 최고의 황금빛 예술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와 불같은 사랑을 한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인으로 프랑스 루이 15세의 왕의 여인 마담 퐁파투르 후작을 소개한다. 퐁파두르의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Jeanne-Antoinette Poisson)이며 파리의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 문학 등 개인교습을 받아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였다. 1845년 왕은 외모와 교양을 겸비한 그녀에게 정식으로 퐁파투르 후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게 되며 이에 루이 15세의 정식 공인된 정부로서 24세에 베르사이유 궁에 입상하게 된다. 베르사이유 궁에 들어온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은 20년 동안 프랑스안의 모든 권세를 누렸으며 라이벌 격인 왕비 마리아를 정성껏 모시고 비위를 맞추어 왕비의 신임도 얻었다. 마침내 루이 15세는 국정을 그녀에게 맡기기 시작하며 15년간 실제로 프랑스를 통치했던 왕의 가장 힘이 있는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왕의 깊은 관심을 받을 만큼 그녀는 정치적 안목과 교양을 겸비한 세기 최고의 여성으로 손꼽힌다. 정치, 외교적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녀는 미술, 음악,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화려하면서도 지적인 외모와 함께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1750년 프랑수와 부쉐(Francois Boucher)는 그의 후원자인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의 초상화 를 그리기 시작하며 그의 열거되어진 초상화에 의해 18세기 프랑스 문화의 기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과업은 귀부인들의 화려함과 표현적인 미적 욕심보단 인문학적인 전파에 더욱 관심을 쏟았으며 보수적인 정치가나 신학자들에 의해 백과사전의 사용이 금지 되었을 당시 그녀의 적극 지지로 프랑스 백과사전의 판매가 다시 허용되게 되는 인문, 문학적인 공세를 쳤다. 그 뿐 아니라 예술학적으로 그 당시 베르사이유 궁 안에 왕립 세브레 도자기 제작소를 만들어 프랑스의 도자기 역사가 시작되도록 하여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를 꽃피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그녀는 평생 왕의 정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프랑스 정치, 외교적 통치자였으며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냄으로서 역사적으로 프랑스 최고 황금빛 시대의 예술을 지켜나간 진취적인 여인, 세기의 힘있는 여성임에 분명하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함께하는미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스톨라(Stola)를 걸친 동양의 아름다움

세계 문화의 상호적 가치와 역사적인 서술적 관계는 인류의 세기 만큼이나 깊으며 풍부한 문화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2500년을 훨신 뛰어넘은 그리스의 신화적인 유적, 역사적인 세계 문화의 웅장한 유산은 여전히 우리에게 인간의 자부심과 기쁨을 안겨준다. 대륙의 땅 미국에는 끊임없는 탐구를 통한 창조적인 예술을 만들어내는 작은 유적지가 있다. 뉴욕 맨하튼(Manhattan) 아래의 작은 섬, 자유의 여신상을 곁에 두며 한결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역사적인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 이 곳 섬 안에서는 빛을 이용한 설치미술가의 예술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뉴욕에서 손꼽히는 세계적 설치 미술가들과 어깨를 겨누며 함께 공동 작업을 수행해 가면서 2018년 아일랜드 페어에 2년 연속 선정되어진 설치미술가 김지숙 작가(1981 ~ )는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자연적인 태양의 빛, 땅으로 부터의 흙, 나무 그리고 종이에 대한 연계성에 수많은 글과 실험적인 연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빛과 나무, 그리고 종이가 아닌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고대 신화적 표상인 것이다. 그녀의 한지를 이용한 설치 미술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 가이아 여신의 아름다운 자태에 스톨라(Stola)를 걸친 듯 연상화 되며 신화적 태양의 빛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스의 보름날 밤 비밀 의식인 마녀의 의식을 위한 태양의 빛을 머금은 듯 설치 작품 안에선 그리스의 시간이 흐른다. 한편 겉으로 표현 되어진 펴진 주름과 여러겹 주름져 있는 등고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상징적인 옷스톨라 스타일을 연상케한다. 뉴욕 고요하고 아름다운 섬 안에 작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 제국을 들여놓은 듯 하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배우자로 두었던 대지의 여인 가이아는 최초의 산물인 흙의 땅을 신격화 했다. 흙은 작가의 손을 통해 등고선의 줄은 남기고, 한지 위에 뿌려진 등고선들의 자취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땅의 상징적인 표적이 된다. 설치미술가 김지숙의 작품은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를 위해 준비한 듯 하다. 상징화되어진 그들의 삶을 느끼며 기원과 고대 생활사를 간접적으로 이해하듯, 김지숙 작가의 설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술과 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며 시 공간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역사와 기원을 함께 배워가고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대자연의 마법사

▲ 얼어붙은 달걀 1956년 영국에서 태어난 대지 설치 예술가이자 사진 작가인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앞서가는 컴퓨터과학을 토대로 수학과 과학의 기본인 숫자와 그래프 대신 시공간적인 공식을 적용하여 자연을 수학하며, 관찰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F. Allin Goldsworthy(1929~2001)는 영국 대학에서 공학, 컴퓨터 과학 및 산업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수학적 밥법을 응용하여 수학과 과학의 전문지식 결합을 적용시키는 ‘응용 수학’ 교수였다. 아버지로부터 나온 이공교육의 결합을 앤디 골드워시는 자연으로 하여금 시공간에 작품을 불러내었다. 이는 과학적이지 않지만 순리적이며, 전문적인 수학 공식은 아니지만 중력과 시간의 법칙을 자연에 공식화한 그러한 자연과 시공간의 결합을 만들어 작품화 하였다. 그의 자연을 향한 예술은 대지 예술을 영역을 구축해내며 조각가이자 환경 설치 예술가로 그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영하로 내려간 한 겨울의 얼어붙은 얼음과 눈은 그의 손을 통해 대지위의 한 작품이 만들어 진다. 1999년 ‘얼어붙은 달걀’이라는 타이틀로 제작된 작품이다. 눈과 얼음의 뭉침과 깨짐의 성질을 이용한 자연과 대지로부터 설계된 설치 작품인 이 얼음 작품은 시공간을 통해 얼음이 녹으며 함께 사라지게 되어 있다.결빙된 강 위에 얼음판들을 쌓은 후 달걀모양을 만들어 놓은 작품으로 얼은 강이 녹아내리면서 서서히 달걍 모양의 얼음작품이 강에 흡수되고 흘러가면서 녹아 없어지게 되게끔 시공간과 함께 제작된 것이다. 엔디 골드워시의 작업에서는 늘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흘러가는 순간의 찰라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든 자연을 대상으로 그 과정을 작품화시키고 있다. 그는 일체의 인공품을 이용하지 않으며 근원적인 인간의 손과 자연을 연결 시키며, 치아로 조각을 맞추고 침을 이용해 물질을 접착시키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연의 작품을 완성시켜왔다. 조수간만의 파도, 바람에 휘날리는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샛노란 꽃잎, 자연 속에서 찾은 돌을 그대로 쌀아올린 작업, 이렇게 골드워시는 그밖에도 다양한 대지 미술작품을 남기며 오염되지 않은 순수 자연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돌아다닌다. 세계의 자연속에서 그의 손을 거친 자연은 영원한 내면의 작품으로 소개되어지며 또 다른 생명으로 시간과 함께 잉태하게된다. 이러한 자연 설치 미술은 현대 미술사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며 강력한 인간의 숨과 함께 영원히 인류의 역사 속에 지속될 것이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추상적 색채 풍부하게 그려낸 현대 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1839~1906), 그는 20세기에 등장한 추상화의 상징적 단순 표현방법을 단, 하나의 사과의 물성을 통해 1880년 풍부한 화폭속 정물을 통한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사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 할 것이다” 라고 외치며 광이 나지 않은 싱싱하지 않음을 표현하며, 와인처럼 숙성될 듯한 붉은 탁한 색채의 무거움이 느껴지는 사과의 물상을 화폭에 담았다. 19세기 빛의 반사에 의해 시각적인 착시현상를 끌어내는 인상주의의 미분, 적분의 논리이기 보다는 직접적인 눈을 통해 그려지는 그 자체 대상의 단순 형식적인 표현을 탐구하며, 감정이나 심리의 분출이 전혀 없는 꾸밈 없는 그저 1차 방정식의 논리였다. 형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누르며 물체의 묘사를 자제함으로서 1906년 3년에 걸친 세잔 자신의 정물화 ‘그릇과 유리잔과 칼과 사과’(1879~1882)를 완성시켰다. “자연의 모든 것은 구와 원추 및 원기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단순한 도형들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라고 세잔은 말한다. 그것은 공식을 나열하는 수학론에서 지구가 자전한다는 천문학설을 ‘0 ’과 ‘1’만으로 조합하여 명료한 답을 찾은 우주의 공식인 것이다. 세잔의 그림 ‘그릇과 유리잔과 칼과 사과’ 에서의 배경 속은 수평선이 하늘과 다닫는 곳, 종이가 지평선 위로 서서히 거칠게 찢기듯 두갈래로 나눠지는 듯한 테이블과 배경, 지평선의 끝자락을 사실 그대로 그린 가장 단순한 깊은 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을 꿈꿔왔던 창의적 물상의 연구, 연구한 물상을 화폭에 끌러넣는 꿈. “과거의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 과거가 있기 때문에 미래가 존재 할 수 있다”고 말하며 현대미술의 획을 긋고 있는 미술사적 논리 앞에 늘 그 다음을 향한 연구와 창의적 사물의 시각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 표현과 함께 사색과 물상에 대한 생각을 놓치 않았던 추상적 색채를 풍부하게 그려내린 바로 폴 세잔, 그는 20세기 프랑스의 사과를 자신있게 정복했다 말 할 수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주어진 생을 살면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노력과 희망으로 목화솜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가는 실처럼 가늘고 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자신의 꿈과 욕망을 향해 달려간다. 성취에 차오른 자신의 세계에 다달았을 때 그 뒤에는 반듯이 잃어버린, 또는 포기해야만 했던 그 무언가가 자신만의 세상 속에 희생되어 녹아내려져 있을 것이다. 잔인한 현실이 수반되기 마련인 그 희생, 어떤 누구에게도 비켜 갈 수 없는 맹목적인 잃음, 환각적인 형상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세기의 성공적 예술 대작 속에는 삶의 고통속 희생이 담겨져 있다. 때론 스스로의 죽음에 들어서 단 한길의 꿈을 꽃 피우듯 우리에게 알려지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37세의 젊은 나이로 불꽃처럼 생을 저버린 빈센트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이다. 반 고흐의 ‘푸른 꿈의 절실함’이란 독을 마시며 달려드는 폭팔적인 별빛이며 이글거리는 별빛 아래 질서있는 조용한 마을의 노란 등불은 잔인한 환각적 희망이었다. ‘푸른 꿈의 밤하늘’은 펼쳐진 밤하늘을 끌어안은 에너지의 광야이며 이는 표현되어질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의 희생과 부서져버린 그의 분신일 것이다. 빈 고흐는 화려한 붓놀림의 테크닉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감과 함께 조여오는 숨을 스스로 치유하듯 몽환적인 푸른 빛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을 알렸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부르짓는 애착증으로 노란색을 통한 자신의 외로운 심리적 씨앗을 표현하였다. 자신을 향한 수 차례의 희생과 명을 재촉하면서까지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예술은 스스로를 쓰러뜨릴만큼 그 색의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진정한 내면적인 표현이라 말 할 수 있다. 고통 속에서 처절해진 이 푸른 빛의 깊은 여백, 뒤범벅되어진 노송나무의 저녁 밤 공기와 별빛은 그의 분신을 끌어안은 형상이다. 반 고흐의 죽음은 전혀 불길하지 않았으며 단지 주어진 일생의 순서였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별을 보는 것은 항상 나를 꿈꾸게 만든다”라 말하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푸른색채와 붓터치로 마음을 치유하며 외로운 자신을 가장 사랑한 화가이다. 자신을 향한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그린 ‘The Starry Night’. 이 곳엔 푸른 빛과 몽환적 하늘을 날고 있는 ?은 그의 생과 들리지 않는 숨소리가 푸른 밤 바람 속에 별과 함께 빛나고 있다. 모든 후속 표현주의 회화의 보석같은 초석이된 그는 지금 빛나는 밤의 중심에서 방금 떠나버린 큰 흰색 별일 것이다.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하는 미술] 경기도무형문화재 개천 박상진의 분청사기 ‘떡살문항아리’

프랑스 베르사이유 왕실 궁을 주축으로, 세계 예술의 아이콘인 로코코 (Rococo)미술, 왕가 사상의 물관으로부터 스며올라 정치, 외교적으로 최고조의 실력을 갖춘 여성 ‘마담 퐁파두르( Madame de Pompadour)’에 의해 베르사유 궁 안 ‘왕립 세브레 도자기 제작소’를 만들어 17세기 최고 화려한 유럽 도자 역사를 창출해 낸다. 보다 빠른 3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이 곳 한반도 대지를 통해 14세기 조선에는 특유한 비색과 감각적 조형 장식보다는 인간의 숨결과 영혼, 그리고 손의 감각으로부터 끌어올린 진정한 인간 내면의 미,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린 자연 속으로 부터 재현되어진 흙의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흙 그 자체의 간결함과 부러지지 않는 여린 곡선의 미묘함, 표면의 빛보다는 흙의 심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조선의 분청사기가 탄생됐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예술’ 오늘의 작품은 흙과 호흡하며 혼신과 열정을 다해 조선 분청사기의 혼을 그대로 담아내고있는 경기도무형문화재 개천(開天) 박상진 도예가의 아름다운 분청사기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분청사기 떡살문항아리’로 1971년 고려도요로 도예에 입문한 후 현재까지 40년간 작품 중 가장 단아하며 장식적이지 않은 흙의 순수 항아리라 소개한다. 박상진 도예가의 분청과 손터치의 기법은 마치 지방의 방언을 표현하듯 다소 거칠며 이방적인 분위기가 나곤 한다. 인간적이며 흙으로부터 빚어진 도기, 그 순수 본질의 미를 그대로 음미 할 수 있는 그만의 개성이 분청안에 담겨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새 심장을 부여받은 분청은 박상진 도예가의 눈으로 바라본 다다를 수 없는 상상속의 그림이기도 하다. 갸날프게 늘어 뉘어진 목부분은 하늘을 열고 있는 창이요, 고요하게 휘어진 분청의 옆선은 오천년 넘어선 동양 도자 역사의 굴곡이며, 항아리 중앙부위의 떡살 무늬는 마치 국화꽃을 비춘 달의 그림자와도 같다. 달의 그림자를 타고 표면에 들여져 있는 상 하의 얕게 돌출된 수많은 점 무늬는 동양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백의 미와 인간의 선함를 머금고 있다. 땅과 흙의 질감, 상감의 백색토를 입고 숨을 쉬는 듯 부푸른 몸통, 그 몸통 상 하로 펼쳐진 여백 중앙 나열되어진 장식 무늬는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마치 우리의 세상을 안고 있는 듯 하다. 세련되게 단아한 무형인간문화재 개천(開天) 박상진 도예가의 분청사기는 조선의 단청 위 사라지지 않는 은은한 풍경 소리와 함께 자연 태생의 순수미를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예술을 대표하는 소중한 삶의 흙이 될 것이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미국 신고전주의의 탄생

미국 뉴왁 박물관 로비로 들어서 높은 아취형의 큰 홀이 자리잡고 있다. 그 홀 중앙에 밝고 어두운 두톤 명암의 조용히 서 있는 그리스 여인의 아름다운 입체적 풍미스러운 좌상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은 마치 동양 미인과 같은 미묘한 서정적 여유와 풍요로움까지 담아내고 있다. 은은한 여인의 어깨선을 타고 내려오는 팔선위의 반짝임, 대리석 조각에서 유일하게 표현되어지는 이 광채와 빛은 세기 어느 조각상보다 더 깊은 여성적 풍요로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서정적이며 온화한 여인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 조각상에는 전혀 다른 의미의 흔적을 볼 수가 있은데, 고귀한 아름다움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양손목이 바로 쇠 사슬에 묶여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여신조각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 이 조각에 묘사되어진 여인은 그리스 여신 조각이 아닌 오스만 투르쿠 제국에 노예로 팔려간 기독교 여인이었던 것이다. 완벽한 비율을 갖고 있으며 화려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않은 절묘한 자연미를 과시하는 19세기 미국 조각 ‘그리스 노예’는 미국 조각가 히람 파워스의 신고전주의를 향한 연구와 노력으로 탄생됐다. 높이 165.7cm, 236kg 의 실제 인간형 싸이즈를 갖은 이 조각상은 높은 좌대에 설치됨에 의해 실제보다 훨신 커 보이는 착시 효과를 함께 보이고 있으며, 살짝 내려 뜨린 어깨의 두 양 팔은 자연스럽게 조용히 떨어져 있으며 오른 팔은 지지대와 같은 기둥에 기대어 있고, 왼팔은 그녀 골반 위쪽으로 살짝 걸쳐져 있다. 이러한 여유로우면서 복합적인 안정된 자세는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이어져온 그리스 정통 조각 포즈인 ‘콘트라 포스트 포즈’라 명칭하고 있다. 정확히 설명해 이 조각상을 통해 그 당시 철저한 대리석 제작 기술과 감정의 절제,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작품을 한번에 떠올리게 하는 완벽한 주제의 선택, 이 모든 것들이 신고전주의의 양식을 미국 조각으로 불러드리는 중요한 구심적 역할을 한 조각이라 할 수 있다. 히람 파워스, 그는 미국 신고전주의 예술 역사의 획을 긋는 중심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들로 하여금 로마공항정의 모델인만큼 고전적 상징성과 이상화된 고대 인물을 묘사하는 고전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고 최고의 고전적인 명성에 따른 복제품이 다수 나오게 됨으로써 현재 뉴왁 박물관 뿐 아닌 예일 아트 갤러리, 국립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세계적 유명한 박물관 곳곳에 소장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국 고전주의의 거대한 산물의 결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하는 미술] 로댕의 ‘다나이드’

조각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19세기의 르네상스미술에 빠져 있던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 미켈란젤로의 영혼적인 조각 작품을 본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조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1885년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작품은 ‘지옥의 문’을 위하여 구상이 되어 슬픔어린 애도와 절망, 파도속으로 소리없이 쓸려 내려가는 실크같은 머릿켤, 관능적이면서도 작가의 비관주의까지 부드럽게 잘 드러난 로댕의 ‘다나이드(Danaid)’다. 그에게 조각적,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던 여성,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을 모델로 한 세기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로댕의 작품이다. 로댕의 작품에는 카미유 클로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다나이드 또한 로댕의 작품이라기에는 너무나 섬세하며 부드럽다. 이 속에는 카미유 클로델, 그녀만의 테크닉과 정교함이 고스라니 드러나고 있다. 그녀의 조각은 로뎅과는 달리 대리석을 유리처럼 정교하게 조각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을 모델로 한 이 작품 마저 그녀 손으로 직접 제작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조각가인 ‘알프레 부셰(Alfred Boucher)’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기 전 친구인 로댕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위탁하게 되며, 특히 카미유 끌로델의 지도를 부탁함으로 로댕과 카미유 끌로델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1887년 카미유 끌로델은 로댕의 정식 조수로 일을 하면서 ‘칼레의 시민’ ‘지옥문’ ‘입맞춤’ 등의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시기 카미유 끌로델은 ‘뇌부르그의 광란’ ‘이교도의 농지’ ‘사쿤탈라’ 등의 작품을 제작하며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보다 독창적이고 다양해지기 시작한 카미유 끌로델의 작품은 프랑스 살롱에서 최고상을 수상을 하며 작가로서의 정식 인정을 받는 동시에 세인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로댕을 위한 10년간의 카미유 끌로델의 희생과 사랑은 정작 자신의 이름을 조각에 서명 할 수 없는 그러한 결과만 낳았다. 로댕은 그녀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이용하되 자신을 능가하는 솜씨를 두려워 하기 시작했고 그런 로댕은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성공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내게 된다. 19세기 최고의 여성 조각가 카미유클로델, 그녀는 로댕으로부터 모든걸 잃게 된 후 스스로 작품을 깨는 등 로댕에 대한 심각한 피해 망상증과 편집증으로 35년간 정신병동에서 지내다 쓸쓸히 삶을 마감하게 된다. 너무나 뛰어난 예술성과 천재적인 재능은 그녀의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로댕에 의해 사라졌지만, 그녀의 영혼적인 작품의 손길은 대부분의 로댕 작품들을 통해 영원히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

이탈리아 북부,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카프레세 (Caprese)가 있다. 오늘날은 이 지역의 이름을 세계 거장의 이름을 붙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 (Caprese Michelangelo)라 불리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는 1474년 피렌체의 오래된 카노사 백작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출생의 환경과는 조금 달리 외로움과 불행, 그리고 어머니를 제외한 사이가 원만하지 않는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병에 걸려 시골에 사는 유모에게 맞겨지게 되었고,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단 한점,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공허함을 달래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모의 집안이 석수장이라는 것이었다. 이 석수장이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서 성공을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 조각용 끌과 망치를 들고 노는 것을 가장 즐거워 했으며 수많은 종류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섬세한 돌들의 결을 느끼면서 자라왔다. 그는 회화보다는 조각을 더 선호했으며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성공한 후에도 스스로가 항상 조각가라 지칭할 만큼 조각가의 자리를 구축하였다. “산피에트로 피에타-성모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은 무릎에 뉘인채 십자가가 서 있던 바위에 앉아 있다. 깊은 동정을 느끼지 않고서는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은 고귀하고 탁월하다” ‘피에타’는 ‘연민’, ‘불쌍히 여김’ 또는 ‘경건한 마음’을 뜻하는 이탈리어로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어머니인 성모마리아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바리세인 니코데모에게 넘겨주기 전 아들을 무릎위에 올려 끓어안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 장은진 교수 24살인 미켈란젤로는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너무나 기리워하는 마음으로 헌신을 다해 ‘피에타’ 작품을 완성해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인간의 손으로 창초되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섬세하며 사실적인 옷의 주름, 자연의 대리석으로부터 살덩어리가 빚어지는 생명의 기적과도 같다는 찬사의 조각, 성모마리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얼굴의 윤각의 ‘피에타’는 세계 그 어느 작가의 ‘피에타’도 이를 능가하지 못했으며, 그 인생안의 최고의 훌륭하고 견고한 24세 청년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것이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앙리 마티스의 ‘댄스’

북 프랑스의 노르주 출생인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ㆍ1869~ 1954). 피카소와 함께 현대 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티스는 늘 20세기 미술 첫머리에 소개된다.그는 색채와 빛과 공간의 조화을 창조에 대한 가장 큰 의미로 여기며 한평생 예술에 대한 헌신과 꾸준한 색에 대한 연구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에 손 꼽히고 있다. 마티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티스트라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잘 그렸다고 말하기가 어렵다.하지만 20세기 미술에 혁신적 바람을 일으킨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피카소가 형태에 대한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티스는 색에 대한 혁명을 일이켰다. 사실 마티스는 법률을 공부하며 꿈을 키워온 청년이었다. 베토벤과 같은 성숙한 천재도, 피카소와 같은 신동도 아니었지만 음악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운율의 자유로움, 영혼을 노래하는 신화적인 영혼의 춤과 리듬, 그 속에 음악이 깃든 작품을 만들어냄으로 위대한 예술적 창작을 발산해 냈다.그의 표현은 상식의 틀에 갇혀있지 않으며, 색채와 형태가 단순하면서도 상상력이 뛰어났다. 평범하게 인식되고 표현되는 색이 아닌 색채와 공간에 대한 상상력으로 그림을 만들어 갔고,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라 이르며 반듯이 그림이 현실의 그대로를 묘사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당시 비평가의 반응을 어떠했을까? 형현없는 질서없는 그림, 촌스러운 색채와 구조, 형태에 대한 부조화의 책임없는 선이라는 등의 비평과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마티스의 댄스 시리즈는 지금 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 중 하나이고, 영국인들이 가장 보고싶어하는 명화로 꼽은 아름다운 작품이다.댄스의 춤추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발을 붙히고 춤을 추는 모습이 아닌, 우주속의 무중력 상태에서 몸을 맏기듯이 춤을 추는 것 처럼 보인다. 그림의 중앙에는 그림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원이 나타나 있다. 왼쪽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팽팽한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며 묵직한 움직임으로 나머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을 리드하며 이끄는 중심축처럼 움직이고 있다.마티스의 그림 안의 이 춤은 ‘삶과 리듬’을 만들어내며, 환희과 에너지, 삶의 열정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더불어 시각적인 음악 또한 함께 깃들어져 있다. 열정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림 속의 운율와 힘은 단순화된 인간의 신체와 푸른 공간의 빛과 초록대지의 평면적인 느낌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 냈음에, 이토록 세계 안의 예술역사의 근원지였던 유럽의 손꼽히는 명작이라 할 수 있지 않는가.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하는 미술] 잉카 쇼니바레의 ‘Party time : Re-image America’

‘잉카 쇼니바레(Yinca Shonibare)’는 1962년 런던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나이지리아로 갔다. 항상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자란 쇼니바레는 빔 미술 학교에서 Master of Fine Art 를 수료하기 위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수년간 스스로에게 영국계 나이지라안 (British-Nigerian)의 문화와 민족적 정의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종, 계급, 장애, 식민주의, 전쟁과 같은 함축적 문제를 다뤘다.그의 작품은 그림, 조각, 사진과 영화의 매체를 통해 인종과 계급의 문제들을 탐구하게 한다. 하지만 쇼비바레는 미학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을 사용해 난해한 문화와 역사적인 경계를 화려한 감각과 색채로 표현성을 극도로 높여 예술성과 지적 영역을 함께 형성하고 있다. 이에 쇼니바레의 가장 야심찬 작품 중 하나를 소개한다. ‘Party time : Re-image America’로 전시장에서의 쇼가 아닌 1885년 역사적인 저택의 한 부분에 작품이 전시되어져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유적지 설치 작업을 성공시킨 예술가이다. 쇼니바레의 빅토리아 시대 문화에 대한 오랜탐험은 19세기 후만의 디너파티를 통해 적날하게 표현되어진다. 화려한 의상들, 이는 1세기 이상 서부 아프리카 시장을 위해 유럽의 공장에서 생산된 굵은 무늬의 ‘네델란드 왁스’과 ‘아프리카 바티크’ 직물은 화려한 색채화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의미적인 페턴을 담고 있다.문화적 정체성과 진실성에 대한 가정을 전복시키기 위래 네델란드 왁스 직물을 이용해 화려하고 풍부한 무의의 옷, 즉 ‘아프리카’처럼 보이지만 더 복잡한 기원을 가진 듯 이중성이 보여지곤 한다. 빅토리아 시대문화의 의상을 입은 이 극적인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없는 몸통인간형으로 만들어졌다. 이 배경의 근거지는 쇼니바레의 예술가로서의 근거지인 Lagos 라고스의 상류층 세계였으며, 그들의 과시적인 소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8명의 머리가 없는 사람들이 주코스를 따라 음식을 즐기고 있으며, 하인의 손위의 은접시에는 금색 부리를 가진 큰 공작새가 준비되어 올려져 있다. 손님들의 활기찬 바디 랭귀지의 몸짓은 올바른 빅토리아 시대의 에티켓이 해체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나쁜 행실’과 ‘방탕’에 대한 관대한 웃음과 축하로 암시되고 있다. 머리가 없는 8명의 사람들과 화려한 음식들은 미국의 산업화와 함께 부를 증가시키고 정화 하기 위한 탐구적 노력으로 사회와 경제적인 지배를 ‘먹는 축제’로 화려하게 재해석되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문화와 배경은 화려한 색채와 해학적인 몸짓으로 연구 영역들 사이의 교차점과 유사의 연관성을 함께 갖고 있는 가장 미국 적인 작품이라 느껴진다.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몰리 헤치의 설치 벽화 ‘레퍼토리’

몰리 헤치(Molly Hatch), 그녀는 화가이자 낙농가의 딸로 태어나 창조적으로 부지런하게 자랐다. 젊은 그녀의 상상력과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랑으로, 도자기로 기법과 함께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을 살려낸 드로잉을 시작하게 되었다.살아있는 자연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그림은 시간이 갈 수록 별난 펜과 독특한 잉크로 그녀의 기술은 훌륭하게 연마됐으며 몰리 헤치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설치미술의 가장 아름다운 공간 재현을 살려 그녀의 가장 부드럽고 감성적인 예술적 감각을 대중문화에 소개를 하였다. 마침내 헌신적인 도자기 연구와 그림에 대한 그녀의 공식적인 교육은 미국 주요 박물관 내 그녀의 독특한 벽화 스타일의 발전을 가져오게 됐다. 역사적인 기록을 섬세한 드로잉의 과정을 거쳐 안료를 사용해 도기 안면에 그러넣으며 그 수백장의 도자기는 특정한 장소의 벽화 설치로 이어지게 된다. 전통적이면서도 대중문화에 바탕을 둔 그녀의 작업은 역사에 영감으로부터 시작된 유물의 특정한 패턴과 이미지 그리고 색감을 살려 현대적인 도자기 설치벽화를을 창조해내고 있다. 몰리 헤치의 레퍼토리(Repertoire)는 10m가 넘는 기념비적인 벽화로, 현재 미국 뉴왁 뮤지움(Newark Museum)의 로비 전 벽에 설치돼 있다. 뉴왁 박물관 역사내 107년 동안의 현대 도자기 수집과 37년 동안의 동안의 박물관 장식미술에 혼을 바친 율리시스 디에츠(Ulysses Dietz) 은퇴를 기념하는 큰 행사로서 몰리 헤치의 벽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레퍼토리는 박물관의 소장품에 있는 세계적인 직물에 의해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으며 세 영역의 벽화 표현은 첫번째 1928년 아프리카의 섬유디자인에 기초로 둔 ‘DyulaWoven’, 두번째 18세기 중국 벨벳 왕좌 카펫에 기초를 둔 전통 청롱 실크 페턴 문양, 그리고 세번째 1840년대 뉴저지 버겐 카운티에서 제작된 벽옥색와 흰색 섬유디자인의 문양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몰리 헤치의 레퍼토리는 인간의 창조성을 상징하는 두가지 흙과 섬유를 기원하며 또한 세계적인 예술을 지켜오고 이어가는 점토와 천에 대한 도상학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하는 미술] 클로드 모네의 ‘수련’… 빛·내면 감각 살린 ‘꿈의 그림’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년 11월14일~1926년 12월5일)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의 개척자이자 프랑스 예술에 혁신을 불어넣어준 화가다.인상파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파리지엔 아트 방식에 염증을 느낀 여러 작가들 모네, 데가, 르노아르 등의 Group of Radical Artist 들이 주축이 되어 1874년 Independent Exhibition 이라는 새로운 아트 폼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 인상파 ‘Impressionism’ 이란 단어는 사실 고정관념에 젖어있었던 미술 평론가 로부터 예술적 가치도 없는 그림이란 형편없는 그림이라는 혹평과 함께 그들에게 붙혀진 별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인상파의 작품없인 유럽의 미술을 논하기 힘들만큼 이들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 세계 박물관에 소개되어지고 있다. 그 중 모네의 수련을 소개한다. 어느 박물관에서나 모네의 수련 그림은 한결같은 대형 화폭으로 제작되어있다. 이는 실물의 풍경을 줄여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련을 표현하며 파노라마처럼 현실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함이다. 모네의 250 여점에 다다르는 수련 시리즈는 이 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으로 보는 꿈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따스한 햇살이 호수를 내려쬐는 조용한 오후 물위로 떠오른 분홍빛 작은 꽃잎들, 물 표면에 반사된 푸른 하늘 빛, 그 푸른 하늘 빛은 다시 떠오른 연꽃 잎 표면에 스며들어 빛과 물의 어울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 표면에는 나뭇잎에 가려진 하늘을 볼 수 있으며 해가 비스름히 질 것 같다는 정확한 늦은 오후의 하늘이 느껴진다. 이것이 모네의 수련이다. 어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이러한 아름다운 색채와 터치를 캔버스에 남길 수 있을까. 그는 눈이 아닌 내면의 느낌과 빛의 감각으로 이 수련을 탄생시켰다. 수련의 작품을 만들던 시기 모네는 백내장을 앓고 있었다. 시리즈에 보여주는 그림은 어느 그림도 또렷한 윤곽의 표현이 아닌 눈에 내면의 느낌, 그가 보는 풍경의 인상으로 그림을 그려갔으며. 빛의 효과를 캔버스에 남기기 위해 한번 칠한 색채 위에 끊임없는 다른 색을 비켜나가는 붓터치를남겼다. 이것이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해온 내면의 감각적 표현방법인 ‘Impressionism Art’ 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몬드리안의 황금비율

이 작품은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of Red, Blue and Yellowㆍ1930)은 네덜란드 출신의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1872~1944)의 자연과 우주를 함축한 황금비율의 작품이다.나무 한 그루로부터 형상화 된 추상미술이다. 어떻게 나무의 형상을 묘사하였는지 시각적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한번 짚고 간다면, 우리의 눈으로 그 절차를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세계전쟁 당시 강국으로부터 저개발 식민지 약탈 정책과 방호벽의 토지수탈로 순식간에 세계는 살아남기 위한 열강들의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으로 기계화, 문명화 된 시기 속에 인간들은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으며, 예술 문화는 인간 소외, 이성중심 그리고 합리주위에 외면을 하고 급격한 침체의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문학 또한 새로운 이념과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부패된 사회의 풍자들이 거침 없이 나오게 되었다. 같은 시기 회화에서도 단순한 형태와 기본적인 강한 색 하나만의 조합으로 그들의 이념과 이상을 충족시키기에 적절했다. 바로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또 20세기 초반 사진이라는 기술이 대중화 되면서, 화단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주목을 받을 수 없었던 현실도 한 몫 했다. 순간적인 시각과 과학적 착시효과의 현상을 그려낸 인상파가 등장했고, 모든 형태의 부조합, 배경적 공간과 물체의 기하학적 형태가 한곳에 뒤섞인 피카소의 큐비즘 스타일이 추상 미술의 맥을 이어갔다. 몬드리안의 이 그림은 교회 옆 한 나무로 부터 시작됐다. 1909년 붉은 나무, 1911년 회색 나무, 1915년 Composition No.10 Pier and Ocean 시리즈 등 200여점의 그림과 수천장의 드로잉을 통해 나무는 점점 추상화 형태의 단계를 거쳐가며 마침내 1930년 기본 조형 요소만 남은 최소화된 선과 나무의 강렬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단순하고도 힘이 살아 있는 작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 탄생됐다. 그의 추상화된 아름다운 조형 요소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선의 조합과 색으로서 우주과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영원한 우주와 자연이 함축된 이 완벽한 구성을 ‘황금비율’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인류와 함께 하는 미술] 문화와 예술의 춘추는 190만 살

바람 소리가 귀에 들릴만큼 매서운 바람에 고개가 돌아가지 않을 만큼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맥도날드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13살 정도 중학생같아 보인다. 어린 고사리같은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걷는 아이는, 기특하기도 하지. 이제 겨우 초등학생 처럼 보일 뿐인데, 아마 형인가 보다. 월요일 아침 8시 반, 4호선 돈암동 성신여대 전철역. 전철문이 열리자 그 긴 전철 칸칸마다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여학생들, 대부분의 그들은 꽃처럼 아름다운 20대를 만끽하고 있는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나이를 갖고 있어 보인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인생의 경험적인 감각을 통해 시각적인 얼굴, 청각적 말투 그리고 옷차림의 패션과 그에 더한 몸짓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나이를 짐잘 할 수 있는 아주 추리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럼 이번에는 잠시 역사적인 문화재에 눈을 돌려보자. 우리의 이 감각적 능력을 통한다면 과연 유물의 나이는 눈에 보여지는가? 그렇게 않을 것이다. 해서 지금부터 역사적인 유물의 나이를 알아내는 방법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골동품 그리고 박물관 유물, 미이라에 이르기 까지 어떻게 인간은 죽어 몇 천년이 흐른 유물, 화석, 뼈, 그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여기에 이들의 나이를 측정해 낼 수 있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을 제시해 본다. 첫번째로 소개하는 측정법은 고고학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시대적 환경과 지역에 따른 토양의 재질, 양식을 통해 접근하는 ‘상대적 연대 측정법’이 있다. 두번째 방법으로는 좀 더 객관적이며 수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절대적 연대 측정법’을 들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유물 속 탄소의 농도로 연대 뿐 아니라 유물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이 있다. 호흡하는 지구상 모든 유기물에 포함되어 있는 탄소의 농도를 조사해, 살아있다면 나무, 뼈, 조개껍질, 동식물의 조직 모두를 추정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문명인의 생활 환경 조건으로 수천년간 문명의 문화를 꽃피워왔다. 신권과 왕권이 함께 공존되었던 이집트 문화, 기원전 2630년 황금비율과 웅장한 건축으로 훗날 유럽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 기원전 490년 전 세계의 역사적 건축 기둥 양식 발전의 정점을 이룬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이 후 로마제국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어 80년 경 그의 아들 티투스가 건설을 완공시킨 2대 건축인 로마 제국의 콜롯세움. 수천년을 거슬러온 인류의 문화는 문화와 예술양식, 그리고 역사에 의해 우리는 배워오고 있다. ▲ 장은진 교수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위에 살기 시작한 때 부터 그들은 돌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나무를 갈라 ?어 물고기를 잡고 생존해가며 그들의 문화를 돌에 새기며 그려왔다. 그것이 인류 최초의 문화이며 첫 그림 예술이었다. 그렇게 문화와 예술은 함께 시작되었으며 세상의 그 어떤 추상적인 대상보다 더 오래동안 살고 있는 춘추를 갖고 있다. 춘추는 190만 살인 문화와 예술은 해가 가면서 더욱 풍부하고 화려하며 다양한 모습을 지니며,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숨쉬고 각 나라와 괘도에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문명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인류가 존재한 이 세상 가장 장수를 하고 있는 190만살 생명인 ‘문화와 예술’인 것 이다. 장은진 미국 뉴저지주 블룸필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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