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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우리에게 남은 과제들 [친일잔재, 부(負)의 유산으로 기록되다]

‘완성을 위한 미완성’.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달 3일 오후 1시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진행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사업 성과 공유회’에서 도출된 사업의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은 이렇게 종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제·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2019년부터 경기도와 도의회가 보여온 의지와 사업 추진을 높이 평가하며,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2차 조사연구를 통한 친일잔재에 대한 더욱 치밀한 목록화 작업과 안내판 등 현재까지 설치된 결과물을 역사적으로 더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경기도와 도민의 친일잔재 청산 의지 수준 높아…이제 심도 있는 후속 조치 필요한 때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경기도 친일 청산의 의미와 방향-기억과 기념’을 주제로 한 기조발표에서 “친일청산은 반전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일청산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역사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삶이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어떠한 과오가 있다면 역사 속에서 모든 게 기억되고 심판 받는다. 친일청산의 궁극적 방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외치는 반전이 중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경기도 친일잔재 청산 사업에 관한 과제와 앞으로의 방향 등이 논의됐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 보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보고서의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현재 친일잔재 청산에 대해 공감대가 부족한 측면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현재 나온 내용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리될 부분들도 있다”면서 “건축물에서는 ‘일제 잔재의 범위 설정에 따른 문제’와 ‘일제 잔재 중 시설물의 양면성’을 고려해 일제 잔재라는 측면과 산업화 때 우리에게 유용했던 수단이라는 두 가지 시선을 다 밝힐 필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용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도 다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와 재단이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도내 17곳에 설치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의 다양한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교육홍보팀장은 ‘친일안내판 추가 설치의 전망과 개선방향’에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에서 1차 조사연구가 이뤄진 이후 나온 목록을 내부적,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추가적인 용역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다만 안내판 설치 과정에서 해당 인물이 아직 논란이 많아 지자체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음에도 17개나 설치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경기도가 2019년 기획하고 현재 2023년 성과공유회까지 이어온 만큼, 경기도의 친일청산 의지가 대한민국을 바로 잡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친일잔재 청산의 타 지역 사례와 시사점’에서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자체가 나서서 일제잔재 청산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경기도가 앞서나가고 있다. 조사 연구 결과는 경기도를 제외하곤 아직 아무 곳에서도 올려놓고 있지 않고 비공개를 하고 있다”며 “이 지점에서 경기도가 사회적 논의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사업이 개별 부서에 산발적으로 분야마다 부서가 흩어져 있어 집중이 안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 안내판 활성화 위해 ‘친일로드’ 등 다크투어리즘, AI 활용 등 고민해야  특히 전문가들은 현재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과 확산, 이를 통한 사회적 환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화와 교육계 연계 등을 통해 2, 3차 사업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인물에 대한 공과 과가 인식되고, 이런 논의가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친일잔재 청산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란 얘기다. 스토리텔링과 아카이브 구축 등 ‘친일로드’ 구축해 역사 콘텐츠, 교육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동근 팀장은 “안내판 설치 사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아카이브 구축 등으로 ‘친일로드’ 구축해 이러한 의미를 확산하고 이를 통해 도민들의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유튜브 영상 제작이나 QR코드 활용 등 현재까지 잘 구축된 안내판을 더 활성화 할 수 있는 지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는 ▲지자체 차원의 항일과 친일교육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청회 진행 ▲친일잔재 목록의 전문적인 2차 추가 조사를 주장했다. 박환 교수 역시 현재 설치된 안내판에 대해 ▲현재 아날로그 형태인 안내판에 대한 시대 변화 반영 필요 ▲문구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친일 범주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환 교수는 “친일행적에 대한 끊임없는 자료 발굴이 이뤄져야만 한다. 친일과 관련된 기초적인 작업으로 친일청산의 자료 발굴은 청산의 또 다른 첫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에서는 독립 운동가들의 피해, 가족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다. 제일 중요한 건 객관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친일 조사가 일회성으로 끝날 경우 친일이라 하기 어려운데 친일이라 규정 짓는 사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이를 위해 경기도민들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때에 따라 극단적으로 마녀사냥식의 친일 규정, 경기도민 갈등 조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기도가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 온 친일잔재 청산 사업이 도민의 공감대를 얻고, 교육 등에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사업의 확산을 위한 도와 재단의 의지를 입을 모아 당부했다.  이학성 경기문화재단 정책사업팀장은 “앞으로 친일잔재를 발굴해 후세에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고 친일잔재 청산의 계기가 확산되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하고 노력하겠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는 2020년 4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시행하고 그 성과물을 아카이브 포털서비스를 통해 도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경기도의회 역시 2021년 5월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일제잔재 청산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일제·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힘쏟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총 29개 지방자치단체와 광역교육청에서 일제·친일잔재 청산 관련 조례를 제정한 가운데 조례 제정 이후부터 현재까지 일제잔재 청산 사업을 지속한 지방자치단체는 경기도가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뷰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역사 사실 점검 인프라 구축 ‘친일청산’ 공감대 확산 노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에 참여하며 경기도의 일제잔재 청산 의지와 함께 해 왔다. 그는 “친일잔재 청산은 구성원들이 한 시대를 기억하는 공통의 기억에 대한 부분”이라며 “적은 예산이라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 이러한 의지를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Q. 안내판 설치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A. 친일잔재 상징물의 소유자는 대부분 공공기관이었다. 해당 면사무소와 시, 학교 등에 안내판을 설치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 온 곳은 2년 동안 손에 꼽혔다. ‘홍난파 홍역’을 20년간 치르면서 친일에 대한 논의나 인물의 역사적 과오 등을 점검하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던 수원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이러한 논의의 공감대가 부족했다.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Q. 경기도 친일잔재 청산 사업을 함께 하며 연구를 수행해왔다.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을 평가한다면. A. 친일잔재 청산에 필요한 추진력은 단체장의 의지와 지역민의 지지, 중앙정부의 지지, 사회적 배경이 필요하다. 경기도가 처음 친일잔재 청산을 시작했던 2019년에 다 맞아 떨어졌다. 의지도 강했다. 안내판 설치 사업 역시 2021년 진행되는 일몰 사업이었지만 이경혜 경기도의원이 의미있는 사업인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께서도 모두 힘써주셔 한 차례 더 사업이 이어졌고 성과공유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금은 여러모로 상황이 쉽지 않다. 예산이 줄어들어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Q.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나. A. 사실 많은 분들이 안내판의 존재 유무에 대해 잘 모른다. 확산하고 홍보하려면 또 다른 길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친일잔재 청산은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 이번에 진행한 용역은 2019년 6개월 동안 9천만원의 예산으로 31개 시군을 조사한 거다. 저예산으로 꽤 두꺼운 자료로 나왔지만 빈틈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더 조사하면 우리가 이 친일잔재를 어떻게 활용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다다를 수 있다. 또 친일잔재의 상당수는 비석이다. 비석의 해석이 되지 않았는데 탁본하고 아카이빙해서 자료로 남겨야 한다. 2차 사업이 필요하다. Q. 친일잔재 청산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는. A. 공동체에 대한 보존, 사회통합 때문이다.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공통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 친일파에 대한 기억이 다르다면 사회 통합 역시 안 된다.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이러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④현장의 기록들- 안성·양평·하남 [친일잔재, 부(負)의 유산으로 기록되다]

경기도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기념물이 다수 남아 있다. 특히 지역민을 수탈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한 친일 관료나 지역유지의 기념비와 송덕비는 공원이나 학교, 면사무소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원 수탈과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설치한 기반시설도 친일잔재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의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은 이러한 친일의 흔적에 명확한 친일 행위를 기록했다. 그 기록은 친일잔재임을 후세에 기억하게 할 역사적 증거물이 됐다. 일제 식민지 체제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역사적 상징물로 자리잡은 안성·양평·하남지역의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을 찾아가 봤다. ■ 과거와 현재 두루 담은 안내판 ‘역사적 인식’ 넓힌다  남양주시와 양평군을 연결하는 다리로 최근 자전거길로 인기가 많은 북한강철교. 현재 남한강 자전거 전용도로의 일부로 활용되는 북한강 철교 500m 구간은 일제가 1937년 착공해 1939년 4월1일 경경선의 북부선 일부인 동경성~양평 구간 52.5㎞를 개통하면서 사용됐다. 일제가 조선의 자원수탈과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경부선에 이어 제2의 종관철도인 중앙선 부설을 추진했는데, 이 주요 교량 중 하나가 북한강철교다. 당시 조선총독부 철도국 기사 오다가 설계한 철교는 독일 라인강에 걸친 유명한 웨젤빗데 철교를 모방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양에서 처음 보게 되는 능형 철교’, ‘외관미와 견실미를 겸비한 근대적 철교’라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북한강철교 입구에 세워진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은 철교가 세워진 이유와 설계의 특징뿐만 아니라 공사 공사와 현재 활용되고 있는 상황 등을 두루 담아 역사 인식을 넓혀준다. 경기도에서 특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일잔재는 인물에 관한 기념비다. 안성시 대덕면 대덕면사무소 앞에는 4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중 ‘서상준 안성군수 청덕불망비’와 ‘최태현 안성군수 청덕애민선정비’는 지난 2021년 하남시 창우양수장에 있는 광주(하남) 방규환 광주수리조합장 기념비와 함께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이 설치됐다. 친일 인물에 대한 당시 행적을 세세하게 담아 왜 비가 세워졌는지, 어떠한 이유로 친일잔재 상징물이 됐는지를 알 수 있다.  ‘서상준 안성군수 청덕불망비’는 1919년 8월 안성군수 서상준의 청렴과 덕성을 기리고자 세워졌다. 서상준(1875년~1944년)은 관료로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지역민을 수탈하고 친일에 가담한 인물로 꼽힌다. 1910년 강제병합 후 그해 10월 과천군수에 유임돼 파주군수, 포천군수, 안성군수, 여주군수 등의 요직을 맡았다.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후인 1915년에는 다이쇼(大正)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1922년 9월에는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7년~1944년 안성읍장 재임 기간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전시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지나사변공로공적조서’에 올랐다. 또한 1940년 11월 열린 기원2600년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에 초대 받고 축전기념장을 받았다. 일제가 수여하는 각종 상을 받을 만큼 친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그의 비문에는 “모두가 그 덕을 칭송하네, 백리쯤 되는 땅을 다스릴 만한 재주라고”라는 뜻이 적혀 있다.  인근에 있는 또 하나의 기념비는 ‘최태현 안성군수 청덕애민선정비’다. 1913년 10월 안성군 소촌면에 건립됐던 이 비는 현재 건지리에 위치해 있다. 최태현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초토사군관으로 활동했으며,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공로로 훈장을 받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최태현은 1910년 안성군수를 지냈으며 안성시 서운면 북산리 산10번지(황재농장 앞 도로변)에도 별도의 ‘최태현 안성군수 애민불망비’ 1기가 잔존해 있다. ■ 과거 친일 공덕 기린 기념비, ‘친일’의 역사적 상징물 되다 안내판에는 이들 기념비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친일의 행적 등을 담았다. 특히 식민통치에 협력한 공로로 어떠한 훈장을 받았는지, 군수로 재임 당시 어떤 친일 행위에 가담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서술해 시민들이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돕는다. 기념비인지 친일잔재의 산물인지 쉽게 알기 어려운 비석에 ‘친일의 산물’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던 강지연양(18)은 “평소 모른채 지나가던 비석 앞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으니 어떤 친일의 행적인지를 알 수 있어 좋다. 기념비처럼 자랑스러운 건 줄 알지만 사실은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역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는 것도 의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남시 창우 양수장으로 향하면 ‘전 광주수리조합장 방공규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 옆에는 지난 2021년 설치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이 눈에 띈다.  방규환은 1920년부터 광복까지, 경성부협의회원을 시작으로 내선융화를 표방한 친일단체인 동민회의 이사와 평의원, 만주국 동흥은행장, 경기도 군용기헌납발기인회 발기인 등을 역임했다. 특히 군수업체인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의 대주주와 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쟁 동원에 협력한 친일 인물이다. 기념비는 방규환이 1927년 광주수리조합을 창설하고 조합장으로 재직하며 일제에 적극 가담한 세운 공적을 기리기 위해 유지들이 창우리 양수장 앞에 세웠다.

③현장의 기록들- 용인·이천 [친일잔재, 부(負)의 유산으로 기록되다]

역사적 장소와 뼈 아픈 친일 잔재의 흔적을 남기고 이를 기억하는 일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2021년, 2022년 설치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은 도민들의 일상 속 역사교육과 항일의식 고취 자료로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었다.  ■돌에 새겨진 친일의 흔적…구 용인문화원 친일 상징물 전시관 용인시 처인구 용인중앙시장 내 구 용인문화원에는 ‘친일 상징물 전시관’이 있다. 시장 골목 한쪽 끝에 카페를 옆에 두고 설치돼 골목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 전시관 입구에는 상징물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벽에 걸렸다. 전시관에는 돌에 새겨진 친일의 흔적인 ‘팔굉일우비’와 ‘송병준 선정비’, ‘송종헌 영세기념비’가 전시돼 있다.  팔굉일우비는 일제의 조선 침략과 지배, 조선인 착취를 증언하는 역사적 기념물이다. ‘팔굉일우’는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란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가 그들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제국주의 논리이자 구호였다. 일제는 제국주의 침략을 미화하고 홍보하기 위해 1940년 일본과 조선 전역에 팔굉일우비를 건립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찾을 수 없다가 2008년 용인 양지초등학교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팔굉일우비가 발견된 데는 필연과 같은 우연이 있었다. 2008년 양지초등학교는 운동장 인조잔디 조성을 위해 공사하던 중 비석 2개를 발견했다. 일제에게 귀족 작위를 받은 대표적인 친일파 송병준과 그의 아들 송종헌을 기리는 ‘현감송공병준선정비’와 ‘백작송종헌영세기념비’다.  ‘송병준 선정비’는 일제의 국내 침탈과 매국 행위에 앞장섰던 인물인 송병준을 공로로 1891년 세워졌다. ‘송종헌 영세 기념비’는 1927년 건립된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의 기념비다. 송종헌은 송병준 사후에 백작 작위를 물려받고 일진회 평의원 활동하고, 조선소작인상조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의병 체포에 앞장선 인물이다. 비석 발견 소식을 들은 김장환 용인문화원 사무국장은 흥사단 소속 교사들과 함께 이를 확인하고자 학교를 방문했다. 이들이 기념비 확인을 위해 학교 정문 옆 넓적한 돌덩어리에 앉아 있던 중 때 마침 돌덩어리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띄었다. 돌의 상단에는 큰 글씨로 ‘팔굉일우(八紘一 宇)’ 글자가,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삼위 백작 야전종헌 근서(三位 伯爵 野田鍾憲 謹書)’란 글자가 한자로 새겨졌다. 1941년 송종헌이 쓰고 당시 양지초등학교 동창회가 후원해 건립한 팔굉일우비였다. 김장환 용인문화원 사무국장은 “해방이 되자 한국인들은 팔굉일우비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땅에 묻거나, 비석을 옮기고 석재를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비석 중 일부는 파손해서 폐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팔굉일우비는 우리의 시야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해방 후 처음으로 용인에서 비석이 발견된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역사자료라는 측면에서 팔굉일우비는 경기도교육청과 동문회의 동의를 얻어 용인문화원에 기증됐다. 용인문화원은 굉일우비와 송병준 선정비, 송종헌 영세기념비를 창고에 임시로 보관했다. 추후 용인시에 독립기념관이 건립되면 전시 장소를 옮길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경기문화재단은 2021년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의 기획 지원으로 2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했고 창고를 개조한 전시관이 지난해 3월1일 개관했다. 전시관은 서대문 형무소 출입문을 본 떠 개조됐고 상징물을 설명하는 리플렛과 영상물도 제작됐다. 전시창고에 잠겨 보관되어 있던 팔굉일우비와 송병준 선정비, 송종헌 영세기념비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친일잔재 전시물로 전시됐다.  김장환 용인문화원 사무국장은 “큰 관심을 받을 줄 몰랐는데 전시관을 만든 이후 역사교육 현장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교사들과 학생들의 단체관람 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휴일이나 장날에는 전시물을 보려 방문하는 이들로 더더욱 늘 붐빈”고 전했다. ■안내판 설치로 ‘역사교육 문화 콘텐츠’ 활용 기대 이천시 창전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 꼬꼬동이 있다. 현재 이천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지역 어르신 일자리 창출 사업장인 이 곳의 입구엔 지난해 안내 표지판 하나가 설치됐다. ‘옛 이천경찰서 무도관’. 그 내용은 이렇다.  ‘일제는 식민통치와 독립운동의 탄압의 첨병인 경찰들이 무도와 검도를 단련할 수 있도록 주요 경찰서에 무덕관 혹은 무도관 등의 이름으로 연무장을 설치했다. 그 중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 옛 이천경찰서 무도관이다.…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인 이수흥, 유택수 지사도 이천경찰서에 수감된 뒤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지상 1층, 면적 165㎥ 규모로 1914년에 건립된 이곳은 식민통치와 독립운동 탄압의 첨병인 일제 경찰들이 무도와 검도를 단련하던 곳이다. 일제가 주요 경찰서에 무도관 혹은 무덕관 등의 이름으로 연무장을 설치한 곳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한국전쟁 때도 큰 피해를 당하지 않고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역사와 교육의 측면에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일제 유형잔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역사·교육적 측면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역사적 유물 가치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나 역사학자들만이 기억하고 되새기던 장소였다.  이에 경기문화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역사 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내세워 안내판 설치를 주장했고 지자체와 주민 등을 설득해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동의를 얻었다.  친일잔재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객관적으로 기술되다 보니 일상 속 역사교육과 항일의식 고취자료로 활용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박준하 이천시의원은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안내판이 설치된 이후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을 물론, 타 지역에서도 많이 방문하러 오신다”면서 “특히 인근에 이수흥 열사의 동상이 있어 항일과 일제잔재의 살아있는 역사 교육현장이 된 만큼 지역에서 가진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창전동엔 무도관 뿐만 아니라 청춘의 꿈을 오직 조국의 독립에 쏟아 붓다 스물다섯살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수흥 의사를 기념하는 이수흥 공원과 그를 도와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택수의 추모비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징성을 살려 역사 교육의 현장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가치도 높다고 내다봤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긍정적인 역사이든 부정적인 역사이든 지역에 남은 역사문화를 콘텐츠로 활용해 후세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안내판’이 세워진 것 자체가 향후에 여러 가능성을 실현하게 할 큰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②현장의 기록들- 수원 [친일잔재, 부(負)의 유산으로 기록되다]

②현장의 기록들- 수원 :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다 수원 곳곳을 거닐다 보면 친일 잔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민들이 오가는 공원에서,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상징적인 장소에서, 길가 등 일상에서 친일 잔재의 흔적은 마치 기념비처럼 스며들었다. 기념비인가 치욕스러운 일제의 산물인가. 명확히 알기 어려웠던 상징물들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2021년과 2022년 설치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으로 역사적 사실의 옷을 입고 시민들을 마주하게 됐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친일잔재의 상징물들을 찾아가봤다. 첫 번째 지역은 안내판이 9곳 설치된 수원이다. ■ 조선의 식량을 수탈하기 위한 흔적들 일제는 조선의 쌀과 식량 생산량을 증대시켜 수탈하려 했다. 그 행위는 현재 수원시 권선구 소재의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인근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혼다 코스케 권업모범장장 흉상 좌대, 권업모범장 경계석, 잠업시험소·여자잠업강습소 표지석 등 친일잔재 상징물이 남아있다. 일제는 일본 농업 체계를 조선에 강제로 이식했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해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서다. 권업모범장은 이러한 조선의 쌀 수탈을 위한 일본의 두뇌 역할을 한 곳이다.  ‘권업모범장 경계석’은 수원 권업모범장의 영역을 표시하는 경계석 중 하나로 1910년에서 1929년 사이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다 코스케는 이러한 권업모범장의 수장을 맡은 인물. 흉상은 도쿄미술학교 아사쿠라 후미오 교수가 제작했으나, 현재 흉상은 사라지고 좌대만 남았다. 좌대 앞면에는 ‘혼다 코스케 선생’을 일본어로, 뒷면에는 건립 내력이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김도형 문화재 전문위원은 “1910~1920년대까지 일본식 우량 품종이라 명명한 것을 한국에 가져와 강제 보급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재래품종을 강제로 뽑아버리기도 했다. 일본식 품종은 많은 비료, 인력을 필요로 하고 우리 환경과 풍토에는 맞지 않았다”면서 “3·1운동 때 농민들이 반발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전통적인 품종을 짓밟은 데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일본 품종이 우리나라 환경에 맞지 않아 생산량이 오히려 떨어지자 조선총독부는 산미증식 계획을 시행했다. 1920~1925년 일본식 쌀 품종을 보급하는 1차 정책에서, 1926~1931년 저수지를 만드는 수리조합운동으로 나아갔다. 김 위원은 “애초 우리나라는 쌀뿐만 아니라 보리 등 곡식을 골고루 생산했지만, 지금 쌀이 미작 중심이 된 것은 이러한 일제시대의 쌀 중심 농법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징물은 현재 서둔동 ‘수원농림학교 터’와 영통구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세워진 ‘수룡수리조합기념비’와 ‘치산치수지비’에서 찾을 수 있다. ‘수원 농림학교 터’는 농업교육을 통해 일제의 농어기술 체계를 조선에 이식하는 농업 기술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수룡수리조합기념비’는 당시 용인군 수지면 하리에 축조한 여천(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두 곳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수룡수리조합은 당시 경기도의 대표적인 수리사업으로 대지주들이 수익을 독점해 중소지주와 소작농의 몰락을 앞당겼다.  ‘치산치수지비’는 수원 지역 치산치수사업의 완료를 계기로 1941년 10월 수원군 일왕면장 이석래가 주도해 건립한 일제 기념물. 이러한 수탈물들은 철도를 타고 흘러흘러 일본에 다다랐다. 그중 대표적인 통로가 ‘수인선 철도’다. 경기도 해안 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과 경기 동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 인천항으로 실어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했다.  일제의 쌀 수탈과 관련된 상징물들은 오랜 세월 마치 기념비처럼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최근 ‘친일잔재 상징물 기념 안내판’이 설치되면서 상징물의 탄생 배경과 시대적 상황이 시민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친일 인물 과오 명확하게 수원특례시청 맞은편 수원 올림픽공원 주차장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는 ‘홍난파 동상’과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널리 애창됐던 가곡 ‘봉선화’와 동요 ‘고향의 봄’의 작곡가인 홍난파. 일제강점기 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긴 그는 친일 행적으로 그 명과 암이 뚜렷하게 갈리는 인물이다. 동상은 1989년 10월14일 제38차 JC 전국회원대회를 기념해 한국청년회의소가 건립했다. 하지만 이후 관리가 되지 않았고 친일 논란이 불거지면서 철거 등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최근 역사적 사실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지면서 친일잔재 상징물로 남게 됐다.  수원 팔달구 팔달산에도 홍난파 노래비가 세워 있다. 노래비는 난파 홍영후가 태어난 지 70년이 되던 해를 기념해 1968년 건립됐다.  홍난파는 1998년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됐으나 학계에서 친일 행적을 알리면서 최초로 서훈이 취소된 인물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홍난파 노래비 앞에 친일잔재임을 알리는 상징물을 세우자고 여러 차례 주장했는데 민간에서 이를 설치하면 철거와 설치가 반복됐을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문제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이어졌을 것”이라며 “경기도가 관에서 안내판으로 친일잔재임을 명확히 명시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난파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기간 논쟁을 이어오며 협의한 부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오현규 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논쟁은 정확한 사실 기재와 그 사람의 모든 과오를 밝혀 역사에 맡기는 게 맞다”라고 판단해 ‘새로 쓴 난파 홍영후 연보’를 새로 만드는 등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판보다는 인물의 ‘과오’를 명확히 알리는데 힘썼다.  이러한 경기도에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이 설치된 것은 총 17곳이다. 이 중 수원에 설치된 상징물 안내판만 절반 이상인 9곳에 달한다.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감대를 꼽는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교육홍보팀장은 “수원은 2017년부터 3.1운동 100주년 사업을 준비하며 이와 관련된 일들을 시민과 함께 하겠다고 밝히고, 성금 모금 등을 진행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과 공감대가 형성된 측면이 있다”면서 “친일잔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의식 확산, 공감대 형성을 통한 시민·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①역사 바로 알리기 2년간의 여정 [친일잔재, 부(負)의 유산으로 기록되다]

‘일제는 식민통치와 독립운동 탄압의 첨병인 경찰들이 무도와 검도를 단련할 수 있도록 주요 경찰서에 무덕관 혹은 무도관 등의 이름으로 연무장을 설치했다. 그 중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 옛 이천경찰서 무도관이다...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인 이수홍, 유택수 지사도 이천경찰서에 수감된 뒤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역사와 교육의 측면에서 보존 활용해야 할 일제 유형잔재의 하나로 평가된다.’(이천시 창전동 ‘카페 꼬꼬동’ 앞에 설치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내용 중 일부) 올해로 광복 78주년, 3·1운동 104주년을 맞았지만 친일잔재의 상징물은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미 현대적인 옷을 입었거나 기념비처럼 인식돼 제대로 된 설명 없이는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친일잔재 상징물에 역사적 기록을 명확히 담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의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이 2021, 2022년 두 해에 걸쳐 도내 17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이 달 사업을 마무리해 학계와 타 지자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내판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통해 파악된 친일잔재 상징물에 친일 행적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설명을 담았다. ‘친일잔재’ 안내판을 관의 이름으로 세운 최초의 시도다. 본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 2년간의 여정을 5회에 걸쳐 따라간다. 그 끝엔 역사를 바로 알리고 세우는 종착역이 있길 바라며. ■ 3·1운동 100주년 ‘친일잔재 청산 사업’에서 태동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일제·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경기도의 움직임은 그 어느 지역보다 선도적이었다. 그해 11월5일 친일잔재청산특별위원회(위원장 김경호)를 구성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친일잔재 조사를 시작했다. 도의회에선 2021년 5월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일제잔재 청산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의뢰해 6개월여간 대대적인 자료 조사와 수집 등이 진행됐다. 그 결과 친일 인물(257명), 친일 기념물(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89개), 일제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12개) 등이 확인됐다. 그 성과물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 포털서비스’를 통해 도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친일 기념물이 161건 확인됨에 따라 친일잔재임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 사업이 시행됐다. 안내판은 해당 기념물에 설치돼 기념물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기념물이 친일 행적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대상별 특징과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2021년 친일 인물을 중심으로, 지난해엔 일제수탈 시설물을 중심으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을 세웠다. 2021년엔 ▲하남 ‘전 광주수리조합장 방공규환 기념비’(하남 창우 양수장) ▲수원 ‘치산치수지비’(수원박물관), ‘홍난파 동상’(수원 올림픽공원), ‘홍난파 노래비’(수원 팔달공원), ‘혼다 코스케 권모범장장 흉상좌대’(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본관 앞) ▲안성 ‘서상준 안성군수 청덕불망비’(안성 대덕면사무소), ‘최태현 안성군수 청덕애민선정비’(안성 대덕면사무소) ▲용인 ‘팔굉일우비’(용인문화원), ‘현감송공병준선정비’(용인문화원), ‘백작송종헌영세기념비’(용인문화원) 등 총 10곳에 안내판이 세워졌다. 지난해엔 ▲수원 ‘수인선 철도’, ‘권업모범장 경계석’, ‘잠업시험소·여자잠업강습소 표지석’, ‘수원농림학교 터’, ‘수룡수리조합기념비’ ▲양평 ‘북한강철교’ 뿽이천 ‘옛 이천경찰서 무도관’ 등 7곳에 설치해 총 17곳에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민간단체에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을 설치한 적은 있으나 공공기관에서 안내판을 설치한 곳은 경기도가 유일하다. 안내판을 설치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역 주민이나 토지 소유주, 기관 등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은 ‘친일잔재’를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우려가 컸다. 이에 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부정적인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역사가 올바로 기억된다”라고 설득하는 데 노력했다. ■ ‘부정적 역사’도 기록해 인식 제고... 올바른 역사 세워야 이러한 2년간의 노력 끝에 설치된 안내판은 시민들에게 어떤 인식 개선을 할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지난달 23일 수원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내에 역사학자와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관계자 등이 이른 아침부터 모였다. 지난 2년간 설치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현장 답사를 하기 위해서다. 조상형 경기도 문화종무과장, 송창진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교육본부장, 이학성 재단 정책사업팀장 등 도와 재단 관계자를 비롯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박진우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역위원장,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김도형 문화재 전문위원,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 등 역사·친일 연구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현장답사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쌀을 수탈하는 데 두뇌 역할을 한 ‘권업모범장’과 이와 관련된 인물인 ‘혼다 코스케 권모범장장 흉상좌대’, ‘잠업시험소·여자잠업강습소 표지석’ 등이 있는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를 시작으로 수원 팔달공원(홍난파 노래비), 수원 올림픽공원(홍난파 동상), 용인문화원(팔굉일우비, 송병준 선정비, 송종헌 영세기념비)을 거쳐, 옛 이천경찰서 무도관을 끝으로 현장 답사를 마무리했다. 친일잔재를 버리고 없애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안내판까지 달아주는 이유는 뭘까. 부정적인 역사도 우리 역사의 한 축이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교육해야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긍정적인 역사이든, 부정적인 역사이든 지역주민들이 남겨진 지역역사문화를 콘텐츠로 활용하거나 역사 특강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안내판이 세워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직도 무수히 남은 친일잔재 상징물에 비하며 안내판이 설치된 17곳이 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경기도에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매우 뜻깊은 결과”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된 작업들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負)의 유산이란 식민지나 전쟁 등 과거의 과오를 보여주는 유산으로 부정적 문화유산(negative heritage)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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