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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돌아보다] 3. 공렴의 표상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牧民心書) 서문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개탄했다. 다산의 대표저서인 목민심서는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고 관리들의 탐학을 비판한 책이다. 조선 후기 농민의 실태,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도서민의 생활 상태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어 한국의 사회ㆍ경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책은 총 48권으로 구성 돼 있다. 부임(赴任),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이전(吏典), 호전(戶典), 예전(禮典), 병전(兵典), 형전(刑典), 공전(工典), 진황(賑荒), 해관(解官) 등 12편으로 나눠져 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처음 4편인 부임, 율기, 봉공, 애민에서는 수령의 기본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령은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말고 뇌물을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민중을 사랑하는 애휼 정치, 애민 정치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음 6편인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은 다산의 또 다른 저서인 경국대전의 6전을 근거로 수령이 실천해야 하는 정책에 대해 말한다. 관아에 속한 아전들을 단속해 백성들을 잘 보살피도록 하고, 세를 거두어들일 때에도 공정하게 할 것을 당부했다. 적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마지막 2편인 진황, 해관에는 빈민 구제 정책을 마땅히 펼쳐야 한다고 이르고,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적었다. 목민심서에는 지방수령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가서 본 것과 그의 나이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파견 돼 지내면서 목격했던 생생한 체험이 녹아 들어있다. 특히 조선후기 지방사회의 부패상과 인생문제가 소상하게 적혀 있다. 하지만 수령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백성의 편에서 수령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형식으로 기술돼 있어 다산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복은 성글고, 식사는 네 접시를 넘지 않도록 한다’, ‘함부로 낭비하면 재정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면 백성을 착취하게 한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로 민심이 돌아서는 것이다’ 200여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지켜야할 원칙이다. 송시연기자

[정약용을 돌아보다] 2. 부부애

최근 ‘리마인드웨딩’을 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리마인드웨딩은 이미 결혼을 한 중년부부가 결혼을 했던 순간을 다시 한 번 기억하려는 목적으로 올리는 결혼식을 말한다. 몇몇 연예인들이 리마인드웨딩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즘에는 웨딩촬영만 다시 진행하거나 부모님에 드리는 효도선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리마인드웨딩이 진행됐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회갑과 같이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혼례를 치루는 ‘회혼례’를 진행했다. 다산 정약용도 회혼례를 기념해 부인 홍씨에게 ‘회근시’를 지어 선물했다. ‘육십 년 세월 돌아 순식간에 흘러왔네/풍성한 복사꽃의 봄빛 신혼 시절 같다./살아서 이별하고 죽어서 헤어지니 늙음을 재촉하네/슬픔음 짧고 기쁨은 많으니 임금 은혜에 감동하고/이 밤의 목란사 소리가 더욱 좋구나/오래된 하피엔 아직 먼 흔적 남았네/헤어졌다 다시 합한 것, 참으로 나의 모양같으니/합환주 잔을 들어 자손에게 준다.’ 1836년 음력 2월 결혼 60주년이 되기 3일전에 지은 이 시는 다산의 유작이기도 하다. 시에 등장하는 ‘하피’는 신부가 입던 예복을 뜻하는 말로 다산의 부인인 홍씨의 치마를 비유한 것이다. 홍씨는 다산이 유배를 떠난지 7년째인 1807년 남편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시와 함께 자신이 시집 올 때 가져온 보내준 비단 치마를 보냈다. 다산은 부인에게서 받은 비단 치마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편지로 적었고, 이것이 바로 2010년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된 ‘하피첩’이다. 하피첩은 다산의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엿볼 수 있게해 오늘날에도 부부애이자 가족애를 상징한다. 아내에 대한 다산의 사랑은 생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옷자락 뿌리치고 길을 떠나 가물가물 들을 넘고 물 건넌다/표정이야 비록 씩씩한 체해도/마음이야 나라고 다를 수 있으랴’라며 아내를 두고 유배지로 떠나야 하는 슬픔을 말했고, ‘어느 때나 한방에서 우리 사랑 이뤄볼까/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슬프구나 꿈속에나 볼 그 얼굴’이라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호상에 만춘 계절이 당도하니/보이느니 꽃은 지고 새잎이 돋아/꽃구경하며 잔치하던 일 생각나서/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네’라며 아내와의 추억을 노래했고, ‘내 생각 하고 있을 그대 떠올리며/비록 누웠지만 곧 잠에서 깨고/내 생각 하고 있을 그대 떠올리며/해뜨는 새벽부터 해지는 저?까지”라고 아내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을 고백했다. 김형섭 문학 박사(남양주시립박물관 학예사)는 “다산 선생이 유배지에 도착해서 처음 쓴 편지에는 아내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유배지에서도 남편, 가장,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황혼의 이혼은 늘어가고 가족의 소중함은 약화되는 이때, 다산의 부부애는 큰 깨우침을 준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정약용을 돌아보다] 1. 허례허식의 타파

2018년은 다산 정약용이 18년 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 남양주으로 돌아온지 200주년을 맞는 해다. 다산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지식인이다. 무엇보다 그는 열악한 유배생활 중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저술했다. 이를 통해 다산이 남긴 실사구시의 정신과 경세치용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본보는 총 3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다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허례허식을 뺀 실속있는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낭비성행사로 거론돼 왔던 지자체장이나 기관장의 이퇴임식도 약식으로 치뤄지는 추세다. 관례적으로 내려와 터무니 없이 비싸고 격식만 따졌던 문화가 오랜시간 문제가됐던 이유에서다. 다산은 일찍이 관ㆍ혼ㆍ상ㆍ제례에서의 허례허식을 타파했다. 관례와 풍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서 현실에 맞게 의례를 조정하고 정리했다. 그가 집필한 사례가식(四禮家式)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1808년에 저술한 제례고정과 1810년에 저술한 가례작의에 담긴 예식을 합하고 정리해 일상생활에서 실천가능할 수 있도록 만든 실용예서다. 다산은 앞서 가례작의 관례편에서 “제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나라의 풍속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부형(父兄)과 종족(宗族)들의 의론이 많기 때문이다. 혼례를 바로잡기 어려운 것은 양가에서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례만은 바로잡기가 가장 좋다. 이는 주인에게 달렸으니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고례의 관례는 의식절차가 복잡하고 많아서 오늘날 사람들이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다. 주자가례는 고례에 비해 간소하게 줄인 것이기는 하지만 관복제도가 달라 사람들이 여전히 이것을 문제로 여긴다”고 말했다. 현실에 맞지 않은 예식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다산이 사례가식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례가식에서는 모든 의례에서 사용하는 음식의 규모와 종류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했다. 가계(家計)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예를 시행하고, 번다한 절차는 생략함으로써 진정한 예교(禮敎)를 실행하고자 했던 다산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펴낸 이후 그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례에 관한 이 책은 단지 제상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 할 것 없이 접대할 때, 혼인할 때, 회갑연을 베풀 때 등 모든 잔치음식을 차릴 때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니, 이것을 본받아 잘 지켜 분수에 넘지 않도록 한다면 세상의 교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몇 년 전에만 완성했더라도 우리 선왕(정조)께 올려 전국에서 고루 시행될 수 있게 했을 텐데, 책을 이루고 나니 슬퍼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되는구나." 지난 15일 남양주 다산유적지에서는 사례가식에 담긴 관례ㆍ혼례ㆍ제례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실학박물관과 다산전례보존회, 양근향교가 함께 준비한 ‘다산전례복원재현행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사례가식을 재현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장덕호 실학박물관장은 “다산 정약용은 유배 이전부터 허례허식을 탐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구가하는 사대부들을 비판하고 실질적이고 개혁적인 학문을 탐구했다”면서 “그의 실학정신이 현재를 위한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미래시대의 실용정신으로 재창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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