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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소년원 찾은 폴 포츠,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인터뷰 줌-in]

“절대 포기하지 마라. 빛도 없이 휘어져서 안 보이는 터널을 지나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영원한 것은 없다.” 지난 2007년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 우승자로 잘 알려진 성악가 폴 포츠. 그는 지난 21일 안양소년원(정심여자중고교)을 찾아 학생 130여명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법무부 수원보호관찰소, ㈔나누리와 함께 마련한 ‘월드컵 드림콘서트’에서 그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마라)’ 등을 불러 호응을 얻었다. 이날 폴 포츠는 경기일보와 만나 “아이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음악이 다소 올드할 수도 있는데도 반응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폴 포츠는 자신의 음악에 환호를 보내준 소년원 학생들을 위해 한국의 명언을 들려줬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고,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했다. 어렸을 때의 실수로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폴 포츠는 무대에서 올라 ‘네순 도르마’를 부르기 전 “승리를 위한 노래다. 삶에서 희망을 잃지 말고 여러분의 승리를 위해 노래하겠다”고 말한 뒤 노래를 불렀다. 폴 포츠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 우승자로 알려진 뒤 특히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이 같은 재능기부를 통한 공연도 이번이 9번째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잘 반겨준다. 유럽 중에서는 이탈리아인처럼 감정이 풍부하고 이를 공유하는 문화가 좋다. 한국도 서울, 부산, 수원 말고도 많은 도시를 다녀봤는데 어디에나 한국 특유의 ‘한’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슬픔도 아닌 어떤 불완전성 같은 한에 대한 감정을 모르다가 한국에 여러 번 오면서 불완전성에서 완성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가 분단돼 하나로 돼야 하는 남과 북 모두의 열망이 남아 있는 것도 한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폴 포츠는 안양소년원을 포함한 한국의 여러 절망과 아픔 속에 있는 청년, 청소년들을 향해 “지나온 과거는 완전하지 못하고 성공적이지 못할 수 있지만, 삶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며 자기 삶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폴 포츠는 “저 역시 몇 번을 포기한 적도 있지만 다시 기회가 왔고 노력한 것이다”라며 “남은 생애 동안 노래를 하는 게 제 소망이다. 죽는 순간까지 노래하고 싶고, 한국에도 계속 오고 싶다”고 말했다.

정수연 작가 "생동감 넘치는 예술실험은 나의 힘" [문화인]

수원시 행궁동 행리단길을 걷다보면 모든 꾸밈을 떼어낸 채 본연의 모습으로만 남은 건물 하나가 보인다. 새로운 쓰임을 기다리는 그 건물은 얼마 전까지 ‘초원여관’이란 간판을 달았었다. 간판을 떼어내고 임대를 알리는 그 건물을 정수연 서양화가는 우연히 마주했다. 화랑을 운영하는 그는 얼마든지 화려한 전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덜어내고 예술 본연의 아름다움을 관객과 함께 하고 싶었다. ‘관객에게 가장 최근의 작품을 보여주고 소통하자’. 건물 본연의 모습을 살려 전시를 하고자 마음 먹었다. 전시장은 곧 작업실이 됐다. 지난 1월 11일부터 31일까지 이어진 정수연 작가의 전시 ‘문닫은 여관-아트 쇼’가 열린 배경이다. 그는 전시 기간 예술의 날 것 그대로를 일반 시민에게 드러내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1층과 2층, 옥상으로 이뤄진 건물에 그 어떤 치장도 하지 않았다. 고스란히 드러낸 여관의 맨살은 건축의 원형 그 자체. 벽지가 모두 뜯긴 채 콘크리트의 맨살을 오롯이 드러낸 건물은 기괴하면서도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묘한 분위기를 냈다. 그는 “50호짜리 캔버스 20개를 들고 와 전시장에서 작업을 이어나갔다”며 “영하권의 기온에서 창문이 모두 뜯긴 상태로 난방 하나 되지 않는 빈 건물. 자연과 하나된 전시장 덕분에 외부 환경이 작품에 반영됐다”고 전했다. 물감이 추위에 얼어버린 흔적, 붓이 얼어버려 제멋대로 캔버스를 누린 흔적, 흩뿌린 물감이 자연 현상의 원심력과 중력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완성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1, 2층의 ‘문닫은 여관’ 건물 전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됐다. 색다른 실험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곧 관객이 되어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엔 좌우, 상하 등 뚜렷한 경계가 없었고 제목도 없었다. ‘강아지 가족의 탄생’ 등 관객이 해석하는데로, 제목을 짓는대로 작품은 명명됐다.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미술운동처럼 스스로 참여했던 것 같다. 여기서 갤러리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관객들이 많았다”며 “무언가 쓰임을 기다리는 공간에 그 짬과 틈을 찾아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를 하며, 관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 자체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정수연 작가는 미술가이자 문학가, 기술혁신 전문강사 등으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홍익대 조소학과 학생들과 미술 동아리를 결성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어릴 적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림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진 광교산 자락 도마치문화예술촌 입주 화가로 작품 활동을 선보였고, 현재 화랑을 운영하면서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행궁동 전시가 열릴 때 제주도와 인사동에서도 전시를 선보이는 등 관객과 만나는 접점 역시 넓혀가고 있다. 그는 관객과 함께 하는 예술 작업,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인사동처럼 행궁동 역시 활발한 작업과 활동들이 늘어나서 또 새로운 문화와 활동이 펼쳐지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과 함께 하는 문화운동, 실험의 예술 세계를 많은 분들과 함께 해나가 보려 합니다.”

쉰 아홉에 재도전... 서예의 맥 잇는 인경 문경호 [문화인]

한 획 한 획 써내려간 붓글씨는 제 각기 다른 멋을 품었다. 바르게 쓴 해서부터 미친 듯이 쓴 광초, 행서, 초서, 예서, 전서, 한글까지. 제각각 형태를 취한 붓글씨들은 한 자 한 자 우리가 살며 새겨야 할 내용들이 옮겨져 서예로 살아움직였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했던가. 인경 문경호 서예가(79)의 글씨는 전통을 바탕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인격과 수양을 갈고 닦은 자신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했다. 인경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자연에 가까운 예술,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예술, 서예의 기본과 전통을 지키며 오산 지역 문화 발전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인경 서예연구회가 자리잡은 오산시 양산동 터는 그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했다. 자그마치 180년 역사를 품은 이 곳에서 인경은 서예에 정진한다. 그가 처음 붓을 손에 쥔 것은 다섯 살 때다. 시서화를 좋아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예가 생활과 함께 하던 때였다. 어릴 적부터 전통 문화, 서예와 함께 했고, 늘 배우는 삶이었다. 고사리 손에서 써 내려간 글씨는 누가 봐도 빼어났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해 경영을 배웠고 직장 생활을 했다. 직장에서 나와 개척한 사업 역시 꽤나 잘됐다. 사업이 잘 될 때에도 늘 마음 속엔 서예가 꿈틀댔다. 붓을 놓았지만 서예와 단절된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며 관계자를 만날 때엔 술 대신 글씨를 선물했고, 유명한 서화가들과 교류를 이어나갔다. 이론으로 익히고 눈으로 감상하며 서예를 몸으로 축적해왔다. 그는 “아마 어릴 적부터 체득했던 전통문화와 글, 붓에 대한 경험이 계속 가슴 깊숙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며 “늘 서예에 목 말랐고 언젠가는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쉰 아홉의 나이에 붓을 다시 잡았다. 타고난 실력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즈음 한문서예로 1974년 국전 대통령상을 받은 우죽 양진니 선생과 사제지간을 맺었다. 인경은 20여년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그런 노력과 실력에 우죽 선생은 타계 전 ‘인경(문경호 선생의 호) 세교’라는 글을 써주며 문경호 선생을 제자이자 친구로 인정했다. 그의 서예는 철저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옛것을 답습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그 바탕 위에서 변례창신(變例創新)의 노력을 이어갔다. 그의 글씨엔 작위가 없다. 고전과 전통에 근본을 두고 20여년간 몸과 마음으로 체득했다. 인경은 “서예는 몸과 마음이 일치해야 한다”며 “요즘 글씨를 많이들 쓰지만 서예의 기본과 전통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그는 서예를 매개로 할 일이 많다. 양진니 선생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로서 인경은 그의 서맥과 뿌리를 이어나가는 데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미 우죽선생 기념사업회를 꾸려 그의 서예 정신과 세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서예’라는 단어를 만든 소전 손재형(1903년~1981년)에서 시작돼 우죽 양진니(1928년~2018년)-인경 문경호로 이어지는 서맥을 굳건히 해 서예의 근본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인경은 “연구회를 통해 서예의 근본과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은 물론 서예문화가 꽃 피고 지역사회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이 풍성해지는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글쓰기로 지탱하는 나의 삶”…김명숙 시인 [문화인]

스쳐가는 일상과 자연의 구석구석을 붙잡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 끝끝내 사람과 세상을 향해 그 마음을 번져가게 하는 몸부림. 김명숙 시인에게서 엿볼 수 있는 면모다. 나를 지탱하는 요소를 창작에서 찾았다는 김 시인. 그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고, 대학 진학과 함께 성악과에 들어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학업을 그만두고 결혼 이후 남편과 요식업을 하다 IMF 위기를 겪는 등 희로애락으로 뒤덮인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가슴속에 간직했던 응어리를 끝내 창작의 산물로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15일 부천 교보문고에서 열린 ‘내 마음의 실루엣’ 시집 출판 기념회 및 문학 강연 현장에선 김명숙 시인의 진솔한 한마디가 청중의 마음에 가닿았다. “IMF가 터졌을 때 너무 힘들었지만, 당시 온라인 카페에 무심코 올렸던 저의 시와 수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들에게서 힘을 얻고 나니, 내가 잘하는 걸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도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더라고요.”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어느덧 고향에서 멀찍이 떨어진 부천에 자리잡아 삶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그 여자의 바다’, ‘내 마음의 실루엣’ 등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아동문학가이자 47곡의 가곡, 81곡의 동요 등 수많은 곡에 노랫말을 붙여온 작사가다. 글을 쓰는 활동뿐 아니라 부천시노인복지관에서 작문을 가르치고, 지난달 문학 강연을 개최하는 등 교류의 무대에서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온기 가득한 마음 덕분에 그는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창작의 여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가 써 내려가는 글처럼, 그의 삶은 한 존재의 내부에서 출발해 타인과 교류하고 세상과 마주하면서 바깥을 향해 번져가고 스며든다. 앞으로 그는 동시집을 펴놓을 계획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찮고 소박한 일상의 단면을 포착하려고 했어요. 조그마한 씨앗 안에서 온 우주를 찾을 수 있는 셈이죠.” 글을 매개로 세상 곳곳을 누볐던 그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김 시인은 앞으로 희곡과 소설 집필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이어 그는 동요시집, 가곡시집, 악보집, 음반 발매를 계획하고 있다. 김명숙 시인은 “지금껏 그래왔듯 품어왔던 꿈과 열정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창작을 이어가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고혼들을 위한 용주사 수륙대재 참 뜻 이어지길…묵전 김황섭 서예가 [문화인]

지난 3일 화성 용주사에서는 천불(千佛)의 명호(名號)를 써 내린 수백개의 번(幡)이 세상의 번잡한 일을 씻어내듯 나부끼며 이른 아침부터 사부대중을 맞이했다. 육지와 바다를 떠도는 죽은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는 천도를 위해 지내는 ‘제6회 용주사 수륙대재’가 열린 이날. 오방색이 번 하나하나마다 조화롭게 어우러져 수륙대재의 의식을 이뤘다. 행사장 빼곡히 내걸린 번을 써내려 간 이는 묵전 김황섭 서예가(62)다. 그는 국내 조계종의 각종 의식에 참여해 글을 쓰며 봉사하고 있다. 각종 번과 결계에 내거는 글을 쓰고 오리는데 그처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기술을 가진 이는 드물다. 그는 “수륙재 양식에 맞춰 집집마다 거는 위치가 다르다. 행사에 맞게 종이 선정부터 오방색 다섯 색깔의 배합도 잘 맞춰야 한다. 굿판에 맞게 서예를 쓰고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인데 정조대왕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숨결이 깃든 용주사인만큼 이들과 왕후들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도록, 또 전쟁 등 여러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글을 써내려갔다”고 밝혔다. 결계는 외부의 나쁜 기운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맑은 도량을 만드는 의식이다. 번은 영가들을 불러들이는 의식으로 나쁜 기운을 막은 후 의식이 진행되는 행사장에선 각종 번들이 고혼을 불러들인다. 묵전이 쓴 글들은 결계를 치고, 번으로 영가들을 불러들였다. 불교 신자로 절에서 장엄 작업을 해오며 솜씨를 인정받던 그는 약 15년 전 조계종 봉선사 한암 정수스님에게 서예를 사사해 글을 쓰고 있다. 또 조계종 의례의식을 관장하는 어산어장 인묵스님에게 번을 배워 조계종에서 진행되는 수륙재 행사에 참여한다. 매년 절에서 서예 특별전을 열어 여기에 나온 수익금은 모두 절에 기부하는 베푸는 삶도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에게도 이번 수륙대재에 참여한 감회는 새롭다. 용주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륙재 봉행 도량’으로 고려시대 의식 절차를 계승했다는 자긍심이 높은데다 조선 정조 14년(1790년) 용주사에서 열린 무차회가 조선 후기 공식적인 기록을 갖는 유일한 국행수륙재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그 가치가 크다. 특히 그동안 맥이 끊어져 전수되지 못했지만 지난 2017년 제1회 용주사 수륙대재를 봉행한 데 이어, 올해엔 고려 수륙대재를 고증하고 전통문화 복원과 계승에 힘을 쏟기로 하면서 용주사 본사와 말사 스님, 조계종 수륙대재를 집행하는 스님들이 한 자리에서 전통 의식을 제대로 선보이는 자리로 마련됐다. 묵전은 “희미해져가는 옛 의식을 다시 되살리는데 힘 쏟고 정조와 장조의 숨결이 깃든 용주사의 수륙대재에 그 정신을 함께 하게 돼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며 “절에서 삶과 인생을 배우고, 글을 배운 만큼 내가 취한 것을 다시 본래의 곳에 되돌려주는 게 배움의 참뜻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가진 글을 더 많은 자비와 베풂에 쓰이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바느질로 인연 잇고자 노력”…나정희 규방공예 조각보 명인 [문화인]

자그마한 자투리 천 조각을 서로 이어붙이다 보면, 실과 실, 면과 면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피어나는 인연 역시 연결된다. 늘 진심을 담아 정성껏 조각보를 꿰어내는 나정희 명인(75)의 섬세한 바느질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었다. 여인들이 규방에 모여 바느질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든 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규방공예는 오랜 역사 동안 우리 곁에서 호흡해온 예술인 만큼, 바느질로 빚어낸 생활용품 및 치장품 등 곳곳에 조상들의 온기가 배어 있다. 특히 자투리 천을 십분 활용해 만들어낸 보자기와 주머니 등은 새로운 가치와 쓸모를 부여하는 장인의 손길을 만끽하는 매개체가 된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과 함께 나 작가는 오늘도 공방을 오고 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예총의 규방공예(조각보 부문)분야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나 명인의 인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표면에 드러나는 것들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살펴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형형색색의 생기를 머금고 재탄생한 조각보를 중심으로 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기본 원리는 뛰어난 바느질 실력에만 있지 않다. 제자리에만 머무르는 대신 늘 사람들과 교류하고 외부와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가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는 태도에서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다. 나 작가는 2005년 수원규방공예 연구회를 창설한 뒤 국내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도 세상과의 접촉을 늘리기 위해 애썼다. 일본 아사히카와를 비롯해 뉴욕, 파리 등지에서 초청을 받아 우리나라 규방공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데 노력했다.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수원 팔달문화센터 1층 전시장에선 나 명인의 진심을 눌러담은 회고전 ‘조각보에 담은 나의 시간’이 수원 시민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그가 지금껏 제작해온 조각보 작품과 다양한 소품 50여점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는 기회다. 삶의 궤적이 묻어나는 작품들, 이를테면 여자로서 가족에 헌신한 경험이 녹아든 ‘환생’뿐 아니라 국악인으로서의 자취가 담긴 ‘나의 아리랑’ 등을 비롯해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의 어두운 내면이 반영된 ‘암흑’과 같은 작품들이 시민들의 공감대를 건드린다. 나 명인은 올해까지 이어지는 행보에 이어 새롭게 구상하는 계획에 관해서도 밝혔다. 내년부터 그는 바느질의 기법이나 소재와 형식 등 작업 과정 전반에 변화를 주면서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는 상태다. 또 그는 조각보뿐 아니라 훨씬 더 손이 많이 가고 작업 과정이 번거로운 작은 소품들 역시 그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에 소품 관련 전시 개최 등의 명맥을 잇는 시도 역시 활성화하겠다는 소망 역시 내비쳤다. 나 명인은 “출신도 성분도 전부 다른 자투리 천을 엮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크고 작은 인연이 예상치 못하게 피어나는 우리네 인생과 다를 게 없다”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면서 쌓아온 시간뿐 아니라 앞으로 쌓아갈 시간 역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커피 그림쟁이' 장인영 작가 [문화인]

아기를 손에 들고 바라보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깊게 팬 주름과 입가에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가 액자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화지 위, 한 가지 재료를 사용했지만 흑색으로 표현된 깊고 안락한 느낌은 수만가지의 색을 섞어놓은 듯 매혹적이다. 안중근 의사의 결연한 의지도, 음악에 흠뻑 빠져 있는 카라얀의 모습도 열정과, 인내, 존경 등 인물이 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여기에 활용된 재료는 단 하나, 커피다. ‘커피 그림쟁이’로 불리는 장인영 작가는 커피를 재료로 수묵화와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17년 커피 박물관 초대전을 시작으로 2020 국회아트갤러리초대전, 2020 뉴욕 맨해튼K&P갤러리, 2021서울갤러리 초대전 등 7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각종 단체전과 수상 경력을 보유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특별한 전시에 참여 중이다. 커피코리아협동조합에서 주최하는 ‘경계선 지능인 인식개선 문화캠페인 장인영작가 후원 특별전시’에 함께해 커피라운지 55 본점에 작품 13점을 내걸었다. 그중 그가 아끼는 작품 ‘카라얀’은 후원에 활용되도록 선뜻 기증했다. 그가 커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화지에 수채화 작업을 하던 중 커피를 쏟았다. 화지가 커피를 흠뻑 머금으면서 수채화 물감과 커피의 질감, 결이 다른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다시 붓을 잡고 커피로 그림을 그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색다른 시도와 그 안에 탄탄히 내재된 장 작가의 실력, 커피의 질감과 함께 되살아난 그의 그림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커피를 쏟은 화지를 보니 얼룩과 색감의 깊이가 일반 물감보다 짙었고 깊어 먹물을 머금은 수묵화 같았어요. 이것도 꽤 괜찮다. 이후 마음 먹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했죠.” 쉽지만은 않았다. 수묵화나 민화같이 표현되는 커피만의 특징이 있지만 실수를 할 경우 수정할 수 없어 미리 농도와 명암을 계산해야 했던 것. 수많은 작업과 연구, 실패가 뒤따랐다. 수채화에선 여러 색깔로 표현할 수 있지만 커피는 탈색된 빛밖에 없어 표정이나 인물 등 한곳에 최대한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 찾은 소재는 표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인물과 동물이었다. 때론 수묵화처럼, 때론 흑심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한 연필 드로잉처럼 농도와 명암, 질감을 드러내는 기법에 따라 품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 수많은 이야기 속 공통점이 있다.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열정과 사랑, 자애, 희망. 마치 사진인 듯 하나하나 살아 숨쉬는 듯한 작품은 장인영 작가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커피뿐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재료를 중첩하는 작업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 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상대성 이론이 뭐야, 엄마?”라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은하를 표현한 ‘갤럭시 시리즈’다. 이 작업은 커피 위에 금가루와 비즈 등 새로운 재료를 중첩한다. 커피를 붓고 금을 붓고 또 다시 커피를 붓자 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커피의 장점이 드러나 은하처럼 황홀하게 반짝였다. 그림을 전공도 하지 않은 그가, 우연한 실수를 발판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 떠오른 비결은 뭘까. 그는 “재료가 무엇이든 그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놓지 않고 즐겼을 뿐”이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 일엔 뭐든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문화인] ‘영화와 사람을 잇는 방식 고민’…정지혜 영화평론가

영화를 즐기는 방식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다양해졌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영화를 통해 누구를 만나고 어떤 걸 발견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지혜 영화 평론가는 영화와 사람을 연결하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 오면서 영화제 등 현장에서 영화를 만든 이들이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관객들, 동료 평론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시민들에게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 영화와 연결되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 중이다. 지난 여름 성남미디어센터 ‘2022 청년시민영화기획단’ 사업을 통해 청년들과 만난 데 이어 10월20일부터 11월8일까지 수원미디어센터 시민프로그래머 양성 과정에도 참여했다. 오는 12월2일, 3일 양일간 진행될 제7회 수원사람들영화제 ‘흘러가는 우리들’을 8명의 수원 시민들이 직접 기획할 수 있도록 강의를 진행했던 그는 영화 프로그래머의 개념과 실무, 영화제 기획·운영 과제 선정 등에 관한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했다. 수업을 통해선 시민들이 각자 선정한 영화와 어울리는 작품을 골라보기도 하고, 왜 이 영화를 이 섹션에 배치했는지 소개하고, 기획의 변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정 평론가는 “이번 수업에 모인 분들이 20대가 대부분이라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이 많은 데다 열의를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아 활기 넘치게 진행할 수 있었다”며 “시민들이 선정한 영화 리스트가 물의 온도를 테마로 한 선명한 콘셉트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정 평론가는 프로그래머 활동 역시 비평의 일환으로 여긴다. 자신이 기획한 영화들을 토대로 한 소개글, 프로그램 노트 등으로 관객들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와 글, 그 틈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여다 본다. 영화와 만나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떠올리고, 글로 풀어낸 영화를 통해 다시 사람과 만나면서 탐색 지대를 넓혀가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 평론가는 TV 평론 공모전에 당선돼 매체 관련 글쓰기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의 궤적은 TV 드라마·시사 프로그램·예능 등 매체 전반에 대한 글에서 출발했지만, ‘씨네21’에서 한동안 기자로 근무하면서 영화와의 인연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와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가 있는 곳이면 몸담을 기회가 생겼다. 정 평론가는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했고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등을 진행하는 등 폭넓은 행보를 이어 오고 있다. 그는 영화를 글로 풀어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업에 있어 늘 고민한다. 이미지, 사운드 등의 영화 요소들을 완전히 다른 문법을 지닌 정제된 형태의 글로 눌러 담아낸 뒤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은 사실 말이 안 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와 글 사이 미처 풀어낼 수 없는 지점들이 무한해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그 간극을 메꿔 가는 시도를 계속하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와 만나고 있다. 정 평론가는 “새로운 영화를 만날 때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함께한다”면서 “영화라는 게 결국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빚어낸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 애착이 간다”며 “영화에서 결국 사람들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기에, 내가 영화를 잘 봤는지 늘 고민하게 된다”고 웃어 보였다.

[문화인] ‘화살에 깃든 문화와 정신’…유세현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보유자

대나무를 다듬고 깎아내 화살촉을 끼우고 깃을 붙인다. 언뜻 보면 단순한 작업인 듯 하지만, 그가 재현해낸 화살 곳곳에 선조들의 정신이 오롯이 서려 있다. 파주 영집궁시박물관에서 만난 유세현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보유자(59)는 화살대를 어루만지면서 잠시라도 눈을 떼지 않았다. 4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화살을 만들어 온 유 명인은 문화재청으로부터 2004년 궁시장 전수조교로 지정받았고, 지난달 11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일을 도왔던 유 명인은 1986년부터 화살 제작을 본업으로 삼고 지금까지 전통 문화의 명맥을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통 속에 넣어 발사하는 편전, 발사될 때 바람소리가 나는 효시 등 다채로운 화살들이 유 명인의 손에서 탄생해 왔다. 촉과 살대 등 화살 구성 요소의 형태와 소재에 따라 다양한 화살이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상황과 용도에 맞는 화살을 적합한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그만큼 유 명인은 우리 민족이 누린 전통 활쏘기 문화를 현대로 다시 불러와 풍성하게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활을 쏘는 데 필요한 예절과 규율을 계승하는 것만큼, 방치된 활쏘기 문화를 복원해 현대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며 “선조들이 활을 쏠 때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누렸는지 우리도 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살 제작만 40년 가까이 몰두해 온 유 명인은 그간 우리 민족이 지닌 활쏘기 문화의 역사를 짚어보는 주요한 길목에 늘 서 있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복원한 화살을 전시하고, 시연 지도를 맡았던 1994년의 국궁문화축제를 회상했다. 그는 “육사 생도들과 함께 시연하는 발표회를 대중 앞에서 처음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너무 뜻깊은 기억”이라고 되짚었다. 이어 2011년에는 ‘편전 먼장질(멀리 쏘기) 실험’을 위해 편전을 200개 이상 만들기도 했다. 사실 멀리 쏘기에 관한 검증이나 시연은 어렵다. 멀리 쏘는 만큼 화살을 잃어 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늘 연구하는 자세로 일관하는 유 명인은 “당시 가장 멀리 나갔던 화살이 측정치로는 428m였다. 찾은 화살 중에 이 기록이라면 더 멀리 나간 화살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해에 도끼날형, V자형 등의 다양한 화살촉을 고무판, 합판, 등패 등 여러 유형의 타깃에 쏴 보는 실험을 통해 관통력을 측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만든 화살이 현 시대의 활쏘기 문화와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해 왔다. 영집궁시박물관에서는 유 명인이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데 따라 2022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공개행사 ‘2022 지홍전(知弘展)’이 지난 12일 개막해 오는 23일까지 이어진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는 데 있어 중요했던 과정이 유엽전 제작이었다”면서 “게다가 유엽전은 현재 많이 보급되는 죽시의 모태가 되는 화살인 만큼,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뒤 처음 개최하는 전시 주제로 다루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화살촉이 버드나무 이파리를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유엽전을 비롯한 전통 화살의 제작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다. 유 명인은 국가무형문화재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는 데 대해 “너무나 큰 영광이다. 다만 지금껏 해 오던 것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 “중압감과 책임감이 더 커진 만큼 매사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통 화살의 복원, 그에 이은 시연과 발표를 확대해 대중들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른 나라는 없는 문화도 만들어내는 판국에, 우리는 있는 문화를 제대로 살리는 방법에 관해 연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문화인] ‘사회의 풍경을 담아낸 예술가’…김태균 작가

프린팅, 영상, 설치 등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시대의 모습을 담아냈다. 위성으로 본 도로의 모습을 프린팅 하거나 역사적 설화가 담긴 폭포를 설치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지리학적·역사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금의 시대를 바라본다. 20여년 간 현대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태균 작가(47)가 오는 10월12일까지 의정부 경기천년길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완충의 시간(Time to Buffer)’ 전시 속 이야기들이다. 김태균 작가는 과거 독일 생활 중 이민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이 이민자와 같다고 생각, 공항에 모여드는 이민자의 모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바로 공항을 오고 가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태균 작가는 “이때부터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했다”며 “사회, 문화, 정치 등 시대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생각을 해보게끔 제안하는 것이 내가 작품을 통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복잡한 듯 단순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작품에 담긴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재욱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완충의 시간(Time to Buffer)’ 전시에서 역시 지금 우리의 시대 남과 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서울부터 북한까지 가는 길을 디지털 프린트로 표현한 ‘Ornaament#3’, 남과 북의 광장 모습을 아크릴 실사출력한 ‘광장’ 등은 ‘만나는 듯 하지만 엉키고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지금은 분단돼 있지만 땅과 자연의 시작은 같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태균 작가는 “우리나라는 분단 국가이지만 정치적 성향, 사회적 시선을 떠나서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땅과 자연에서 살고 있다”며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을 생각해보게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태균 작가는 올해 남은 시간 동안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사회의 풍경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10월 부천에선 정지용 시인의 흔적을, 12월 인천에선 그의 작품을 한데 기록한 아카이브 전을 선보인다. 역사와 지리학을 이용해 시대를 더 잘 이해시키고 전달하는 김태균 작가의 목표는 단 하나다. 그는 “사회를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작품으로 담아내고 싶다”며 “진중한 자세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있는 사건과 역사를 작업하고 이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 자연과 물아일체 '반사 수묵'으로 선보이는 우종택 작가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살갗을 맞대며 호흡을 나누고 교감한다. 손질된 나무에 먹을 입히고 숯물을 먹이면 자연과 ‘물아일체’가 된다. 자연과 하나되는 ‘무위’의 삶을 위해 광주시 오포읍에 걸친 대지산에 작업실을 차려 놓은 우종택 작가(50)의 이야기다. 온몸으로 자연을 그려내는 그의 작업 과정엔 인위적이지 않은 투박한 기운이 서려 있다. 그는 수묵화와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 전시 ‘반사 수묵’을 파주 스튜디오 끼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11월30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접점’과 ‘무행’에 이어 우 작가의 예술 세계를 몸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내년 봄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서 선보일 대규모 설치 작품전 ‘현장산수’와 연동하는 실내·외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용인시의 한 산촌에서 나고 자란 우 작가는 사실 한동안 인물화 작업에 매달려 왔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인간 내면을 향한 관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 파묻힐 때에 진정한 내면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10여 년 전부터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 나무 수집 등을 이어가며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건 ‘반성’과 ‘실천’이다. 우 작가는 “인간 중심의 삶에서는 환경 이슈나 사회 문제 등이 끊이질 않는다. 망가진 걸 치유하고 되돌리려면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난 반성적 사유를 통해 자연에 도달해야 한다”며 “자연과 하나 되려면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도시에 살면서 자연을 논할 수는 없다. 그게 산으로 들어간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전시장을 찾았을 때도 그가 오랜 기간 자연 속에 머물면서 느꼈던 생각과 경험들이 자연의 상태 그대로 공간에 스며드는 모습이었다. 추상 미술을 보는 듯한 그의 수묵화는 밑그림이나 스케치에 따라 계획해서 그리는 게 아닌, 즉흥에 의한 결과물이다. 자연과 하나된 몸부림이 흔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우 작가는 “손에 붓이 들려 있지만, 의지로 움직이는 대신 무당이 접신하듯 자연의 기운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며 “인간의 생각과 의사가 반영되는 걸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눈을 돌리면 거대한 설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달나무, 왕버들나무, 소나무 등 강원도에서 공수한 다양한 나무들로 구성돼 있다. 흙으로 뒤덮인 육산에서 자란 나무는 곧게 펴 있지만, 바위가 빼곡한 골산에서 가져 온 나무는 굴곡이 심하게 져 있다. 모양이 제각기 달라도 우 작가는 그 자체의 모습을 존중하고 그대로 보존해 작품에 녹여 냈다. 나무 밑에 놓인 반사경에 비친 형상을 통해서는 무엇이 실재하는지, 어떤 걸 본질로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도 엿볼 수 있다. 우 작가는 “평소에 늘 인위적인 판단이나 임의로 꾸미고 조절하는 것에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한다"면서 “이번 전시가 자연을 통해서 인간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송상호기자

[문화인] 70세 넘어 첫 개인전… 나뭇잎 글씨 '잎과 먹'

투박하고 자유로운 글씨에서 한 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반 양모가 아닌 나뭇잎의 예측할 수 없는 질감이 묻어난 글씨는 유독 시선을 붙잡는다. 70세가 넘은 노년의 서예가는 40여 년간 자연과 동행하고, 산에 오르면서 꾸준히 글씨를 써 왔다. 화선지에 눌러담은 진심을 만날 수 있는 이찬복 서예가(73)의 첫 개인전 ‘잎과 먹’이 고양특례시 일산동구청 2층에서 지난 29일까지 진행된 데 이어, 31일부터 내달 10일까지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갤러리 누리에서 열린다. 그에게 40여 년 간 함께해온 서예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 없다. 그는 기술직에 종사해오면서도 근무 이외 시간을 활용해 서예를 배웠다. 그랬던 그는 10여 년 전, 그라인더 사고를 당해 오른손에 치명상을 입었다. 근육과 신경 등을 연결하고 봉합하는 등 대수술을 거치고 나니 손에 감각이 없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생계를 챙겨야 했고, 가족들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엔 되는 대로 가까운 뒷산에 올랐다. 그저 굴러다니는 돌과 나뭇가지들을 쉴 새 없이 쥐었다 폈다 하며 악력이 돌아오길 바랐다. 그렇게 몇 년 간 전국의 산을 돌다 보니 기적처럼 변화가 찾아 왔다. 그는 “의사들이 다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산에 꾸준히 오르다 보니 손에 감각이 서서히 돌아 오더라고요.” 이후 그의 손에는 나뭇잎 붓이 늘 들려 있다. 나뭇잎으로 만든 붓 역시 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산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으니 서예를 할 때도 산의 기운을 받는다면 내면의 목소리를 더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그는 북한산, 지리산 등 전국의 산을 돌면서 나뭇잎을 채취해 붓 제작에 돌입했다. 잘 말려 형태를 잡아 놓은 나뭇잎 뭉치에 소금물을 먹인 뒤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시도 끝에, 3년 남짓 흘러 마침내 붓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대나무, 소나무 등 전국 각지의 산에서 채집해온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이 붓으로 재탄생했다. 오랜 기간 캘리그라피 작업도 병행한 덕분에 전시는 다양한 서예 작품과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균형감 있게 배치돼 있다. 먹물을 적당량 희석한 뒤 붓을 털어내는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볼 수 있어 도구의 활용에 따른 서예의 다양한 표현법도 느껴지는 전시다. 이렇듯 배치된 글씨들을 가만히 살피다 보면, 문득 글씨 한 획 한 획의 질감이 기존의 서예 작품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는 작품이 여럿 눈에 밟힌다. 정갈함과는 거리가 먼, 거칠게 꿈틀거리는 글자들이 벽면에 늘어서 있다. ‘흙’, ‘길 도’, ‘청춘’, ‘연풍(산들바람)’ 등 각각의 글자들이 나뭇잎으로 쓰여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양모가 아닌 나뭇잎 붓으로 적힌 글자에선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예찬,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껏 치열하게 살면서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면서 “작품들에 녹아 있는 내 삶을 이번 전시를 통해 비로소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송상호기자

[문화인] ‘망상을 실현하다’…이영후 작가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한 미래, 인간이 AI와 다르게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질수록 한 번쯤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도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미술’이라고 답을 내렸고 곧이어 미술작품으로 표현했다. 지난 2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갤러리서 청년작가 기획전 <Moving ID>를 마치고 오는 8월16일까지 성남 수호갤러리에서 <멋진 신세계를 열다 기획전 PART3 : Documenta>를 진행 중인 이영후 작가(33)다. 이영후 작가의 작품은 ‘망상’에서 시작된다. 망상은 ‘쓸데 없는 짓’, ‘시간 낭비’,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 마저도 인간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영후 작가는 “미래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무수히 많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망상만큼은 할 수 없다”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망상은 예술을 하기 위한 통로라고 생각한다”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이러한 생각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부터다. 수원, 고양, 성남 등 경기지역과 서울 곳곳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영후 작가 작품을 살펴보면 프로펠러와 톱니바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영후 작가는 “프로펠라는 인류의 문명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생산, 파괴, 재생산 등에 사용되는 프로펠러는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프로펠러가 인류의 전반적인 문명을 나타낸다면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톱니바퀴다. 그는 “어릴적부터 사회의 쓸모 있는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한다. 하지만 근 미래에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역할이 무너질 것”이라며 “시대의 변화로 튕겨져 나온 톱니바퀴 하나하나는 스스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개성으로 돌아가는 미래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가 작품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본격적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앞서 2년여간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그가 쉽고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나무였다. 빠르게 건물을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생긴 나무를 주 재료로 사용한 것. 이 작가는 “유학 당시 건물을 유지·보수하고 가장 많이 버려진 것이 나무였다”며 “버려진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나무는 모두 조립해 작업하기 때문에 작품이 망가져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뚜렷한 그의 작품 세계처럼 명확하다. 작품을 통해 미래의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 것. 자신의 작품으로 다가올 미래 변화를 알리고 변화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영후 작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아무리 쓸모없는 생각도 결국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인간만 할 수 있는 망상이 예술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며 이를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통해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 ‘모두가 버린 곳에서 만든 작품’…김정대 작가

아무도 살지 않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지만 사람이 사용하고 버린 쓰레기들로 뒤엉켜 있다. 바람과 물의 흐름으로 멀리 밀려간 것이다. 사람이 버린 쓰레기 속 뿌리내린 식물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이달 26일까지 수원시에 소재한 예술공간 아름에서 <순환의 이데아> 전시를 선보인 김정대 작가(52)다. 양평군 출신인 김정대 작가는 암벽을 오르고 카약을 타는 아웃도어 마니아이자 20년차 사진작가다. 어릴적부터 몸으로 하는 활동을 좋아했던 카약을 타고 전국의 강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사진과 설치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위성으로 해양 쓰레기가 보이는 곳을 탐색, 그곳을 찾아가 캠핑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한다. 김정대 작가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자연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터전을 만들어줬다”며 “하지만 자연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오래 삶을 유지할 수 없고 오염되는 등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자연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내 작품은 단순한 쓰레기를 수집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닌 식물이 깨끗한 환경에서 다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까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처럼 그는 곳곳에서 다양한 것들을 수집하고 기록한다. 지난 2019년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캠핑을 하며 물에 젖은 큰 스티로폼을 하나씩 세워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다. 2020년엔 새우, 멸치, 못, 사과 등 쓰임새를 다한 것들을 활용해 미로를 만든 뒤 쓰임과 소멸을 보여주며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또한, 지난해부턴 카약을 타고 버려진 신발과 축구공, 플라스틱 물병 등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수중 식물을 채집하고 기록하며 환경과 인간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김 작가의 작품에는 모두 ‘운명’이 뒷받침된다. 세상에 만들어지고 쓰이고 누군가에 의해 이동하고 없어지는 과정과 모습을 사진을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김정대 작가는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답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처럼 환경과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작품을 통해 환경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대 작가는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며 “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환경문제를 외면하는 방관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 ‘사라지는 집과 골목, 그림으로 기억하다’…임상희 작가

임상희 작가 / 김은진기자 ​​​​사람들의 필요와 시대의 변화로 수십 년 간 진행된 도시개발은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지금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과거 정겨운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는 5일까지 서울 A BUNKER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오늘의 보라> 전을 선보이는 임상희 작가(37)는 이러한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집과 골목을 그림으로 담아내 기록한다. 그는 “오래된 동네는 낙후되고 지저분한 곳으로 생각하지만 낮은 건물, 색 바랜 벽과 지붕, 굽이굽이 펼쳐진 골목 등이 어우러져 정겨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임상희 작가는 과거 자신이 살던 동네가 개발 예정지로 정해졌다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개발을 앞둔 곳들이 오래됐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꼈고 사라져 가는 모습을 기록하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임상희 작가가 집과 골목을 그린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임 작가는 서울, 인천, 제주, 전남 등 여러 지역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동네를 감상하고 특색을 파악하면서 사진으로 찍었다. 이후 찍은 사진들을 조합해 그림에서 골목과 집의 다양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려낸다. 다양한 모습을 그림에 담아서 인지 그의 그림엔 여러 색이 사용됐다. 임 작가는 “그림을 통해 집과 골목이 ‘낡았다’라는 인식을 버리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고 싶어 밝은 색으로 칠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처럼 <오늘의 보라> 전시에서도 밝은 동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퍼플섬을 담아낸 이번 전시에선 보라색으로 뒤덮인 마을이 원래의 모습으로 잘 보존되면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표현했다. 밝은 색과 함께 그의 작품엔 ‘동물’이 꼭 등장한다. 임상희 작가는 “골목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과 어울렸던 동물들이 눈에 띈다”며 “개가 짖는 소리, 새가 날아다니고 고양이가 앉아있는 모습은 더욱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정겨운 골목과 집을 계속해서 그리고 싶다”는 임상희 작가는 작품을 본 관람객들이 개개인의 추억을 떠올릴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한다. 임 작가는 “오래된 골목과 집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을 세세히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전통 이야기에 현대를 더하다”…김진란&브루흐 고틀립 미디어 작가

우리의 전통은 지루하고 고전적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예술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불구불한 선, 반복되는 문양,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오색, 탄탄한 이야기 전개. 우리나라 전통 요소 중 하나인 단청을 사용해 미디어 작품을 만들어낸 김진란(54)&바루흐 고틀립(56) 작가의 특징이다. 이들은 지난 24일 수원화성 일대에 개막한 수원문화재단의 미디어아트쇼 중 메인 프로그램인 미디어파사드&라이트쇼에서 문(文)치 부분을 담당했다. 김진란&바루흐 고틀립 작가는 문(文)치에서 기록의 중요성과 함께 혜경궁 홍씨의 한복에 표현된 다양한 전통 문양과 정조사상을 담은 문체에 현대적 요소를 담아 미려하게 영상화했다. 김진란 작가는 화서문은 역사를 보여주는 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혜경궁 홍씨가 남긴 기록으로 정조의 사상을 알게 됐고 여기에 이야기와 현대적인 요소를 더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이야기 곳곳에 단청의 요소를 담아냈다. 단청은 청적황백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해 목조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놓은 것으로 이들에게는 단청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과거 단청은 붓으로 그려졌다면 이들은 영상, 레이저, 음악 등으로 단청을 그려낸다. 바루흐 고틀립 작가는 단청은 색을 칠하고 목조 건축물에 어우러진다며 연금술사가 다양한 원소를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듯 우리 역시 현대와 전통을 더해 다양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로 작품에 사용되는 단청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단청은 지난해 서울 숭례문에서 진행된 미디어 아트아트 프로젝트와 올해 3월 진행된 전남도립미술관 개관전에도 공개됐다. 이들은 전통한옥을 재해석한 공간 구성과 단청 문양 이미지, 국악 연주를 결합해 독특한 느낌을 연출했다. 김진란&바루흐 고틀립 작가는 새로운 소통을 통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캐나다 등에서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새로운 요소를 더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간다. 김진란&바루흐 고틀립 작가는 서로 전공한 것이 달라 작품 작업을 할 때 다른 시각으로 보게 돼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간다라며 당분간은 전통을 결합시킨 작품을 많이 선보일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독특한 미디어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 사진에 따뜻함을 담는 '사진작가' 윤연희

사진은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으로 쓰인다. 사람과 사물, 특별한 장소에서 일어난 추억 등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사진으로 한 사람을 기억하고 따뜻함을 담아내는 작가가 있다. 오는 27일까지 사진공간 움에서 전시 맴;돌다를 진행하는 윤연희 작가(48)다. 윤연희 작가는 시흥지역에서 10여년 간 시민들에게 사진에 대해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기법에 대한 이론을 가르치기도 하며 시민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가 직접 찍어보고 전시를 개최하기도 한다. 윤연희 작가의 사진 대상은 항상 사람이었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 성당에 같이 다니는 사람들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네 사진을 찍어왔다. 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웃는 사진을 주로 찍는다. 평범하지만 그들만이 가진 느낌과 특색은 모두 다르다라며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눠 상대방을 온전히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도록 한다고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웃음이다. 무뚝뚝한 표정은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다. 상대방의 표정을 최대한으로 찍어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것과 사람이 가진 따뜻함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윤연희 작가가 이번 전시 맴;돌다에서는 사람이 아닌 사물에 집중했다. 지난 2015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의자다. 윤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모습, 음성 등 기억이 희미해졌다라며 그동안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가족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서 의자와 함께 아버지가 자주 갔던 곳, 어린 시절 함께 놀러 간 바다 등 추억이 있는 곳을 찾아 사진으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한 전시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가 지금까지 찍어온 주변 사람들의 마지막 사진을 남길 예정이다. 훗날 각자의 장례식 때 쓰일 영정사진을 아무 사진이나 쓰는 것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하고자 윤 작가가 기획해낸 것이다. 윤연희 작가는 누군가 나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사진에 담은 따뜻함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가슴 속에 울림을 전할 수 있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문화인] 코로나19 속 소시민의 삶을 콘테로 표현한 이주영 작가

콘테로 그려진 짙은색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땅을 쳐다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제 갈 길을 걸어간다. 코로나19로 점철된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저마다의 작품에는 코로나19 속에서도 예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도 담겼다. 작가의 소명은 자신이 인식하고 바라 본 세상을 작품으로 구현해 대중과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해 코로나19 속 소시민을 그려냈습니다. 이주영 작가(63)는 오는 8일 수원 해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주영 콘테展-지동교, 봄를 통해 코로나19가 집어삼킨 우리 사회와 그 속 구성원을 바라본 시선을 담는걸 넘어서 코로나19를 예술로 극복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작가는 과거 수원민예총 지부장과 수원민미협 대표 등을 역임한 수원지역 원로 미술인이다. 그의 작품은 수원지역 내에서 문화재, 각종 시장 등 유형적 요소는 물론 삶의 무게 같은 무형적 요소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수원시민을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유화나 콘테를 활용해 장지와 한지, 캔버스 위에 자신의 작품을 펼쳐내는 형태를 활용한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19 속 소시민의 삶을 그려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1월 그는 지동시장 인근 작업실에서 바라본 시민과 그들이 펼치는 제각각의 행동과 표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코로나19 사태가 갓 시작된 시점이라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담아내기로 결심, 작품 120점을 그려내며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오직 콘테만 활용해 전시 작품을 준비한 점도 눈에 띈다. 콘테는 목탄을 원료로 점토와 물로 반죽해 구워 만든 미술 도구다. 특유의 검은 색은 다른 도구와 비교해 훨씬 묵직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를 방증하듯 이 작가의 작품 속 사람들은 생생할 정도로 먹먹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희로애락 등 인간사 속 모든 감정이 결여된 표정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구부정한 등에 자기 몸집만큼이나 큰 가방을 멘 노인, 마스크를 내린 채 고성을 지르는 남자, 모든걸 체념한 채 무릎에 고개를 묻은 이 등은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표정을 선사한다. 표정이 마스크에 가려져있지만 이들의 눈매와 행동, 시선 등은 절망, 무기력 등을 고루 담아냈다는 평이다. 이주영 작가는 기존에 자주 그리던 유화와 달리 콘테를 활용한 그림은 묵직함과 적막을 선사해 이번 전시 콘셉트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작가로서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나 자신의 인식과 이를 그려낸 그림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겠다라고 말했다. 권재민기자

행복한 캔들이야기에 빠져 보실래요? '캔들스토리텔러' 노희정 대표

긴 머리에 검은색 마스크를 낀 예쁜 캔들 인형 로라가 말한다. 변해가는 일상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아련한 일상들. 그럼에도 이 또한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기에. 행복 해볼게. 유튜브 채널 빨간고무신의 캔들동화에서 선보이는 이야기 중 한 편이다. 운영자인 노희정 빨간고무신 대표는 세계 최초 1호 캔들 스토리텔러다. 캔들이라는 하나의 아이템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한다. 캔들의 따뜻한 감성과 일상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그의 캔들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며 인기를 얻고 있다. 노 대표는 독학으로 캔들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 패션 도소매업을 시작한 그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브랜딩이 들어간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2016년부터 이것저것 본격적으로 배웠다. 꽤 재미를 볼 만큼 패션사업이 잘됐지만, 나만의 브랜딩을 갖자는 목표가 확고했어요. 급기야 건강이 악화됐는데, 그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하자. 취미로 작업을 시작하다 자신만의 캔들을 만들기로 했다. 하나 둘 SNS에 올리다보니 반응이 점차 뜨거웠다. 기업 쪽에서도 연락이 왔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해 캔들 관련 제품도 판매하며 캔들시장에 발을 들였다. 주변을 보니 공방을 차리거나, 원데이 클래스, 자격증, 답례품 작업을 하는 게 다였다. 똑같은 캔들을 매번 만들긴 싫었다. 겉모양만 살아있는 캔들이 아닌 이야기가 들어가 생명력이 있는 캔들을 만들기로 했다. 방향성도 온라인 콘텐츠로 바꿨다. 누군가에게 캔들을 선물로 줘서 행복한 것도 좋지만, 더 많은 분들께 행복을 드리자고 결심했어요. 제가 힘들 때 누군가의 영상을 보고 힘을 낸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제 캔들 콘텐츠로 선한 영향력과 힘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영상 교육을 배우며 유튜브 영상동화를 시작했다. 아이스크림과 사랑에 빠져 변장을 하며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는 트럼프 대통령, 깔끔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결벽증 공주 등 그의 캔들 동화는 어른들에게 오늘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따뜻한 미소를 짓게 했다. 고객들은 키트를 구매하고, 고객들이 만든 캔들로 다시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클래스 콘텐츠로 다시 순환되는 것이다. 영상동화를 기반으로 펴낸 캔들 동화책은 지난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진행하면서 목표액 600%를 초과 달성했다. 오는 10월에는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그는 지금은 유명인들에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는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들려드리고 싶다며 전 세계 1호 캔들 스토리텔러로 기업, 공공기관과 새로운 협업비즈니스 모델은 물론 다양한 분들과 다양한 콘텐츠로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정자연기자

[문화인] “다양한 메시지 담은 가사로 찾아뵐 것” 작사가 Bora M, 첫 싱글앨범 발표

첫 싱글앨범을 발매하면서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지만 팬들의 성원에 더 좋은 음악으로 찾아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첫번째 싱글앨범 Done을 발표한 작사가 Bora M(24ㆍ본명 이보람)은 앨범 발표 소감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등을 설명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Bora M의 이번 앨범에는 Done과 Where U At 등 2개 곡이 수록됐다. 이 곡들은 Bora M이 직접 작사해 눈길을 모은다. 타이틀 곡이자 앨범과 동명인 Done은 중독성 있는 후렴구인 이미 난 지나간 너의 star 아니 난 관심없어를비롯해 싫어진거야 이젠 니가, 지금 뭐하냐는 너의 문자 받기도 귀찮아 등 이별을 고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아냈다. 또, Where U At은 반복되는 무거운 마음에 기억할 수 없는 시간 가로등 아래 한참 동안 널 이해 하려고 애를 쓴다, 깊게 박힌 너와의 시간은 계속 별처럼 멍하니 아른 거리다 못해 이제는 너무 거친 어둠이 됐어 등의 가사로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묻어냈다. Bora M은 자신의 스타일을 가리켜 아직은 스타일이 없는게 장점이라며 아직까지도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 이때 우러나오는 묘한 감정과 오글거림을 가사에 잘 버무리려고 노력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이번 앨범은 규격화된 작사가 아닌 지인들과의 대화나 SNS 활동, 독서 등을 통해 즉흥적으로 떠오른 감정을 그대로 작사해 듣는 이의 공감을 사고 있다. 과거 피아노를 연주하며 청소년 콩쿨 등에서 다양한 수상 이력이 있던 Bora M이 대중음악에 뛰어들게 된 건 양준영 작곡가와의 인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Bora M은 때마침 지난 2018년 부친의 권유로 양준영 작곡가를 만나게 됐다. 양준영 작곡가는 Bora M에게 작사, 작곡, 보컬, 프로듀싱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했고 그 중 Bora M이 작사에 소질을 보이자 최근 작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양준영 프로듀서는 Bora M의 가사에는 고급스런 감성과 대중적인 감성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매력과 순수한 감성이 고루 섞여있다라며 매일 기획사에서 오후 2시부터 자정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만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Bora M도 첫 싱글앨범 발매에 안주하지 않고 유튜브에서 K-POP을 영어 가사로 부르는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라며 롤모델 삼고 있는 태연(소녀시대)만큼이나 다양한 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해 대중앞에 서겠다라고 말했다.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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