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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동의 그림자 같은 삶_꿈꾸는 아이들] 2. 낯선 한글에 새긴 난민의 꿈

가톨릭난민센터 ‘난민’단어에 주민 반발
우여곡절 끝에 ‘동두천가톨릭센터’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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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친 난민 아동들이 동두천가톨릭센터에서 선생님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유난히도 햇살이 화사했던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작은 동네.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아담한 단층집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달리자 이질적인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연 지 3년가량 된 동두천가톨릭센터였다.

지난 2019년 개소 당시 센터는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원래 이름은 ‘가톨릭 난민센터’였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동네에 난민들이 몰리면 다른 주민들에게 위협감을 줄 수 있고, 상권이나 정주 환경도 나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하릴없이 개소를 미루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때문일까. 한적한 동네 분위기만큼이나 센터 분위기는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장비를 꺼내들던 그때 취재진의 귓가에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갑게 문을 열어준 선생님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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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친 난민 아동들이 동두천가톨릭센터에서 선생님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 “놀며 공부하며”...웃음꽃 핀 아이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행여 수업에 방해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아이들이 하나 둘 카메라 앞으로 모여들었다. 카메라가 제법 익숙해지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공부하는 아이들과 떠들며 노는 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 하나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중도입국 아동들이 그룹을 이뤄 수업 중이었다. 선생님과는 영어와 모국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문제의 단어는 ‘엎드리다’와 ‘엎어지다’. 두 단어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발음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한국어를 노트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쓰며 열심이었다.

한쪽에서는 막 받아쓰기 수업을 마치고 독서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중하게 책을 고른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관심은 오로지 카메라였다.

“이게 뭐예요? 만져봐도 돼요?” 한 아이는 무선 마이크를 직접 들고 리포터처럼 여기저기 인터뷰를 시도했다. 인플루언서가 꿈이라는 아이는 춤을 추기도 했다. 플래시가 함께 터지는 카메라가 신기해 연방 셔터를 누르는 아이도 웃음꽃이 만개했다.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밝았던 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표현이 서툴러 관계맺기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아이다움이 나타났다. 센터에서의 교육도 큰 도움이 됐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깔깔대는 모습이 여느 한국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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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이라는 굴레에 갇힌 아이들

난민 가정에는 유독 아이가 많다. 2명, 3명은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교육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난민 아동의 학교 입학은 순탄치 않다. 출생 등록이나 신분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다행히 동두천에서는 입학이 순조로운 편이다.

입학이 끝이 아니다. 난민 부모들은 한국어가 서툴어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나 알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기도 한다. 영어로 번역돼 나오기도 하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어에 능숙한 아이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사회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어떤 건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하는데 난민 아동들은 그러지 못한다.

동두천가톨릭센터 대표 이석재 신부는 “일반적인 이민자들과 달리 난민들은 한국에 친구나 아는 사람이 없다. 문화도 낯설고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진다”며 “그런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방치돼 있다. 방학기간에는 과자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부모의 무기력함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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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가톨릭센터에 모인 난민 아동들이 수업 중인 모습.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있다.

■ “신분 보장해줘 불안함 느끼지 않도록...”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꿈이 있다. 멋진 직업을 갖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꿈.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우리가 만든 법과 제도가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 결국 그들이 꿨던 꿈은 한국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이들이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이석재 신부의 생각이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고 어디서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고등학생도 받아들여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이석재 신부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난민들의 고민은 생존뿐이다”라며 “안정적인 신분을 보장해주고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없애줘야 아이들도 마음놓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마저 어렵다면 체류기간이라도 보장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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