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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함께한 당신을 기억합니다] ② 故 김호진씨…한없이 마음씨 착한 딸

매일 아침마다 딸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으로나마 딸과 만나고 있습니다. 홍미향씨에게 딸을 떠나보냈다는 사실보다 큰 슬픔은 더는 딸을 안아볼 수 없다는 아픔이다. 홍씨가 매일 아침 부칠 수도 없는 편지를 딸에게 쓰는 것은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볼 딸의 따뜻한 미소가 마음속 깊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홍씨는 편지를 다쓰고 산책을 나가더라도 또다시 딸이 눈에 아른거려 제자리에 멈춰 서곤 한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들고 나와 웃는 표정으로 유기동물에게 먹이를 나눠주던 딸의 모습은 홍씨의 발길을 잡는다. 홍씨는 호진이는 길고양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착한 아이였다며 힘든 이를 보면 언제든 발벗고 도와줬던 마음 착한 딸이기도 했다고 딸을 추억했다. 홍씨의 딸인 고(故) 김호진씨는 1993년 5월12일 인천 중구 유동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을 6개월 앞둔 그는 지난 2017년 7월 친구와 뮤지컬을 보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25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때 수녀를 장래희망으로 말했던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장기기증을 통해 6명에게 새 생명을 나눠주는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 고인은 중학교 1학년생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족과 떨어져 살았을 때에도 부모님과 주변의 어려운 이웃부터 챙기던 이로 모두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반장을, 대학교에서는 부학회장 등을 도맡을 정도로 성격도 밝아 고인의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곁을 지키곤 했다. 홍씨는 호진이는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와 장애인 활동도우미를 꾸준히 해왔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다정했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항상 친구같이 내 옆을 지켜주던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진이는 하늘나라에서 수녀가 됐을 것 같다며 49재 전날 딸이 꿈에 나타나 수녀원으로 간다고 말했다고 했다. 홍씨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1주일에 1번은 고인을 보러 가고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또 고인을 추억하며 편지를 쓴다. 우리 딸, 가족을 위해 마음쓰게 해서 미안하고 지켜줘서 고마워. 올해는 엄마가 우리 딸 마음 안 아프게 노력할게. 고맙고 그립고 사랑해라고. 이지용기자

[인천과 함께한 당신을 기억합니다] ① 故 이복영씨…외동딸 가족의 큰 버팀목

함께 여행할 때 활짝 웃으시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합니다. 윤미리씨는 수년전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와 단 둘이 떠난 동유럽 여행길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행 도중 다투기도 했지만, 둘만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그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한 데다 어머니가 쓰러지시면서 지난 5년간 병수발을 들며 힘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때가 너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고(故) 이복영씨는 1961년 3월1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6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지난달 15일 병원에서 병마와 치열하게 다투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윤씨는 이 같은 현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여러 차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오갔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가 힘든 치료에도 병마를 이겨내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윤씨는 병원에 가더라도 잘 이겨내왔던 어머니였다며 항상 퇴원전에 엄마, 우리 집에 가자라고 하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간호사인 윤씨지만 고인을 간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매일 고인의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쇠약해지는 모습이다. 윤씨는 육아와 간병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 다르지 않다며 다만 육아는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간병은 반대의 과정을 본다고 했다. 윤씨는 어느날 부활절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를 고인과의 또하나의 특별한 추억으로 꼽는다. 당시 고인의 세레명이 안나라고 정해지자 윤씨는 엄마가 안나면, 나는 마리아네?라는 말에 고인은 응 선녀야. 넌 마리아야고 답했다. 이후 고인은 윤씨를 계속 선녀로 불러왔다. 윤씨도 이유는 잘 모른다. 그냥 그렇게 불려왔을 뿐이다. 윤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인이 쓰던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매일 새벽 6시 고인을 돌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윤씨에겐 아직도 그 방에서 고인의 체취를 느끼고 있다. 윤씨는 혹시 꿈에서라도 잠시 고인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엄마 낳아주고 키워줘서 너무 고마워요. 두 딸 잘 키우면서 열심히 살게. 언제나 엄마의 딸로, 엄마의 자랑으로 살게. 고마워 엄마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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