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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함께한 당신을 기억합니다] ① 故 이복영씨…외동딸 가족의 큰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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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행할 때 활짝 웃으시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합니다.”

윤미리씨는 수년전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와 단 둘이 떠난 동유럽 여행길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행 도중 다투기도 했지만, 둘만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그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한 데다 어머니가 쓰러지시면서 지난 5년간 병수발을 들며 힘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때가 너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고(故) 이복영씨는 1961년 3월1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6년 11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지난달 15일 병원에서 병마와 치열하게 다투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추모 기사 사진
고(故) 이복영씨가 생전에 딸 윤미리씨와 단 둘이 떠난 동유럽 여행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윤미리씨 제공

 

윤씨는 이 같은 현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여러 차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오갔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가 힘든 치료에도 병마를 이겨내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윤씨는 “병원에 가더라도 잘 이겨내왔던 어머니였다”며 “항상 퇴원전에 ‘엄마, 우리 집에 가자’라고 하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간호사인 윤씨지만 고인을 간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매일 고인의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쇠약해지는 모습이다. 윤씨는 “육아와 간병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 다르지 않다”며 “다만 육아는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간병은 반대의 과정을 본다”고 했다.

윤씨는 어느날 부활절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를 고인과의 또하나의 특별한 추억으로 꼽는다. 당시 고인의 세레명이 ‘안나’라고 정해지자 윤씨는 “엄마가 안나면, 나는 마리아네?”라는 말에 고인은 “응 선녀야. 넌 마리아야”고 답했다. 이후 고인은 윤씨를 계속 ‘선녀’로 불러왔다. 윤씨도 이유는 잘 모른다. 그냥 그렇게 불려왔을 뿐이다.

윤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인이 쓰던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매일 새벽 6시 고인을 돌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윤씨에겐 아직도 그 방에서 고인의 체취를 느끼고 있다. 윤씨는 혹시 꿈에서라도 잠시 고인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엄마 낳아주고 키워줘서 너무 고마워요. 두 딸 잘 키우면서 열심히 살게. 언제나 엄마의 딸로, 엄마의 자랑으로 살게. 고마워 엄마”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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