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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읽는 동시] 똑같은 시간인데

똑같은 시간인데 한희숙 어제 아침 9시는 시간이 너무 빨라 지각할 뻔했는데 배가 아픈 오늘 9시는 시간이 너무 느려 병원 앞 계단에서 9시 병원 문 여는 시간 기다린다. 어제오늘 똑같은 우리 집 벽시계인데 왜 이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시간'은 요술쟁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월급 날짜는 왜 그리 더디 오는지, 세금 낼 날짜는 왜 그리 빨리 오는지, 방학은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게 ‘시간’이라는 요술쟁이다. 이 동시는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등교 때면 빨리도 달음박질하는 시간. 몸이 아파 진료받아야 할 땐 느림보 시간. 이건 아이의 마음이나 어른의 마음이나 같을 것이다. 언젠가 이런 동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집을 보던 어린아이가 세 시간만 있으면 엄마가 돌아온다는 말에 시계 시침을 한 시간 앞으로 돌려놓고 좋아라고 손뼉을 친다. 그러고는 제 시간에 돌아온 엄마를 향해 왜 늦게 왔느냐며 따지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엄마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웃음을 자아낸다. 이 동시 속의 아이처럼 시간을 맘대로 돌려놓고 싶은 게 우리 인간의 마음이리라. 즐거운 시간은 길게, 힘든 시간은 앞으로 빠르게. 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간의 수명도 맘대로? 이건 아니다! 시간을 공평하게 주신 신이 노하겠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리라.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고, 참아야 할 줄도 알아야겠고. 사는 일은 이 두 가지를 몸에 익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심어요

심어요 박설희 놀이터 모래밭에 꼭꼭 심어요 물도 뿌려요 용돈으로 받은 동전을 꼭꼭 심어요 봄에 심었던 꽃씨에서 봉숭아꽃 가득 피어난 것처럼 동전들 주렁주렁 열리라고 간밤 한숨짓던 엄마 아빠 주름살 펴지라고 아이의 효심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또 하나의 지식을 갖고 있다. ‘엉뚱함’이 그것이다. 말도 안 되는 그 엉뚱함을 아동문학은 일찌감치 수용하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이 ‘심어요’가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땅에 동전을 심는다? 이보다 엉뚱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곧 문학을 잉태한 씨앗이 된 것이다. 아이는 용돈으로 받은 동전을 꽃씨를 심듯이 땅에 심고 물까지 뿌린다. 봄에 심었던 꽃씨에서 봉숭아가 가득 피어난 것을 보고 한 일. 그래서 가난에 한숨짓는 엄마 아빠의 주름까지 활짝 펴지라고. 아이의 효심이 꽃보다 예쁘다. 아니, 이런 효심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품으로 끌어들인 시인이 너무너무 예쁘다.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일이 때로 상식적인 것보다 높게 보일 때가 있다. 필자의 동화 ‘행복한 지게’도 그중 하나다. 머리가 모자라는 덕보가 효도를 한답시고 아버지를 지게에 태우고 매일 동네를 도는 이야기도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번쩍이는 승용차로 드라이브를 시켜 드리는 것보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동전을 꽃씨처럼 땅에 심고 물까지 준 이 동시는 그래서 읽는 이들의 가슴에 ‘웃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씨를 심어준다. 이런 게 좋은 동심의 문학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운동화

운동화 김선영 손자가 걸음마를 시작했다 너무너무 예뻐서 운동화를 사줬다 아장아장 걷더니 물웅덩이에 가서 참방참방 놀았다 아기들은 왜 물웅덩이를 좋아할까? 동심 세계로 풍덩 어린 손자가 첫걸음을 떼고 아장아장 걷는 것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제대로 할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으리라. 이 동시는 바로 삶의 기쁨을 보여준다. 내용도 아주 단순하다. 이 점이 이 동시의 매력이다. 쓴 이는 너무 짧다고 할는지 모르나 더 이상 무엇을 넣으랴. 동시는 군말을 넣지 않아야 한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지, 어른의 눈이 얹어지면 동심을 흐리기 딱 십상이다. 새 운동화를 신고 다른 곳도 아닌 물웅덩이로 가서 장난치는 그 동심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큰맘 먹고 사준 운동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이는 좋은 곳 다 놔두고 물이 고인 웅덩이로 가더니 참방거리며 논다. 참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운동화가 흙물에 젖는 것은 생각지 않고 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한두 번쯤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가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서 옷을 더럽혀가지고 집에 들어간 일. 옷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친구들과의 놀이. 오늘은 이 짤막한 동시 한 편 읽으며 때 묻지 않았던 그 동심의 세계로 달려가 보는 일은 어떨까?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씽씽 달려요

씽씽 달려요 이복순 오늘은 태어나 처음 나 혼자 타는 두발자전거 삐뚤삐뚤 조금은 불안해도 앞을 향해 달려라 달려 바람도 시원한 축하 손뼉 쳐주고 나뭇잎도 살랑살랑 손 흔들어주네 두발자전거 타고 씽씽 달리는 기분 지구 한 바퀴 돌아 우주를 향해 은하수 저 끝 ET가 사는 곳까지 신나게 달릴 거야 내 마음 너는 알지? 어린 날의 꿈 자전거를 처음 탈 때의 기분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연습 끝에 혼자의 힘으로 페달을 저어 앞으로 내달릴 때의 기분을 무엇에 비기랴. 자전거는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는 일종의 ‘학교’ 같은 것. 아이들은 자전거 위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자연이 주는 저 숱한 말들과 아름다운 노래와 그리고 가슴 설레는 꿈을. 이 동시 속의 아이는 우주 속 은하수 저 너머에 사는 ET까지도 만나고 싶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 그런 가슴 설레는 꿈이 있었다. 두발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면서 꿈을 키웠다. 그 어린 날의 꿈을 이룬 이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는? 사는 일에 쫓겨서,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게 인생이다. 거리나 공원 같은 곳에서 자전거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실 것이다. 두발자전거를 타고 씽씽 내달리던 어린 날도 떠오르실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문학이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문학이다. 침침해진 시력으로 굳이 골치 아픈 책을 가까이 하려 하지 마시고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동시를 찾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만이라도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냉장고

냉장고 황금모 날이 더워질수록 냉장고와 친해진다 학교에서 돌아와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때도 놀이터에서 흠뻑 땀 흘리고 들어와 얼음물이 생각날 때도 그런데 앗, 큰일이다 내 심장이 너무 차가워져서 수지 좋아하는 내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으면 어떡하지? 첫사랑의 계절 어느 가정이고 간에 냉장고 없이 사는 집은 없다. 첩첩산중 절간에도 냉장고는 갖추고 지낸다. 여름은 냉장고와 더욱 절친한 계절. 시인은 이를 동심으로 들여다봤다. 재미있는 것은 냉장고로 인해 심장이 얼어 수지 좋아하는 마음까지 언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대목이다. 가히 아이다운 생각이다. 이런 게 동시다. 아이의 마음을 표 안 나게 슬쩍 훔쳐오는 게 좋은 시인이 할 일이요 솜씨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사춘기도 옛날보다는 이르다고 한다. 옛날엔 중학교나 가야 이성감정을 느꼈는데 요즘엔 초등 3, 4학년이면 어느새 사춘기란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 쪽에서는 학습 외에도 아이들의 감정 체크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다는 것. 이 동시는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의 마음을 냉장고에 빗대 보여주고 있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가 생각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담아낸 소설로 특별한 갈등 대신 두 소년 소녀의 심리상태를 수채화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때 묻지 않은 동심을 어린 날엔 누구나 갖고 있었다. 이 작품 속의 ‘수지’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속 소년소녀일 수 있다. 오늘은 가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수지를 깨워보자.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숨바꼭질

숨바꼭질 진순분 누나랑 네 살 동생 집에서 술래잡기해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눈감고 열 번 센 후 어디로 숨었을까? 안방과 샛방으로 마루와 부엌으로 동생 찾는 술래 누나 두 볼이 빨개져요 어머나! 장롱 속에서 쿨쿨 잠들었어요 함께 뛰놀던 그때 그 시절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 중 술래잡기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까? 숨을 곳도 많고 찾을 곳도 많은 게 집이다. 안방, 건넌방, 골방, 다락방, 거실, 주방. 여기에 책상 밑도 있고 가구 뒤도 있다. 술래잡기를 하다 보면 집이 마치 끝없는 미로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 작품은 누나와 네 살 동생의 술래잡기 놀이를 보여주는 동시조다. 누나와 네 살 동생의 우애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곱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찾아도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새 두 볼이 빨개진 누나. 네 살 동생은 잘도 숨었다. 역시 꾀돌이에 장난꾸러기다. 누나를 골리려고 단단히 짠 작전. 장롱 속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쿨쿨 잠까지 들었다. 이쯤 되면 장래 직업은 수사관이 제격이다. 시인은 이 동시조를 통해 어린 날의 추억을 불러내라고 우리들에게 넌지시 귀띔한다. 그리고 그때 함께 놀이를 했던 얼굴들을 찾으라고 한다. 가슴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정다운 얼굴들. 사는 일에 바빠 깜빡 잊고 지냈던 그리운 얼굴들. 오늘은 그 얼굴들을 하나씩 찾아내 차라도 한잔씩 나누라 한다. 저 험난한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이야기 나누라 한다. 아! 이 땅의 술래들이여, 외로운 술래들이여.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호박넝쿨이 가는 길

호박넝쿨이 가는 길 전원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호박넝쿨 앞에 대나무로 다리를 놓아 줍니다. 호박넝쿨도 말이 없지만 할머니의 뜻을 알고 그리로 기어갑니다. 할머니가 놓아 준 길 호박넝쿨이 가는 길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노는 땅이 있으면 그냥 두고 못 배기는 게 할머니들의 땅 사랑이다. 꽃이든 나물이든 뭐라도 심고 가꿔야 사는 맛을 느낀다. 이는 가난했던 옛날에도 그랬고 좀 산다는 요즘에도 그렇다. 타고난 여성의 DNA 탓일 것이다. 이 동시 속의 할머니는 집 안 어딘가에 호박씨를 심은 모양이다. 그러고는 호박 줄기가 타고 올라갈 대나무 사다리까지 놓아준다. 호박 넝쿨은 할머니가 놓아준 사다리를 말없이 기어오른다. ‘할머니가 놓아 준 길/호박넝쿨이 가는 길’. 할머니와 호박 넝쿨의 관계가 참 아름답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차리고 따른다. 시인은 인간과 식물의 소통을 동심의 그릇에 담았다. 이 동시를 읽다 보니 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보여준 법정 스님의 하루가 떠올랐다. 스님은 아침마다 근처 산을 둘러보며 나무며 풀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또 산새며 다람쥐와도 아침 인사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만나는 온갖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곧 삶의 행복이란 말씀도 빼놓지 않았다. ‘관계’가 곧 행복이란 말씀이었다. 우리 사회도 이 동시 속의 할머니와 호박 넝쿨처럼 아름다운 소통이 곳곳에서 이뤄졌으면 참 좋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꽃 명자

꽃 명자 은결 그리움으로 칠한 속눈썹으로 13살의 붉은 뺨, 네가 나에게 왔다 책가방 내팽개치고 호오∼ 불을 켜 두었던 동네 어귀에서 “명자야, 노올자” 사금파리조각처럼 반짝이던 유년의 황홀한 시간이 톡· 톡· 터· 진다. 반짝이던 유년의 시간 초등학교 친구처럼 임의론 친구는 없지 싶다. 몇 십 년 후에 만나더라도 너니 내니 할 수 있는 친구가 곧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다. 시인은 명자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어린 날 한 동네에서 뛰놀던 명자 생각에 어쩌면 눈에는 눈물까지 번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뛰놀던 저 골목길. 명자가 있었기에 반짝이던 하루. 해지는 게 아쉽기만 하던 저녁놀. 꿈에도 나타나던 명자는 다름 아닌 한 송이 ‘꽃’이었다. “명자야, 노올자.” 이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던가. 필자도 그랬다. 대문 밖에서 그 소리만 나면 뭘 하든 내팽개치고 뛰쳐나갔다. “저 저것 좀 보래. 친구라면 그저….” 어머니는 뛰어나가는 나의 등 뒤에서 혀를 차곤 하셨다. 그러시고는 해가 져도 들어오지 않는 자식을 위해 골목 어귀까지 나오셔서 헤매곤 하셨다. 친구란 그런 존재였다. 매일 만나도 싫증은커녕 좋기만 하던 얼굴들. 하루라도 못 보면 잠이 오지 않던 얼굴들. 그 얼굴들이 그립다. 시인의 이 동시를 읽으며 많은 이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던 시간을 떠올릴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탈색되거나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저 반짝이는 지난날을!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아가를 위하여

아가를 위하여 지성찬 고이 잠든 아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평화의 기도가 가득한 하얀 얼굴을 별 같이 고운 손으로 한 하늘을 쥐고 있네. 아가의 맑은 눈에 하늘 나라가 떠오르네 보석으로 반짝이는 산(山), 금빛 은빛 너울대는 파랑새 노랫소리가 종일토록 즐거웁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필자는 고이 잠든 아가의 얼굴을 내세우고 싶다. 아니, 필자 말고도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하리라 본다. 여기에 새근거리는 아가의 숨소리는 또 어떤가? 세상의 소리 가운데서도 가장 맑은 소리가 아닐까 싶다. 시인은 아가의 잠든 얼굴과 숨소리를 내세워 어지러운 세상의 온갖 풍경과 시끄럽기 그지없는 세상의 온갖 소리들을 잠재우고 싶었나 보다. 5월은 어린이의 달. 방정환 선생이 생각난다. 그 어렵던 시절에 어린이만이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어린이 운동에 발 벗고 뛰신 분. 오늘날 어린이날은 그분의 피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이 땅의 어린이들이 아직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접받기는커녕 학대받고 무시되는 경향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시인은 이런 현실의 안타까움을 생각해 ‘아가를 위하여’란 제목을 달았다고 본다. 우리 모두 어린이를 위해 따듯한 가정, 푸른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 5월은 그런 뜻에서 반성의 달이어야 한다고 본다. ‘아가의 맑은 눈에 하늘 나라가 보이네’. 시인이 본 아가의 눈은 곧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천심(天心)인 것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횡단보도를 건너며

횡단보도를 건너며 최영재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자마자 피아노 건반 위를 걷는다 하얀 건반 딛고 가면서 마음속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은 반음 올려 검은 건반 딛고 도시라솔파미레도. 순수한 횡단보도 건반 이 동시는 읽기도 전에 콧노래부터 나온다. 횡단보도를 피아노 건반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눈을 가진 시인은 늘 이런 식으로 우리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다 아시다시피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움직이고, 해머가 현(줄)을 때려서 소리를 울리게 한다. 시인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내는 발자국 소리를 피아노 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인은 횡단보도에서 나는 피아노 소리로 하여 온 도시가 음악으로 철철 넘치고 있다는 것까지 암시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통로’라고 하겠다. 더욱이 이 통로는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의 반가운 만남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흰 건반을 딛고 가는 사람과 검은 건반을 딛고 오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렇다! 사람이 반가운 사회가 곧 행복한 사회다. 어려울 때 손잡아 주고 외로울 때 가까이 가 주는 사회가 따듯한 사회다. 만나기만 하면 부딪치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서, 만났다 하면 끌어안아 주는 반가운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시인은 새봄에 딱 어울리는 동시집 ‘김별나님’을 예쁜 그림과 함께 세상에 내놓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꽃비 내린다

꽃비 내린다 정두리 활짝 핀 벚꽃이 하나 둘 꽃잎을 날린다 꽃자리가 촘촘해 서로 비켜주다가 그예 꽃잎은 떨어지는 것이다 호올로 가볍게 흩날리는 꽃잎들은 꽃비가 되었다 맨땅은 꽃비를 안았다 봄 땅이 촉촉하다. 낙화의 아름다움 우리나라 비 이름 가운데 참 예쁜 이름들이 많이 있다. ‘꽃비’도 그중 하나다. 비가 꽃잎처럼 가볍게 흩뿌리듯이 내리는 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꽃비다. 그런데 시인은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꽃비라고 봤다. 비좁은 자리 때문에 서로가 함께 자라기 어려운 것을 안 꽃잎이 동료 꽃잎을 위해 땅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낙화인가! 동료를 위해 기꺼이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저 벚꽃! 남은 벚꽃은 땅에 떨어진 동료 벚꽃의 몫까지 피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보니 고 박완서 작가의 글 한 토막이 생각난다. 살아 있는 우리들은 우리를 위해 먼저 간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줘야 한다는 글이었다. 특히 나라가 어지러울 때 우리를 대신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나를 포함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참 많을 듯싶다. ‘맨땅은 꽃비를 안았다/봄 땅이 촉촉하다.’ 떨어진 꽃비 덕분에 맨땅은 딱딱하지 않고 촉촉하다는 것! 아름다운 희생만이 세상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두리 시인은 현재 새싹문학회를 이끌면서 어린이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봄 숲

봄 숲 진순분 온 누리 풀어놓은 따스한 봄 안개 숲속 나무 하품할 때 한 스푼 떠먹이면 연두 순 쏘옥 내밀고 빤히 보네 -나 예쁘죠? 시조에 피어나는 봄 내음 리듬은 시의 매력이다. 시 가운데서도 시조는 더욱 리듬을 중요시한다. 동시조(童時調)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삼는 문학. 그러니 더더욱 리듬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봄 숲」을 입안에 넣고 굴려보라! 얼마나 상큼한가. 얼마나 귀여운가. 시인은 봄과 숲을 하나로 묶어 생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듯 봄기운이 대지를 깨우는 모습은 가히 거룩하고도 아름답다. 시인은 언어를 빌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학이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나 할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외래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훨씬 작품의 맛을 낸다는 것이다. ‘스푼’은 ‘숟가락’의 외래어인데, ‘숟가락’하는 것보다는 ‘스푼’하는 것이 얼마나 어감도 좋을뿐더러 맛도 나는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외래어라고해서 다 밀쳐내는 것보다는 우리 것으로 애용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아리랑’이 한국을 넘어 세계어가 되었듯이 좋은 외래어는 굳이 배척하지 말고 우리말과 적절히 버무리는 것도 문화의 폭을 넓히는 게 아닌가 싶다. 진순분은 시와 시조를 함께 쓰는 수원이 자랑하는 시인이다. 제42회 가람시조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내 동생 태어난 날

내 동생 태어난 날 -선영이에게 이승하 엄마 배 뻥뻥 차더니 엄마 배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셨다 어떤 아기가 내 동생일까 나를 졸졸 따라다닐까 오빠라고 부를까 밤늦게 병원에서 오신 엄마와 아빠 보자기에 돌돌 싸여 같이 온 내 동생 새빨간 얼굴인데 두 눈이 깜박깜박 업어주어야지 손 잡고 다녀야지 떼쓰면 양보하고 잘못하면 고쳐주어야지 내 동생이랑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오빠야 응 선영아 아이의 시선 아이는 새로 태어날 동생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어떤 아기가 태어날까부터 태어난 동생을 어떻게 데리고 다닐까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이 하늘을 찌른다. 이 동시의 장점은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생각을 펼쳐 놓은 데 있다. 이런 동시가 좋은 동시다. 공연히 의미를 넣어준답시고 동심 밖의 생각이나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 ‘업어주어야지 손 잡고 다녀야지/떼쓰면 양보하고/잘못하면 고쳐주어야지.’ 아이는 이렇게 성장한다. 동생이 생김으로 하여 형이 되기도 하고 누나가 되기도 한다. 그건 나이를 떠나 마음과 행동이 몰라보게 자라는 것이다. ‘내 동생이랑 오래오래/사이좋게 지내야지/오빠야 응 선영아.’ 이 얼마나 따사로운 우애인가! 보자기에 돌돌 싸여 온 동생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는 아이의 모습을 이 동시는 맛나게도 잘 담았다. 이승하 시인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또 한 편으론 교도소 안 사람들의 작품을 읽어주고 평해주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 문학을 통한 심리치료인 셈이다. 아니, 그들의 내일에 희망의 등불을 켜 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종교를 대신해 사랑의 전도사로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오솔길

오솔길 김도성 생강꽃 산수유꽃 노랗게 핀 산 숲길 손끝에 솔잎 뜯고 휘적휘적 걷는 길 누군가 따라오려나 돌아보니 오솔길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봄은 가만히 앉아 있기엔 아까운 계절이다. 무엇보다도 설레는 가슴을 그냥 둘 수 없다. 어디든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오솔길은 봄을 맞이하기에 딱 좋은 길. 그것도 혼자라야 맛이 난다. 이 동시조는 새봄을 맞은 이의 설레는 마음을 오솔길에 펼쳐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는 것. 누군가 자기를 따라온다는 느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오솔길이었다는 것. 이 동시조를 읽다 보니 장욱진 화백의 「자화상」이란 그림이 떠오른다. 황금 들녘 사이로 오솔길을 유유히 홀로 걸어가는 신사의 모습. 한 손에는 모자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우산을 든 모습이 마치 먼 길이라도 가려는 듯, 단순함을 추구했던 그의 그림 세계와 이 동시조의 간결함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싶다. ‘생강꽃 산수유꽃/노랗게 핀 산 숲길’의 장화백의 저 황금 들녘과, ‘손끝에 솔잎 뜯고/휘적휘적 걷는 길’은 어쩜 그리도 같은 심상의 표현인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이 동시조의 제목을 ‘오솔길’이 아닌 ‘자화상’으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김도성 시인이 걸어온 삶의 길로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시인은 최근 가곡과 대중가요 가사 창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건투를 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건전지

건전지 김윤환 시계도 건전지 덕에 쉬지 않고 돌아가지 게임기도 건전지 덕에 재미있게 놀아주지 아플 때 보살펴 주는 우리 엄마는 나의 건전지 신나게 놀으라고 건전지 사주시는 아빠는 나의 진짜 건전지 부모님은 나의 愛너지 건전지는 작은 부속품에 불과하지만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할 필요품이다. 시계는 물론 아이들의 게임기에도 건전지는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인은 건전지를 사람에게도 필요한 ‘부속품’으로 보았다. ‘아플 때 보살펴 주는/우리 엄마는/나의 건전지’. 이때의 건전지는 엄마의 ‘사랑’을 말한다. 어디 그뿐인가. ‘신나게 놀으라고/건전지 사주시는 아빠는/나의 진짜 건전지’. 아빠의 건전지는 활동성을 뜻하는 ‘에너지’이다. 곧 나란 존재는 엄마의 사랑과 아빠의 힘으로 성장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는 건전지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 기계가 동작을 멈췄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 아빠 엄마의 고마움도 그렇다. 평소에는 두 분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어느 상황에 처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라면 군대 생활이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온 말이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있다. 부모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실 때는 더하다. 생전에 왜 좀 더 잘 보살펴드리지 못했나? 왜 그리도 말썽을 부렸던가? 불효를 했던가? 만감이 가슴을 치게 된다. 여기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사람과 인간

사람과 인간 최영재 엄마 생일에 고모가 왔다. 거실의 화려한 꽃다발을 보고는 “어머, 예쁘기도 하네.” “호호호, 우리 그 사람이 준 선물이에요.” 고모는 갑자기 얼굴을 획 바꾸더니 “으유, 우리 그 인간은 도대체 생전 이런 걸 몰라!” -사람과 인간은 다른가? 같은 말, 다른 뜻 하나의 대상을 놓고도 지칭하는 말에 따라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인간’이 그 좋은 예다. 시인은 이 동시를 통해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생일에 아빠가 사다 준 꽃다발 선물. 이를 본 고모의 샘나는 말이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으유, 우리 그 인간은 도대체 생전 이런 걸 몰라!” 고모의 이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람과 인간은 다른가?’ 맞다! 사람과 인간은 하나의 대상이되 그 의미는 다를 수가 있다. ‘그 사람’ 할 때의 그 사람과, ‘그 인간’ 할 때의 그 인간을 우리는 종종 생활 속에서 겪고 있다. ‘그 사람’은 몰라도 ‘그 인간’은 좋지 못한 사람을 말할 때 흔히 쓰인다. “그 인간 되먹지 못했어”, “그 인간 참 몹쓸 인간이야”, “그 인간하곤 상종도 하지 마” 등등.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먼저 인간이 돼라!” 할 때의 ‘인간’은 좋은 사람의 본보기가 되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고 보면 같은 말이라도 용도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동시 속의 아이는 엄마와 고모의 말을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점차 크면서 알게 될 것이다. 최영재 시인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이래 재미있는 동시로 독자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온열 의자

온열 의자 김금순 피아노 건반 그림이 그려진 버스 정류장 온열 의자 매끌매끌해 따끈따끈해 할머니 집 아랫목에서 고구마 먹고 만화책 보던 때가 언제였더라 버스는 왔는데 의자가 자꾸 엉덩이를 붙잡는다. 온정 나눠주는 의자 요즘 웬만한 버스정류장엔 온열 의자가 놓여 있어 노약자들의 추위를 덜어준다. 참 고마운 의자가 아닐 수 없다. 이 동시는 버스정류장의 온열 의자를 노래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온열 의자 덕분에 할머니 집 생각을 떠올리는 것. ‘고구마 먹고 만화책 보던 때가/언제였더라.’ 온열 의자와 할머니 집의 아랫목을 하나로 연결짓고 있다. 어린 날 방학이 돼 찾아간 할머니 집에서 세상 모르고 즐겁기만 하던 추억은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법. 시인은 그 아랫목을 그리워하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온열’의 의미다. 온열은 너무 뜨겁지도 않고 적당한 온도로 몸을 녹일 수 있는 열! 이건 온도의 의미를 넘어 정(情)의 의미를 뜻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추운 사람에게는 몸을 녹일 수 있는 아랫목(의자)이 필요하다는 것. 집에 온 손님에게 아랫목을 내주듯 따뜻한 의자가 돼주라는 것. ‘버스가 왔는데/의자가 자꾸 엉덩이를 붙잡는다.’ 오늘은 잠시 나를 한 번 돌아다보자.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의자가 돼준 적이 있는지. 아랫목 같은 따듯한 정을 베푼 적이 있는지. 그러고 보면 나를 돌아다볼 ‘거울’은 세상 천지에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며 읽는 동시] 눈사람

눈사람 박수빈 눈사람이 설탕이면 좋겠다 살살 꾀어서 집에 데려다 놓고 아빠도 한 스푼 엄마도 한 스푼 동생도 한 스푼 나도 한 스푼. 맛있는 눈사람 겨울은 뭐니 뭐니 해도 눈이 와야 제 격이다. 어릴 적 기억으로 말하면 사흘도리로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밤새 내린 눈이 발목도 부족해서 무릎까지 내린 날도 있었다. 그런 날 아침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눈 치우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우곤 하였다. 그때의 필자 생각을 고맙게도 박수빈 시인이 요렇게 지었다. 눈사람이 설탕이면 좋겠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설탕사람을 살살 꾀어서 집에 데려오겠다는 것. 그래서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나도 한 스푼씩 맛있게 먹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장난기 넘치는 작품인가. 동시는 이래야 맛이 난다. 그게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종종 어린이들의 작품을 심사할 기회가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너무 교과서적인 글, 어른스런 글들이 많다. 어린이의 글은 어린이다워야 한다. 세련되어 보이는 작품보다 조금은 모자라 보일일지언정 풋풋한 글에 마음이 끌리게 돼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꾸미는 글은 오히려 글맛을 잃게 한다. 여기에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피해야 할 일. 단순 명료한 글에 감동도 수반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박시인의 ‘눈사람’을 좋게 보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는 것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방패연

방패연 손동연 가슴 한복판이 뻥! 뚫린 방패연. 높이 높이 하늘 높이 박차고 올랐습니다. 방패를 버리고서야 하늘을 품었습니다. 울긋불긋… 파란 하늘 위 장관 겨울은 연 날리는 계절이다. 필자가 사는 수원 창룡문에 가면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어른들로 때 아닌 풍경을 이룬다. 여러 모양의 울긋불긋한 연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연은 단연 방패연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패연. 방패연은 방패를 닮은 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연이다. 방패연의 특징은 연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 이것을 방구멍이라고 하는데 방구멍은 바람이 약할 때는 연 표면에 부딪치는 공기가 상승 에너지를 발생시켜 연을 떠오르게 하고, 바람이 강할 때는 바람을 내보냄으로써 연줄을 끊어지지 않게 한다. 우리 조상님들의 놀라운 지혜를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동시조는 초·중·종장으로 형식과 맛을 완벽하게 갖춘 빼어난 작품이다. 특히 종장의 ‘방패를/버리고서야/하늘을 품었습니다.’는 의미의 반전을 꾀하면서 작품의 진수를 보여준다. 즉 하늘 높이 떠오른 방패연이 방패를 버림으로써 하늘을 품는다는 것. 이는 방패연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에게 삶의 교훈을 주고 있다. 나를 버림으로써 더 큰 나를 얻는다는 것! 새해를 맞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백수 삼촌을 위한 기도

백수 삼촌을 위한 기도               박혜선 구들장 귀신이 붙었다고 잔소리하면서도 밤마다 기도하는 할머니 “저놈 아가 내 자식이라가 아이라 심성이 곱고 법 없이도 살 놈입니더 어디든 가기만 하믄 해 안 끼치고 단디 할 낍니더 그러니까네 잘 좀 봐주이소.” 저렇게 기도를 하는데도 삼촌이 아직 구들장 지고 있는 거 보면 하나님이 할머니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거다. 애끓는 마음, 올해까지만 이 동시는 청년실업이 만연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따가운 시다. 시의 화자인 아이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구들장 귀신’이 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삼촌이 백수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까지 생각해낸다. 그건 하나님이 할머니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탓이라고. 이쯤 되면 이를 읽는 독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인의 능청스런 기지가 돋보인다. 어느새 연말이 가깝다. 올해도 백수의 신세를 면하지 못한 청년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새해 아침에 품었던 소망들이 물거품이 돼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허나 어려울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인간에겐 있다. 그건 희망이란 새로운 해다. 희망은 좋은 것, 결코 시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 쓰다듬고 사랑하는 것! 젊은 청년들이여, 어둠의 바다를 가르며 시뻘겋게 솟아오르는 아침의 해를 보아라! 태양은 어둠을 가르고 솟아오를 때 진정 아름답다.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왜 바닷가를 찾을까? 부디 젊음을 무기로 오늘을 딛고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먼 훗날 어려웠던 오늘을 웃으며 이야기하기를!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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