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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백스테이지 ‘첫 공개’.... NJP 커미션 ‘숨결 노래’ [전시 리뷰]

각기 다른 작품의 톤과 목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소리는 어떨까. 어우러짐의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소리가 충분히 어우러지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네 명의 큐레이터와 네 명의 작가가 개성을 담아 동시대 예술을 선보이는 전시가 마련됐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가 지난 12일부터 선보이는 기획전 NJP 커미션 ‘숨결 노래’다. ‘NJP 커미션’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처음 선보이는 형식의 전시로 ‘수행하는 미술관’, ‘실천하는 미술관’으로서 미술관과 예술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외부 큐레이터를 포함한 네 명의 학예사가 공동 큐레이팅 하고, 네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표현 형식 등으로 작가 본연의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먼저 정시장에 들어서면 앤 덕희 조던 작가의 공중 설치 작품 ‘앞으로 다가올 모든 것을 환영한다’가 눈길을 끈다. 백남준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오래된 구형 컴퓨터, 플럭서스 퍼포먼스,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연상케 하는 피아노,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손으로 구성됐다. 관객이 다가오면 공중의 손이 진자 운동을 시작하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피아노는 연주 소리와 화려한 빛을 내며 관객에게 응답한다. 작품은 관객과 기술, 예술이 융합해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가능성을 그렸다. 에글레 부드비티테 작가는 인간과 동물, 식물의 공생을 강조하는 비디오 작품 ‘퇴비의 노래: 변이하는 몸체, 폭발하는 별’을 선보였다. 고대의 자연이 잘 보존된 리투아니아 쿠로니안 스핏의 소나무 숲과 모래 언덕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현지의 학생과 안무가가 함께 등장한다. 이들은 이끼로 뒤덮인 땅에 몸을 의지하거나 수평선을 따라 전진하고, 모래톱에서 뒹굴며 신체의 여러가지 동작을 보여준다. 작가가 만든 몽환적인 사운드와 원시적인 자연, 다양한 특징의 몸을 결합해 초자연적인 감각을 고조시켰다. 전시는 ‘회전초’를 통해 식물의 점진적이고 대대적인 이동을 보여주는 최찬숙 작가의 비디오 설치 작품 ‘더 텀블’로 이어진다. 작품은 바람이 불면 스스로 뿌리를 끊어내고 바람에 굴러다니며 씨를 흩날리는 회전초의 삶의 방식과 나선운동에 주목해 만들어졌으며, 작가는 이 같은 회전초의 모습에서 밖으로 밀려나는 존재들을 담아냈다. 영상은 애리조나 등 회전초를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과 회전초를 포착한 드론의 시선,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생동하는 회전초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더 텀블’은 3부로 구성된 작업의 1부에 해당하는데, 전시장에선 미군 참전용사와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연합을 다룬 2부 ‘더 텀블 올 댓 폴’로 이어진다. 특히 우메다 테츠야 작가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숨겨진 공간을 탐험하는 투어 퍼포먼스 ‘물에 관한 산책’을 선보인다. 작가는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의 숨겨진 공간에 작품을 배치해 관객이 작품을 발견하면서 50분간 미술관을 오롯이 경험하도록 했다.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TV 정원’, ‘TV 물고기’,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 아카이브 ‘메모라빌링’은 작가의 연출에 따라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또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각종 사무실 등 백남준아트센터의 백스테이지를 처음 공개해 미술관의 건축적 매력과 새로운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물에 관한 산책’은 지난 13일부터 한 달 간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 간격으로, 1일 총 6회 진행된다.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팀장은 “네 명의 작가들이 인간중심주의로 인해 피폐화된 생태와 자연을 돌아보고 주변 사물들과의 연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했다”며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 동시대에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예술로 소통하는 현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15일까지.

국악관현악 메카 꿈꾼다…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 연주회 ‘두드리’ [공연 리뷰]

지난 9일 오후 7시30분 평택북부문예회관에서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 연주회 ‘두드리’를 선보였다. 창단 후 처음 선보인 공연은 국악관현악의 메카로 발돋움하려는 평택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시립국악관현악단은 지난 7월3일 평택시의 첫 시립예술단으로 창단했다. 그간 문화의 불모지이자 변방으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문화 없는 도시로 지적받아 온 평택의 도전이었다. 여러 종목 가운데서도 국악관현악단을 택한 것은 평택을 대표하는 예인 고(故) 지영희 명인을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영희 명인은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면서 사실상 국악관현악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 뜻에 부응하듯 이날 공연은 평택 출신 명인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이날 공연은 태평소 협주곡 ‘호적풍류’로 시작을 알린 것도 평택 서정동 출신 호적 명인 송복산(본명 송창선)을 기리기 위해서다. 송 명인은 1964년 12월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꼭두각시놀음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호적 종목 예능보유자가 됐다. 태평소 연주는 지영희 명인의 제자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유산 삼현육각 보유자 최경만 명인이 맡았다. 시립국악관현악단은 최 명인의 태평소 연주와 협연하며 굿거리로 시작해 자진모리장단, 빠른 굿거리, 당악, 세마치장단, 휘모리장단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태평소의 경기 가락을 총망라했다. 이어 경기도 무형유산인 ‘평택민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평택민요보존회와 함께할 수 있도록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한 반주에 맞춰 농요(모내기 소리), 장례요(상엿소리, 회다지소리), 어로요(뱃소리) 등이 평택의 소리가 펼쳐졌다. 다음 공연은 시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맡은 박범훈이 지휘를 잡았다. 사물놀이를 창시한 김덕수사물놀이패의 협연으로 박 감독의 대표곡인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1~3악장이 펼쳐졌다. 이날 연주된 신모듬은 창단 연주회를 위해 생황, 대피리, 저피리,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을 추가하고 화성을 입혀 박 감독이 새롭게 편곡한 곡이다. 1악장 ‘풍장’은 평택 농악 장단을 인용했고, 2악장 ‘기원’은 평택의 굿 음악인 가래조 가락을 중심으로 농사일과 가정의 평화, 국태민안 등을 비는 뜻을 담았다. 마지막 3악장 ‘놀이’에 이르자 최고조에 도달한 사물놀이 소리에 관객 모두 신명 나 박수를 치며 즐기면서 관객과 연주자 모두 하나가 됐다. 박 감독은 “창단 연주는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평택의 소리를 21세기 새로운 국악관현악곡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첫 시작”이라며 “이는 시립국악관현악단의 목표이자 화두로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해야 할 것이며 평택의 소리를 이 시대의 새 국악관현악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평택시가 명실공히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21세기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갈 시립국악관현악단에 많은 애정과 기대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잠자던 감각 깨우고 경기 한 판”… 오감자극 가족 체험전시 ‘감각운동,장’ [전시리뷰]

“꼬끼오!” 초등학교 운동장 혹은 공원에서 볼 법한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돌리니 정신이 번쩍 드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번에는 공중에 떠 있는 불투명한 파이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평화로운 저녁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풀벌레 소리와 고요한 통통배 소리가 흐른다. 예술적 상상력과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가 열린다. 지난달 30일 개막을 시작으로 오는 12월22일까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순항 중인 수원시립미술관 가족 체험전시 ‘감각운동,장’은 운동장으로 변신한 미술관에서 다양한 감각체험을 할 수 있는 전시이다. 민예은, 백인교, 소목장세미, 임지빈, 정만영, 최은철 6인의 현대예술 작가가 참여해 회화, 설치, 인터렉티브, 사운드 등 복합 장르의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감각운동,장’이란 독특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유아가 세상을 감각과 운동을 통해 이해하는 단계인 ‘감각 운동’이자 그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고 훈련하는 경기를 펼치는 운동장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전시는 총 2부로 이뤄져 1부 ‘감각 깨우기’에서는 관람객의 신체 감각을 자극하는 전시를, 2부 ‘통 감각 경기’에서는 전시장이 운동장이 돼 현대미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가장 먼저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오브제와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민예은 작가의 설치작품 ‘NULL’(2024)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분리돼 보이던 각각의 조각과 벽면의 선은 바닥에 앉아 위를 올려보면 이어지는 하나의 선처럼 착시 현상이 일어나며 위치와 각도에 따른 감상의 재미를 선물한다. 시각을 통해 공간을 재발견하고 상상력을 자극했다면 이번에는 청각이다. 청각을 통한 공감각적 체험과 소리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정만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소리에 얽힌 다양한 체험 작품을 선보였다. 어두운 복도와 같은 길목에 들어서니, 마치 공사장 한가운데 또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반 원형으로 늘어선 양철판은 스피커가 되고 양철판 위로 빗소리의 진동이 흐른다. 정 작가는 작품 ‘소리비’(2024)를 통해 다양한 장소에서 녹음한 생생한 소리를 선보이며 관람객의 청각을 자극했다. 이어진 작품 ‘순환하는 소리’(2024)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차원의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공간 전체가 관람객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잡는다. 수원천 발원지의 물소리, 수원천 상류의 풀벌레 소리와 옹달샘 소리, 염소와 수탉의 아침부터 새소리까지 작가가 직접 각각의 공간에서 채집한 소리는 파이프를 타고 물소리처럼 흐른다. 물을 틀듯 여러 수도꼭지를 열자, 전시장에 터져 나오는 다양한 소리는 관람객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인간 문명의 양면성을 다양한 작품으로 전하는 최은철 작가는 각설탕을 쌓아 올려 현대문명을 표현한 ‘설탕도시’(2022)와 지구 온난화로 개체 수가 사라져가는 북극곰을 매년 한 점씩 그려낸 회화 ‘크렉’(2016~2023)으로 문명사회 속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설탕은 물에 닿거나 높은 온도에서 녹아내린다. 최 작가는 물질적 달콤함과 이면에 숨은 불안정성, 덧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최초 설치에서부터 현재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며 갈변하거나 흘러내린 설탕은 그 변화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다. ‘설탕도시’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높이의 빌딩으로 이뤄진 3개의 구역은 마치 점점 녹아내리는 빙하섬과 같다. 설탕도시와 연계된 작품 ‘크렉’은 멀리서 보면 각각의 빙하 조각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속의 북극곰이 보인다. 관람객은 제공받은 각설탕을 통해 ‘설탕도시’ 곳곳에 자신만의 빌딩이자 빙하 조각을 쌓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어진 2부 ‘통 감각 경기’는 1부 ‘감각 깨우기’에서 일깨운 모든 감각을 활용해 관람객이 예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전시가 구성돼 있다.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와 매번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 줬으면 좋겠어요”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백인교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어린이를 포함한 다양한 관객이 ‘만지고’, ‘느끼며’ 미술을 즐겁게 향유해달라고 말했다. 색채의 예술성에 주목하며 섬유의 특성을 작업에 반영하는 백 작가는 작품 ‘COLOR.FULL’(2020-2024) 등을 통해 실로 감싼 바구니를 관람객이 직접 두드리며 색과 소리, 촉각이 어우러진 체험을 선보였다. 빨강, 주황, 노랑의 드럼을 두들기듯 벽면에 위치한 바구니를 두들기며 숨겨진 방울을 찾아내는 재미를 담아냈다. 모든 체험을 마쳤다며 이제 감각 경기 한판을 벌일 운동장으로 나가면 된다. 목수와 아티스트, 여성 드래그 퀸 등 폭넓은 영역의 창작자로 활동하는 소목장세미는 사라져가는 옛 전통 목공 기술과 모양을 독창적인 가구로 현대화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소목장세미는 아세안 지역의 치료와 치유, 명상에서 착안한 작품 ‘등 굴리기 로라’(2024) 등을 통해 평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인식하게 한다. 이어 작가가 작곡한 음악을 배경으로 두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게임형 작품 ‘푸스볼 테이블’(2023)과 ‘동심협력게임-클라이밍 락’(2023)은 경기에 참여해 점수를 매기며 관람객에게 즐거운 재미를 선물한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삐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감각운동기’는 1단계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며 감각을 깨우기가 쉽지 않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활기 넘치는 감각 운동장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번 전시 공간은 삼화페인트의 친환경 페인트 협찬으로 조성됐다”며 “2024 올해의 컬러를 반영한 전시 연출로 어린이와 관람객이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을 발휘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고 말했다.

예술과 시민이 함께한 호흡, 대한민국 무용대상 본선…무더위도 꺾지 못한 열정 [현장리뷰]

암전 속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하고 심장을 울리는 소리가 한여름 밤 숲속에 울려 퍼지자,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도구이자 악기인 몸을 가지고 근육 하나, 힘줄 하나까지 메시지를 표현하며 무대는 무용수들의 땀방울과 열정으로 가득 찼다. 무더운 날씨에도 시민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숨죽여 무대를 관람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공원을 방문한 이규현씨(38) 부부는 “무용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 장르였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수준 높은 무대를 관람하게 돼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국내 최정상 무용 단체와 최고의 무용 창작물을 가리는 ‘2024 대한민국 무용대상’ 본선 무대가 분당중앙공원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성남시와 (사)대한무용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한민국무용대상은 예선, 본선, 결선을 거쳐 오는 12월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대통령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자를 가리게 된다. 특히 무용계에서 대통령상이 수여되는 것은 전국무용제와 대한민국무용대상 단 두 대회뿐이기에 최고의 권위로 뽑힌다. 연말 예정된 결선에 오를 최종 두 팀을 결정하는 이날 본선 무대에는 출사표를 내던진 27개 팀 중 예선을 통과한 9개 단체가 열띤 경쟁을 펼쳤다. 시민 참여형 축제를 기치에 내건 대한민국무용대상은 ▲전문 심사위원(80%) 7인과 시민심사위원(20%) 10인으로 구성된 심사시스템 ▲경연 결과 실시간 공개 ▲숲속 공원에서 열리는 개방형 무대 등 다양한 방식을 구성했다. 특히 대중에게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무용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용 전공자를 제외한 시민심사위원의 점수 반영은 예술성뿐만 아니라 무용의 대중성 확보를 목표로 했다. ■ 무용계 미래 이끌 예술고교 5개팀의 열띤 무대, 객석 환호와 미소 가득차 이날 현장에서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을 끌어낸 건 무용계 미래를 이끌어갈 국내 5개 예술고등학교 영재들의 사전축제 무대였다. ‘목멱, 만판놀이’라는 작품으로 서막을 힘차게 연 국립국악고 무대에서 꽹과리, 북 등 신명 나는 가락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치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땡볕 더위에 강렬한 무더위가 지칠 법도 했지만, 객석에는 300여 명이 훌쩍 넘는 관객들이 앉아 몰입하고 있었다. 객석에 앉지 못한 시민들은 일어서서 무대를 관람하거나, 뒤편에 자리한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즐기는 등 제각기 다른 풍경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이어 덕원예고는 ‘해소 ver.2’라는 작품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쪽진 머리에 파랑, 초록, 노랑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화예고는 ‘음풍농월(吟風弄月), 신명으로 피어나다’는 작품으로 꽃과 같은 무대를 펼치며 객석에 자리한 시민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한껏 예열된 현장은 본격적인 본선 무대로 이어졌다. 경연은 한 팀 한 팀 무대가 끝날 때마다 전광판에 점수가 공개되며 긴장감을 더했다. 전문심사위원들의 점수와 시민심사위원들의 점수가 각각 표기되며 비교의 재미를 더했다. ■ 발레부터 한국무용까지 최정상 9팀 경쟁…전광판 실시간 점수 공개에 객석 몰입 한국 창작무용 3팀, 현대무용 4팀, 창작 발레 2팀 등 총 9개 단체의 엎치락뒤치락하는 뜨거운 경쟁 속 이날의 관전 포인트는 두 번째 무대에서 1위를 차지한 LINKINART(안무자 신창호) 팀의 ‘1위 자리 사수’ 여부였다. 이날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은 ‘LINKINART’ 팀의 ‘March’는 오늘날의 ‘갈등과 대립’ 대신 새 시대를 열어가는 시작점을 내딛는 ‘첫걸음’을 주제로 창작된 현대무용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전쟁과 이슈라는 헤드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뱃고동 같은 소리와 함께 등장한 백색의 무용수들은 좌에서 우로, 가운데서 양옆으로 파도가 퍼져나가듯 몸의 진동을 보여줬다. 끝내 하늘로 뻗어나가는 손끝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더했다. 비폭력 시위 등 오늘날 거리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행진(march) 혹은 마치 패션쇼 모델처럼 무대를 십분 활용하는 워킹 군무가 압권이었다. 조명 빛이 퍼져나가며 무대 벽면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는 웅장함을 더했고 파워풀한 워킹 퍼포먼스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Project S(안무자 정석순) 팀은 ‘시간이 지나도 미소를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을 담으며 무용수들의 순수한 미소와 몸짓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현대무용 작품 ‘The Hospital’로 2위에 올랐다. 암전 속에 등장한 하얀 환자복을 입은 무용수와 가운을 입은 의사. 내내 웃음을 보여주던 무용수들은 무대가 반전되며 온몸으로 울부짖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압권인 표정 연기와 표현력으로 마치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스토리로 관중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 오직 인간의 몸…심오한 메시지, 즉각적인 표현의 창작 예술에 연말 결선 무대 기대감 이날 본선 경연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에서 나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 ‘bnp company(안무자 배강원)’의 한국 창작무용 ‘씨름·시름의 해방’이 최종 3등에 오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종 4위를 차지하며 (사)대한무용협회 이사장상을 받은 팀은 ‘남다른.점 : Humankind’라는 현대무용 작품을 선보인 프로젝트 아트독(안무자 전예화)이었다. 특히 프로젝트 아트독은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표현 도구인 신체의 장점 하나하나를 극대화한 무대로 9개 팀 중 시민심사위원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종아리 근육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활용하며 꽃처럼 혹은 무덤처럼 피어난 인간 더미는 땀과 열정으로 표현됐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쉼 없이 달려온 최정상 무용 단체 9팀의 열띤 경연은 시민을 감동하게 했다. 이날 최종 1, 2위에 선정된 ‘LINKINART’와 ‘Project S’ 두 팀은 각 1천만 원의 지원금과 함께 연말 결선 무대에서 30분가량으로 더욱 풍부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구성으로 확장된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조남규 대한무용협회 이사장은 “무용이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예술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의미 있는 현장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예술·비예술의 경계…주앙 시몽이스 첫 한국전 ‘in Repose’展 [전시 리뷰]

헨리 플린트는 1961년 자신의 짤막한 글에서 개념 미술을 ‘무엇보다도 개념을 재료로 하는 예술’로 정의했다. 음악의 재료가 소리이듯 개념 미술은 언어(language)를 소재로 한 예술의 한 종류다. 미술관에 덩그러니 오브제 하나가 놓여있어 관람객에게 ‘예술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드는 난해한 작품을 떠올리면 된다. mM(엠엠)아트센터가 오는 9월1일까지 선보이는 주앙 시몽이스 개인전 ‘인 리포즈(in Repose)’도 관객에게 이 같은 당혹감을 선사한다. 그는 1996년 파리 현대미술관 초청으로 작품을 선보인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 중인 포르투갈 작가다. 2012년엔 포르투갈을 대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주한 포르투갈대사관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그의 첫 아시아 개인전인 동시에 한국에서의 그의 첫 예술 실험이다. 사방이 거대한 철판으로 둘러싸인 350㎡ 규모의 거대한 전시실에 들어서면 빔프로젝터 하나가 놓여있다. 그가 수년간 작업한 내용이 담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전원이 껐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명이 ‘인 리포즈(휴식 중)’인 이유다. 개념 미술은 형태와 색, 재료로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 그 자체가 예술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영상을 상영하면 예술이 되지만 상영하지 않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란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다. 더 넓게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물론 시각적 요소를 넘어선 철학적 영역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도 경기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 관객에게 의문을 던지고 싶다”고 설명했다. 관객 역시 다양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혹자는 예술이 아닌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으로서 의미를 유추하려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결과에 도달하든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해석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고 작가와 모종의 소통 관계에 도달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번 전시는 나와 대중이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특히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느낄 의문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작가이면서도 관객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를 찾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인의 자화상, 가시 뽑아낸 선인장의 여정”…김소영 개인전 ‘나를 찾아주세요’ [전시리뷰]

날카로운 선인장의 가시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비눗방울. 비눗방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선인장과 선인장밭에서 살아가는 비눗방울 중 어떠한 삶이 더 불안할까. 홀로 선인장인 ‘나’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 옆의 이들(비눗방울)이 터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갖고 살아간다. 반대로 후자의 삶이라면 사방에 자리한 가시에 부딪혀 나라는 존재가 터지지 않을까하는 불안이 있을 것이다. 지난 3일부터 수원시 팔달구 예술공간 아름 갤러리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김소영 개인전 ‘나를 찾아주세요’는 끝없이 연결된 온라인 세상에서 허구와 실재(實在) 사이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담아냈다. 전시는 안양 출신으로 용인과 성남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1997년생 청년 작가 김소영의 예술적 자아가 투영된 ‘Cactoos’라는 선인장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많은 선인장이 하나 있었다. 가시 탓일까. 사람들은 선인장을 피하고,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꼈던 선인장은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치장을 하고, 가시에 쿠션을 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스스로 가시를 뽑아내는 결단까지 하지만 여기에 주어진 사랑은 허상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선인장이 진정한 나,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바로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관람객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15점을 포함한 회화, 영상, 설치 등 23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신작 ‘선인장도 가시가 있어야 꽃을 피웁니다’ 시리즈 네 작품은 선인장의 가시가 꽃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듯 때로 고난과 역경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이와 함께 작가는 원, 톱니, 사선 등 배경 위로 그려진 자유로운 선 속에 현대인의 삶을 함축했다. 길이도 모양도 제각각인 선이 화면 속에 마치 무질서하게 충돌하고 교차하면서도 공존하는 모습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끝없는 경쟁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의 무한한 ‘연결’을 드러낸다. 어둠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형광빛 네온사인의 선들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온라인 세상을 의미한다. 또 다른 신작 ‘Who Am I’ 시리즈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활용한 작품이다. 직관적이며 대비가 뚜렷하고 화려한 색감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서 SNS 속 허상의 ‘나’를 이야기한다. 하나의 표현 수단이 된 SNS에서 우리는 남들에게 비치기 위해 내 모습을 꾸미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는 모른다. ‘Cactoos’가 나를 찾아 떠나듯 작가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해 해바라기, 공룡, 악어, 맥주 등 내(작가)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고 이를 작품에 담아냈다. 전시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설치 작품 세 점은 바로 이번 전시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인장 캐릭터 ‘Cactoos’를 형상화했다. 3D 프린터 피규어인 ‘SHY(샤이)’, ‘Donggle(동글)’. ‘Hero(히어로)’는 작가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120도 각도로 전시장 한가운데에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세 캐릭터를 통해 작가는 기존의 인식과 세상의 선입견에 맞서고 있음을 표현했다. 이와 함께 전시에서는 ‘How do you do’, ‘돌고 돌아’ 등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난 선인장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 작가의 영상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김소영 작가는 “진정한 나를 인식하고 허구의 세계와 진짜 사이 간극을 극복해, 결국 ‘더 나은 나’를 찾아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한다”며 “앞으로 VR(가상현실)을 활용한 작품 등 사람들이 단순히 관람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 볼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전시는 16일까지.

세상을 향한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한다…‘hello world_당신의 목소리를 입력하세요’ [전시 리뷰]

미술관의 역할을 공공으로 확장해 세상을 향한 관람객의 메시지를 수집하고 소통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화성 소다미술관은 오는 9월7일까지 이 시대의 다양한 목소리를 공동체와 공유하는 공공에술 프로젝트 ‘Hello, world!_당신의 목소리를 입력하세요’를 선보인다. 소다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예술가와 관람객의 매개자 역할에서 벗어나 대중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 제목인 ‘Hello, world!’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첫 번째 출력 문장으로,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인사말과 같다. “Hello, world!”로 시작해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한 메시지로 다음 문장을 채워 넣으며 만들어가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그라운드아키텍츠, 에스오에이피, 프랙티스는 공공에게 텍스트를 경험할 수 있는 게시대를 파빌리온 구조로 제안했다. 파빌리온은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가설재를 이용해 설계됐는데, 이동성을 확보하면서도 도시로의 확장 가능성을 의미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작은 미술관으로 작용한다. 먼저 그라운드아키텍츠의 김한중 건축가는 가설재에 그래피티를 입힌 작품 ‘보이지 않는 선명함과 보이는 흐릿함’을 선보였다. 처음 만나는 파빌리온은 수직의 타워 형태로 가설재가 조립된 모양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가설재에는 공사장 펜스와 그래피티가 입혀지고 텍스트가 걸려있는데, 높게 걸린 텍스트는 도심 속 집단의 선명하지만 이기적인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낮은 수평적 구조의 또 다른 가설재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래피티의 흔적과 파편화된 텍스트가 남겨져 있다. 김 건축가는 도시의 소통 방식을 파빌리온의 재료와 구조로 드러내 집단과 개인, 조립과 해체 등의 개념을 교차시켰다. 에스오에이피의 권순엽 건축가는 가설재를 X자로 교차한 긴 터널의 파빌리온 ‘Unknown’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텍스트로 시야가 차단된 가설재를 통과하면 선명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권 건축가는 필연적인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가슴 뛰는 세상을 만나게 되는 삶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프랙티스의 이시산·안서후 디자이너는 ‘Sublimity of Figures’를 통해 도심 속에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미술관의 장소성에 주목했다. 주변 풍경을 조망하는 위치에 가설재 벤치를 놓아 관객에게 텍스트와 함께 쉼의 공간을 제시했다. 벤치에 앉으면 시선 끝에 위치하는 파빌리온은 가설재 구조에 체인으로 외벽을 구성했다. 체인을 통과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 체인이 바람에 흔들리며 가설재와 부딪치는 소리 등을 통해 장소에 대한 관객의 감각 경험을 확장시킨다. 소다미술관 관계자는 “전시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들의 생각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경지의 아주 오랜 이야기…‘땅의 기록, 흙의 기억’ [전시리뷰]

땅과 흙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조상들은 오랜 시간 농업의 기반인 땅을 일구며 먹고 살았고 땅 때문에 웃고 울었다. 농경에 대한 조상들의 기록을 그림과 문자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수원시 권선구에 소재한 국립농업박물관은 흙이 모여 땅을 이뤄 만든 농경지의 오랜 이야기에 주목한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8월 25일까지 이어지는 ‘땅의 기록, 흙의 기억’이다. 농업의 기반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을까. 전시는 누구나 알지만 쉽게 정의하기는 어려운 땅과 흙의 의미를 담아 총 4부로 구성했다. 농경지에 대한 문자 기록부터 유물, 영상, 사진, 시 등 142점의 자료가 전시됐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일군 농경지인 진주 대평리 밭을 만난다. 대형 화면으로 마주하는 농경지와 밭 위의 흙 밟는 소리, 촉감. 청동기시대 농경지의 흔적과 흙이 가진 무한한 이야기를 몸으로 들을 수 있다. 제1부 ‘흙에서 농경지’로에서는 농사짓기 좋은 땅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선조들의 기록과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백제시대 대사촌 마을의 농경지 형태와 생산량, 소출량 등이 적힌 ‘백제 촌락문서 목간’ ▲조선 후기 밭을 매매하며 작성한 한글 계약서 ‘밭 매매명문’ ▲부채에 무성하게 자란 벼와 여름철 논의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산수인물도’ 등은 흙에서 농경지로 땅을 활용해 온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제2부 ‘땅과 사람’에선 사람들이 땅을 일구고 생명을 지켜온 과정을 영상, 뉴스, 시, 사진으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제3부 ‘땅, 먹거리, 재화’는 땅이 농경지로서 국가 경제의 기반으로 활용된 과정과 한정된 농경지의 소유와 분배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조선 후기 토지의 소유 및 활용, 측량에 관한 기록 ▲대한제국기 근대적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토지소유권을 증명해 준 문서 ‘관계(官契)’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토지제도 개선안이 담긴 ‘여유당전서’ ▲농민의 농지 소유권이 최초로 인정된 ‘제헌헌법’ 등의 기록 자료를 통해 경제적 가치의 땅이 가진 여러 함의를 알려준다. 제4부 ‘다시, 흙으로’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기 위해 흙의 가치와 중요성에 주목한 현대의 다양한 활동을 살폈다. ▲농경지 관리 지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표어 ▲1980~90년대 건강한 흙과 농업생태에 높아진 관심으로 발간된 유기농, 환경농업 관련 간행물 ▲유엔에서 선포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유엔농민권리선언) 등이 전시됐다. 전시에선 그동안 접하기 쉽지 않았던 유물이 공개됐다. 조선시대 농경지의 모양과 측량법을 노래로 적은 길이 2.3m에 달하는 대형 전형도(田形圖), 중국 시인 왕유가 읊은 농촌 풍경에 관한 시를 감상하며 부채에 그린 단원 김홍도의 산수인물도가 최초 공개됐다.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처음으로 명시된 1948년 제헌헌법도 만날 수 있다. 전시실의 문이 제각각인 점도 흥미롭다. 조상들은 농경지의 각 모양별로 면적을 구했는데 ‘전형도 절첩본’에는 땅의 모양별로 면적을 구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전시실의 문은 전형도 나온 공식을 반영해 농경지의 모양을 형상화 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던, 일상 속 재난…‘MAY DAY MAY DAY MAY DAY’展 [전시리뷰]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살아 숨 쉬며 우리 곁에 존재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존재로서의 의미는 퇴색한다. 외면으로 존재의 가치가 퇴색되는 건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바로 옆에서 어떠한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외면해 버린다면 때로 발생하지조차 않았던, 없던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재난’에 대해 우리는 대게 ‘미래에 닥쳐올 일’, ‘우연히 발생한 사고’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차별과 소외, 무관심과 배제의 폭력에서 일상 속 ‘재난’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지난 12일 시작해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 순항 중인 수원문화재단과 전시공간 미학관의 민·관 협력 전시 ‘MAY DAY MAY DAY MAY DAY’는 재난의 잃어버린 ‘현재성’에 주목, 카모플라쥬(위장)처럼 모습을 감추고 일상 속 숨겨진 재난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번 전시의 의미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국제 조난신호로 알려진 ‘메이데이(Mayday)’는 노동절을 의미하는 ‘메이데이(May Day)’ 등 다른 단어와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위급 상황 전달 시 ‘메이데이-메이데이-메이데이’라는 동일 음절 세 번을 반복하게 된다. 이와 달리 대문자로 쓰인 전시 제목은 위급 상황을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노동절을 뜻하는 단어도 되지 못한 채 음절의 껍데기만 남아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슬비 미학관 디렉터 겸 독립 큐레이터는 “도움을 요청하지만 닿지 않는 목소리가 가진 역설을 드러냈다”며 “별안간 닥쳐오는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건·사고가 아닌, 우리 주변의 차별과 무관심 속 모습을 감추고 있는 재난의 역설을 드러내고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이들에 주목하기를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국내·외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이자 시각예술 작가 총 8명이 참여해 회화, 드로잉, 영상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관찰자가 돼 목격한 다양한 시선과 침묵 당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독특한 공간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70년대부터 30년간 국가 기간산업의 축을 담당해 오던 연초제초장이 위치했던 111CM 부지는 몇 년 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공간 특유의 감각적인 분위기를 위해 남겨진 빛바랜 콘크리트와 고개를 뻗으면 천장 곳곳에 남아있는 뼈대 흔적은 일상의 시스템과 시스템 밖에 위치한 사람에 주목하는 전시 분위기와 자연스레 융화되고 있다. 독특한 공간을 지나 전시 현장에 입장하면 천장에 드리워진 송성진 작가의 ‘자세들-매달리기’(2017-2018)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각 2m가 넘는 얇고 긴 흰색 배경에는 두 손을 뻗어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전시장 천장 뼈대에 걸려있는 작품 아래를 걸어가면 마치 작품 속 인물들이 ‘나’를 쳐다보거나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동일한 조건 안에 하나의 선을 그어놓고 매달려 있는 ‘우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독일 베를린에 머무르던 당시 그곳으로 넘어오다 죽음을 맞이하는 난민과 아이들을 목격하게 됐다”며 “수많은 난민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그곳 도시에서는 한국인도 ‘이방인’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어떠한 자세로 삶에 매달리고, 우리 사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베를린을 거쳐 파키스탄에서도 진행됐다. 시스템 바깥에 위치한 존재가 자신의 존엄을 천명할 때 발생하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치명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종이 아래’ 등 8여 점의 작품 및 신작 ‘재난 위장술’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손가락 크기만 한 인형 캐릭터를 활용한 ‘코팡 물류센타’(2020) 작품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 그 안을 자세히 관찰하게 했다. 작가는 비일상적인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에 현실적인 배경을 배치해 일상의 역설과 우리가 늘 마주하는 곳에 숨겨진 노동문제를 아이러니함 속에 사유하게 만든다. 여성, 노숙인 등 사회 소수자에 주목하고, 연구자와 활동가 등 여러 창작자와의 대화나 협업을 통해 현장의 단면을 드로잉, 텍스트, 미디어, 사진, 아카이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봄로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유연한 손’, ‘유연한 발’ 등 10여 분가량의 영상 및 회화 작품으로 선보였다. 용산역과 인근 호텔의 통로를 배경으로 한 신작 ‘연결 통로 가이드의 하루’에 관해 작가는 “도시 개발의 이면과 배제된 존재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봄로야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도시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찾아내고’, ‘관찰하고’, ‘드러내고’, ‘함께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 과거 한센인 마을이었던 서울의 한 번화한 도심이나 개발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로 점철된 어떠한 지역의 모습, 여성 노숙인의 모습을 다룬 작품을 들여다보면 도시의 이면을 관찰할 수 있다. 관람객은 전시와 함께 재난 대비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기후 위기에 대응해 제로웨이스트 일상용품 만들기 등 전시의 의미가 담긴 독특한 연계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전시는 오는 9월8일까지.

사람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사람, 관계 형상화 ‘김선영:NET’展 [전시리뷰]

사람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조형, 설치, 부조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인체의 모습과 일상의 오브제를 변형하고 접합해 다양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사유하게 한다. 가방과 반지, 사람의 형태로 ‘이해, 공존, 관계하는 삶’을 조명한 김선영 작가의 초대전 ‘NET’가 오는 13일까지 갤러리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존재와 삶’에 대해 탐구한 김 작가의 작품 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레진을 소재로 한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청동을 소재로 한 작품,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업한 최근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김 작가는 가장 최근 작품인 반지 형상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형을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했다. 3m 높이의 거대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4천명의 사람이 각각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사람의 손과 발을 뾰족하게 표현했다. 작가는 우리가 자기 방어를 위해 뾰족한 부분으로 상대를 아프게 할 때도 있지만,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손을 잡았을 때 ‘변함없는 약속’을 의미하는 반지의 형태를 띤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작가는 “미국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을 여행하던 중 선인장 가시에 찔렸던 경험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며 “선인장이 사막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기 위해 가시를 가지고 있을 뿐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자기 방어를 위해 상대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300명의 사람이 운집해 마치 벽과 바닥에서 일어나 몰려드는 듯한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김 작가는 ‘삶에 무엇을 담을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가방과 반지의 형태를 빌려와 인간의 몸을 표현하기도 했다. 2019년 완성한 대부분의 작품 제목이 ‘VESSEL’인 이유다. ‘VESSEL’은 ‘선박, 그릇’으로 풀이되지만, 보다 깊은 의미의 ‘거룩한 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김 작가는 ‘담는다’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가방을 인간의 몸과 동일시했다. 특히 레진으로 만든 과거 가방 작품엔 부패를 방지하고 정화의 역할을 하는 ‘소금’이나 ‘성경’ 등의 오브제를 담았다. 우리에게도 소금 같은 마음을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후 청동으로 만든 가방 형태의 작품들은 비워 둠으로써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 밖에 전시장에선 유명 삼품을 다양한 색으로 오마주한 부조, 가방 형상이 접합돼 돌고 있는 키네틱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예술은 지식과 통념으로 굳어진 고정관념을 녹여 자유로운 시각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삶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며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내면에 있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삶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살롱이 반가운 이유…수원문화재단 '같이공간-소셜살롱' [현장리뷰]

“매일 회사-집, 회사-집을 오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궁금했다.”, “낀 세대에서 어떻게 소통 역할을 해야 할지 막막해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아이와 관련된 책만 읽다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 18일 오후 7시 수원 권선구 지혜샘어린이도서관 3층 지혜터. 어린이들이 집으로 귀가하고 난 자리에 어른들의 대화가 오갔다. 퇴근 후, 혹은 육아 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혹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공간을 찾은 15명의 어른들. 딱딱한 책상과 의자의 내부 공간엔 제법 근사한 새하얀 탁자보와 꽃, 무드 등이 꾸며져 있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이들을 맞이했다. 이들이 모인 주제는 ‘소통’이다.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가 오는 7월 30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진행하는 ‘같이공간 소셜살롱’의 첫 번째 시간엔 적당한 낯설음과 기대감을 가진 어른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인문학 강의’에 참여했다. ‘같이공간 소셜살롱’은 나이, 직업 등에 상관없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모아 유명인사와 함께 자유롭게 대화하는 교류의 장으로 수원문화도시센터가 올해 처음 선보인 사업이다. ‘권선·영통권’의 지혜샘어린이도서관에서 문화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교류의 장이 열린다. 인문학, 일과 관계의 언어, 물리학, 문학, 금융, 양조, 뷰티 등 총 7개의 주제를 선정해 해당 분야의 전공 소셜장을 초청하고, 분야에 관심 있는 시민 15명이 신청해 함께한다. 첫 소셜장은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의 최준영 이사장이 초대됐다.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인문학 강의’를 주제로 최 이사장의 짧은 강의에 이어 시민들과의 다양한 소통이 이어졌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한 관계자의 준비성에 으레 그렇듯 강제로 한 명씩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이내 말문이 터졌다. “지나가다 현수막을 보고 그냥 강의만 들으면 되는 줄 알고 왔는데, 말을 시키니 당황스럽다”라고 한 이들도 현재 안고 있는 소통의 고민을 조심스레 꺼내고 낯선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이며 2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안에선 공감과 격려, 공통된 주제 속에 ‘나’를 꺼내며 얻는 에너지가 오갔다. 일시적으로 소수 정예의 인원을 모집하는 느슨하고도 불특정한 만남. 평소 궁금했던 주제이거나 왠지 끌리는 이 낯선 살롱의 초대에 참여하려는 수요는 많았다. 센터가 접수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7개의 강좌 예약이 마감됐다. 센터 관계자는 “참여 문의가 많아 뒷좌석까지 마련해 최대 5명이 더 참여할 수 있게 했다”며 “권선·영통 생활권이 학부모들이 많다는 점에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직전 지역마다 지역의 공간을 활용한 동호회, 생활문화 프로그램이 늘어나다 다시 축소됐었다. 단절과 상실의 회복은 사람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시작되는 만큼 다시 문화를 통한 주민과의 만남, 사람과의 연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 살롱, 작은 커뮤니티 활동은 사람을 품고 연결하며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살롱 문화는 사람 간 ‘대화의 장’, ‘토론의 장’으로 힘을 발휘하며 근대를 변화시켰다. 공동체 의식은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첫번째 소셜장 최준영 이사장은 “공동체 의식은 주민 간 만남, 사람과의 스킨십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서로 속박하지 않는 느슨한 교감의 힘은 크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자의적이면서 적극적인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활동과 그 곳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이 모이면 지역의 힘이 된다. 도시에 모처럼 만에 등장한 ‘살롱’이 반갑고 기대되는 이유다.

“삶은 작고 짧은 것의 무한한 반복”…‘Like-150㎜ 반복의 영속’展 [전시리뷰]

예술은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세계 또는 세계의 질서를 회화, 조각, 몸짓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언어적 기술과 달리 예술의 설명은 달리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다. 고대 동굴벽화의 한 장면에서 사냥 성공을 기원하던 인류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주술적 세계를 볼 수 있듯이 캔버스 하나에 세계의 원리가 담길 수 있다. 지난 4일부터 mM(엠엠)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기획초대전 ‘Like-150㎜ 반복의 영속’에선 자연물로 표현한 제이영 작가의 조형언어와 만날 수 있다. 작가가 포착한 세계란 ‘작고 짧은 것의 무한한 반복’이다. 삶도 반복의 영속이다. 이 시간의 반복과 영속의 과정을 거쳐 인간과 사회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전시장을 채운 평면 작업과 퍼포먼스로 탄생한 작품 등엔 이 같은 작품관이 오롯하게 담겼다. 우선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통도사에서 녹음한 범종 소리와 함께 작가가 모래에 붓으로 남긴 거대한 흔적과 조우한다. 전시에 앞서 작가가 직접 만든 붓으로 선보인 퍼포먼스다. 지난 2018년 프랑스에서 열린 ‘아트 파리’에서 그가 선보였던 것처럼 정신과 육체를 커다란 붓에 집중해 모래 위에 남긴 흔적이다. 모래에 붓을 드리우며 마찰과 만남으로 모든 것이 시작하고 존재함을, 반복적으로 선을 끊이지 않게 그리면서 반복과 영속성을 표현했다. 모래 위엔 그가 작업했던 영상이 반복적으로 영사되면서 ‘작고 짧은 것의 무한한 반복’이라는 주제가 한 번 더 강조된다. 그는 “내가 죽어도 자연은 영속할 것이며 내가 묻힌 흙으로부터 다른 생명체와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흙에서 태어나 흙을 밟고 다니다가 죽어서 다시 흙 속에 묻히니 돌고 도는 반복과 영속”이라며 “반복과 영속은 개인일 수도, 인류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올해까지 작업한 지난 10년 간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연히 주워온 돌과 나뭇가지를 비롯해 모래, 숯, 목탄 등 자연물을 활용한 ‘Like-150㎜’ 연작 외에도 돌가루와 모래, 바인더(접착제)를 사용한 ‘모멘트’ 연작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돌가루와 모래로 한층 한층 쌓아 만든 모멘트 연작은 어린 시절 마을에서 흙벽돌로 집을 짓는 과정을 본 경험을 반영했다. 그는 “캔버스에 터치한 것 같지만 실은 벽돌처럼 쌓아 올린 것”이라며 “이것 또한 반복의 중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복적 영속으로서 인간의 가치관은 형성된다”며 “나의 행위 작품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고 작가의 가치관 또한 반복과 영속에서 얻어지는 그 자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제이영 작가의 조형언어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7월14일까지 이어진다.

억압적 체제 속에서 탄생한 미술…‘탈출의 형식으로서의 회화’展 [전시리뷰]

“예술은 잘못 설계된 세상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말처럼 예술은 억압 속에서 피어나며 체제에 균열을 만들어왔다. 인류 역사에서 권력은 예술을 입맛대로 길들이려 했다.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체제의 생명을 연장하는 선전물로 쓰기 위해서다. 다만 그럴수록 예술은 검열과 예속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지난 4일부터 평택 mM(엠엠)아트센터 전시실3에서 진행 중인 소장품전 ‘탈출의 형식으로서의 회화’에선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피워낸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엔 1940년대부터 소련이 붕괴하는 1991년까지 회화는 물론 소련 붕괴 후 작품 활동을 이어온 러시아 작가의 작품 등 총 83점을 한데 모았다. 스탈린 집권 후 예술은 당국의 기준을 충족해야만 했다. 특히 1934년 제1차 소비에트작가총회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개념이 탄생한 후 모든 작품은 당국에 통제 아래서 프롤레타리아성, 일상성, 현실성, 당성(黨性)을 담은 관제 예술이었다. 당과 체제, 노동계급을 찬양하고 낙관에 찬 인물과 도시를 내세우며 이상화한 현실을 표현하는 등 국가에 의해 주제와 양식이 정해졌다. 반대로 추상화나 당국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인물화와 풍경화 등은 국가 주도의 미술 양식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일종의 저항이었다.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 이 같은 소련의 ‘비공식 지하미술’이다. 특히 1974년 모스크바 교외에서 기습적으로 연 비공식 미술 전시회인 ‘불도저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당시 전시회는 불도저를 동원한 경찰 당국의 폭력적 진압으로 무산됐고 참여 작가들의 작품 또한 당국에 압류 당했지만,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문화부 승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전시에선 작품을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 등 표현 양식으로 구분했다. 시대가 아닌 표현 양식으로 배치하면서 당대 체제가 원하던 미술과 체제 저항적 의미를 담은 미술을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아니케예프의 ‘여성 노동자’, ‘나스텐카’ 등 인물화 작품에선 1940~1960년대 스탈린 집권 시기 당대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의 전형을 관람할 수 있다. 반면 타티쉬빌리의 ‘트빌리시 구시가지’와 같은 작품에선 소련 이전 비러시아권 지역의 모습이 담겼다. 회색빛 단조로운 소련의 도시 풍경과 대비되는 이들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미학적 탈출구로 삼으려던 작가들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체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코르반의 풍경화와 정교회 성당과 같은 종교 건축물 등 체제가 원치 않는 상징을 담아낸 코미사로프의 풍경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로신과 쿠페탼 등 소련말 추상미술도 감상할 수 있다. 그간 체제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샤갈, 칸딘스키, 말레비치 등 작가들의 추상 미술을 재조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작품이다. 최승일 mM아트센터 관장은 “공훈예술가로서 선전·선동 그림을 강요받으면서도 체제에서 벗어나 그리고 싶었던 것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당시 정부가 정한 양식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작가의 시선을 따라 그려진 소위 비공식 미술은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와 상관없이 예술의 길을 걷던 과거 예술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7월14일까지.

‘2024 수원 문화유산 야행’, 아쉬움 딛고 전국 축제로 거듭나길 [현장 리뷰]

‘2024 수원 문화유산 야행(夜行)’이 막을 내렸다. 지난 5월31일~6월1일 화성행궁과 행궁동 일원에서 열린 ‘수원 문화유산 야행(夜行)’은 국가유산청(문화재청) 공모의 전국 49개 문화유산(문화재) 야행 사업 중 하나다. 수원에서는 올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주제로 34개의 ‘8야(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문화재단이 주관한 수원 문화유산 야행은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열리는 가운데 올해는 이틀간 8만6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관람객은 지난해(2만4천명) 보다 두 배가량 가까이 늘어났다. 코로나 이전의 방문객 수를 회복하려 관람객을 위한 편의성 개선, 다양한 홍보와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운영시기 변화로 인한 쾌적함이다. 지난해까지 야행 축제는 8월 한여름에 열리며 시민과 관광객은 무더위에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올해는 5월 말~6월 초에 진행되며 시민들은 보다 쾌적하고 시원한 밤바람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119년 만에 완전히 복원된 ‘화성행궁’을 관람할 수 있다는 의의도 더해져 큰 관심을 받았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주차난을 해소하고자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이야기 버스’가 새롭게 도입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수요 대비 부족한 기존의 주차장 대신 더 넓은 경기대 후문 주차장에서 출발해 화성행궁으로 향하는 순환형 버스를 도입하고 그 안에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버스가 이동하는 15분가량 탑승자들에게 수원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야행의 주요 프로그램과 관련 정보를 알려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제공했다. 반면 산발적인 프로그램 운영과 옅은 지역색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틀간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된 이번 야행은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사(夜史), 야화(夜畫), 야설(夜設), 야시(夜市), 야식(夜食), 야숙(夜宿) 등 ‘8야(夜)’를 주제로 총 34개의 세부프로그램이 자리했다. 하루 평균 4시간의 한정된 운영 시간에 프로그램이 30여개가 진행되면서 무엇이 주요 행사인지, 무엇을 즐겨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원의 문화유산을 보여준다는 취지와 달리 음악극 등 일부 프로그램은 지역색을 찾기 어려웠다. 한 행사 관계자는 “공모를 진행한 국가유산청이 선정한 야행의 ‘8야(夜)’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보니, 어느 전국 지역에서 하든 비슷한 내용의 축제로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제공한 문화관광 해설사 동행의 ‘이야기’ 순환버스는 분명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민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졌고 문화관광해설사 역량의 편차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수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수원화성이라는 무궁무진한 역사자원이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사랑 받는 행궁동이라는 매력적인 장소를 갖고 있다. 수원 문화유산에 밤의 매력이 더해져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전국적인 축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달항아리에 자리한 상념의 시공간”…수원전통문화관 진수원 연작 두번째 초대전 ‘품·다’ [전시리뷰]

무언가를 가득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냄이 있어야 한다. ‘비움’이 있어야 비로소 ‘채움’이 완성된다는 자연의 법칙은 3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달항아리 속에 고요히 담겨 있고, 도심 속 평화로운 침묵은 담백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현대인을 안내했다. 오는 19일까지 열리는 이동숙 작가(수원미술협회 회장)의 전시회 ‘품·다’는 지난달 28일 종료한 최경자 작가의 ‘가시나’展에 이어 ‘제2회 수원전통문화관 진수원 연작 초대전’의 두번째 순서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수원시 팔달구의 수원전통문화관 기획전시실(진수원)에 들어서면 20여점의 달항아리 유화 작품들이 한옥 공간과 어우러져 편안하면서도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간직한 달항아리가 품은 풍요와 심미를 화포에 재현하며 은유적인 상징으로 관람객을 사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2차원의 평면 회화에 표현된 항아리는 풍부한 입체감과 마치 실제와 같은 그릇 표면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며 벽면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3차원 본연의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 청색과 녹색, 갈색과 고동색의 색감은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전한다. ■ 2차원에 담긴 3차원의 이질성이 전한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의 공존 유화라는 재료의 특성을 활용한 중첩과 반복이 만들어낸 우연의 효과. 이는 특유의 질감을 더했고 마치 불에 그을린 것과 같은 모습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공간에 떠있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은 300년 전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현대의 도심 속 공간으로 불시착하게 한다. 작가는 달항아리 연작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삶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그러하다. 푸른 숲속을 떠올리게 하는 녹색과 청색, 고요하고 평화로운 해질녘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갈색의 숲 앞에 덩그러니 자리한 문명의 그릇 달항아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평화로움을 전한다. 이동숙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모든 것은 품어낸다는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그 크기가 큰 탓에 물레를 통해 아래에서부터 위로 차올라 한번에 만들어내는 다른 그릇과 달리 일반적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고 이를 접합시켜 완성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작가는 “서로 다른 두 물체가 위와 아래, 가운데에서 만남으로써 불균형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듯 삶 역시 나와 다른 사람,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산다는 공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총 32회의 개인전을 이어 온 이 작가는 “그동안 이어오던 극사실주의 작품에서 추상으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며 “한옥으로 둘러쌓인 공간에서 평화로움을 즐겨달라”고 전했다. 한편 수원문화재단은 수원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기성 및 신진 작가 11인의 작품의 전시회를 올 10월말까지 순차적으로 이어간다. ▲천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 미술 김민지 작가(5월28일) ▲천연 염색 작품을 선보일 윤희경 작가(6월18일) ▲집을 모티브로 궁궐도 작품의 이미연 작가(7월9일) ▲천을 소재로 한 임정은 작가(7월30일) ▲연꽃 소재 채색화의 오혜련 작가(8월20일) ▲부조 조각 작품전의 김경지 작가(9월10일) ▲차원과 시각의 공간 회화 황은화 작가(10월1일) ▲규방공예 작품을 선보일 서은영·구희정 작가(10월22일)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 전시가 예정돼 있다.

성능경×이랑, 장르·세대 초월한 두 작가의 ‘아름다운 조우’ [전시리뷰]

“젊은 분과 미술행위를 하는 게 나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어요. 상상력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딱 그런 것 같아요. 훌륭한 가수와 전시를 함께할 수 있어 행운이고 행복합니다.”(성능경) “그동안 해온 작업이 미술관에서도 전시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해 감격스러웠어요. 무엇보다 성 작가께서 매일매일을 메모하시고 성실함으로 미술을 대하시더라고요. 그 태도를 배웠습니다.”(이랑)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청년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예술세계가 한 곳에 응집됐다. ‘저항’을 키워드로 각자의 영역에서 예술적 행위를 선보여온 이들의 작품은 다루는 매체와 40년의 나이 차, 성별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었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지난달 26일 개막한 ‘2024 아워세트: 성능경Х이랑’ 전시에선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창작자 간의 협업을 넘어 이질적 시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개념미술가 성능경은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은 비물질 예술을 평생 이어오고 있다. “없음 여김을 당하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그의 표현대로 성 작가는 지난해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주요 작가로 초대되기 전까지 제도권 미술계에서 ‘아웃사이더’의 길을 50년 가까이 걸었다. 그 중심에는 억압과 탄압에 대한 저항이 있다. 1970년대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을 풍자하며 신문을 읽고 오리는 ‘신문: 1974. 6. 1. 이후’ 등 문자가 떨어져 나간 신문지 작업들로 한국 개념미술과 전위실험미술의 터전을 닦았다. 이랑은 고통과 가난, 죽음, 불안이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싱어송라이터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받은 ‘최우수 포크 노래상’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예술인의 가난을 마땅히 여기는 사회, 청년의 절망 등에 목소리를 냈다. 전시에선 청년들이 느끼는 심정을 담은 뮤직비디오와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은 노래 등이 어우러진다. 범상치 않은 둘의 만남은 자발적 비주류들의 강렬한 목소리와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동질감을 공통으로 안고 있다. 4개의 분야로 나뉘어 소개되는 전시는 두 창작가의 궤적을 모은 그림과 사진, 설치영상 등 33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세대와 성별, 이념이 충돌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시대적 단절을 한반도를 통해 들여다본 ‘가깝거나 먼’에서 출발한다. 이어 ‘편집술’에서 1970~80년대 성능경의 신문 비물질 예술 실험과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노래가 병치돼 두 작가의 관점을 잇는다. ‘분신술’에선 장르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전방위 예술가의 면모를, ‘시간예술’에선 매일을 기록하고 시간과 그 경계에서 지속되는 두 작가의 창작을 만날 수 있다. 고정화되지 않고 변주되는 작가들의 작품과 창작세계를 엿보는 재미는 덤이다. 성능경 작가의 신문오리기와 읽기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데, 신문의 위기에 대비한 신문읽기의 방법 역시 전시됐다. 성 작가가 2021년 작성한 ‘신문읽기 행위 얽이 개념서에 덧붙이는 글’에서는 ‘2. 환경 매체의 바뀜과 달라짐-2000년 처음을 지나 소통환경이 전자매체로 빠르게 바뀌면서 종이 매체의 힘이 줄어들어 사라지게 될 꼴이 되었다. 그랫을 때 신문읽기 하기질의 목숨이 끊어져 살아있는 힘을 부려 쓸 수가 없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예견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의 반복과 숙련된 행위로 안무를 짠 이랑의 ‘신의 놀이’ 등 뮤직비디오 8편은 스크리닝되며 곡의 박자와 리듬, 메시지가 어떻게 시각화되는지 볼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8월4일까지 이어진다.

“원복과 복제 사이 관계를 묻다”…수원시립미술관 ‘세컨드 임팩트’展 [전시리뷰]

모든 원복은 복제본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갖는가. 모든 복제본은 원본에 비해 열등한가. 무엇을 원본이라 하고, 무엇을 복제본이라 할 수 있나. 지난 16일부터 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 4전시실에서 시작한 2024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 상설전 ‘세컨드 임팩트’ 전시회는 관람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원본과 복제의 관계를 조명한다. 과거 사진기의 등장은 수많은 예술가를 혼란으로 빠뜨렸다. 눈 앞의 실재하는 존재를 100% 똑같이 구현해낸 사진은 예술가들이 그린 회화에 대한 전면 도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관점과 의도가 들어간 창작물로서 예술작품은 다시 그 가치를 인정 받았고, 사진 역시 수많은 논란을 거쳐 현재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기술의 발전은 또다시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구현해내는, 심지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원본의 훼손되고 낡은 모습까지 그대로 출력해내는 3D프린터와 생성형 AI로 제작된 예술작품에 제기된 숱한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 시대에 복잡한 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이남의 ‘인왕제색도-사계’(2009) 작품은 유명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활용한 2차적 저작물로 원작품에 작가만의 관점이 담긴 연출과 해석을 가미해 2차적 저작물이 가져야 할 ‘창조성’을 보여준다. 비가 오고, 짙은 푸른 녹음에서 노랗고 붉은 단풍이 들며 불 떼는 아궁이로 눈발이 날리는 사계절을 표현한 4분짜리 영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어 관람객은 230cm의 거대한 인형탈과 마주하게 된다. 인형탈은 비닐형태로 제작된 에어슈트로 푸근한 풍채를 자랑한다. 시립미술관은 특정 이벤트 시간 때 관람객이 직접 에어슈트를 착용할 수 있게 했다. 에어슈트를 입어본 관람객은 바로 앞에 자리한 거울을 통해 직접 손을 흔들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등 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 인형탈은 바로 홍순모 작가의 높이 61cm의 조각작품 ‘나의 죄악을 씻으시며’(1990)라는 원본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사람 몸보다 거대한 인형탈을 한참 구경하고 뒤를 돌면 그 뒤에 까맣고, 작고, 단단한 원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겉옷을 걸친 어두운 표정의 작품은 삶에 지친 가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원작은 힘겨운 삶을 지나온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시꺼먼 석탄이 마치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원작은 사람이 돌이 된 건지 돌이 사람이 된 건지 의심케 한다. 인간을 주제로, 인체를 소재로 삼는 홍 작가는 1950~60년대 목포에서 마주한 삶의 형상을 작품에 담아냈다. 전시를 기획한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일반적인 전시에서 관람객의 작품별 관람 시간이 평균 15~30초 사이로 조사됐다는 2014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기반해, 보다 오래도록 작품에 깊은 시선을 가지길 바랐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2차 창작물을 보고 그 후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1차 원작물을 볼 때 그 충격은 2배로 다가와 비로소 ‘세컨드 임팩트(두번째 충격)’가 전해진다. 이어 김경태의 사진 작품 ‘서북공심돈’(2019)에는 작가의 작품과 같은 피사체를 촬영한 자료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다. 서북공심돈은 수원 화성에 있는 조선 후기 치성 위에 공심돈을 설치한 망루로 여러 시간 동안 복원을 거쳤다. 작가는 서북공심돈을 여러 시간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이를 조각조각 구성해 하나의 평면 화면에 구성했다. 모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합성한 사진이기에 현실의 사진과 다른 비현실성을 갖는다. 바로 그 작품 앞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관람객은 서북공심돈의 다양한 사진을 직접 확대하고 축소해보며 어느 부분을 촬영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어떠한 지점에서 사진이 ‘예술’과 ‘자료’로 구분되는지 질문한다. 4전시실의 마지막 파트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이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 사람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박아 넣으며 계속해서 보존했다. 시간이 흐르고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한 조각도 남지 않을 때 과연 그 존재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시실에는 유의정 작가의 도자기로 만든 ‘액체시대’(2014) 작품과 크기 및 형태가 같은 3D 출력물, 그 출력 과정을 담은 영상 데이터 총 3가지가 삼각형의 구도로 전시돼 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원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형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때 태초의 원본을 그 모습 그대로 출력해낼 수 있는 데이터(기능적 저작물)-지금 시점의 원본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 3D 출력물(복제물)-태초의 원작품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원본과 복제 간의 가치 관계 및 경계와 원본에 대한 정의 등의 질문은 메타버스와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로도 확장될 수 있다”며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방랑자의 실체 없는 기다림”…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리뷰]

“이젠 뭘 할까?”. “기다려야지”. “누구를?”. “고도!”. 블라디미르(디디, 박근형)는 무덤에 걸터앉아 무덤으로 끌어내려지는 반복되는 인생에 의문을 제기한다. 디디의 오랜 동반자 에스트라공(고고, 신구)은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한다. 또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디디는 “나무에 목이나 맬까?”라고 말한다. “그러다 고도가 오면?” “우리는 사는 거지”. 대화를 마친 두 방랑자는 “가자”를 외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지난 9~10일 화성시 동탄복합문화센터 반석아트홀에서 막을 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희비극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라는 두 방랑자가 실체가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라는 한 줄 남짓한 줄거리에 담긴 내용은 꽤나 심오하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코믹하다. 유쾌하면서도 씁쓸함이 담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을 보여준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역작, 국내외 최고령 ‘디디’와 ‘고고’가 펼친 두 배우의 열연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 첫 공연을 시작으로 전세계에서 다양한 해석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서는 1969년 초연 이후 50년 동안 1천500회 이상 무대로 사랑 받아온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지난해 12월 파크컴퍼니가 제작하고 오경택 연출로 막을 올렸다. 대표 배우인 신구(88), 박근형(84)이 처음으로 연기합을 맞춘 작품이자 박정자(82), 김학철(64) 등 출연 배우 네 명의 연기 경력만 총 220년이 넘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서울 국립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린 데 이어 울산, 춘천, 세종, 강릉, 대구, 대전 등 전국 지역 순회 공연을 펼치고 있는 작품은 지난 5~6일 경기도 고양, 9~10일 화성까지 50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다음 달 열리는 제60회 백상예술대상의 연극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 “고도란 과연 무엇인가, 존재하기는 한 걸까?”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배우들의 합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일까, 지난 10일 오후 3시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객석은 들뜬 표정의 관객들로 가득찼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자녀부터 백발의 70~80대의 노인까지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암전 속 두 배우는 등장만으로 몰입을 자아냈다. 무대에는 앙상하게 비튼 나무 한 그루와 두 노인뿐이다. 만담처럼 끝없이 주고 받는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의 대화는 객석에 웃음을 유발했다. 두 사내는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정작 두 사람 모두 명확히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는 본인들조차 알지 못한다. 고고는 “우리는 고도, 그 자에게 묶여있어!”라고 외친다.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의 쉼 없는 대화에 몰입하고 있을 때, 목에 끈이 묶인 남루한 노새와 같은 짐꾼 럭키(박정자)와 이를 이끄는 사내 포조(김학철)가 등장한다. 짐을 들고 채찍에 휘둘림 당하며 땅만 바라보는 럭키의 존재는 과연 인간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고, 포조는 자신과 같은 신이 만든 존재인 동족(인간)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 다양한 인간 군상…‘포조’가 될 것인가 “수치스럽다!” “어떻게 한 인간을 이렇게 취급해!”라고 디디가 외친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캐릭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디디는 낙관적이면서도 선하고, 그러면서도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존재이다. 반면 고고는 다소 소극적이고 비관적이며 때로는 염세주의적이다. 적당히 못된,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캐릭터다. 닮은 듯 다른 영혼의 동반자 두 사내는 어쩌면 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반면 포조와 럭키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심연의 모습과 같다. 포조는 자신과 같은 모든 인간이란 존재에게서 얻을 게 있다고 말하며 디디와 고고에게 신사처럼 굴다가도 럭키를 마치 가축처럼 부린다. 럭키가 시장에 내다버릴 것을 무서워해 불쌍한 척 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는 포조는 탐욕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인간의 이중성, 아이러니함을 드러낸다. ■ 주인의 밧줄에 저항하는 럭키 “생각해”라고 다그치는 포조의 채찍질에 럭키는 마침내 입을 연다. 그때부터 10여분간 이어지는 럭키, 박정자의 독백은 가히 압권이었다. 내내 땅바닥만 보던 럭키는 머리에 모자를 쓰게 되자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작았다가 커졌다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마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내용의 대사를 쏟아낸다. 흥미로움과 재미로 지켜보던 객석의 표정은 이내 심각해졌다가 슬퍼지는 듯 했다. 포조가 모자를 벗겨내자 다시 럭키는 침묵하고 둘은 사라진다. 국내 무대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럭키’ 역을 맡은 박정자 배우는 작품 소식을 듣고 “럭키 역할을 하고 싶다”며 제작사에 적극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럭키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열연을 펼치는 박정자 배우의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바탕 떠들썩함이 지나간 자리 이번엔 소년(김리안)이 찾아온다. ‘고도’가 과연 실체하는 존재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고도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다는 소년과 그가 들려주는 고도에 관한 묘사는 다시금 고도라는 존재가 실재함을 믿게 만든다. ■ 달라진 아침, 희망은 시작된 걸까 밤을 지나 찾아온 아침. 여전히 두 노인은 고도를 기다리며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이때 디디는 무언가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챈다. 말라 비틀어졌던 나무에 오늘은 잎이 달려 있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고고와 디디는 포조와 럭키를 따라하는 놀이도 해보고 우스꽝스런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알 수 없는 풍파를 겪은 포조 일행이 재등장하고, 다시 소년이 찾아왔다가 소년도 떠난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고고에게 디디는 ‘나무에 목이나 맬까?’라고 말하고, “그러다 고도가 오면 우리는 사는 거지.” 라고 말하며 두 존재는 다시 서로에게 기대 각자를 이끌며 길을 떠난다. ■ 기다림의 끝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2시간30분 가량 이어진 무대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새 없이 휘몰아치는 연기로 관객을 이끌었다. 누군가 연극은 관객과의 호흡이 생명이라 한다. 무대가 끝난 후 관객에게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팔순이 넘는 노배우들의 감사 인사에 객석은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실체 없는 고도와 같은 극을 이끌어간 것은 배우의 열연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과연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만났을까. 전세계 숱한 이들이 ‘고도’라는 존재에 대해 신, 희망, 구원 또는 죽음, 자유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만 원작자 베케트조차 ‘고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도는 두 방랑자를 하염 없이 기다리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밤을 지나 또다시 다음날을 살아내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떠날 수 없게 얽매는 존재이다. 결말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 누군가는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의 모습에 허무함과 절망을 느낄 수도, 누군가는 조금씩 변화한 모습에서 고도는 결국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작품은, 인생 그 자체가 기다림이라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일생 내내 그토록 갈망하는 무언가는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것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부조리함과 역설을 저지르기도 그러면서도 때로 그 안에는 유쾌함과 즐거움, 행복함도 있다. 작품은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단일 캐스팅(원 캐스트)으로 지난해부터 쉼 없이 달려온 작품은 이달 26일부터 ‘럭키’와 ‘소년’ 역의 변화와 함께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열흘간 서울서 9회의 앵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불교미술 속 여성의 자리…용인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리뷰]

불교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일까. 분명 불교는 만물이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르침을 전파하지만, 여성은 자질이 부족해 성불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불교 사회와 불교 미술이 성행했던 시기, 수많은 여인들은 그 모순과 충돌 속에서도 불교를 지탱해왔다. 지난달 27일부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그 흔적과 자취를 찾아나선다. 이번 전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미술 속 다양한 여성상을 만나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와의 관계, 그들 내면의 자기 인식과 고뇌까지 엿볼 수 있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전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모은 불화, 불상 등 불교미술 작품 92건(한국 48건, 중국 19건, 일본 25건)이 한데 모였다. 리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국립중앙박물관 등 9개 소장처에서 가져온 국보 등 문화재 40건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주요 소장처에서 대여한 미술품과 문화재 52건도 전시됐다.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에서 관람객들은 불교미술에서 여성이 어떤 형상과 모습으로 나타나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어머니’는 전근대기 동아시아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했던 가장 큰 역할이었기에 어머니와 연관된 여성상이 눈에 주로 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석가탄생도’가 그렇다. ‘이모육불도’ 역시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양모인 ‘대애도(大愛道)’를 최초의 여성 출가자 대신 태자의 이모이자 양육자로 그려낸 작품이다.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여성은 정념과 집착을 만들어내는 부정한 근원으로 비춰지며 작품 속에 소환되기도 했다. 일본 무로마치시대의 ‘구상시회권’이 대표 예시다. 이 불화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적나라한 시신으로 묘사하면서 신체를 대상화 했기 때문이다. 부처의 자비를 나타내는 관음보살의 형상은 시시각각 변해왔다. 이 가운데 관음보살이 여성처럼 묘사되고, 또 여성으로 인식되고 재현되는 과정 역시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비를 여성의 가치로 인식하던 중국 문화권에서는 아이를 안고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송자관음보살도’와 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전시장엔 부처와 불교도들을 지키는 수호신, 부처의 가르침을 받드는 신들의 모습도 여신으로 나타났던 사례들도 많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당시 교단과 사회가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가치로 엮어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2부 ‘여성의 행원(行願)’는 불교미술 속 여성들의 공헌을 조명하는 자리다. 공덕을 쌓고, 성불을 꿈꿨던 여성들은 불상과 불화를 만들면서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발원 기록을 남겼다. 공식적인 역사서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꿈꿨던 내세에 대한 바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장을 열어준다. 전시장 곳곳의 불상과 불화, 자수불화 등 미술품을 통해선 후원과 제작의 주체였던 여성들의 마음도 살필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승혜 리움미술관 학예연구원은 “한·중·일에서 발전해온 불교미술을 젠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최초의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여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불교미술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여성의 공헌과 염원이라는 관점에서, 전통 미술 속에서 새로운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16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만지며 즐기는 ‘쿵짝공원 속 친친’ 展 [전시리뷰]

“쿵쿵쿵, 누군가의 발소리! 짝짝짝, 박수 소리도 들려요. 아모와 파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날 인형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책상에서 팔과 다리가 튀어 나와 거실을 걸어다닌다면? 어린시절 한번쯤 상상해봤던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지난 14일 수원시립만석전시관에서 개막한 수원시립미술관의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 ‘쿵짝공원 속 친친’은 현대사회 내 다양한 ‘반려’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며 관람객을 동화 속으로 안내한다. 전시에는 손과 발을 작품에 자주 활용하는 ‘깪’과 ‘이학민’ 두 현대미술 작가가 쿵짝공원에서 ‘친친(친한 친구)’을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 속 이야기에 직접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설치미술 작품을 접목했다. 섹션은 깪 작가가 어린 시절 상상 속 인물을 나만의 ‘친친’으로 탄생시킨 ‘아모의 보물찾기 여행’과 이학민 작가가 가구에 손과 발을 만들어 즐겨보던 만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친구로 만들어 낸 ‘파우를 찾아서’ 두 가지로 구성됐다. 관람객에게는 쿵짝공원 지도를 제공해 아모와 파우를 찾는 탐험으로 초대한다. 첫 번째 섹션은 나무에서 자라난 반려인간 ‘아모’가 머리카락 속 비밀의 씨앗을 가지고 보물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손을 머리 위로 펼치듯 앙증맞게 나무에 매달린 아모를 만져보면 푹신푹신한 느낌이 든다. 보물을 찾아 나선 아모는 초록의 언덕을 만난다. 아모는 예쁜 꽃을 함께 즐길 친구가 생기길 바라며 구멍에 씨앗을 넣는다. 언덕에 손을 넣어 쑥 잡아당기자 아모의 친구들이 땅에서 튀어나온다. 아모는 “나의 보물은 바로 친구들이었어”라고 외친다. 프랑스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국내에서 다양한 팝 전시회를 열어온 깪 작가는 “외동으로 자라 어린 시절 상상 속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이 있다”고 말했다. 깪 작가는 “늘 하고 다니는 귀걸이라는 전형적인 공산품에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며 “나무에서 자라난 열매 아모를 똑 떼 반려귀걸이로 차고 다니듯 각자가 자신만의 아모를 맘껏 상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모의 곁엔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파우’가 남긴 발자국이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재주꾼 파우는 큰 발을 숨기지 못해 잘 들키곤 한다. 관람객은 파우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상상하며 그를 찾아 나선다. 파우를 찾아나서는 길에 자리한 은색 나무는 지나는 모든 것을 은빛으로 바꾼다. 관람객은 나의 모습도 은빛으로 변했을지 상상해본다. 그렇게 쿵짝공원을 탐험을 마치자 빼꼼 토끼와 깡총 토끼가 꽃 선물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파우야, 내가 아끼는 건 쿵짝공원에 놀러온 친구들이야!”라고 전한다. 국내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네덜란드에서 디자인 공부한 이학민 작가는 어린 두 자녀의 아빠이기도 하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건 너희야, 우리 같이 친구하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은 어렵고 전시는 조심스럽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곳에선 반려가구인 파우가 변했을 만한 의자나 벤치에 직접 앉아보고 가구 위치도 옮겨보며 전시를 즐기길 바랍니다.” 이처럼 이번 프로젝트는 직접 만지는 체험이 특징이다. 전시를 마치면 관람객은 바로 옆 체험실에서 나만의 반려인형을 만들거나 반려가구를 직접 그려 전시하는 체험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수원시립미술관은 다음 달부터 전시와 체험활동에 더해 전시관 인근의 만석공원에서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원탐구 프로그램도 연계할 계획이다. 전시를 기획한 황현정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현대사회에서는 식물, 곤충, 가구 등 내가 애정하는 다양한 존재가 반려가 될 수 있다”며 “작품을 통해 어린 친구들이 나만의 친구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7월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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