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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소장품 산책하기] 5. 정정엽 '최초의 만찬2', 정은영 '가사들 1, 2, 3'

■정정엽, 최초의 만찬 2, 2019 가로로 긴 식탁을 앞에 두고 열두 명의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활짝 미소를 지으며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식탁 위에는 맛나 보이는 음식들과 과일, 음료수 등의 만찬이 차려져 있다. 어디에선가 본 듯 친근한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정정엽 작가의 〈최초의 만찬 2〉이다. 정면에서 약간 비켜선 자리에서 관람객을 응시하는 나혜석이 보이고 그녀를 중심으로 양쪽에 평화의 소녀상, 서지현 검사, 이토 시오리 기자, 김혜순 시인, 게릴라걸즈(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 등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했던 여성인물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이곳이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 샷은 불가능할 것 같다. 제목처럼 작가는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 화두를 던진 여성들을 한자리에 초청해 여성들만의 최초의 만찬을 벌이고 있다. 저마다 각자의 시선과 표정, 몸짓을 한 채 초청된 이 여성들을 보노라면 함께 마주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은영, 가사들 1, 2, 3, 2013 1948년부터 20여 년, 여성국극은 한국 대중예술계를 가로지른 창조적 술수의 신묘한 횡단선이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고대 신화적 서사?전설?민담 등으로 극적 구성을 짰고, 배역은 모두 여성이 맡았다. 남장(男裝) 배우 임춘앵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찔렀다. 식민과 전쟁과 폐허와 독재의 시대를 관통하며 낯설고 기이한 날들이 이어졌다. 정은영은 지나간 한 시절의 인기 여성국극이 아닌, 파란만장의 격동기에 펼쳐진 이 극의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배우들의 내재율에 주목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삼키고 나서 남성의 목 울대로 변신해 무대 위아래를 장악한 배우들, 과장된 분신술로 선악을 결판내고 열애를 퍼트리는 장면들, 환상과 환영의 판타지로 현실의 이면을 뒤집는 리얼리티는 여성 관객들을 해방구로 이끌었다. 그는 여성국극의 재현된 어떤 장면들, 혹은 재연의 무늬들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 중 가사들 연작은 노배우들이 배역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역할극 연습과 재현들이다. 구정화 학예연구사ㆍ김종길 학예팀장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산책] 3. 금혜원 '가족사진', 이우성 '세상은 내가 꿈꾸지 않게 한다'

금혜원, 가족사진, 2018 금혜원의 가족사진 연작은 작가의 외할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6권의 노트에서 시작됐다. 손 글씨로 정갈히 써 내려간 할머니의 노트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인식을 공유하는 우리네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한국전쟁과 같은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기록의 골자가 됐다. 작가는 근 2년간 할머니의 노트 속 기록의 공백을 치밀하게 채워가며 자전소설을 완성하고 옛 물건을 발굴하고 사진 작업도 병행했다. 이렇게 완성한 가족사진 연작은 역설적으로 풍경 사진이다. 작가는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촬영된 흑백사진을 바닥에 놓고 재촬영 후, 사진 속 인물을 모두 지우고 빈 곳의 배경을 조심스레 복원했다. 그 시절 집 앞, 매일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던 언덕길, 서툴게 건반을 휘젓던 피아노, 식탁에 정성스레 꽂았던 화병. 가족사진이지만, 어느 누구의 가족도 등장하지 않는다. 특정 인물이 사라진 흔적에서 기억 속 저편에 켜켜이 포개놓았던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우성, 세상은 내가 꿈꾸지 않게 한다, 2014 이우성은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나 주변에서 포착한 순간들을 평면 위에 옮겨 그림 그리는 작가다. 작가의 작업에 따라붙곤 하는 만화적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그림이 비현실적이거나 과장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표현을 머금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한 컷씩 담아 정지된 프레임 안에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가 꿈꾸지 않게 한다는 폭이 각각 3미터에 달하는 두 폭의 대형 걸개그림이다. 수면 위의 반짝이는 빛 무리와 해변가에서 노니는 청년들, 바다의 파도를 가르는 대형 선박과 후드를 깊게 눌러쓴 청년의 뒷모습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담았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건 이후 바다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감상에 젖지 못하게 하는 외부 상황에 대해 그리고 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장면과 섬에 도착한 한 무리의 여행객들을 낮은 채도와 푸른빛이 감도는 흑백의 톤으로 표현하며 정적과 불안감마저 전달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이고 감상적인 자기고백일 수도 있고, 사회정치적 사건을 마주하는 동시대 청년세대 시각의 반영일 수 있다. 조은솔ㆍ강민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산책] 2. 파트타임스위트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파트타임스위트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2016 만약 우리가 어딘가에서 쫓겨나 끝없이 추락하는 존재라면 우리가 느끼는 시공간과 속도감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단단히 딛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끝없이 떨어지면서 마주하는 공간이고, 우리의 시선이 실은 끝없이 출구나 끝을 찾아 헤매야 한다면 어떨까. 동명의 단편소설을 모티프로 하는 파트타임스위트의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은 소설의 주인공이 코마에 빠진 연인의 정신적 공간을 추락하는 비행선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명명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푸른 옷을 입은 퍼포머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낮은 천정으로 이뤄진 공간을 헤매다닌다. 다중의 자아로 표상되는 퍼포머는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며 자유롭게 이 공간들을 유영하다가 마침내 이 도시로부터 다시 추락하는 데 성공한다. 폐허나 감옥의 느낌이 나는 회색의 미로 같은 공간은 여의도의 벙커 공간이다. 이와 병치되는 것은 공사장, 쓰레기장, 비둘기 떼와 같은 도시의 버려진 공간들이다. 이 작품은 기괴한 공간 경험을 통해 한국근대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은밀하고 폭력적인 정치권력과 이로부터 계획된 도시화의 이면을 폭로한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네비게이트하는 VR이 주는 신체적 현실감과 강렬한 사운드는 자유와 회복에 대한 미래적 단서를 제공한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 함양아는 잠을 통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민하고 연이어 대안적인 사회 시스템 연구를 병행한 작업을 발표하였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현재의 사회가 이대로는 결국 침몰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인식하며 제작된 작품이다. 함양아는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개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예술이자 삶의 실천방식으로서의 예술이다. 우리가 모두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 시스템의 대안을 찾아서 실현하기 위해서, 그 시스템을 작동하는 개인의 변화 또한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개인,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공존의 능력을 가진 개인, 그래서 자신의 삶과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개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은 이와 같은 주제들을 담은, 작가의 실험적 작품활동의 여정에서 커다란 전환기를 보여주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이수영ㆍ김현정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산책] 1. 성능경 '신문읽기', 홍명섭 'de-veloping ; the wall'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도민과 함께 경기미술을 발전시키는 곳, 나아가 경기도가 쌓아온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가 숨 쉬는 곳, 현대미술을 이끌어나가는 곳. 바로 경기도미술관이다. 경기도 공립미술관인 경기도미술관은 현재 664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경기도미술관이 최근에 사들인 소장품 중 10개의 작품을 매주 두 작품씩 12월 한 달간 소개한다. 미술관 소장품을 통해 현대미술 작가들의 주요 대표작품과 연대기를 알아보자. ■성능경, 신문읽기, 1976 성능경은 1976년 안국동의 서울화랑에서 4인의 이벤트에 참여했다. 이때 첫 신문읽기 이벤트를 실연했다. 신문읽기는 신문을 읽고, 읽은 부분을 면도칼로 오려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다. 그 시작은 신문:1974.6.이후(1974)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이벤트라 불린 행위예술이다. 그룹 S.T(Space&Time)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이벤트를 선보였던 그의 작품에서 신문읽기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행위와 행위의 결과를 구분해서 나눌 수 없는 일체형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신문을 구입해서 낭독하고, 낭독 부분을 오려내고, 다시 낭독과 오려내기를 반복하는 수행성이 퍼포먼스의 중핵이다. 그런 맥락에서 신문읽기는 한국 행위예술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경기도미술관은 2010년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전을 개최했다. 작가는 이 전시 개막식에서 1976년의 신문읽기를 2010년 버전으로 수행한 바 있다. ■홍명섭, de-veloping ; the wall, 1978 홍명섭 작가는 1978년 대전문화원의 첫 개인전에서 이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1970~80년대 개념적 설치미술을 수행했고, 그 수행성의 작업들은 고스란히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매우 독창적인 지표가 되었다. 그의 많은 작업은 결과로서의 품(品)이 아닌, 작(作)에 집중한 결과였다. 작은 ~하기의 수행성을 보여줄 뿐 어떤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생명의 주기와 닮은 일시성의 본성과 함께 형식의 파기 또한 흥미로운 것이라고 고백하거나, 마음에 갇혔던 신체, 정신에 갇혔던 물상, 의식에 갇혔던 물성에서 해방되는 자재의 수평을 향해 흐르는 감성이라고 말할 때, 그가 지향하는 미학적 목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설치작품 de-veloping ; the wall은 그의 미학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증좌이고, 그래서 홍명섭이라는 작가의 위치를 우리 미술사에서 가늠할 때 선명하게 살펴야 할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의 성격이 전시 후 작업 잔여물은 파기 되어야 한다.는 개념적 설치 원칙 때문에 그동안 어느 곳에서도 소장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여러 기획전에서 그 스스로 설정한 설치 매뉴얼에 따라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고, 그것은 개념적 설치미술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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