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이영주 ㈜청보 대표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 [여성(女成)CEO스토리]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6일 안산에 위치한 소방·전기 안전용품 제조 기업 ㈜청보 이영주 대표(53)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자사의 여러 제품들과 전기 공사 관련 책, 메모 가득한 필기장이 눈에 띄었다. 평소 그가 평소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이 대표는 전기와는 거리가 먼 사회복지·유아교육을 전공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전공과도 맞지 않고 여성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전기업에 발을 들인 이유는 바로 대학생 시절 만난 남편이다. 당시 전기업에 종사했던 남편을 만나 이 대표는 남편과 함께 2006년 8월 청보를 설립했다. 설립 초창기 청보는 서비스업의 일환인 전기안전 관리대행업체로 시작했다. 이후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목표로 현장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기공사업(건설업)과 제조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2019년 제2의 도약을 위해 신제품 발굴, 개발에 전념한 결과 음성점멸유도등, 무선중계기, 적외선불꽃감지기 등 화재예방 장치부터 감시, 피난 유도설비까지 8개 품목 21종 개발에 성공, 여성기업·사회적기업 최초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음성점멸 피난구 유도등을 납품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 대표는 “청보가 발전해야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청보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표는 2006년 남편과 함께 청보를 창립할 당시 전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도 일반 사무, 보조 업무만 맡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반 직원들보다 전기에 대한 지식이 없던 이 대표. 자신이 회사에서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낀 그는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유치원생인 아이들,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 육아와 공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이 대표는 2년 동안 밤낮없이 일과 육아,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서른 후반의 늦은 나이에 당시 합격률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기사 1급 자격증을 당당히 손에 쥐었다. 이후 남편과 회사 직원들은 이 대표의 ‘의지와 노력’을 보고, 믿고 따르기 시작하면서 이들과 함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청보를 ‘100년 가치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이 대표의 생각처럼 항상 ‘해피엔딩’은 아니였다. 전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매우 적은 시절,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성이 영업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미팅을 나가도 여성이란 이유로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이 대표는 회사를 위해 화를 꾹 참고, 그 억울함과 서러움을 눈물 통해 흘려버리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대표는 어깨를 피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를 여자로 보지 말고 기업 대표로 봐라”라고. 앞서 이 대표는 평택의 한 오피스텔 건설에 참여했으나, 당시 건설사가 막무가내로 약 10억원의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청보는 부도 위기에 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존 채무에 대한 상환 압박까지 들어와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는 등 어려움이 마치 쓰나미처럼 함께 몰려왔다. 그러나 이 대표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청보의 브랜드를 100년 가치로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가족과도 같은 직원들과 자신을 믿는 남편과 함께 밤낮없이 일만 했다. 그 결과 5년에 걸쳐 모든 빚을 갚았다. 이 대표는 “위기가 올 때마다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았다”며 “나는 하겠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감이 있다는 말을 버릇처럼 되뇌인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경제인협회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2009년 여경협에 가입한 이 대표는 부도 위기 때 어떤 외부활동도 하지 않고 일에만 전념했다. 그럼에도 여경협의 많은 회원들은 그가 도움이 필요할 때 고민없이, 서슴없이 도와줬고, 항상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 대표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현재 청보는 경기지역 산업단지공단 이전기술사업화 R&D, 반월시화스마트그린산단 사업다각화 지원 플랫폼 사업을 통해 ‘스마트 분산형 간이소화설비’를 개발, 본격적으로 화재 예방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터널유도등을 한국도로공사에, 음성점멸 유도등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적외선 불꽃감지기는 층고 8m 이상의 물류창고, 학교 체육관 등에 납품하고 있다. 또 분산형 간이소화설비는 산속에 위치한 사찰, 화재에 취약한 전통시장, 구도심 쪽방촌 등에 설치해 화재를 예방하고 있다. 제조·건설업으로 안산시 최초 사회적 경제기업으로 인증 받은 청보는 사회적 공헌활동에도 진심이다. 이 대표는 지역 내 경로당에 정기후원을 하면서, 올해는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에서 주관하는 1사 1시장 업무 협약을 통해 오이도전통수산시장에 ‘에어컨실외기 화재예방 장치’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현대 사회에는 여성 기업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성 중심인 업종이 많다. 소방 제조 분야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진입하기엔 문턱이 너무 높다”며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이 분야에도 여성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여성도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개발한 전기화재 예방장치, 고성능 화재 감시장치,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피난설비 및 시스템구축을 위한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국민 한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소방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담으로 이 대표는 아직 학생이다. 청보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 대학원에서 재난안전경영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김희재 형도건설 대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성(女成)CEO스토리]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희재 형도건설 대표의 두 눈은 내내 반짝였다. 일과 가족에 대한 애정, 공부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던 이날 김 대표는 형도건설을 이끌어 오면서 겪은 소중한 경험을 풀어냈다. 지난 2005년 전문건설업으로 시작, 현재는 종합건설업체가 된 형도건설은 신축, 증축은 물론 도색 공사도 가능한 업계의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다. 2005년 5억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은 20년이 흐른 지난해 10배 가까이 뛰어올랐고, 지난해 50억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1964년 경기 화성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김 대표는 첫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무렵 남편과 함께 학교, 관공서 등에 체육용품, 철물 등을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다. 자재 납품을 위해 공기관 출입이 잦았던 김 대표는 낡고 오래된 학교에는 개보수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알게 됐고, 그 길로 건축업계의 길을 걷게 됐다. 김 대표의 형도건설은 그야말로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시작됐다. 건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김 대표는 창업을 위해 오래전 넣어 둔 필기구를 꺼내 들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 동네 이웃집의 미장 작업과 간단한 수리 등을 도왔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배웠던 것과 달리 본격적인 건설업계는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건설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 대표는 공부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길로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3학년까지 마친 김 대표는 경기대학교 건축공학과에 편입, 2014년 자랑스러운 졸업장을 품게 됐다. 이후 김 대표는 기사 자격증 공부도 병행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창업 준비를 거쳐 현재는 20년 넘게 건설업 대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김희재 대표의 형도건설은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건설업계에서도 특별함으로 무장했다. 다소 거친 업계에서 형도건설이 성장할 수 있는 데는 김 대표의 ‘꾸준함’과 ‘꼼꼼함’이 한몫한다. 김 대표는 앞서 건설업에 입문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공부를 했을 정도로 꾸준함을 갖추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학업을 이어왔고, 또 여성이자 엄마의 세심함이 형도건설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김 대표의 두 아들 역시 대기업 건설사에 입사, 건설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형도건설은 2005년 창업 초기에는 전문건설업과 시설물관리업을 시행했다. 지난 2021년 국토교통부 시설물관리업 업종 전환으로 2022년부터 종합건설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형도건설은 관공서 조달청 입찰 공사는 물론, 민간 공사도 진행하면서 도내 곳곳에 현장을 두고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특히 김 대표는 건축공사업 면허를 받은 이후 최초로 수주한 이천 단월초등학교 체육관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한다. 시골 학교 체육관 증설 공사 당시 바닥부터 차근히 쌓아 올린 체육관이 완성됐던 그때의 희열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김 대표는 정성껏 지은 건물에서 해맑게 뛰어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소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력에 노력을 반복한 김 대표는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학창 시절 때도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복지에 관심이 있었던 김 대표는 현재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으며, 먼 미래에는 복지관을 지어 사회복지 활동을 하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김희재 대표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소속돼 있어 수주에도 가점을 받는 등 내가 오래도록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여성 대표가 모여 있는 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 덕”이라며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여러 대표님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와 한 식구가 될 차세대 여성 CEO에게는 ‘도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만큼 도전을 어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여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그건 업계의 선배이자 여성대표 선배인 우리가 있으니 도움을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 우선 도전하는 것이 여러분의 역할이자 할 일”이라면서 “‘여자는 모를 거다’라는 사회적 선입견은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 선배가 깨부수고 있으니, 그런 고비를 겪을 때마다 더 열심히 참여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면서 같이 커 가는 여성 CEO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든든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황태옥 ㈜퀸아트 대표 “숙제 말고 축제하듯 일하자” [여성(女成)CEO스토리]

“숙제 말고 축제하듯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1일 오전 김포시 양촌읍에 위치한 주방 용품 전문 제조기업 퀸아트 건물에 들어서자 창 밖에서 비추는 햇살 사이에서 황태옥 퀸아트 대표(67)가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걸어왔다. 울산에서 태어난 황 대표는 ‘최고의 품질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1993년 ㈜대한테프론으로 창업, 1996년 상경하며 공장을 확장 이전, 상호를 ㈜퀸아트로 변경했다.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수출 유망 중소기업 선정, Brand K 지정, 수출 40개국 달성이라는 결실을 맺고, 주방 용품 제조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황 대표의 오른쪽 팔엔 화상 자국이 있다. 이 ‘영광’의 상처는 30년 전 프라이팬 코팅 업체 ㈜대한테프론을 운영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공장들이 LPG 가스통 여러개를 놓고 사용해 가스 폭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황 대표도 가스 폭발의 위험을 피해가지 못했다. 코팅로를 가열하던 중 가스통이 터진 것이다. 황 대표는 “큰 사고를 겪었을 당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 차근차근 일을 해결해 나가자는 마음이 앞섰다”며 “당시 사고를 계기로 많은 것을 배웠고, 크고 작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퀸아트로 상호명을 변경했던 것도 결코 좋은 이유는 아니었다. 하청업체로 프라이팬 코팅 업무만 했을 때 원청업체가 부도가 났다. 당시 원청업체가 부도가 나면 하청업체들도 함께 그만두는 일이 많았지만, 황 대표는 달랐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퀸아트로 상호명을 바꾸고 프라이팬을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당시 남성 대표가 아니라는 이유로 황 대표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황 대표가 혼자 후라이팬을 납품할 때도 물건을 뺏기고 돈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여성이란 이유로 협력업체 공장의 남성 직원들이 막무가내로 뺏은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 직원은 ‘대출을 얼마나 받을 것이느냐’가 아닌 ‘왜 여자가 대출을 받느냐’라는 질문을 먼저 물어봤다. 회사의 대표라고 말해도 ‘남편이 부도가 났느냐’라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황 대표는 “자금을 조달할 때 여성 기업인들은 금융기관에서 남편의 보증을 요구 받을 때가 있었다”며 “은행에서 남편 신용도를 확인할 때 가장 난감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대표’라는 자리에서도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며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공장에서 20여명의 직원들과 프라이팬 코팅부터 포장까지 프라이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함께 했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회사와 공장에 있었던 황 대표. 직원들과 함께하면서 직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몸소 체험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헤아리고 가족처럼 대했다. 그 결과, 지식과 경험보다 더욱 값진 것을 얻었다. 과거 생산직 직원이 대부분 남성직원이기 때문에 함께 소통하고 지내는 것에 대해 부담이 있었으나, 이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신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프라이팬의 전 제조 과정을 모두 자체적으로 한 과거의 퀸아트는 현재 모든 생산 공정을 타 업체에 위탁하고 최종 조립과 출고, 수출 업무만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일부 업무를 외주로 주고 있다. 외주 업체의 대표들은 모두 황 대표와 동거동락한 퀸아트의 직원들이라고 한다. 그에게 퀸아트 프라이팬이란, 직원들을 가족처럼 믿은 황 대표, 황 대표를 가족처럼 따른 직원들의 소중한 합작이다. 현재 퀸아트는 ‘이노블코팅’이란 기술력을 인정 받아 일본, 유럽, 홍콩, 미국, 캐나다 등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또 박람회 등 행사를 통해 퀸아트를 접한 외국 바이어들은 끊임없이 황 대표를 찾아오고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퀸아트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 예정이다. 황 대표는 “퀸아트의 사훈이 ‘즐기면서 일하자’인데,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도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며 “현재 제조업 생산직에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상황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사회조직문화를 겪은 경험을 살려 사내근무 여사원뿐 아니라 다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예전 사회랑 다르다. 여성 CEO 단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서로 협력할 수 있어 단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여성 기업가로서 지속적인 자기 개발과 학습을 통해 나만의 고집이 아닌 혁신적인 사고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화순 해천케미칼 대표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죠” [여성(女成)CEO스토리]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죠.”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시던 14일 오전. 시흥시 시화공단에 위치한 해천케미칼은 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가득했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모두 웃는 얼굴로 임하고 있었으며, 이들과 함께 현장을 누비던 변화순 대표 역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긍정 아우라’를 지닌 변 대표는 1994년 덕인산업을 창업한 뒤 2001년에 해천케미칼로 사명을 변경,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2001년 10억원도 채 되지 않았던 해천케미칼의 연 매출은 20여년이 흐른 지난해 말 기준 200억원을 목전에 두고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날 변 대표와의 대화는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이었다. 지난 1994년 회사 설립 이후 현재까지 함께 호흡을 맞춰오는 직원이 있을 만큼 변화순 대표는 직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대했고, 직원들은 그런 변 대표를 존경하는 태도로 임했다. 1967년 태어나 올해 58세인 변화순 대표는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편한 모습이었다. 20대부터 40,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일하고 있음에도 업무는 물론 의사소통에도 전혀 걸림돌이 없다고 한다. 여기에는 직원들은 모르는 변 대표만의 노력이 숨어있었다. 변 대표는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을 당시 대표가 아닌 현장직 즉, 공장 생산직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생산 과정을 제대로 알고, 그 과정에 있는 직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몸소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변 대표는 생산직을 시작으로 경리, 영업직을 거쳐 지금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 같은 경험 덕분에 변 대표는 사내 모든 직종이 느끼는 문제점을 누구보다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고, 직원들이 겪는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 또 변화하는 사회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면서 젊은 세대와 공감하는 방식도 배워가면서 세대 간극을 줄여나가고 있다. 이런 변 대표도 혼자 고민해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화공약품 분야는 규제가 심한 데다 직접 생산, 납품, 조달을 하는 해천케미칼은 다른 기업보다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았고, 어려운 산업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변 대표는 고민에 생길 때마다 본인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하려고 하면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핑계가 된다’는 신념으로 변 대표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돌파구를 고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처럼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대표의 자세도 잃지 않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변 대표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남의 일로 생각하면 등한시할 수 있기에 그 문제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변 대표의 태도는 고객사에도 전달됐고, 고객사 사이에서 변 대표는 “책임의 아이콘, 신뢰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변 대표의 해천케미칼은 자체 제조하고 있는 인산염, 규산염, 초산염, 동절기 친환경 제설제, 비료 제품 등을 주력으로 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꾸준한 공급을 바탕으로, 현재는 종합 화공약품 회사로 발돋움했다. 그중에서도 환경을 생각한 친환경 제설제를 주력으로 한다. 2016년부터 생산에 나선 친환경 제설제는 해천케미칼 독자적인 기술 적용으로 환경표지 인증을 받아 관공서 및 민간 기업에 고상제설제, 액상제설제 두 가지 형태로 판매·납품하고 있다. 고상제설제는 타 경쟁사에 비해 빠른 융빙 효과, 넓은 제설 면적, 먼지 발생 최소화라는 특징이 있으며 타사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액상제설제 역시 환경표지 인증을 받았으며 빠른 융빙 효과, 침전물 최소화, 미세먼지 저감 효과로 외관 및 사용 편리해 최근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 보일러 청관제와 스케일제거제를 개발했으며 각종 발전소 및 소각장에 사용되는 보일러 배관에 부식 억제와 발생하는 찌꺼기를 분해해 설비 안정화 및 각종 폐기물, 폐수 최소화로 산업 환경 오염 방지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세제, 세정제품과 수처리 약품, 도금 약품, 식품 첨가물, 계면활성제 등을 취급하고 있다. 두 아이의 육아와 기업 경영을 동시에 소화했던 변 대표는 여성기업의 이미지가 조금 더 굳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한다. 변 대표는 “여성기업이라면 취급하는 품목도 아기자기할 것 같고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그런 보편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투과된 기업이라는 관점은 너무 고전적”이라며 “지금 바라보는 여성기업은 누군가의 엄마가 이끄는 기업으로, 엄마가 지닌 따스함과 세심함이 돋보이면서도 그 안에서도 굳건함이 느껴지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목소리가 됐을 때 그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걸 위해 우리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가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지회는 여성기업이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을 채워주고, 혹여 부족한 것이 있었을 때 커버해 줄 수 있는 단체인, 결국 우리 지회가 여성기업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창업을 고민하는 예비 여성 CEO에게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나 실수는 발생할 수 있다. 무작정 창업하기보다는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그 누구보다 자세히,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경험의 실수는 허용되지만, 절실함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실수는 없어야 한다.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 모두 성공을 기대하는데, 그 성공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고 말했다. 또 “창업에 대한 고민이 들 때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나 지자체 등에서 진행하는 창업 교육이나 안내, 상담 등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주위의 도움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차기 멋진 여성 CEO가 되는 데 귀한 밑거름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류현숙 효성에어캡 대표 “대한민국 경제, 여성이 움직입니다” [여성(女成)CEO스토리]

전국 314만, 경기도 80만 여성기업 시대. 여성기업은 어느새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에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 고용에도 힘쓰는 등 ‘여성기업’의 역할이 날이 갈수록 강조되는 가운데, 도내 여성기업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경제는 여성이 움직입니다.” 8일 화성시 팔탄면에 위치한 효성에어캡. 이곳에서 만난 류현숙 대표(65)와의 대화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강인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류 대표가 이끄는 효성에어캡은 지난 2007년 설립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연 매출 40억원을 올리고 있다. 류현숙 대표는 창업 이후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역경을 지나쳐 왔다고 한다. 1959년 경상도에서 태어나 상경한 뒤 공직자인 남편 옆에서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일생을 보내던 류 대표는 우연한 계기로 사업의 길에 들어섰다. 아파트에 살던 류 대표는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직접 짓게 됐고, 집을 본 주변에서 류 대표의 감각을 인정, 높이 평가했다. 류 대표는 이런 긍정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어 건축자재와 마노석을 공급하는 사업에 나섰다. 마노석은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던 보석사우나에 활용되는 수입 품목이자 지압 슬리퍼, 건축자재로도 활용되는 등 사용 범위가 넓어 많은 수입업자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품목이다. 1998년 마노석 수입 사업을 시작한 류 대표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으나, 오래 거래하며 믿음을 쌓았던 바이어에게 큰 사기를 당했다. 바이어에게 건낸 사업 자금이 모두 먼지가 됐고 류 대표는 그 충격에 사업을 접게 됐다. 애정을 담았던 사업인 만큼 상심이 컸던 류 대표를 일어설 수 있게 했던 것은 가족과 주변의 응원이었다. 가족의 위로와 지지에 다시 힘을 낸 류 대표는 마노석 사업을 했을 때 눈여겨보던 포장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 차례 큰 절망을 경험했던 류 대표는 2007년부터 2년에 걸쳐 보다 신중히 포장재 사업을 준비했고 지난 2009년 화성시에서 본격적인 포장재 시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남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압출 산업에서 류 대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섬세함’이었다. 항상 고객사의 눈높이에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류 대표에게는 겸손과 배려가 묻어났다. 17년간 효성에어캡은 ‘고객과의 신뢰’와 ‘정직’을 최우선으로 운영됐다. 작은 컴플레인도 허투루 지나지 않는 류현숙 대표의 섬세함이 가장 큰 강점이었던 효성에어캡은 창업 이후 현재까지 함께하는 고객사가 많다. 이처럼 일을 사랑한 류 대표는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도 사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4번의 대수술에도 일에 대한 열정이 우선이었던 류현숙 대표는 현재 사랑하는 가족과의 미래,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 스무 곳 가까이 되는 사회단체에 정기기부를 이어오며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도 아낌없이 전하고 있다. 이런 류현숙 대표의 노력에 효성에어캡은 초석을 잘 다질 수 있었고 어느새 업계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택배 배송이 보편화된 지금. 효성에어캡 포장재는 철저한 관리하에 생산, 납품된다. 일반 포장, 택배 포장은 물론 1차 산업 생산품이 2차 생산으로 이동할 때 생산품의 품질을 보호하기 위한 산업용 포장재까지 포장재의 전 영역을 생산하고 있다. 또 다양한 크기로 제작, 납품해 고객사 선택의 폭을 넓혔다. 대표 상품인 단열 에어캡은 여름, 겨울 냉, 난방비 절약에 효과적이다. 일일이 테이프를 붙여야 하는 타제품과 달리 효성에어캡의 단열 에어캡은 창문에 물을 뿌려 부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 범퍼와 도어 포장용 에어캡은 무겁고 외부 충격에 민감한 범퍼, 도어와 같은 자동차 부품을 포장하기 위해 특수 제작됐으며, 오염에 예민한 반도체를 포장할 수 있도록 정전기 방지 처리가 된 반도체 포장용 시트도 효성에어캡의 자랑이다. 류 대표는 현재에 만족하기보다 미래에 대한 큰 꿈을 그리고 있다. 뿌리산업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반 마련에 도움을 준 정부,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에 감사함을 전하며 류 대표는 또 다른 기지개를 켜 지역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다짐했고, 지역사회 여성들과 힘을 합쳐 폐기물 처리, 쓰레기 수거 등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래 사업을 준비 중이다. 류 대표는 “나도 누군가의 엄마이면서, 한 여성이다. 엄마는 강하다는 인식과 함께 늘 책임감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 책임감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다짐을 반복한다. 일단 시작하면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좌절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도 앞을 바라보면서 전진하고 나아가면 대한민국 경제를 여성이 이끌어갈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본인과 같이 창업 시장에 발을 들이는 젊은 여성 CEO에게는 “창업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자본부터 거래처 확보, 인적 자원 등 모든 것이 각각의 장벽인데, 그 장벽을 두들겨 보지 않고서는 장벽 건너의 무지개를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여자가 뭘 알아, 젊은 게 뭘 알아’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창업에 대한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다 할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의지, 인내, 끈기가 뒷받침됐을 때 그 장벽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여기에 든든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와 지자체, 국가의 도움이라는 창을 이용해 창업의 문을 열면 장벽 너머 기다리던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경제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