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의 심부름 중에는 아지노모토(味の素, あじのもと)를 사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지금이야 맛을 내는 다양한 조미료가 워낙 많아서 고민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른바 아지노모토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아지노모토는 인공조미료인데,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아지노모토 관련 상품들이 팔리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인공조미료이다. 또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놀다보면 짱께미뽀라는 것을 많이 한다. 그런데 청년 시절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어린이들이 짱께미뽀를 하는 것으로 보고 이것이 일본어였구나 라고 했던 적이 있다. 짱께미뽀는 짱겐뽕(じゃんけんぽん)의 변형으로 우리말의 가위바위보이다. 1960년대 초에 태어난 필자는 어릴 적 생활 용어 중에는 일본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될 정도였다. 가이당(계단), 자부동(방석), 우와기(상의), 다마(구술전구), 다마네기(양파) 등등 몇 년 전 국회에서 겐세이(牽制, けんせい)와 야지(野次, やじ)라는 일본 말을 사용해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불필요한 일본어를 사용하므로써 국회의원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공방을 벌인 것이다. 겐세이는 견제를, 야지는 야유 또는 빈정거리며 놀림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도 우리 일상생활에는 일제의 잔재인 언어 즉 일본어가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광복절이나 31절이 되면 매스컴이나 언론에서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식민청산을 부르짖고 있으며, 실제 식민청산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요즘 국제화 시대에 언어에 대한 식민청산은 다른 분야보다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 사용했던 언어도 점차 순화돼 가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행정용어이다. 지금도 각종 법률이나 판결문, 정부의 공시문 등을 보면 일본식 표현이 적지 않다. 관행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 국립어학원 발행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에는 1천171개나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어는 얼마나 될까. 그동안 일본어나 일본어 투의 용어에 대한 순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는 2005년 국립어학원에서는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이라는 책을 발행한 바 있다. 이 자료집에 의하면 순화 대상 용어가 무려 1천171개나 수록될 정도로 일제강점기 사용했던 일본어 또는 일본어 투 용어가 우리 사회에 일상화됐다. 이중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라오케(空オケ, からオケ)이다. 가라오케는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대중오락의 한 형태인데, 가라의 비어 있다는 일본어와 오케스트라의 준말 오케의 합성어이다. 즉 가라오케는 악단이 없는 가짜 오케스트라라는 의미이다. 가라오케는 녹음 반주라는 순화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가라오케의 가라(空, から)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는데 가짜라는 뜻으로 가라친다 또는 가라치지 말아라 등으로 쓰인다. 가부시키(株式, かふしき)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는 일본어의 하나이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위해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각자 음식 값을 치룰 때 오늘 밥값은 가부시키하자라고 한다. 가부시키는 나눠 내기 또는 추렴이라는 순화 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 가케우동(掛け, かけうどん)도 많이 쓰는 말이다. 요즘도 일본식 음식점에서는 가케우동이 메뉴판에 올라있고, 이를 주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 스며든다. 우동(, うどん)이라는 말도 너무 일상화돼 일본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착각할 정도이다. 가케우동은 가락국수, 우동은 국수로 순화해서 사용해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되는 데도 말이다. ■ 음식과 관련된 광범위한 일본어 남용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음식과 관련된 일본어도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대전에 가면 유명한 빵이 소보로빵이다. 맛도 좋고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필자 역시 대전역을 이용할 때면 소보로빵을 사곤 한다. 그런데 이 소보로빵(そぼろパン)이라는 말이 일본어였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별 의미 없이 사곤 했는데 아차 싶었다. 우리말로는 곰보빵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좋은 표기인가 한다. 음식점에 가서 싱거우면 흔히 다데기를 달라고 하는데, 다데기(たたき)이서 온 말로 역시 일본어이다. 우리말인 다진 양념 또는 양념을 달라고 하면 어떨까 한다. 이외에도 무심코 사용하는 말 중에, 특히 먹는 것과 관련된 일본어 투 표기는 얼마나 될까 했는데, 생각보다 광범위 하게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로케(コロッケ), 덴뿌라(天), 오뎅, 나베우동(鍋, なべうどん), 스시(壽司, ずし), 다시(出し, だし), 다쿠앙(澤庵, たくあん), 대하(大蝦), 돈가스(豚カツ, とんカツ), 돈부리(, どんぶり) 사라(皿, さら), 모찌(餠, もち), 벤또(辯當, べんとう), 복지리(鰒じる, ふぐじる), 사라다(サラダ), 센베이(煎餠, せんべい), 소바(蕎麥, そば), , 수타국수(手打-), 시오야키(鹽燒き, しおやき), 아나고(穴子, あなご), 앙꼬(子, あんこ), 야키니쿠(燒き肉, やきにく), 야키만두(燒き饅頭, やきまんじゅう), 오코시(, おこし), 와사비(山葵, わさび), 짬뽕(ちゃんぽん), 사시미(刺身, さしみ)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일본어는 고로케는 원어인 크로켓, 덴뿌라는 튀김, 오뎅은 어묵, 나베우동은 냄비국수, 스시는 초밥, 다시는 맛국물, 다쿠앙은 단무지, 대하는 왕새우, 돈가스는 돼지고기 너비, 돈부리는 덮밥, 사라는 접시, 모찌는 찹쌀떡, 벤또는 도시락, 복지리는 복국, 사라다는 샐러드, 센베이는 전병과자, 소바는 메일국수, 소보로빵은 곰보빵, 수타국수는 손국수, 시오야키는 소금구이, 아나고는 붕장어, 앙꼬는 팥소, 야키니쿠는 불고기, 야키만두는 군만두, 오쿠시는 밥풀과자, 와사비는 고추냉이, 짬봉은 초마면, 사시미는 생선회로 순화하면 된다. 음식을 먹을 때도 한번쯤 생각해보고 주문을 해야 할 듯하다. ■ 대학생이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구라(거짓말), 애매하다(모호하다) 등 그런데 육아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말을 배우는 시기는 대체로 두세 살 시기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조부모, 고모나 이모 등으로부터 한두 마디 들으면서 말을 배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많이 듣는 말 중에는 일본어 투 용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찌찌(乳, ちち)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찌찌 먹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찌찌는 젖이라는 일본어이다. 밥을 먹을 때도 맘마 먹자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맘마(まんま)는 어린이들이 먹는 밥의 일본어이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서경덕 교수 연구팀은 나라를 찾은 지 70년이 된 지금 상황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본어 잔재들의 현 실태를 조사,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점차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모색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기획한 바 있다. 그 결과 수도권 대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본어는 구라였다. 구라(くら)라는 말의 뜻은 어학사전에는 거짓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지만, 일본어의 잔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애매하다(모호하다), 기스(흠집), 간지(멋), 닭도리탕(닭볶음탕) 등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본어 잔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순으로 집계됐다. 이와 같은 일본어 잔재에 대해 우리말로 바꿔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60% 정도가 바꿔야 한다고 했으며, 일본어 잔재가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의 무관심, 일본어 잔재에 대한 교육 및 홍보부족, 정부의 무관심 등이라고 했다. 성주현 숭실대 HK 연구교수
정치
성주현
2020-09-13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