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해방 75년’ 지금도 일제 그림자 속에 산다

일제강점기 때 왜곡된 경기도내 지명만 160개 달해
노래·건축·언어·문학 일상 곳곳 일제잔재 남아있어

카지노 도박 사이트

■ 경기도내에 뿌리내린 친일잔재

경기도내의 친일문화 잔재조사에 관한 결과 친일 인물 257명(이흥렬, 현제명, 김동진, 이광수 등 문화계 15명), 친일 기념물(기념비 및 송덕비) 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 89개, 일제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 12개 등이 도내 일제 잔재로 밝혀졌다. 엄청난 숫자이다. 실제로 경기도를 상징하는 노래가 친일작곡가 이흥렬에 의해 작곡됐음에도 우리는 수십여 년을 불러왔고,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변절자인 춘원 이광수가 한국 문학을 선도한 선구자로 칭송하고 있는 기념비가 남양주시의 봉선사 입구에 서 있으며, 안양시의 서이면사무소는 일제가 만든 건축물임에도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면서 아무도 손을 못되게 되어 있다.

경기도내의 지명은 더욱 심각하다. 경기도의 조사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왜곡된 행정구역 명칭은 160개다. 왜곡 유형으로는 합성 지명이 117개, 숫자·방위·위치를 염두에 만들어진 지명 11개, 위상 격하 지명 2개, 한자어화 지명 3개, 일본식 지명 5개 등이다. 단일한 지명으로는 일산, 산본, 평촌 등 모두 우리의 얼과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또는 의미를 폄훼하기 위해서 만든 지명들이다. 해방 이후 당연히 고쳤어야 함에도 지명변경에 따른 혼선과 예산을 핑계로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생활 속의 남아있는 친일잔재

일상생활 속에 유형의 형태로 남아있는 친일잔재는 일제가 조성한 건축물이나 조각과 같은 예술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해방 이후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에 의해 자신들의 과거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남겨놓은 유산들이다. 아산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 영정이나 논개의 영정이,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있는 백범 김구의 조각상과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친일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의 상당수도 친일파들에 의해 작사작곡됐고 심지어 지폐에 있는 한국은행 총재의 직인도 형식으로 남아있는 유형의 친일잔재이다.

그러나 생활 속에 남아있는 친일잔재는 주로 언어로 구조화돼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친일잔재는 일본과 자연스러운 교류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 속에서 계획적으로 진행돼 온 것들이다.

대표적인 언어가 힘내자고 할 때마다 사용하는 ‘파이팅’이다. 파이팅은 영어이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일본군 출전 구호였다. 권투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Fight(파이트)’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이또’라고 부르며 출전하는 군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데에서 시작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강제로 징용을 끌려갈 때 눈물로 이별하면서 외쳤던 표현이 ‘파이팅’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친일잔재이다.

이밖에도 우리의 생활 속에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짬뽕(초마면), 우동(가락국수), 가라(가짜), 기스(흠집), 사라(접시), 모찌(찹쌀떡), 망년회(송년회), 익일(다음 날), 가불(선지급), 유도리(융통성), 만땅(가득) 등 친일잔재는 차고도 넘친다. 건설분야나 당구장 같은 곳을 가보면 더욱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두 우리 말로 개선할 수 있음에도 게으르거나 아니면 무관심해서 남아있는 친일잔재들이다. 그러나 생활 속의 친일잔재에서 가장 심각하고 또 가장 시급한 개선해야 할 곳은 학교생활 속에서의 친일잔재이다.

■ 학교생활에서의 친일잔재

일본의 주요 원료 수출규제에 반발해 전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가장 앞장서서 실천한 이들은 청소년들이었다. 우리들의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각한 역사의식의 발로였다. 이를 보고 기성세대들은 흐뭇함을 넘어서 건전한 다음 세대를 기대하게 됐다. 그러나 건강한 청소년의 교육현장에는 의외로 친일잔재가 넘쳐나고 있다. 청소년의 생활 속에 침투된 일본문화는 고사하고 학교현장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나 교사들이 사용하는 용어 등에는 수많은 친일잔재가 있다.

지금도 사용하는 반장, 부반장은 일제강점기 때의 급장(級長) 혹은 반장(班長)의 호칭이었는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 시절 반장이나 급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담임교사가 지명해 담임교사의 대리자로 활용했다. 위계에 의한 질서를 강조하는 군국주의 문화의 소산이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반장이라는 용어가 전후 학급위원(學級委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지금도 사용 중이다. 교장 선생님이나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하는 훈화(訓話)는 ‘상사가 부하에게 ‘훈시’한다는 일제강점기의 군대 용어로 감시와 통제를 위해 사용하던 언어였지만 학교 행정에서는 오늘도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학교에서 학부모들과 행하는 간담회는 일본식 한자어(懇談會:こんだんかい)를 한글로 표기한 낱말이며 사정회·사정안 같은 표현도 일본어식 조어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또 결석계나 휴학계 등으로 사용되는 ~계(屆)라는 용어 역시 일본에서 공문서를 지칭하는 ‘~とどけ(屆)’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학교행사에서 으레 사용되는 차렷이나 경례 등의 용어는 일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전형적인 군국주의 일제의 잔재이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소풍 등 정겨운 표현 역시 일제 잔재이다. 그것은 1907년부터 조선인들을 일본에 견학시켜서 일본문화를 익히고 일본을 동경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정책적 용어들이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문화탐방’이나 ‘문화체험활동’ 등의 대체용어를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지만, 여전히 또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없어져야 할 학교생활 속의 대표적인 친일잔재이다.

■ 학교 속의 제도화된 친일잔재

학교생활 속에서 제도화된 친일잔재는 먼저 학교의 명칭에서 찾을 수 있다. 1995년 국회의 교육법개정에 따라 이제는 초등학교로 변경돼 완전히 없어진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너무도 오랜 시간을 사용해온 친숙한 호칭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변경되지 못한 명칭은 유치원(幼稚園)이다. 유치라는 단어의 뜻은 ‘나이가 어리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의 뜻으로 사용돼 왔다. 즉, 어린이에 대한 무시를 전제한 호칭인데 어린이 존엄사상이 강했던 우리의 전통과는 큰 차이가 나는 표현이다. 한자문화권 국가 중에서 아직도 유치원이라는 명칭을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광복회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첫 학교를 일제 잔재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오랜 시간 우리 삶에 스며들어온 일제 잔재에 문제의식을 갖고,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해 온 국민이 뜻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유치원은 ‘어린이동산’과 같은 고운 우리 말로 변경해야 할 때이다.

어느 교실 안이든 정중앙에 배치돼있는 태극기 역시 친일잔재이다. 교실 안의 태극기는 청소년의 애국심을 배양하는 주요한 형식이 돼 있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에 교실마다 일장기를 액자에 넣어 게양하고 일제에 충성을 강요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자발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강요와 형식에 의한 애국심의 강조는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모든 학교 운동장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구령대 역시 친일잔재이다. 군국주의를 지향했던 일제는 모든 학생에게 항상 일왕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그것도 주입식 방식으로 교육시켰다. 높은 구령대의 위에서 근엄한 표정과 엄한 목소리로 한결같이 학생들에게 호령하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하나같이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의 신장과는 거리가 먼 우리 교육현장의 친일잔재이다. 이밖에도 친일잔재로 남아있는 조회, 주번과 같은 표현들, 학교명이나 교화, 교목, 교표 그리고 친일작곡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가 등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들이다.

■ 법규제정과 국민운동으로 이어져야

현재 남아있는 친일잔재의 청산을 위해서 지자체마다 특위를 구성하고 교육청은 나름대로 조사와 함께 교육현장에서의 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예산 배정을 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친일잔재 청산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경기도 역시 여기에 발맞추어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유형의 친일잔재는 이와 같은 외형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청산이 가능하지만, 무형의 친일잔재는 장기간의 수고와 노력을 요구된다. 따라서 우리는 몇몇 관련 법안을 제정하거나 청산을 위한 예산 배정 등에 그치지 말고 공청회와 토론회 그리고 전 국민의 참여를 통한 운동으로 확산되게 해야 한다.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일에는 시공간의 게으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