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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인공폭포·인공암벽 전문 시공 윤복모 미주강화㈜ 대표

학교 대신 공장으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던 설움을 알아요. 그래서 학업에 뜻있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하남에서 인공폭포암벽 등 조형물을 설계시공하는 윤복모 미주강화㈜ 대표(63)는 지난해 7월 경기도 263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 입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인천 강화군 서도면 시골마을 청년에서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친환경 경관시설물을 만드 는 CEO가 된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희망이 후학 양성에 있다고 보고, 장학사업 등 다채로운 나눔을 펼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눔이 필요한 이들과 나눠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윤 대표로부터 행복의 가치와 이웃사랑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Q지난해 7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소회를 전해달라. A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웃을 돕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닌데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받아 오히려 부끄럽다. 주변을 둘러보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시는 분들을 있다. 저도 언제가 꼭 기회가 오면 나눔에 동참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특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청소년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눔에 동참하게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당시에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고 연연하고 싶지 않다. 꼭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Q강화도 시골 청년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달라. A저는 강화군 서도면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당시에 공부가 좋았고 성적도 괜찮았다. 그래서 학업에 대한 꿈을 갖고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학업을 이어가고 싶으면 강화 본토나 인천으로 나와야 하는데 저처럼 연고가 없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당시 학교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오토바이 헬멧 공장에 취업하게 됐다. 공부를 할 수 없으니 기술을 배워 성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기간 공장 운영방식 등 다양한 것을 습득하며 저 나름대로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군대 입대 후 전역해서 1985년에 공장을 세웠다. 합성수지(FRP) 건축자재 욕조 등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차츰 사업을 키워나갔다. 이후 1980년대 후반에는 경관시설 쪽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개발 끝에 이 분야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갖게 됐다. 처음 혼자 운영하던 사업은 수십명의 직원을 채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Q미주강화(주)는 오늘날 세계의 표준을 만드는 경관시설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A세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세계 곳곳을 돌며 선진기술을 배우고 습득한 것이 오늘날의 미주강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가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경관시설물에 대한 KS 성능 기준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술 매뉴얼도 없었다. 그래서 임직원이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만드는 것이 표준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 선진국을 돌며 기술을 습득했다. 제가 이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했던 건 기술자로서 자존심이었다. 1990년대 국내 한 놀이시설 테마파크에서 워터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인공암석 등 여러 기술을 도입했는데 국내 기술은 단 한 건도 채택되지 못했다. 그만큼 세계의 벽은 높았다. 기술자로서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이후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경관시설 기준을 찾아 우리 기술과 비교했고 세계 유명 기업을 찾아 노하우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끈질긴 노력 덕분에 특허받은 친환경 인조암 등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기준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Q모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 특히 청소년 지원에 관심이 많은데. A서두에 밝혔듯, 학창시절 배움을 중단했던 설움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저는 가슴 한켠에 배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특히 40대 초반까지 중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인 저를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느낄 때면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래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출근을 해야 하니 새벽 6시부터 과외선생님께 강습을 받는 등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 한 번에 합격했다. 이때 느낀 건데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려니 정말 힘들더라.(웃음) 나름 학창시절 공부를 잘해서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0년 넘게 책을 놓다가 다시 붙잡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절실히 느꼈다. 배움은 때가 있다고 . 제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는 이후 대학에 들어가 조경학을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치며 그토록 염원했던 학업에 대한 열망을 채울 수 있었다. Q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희망찬 내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은 말은. A저는 강화도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자라날 때의 농어촌 생활은 매우 어렵고 척박한 환경이었다. 누구나 꿈을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가 너무 힘들었다. 요즘 청소년들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고뇌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가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선배로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생각과 행동은 자신의 미래를 바꾼다. 어렵다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희망찬 미래를 그려가길 바란다. Q 독자들이 나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한다. A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어렵다. 우리 회사도 코로나 발생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눔은 어려울 때 더 큰 빛을 발한다. 우리 사회가 끈끈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면 더욱 건강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기부문화도 세계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서로 함께 웃고 격려하며 더 힘찬 내일을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광희기자/사진=윤원규기자

[경기 노블레스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박준수·최근석 수원 버팀병원 대표원장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의료기관으로서 경제적 사정으로 치료를 망설이는 의료취약계층의힘이 되겠습니다. 비수술 중심의 척추, 관절 전문병원인 수원 버팀병원에서 뛰어난 의술로 환자의 병을 치유하는 박준수(45)최근석(45) 대표원장은 각각 2019년 7월(210호), 2021년 7월(264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며 따스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어깨와 무릎 통증으로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에도,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참고 감내해야 하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아파했던 두 원장은 이들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인술로 우리 사회에 따스한 감동을 전했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따뜻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박준수최근석 대표원장을 만나 나눔의 가치와 행복의 미학에 대해 들어봤다. ■ 아너 소사이어티란?사랑의열매의 고액 개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성금 기부 또는 약정(5년 이내)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클럽 Q대표원장 두 분께서 모두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나눔을 결심한 계기는. A 박준수 원장(이하 박 원장): 경제적 어려움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드리고 싶었다. 20여년 동안 의사로 활동하면서 치료비가 없어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어렵지 않은 치료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금전적 여유가 없어 치료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꼭 새로운 삶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최근석 원장(이하 최 원장) : 평소 환자를 살피는 의료인으로서 통증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박 원장께서 먼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눔을 실천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누렸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Q나눔을 몸소 실천한 두 분 덕분에 따스한 병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버팀병원을 소개해달라. A최 원장: 버팀병원은 척추관절 통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수준의 전문 의료를 펼치는 곳이다. 특히 우리 병원은 발전된 치료술식을 통해 관절과 척추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며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지역사회의 사랑을 다시 환원할 수 있도록 소외 계층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원장: 버팀병원은 질환으로 고통받는 지역사회 시민들이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오랜 진료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신의 임상을 발전시키고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임직원 모두가 사회에 가치 있는 나눔을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행정복지센터 등과 지속적인 업무협약을 맺어더불어 잘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Q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의 치료비를 지원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박 원장 : 남편분과 사별하신 70대 후반의 무릎 통증 여성 환자분이 생각난다. 몇 년간 무릎관절이 다 망가져 수술이 필요한 환자분이신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실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으셔서 인공관절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폐지를 줍는 일을 하시다, 무릎 통증으로 더는 일을 하시지 못하시고 그 과정에서 우울감까지 생긴 환자분을 지켜보는 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왼쪽과 오른쪽 무릎의 인공관절 수술을 진행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셔서 다시금 경제활동도 하실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곱게 차려입고 저를 찾아온 환자분께서박 원장님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저의 작은 도움이 이분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드렸다는 생각에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최 원장 : 저 역시 어깨 통증으로 내원하신 70대 초반의 여성 환자분이 생각난다. 시장에서 좌판을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 코로나19로 매출이 떨어진 상태에서 어깨 통증까지 심해지니, 그 고통의 무게가 옆에서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다. 이분은 광범위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병원을 오셨다.이를 치료하려면 대략 250만~350만원 정도의 수술비가 드는데 감당하실 치료비가 없으셨다. 매일 밤 끔찍한 통증에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던 환자분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지원을 결심했다. 치료를 모두 마친 환자분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최 원장님 덕분에 이제 고통 없이 편히 잠들 수 있고, 운동도 다시 할 수 있게 됐어요.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셨다. 이런 분들을 뵈면 정말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Q 두 원장께서 생각하는 나눔의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지. A 최 원장 : 과거 인천 부평과 양평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강좌 봉사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동안 봉사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고 살아오진 못했다. 그러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계기로 나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함께 나누는 일상 속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현재 저희 버팀병원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차츰 성장해 가면서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앞으로 이를 돌려 드릴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려 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어느 정도 제약이 따르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의료강좌 서비스 등 의료지원, 취약계층 무료 진료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겠다. 박 원장: 병원을 설립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독거노인분들을 위해 진료 봉사를 해왔고, 아프리카에도 두 차례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항상 부족하고 아쉽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료 진료와 같은 의료인의 봉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환자분을 만났을 때 약을 처방해 드리고 잠깐 진료를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병원을 세워 운영하면서 직접적인 기부를 통해 수술적인 부분이나 치료로 환자를 케어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나눔이 가진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가진 내 업(業)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앞으로도 이 업을 의료인으로서 제가 꼭 실천해야 하는 책무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겠다. 이광희기자 /사진=윤원규기자 ■ 박준수 대표원장 프로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외래교수 고려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겸임교수 가천대학교 길병원 정형외과 외래교수 전) 의산의료재단 고려병원 근무 전) 힘찬병원 정형외과 과장(슬관절 및 고관절) ■ 최근석 대표원장 프로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임상교수(견주관절) 고려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겸임교수 서울 삼성병원 자문의 전) 양평길병원 정형외과 과장 전) 힘찬병원 정형외과 과장(슬관절 및 견관절)

[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남상일 피자헛 안산성포·인천서창점주

나눔의 행복을 일깨워준 아내 덕분에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 저와 같이, 우리 사회가 나눔에 적극 동참해 더욱 밝은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안산과 인천에서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남상일 피자헛 안산성포인천서창점주(41)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277번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앞서 그의 아내 정수진씨(40)가 지난 2020년 8월, 230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바 있어, 이들은 경기도 20번째 경기 부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20대 초반 연애 시절, 지금은 아내가 된 정수진씨의 영향을 받아 버킷리스트(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로 기부를 약속한 남상일 점주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함께 꾸준히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역경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싹 틔우는 남 점주로부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나눔문화와 그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Q 부인 정수진씨에 이어 경기 277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소회는. A 아내는 따스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눔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평소 매달 벌이의 일정금액을 아프리카 신생아와 어린이 의료지원에 기부하는 등 남몰래 지속적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2020년 아내가 아너 소사이어티 이야기를 하며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큰돈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우리가 20대 초반 연애 시절 꿈꿔온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일이라며 저를 설득했다. 또래보다 일찍 경제적으로 독립해 여러 어려움을 겪은 아내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저는 흔쾌히 동의하며 응원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저에게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함께 하자고 하더라(웃음). 나눔의 행복을 배우자와 함께 누리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함께하자 그 순간 세상이 그렇게 따뜻해 보일 수가 없더라. Q 부인과 연애 시절 약속한 버킷리스트 이야기가 궁금하다. A 저와 아내는 20대 초반 안양에 있는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났다. 생계를 위해 열여덟 살 때 부터 돈을 벌기 시작한 저를 따스히 보듬어 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고 그렇게 사랑도 깊어졌다. 그러던 중 아내가 저에게 제안하더라 오빠, 우리 나중에 지금보다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자, 꼭 반드시 약속해!. 저 역시 흔쾌히 동의하며 의지를 다졌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정말 가난하고 힘겹게 보냈는데, 저와 같은 아이들이 나오지 않길 바랐던 마음이 컸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과천 선바위역 인근 판자촌에서 힘겹게 살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대야에 받아놓은 물이 꽁꽁 얼어 아예 씻을 수 없을 정도였다. 또 판자촌이니 집 열 채당 1개꼴로 외부 화장실을 공동 사용했는데 더럽고 냄새가 나니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한밤중 겨울에 용변이 마려운 날이면 몸을 덜덜 떨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선바위역 화장실로 향하곤 했다. 정말 서러웠다. 이후 아내와 약속한 지 10여년이 흘러 저는 피자헛 지점 점주가 됐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초심을 잃었을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제가 외제차, 명품시계 등을 보고 있더라. 그때 곁에서 따끔하게 저를 바로 잡아준 사람이 아내였다. Q 2020년 동전 7천7개가 든 성금을 사랑의 온도탑에 익명 기부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들었다. A 2020년 12월 안산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에 편지와 함께 익명으로 동전 7천7개 등 300여만원을 기부했는데 경기일보를 비롯해 다양한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와 깜짝 놀랐다. 당시 편지 하단에 알아도 모른 채 부탁한다는 글귀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온도탑 앞을 순찰하던 지구대 경찰분이 돈을 발견하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가져다준 것 같다. 오래전에 TV에서 옛날 동전 10원짜리를 녹여서 구리로 만들어 팔면 3~4배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10원짜리 동전이 먼 훗날 정식화폐 지위를 잃게 되면 녹여서 팔아 차익을 남겨도 범죄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서서히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10원짜리 동전이 7천여개다. 그러던 중 2020년도에 아내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나눔을 실천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10원짜리 동전을 모은 내 모습과 비교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추운 겨울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동전 7천여개 등 성금을 사랑의 온도탑에 두고 왔다. 그날 제가 두고 온 것은 성금만이 아니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던 지난날 탐욕도 그 자리에 내려 놓았다. Q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 대해 특히 더 관심이 많은데. A 무상교육이 없던 시절, 중학교 등록금이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전전긍긍한 적이 있다. 그 고통과 슬픔의 무게를 너무 잘 알기에 오늘날 저소득층 청소년들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저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살아라. 저는 유년시절 피해의식을 가진 채 살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이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됐는데. 그래서 꼭 이들에게 가난은 너희들이 잘못해서 만난 게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권하고 싶다. 당당히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제가 나누는 기부가 또 하나의 희망의 씨앗으로 작용해 이들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에게 다시 되돌려줘 나눔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Q 독자들이 나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를 부탁한다. A 우리 집에는 아내와 제가 함께 고민해 만든 가훈이 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일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이 된다이다. 저는 나눔도 이와 같다고 본다. 우리는 보통 TV를 보며, 신문을 보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지금 바로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오늘 기부를 결심했다면 단돈 1천원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당부드리고 싶다. 소액이라고 해서 내 결심이 헛된 것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심한 나눔 하나와 다른 누군가가 결심한 나눔 하나가 합쳐져 둘이 된다. 이 같은 온정이 모여 점점 무한대의 가치를 만들어내길 간절히 바라고 희망한다. 우리 부부가 나눔 더하기를 실현한 것처럼. 이광희기자 /사진=윤원규기자

[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박태훈 ㈜넥스틴 대표

“우리나라 기업이 기부에 앞장서는 나눔 문화를 전파해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하겠습니다.” 화성시 동탄 산단에 위치한 ㈜넥스틴(대표 박태훈)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결함 검사 및 계측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반도체 검사장비 전문 회사로, 지난해 10월 임직원들이 1억2천만원의 성금을 모아 기부하며 경기도 17번째 ‘나눔명문기업’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업은 ‘직원이 웃으며 출근하고 가족은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과 ‘나눔’을 동시에 실현한 박태훈 대표(57)와 직원들로부터 세계 선진국 부럽지 않은 우수한 기업문화의 비밀과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들어봤다. ■나눔명문기업이란? 사랑의열매의 고액 법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성금 기부 또는 약정(3년 이내)한 기업이 가입하는 클럽 Q 경기도 17번째 나눔명문기업이 됐다. 나눔에 동참한 계기와 직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A 대표인 저와 직원들이 이번에 기부를 실천하게 된 계기는 사실 특별한 것이 없다. 우리 기업이 오늘날 이처럼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임직원이 열심히 한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어떤 특별한 마음을 먹고 나눔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업으로서 응당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보고 나눔에 동참한 것이다. 그동안 회사가 흑자를 내면 1% 정도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지난해 약 17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1억2천만원을 기부해 당초 계획했던 1%에는 다소 미치지 못해 아쉽기도 한데, 회사가 흑자로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향후 회사가 더 안정화되면 기부액을 늘려갈 생각이다. 우리 임직원들이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하고, 현판을 회사에 내걸었을 때 모두가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가슴 한 켠에 늘 이때의 감동을 새겨두고 잊지 않겠다. Q 박태훈 대표 본인도 지난해 12월 개인 자격으로, 경기 27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A 기업이 사회 기부를 많이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마치 기업 총수가 전부 다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기업의 기부는 대표가 아닌 임직원 전체의 공으로 비치길 바랐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 자격으로 기부에 동참하고 싶어 경기 아너소사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 노인이신 어머니가 무료급식을 드시던 모습이다. 젊은 시절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우리 5남매를 키우기 위해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하신 어머니이신데 방송을 보시고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를 부르시고는 “내가 먹은 밥값은 우리 막내가 다 치를 거다”라면서 기부를 통한 사회 환원을 당부하셨다. 이와 관련해 제가 관심을 갖고 기부하는 곳이 있는데 ‘안나의 집’이다. 이곳은 불우청소년과 노숙자들을 위해 식사 및 쉼터 제공, 청년 쉐어 하우스 제공 등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의식주를 해결해준다. 개인적으로 18세 이상 소외청소년에 대한 지원에 관심이 많은데, 이들의 경우 18세 이전에는 사회복지, 보육기관 등에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시설을 떠나 사회에 홀로 서게 된다. 이럴 때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은 사회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Q ㈜넥스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A ㈜넥스틴은 반도체 소자의 회로 제작 공정에서 발생하는 미소 패턴 결함을 검출하는 웨이퍼 미소패턴 결함 검사 장비를 제조 및 판매하는 전문기술 기업이다. 2014년과 2017년에 두 차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장영실상’을 수상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의 고도화를 선도하며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직원이 웃으며 출근하고 가족은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을 사훈으로 내걸고, 함께 행복한 기업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급여는 물론 육아휴직제도 등 ‘일가정양립’에 초점을 맞춘 사내복지정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또 헬스, 어학, 여행 등의 복지를 지원하는 복지몰 제도를 운용하면서 사용되는 포인트가 직원들의 소득세로 잡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회사가 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의 해법을 찾기도 했다. 이처럼 직원이 웃으며 출근할 수 있는 사내 문화가 정착되자 직원들 스스로도 우리 가족이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개인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나눔문화를 확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Q ㈜넥스틴이 펼친 나눔문화에 대해 설명해달라. A 지난해 2월 임직원을 위한 복지차원에서 카페테리아 ‘COFFEE SPACE IMAGINE-상상이 현실로’를 만들었는데, 직원들의 뜻이 더해져 사내에 이웃돕기를 위한 모금함이 설치됐다. 그렇게 나눔이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보고자 시작한 이 공간에서 모인 모금함을 열었을 때 자발적으로 모인 기부금이 2천만원 정도 됐다. 우리 회사는 기부가 일회성이나, 선심성, 이벤트성이 아닌 모두가 일상에서 쉽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이를 위해 회사와 임직원이 함께 추구하는 사회공헌의 방향이다. 회사의 사회공헌활동이 우리 이웃들에게 지속가능한 지원사업으로 지원될 수 있고, 사회복지이슈도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나눔의 선순환이라 생각한다. 직원들의 뜨거운 성원이 이어지며 성공적인 모금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Q 독자들이 나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한다. A 기부란 것은 첫 시작이 어려운 것이지, 시작하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며 우리 국민은 누구나 기부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본다. 우리 임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아 커다란 성금이 되었듯이, 한명 한명의 작은 나눔은 큰 나눔으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소액기부에 대한 시스템도 활성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부 자체가 성금만 전달하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도록 기부 이후에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청소년과 연결될 수 있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한다. 이들과 오랜 기간 행복한 인연을 맺어 올바른 청년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이렇듯 새해에는 나눔에 대한 생각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이광희기자 / 사진=윤원규기자 ■ 박태훈 대표 프로필 - 現 ㈜넥스틴 대표이사 - 前 ㈜오로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 前 KLA-Tencor 이사 - 前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대리 - 서울대 대학원 화학과 졸업 - 경문고 졸업

[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길운생 ㈜성풍 대표

전쟁으로 모두가 배곯던 시절, 이웃에 자신의 음식을 건넨 어머니의 나눔처럼 작은 선행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욱 따스해지길 희망합니다. 여주에서 농기계를 판매하는 길운생 대동공업여주대리점 ㈜성풍 대표(75)는 올해 7월 경기도 26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3년 연속 판매왕을 차지하고, 올해 역시 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그는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겸손할 줄 아는 마음과 이웃을 배려하는 나눔 정신으로 더 큰 존경을 받고 있다. 625 전쟁 후 모두가 배를 곯던 시절, 잔치 허드렛일을 도와 받은 음식을 가난한 이웃에 나누어준 어머니를 보고 자라 대를 이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운생 대표를 만나 나눔의 미학과 행복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 아너 소사이어티란? 사랑의열매의 고액 개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성금 기부 또는 약정(5년 이내)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클럽 Q. 올해 7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당시 소회를 전해달라 A. 저의 오랜 동반자인 아내와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에 참석해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날 현장에서 75년간 살아온 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어렵던 1950년대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나눔철학을 가르친 어머니와 고교시절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맞았던 순간 등이 떠올랐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제가 받았던 은혜와 그 고마움을 갚고자 실천한 나눔을 통해 얻게 된 행복이 온전히 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더라. 사랑하는 가족과 회사 직원들, 다양한 지역사회 분들이 함께했다. 특히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한옥수 여사가 제 아내인데, 언제나 제 곁에서 저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해준 덕분에 오늘날 이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Q. 나눔철학을 전해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달라. A. 625 전쟁(1950~1953년)이 끝난 후인 1958년. 정확히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때 일이다. 전쟁 후라 모두가 배를 굶주리며 힘들어할 때였다. 그때 하루는 어머님이 마을의 큰 잔치를 치르는 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시고 품삯으로 양손 가득 음식을 얻어오셨는데 집에 오실 때 보니 음식들이 처음의 반의반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마을 어귀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온 것이다. 저는 어린 마음에 우리 가족도 굶주리고 배고픈데 왜 어머니가 일하고 받아온 음식을 내어 주느냐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포근히 저를 안아주시면서 우리에겐 잔치에서 받은 음식이 없어도 죽을 쒀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있지만, 저 아이들은 이 음식이 없으면 당장 죽을 수 있지 않겠니. 여유가 있는 우리가 먹을 것을 양보하자고 달래셨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보고 자란 저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통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나눔을 다짐한 일생일대 사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A. 고교 학창시절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낮에는 회사 잔심부름을 하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밤에는 덕수상고 야간반을 다니다 보니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고 결국 영양 불균형으로 결핵에 걸렸다. 그래서 영등포 보건소를 방문했는데 저를 가엾게 여긴 보건소 한 간호사께서 저에게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영양제를 남몰래 챙겨 먹이셨다. 이 같은 주변의 도움으로 고교 휴학 1년 만에 몸이 완쾌됐고, 그 덕분에 졸업 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 취업하고 나중에 성균관대도 입학하게 됐다. 당시 도움이 없었다면 세상을 등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감사했다. 그때부터 저는 수입이 생기면 일정 금액을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후 지역사회 난치병 아동을 위한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Q. 원칙과 신의를 지키는 사업가로 유명하다. 인생철학을 소개해달라. A.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저의 인생철학은 정직이다. 정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쌓인다. 그런 측면에서 탈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세금을 많이 부과받은 사업자가 있다면 그 사업체는 매출이 높고 운영이 잘 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사업이 잘되는 것이 대표인 자신이 잘나서일까. 절대 아니다. 많은 분의 도움이 동반됐기에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도움에는 직원들과 지역사회가 반드시 포함된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 조금씩 환원해야 한다. 저 역시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틈이 날 때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나, 복지장학재단 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나눔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기부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면서 지금은 널리 알리려 한다. 나눔은 주변에 전파된다. 기부를 결심했다면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시길 조언 드린다. Q.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사회를 위해 5천만원을 기부하셨다. A. 제 일생의 경험을 통틀어서도 코로나19는 전쟁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온 국민이 생명과 직결되는 마스크가 부족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마스크 한 장에 4천~5천원으로 치솟았는데 이마저도 가계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5천만원이라는 성금을 기부하게 됐다. 5천만원이 절대 큰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이 사회에는 큰 빛과 희망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정말 값진 기부였다. Q. 코로나19 장기화로 기부 문화가 얼어버릴까 염려되는데. A. 제가 성균관대 총동문회 부회장 등을 맡게 되면서 동문과 소통하는 일이 잦은데 그때마다 꼭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눔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행복이 되지만, 나눔이 선순환 돼 우리 사회에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저 역시 더 많은 기부를 한 후부터 개인적으로 사업체가 최고 매출을 달성하는 등 더 큰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게 돌아온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가 예전에 나눔을 실천하며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이렇게 주변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는 건 언제가 너희가 나중에 더 큰 행복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그리고 이 믿음이 퍼져 나가면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워질 거야 그 옛날 먹을 것을 더 달라며 어머니께 울던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나눔의 의미처럼 작은 실천과 행동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길 간절히 희망한다. 이광희기자 /사진=윤원규기자 ■ 길운생 아너 프로필 - 現 대동여주대리점 ㈜성풍 대표이사 - 現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 성균관대 경영행정대학원 졸업 - 덕수상고 졸업

[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최은희 오름수학 원장

오늘 제가 전한 소소한 나눔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꽃씨로 전달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성남 분당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최은희 오름수학 원장(51)은 2014년 경기도 5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지난 2019년 7월 약정된 1억원을 모두 완납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통장에 6만원씩 입금해 300만원을 채운 통장 34개 는 그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모임에 나가 화려한 명품백을 자랑하는 것보다 주변의 이웃을 도왔던 사례로 정 겹게 이야기꽃을 피울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최 원장을 만나 나눔의 가치와 행복의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Q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결심한 이유는. A 가난했던 유년기를 극복한 저는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성남 분당에서 학생들을 명문대에 턱턱 입학시키는 나름 입소문 난 수학강사로 성공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압박붕대를 두르고 수업을 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우연히 신문에 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접하게 됐다. 그 순간 어려웠던 시절, 두 명의 은사님께 받았던 은혜를 언제가 남을 돕는 일로 갚고자 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이거다 무릎을 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마음속 오래 붙잡고만 있던 나눔을 실천한 뜻깊은 날이다. Q 두 명의 은사님 이야기를 전해달라. A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급격히 기울었다. 서울에 살던 가족 모두가 전북 부안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인 이덕주 선생님이 첫 번째 은사님이다. 부안에서 폐허나 다름없는 허름한 초가집에서 살다 보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욕도 의지도 없었다. 그때 이덕주 선생님께서 저를 잡아주셨다. 공부를 해야 무시당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 한번 해보자 이 같은 격려에 다시 힘을 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학업을 이어가게 됐다. 두 번째 은사님은 재수 시절 학원 강사로 만난 김윤문 선생님이다. 서울로 상경해 낮에는 공장 보조일 등 일을 하고, 밤에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는데 돈이 없다 보니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내가 먹는 게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을 때다. 그때 김윤문 선생님께서 단과 수업 수강증을 끊어주셨고 그 덕분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찾아뵙는데 정작 선생님께서는 기억을 못하시더라(웃음). 그때 더 절실히 깨달았다. 작은 선행 하나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될 수 있겠구나. Q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후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A 사실 기부를 결심했을 당시 학원 경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반대할 것으로 생각해 기부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이듬해인 2015년 남편이 학원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명패가 걸린 것을 보고 알게 됐다. 남편은 당신이 결정한 일이니까 알아서 해라고 담담히 말했다. 제 결정에 대한 힐난이 아닌 믿음의 표현이었다. 남편과 대학시절 사귀어 결혼까지 골인했는데 옳다고 믿으면, 그 길을 향해 소신껏 나아가는 제 신념을 알고 있기에 저의 판단을 믿었던 것 같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틸 정도로 알뜰하게 살았던 남편과 두 아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사실 기부라는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가족의 의사를 뒤로할 수는 없다. 남편과 아이들이 저의 결정을 믿고 지지해준 덕분에 무사히 완납할 수 있었다. 기부액 완납 후 가족에게 너무 고마워 에어컨을 선물로 들여놨다(웃음). Q 학원 아이들이 자연스레 원장님의 나눔 철학을 배울 것 같은데. A 아이들이 학습 목표를 달성해 얻는 성취감을 자연스레 나눔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학습 의욕이 부족한 당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하다, 방학 때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매일 함께 도서관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내가 도서관을 함께 가서 너를 도와줄게, 너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제안했는데, 아이가 동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약속으로 방학 때마다, 아이와 도서관을 찾았고 그렇게 함께 도서관을 간 날이면 아이는 하루 1천원씩 기부를 했다. 그 약속이 아이가 고3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된 것은 물론 인성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랐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기부금을 받는 형태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에 기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기부 문화를 접한 아이들이 나눔을 통해 행복이 곱하기, 무한대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거로 생각한다. Q 코로나19로 기부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데. A 코로나19 여파로 나눔 문화 역시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기부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가령 1년에 100만원을 기부하던 사람이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 사정에도 똑같이 100만원을 하려니까 부담을 느낀다. 상황이 어려우면 10분의 1로 줄여도 된다. 제가 가난으로 힘들었던 당시 누군가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에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위안을 받았기에 잘 안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은 따뜻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자신이 베푼 선행을 주변에 적극 알리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저 같은 경우 모임 자리에 나가면 명품백을 자랑하는 것보다, 우리 주변의 힘든 이웃을 도왔다는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 더 즐겁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작은 손길이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꼭 실행하셨으면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인 정성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큰 사랑으로 건네져 우리 사회에 더욱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 거다. 이광희 기자 / 사진=윤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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