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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자! 미래유산] ⑩여주 ‘폐금광’, 금덩이가 넘쳐났던 황금광 시대의 흔적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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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시 금사면 소유산에 위치한 '금광 갱도' 내부.
▲ 여주시 금사면 소유산에 위치한 '금광 갱도' 내부.

여러분은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시나요. 누군가는 ‘미래유산’으로 보고, 누군가는 ‘흉물’로 볼 테죠. 견해가 서로 다른 까닭에, 그동안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존이냐, 철거냐’ 기로에 서서 온갖 수난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개중에 문화재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소실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무하게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꼭 지켜야 할 미래유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1876년(개항기)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발굴해 보존 대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며. 편집자주

 

<지키자! 미래유산> 열 번째는 금 열풍이 대단했던 여주시 금사면의 오래된 산업유산 ‘폐금광’에 대해 상·하편으로 나눠 조명한다. 상편에서 다룬 소유리 '팔보광산' 갱도에 이어 하편은 상호리 '여수금산'의 갱도를 단독 공개한다.  ☞ 상편 기사 보기 

 

(下) 상호리 여수금산


◆ 소유리-상호리 잇는 갱도...아이들 ‘통학길’로 사용

▲ 1. '여수금산' 금광 갱도는 현재 상호리 주민 B씨의 개인 주택 내부 지하실에 있다. 2. 상호리 주민 개인 주택 내부 지하실 입구. 3. 갱도로 내려가는 지하실 계단. 4. 소유리 아이들이 상호리까지 통학했던 갱도 내부.
▲ 1. '여수금산' 금광 갱도는 현재 상호리 주민 B씨의 개인 주택 내부 지하실에 있다. 2. 상호리 주민 개인 주택 내부 지하실 입구. 3. 갱도로 내려가는 지하실 계단. 4. 소유리 아이들이 상호리까지 통학했던 갱도 내부.

소유리 위쪽에는 산이 높고 지형이 험한 마을 상호리가 있다. 먼 옛날 호랑이가 많이 살아 '범실'이라 불렸는데, 사실 이 마을은 호랑이보다 금이 더 넘쳐났다고 한다. 금을 채취하던 광산은 ‘여수금산’이라 불린다.

상호리 여수금산으로 통하는 갱도 위치는 소유리 팔보광산의 갱도보다 소문이 방대해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찰 뒤편에 있다더라”, “축사 뒤 산등성 밑으로 가면 된다” 등등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준 방향대로 숲을 헤집고 다녔지만, 입구가 막힌 갱도로 추정되는 곳만 발견될 뿐 멀쩡한 갱도를 찾는데 번번히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갱도를 직접 가봤다는 금사면 토박이 주민 A씨를 만나 여수금산의 갱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갱도 입구가 상호리 주민 B씨의 개인 주택 내부 지하실에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 갱도가 있는 터를 구매한 B씨가 갱도 입구를 막지 않고 집을 지어 올린 탓에 이 같은 모습이 됐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위치를 잘 모르게 된 이유다. 보존이 되어 다행이지만 이제는 집 주인 외에 그 누구도 자유롭게 갱도를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집 주인 B씨의 허락을 받아 집안으로 들어가니 1층 우측에 바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부터는 전기를 연결해 놓지 않아 내려갈수록 깜깜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해 계단을 꽤 오래 내려가니 굴이 나왔다. 소유리 굴보다 훨씬 크고 넓다. 입구부터 바닥에 물이 고여 있고, 갈수록 물이 차올라 안으로 깊게 들어갈 순 없었다.

▲ 1. 상호리 개인 주택에 위치한 갱도에서 소유리로 연결된 갱도를 금사면 토박이 주민 A씨가 안내하고 있다. 2. 소유리 막골 고개에 위치한 이 갱도는 농부들이 농산물 저장시설로 이용하느라 철문을 달아놨다. 3. 상호리로 넘어가는 갱도 입구. 4. 굴 안에는 나무판자 등 농부들이 이용한 흔적이 있다.
▲ 1. 상호리 개인 주택에 위치한 갱도에서 소유리로 연결된 갱도를 금사면 토박이 주민 A씨가 안내하고 있다. 2. 소유리 막골 고개에 위치한 이 갱도는 농부들이 농산물 저장시설로 이용하느라 철문을 달아놨다. 3. 상호리로 넘어가는 갱도 입구. 4. 굴 안에는 나무판자 등 농부들이 이용한 흔적이 있다.

<금사면지>에 따르면 이 굴은 250m 길이로 산 너머 소유리로 연결된다. 주민 A 씨는 “지금은 중간에 막혔지만 그전까지는 이 굴을 통해 건너편 소유리 아이들이 상호리로 통학을 했다”고 증언했다. 도로가 없던 시절엔 이 갱도가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주민 A씨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간 갱도의 끝은 실제로 소유리 막골(일제강점기 막을 치고 광부들이 살았던 광산촌) 고개에 남아 있었다.

입구에 철문을 달아 막아놨지만 손쉽게 열린다. 지금도 여름철만 되면 근처에 거주하는 농부들이 농산물 저장시설로 이용하며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갱도 앞은 밭이고, 굴 안에 들어가면 농산물을 쌓아놓는 나무판자가 벽에 세워져 있어 그 흔적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여수금산은 1865년 영남 지방에서 온 사금부 김모씨가 찾아와 약수가 솟는 암벽 사이에서 많은 황금을 발견하면서 금광 채굴이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때 전국 3위의 채굴 실적을 올릴 정도로 매우 큰 규모였다. 이 마을은 약 300여 호의 광산촌으로 성황을 이루다가 1967년경 폐광됐다.

 

◆ 금이 넘쳤던 역사의 한 페이지, 금방아와 전기 발전소

▲ 상호리에 있는 '알로하가든' 카페 부지는 오래전 금방아(금을 빻던 곳)와 전기 발전소가 있던 자리다.
▲ 상호리에 있는 '알로하가든' 카페 부지는 오래전 금방아(금을 빻던 곳)와 전기 발전소가 있던 자리다.

상호리 갱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알로하가든’ 이라는 카페가 나온다. 여기도 주목해야 될 것이 카페 부지가 금방아(금을 빻던 곳)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곳 주인 권혁진(79)씨에 의하면 카페 건물 왼쪽에 있는 3층 높이의 원형 건물 자리에서 금제련을 했다.

권 씨는 “3층에서부터 금방아가 돌아갔다. 맨 위층에서 굵고 큰 금덩이를 작게 부수어 2층으로 보내고, 다시 기계로 잘게 빻아 1층으로 보낸 다음 수은을 뿌려 금을 채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금이 넘쳐나고 굉장했다. 폐광된 건 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굴이 깊게 들어갈수록 채광비가 많이 들고, 그 시기 수입까지 시작하며 단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금이 있다”고 주장했다.

광산 덕에 1960년대부터 이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고, 전기 발전소는 카페 앞마당에 있었다. 권 씨는 “마을에 금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는 광부가 천여 명에 이르렀고, 이 광산들의 존재로 금사면 재정은 다른 지역보다 여유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여수시사>에는 권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53년 ‘전국 주요공장 광산명부’에 의하면 여주에 있는 광산의 매장량이 약 4만 톤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다. 그 시절 황금 열풍이 불었던 것도, 마을이 번창하게 된 것도 그만큼 매장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 학계 및 전문가 제언


◆ 등록문화재 및 문화관광자원 활용 가치 높아

▲ 소유리 마을이장 박수헌씨가 방치되고 있는 갱도안에서 금사면 금광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 소유리 마을이장 박수헌씨가 방치되고 있는 갱도안에서 금사면 금광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산 전체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여러 개의 굴 입구가 있는 금사면 폐금광. 긴 세월에 자연적으로 무너져 닫힌 갱도처럼 남아있는 갱도들도 언제 훼손될지 모른다.

주민들은 방치되고 있는 금사면 금광 갱도를 여주시에서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시켜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소유리 마을이장 박수헌 씨는 “금광이 있는 산을 포함해 소유리 땅 대부분 밀양 박씨 종중 소유다. 20년 전부터 미등기 상태로 거주했던 이들이 거의 다 떠나고 마을의 발전이 낙후됐다. 여주시에서 나서서 광명동굴처럼 관광자원 될 수 있도록 힘써줘야 마을이 되살아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 소유산 곳곳에는 세월이 지나 흙과 돌이 무너져 내려 레일만 남은 채 입구가 닫힌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들이 있다. 사라진 갱도처럼 남아있는 팔보광산·여수금산 갱도들도 언제 훼손될지 모른다.
▲ 소유산 곳곳에는 세월이 지나 흙과 돌이 무너져 내려 레일만 남은 채 입구가 닫힌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들이 있다. 사라진 갱도처럼 남아있는 팔보광산·여수금산 갱도들도 언제 훼손될지 모른다.

다행히 학계와 문화계는 해당 굴이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커 등록문화재는 물론 문화관광자원 활용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 2004년 여주 금광을 조사한 조용훈 한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남아있는 갱도들은 여주의 금 채굴에 대한 상징적 흔적으로, 역사성과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어 등록문화재 가치가 충분한 문화유산”이라며 “여주시에서 의지를 갖고 용역을 의뢰해 실측 조사 및 정비부터 하고,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게 먼저다. 지정 후 예산을 확보해 금광 전시관 건립 등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지역 관광 측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날 동행한 안동희 여주문화원 사무국장 역시 “갱도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보니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 든다”며 “보존가치가 충분해 보이고, 여주 금광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여주 환경부와 실태조사를 계획해 보겠다”고 전했다.

글·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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