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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자! 미래유산] ④연천 ‘한탄철교’, 일제 수탈과 분단의 아픔 흐르는 철도유적

- 서울~연천 잇는 전철화 탓 레일 해체 
- “철거 막아주세요” 군민들 국민청원
- 전문가 “문화유산 지켜 관광자원 활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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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군 초성리역과 한탄강역 사이에 놓인 ‘한탄철교'.

여러분은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시나요. 누군가는 ‘미래유산’으로 보고, 누군가는 ‘흉물’로 볼 테죠. 견해가 서로 다른 까닭에, 그동안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존이냐, 철거냐’ 기로에 서서 온갖 수난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개중에 문화재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소실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무하게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꼭 지켜야 할 미래유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1876년(개항기)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발굴해 보존 대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며.

편집자주

 

남과 북의 접경지대인 연천군에는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의 상징물인 철도유적이 존재한다. 한탄철교. 무심하게 보면 그저 폐철교에 불과하지만, 연천 군민에겐 100년이 넘는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철교를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고, 완성된 후엔 산업 물자를 수탈당하는 수송로로 쓰였다. 피난시절엔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오가며 동고동락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철교가 이제는 철거 위기에 놓였다. <지키자! 미래유산> 네 번째는 근대문화유산 한탄철교를 재조명한다.

 

일제 물자 수탈의 흔적...108년 켜켜이 쌓인 역사

▲ 3년 전 경원선 통근열차가 지나다녔던 한탄철교 상단 철로에는 레일과 침목이 모두 해체되고 폐쇄되어 황량한 모습이다.

경원선 초성리역과 한탄강역 사이에 놓인 한탄철교’. 지난 5일 찾아간 이곳은 폐쇄되어 황량한 모습이었다. 3년 전만 해도 통근열차가 지나다녔는데 이제는 겨울 철새들만 드나들고 있으니 씁쓸해진다.

38선을 알리는 돌비석을 뒤로 한 채 철교 끄트머리에 서서 바라보니 레일과 침목이 모두 해체된 상태였다. 사람도, 기차도 더 이상 지날 수 없는 지금의 철교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못다한 이야기를 그저 풀어놓을 뿐이다.

한탄철교는 일제 강점기인 1914816월 완공됐다. 길이 244m, 너비 4.5m, 중력식 콘크리트 교각 9개로 이뤄졌다. 중력식이란 교각 자체의 무게로 강물을 지탱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 철교는 일본인들의 핍박 속에 노동력을 착취당한 연천 지역 주민들의 희생으로 탄생했다.

연천군지편찬위원회가 2000년 발행한 향토지 <연천군지>에 따르면 일제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후 기존 철도노선의 개량과 동시에 새로운 철도선을 급격히 부설해 나갔다. 조선의 많은 산업 물자를 일본 본국으로 실어나르는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다.

특히 연천군은 교통로 상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동북 지역을 연결하는 분기로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나 지형적으로 본로보다 유리한 탓에 일제는 경원선 및 철도 부설을 거침없이 확장해나갔다. 경원선이 지나는 한탄철교도 이때 설치됐다. 이 과정에서 경원선이 지나는 연천 지역의 주민들은 끊임없이 노동력을 징발당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철교와 경원선은 서울과 원산을 오가면서 수탈당한 물자를 실어나르는 주요 기간시설이 됐다. 연천군에서 재배한 쌀, 광산에서 산출된 금과 은도 철교를 따라 옮겨졌다. 일제로부터 항시 주목을 받은 수송로였다.

 

해방 후 물물 교환위해 상인들이 드나든 철교

▲ 전곡리 주민 이준오씨(왼쪽)와 한귀동씨가 해방 이후 한탄철교를 통해 물물 교환 및 피난민이 건너왔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19458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 후 연천군은 청산면, 백학면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38선 이북에 위치하고 있었고, 소련군이 진주했다. 소련군은 공산당 조직을 강화하고, 인민위원회를 정비했다. 이후 1947년 소련군의 합의에 의해 38선상에서 남북교역이 이뤄졌다. 연천 상인들은 북어, 오징어, 인삼 등을 가지고 와 남한의 의약품, 전기용품, 광목 등과 물물 교환했다. 이때 한탄철교로 상인들이 지나다니고 피난민이 건너왔다는 것을 전곡리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들었다.

이준오(90)씨는 "해방 당시에 이 철길(한탄철교)로 사람이 왔다 갔다 했고, 38선이 생겼어도 사람을 막지 않았어. 그냥 드나들었다고. 서로 담배도 사 오고 약도 사다 주고 했었어. 전쟁 일어나기 전에는 남한으로 피난 오는 사람도 있었지. 거기(철교)를 밤에 몰래 건너기도 하고, 한탄강을 건너야 되니까 다리를 지키는 사람을 매수해가지고 넘어왔어"라며 생생하게 기억했다.

한귀동(87)씨는 "거기서(한탄철교) 물물교환했다는 얘기 들었어. 그때는 북한 사람 남한 사람 왕래가 막 되니까 그런 걸 했다는 거야. 북에서는 흐물흐물한 동태 말린 거로 여기서는 옷가지나 신발로 교환을 해서 왔다 갔다 한 거지"라고 했다.

 

6·25전쟁 당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

▲ 한탄철교 교각에는 총탄 자국 등 6.25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다. 

한국전쟁 개전 당시 인민군은 경원선을 따라 남침했다. T-34 전차를 앞세운 135천여 명의 병력이었다. 그중 인민군 16연대는 전곡리에서 한탄강을 건너 38선 남쪽 청산면 초성리를 점령했다.

1950108일 초성리에 주둔 중인 국군 8사단은 전곡리로 진입하며 다시 인민군에 맞섰다. 당시 인민군 27연대가 있었으나, 8사단에 밀려 북쪽으로 계속 후퇴했다. 전곡리와 초성리 사이 한탄강을 건너기 위해 지나야 했던 한탄철교는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던 것이다.

8사단은 계속 북상해 109일에는 연천면을 장악했다.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소속되어 남한의 통치권 밖에 있던 38선 이북 연천 지역에 국군이 처음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북 분단의 상징물이 된 한탄철교 교각에는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철로 밑으로 피했던 주민들을 향해 쏜 총탄 자국은 대부분 보수가 이뤄졌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포탄 흔적이 있다.

휴전 후에는 많은 육교가 파괴된 탓에 사람들은 한탄철교로 다녀야만 했다. 한귀동(87)씨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휴전되고 얼마 안 있다가 난 후생 사업을 다녔어. 25중대라고 의정부 육군단 헌병대에 파견 나가 있었지. 그때 여기(연천) 와서 군용차에 나무 싣고 가는데 육교가 없잖아. 다 끊겨서 한탄철교로 왔다고.”

 

전철 연장 공사로 철거 위기...주민들 보존운동 전개

▲ 1. 38선 돌비석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한탄철교 선로 모습. 2. 철로 옆에는 해체한 침목이 쌓여있다. 3~4. 철교 상단 선로에는 철거 후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볼트 등 자재가 나뒹군 채 방치되고 있다. 

108년 유구한 세월 속 한탄철교는 한적한 시골 동네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 왔다. 그런 철교가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국가철도공단이 서울과 연천을 잇는 경원선 전철 연장공사를 시행하면서 폐선(한탄강역) 구간을 철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탄강역에 위치한 한탄철교의 레일과 침목은 이미 3나 해체된 상태다.

다행히 한탄철교의 소중함을 알아본 주민들의 반발로 철거 작업은 잠시 중단됐다. 연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온골라이온스클럽 회원 등 일부 군민이 철교 보존운동을 전개하며 공론화에 앞장섰다.

▲ 현미경 온골라이온스클럽 회장(위)이 철거된 레일을 가리키며 한탄철교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규식 전 연천군의원(아래)이 철교에 나뒹구는 자재를 주워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현미경 온골라이온스클럽 회장은 일제강점기에 신설된 한탄강 철교는 6·25전쟁, 남북분단 등 역사적 가치가 풍부하게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적이다. 전쟁 시 선조들이 한탄강 철교를 넘어 북에서 남으로 피난했고 지금도 연천에 터를 잡고 살고 계신다고 밝혔다.

이런 가치를 알지 못한 채, 쓸모가 없어졌다고 선로를 철거하는 철도 당국의 한심한 역사관이 안타깝다. 심지어 철거하면서 교량 볼트도 마구잡이 떨어트려 놓은 채 제대로 수거도 안 해갔다. 100년 넘은 역사적 유물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뼈아픈 역사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되새기기 위해 관광자원이나 후손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 회장은 지난달 24일 청와대 게시판에도 철거를 막아달라는 청원을 올리고, 주민들과 함께 서명운동까지 병행하고 있다. 청원글에는 5일 기준 520여 명이 동의한 상태고, 서명운동에는 1천여 명의 주민이 동참했다.

왕규식 전 연천군의원도 “38선에 위치한 철교는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라 그 의미가 더욱 깊다며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 한탄강 철교로 가는 길목에 나붙은 펼침막.

전문가 역시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해도 될 만큼 미래세대에 남길 만한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박영석 명지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100년 이상 운행해온 철교로서 철도역사와 근대 교통사를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역사성을 갖고 있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으로 남겨두면서 연천군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연천군은 학계의 평가와 주민 반대 여론이 고조되자 보존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관련 기관과의 협의, 철도 유휴부지 활용에 대한 공단 심사 절차, 보수 및 보존 비용 문제, 세부적인 활용방안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할 전망이다.

국가철도공단 측은 한탄철교 구조물과 관련이 없는 궤도 레일, 침목만 다른 공사에 재사용하기 위해 철거한 것이라며 철교 보존에 대해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교량 활용계획 등을 연천군과 적극 협조하여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주민의 힘으로 당장의 철거 위기는 모면한 한탄철교. 이제 해체된 철로를 어떻게 살려낼지,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지 등의 산적한 숙제가 남았다.

·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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