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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입시 경쟁·강압적 훈육 ‘스트레스'...학생들 집단정서 소름돋는 허구로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 온 日 교사들...자국 이야기 전하며 학교괴담 정착
또래 심리, 시대 따라 반복되고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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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잡초가 삼킨 곳, 길 잃은 새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은 성한데 없는 복도를 스산하게 비췄다. 이곳은 별일 없이 무서운 곳. 인천 ‘삼산국민학교 송광분교’다. 조주현기자

전국 학교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지는 유명 괴담들이 있다.

비오는 새벽이면 칼자루를 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라던지, 밤 12시에 혼자 화장실에 있으면 보게 되는 천장 귀신이라던지, 큰 틀에서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소위 ‘책장 넘기는 동상’, ‘빨간 휴지·파란 휴지’로 일컬어지는 이들 괴담의 뿌리는 모두 일본과 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온 일본인 교사들이 자국의 이야기를 전했던 게 지금의 학교 괴담으로 정착한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괴담은 한국형으로 새롭게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건물이 지어진 터가 공동묘지 또는 정신병원이었다거나, 학교 안 100대 비밀을 알게 되면 죽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대로 비슷한 괴담을 공유하고, 대학교는 대학교대로 새로운 괴담을 만들어냈다. 학교급별 다른 괴담이 형성됐지만 전국적으로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학교 괴담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과거 바닥으로 떨어졌던 학생 인권과 강압적 훈육 시스템, 또 해마다 치열해지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열풍 등이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연결돼, 그들이 학교 괴담 속에 담겨 떠돌게 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청소년들만의 또래·집단 의식이 시대마다의 학교 괴담에 깃들어 있는 만큼, 학교 괴담의 변화에 따라 학생층의 사회문화상도 어떻게 달려져왔는지 알 수 있다.

G스토리팀은 ‘무서운 학교’의 이야기를 찾아 인천으로 향했다. 이번 특집은 경기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생동감을 더한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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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잡초가 삼킨 곳, 길 잃은 새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은 성한데 없는 복도를 스산하게 비췄다. 이곳은 별일 없이 무서운 곳. 인천 ‘삼산국민학교 송광분교’다. 조주현기자

‘폐교=무섭다’… 공포의 다른 모습은 ‘경쟁’

G스토리 학교괴담 ② 일본發 학교 괴담 속 인천 ‘송광분교’

화창함을 넘어 쾌청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느릿느릿 떠다니는 사이로 산새들이 지저귀었다. 고즈넉한 풍경 아래 넓게 깔린 들판에는 풀벌레들이 선선한 바람을 만끽하며 뛰놀았다. 한없이 여유로운 이곳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상산면 상리,1990년 폐교한 ‘삼산국민학교 송광분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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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잡초가 삼킨 곳, 길 잃은 새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은 성한데 없는 복도를 스산하게 비췄다. 이곳은 별일 없이 무서운 곳. 인천 ‘삼산국민학교 송광분교’다. 조주현기자

■ ‘소규모학교 통폐합’에 문 닫은 학교…생기 없이 스산함만

석모도 깊숙히 자리한 송광분교를 찾았다. 교문을 지나 교정(校庭)에 들어섰을 때 “대낮인데 왜이렇게 무섭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수풀에 가려진 학교 건물이 모습을 채 드러내기도 전에 우선 걸음부터 막혔다. 가슴 높이까지 100여㎝ 이상 자라난 무성한 잡초들이, 발 밑 진흙 범벅의 축축한 땅들이, 한 발 한 발의 전진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맑고 쨍쨍한 날 질척이는 땅이라니. 애써 이상한 마음을 누르고 학교에 다가갔다. 특유의 음산함이 뿜어져 나왔다. 군데군데 깨진 유리창, 녹슬대로 녹슬어 가루가 떨어지는 철 자물쇠, 거미줄 덮인 손잡이, 바닥에 널린 새·개구리 사체… 생기 없는 모습들이 눈에 강하게 들어왔다.

이곳 삼산국민학교 송광분교는 교육부가 1982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사라진 학교다. 인천시 강화교육지원청은 2012년 8월께 송광분교를 포함한 4개의 폐교를 매각했고 현재는 이곳 역시 사유지가 됐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건물이 남아있긴 하나 별다른 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웃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송광분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교무실로 추측되는 공간이 있는 1층, 교실들로만 꾸려진 2층, 옥상이 위치한 3층. 본관 밖에는 아궁이·창고·변소 등이 있는 별관이 위치하는 구조였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살금살금 밟을 때마다 텁텁한 흙 먼지가 나풀댔다. 때때로 밖에서 개와 닭이 울부짖어 스산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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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교무실·화장실, 공간마다 세월의 흔적 가득

1층이다. 정문을 마주봤을 때 가장 오른쪽에 있던 구석진 교실로 향했다. 복도에 분홍색 리본이 떨어져 있었다. 칠판에는 “I'M LOST MY BOOK(내 책을 잃어버렸다)”, “1979/8/28”, “안뇽” 등의 글들이 쓰여 있었는데, 특히 “윤OO! 교장 할아버지 감사해요”란 문구가 인상깊다. 윤 교장의 부임 시기가 1970년대 혹은 1980년대로 추정되는 만큼, 폐교 이전의 ‘감사 인사’가 2022년까지 남아있던 셈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 교실에는 ‘일일 업무계획’, ‘시간표’ 등으로 보아 교무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었다. 주번 활동은 오전 8시부터 8시40분까지 진행하고, 교재 연구는 오후 3시30분부터 5시까지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게시판에 쓰여 있었다. 이 역시 최소 33년 전의 계획일 테다.

이어 2층이다. 계단에 오르자마자 분필로 '화장실'이라 쓰인 공간이 나왔다. 별다른 문(門)은 없었다. 정면에 설치된 거울, 천장 뚫린 변기 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별관의 ‘변소’는 푸세식인데 이곳(본관)의 ‘화장실’은 수세식인 걸 보면 아마 현대화 작업이 일부 이뤄진 듯 했다.

전반적으로 1층은 바닥이 몽땅 무너지고 칠판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을 잔뜩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반면 2층은 딱히 큰 하자는 없었지만 벽면에 붙은 ‘간첩 좌경용공사범 ※민중폭력혁명선동 ※불온유인물제작…’ 포스터나, 복도에 버려진 나무 재질 ‘순찰함’ 등을 통해 지나온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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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담이 만든 ‘학교=무섭다’는 인식…초·중·고·대마다 엇비슷한 내용 공유

별 일 없는 송광분교가 무섭게 느껴지는 건 비단 ‘폐교라서’만은 아니다. 교실·화장실·운동장 등 각각의 장소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온 ‘학교 괴담’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 학교 괴담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부 다른 형태를 갖고 있지만, 학교급별로는 공통적인 에피소드들이 생산·유포·공유되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초등학교 안의 대표적인 학교 괴담으로는 ‘빨간 휴지, 파란 휴지’나 ‘7대(혹은 100대) 불가사의’ 등이 있다. 중학교에는 전교 2등이 전교 1등을 밀었다는 데서 비롯된 ‘콩콩 귀신’이나 ‘분신사바’, ‘빨간 마스크’, 음악실에서 밤 늦게 홀로 남아 춤을 추는 여자 등의 일화가 있다. 또 고등학교에는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 입장에서’, ‘야간자율학습 도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고, 대학교에는 연애 또는 범죄 및 사건·사고와 연관된 이야기들이 많다.

그 외 비오는 날이면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운동장의 (이순신·세종대왕·유관순…) 동상이라던지, 화장실 바닥 또는 천장을 기어다니며 불쑥 고개나 손을 내미는 사람이라던지, 무덤을 없애고 지은 학교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던지 등 괴담이 지역·세대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한 번 쯤 퍼졌던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경기도 학교에도 유명한 괴담이 있다.

먼저 안산 A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떠도는 얘기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교재를 학교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야밤에 다시 돌아왔다. 그때 누군가 창문에서 학생을 보더니 이윽고 목·어깨·팔·다리까지 온몸의 관절을 모두 기이하게 꺾으면서 계단을 내려와 빠르게 쫓아왔다고 한다. ‘A고교 관절귀신’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야기인데, 사실 조금만 각색하면 웬만한 고등학교들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화성 B초등학교에선 ‘2학년 4반’에서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학생과 그를 처벌하는 교사의 내용을 토대로 한 괴담이, 평택 C중학교에선 특정 색깔의 옷을 입고 가면 납치를 당한다는 등의 괴담이 존재한다. 이들 역시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익숙한 괴담들이다.

■ “일본이 전파한 괴담, 그 속의 한국을 찾는 게 바로 ‘민속문화’”

그렇다면 이러한 학교 괴담들은 왜 탄생하게 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비슷한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을까.

“학교별·계층별·세대별 자신들의 관심사를 이야기 속에 포함해 괴담으로 만들어 전승하고 있는 것이죠”라고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이 요약했다. 한평생 도깨비에 대한 연구를 주력하고, 한국민속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답게 적극적으로 입을 뗀 모습이었다.

“‘민담’이라는 커다란 테두리가 있다면 ‘괴담’은 그 안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죠”라며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한 김 관장은 “우리나라 괴담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교사들에 의해 전파됐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경기도만의 학교 괴담’처럼 지역성을 띄지는 않아요. 일본의 소학교에서 전해온 거니까…. 전국의 화장실 괴담이나 7가지 불가사의 괴담 등이 비슷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실제로 우리나라 학교 괴담의 ‘전부 다 알면 죽는다’는 풍문도 일본이 오리지널이고, 동상이 움직이는 것도 니노미야 긴지로(二宮金次郞·도쿠가와 막부 시절 일본의 농촌운동가)가 원조다. ‘빨간 휴지, 파란 휴지’도 일본의 요괴 갓파(河童)와 에도시대 종이 문화와 결합해 탄생했다.

“도시에서의 괴담은 전세계적으로 다 있어요. 특히 학교 괴담은 학생들이 갖는 독특한 또래 문화랑 연관이 돼 많이 생기죠. 예를 들면 그들의 집단 문화는 ‘과시욕’, ‘일회성’, ‘우정’, ‘입시와 관련된 심리적 압박감’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들을 자극적인 표현으로 흥미롭게 표출하는 게 괴담의 확산 요인이고요. 어른들의 눈으로는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러한 괴담은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시대가 지나면 소멸하기 때문에 ‘O, X’ 형식으로 바라보고 ‘옳다 아니다’ 식으로 진단하면 안 돼요”라고 김 관장은 전했다.

그는 괴담을 통해 민담을, 민속문화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 괴담을 공부하면 현 시대에 학생들이,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재미있어요. 고루하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괴담을 만들어낸 기본 바탕은 일본이지만 그 안에서 한국화된 백그라운드를 찾는 게 필요해요. 그게 바로 ‘민속문화’거든요…. 현대사회에서 문화적인 변화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 찾아내고 분석하는 건 무척 중요하죠. 그 자체가 ‘민속’이고요. 민속이 과거의 생활이나 풍속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괴담 속에서 우리네 민속문화를 찾아가는 것, 충분히 의미 있고 재미 있지 않습니까?”

G스토리팀=이연우·조주현기자,민경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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