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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농부 잔혹사] ① 상처만 남기고 다시 도시로

희망 품고 농촌갔다... 절망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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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산업이 주된 먹거리인 농어촌 마을이 초고령화 가속화로 소멸의 기로에 서있다. 지역 발전은커녕 생존 유지를 위해서라도 ‘인구 유입’이 절실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다양한 정책으로 청년들의 귀농·귀촌도 활발해지고 있으며 올해는 역대 최대치도 기록한 상황. 그러나 정작 마을에 살고 있는 젊은 일꾼은 안 보인다. 들어오는 사람은 많다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며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본보의 ‘K-ECO팀’이 청년 농부의 실태를 짚으며 허울 뿐인 정책을 집중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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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정년, 길어진 노후. 제2의 인생을 농어촌에서 열겠다는 청년 농부의 포부는 1℃에 무너졌다.

예년보다 조금이라도 더우면 논이 말랐고, 조금이라도 추우면 강이 얼었다. 그렇게 김 씨의 생계 뿌리가 1℃에 뽑혀나갔다.

“흔히 식물이 1℃에 죽고 산다는 말을 많이들 해요. 근데 제가 그랬어요. 그 1℃ 때문에 죽고 사는 건 저였다고. 결국엔 죽었지만....” 화성시에서 하우스 농사를 짓는 37살 여성 농부 김 씨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번 여름을 끝으로 그녀는 더이상 새벽마다 비닐하우스로 출근하지 않는다.

6년 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김 씨는 문득 ‘나는 언제 내 사업을 하지?’ 싶었다고 했다. 틈틈이 새 일자리를 찾던 중 마침 부모님이 농사 일을 도우러 시골 좀 내려오라고 부탁했다.

집도, 땅도 있으니 내가 직접 농사를 해볼까. 김 씨는 가족과의 논의 끝에 1년 뒤 사표를 내고 고향에 돌아왔다. 양팔에 꽃과 나무를 가득 담아 타투로 채우기도 했다.

“부모님 따라 흙 갈고, 씨 뿌리고, 잡초 나면 등에 농약 업어 뿌리고... 농사는 어릴 때부터 워낙 익숙했어요. 제일 중요한 건 ‘물’인데 우리 동네는 물도 좋아서 실패할 일 없을 거라 생각했죠”라던 김 씨는 양팔을 들어보이며 “후회해요. 전부 다 후회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늦은 후회는 ‘이상 기후’에서 시작됐다. 2018년 유례없는 폭염으로 하우스 안 작물들이 열매를 일찍 틔우면서 시원한 온도를 유지해야 했고, 그때 수도세와 전기세 등이 부담이 됐다. 이르게 생산된 맛 없는 열매를 찾는 소비자는 아무도 없었고, 작물들은 고스란히 땅에 묻혀 거름으로 쓰였다.

2년 뒤(2020년)엔 한 달이 넘는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면서 하우스가 폭삭 가라앉았다. 복구 비용만 600만원에 달했다.

김 씨는 “기후가 변하면서 수질·수온이 달라졌는지, 제가 상황에 맞게 농사를 못한 건지, 어쨌든 실패였어요”라며 “앞으로 (기후 상황이) 더 심해질 거 아니에요. 부모님도 더이상 못하겠다고 하셔서 땅 팔고 이젠 농사 아예 안 할 거에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고양의 청년 농부 정 씨(29)도 김 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정 씨가 전한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농사가 아니라 농업을 하는 거잖아요. ‘농부’가 아닌 ‘사업가’라는 의미인데 아무도 취급을 안 해주더라고요”였다. 그는 “청년 농부라고 하면 ‘능력 없어서 몸 때워 일하는 애들’, ‘젊을 때 사고쳐서 취업 못한 애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토로했다.

모든 사업이 쉽진 않지만 그는 농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접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상대 측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인으로서의 비전을 보면 저 같아도 반대할 것 같아요. 당장 집도 시골 근처니까 그것도 싫을 수 있고요. 아직 어리니까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죠”라고 정 씨가 전했다.

그러면서 “농부를 바라보는 인식도 별로고, 시골의 삶 자체도 불편하고. 청년들이 포기하고 돌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죠”라고 덧붙였다.

귀농 꿈 접고 수없이 떠나는데... 관리는 뒷짐

농촌 활성화·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해마다 ‘청년 농부’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귀농귀촌 인구가 역대 최대치를 달성한 배경에는 돈을 주고, 집을 주고, 땅을 주는 등의 다양한 정책이 한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시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시골 살이에, 시골 인심에 치이고 치여 역(易)귀농을 택하지만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어느 누구도 파악하지 않는 실정이다.

■ 5년째 청년 농부 육성 집중... 청년창업농 年1천720명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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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지원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은 정부가 지난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만 40세 미만의 청년창업농을 별도로 선발해 최대 3년간 월 최대 100만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최대 3억원을 연 2%로 빌릴 수 있는 창업자금 저리 대출 등 기존 사업과도 연계해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만큼,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예비 농부들에겐 절실한 ‘돈줄’이 된다.

이와 함께 농지은행 농지 우선 지원과 영농기술 교육 및 컨설팅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혜택으로 시행 첫 해(2018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선발된 청년창업농은 전국 총 8천600명이다. 시행 초기 2.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아직까지도 2대 1의 가까운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관심으로 올해는 역대 최대치인 2천명 규모의 청년창업농을 선정하기도 했다. 새롭게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예비 청년 농민의 창업을 장려하고 창업 초기 정착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청년농민 3만명 육성’을 농업 분야 주요 과제로 내건 상태다.

■ 취지는 좋아도 만족도는 ‘글쎄’

그러나 이 정책은 청년 농부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다. 자금 지원 역시 경기도에서 농부로 정착하기엔 한계가 있는 데다 영농기술 부족, 농촌 인프라 부족 등 정착 과정에서의 다양한 장애요인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목소리가 담긴 조사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도 영농정착사업에 선정된 청년창업농 329명을 대상으로 정책 만족도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94점을 기록했다.

항목별로 보면 ‘농지 취득·임대 관련 소개’ 항목이 2.42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농촌지역 내 휴경지나 고령농의 경지 등을 필요한 농업인에게 임대하거나 매매를 지원하기 위해 농지은행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보 부족 등으로 정착지역 내에 농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다.

뒤이어 ‘주거지 마련 지원’(2.63점)과 ‘판로 개척’(2.78점), ‘농기계 임대 소개’(2.84점), ‘멘토 등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2.93점) 등 항목이 2점대에 그쳤다. 절반의 만족과 절반의 실망이 섞였다는 의미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창업농들 4명 중 1명은 ‘농지 취득 및 임대 사업 확대’(25%)가 가장 절실하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정착단계별 세분화된 정책지원’(19.9%), ‘농협-지자체-농업기술센터의 원스톱 서비스’(17.9%), ‘농촌 생활 인프라 확충’(14.9%)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곧 청년 창업농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마련하는 것, 즉 경영자금 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지속적으로 시골 떠나는데 현실 반영한 통계는 전무

결과적으로 농촌 정착에 어려움을 느낀 청년 농부들은 ‘도시 생활’을 그리워하며 다시 도심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정부도, 지자체도 귀농·귀촌 인구 수에만 집중할뿐 역귀농·귀촌 인구 수에는 관심이 없다. 그 어디에서도 구체적인 최신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년마다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전년도 귀농인 수를 발표하고 있고, 여기에는 지역·규모·연령·성별 등 다양한 분류의 귀농인 통계가 담겨 있지만 역귀농 수는 제외다.

딱 한 번(4년 전) 전국 단위 관련 조사가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청년 농업계에선 ‘신뢰가 안 가는 조사’로 치부한다. 당시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귀농·귀촌인의 정착실태를 장기추적한 조사 결과를 발표, 역귀농률은 8.6%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장에선 경기 침체나 코로나19 유행,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수많은 변곡점이 있었던 만큼 지금은 수없이 많은 청년 농부가 시골을 떠난다고 보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촌에 얼마나 머물었다 돌아가야 ‘역귀농’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개념 자체도 애매모호하고, 관련 내용을 파악하려면 전수 조사를 해야 하는데 여러 상황상 조사를 실시하는 자체에 어려움이 있다”며 “과거에 역귀농 관련 장기추적조사를 한 결과가 있는데 현재도 크게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고 느끼면 장기적으로 표본 조사를 할 것이며 내부에서 논의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비싼 땅값’ 농촌 정착 발목 잡는다

천정부지로 뛰는 땅값이 귀농·귀촌인의 발길을 꺾게 한다.

시골을 떠나 다시 도시행(行)을 결정한 경기도 청년 농부들은 귀농·귀촌 생활 유지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높은 토지 비용’을 꼽았다.

농업을 할 수 있는 땅을 사려면 적정 면적은 갖춰야 하는데 그때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큰 데다가, 땅을 사더라도 비수도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라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17일 국토교통부 지가변동계산기를 통해 지역별 지가 상승률을 분석해봤다.

먼저 올해 5월 기준 용도지역별(농림)로 계산했을 때, 경기도 지가는 5년 전보다 22.55% 오르며 전국 1위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전남(19.07%), 충북(15.62%), 전북(14.02%), 경북(13.90%), 경남(13.21%), 강원(13.15%) 등 타 시·도 토지보다 10%p가량 높은 수치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충남(11.11%)보다 상승률이 두 배 이상 높았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경기도로 갈 바엔 충남으로 갈 법한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선정하는 ‘청년창업농’에 꼽혀 3억원을 대출 받을 자격을 얻더라도 경기지역에선 변변한 농장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역간 위치별 차이는 있으나, 통상 자본금 3억원이 있을 경우 경기도에서는 토지를 1천652㎡(500평)도 사기 어렵다. 반면 충청도(2천644㎡~3천966㎡)나 경상도(4천958㎡), 전라도(4천958㎡~6천611) 등 다른 지역에서는 몇 배 더 넓은 땅을 살 수 있다. 같은 값에 ‘경기도 땅’을 사기로 결심하더라도 면적이 부족해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작은 규모의 땅에서는 논 농사를 지어봤자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수익을 얻으려면 특용 작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 농가를 운영해야 한다. 문제는 이때의 시설비 역시 고가라는 점이다.

경기도에서 운 좋게 1천㎡의 땅을 3.3㎡당 50만원에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시설비는 통상적으로 3.3㎡당 50만원 이상 들고, 청년창업농들이 선호하는 ‘스마트팜’의 경우에는 3.3㎡당 100만원이 넘게 필요하다. 1천㎡의 땅에서 농사를 시작하려 준비를 하는 초기 비용만 최소 3억원이 드는 셈이다.

수익성도 따져봤다.

농업정보포털의 농업경영정보시스템을 보면 경기도에서 시설 딸기를 재배할 경우 위 조건에서 연 1천338만4천481원(이하 2020년 기준)의 수익이 난다. 이게 그나마 높은 편이다.

시설 포도의 경우는 연 1천145만7천399원, 방울토마토의 경우는 연 657만5천486원 등으로 계산됐다. 올해 국내 직장인 최저 연봉(세전 기준 2천297만3천280원)의 절반도 안 되는 품목이 대부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농사를 할 만한 크기, 농사로 수익을 볼 수 있는 크기의 땅을 사려면 최소 6억원 정도는 들고 있어야 ‘최저 연봉’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덕형 한국농업아카데미 원장은 “경기도는 땅값이 비싸 가업을 물려받는 승계농이 아니면 신규 귀농귀촌인의 진입 자체가 어렵다”면서 “국가 차원의 토지 장기 임대 등으로 토지 구입·임대비를 줄이고 시설비나 운영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K-ECO팀=이호준·이연우·한수진·이은진기자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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