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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상, Today] 당신의 마음을 노린다, 로맨스 스캠

아홉 번째 이야기 : 소개팅 어플 속 그 남자, 사랑꾼 가면 쓴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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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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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범죄가 등장했다. 사기 범죄는 보이스피싱을 거쳐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다변되고 있다.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자 SNS를 비롯한 가상공간에서 사람의 마음을 꾀어내는 것이다.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는 탓에 구제가 어렵다는 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경기일보는 피해 당사자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범행 수법을 조명하고 대책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로맨스 스캠이란?

사랑을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신용사기를 의미하는 ‘스캠(scam)’의 합성어로, SNS나 메신저 등에서 신분을 사칭하면서 불특정 이성에게 호감을 산 뒤 금전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 수법이다. 주로 해외에 본거지나 서버를 두고 있어 계좌 추적이 어렵고, 검거한다 해도 사기죄로 입건되는 탓에 전자금융거래법을 적용받는 보이스피싱에 비해 양형 기준이 낮다.

 

#1. "사랑해" 한 마디, 얼굴도 못 본 그에게 마음을 뺏겼다


“우리, 친구할까요?”

지난해 11월 소개팅 어플을 둘러보던 정민희씨(35·가명)에게 낯선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프로필 사진 속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눈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는 누가 봐도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정씨가 대화에 응하자 그는 자신을 미국에서 일하는 부동산 투자자라고 소개했다. 이 남자, 직업까지 매력적이다.

꽤나 완벽한 조건에 정씨도 의심을 품었지만, 남자는 여권사진과 집 주소까지 내밀며 자신의 존재를 ‘인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씨도 마음의 빗장을 풀었고 어느새 ‘사랑해’라는 달콤한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사이 정씨에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설레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밤을 새운 지 일주일, 남자는 대뜸 ‘채팅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3천200만원에 달하는 큰 포인트가 적립돼 있는데 여자 회원만 현금 환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자친구의 고민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정씨는 문제의 사이트에 접속했고, 상담원과 대화를 시작했다.

상담원은 정씨가 신규회원이라 곧바로 환전이 어렵다며 ‘등업비용’을 요구했다. 그렇게 정씨는 485만원을 송금했지만, 상담원은 오류가 발생했다며 재차 송금을 요구했다. 다시 수백만원을 보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정씨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자 다정했던 그 남자는 차갑게 돌변하며 이별을 고했다.

 

로맨스 스캠. 유동수 화백

정씨만 겪은 일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주혜영씨(32·가명)도 ‘가짜’에게 호감을 가졌다. 채팅 어플에서 자신을 ‘홍콩 사업가’라고 소개한 남성은 짙은 눈썹과 깊은 쌍꺼풀, 깔끔한 차림새로 주씨의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주씨는 대화를 이어갈수록 이 남자와 찰떡궁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주씨가 만남을 요청하자 그는 국내로 들어온 뒤 자가격리 중이라는 디테일한 속임수를 펼쳤다.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던 ‘이상형’은 주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역시나 여자만 환전이 가능하다는 특정 사이트에서 4천200만원을 꺼내달라는 것. 자가격리가 끝난 뒤 만나자는 말에 주씨는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등업비용에 퀵 환전비용까지 더해 8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구매했고, 핀 번호를 모조리 채팅 사이트 상담원에게 넘겼다. 상담원은 계좌번호가 잘못됐다며 재차 같은 금액의 송금을 요구했다. 입금한 금액을 만나는 날 모두 돌려주겠단 남자의 말에 계속해서 돈을 보냈지만, 그는 주씨의 대화창에서 사라졌다.

두 여성이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로맨스 스캠’ 사건은 각각 부천오정경찰서와 양주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다만 협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을 보낸 것이기에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씨는 “수법이 널리 알려져서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경찰도 로맨스 스캠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체계를 갖추길 바란다”고 털어놨다.

 

범행이 벌어지는 과정을 담은 가상의 카카오톡 대화창. 특정 사이트로 유인한 뒤 환전을 위한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를 국가정보원은 ‘사이버머니 대리환전형’ 로맨스 스캠이라 규정했다. 장희준기자

#2. 피해액만 수십억대, 코로나19 이후 사이버 범죄 '기승'


한때 ‘김미영 팀장’ 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하며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던 데 이어 최근에는 다양한 신종 사이버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자 SNS, 채팅 어플 등을 통해 접근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로맨스 스캠’이다.

■코로나19 틈타 사이버사기 ‘기승’

사이버사기는 스미싱, 몸캠피싱, 로맨스 스캠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피해는 계속되고 있지만, 수사 당국에선 아직 신종 범죄로 보고 있어 별도 통계를 분류하는 기준을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같은 범죄들이 포함되는 사이버사기 항목을 통해 범죄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사기는 지난 2018년 11만2천건, 2019년 13만6천74건, 2020년 17만4천328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그 증가폭은 국내 코로나19 유입의 기점이 된 2020년 들어 두드러진다. 지난 2020년 경기지역에선 3만9천254건(22.5%)의 사이버사기가 발생했다.

■공포 대신 호감 노리는 ‘로맨스 스캠’

앞선 정씨와 주씨의 피해 사례를 참고할 때 보이스피싱과 구분되는 로맨스 스캠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자의 ‘호감’을 사면서 접근한다는 점이다. 주로 채팅 어플이나 SNS를 비롯한 온라인 가상공간을 통해 범행이 이뤄지며 결혼을 약속하거나 연인 행세를 한 뒤 돈을 뜯어낸다.

또 범죄에 연루됐다거나 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압박하는 보이스피싱과 달리 피해자 스스로 범행에 빠져들게 한다는 면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범죄 지시로 진화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4월 수원서부경찰서는 로맨스 스캠을 당해 피싱 수거책으로 가담한 20대 여성을 검거하기도 했다.

 

로맨스 스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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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피해 부지기수…정체는 외국인?

로맨스 스캠의 발생 빈도가 늘어나면서 피해 규모도 불어나고 있다. 일례로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4월 사기 혐의로 나이지리아 국적 남성 2명을 구속했다. 미군 군의관 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을 사칭한 이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이성으로 접근해 억대 금액을 갈취했다.

비슷한 시기 경기북부경찰청도 로맨스 스캠 일당을 구속했다. 나이지리아 국적 등 외국인 4명은 지난 2020년 8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미군이나 금융거래소 직원, 의사 등을 사칭하며 피해자에게 이성으로 접근했다. 결혼 등을 약속하며 26명에게 뜯어낸 피해액만 16억5천만원에 달했다.

■국정원도 주목, 활개치는 ‘사랑 범죄’

로맨스 스캠이 국적·성별을 가리지 않고 활개를 치면서 국가정보원도 이런 신종범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발생한 피해 사례 174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 규모는 연도별 9억원대에서 20억원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국정원이 분석한 주요 수법은 크게 3가지다. 해외 재력가로 치장한 뒤 암호화폐 등에 투자를 유도하는 ‘허위 가상자산 투자형’, 친분을 형성한 뒤 대리 송금을 요청하는 ‘가짜 인터넷뱅킹 송금형’, 채팅사이트 포인트가 곧 소멸된다며 대리환전을 요청하는 ‘사이버머니 대리환전형’ 등이다.

■가장 주효한 예방법은 ‘합리적인 의심’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로맨스 스캠은 사생활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범죄인 탓에 피해를 당한 뒤 경찰 수사도 쉽지 않다”며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피해자라는 점을 인식하고 상대방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요구를 하면 걸러낼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추세에 편승한 신종 범죄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는데, 대부분 해외에 거점을 마련해 조직적 범행이 이뤄지고 있다”며 “해외 정보 및 수사기관과 협력에 나서 국내 수사기관의 범인 색출을 돕는 한편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로맨스 스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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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과 나, 사랑과 범죄 사이…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를 방지할 구제 체계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 제·개정안이 우후죽순 발의되고 있긴 하나, 이 역시 실효성에 대한 의문 부호가 달린다.

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별도의 소송절차 없이 신속하게 피해액을 회복할 수 있다. 피해자가 자금을 이체한 계좌에 입출금·이체 금지를 금융기관에 요청하면, 즉각 지급정지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후 금융감독원을 거쳐 환급된다.

반면 로맨스 스캠에 대한 제도적 안전망은 전무하다. 신종금융사기는 계좌 지급정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탓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치권에선 다양한 법안을 발의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12월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주된 내용은 재화나 용역 공급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시켜 계좌 지급정지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20년 8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이 다중사기범죄방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금융업 영위로 불특정 다수에게 이득을 편취하는 행위를 ‘다중사기범죄’로 통합 정의, 현행법상 범죄를 유형별로 규제하면서 발생했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게 법안의 주된 목적이다.

특히 이 법안에는 보이스피싱 구제 절차를 다중사기범죄 피해자에게까지 확대 적용하고, 피해자에 대한 손해액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까지 도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상습법에 대해서는 신상을 공개하는 방안까지 포함돼 있어 가장 강경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신종금융사기는 수법도 점차 다양해지고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어 다중사기범죄방지법 제정을 통한 통합 규제가 시급하다”며 “특히 새로운 법안에 포함된 신상공개와 계좌 지급정지 항목은 피해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법안 제·개정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해를 인지하고 신고했을 땐 이미 돈이 해외로 빠져나간 뒤일 확률이 높은데, 과연 지급정지가 주효할지 의문”이라며 “우선 수사기관이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도록 해외 수사기관과 국제적 공조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장희준·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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