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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난민 취업실태] 5. 지금과는 달랐던 직업

모국 탄압에 한국 정착한 인재들 ‘일용직 전전’
유학파 엘리트 코스 미얀마인 플라스틱 공장 취업
다큐제작자 ‘용접공’·건축설계사 ‘식품공장원’ 전락
‘편견의 벽’ 경력·학력 무의미… 대부분 제조업 종사
난민법 ‘직업훈련’ 명시… 당장 생계 위해 ‘그림의 떡’
직업소개소 찾아도 냉대… 이번엔 한국속 난민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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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규기자
버섯농장의 재배시설 내부 모습. 윤원규기자

이유는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이 살던 나라에서 더는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박해를 받아 도망치듯 떠난 이들을 우리는 흔히 ‘난민’으로 부른다. 이 때문에 자신의 나라에서 오랜 시간 쌓아왔던 경력이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난 당시 관련 서류를 가져오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경력을 인정받고자 본국의 대사관을 방문할 수도 없다. 한국에 온 난민들은 처음 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학생이었는데 공장에서 일하고 종교인이었는데 일용직을 전전하는 건 예사다. 생계는 꾸려야 하고 경력이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 내몰린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어렵게 영구 체류 자격을 얻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난민을 위한 직업교육이 있지만 실상 이를 알고 있거나 활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민법 15조에는 난민도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어려운 이들이 시간을 내 교육을 받기도 쉽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본인의 의지와 달리 난민이 돼 한국이라는 낯선 곳까지 왔지만 시련의 연속이다. 난민 신청자라는 신분으로 수년을 살아내야 하고 우여곡절 끝에 난민 인정자가 되더라도 ‘알아서 살라’는 냉담한 현실은 그들의 삶을 더욱 옥죈다. 난민은 왜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제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들여다봤다.

윤원규기자
화성시 팔탄면의 버섯농장 전경. 이곳 직원의 9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다. 박상괄 농장주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했다. 윤원규기자

■ 과거 직업과 전혀 다른 일 ‘고단한 삶’

본국에서 난민이 갖고 있던 직업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한국인들이 가진 직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미얀마 출신 난민 얀 나이투(51)씨는 원래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 야심 차게 몸을 맡겼지만 돌아온 건 신변에 대한 위협뿐이었다. 결국, 난민이 돼 한국으로 왔고 현재 목재를 CNC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김포에서 재한줌머인연대 회장을 맡은 라트나 키르티 차크마(42)씨는 승려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종교적으로 탄압을 받다가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그의 신분은 ‘난민 신청자’다.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어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다행히 용접 기술을 익혀 일당 15만 원 정도를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많은 난민이 본국에서의 직업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한국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과 같은 난민을 위해 통역사로 일하는 방글라데시 줌머족 출신 여성은 원래 본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유학까지 다녀올 만큼 엘리트 대학생이었던 미얀마 출신 한 난민은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예 한국으로 귀화해 NGO(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하는 난민도 있다.

지난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와 난민네트워크가 주최한 ‘난민인정자 처우 현황 보고대회-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에서는 본국에서 언론사 기자가 플라스틱 제조업을, 다큐멘터리제작자가 용접일을, 건축설계사가 식품공장일을, 귀금속을 팔던 이는 공장 생산직종 등에서 일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모두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본국에서의 직업과는 거리가 먼 제조업에 몸담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윤원규기자
버섯농장의 외국인 직원들이 재배시설 내부에서 수확에 한창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기술 못 배우고 적응 못 하고

난민법에서는 난민 인정자가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난민법 제15조(직업훈련)에는 ‘법무부장관은 직업훈련을 원하는 난민인정자 가운데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제12조에 따른 직업능력개발훈련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추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령에 나온 대로 직업훈련을 받아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난민은 전혀 없다. 당장 생계가 절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직업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설사 교육을 받더라도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한 난민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일용직, 공장 생산직, 식당 설거지 등의 일을 했다. 그때까지 아무런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다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고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떤 곳은 웃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그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 지금은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친구들은 이렇다 할 취업교육이나 기술을 배우지 못한 채 지인의 소개로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더욱 심각한 건 최근 들어 난민이 일용직조차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거다. 난민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한 한 난민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있다. 또 난민을 향한 한국인들의 그릇된 편견 역시 난민의 한국 적응을 더욱 힘들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난민 단체 관계자는 “요새는 직업소개소 같은 곳에서도 난민들이 환영받지 못한다. 진짜 난민이 된 거다. 아예 처음부터 난민을 거부하는 곳도 있다”며 “국가별로 차별하는 경우도 많다. 문화적인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기 때문에 난민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수확한 버섯을 판매하려고 직원들이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수도권 제조업 종사 난민 약 8천500명

본국에서의 경력과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한국에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들어온 이들은 이렇다 할 취업교육을 받지 못해 대부분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같은 나라 출신 지인이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본국에서의 경력을 이어간 경우는 극소수다.

국내에서는 난민의 취업과 관련한 통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수도권 난민(난민 인정자, 인도적 체류 허가자, 난민 신청자 등)의 숫자는 1만 3천789명, 이 가운데 미성년 자녀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약 31%(4천274명)라고 가정하면 9천515명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90%가 제조업에 종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8천563명이라는 숫자를 얻을 수 있다.

실제 기자가 만난 12명의 난민 가운데 시민단체 소속이나 통역사로 일하는 2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0명 모두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 이들을 통해 전해 들은 다른 난민들 역시 대부분 제조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수도권 거주 난민의 약 90%가 제조업에 종사할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언제까지나 추정치일 뿐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난민의 취업 실태와 관련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료가 만들어져야 이들을 위한 각종 지원책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난민을 위해 구체적인 통계를 마련하고 정책을 고민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실태 파악을 위해 지역별 외국인 노동자 관련 단체 또는 기관에 문의해봤지만 대부분 돌아온 답변은 “난민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른다”거나 “난민에 대한 자료는 따로 없다”였다. 결국, 연결된 난민을 통해 다시 다른 난민을 소개받으며 한명 한명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상담팀장으로 일하는 줌머족 로넬 차크마 나니(49) 씨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는 난민법이 없지만 한국에는 있다. 덕분에 난민 인정률은 2%대이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한국이 선진화가 될수록 더 많은 난민,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함께 생존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또 그게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외국 사례처럼 한국에도 사회통합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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